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많이 삐쳤어~~ '





결혼반지...
이 소심한 남자는.... 그 여자와 그 남자를 '마음속으로 죽이고도'
아직까지도 결혼반지를 버리지는 못했구나..




아... 조은지... 므흣.





"아무래도 아내가 바람이 난 것 같습니다."



"신라 서울 밝은 달밤에 새도록 놀다가
돌아와 내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아아, 둘은 내 것이거니와, 둘은 누구의 것인가? "

-처용가


킨제이 “사회적 규제만 없다면, 남성들은 평생 아무 여자나 섹스 상대로 삼으며 문란한 성생활을 즐길 것이라는 명제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반면 여성들은 다양한 상대를 접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만프레트 타이젠의 저서 <러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포유류의 97%는 정조관념이라는 것이 없다고 한다."


 

"북아메리카 중서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 ‘불스’와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생김새는 거의 비슷하지만, 애정생활에 관한 한 완전히 상반된 특징을 보인다.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들쥐는 냄새를 통해 적합한 파트너를 찾으며 끔찍이 서로를 아끼는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평생 한 파트너하고만 짝짓기를 하며, 나중에 직접 만든 둥지에서 새끼를 함께 돌본다. 반면 산에 사는 그들의 동족은 정반대의 애정생활을 보인다. 수컷은 새끼를 낳아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으며, 곧장 다른 암컷의 치마 속을 호시탐탐 노린다.
유전자 측면에서만 보면, 두 들쥐는 거의 동일하다. 그러니 산에서 서식하는 들쥐를 그토록 불성실한 수컷으로 만드는 것은 유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 15년간 들쥐들을 연구해온 미국 에모리대학 래리 영 박사팀은 대초원에서 서식하는 성실한 수컷 들쥐에게 ‘바소프레신’이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고, 암컷에게는 옥시토신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바소프레신과 옥시토신은 자식과 배우자에 대한 애착을 유발하는 호르몬인데, 이들을 차단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순식간에 그들의 태도는 돌변했다. 평소에 그렇게 자상하던 수컷이 교미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취를 감췄고, 암컷 또한 파트너에 대한 흥미를 곧바로 잃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음 연구 결과였다. 이번에는 산에 서식하는 들쥐를 유전적으로 변형해 바소프레신 수용체와 옥시토신 수용체의 양을 늘렸더니, 바람둥이 수컷 들쥐들이 갑자기 ‘자상한 아버지’로 돌변했다. 예전의 불성실함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대초원에 서식하는 들쥐처럼 그들도 이제 한 파트너에게 전념하고 새끼를 키우는 데 전념하더라는 것이다. "


아침엔 불륜 드라마가 점령을 하고, 연예 뉴스의 탑은 불륜으로 넘실거린다.

불륜은 인생의 불협화음 중 으뜸이 아닌가 싶다.
정조가 사회적 책임이건 인간적 의무이건 간에 남녀의 관계만큼이나 불륜이 뜨거운 이슈인 것은
인간 모두의 내면에 꿈틀거리고 있는 본능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적규율이 어느 한 순간에 무너질 때 누군가는 낭만이라 부를 것이고, 누군가는 배신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은 남의 일일 때이다.
내 것이 되는 순간, "년 놈의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싶"은게 진실이 아닐런지...

"도장 처음 판 건데 평생 쓰는건가요? "
도장 파는 남자 박광정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서서히 알아가고 있을 터.
소심함, 맺을 수도 끊을 수도 없는 인간의 관계에 대한 회의는 또 다른 불륜으로 알아간다.
바로 '그 놈의 아내'로 말이다.
"내 나이에도 새 이빨이 날까요?"
새로운 시작이 두려운 것은 쓸모 없어진 질투가 남긴 빈 자리를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함에 있다. 뭐든지 씹어 삼키게 했던 '그것'이 사라진 후에 씹는 행위는 무의미하지 않은가.


