“일 년 내내 햇빛 한 줌 구경할 수 없는 암흑천지 동굴 속에는 낯빛이 파리한 3가구의 주민들이 아직까지 살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2가구 30여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모두 떠나고 4명만 남았다. 황임선(85·가명)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다.
동굴을 따라 3m쯤 들어가면 할머니가 2평 남짓한 방을 만들어놓고 생활하고 있다. 동굴인데도 겨울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최소한의 환기를 위해 입구를 열어놓을 수밖에 없어 겨울철 매서운 한기가 고스란히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재 위험과 환기 문제 때문에 온돌이나 보일러 설치 등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황할머니는 방바닥에 스티로폼 단열재와 담요, 이불을 차례로 깔아놓고 겨울 추위를 견디고 있다.”
- <신음하는 주거복지 1부> 문명이 비켜간 동굴 토굴집, 부산일보 2007.1.8
인간이 동굴 등 지하공간에 살기 시작한 것은 50만 년 전 베이징 원인 때부터였다. 상원 검은모루 동굴의 구석기 유적지에서 보듯 한반도의 조상들도 오래 전에는 동굴에 살았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에 동굴이나 지하실 등에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착잡한 심정을 가누기 어렵다.
태양계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생존하는 데,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곳에 산다는 것은 인간 이전에 태양계 생물로서의 생존 조건을 빼앗긴 것이다.
한 겨울 날씨에 몸도 춥고, 경기 한파로 마음도 쌀쌀한 오늘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딱한 처지에 있는 동굴 움막 비닐집 판잣집 쪽방 지하방 옥탑방 등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공부해보자. 이 글에 등장하는 수치는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로 우리나라 부동산 극빈층에 관한 단군 이래 최초이자 유일한 통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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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쪽방 등에 5만 명 산다
기온이 뚝 떨어진 요즘 추위에 뼈가 더 시릴 ‘동굴에 사는 사람’에 관한 통계는 정확히 조사된 적이 없다. 다만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항목 중 ‘업소의 잠만 자는 방, 건설현장의 임시막사, 동굴 등 기타’ 항목에 포함돼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데, ‘~동굴 등 기타’의 거처는 1만5,803개이며 여기에는 2만2천여 가구 5만3천여 명이 살고 있다.
전국 3,573개 읍면동 중 ‘~동굴 등 기타’에 사는 사람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는 42%의 서울시 중구 명동(1,163가구 중 488가구)이며, 가구수가 가장 많은 동네는 803가구의 중구 회현동(2,681가구의 30%)이다. 아마도 남대문 인근에 쪽방(업소의 잠만 자는 방)이 많은 탓으로 보인다.
통계를 보면 위 부산일보 기사에 나오는 부산시 중구 동광동에는 황할머니 등 3가구 4명 외에도 29가구 32명이 ‘~동굴 등 기타’에 살고 있다.
비닐집 판잣집 움막에 6만 명 산다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비닐집 판잣집 움막은 모두 2만2개로, 이곳에 2만3천여 가구 5만7천여 명이 산다. 가구기준으로 전국에서 ‘비닐집~’에 사는 사람 수가 가장 많은 동네는 서울시 강남구 개포1동으로 1,154가구 2,146명이 여기에 산다. 다음은 개포2동으로 614가구 1,253명이 ‘비닐집~’에 산다.
동네사람 중 ‘비닐집~’에 사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경기도 고양시 홍도동으로 27%에 달한다. 서울시 강동구 강일동(22%), 강남구 세곡동(2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20%) 역시 동네 사람의 20% 이상이 비닐집이나 판잣집 또는 움막에 산다.
지하방에 142만 명 산다
반지하를 포함한 지하방에는 58만6,649가구 141만9,784명이 산다. 가구 기준으로 61%는 서울에 27%는 경기도에 사는 등 지하방에 사는 사람의 95%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 또 서울에 사는 331만 가구 중 11%인 36만이 지하에 사니까, 서울 시민 열 중 한 명은 지하방에 사는 셈이다.
서울시 관악구 신림4동에는 2,653가구 5,623명이 지하방에 살아 가구수가 전국에서 제일 많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은행 2동은 2,217가구 6,592명으로 지하방에 사는 사람수가 제일 많다. 이밖에 서울의 강동구 성내2동, 광진구 화양동, 송파구 삼전동, 서초구 방배2동과 경기도 성남시 금광1동과 중동 및 수진동도 2천 가구 이상이 지하방에 산다.
서울시 강남구 세곡동과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은 지하방에 사는 가구 비율이 나란히 35%를 기록해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두 동네 사는 사람 셋 중 하나 꼴로 지하방에 사는 셈이다.
부산일보
옥탑방에 9만 명 산다
옥탑방에는 5만1,139가구 8만7,766명이 산다. 가구기준으로 옥탑방 사는 사람의 67%가 서울에, 21%가 경기도에 사는 등 수도권에 89%가 몰려있다.
