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운명적이야.
본능에 맡기라구...
휘어지는 총알이 목표에 정확히 도달하는 것처럼
삶은 그 목표에 도달하게 되어 있어.

찌질했던 회사원 시절도
그러한 일상에 묻어둔 킬러 본능도
모두 네 운명에 앞서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도구일뿐인가?
일상의 모든 행위와 관계는 방직공장에서 나오는 코드들의 작품?

운명을 실천하는 자, 운명을 거스르는 자,
뭔지도 모르고 허덕거리며 쫓아가는 자...
과연 누구에게 마지막 방아쇠가 당겨질까..

깨달음은 머리에 총알이 박히는 순간에 들이닥친다.
아.. 이것이로구나.

해석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왜곡을 낳는다.
영화 속 운명론자들(암살자)에게는 명료한 것이 미덕인가 보다.
애초에 코드를 해석하려 했던 것이 무모한 것일 수도 있었는데...

운명... 별거 아냐...
이미 네가 알고 있는거야.



단순한 주제만큼이나 딱 그만큼의 우악스러운 액션이 볼만했다.
'색다른' 장면도 좀 있고..

 나니아 연대기, 라스트 킹, 페넬로피, 비커밍 제인, 어톤먼트의 '제임스 맥어보이'가
의외로 주인공에 어울렸다.
안젤리나 졸리, 모건 프리먼도 나름대로...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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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출입증 있어요?
-우린 필요없어

- 왜요?
- 우린 백인이니까

- 그게 공평한거에요, 아빠?
-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거야.
우린 그렇게 살아야돼, 나타샤.
백인은 이쪽에, 흑인은 저쪽에.
하느님의 뜻이야.
참새와 제비를 함께 두지 않듯이 또 거위와 오리는 따로 키우듯이,
아니면 암소와 사슴처럼 자연스럽지 않으니까
하느님께 이유를 물을 순 없어


진리라 믿고 있는 성경 속의 신은 다혈질 아니었던가... 자비의 신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살 권리를 피부색으로 구별짓는 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천벌을 받아 지옥불에 떨어져야 할 자들이 잘 살고 있으며,
게다가 신을 독점한 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면서 신의 이름을 능욕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나마나 신은 없다. 있더라도 무능하거나 나태한 '성격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면 절대자로 불릴 수 있으려나...
하여간 인간이 주인인 이 세상은 인간만이 희망이며 구원이다.

인권이란 것이 그때그때 다르게 적용되는데 과연 인간다운 삶은 무엇으로 보장 받을 수 있을까.
이동권, 노동권, 건강권, 주거권, 생존권, 사회권, 교육 의료 복지 ....
하나 같이 손에 쉽게 닿을 수 없는 높이에 올려져 있다. 누군가가 내 손에 쥐어주길 바라는 것도
한 두번이지... 손에 들어왔다고 해도 쥐박이 같은 놈이 불쑥 나타나 낚아 채가는 일도 비일비재 한 것을 보면, 투쟁과 사수는 일상 속에서 숨을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만델라가 주인공은 아니다.
이 영화는 만델라의 생애를 엿 본 '간수'의 삶을 다뤘다.
너의 자유와 나의 자유가 다르다는 생각에서 서서히 공감과 공유의 창이 되어간
한 인간의 변화가 중심이다.
30년 간의 투옥이 말해주듯 인간의 숭고한 의지와 승리를 만델라가 보여줬다면,
인간 순수의 욕망으로 회귀한 간수 '제임스 그레고리'는 인간의 본성과 희망을 말한다.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세상은 가능성으로 열려 있으니까...

권력이 상대의 자유를 부정하면 자유를 얻을 길은 권력 뿐이오

촛불 시위를 폭력 시위라고 침을 튀며 욕하던 인간들이 보기엔 만델라는 테러리스트의 두목이다.  "나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모든 저항의 수단이 우리에게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장투쟁으로 돌아 선 것일 뿐입니다."

세상에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것들에게 내려지는 딱지들...
도덕적 관념만으로 무장한채 타인의 고통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이진법적인 잣대만이 있겠지.

나의 자유는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것일까...
물질적인 구속에서 홀로 벗어나고 싶은게 아닐까...
영화는 너와 나의 벽을 허물어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자유로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재미는 별로 ㅡ..ㅡ;;;

http://kbar.tistory.com/15

음악을 퍼 올수가 없네... 아깝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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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 끼치는 수퍼 히어로?
악당이거나 영웅으로만 나오던 초인이 망나니 짓을 일삼다니...
일단 점수 먹고 들어간다.