'씹'... 씹하는 인간이 사랑때문이라 말한다면 당신의 씹에 질문을 하면 안된다.
"했어요 안했어요? 했으면 어디까지 했다 그런게 있잖아요"
"그쪽도 했고 나도 했고 이제 그만 합시다"
"어디까지 했어요?"
"했다니까.. 앞으로 한번 뒤로 한번"
"허헛... 내참 이마에 딱 써있네.. 거짓말"


모든 것이 거짓말인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배신도 질투도 기다림도...


아~ 찌질한 남자들의 대화가 '무덤'을 파는구나.
웃긴다.
막 웃다가 남자들의 이런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다니 ..
감독이 원망스럽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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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ia 2008-08-03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저도 봤는데 겨울에. 이거보고 쓴 리뷰도 있었는데 지웠어요 지금은요. ^^
굉장한데요~ 라주미힌님께 별네개를 받은 영화라니. ^^

라주미힌 2008-08-0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겼어요.. 여러모로 ㅋㅋㅋ
남자들의 치부를 드러낸 거 같기도 하고.. 감독의 도발적인 영상도 매력있고..
 






Feed~!  
그것,
육체는 육체에 의해 태어나고, 욕망을 소비하고 또 소비하여, 문화와 패션에 의해 길들여진 신체에 해방을 안겨준다. 그것이 진정한 아름다움에 이르는 새로운 해법!이라 믿는 '변태'의 행각이 찬란하게 펼쳐지는 영화다. 실화는 아니지만, 있는 일들이라는 이 영화의 도입 코멘트부터 심상치 않다. (꽤나 역겨운 ㅡ..ㅡ;)

욕망의 인간적 얼굴과 사회적 얼굴은 변태 때려잡는 형사의 일상과 변태의 일상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형사의 성적 컴플렉스와 페르소나의 괴리는 아내가 떠날까 하는 불안과 자기 성기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사의 숨겨진 내면이며, 이것은 우리 사회의 여러 얼굴이고, 사회적 도덕률이 얼마나 위태롭고 허약한 기반 위의 질서인가를 보여준다. 비만 여성으로 대표되는 그녀들이 갈구하는 것은 '무한한 욕망'이다. 그것을 과도하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은 '무한한 힘'을 가진다.
움직이지 못할 체중이 될때까지 먹이고 먹임으로써 관계의 기능적 '가능성'을 시험하는 주인공 변태는 피라미드 최상위 권력의 포식자가 된다.
이것은 사육과 피사육이라는 새로운 종속적 관계에 관한 실험인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오직 '사육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사랑법'인 것이다.
강렬한 식욕으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변태와 '폭력적인 섹스',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한 형사의 대비는 성욕과 식욕의 '파워' 게임이다.

누군가에겐 역겨운, 그러나 자신의 신체를 너무나 사랑하여 스스로를 먹어치워버리는 인간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 세상은 인간의 존엄과 사랑을 말하지만, 결국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다.
욕망하는 방식이 다양한 것처럼 가장을 했지만, 누가 '사육자'가 될 것인가 '피사육자'가 될 것인가를 치열하게 다투는 콜로세움인 것이다.

"먹이는게 범죄냐?"
인간의 욕망 위에 올라서려는 자의 질문은
자본증식의 욕망으로 굴러가는 절대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가 아닐까?

Cherish is the word I use to describe.
Cherish me as I cherish you

OST는 제물의식의 노래처럼 인간의 파멸과 희생, 사랑과 영원을 밀랍인형처럼 반죽한 듯 하다.

내용이 쫌 역겹지만, 마지막 반전(?)이나 메세지가 까끌까끌한 것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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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다.
(동명의 소설도 있더라...  '가라 아이야 가라')

아이를 기르는 두 가지 방법에 관한 사회파 추리물(?) 

혈육이 아니더라도 아이를 위한 심장 곁에 둬야만 한다는,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인간애적 육아와
온갖 사회적 오물로 범벅이 된 가정적 환경이라도,
부모에게 맡겨야 한다는 윤리적 합의에 도달한 제도권적 육아...
그 대비를 극대화하기 위한 '반전의 반전'이 영화의 묘미이다.
거기에 미국 사회의 아동 보호에 관한 비판과 자성이 잘 반죽이 된 영화 같다.