옥탑방에 사는 사람 비율이 가장 높은 동네는 서울 성동구 옥수1동으로 3,863가구의 9%인 352가구 721명이 옥탑방에 산다. 경기도 성남시 수진2동은 495가구 902명이 옥탑방에 살고 있어 전국에서 옥탑방에 사는 사람이 가장 많은 동네였다. 2위는 405가구 811명이 옥탑방에 사는 대전시 서구 갈마2동이다.
3,339개 읍면동에 퍼져 산다
종합하면 68만3,025가구 161만7,062명이 동굴 움막 비닐집 판잣집 쪽방 지하방 옥탑방 등에 사는 것이다. 전체 가구의 4% 수준이다. 전국 16개 광역시도는 물론 234개 시군구 가운데 이들이 살 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우리 자신 또는 이웃 누군가가 우리 동네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동네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전국 3,573개 읍면동 가운데 지하방 거주자가 있는 곳은 2,387곳에 달한다. 옥탑방은 2,120개 동네에, 비닐집 판잣집 움막은 1,812개 동네에, 업소의 잠만 자는 방과 건설현장의 임시막사 그리고 동굴 등 기타는 2,480 동네에 달한다. 이들이 아무도 살지 않는 동네는 전체의 6.5% 234개 동네에 불과하고, 93.5% 3,339개 동네에는 누군가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땅위에 살 수 있으려면
거두절미하고 이들 모두가 땅 위로 나와 살려면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가장 규모가 많은 지하방을 예로 들어 계산해보자. 서울의 경우 지하전세와 지상전세 가격차는 가구당 3,512만원이며 약 15만 가구가 지하전세방에 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지상 전세로 옮기는 데는 약 5조원 정도가 필요하다. 수도권 전체로는 7조원이 필요하다.
같은 방식으로 월세, 사글세, 자기집 등 지하거주 가구의 다양한 점유형태별로 필요한 비용을 계산하면 전국에 있는 지하방 거주가구를 한꺼번에 지상으로 올라와 살 수 있게 하는 데는 약 11조1,767억1,729만원이 필요하다.
또 옥탑방의 경우 지상 가옥으로 옮기는 데 필요한 돈이 약 6천억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비닐집~’과 ‘~동굴 등 기타’를 포함할 경우 총 13조원 안팎이면 가능할 것이다.
13조원을 마련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4,800만 국민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동굴 등 기타’에 사는 사람을 못 본 척 하지 않고, 함께 땅 위에서 살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길을 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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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부자에 퍼주는 돈을 보자
돈 뿐 아니라 주로 수도권에 사는 분들이기 때문에 일시에 지상가옥 수십만 채를 공급하려면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5년이나 10년에 걸쳐 단계별로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굴이나 지하실에 사는 사람 중 노령자나 돌도 지나지 않은 갓난 애를 키우는 가정 또는 장애인이 포함된 가족부터 우선 땅 위로 올려 보내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역시 돈이 문제다. 13조 원이면 매우 큰 돈이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부자들과 건설재벌들에게 퍼주는 돈을 보면 못할 것도 없단 생각이 든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9월1일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감세안에 따라 2012년까지 부유층과 대기업에게 깎아주는 세금이 무려 23조2천억 원에 달한다. 헌법재판소가 종부세 위헌 결정을 내리고, 이명박 정부가 종부세를 더 깎아줘 2010년까지 부동산 부자들에게 돌려주거나 깎아주는 돈만 5조2천억 원이다. 정부가 10.21 조치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주는 등 건설업체에 지원하려는 돈만 9조원이 넘는다.
물론 전월세 가격이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이니 그 사이 가격 변동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 거품이 잔뜩 낀 집값이 떨어져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이들을 ‘구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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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내는 사람 vs 동굴-지하방 사는 사람
우리사회에서 주택재산이 7억5천만 원이 넘어 종합부동산세를 내왔던 가구가 37만9천 가구다. 이들은 비싼 집만 골라 총 112만5천 채를 소유하고 있고 그 중 어떤 이는 집을 98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집 외에 재산증식용으로 소유한 집만 74만6천 채에 달하는 셈이니, 동굴 비닐집 지하방 등에 사는 62만3천 가구가 몽땅 들어가 살아도 12만3천 채가 남는 양이다.
가구수로 보면 동굴 비닐집 지하방 등에 사는 가구는 종부세 내는 사람들보다 1.5배나 많으니 선거 때 표도 그만큼 많은 셈인데, 왜 종부세 내는 사람들만 생각해주는 걸까. 똑같은 유권자에 표도 한 표씩 똑같은데. 더구나 돈이 많은 부유층에게 국민 세금을 퍼주는 것 보다는 시장 실패의 피해자이자 사회적 약자인 극빈층을 위해 쓰는 것이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데에도 훨씬 나을 텐데 말이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 서울에 첫 눈이 내린다고 한다. 이 겨울 동굴에 사는 황할머니의 건강을 빌면서, 우리사회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간절히 빈다.
오늘은 우리사회에서 가장 처지가 딱한 ‘~동굴 등 기타’와 ‘비닐집~’ 그리고 지하방과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공부했다.
※ 참고한 자료
- 통계청,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