핸콕은 마치 세상을 조롱하듯 힘을 쓴다.
문제는 그가 가장 빠른 해결방식을 추구하면서도
그것이 남기는 해악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향유고래를 투포환 하듯 바다로 내던지고, 도주 하는 차량을 건물에 꽂아 버린다.
악당보다 더 악당처럼 일을 처리 하니까 대중은 그것을 영웅놀이로 규정한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고 주체할 수 없는 힘을 보여줄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수퍼 히어로를 대상으로 힘의 은유를 보여준다.
핸콕은 역사 속에서 그러했듯이 늘 위험과 위기의 시공간 속에 있으면서 
매우 폭력적으로 전개되어 왔던 불멸의 권력임을 암시한다.
그렇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힘의 본질은 선한 것도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빠른 해결이 아닌 합리적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이런 것은 미국이라는 망나니나, 개망나니 쥐박이 정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험으로부터의 해방, 좀 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우리에게 권력의 보호가 필요하다면
통제된 힘이여야 하고, 모두의 지지를 얻어야만 했다.
통제 되어야 할 것은 위험 뿐 만 아니라 힘에 의한 질서도 포함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힘이란,
죽어서도 안되고, 미처 날뛰어도 안된다.


전반부가 핸콕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면 
중후반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신화를 모티브로 하는 '사랑' 이야기로 확 바뀐다.
'사랑'하면 힘을 잃게 되고, 사람이 되어  죽어간다는 설정...
세계의 여러 창조 신화에 나오는 얘기인데, 역시 헐리웃 영화 스타일이 되니깐 
박진감이 있다 ㅡ..ㅡ;

꼴통 영웅이 세상과의 소통이 어색했던 것는 사랑하는 이와의 단절과 아주 밀접하다.
사랑을 잃으면 힘은 폭력이 된다.
죽음이 영원이 될 줄 알았던 마지막이 반대로 끝났지만(역시 헐리웃 ㅡ..ㅡ;)
영원한 사랑은 멀리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참 아름다운 일 아닌가 싶다.


사랑은 생명을 부활시키고, 힘도 얻게 하였다.
진정한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불멸의 사랑으로 불멸의 힘을 선택한 영화의 엔딩은 
욕망의 불멸도 말하려는 것일까...
죽도록 사랑하여 죽어버리는게 더 낫지 않을까...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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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03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들 기말시험 끝내고 같이 봤는데, 저런 해석은 생각도 못했어요. 정말 보는 눈이 다르군요~ ^^

라주미힌 2008-08-03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제멋대로 보는건데.. ㅎㅎㅎ
 



(창 끝을 들이대는 이 장면은 인상적임... )



(그 유명한... 팔괘진....   팔괘진이 저렇게 허무맹란한 전법인지 미처 몰랐다.
저거에 당한 놈들이 상당히 수상하다... 
적의 지능지수에 승패를 맡기는 저질의 진형... )


중국영화가 예전 홍콩 르와르의 몰락을 되풀이하려나...
잘 나갔다고 비스무리한 것만 줄창 만들더니
이젠 스케일만 큰 저런 역사물만 만들고 있네...
(저런 것만 수입하고 있는건지도 ㅡ_ㅡ;;)

삼국지에서 적벽대전이 왜 하이라이트 였는지는 이해가 안되지만,
유명한 장면이니까.. 영화로도 만들어지면 어떤 장면이 연출 될지 궁금하긴 했다.
아쉽게도 이번 영화에서는 '아직 시작도 안했어!!'라고 폼만 잡고 있다.

영화 길이도 왜이리 긴지... 지겨워.
인간에게 난도질 하는 전투신을 수 십분 보여준다.
도살장도 아니고... 무슨 취향이 그래?
전쟁이라는 껍데기만 씌우면 '스펙터클' 영화라도 되는 건가.

영화가 전체적으로 그냥 매일 사먹는 점심 같은 느낌? -_-;
뭘 먹어도 땡기지 않는...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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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신에게로 나아갈 것인가, 인간에게 머물 것인가.
신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심적 갈등이 2시간 내내 군불처럼 데워진다.
사랑하고도 고통으로 남겨진 이 짐을 어찌 하리오...
미래의 어느 순간 이것이 과거의 누군가의 몫이었다는 것을 알거든
내 사과를 받아주오...

용서는 참된 것이나, 그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두려움.
모든 삶과 인연의 균열이 심장으로 전이 되는 것을 어찌 막으랴.
포도나무를 베어라... 길을 가다 부처를 만나거든 그를 죽이라 했던가.
포도나무를 베어라... 두려움이란 본디 아무것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 두려움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오.. 주여... 이 영화의 지루함도 용서해 주소서. ^^;;;)

"삶은 고통이지만 심각할 필요는 없다"라는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너무 고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우리를 짓누르는 고통이 삶의 전부인냥, 그 모든 고통의 집약체인냥...

"깃털처럼 가볍게".... 

울지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그건 너의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나요? 사랑하는 그대여...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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