어려운 문제다.
사회가 가정내의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며, 가정의 역할을 얼마나 해낼 수 있는가에서부터
어떤식으로 담당해야 하는지.

감독, 벤 에플릭은 이상적인 답안을 내놓지는 않는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아이에게 행복을 줄 수 있나를 보여주고 관객이 판단하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균형적인 것만은 아니다...)

글쎄...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관되는 폭력.
가정과 사회, 아이와 어른...

어찌됐던 고통이 한 곳으로, 가장 치명적으로 모이게 되는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아이가 죽어버리면(Gone)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잖아.(None)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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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센스 이후로 빛을 못보고 있는 샤말란 감독 작품이다.
이번엔 좀 재밌는 소재로 영화로 만든 듯 하다.

알 수 없는 힘, 불가항력적인 죽음이 주는 무력감이 나름 흥미로웠다.
초반에 휘몰아치는 자살 퍼레이드도 묘한 공포감을 주지만,...

역시...
그게 전부였음.

샤말란 감독만의 스타일이 있긴 있다.
영화 곳곳에 복선을 심어 놓는 다는거...
초반 대사, 반지, 배경의 미세한 움직임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
메세지도 나름 좋긴 한데...

희한하게 설득력이 없다.
절정에 오르는 듯 하다가 급하게 식어버린 듯한 이야기 전개?
동화같은 주제에 도꺠비탈을 씌어놓았으나, 바람에 훌러덩 벗겨진 느낌?

자연의 섭리에 따르라.. 이해하려 들지 말고..
평화와 사랑만이 구원을 얻으리~  

좀 썰렁하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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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던트 이블, 매드맥스를 섞어 놓은 것 같다.
게다가 중세의 한 장면까지 삽입해 놓으니 이건 도대체 뭔 영화인가 싶다.
액션이라는 코드로 모든 것을 아우르다 보니 황당한 시츄에이션 많이 나온다.
펑크족처럼 생겨먹은 무뢰배들과 칼질 도끼질 하다가, 말 탄 중세의 기사와 맞짱뜨자 마자, 벤틀리 컨니넨탈을 타고 자동차 추격신을 벌인다.. 이 기괴한 영화의 마무리는 또 어떻고... 
(주인공이 선택한 '유전자의 고향"... 적성에 맞는 곳에 살아야지.. )
 
SF라는 장르가 그러하듯, 반죽해 놓은 시공간은 하나의 실험 공간이 된다.
그리고는 현실에서 심하게 이탈시킨 척 하면서 현실을 말한다.
감독은 이 거친 세상 속의 권력의 세 가지 모습을 그렸다.
완벽한 종교적 질서, 무질서한 힘이 지배하는 질서, 세련된 시스템으로 무장한 질서.
권력의 비등점은 모두 달라 보여도, 그 구조적 한계와 불안정성, 야만성은 똑같다.

권력자가 권력을 유지하는 테크닉은 손에 쥔 무기의 성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떤 당위성을 가지느냐에 있다.
그것은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에서 흘러나온다.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권력의 작동방식은 체제 유지를 가장한 자신의 입지를 구축, 확립하는 것.  
그 외의 것은 철저하게 배경으로 만들어서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 곧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길임을 잘 아는 사람이 권력자가 된다.

"감염된 세상에서는 면역된 자가 왕이 된다"

보수성향을 가진 자들이 국가안보와 체제안정을 위협하는 세력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그것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고 있는 노력들을 보면  권력의 본질은 명확해진다.

"다함께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진심인가 아닌가는 권력이 어디로
향하는가를 보면 답은 뻔한 거 아닌가..

조중동에 파묻힌 당신과 얘기하는게 불편한 것은 당신이 믿고 있는 세계 속을 열심히 달리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을 기대하기는 커녕) 안대를 씌운 경주마 같아서이다.
얼굴에 튀는 모래만 막아주고. 좁은 시야만 주어진다면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는 말...
답답하지도 않나.


영화는 액션에 충실하다..
좀비 영화인줄 알았더니..    양아치들이 많이 나온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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