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도 이브도 없는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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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점점 뜸해지다가 마침내 더 이상 걸려오지 않았다.
따라서 나는 결별이라 불리는 야만적이고 거짓된,
그 무엇보다 기분 꿀꿀한 절차를 면제받았다.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를 제외하고,
나는 사람들이 관계를 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끝났다고 말하는 것은 추할 뿐더러 사실이 아니다.
결코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더는 생각하지 않을 때조차
그의 즉자적 현존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는가?
한 번 소중했던 사람은 영원히 소중하다.
-2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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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몰라요오~

이렇게 말하면서도 기실 사랑이 뭔지 알기는 아는데, 하고

뭔가 아는체 하고 싶어 근질거려 못참겠다 싶은 때가 있었다.

 
허나, 돌이켜보면

모른다. 모르는게 맞다.


홍림은 어명을 받들어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를 품는다.

여자는 그의 동침 상대인 왕의 아내 왕후.

오로지 남자밖에 몰르고 자랐던 홍림에게 혼란이 찾아온다.

여자를 품는게 불가능했던 처음, 그러나 반복되는 상황에 그는 여자를 품는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왕의 고통스런 모습에

이 감정은 욕정이었음을 고하고 용서를 빌며 왕의 곁에 돌아가

익숙했던 그 자리에 눕는다.



이렇게 간단히 정리가 될 일이었다면 세상에는 드라마가 없을터

회임을 했다는 왕후가 만나자는 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홍림은

왕후를 다시 만나 또 한번 격정적인 사랑을 나눈다.

육체의 합일은 그 순간에 감정을 다른 곳으로 이끌어다 놓고 말았다.
 

이들의 정사를 현장에서 목격하고

분노가 하늘을 찌르는 왕의 서슬퍼런 기세에도 왕후와 홍림은 서로를 감싸기 바쁘다.

목숨이 왔다갔다 할 판인데도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느냐고 묻는 왕의 절망도

그들의 목숨을 내 놓은 사랑 앞에 초라해질 뿐이다.


욕정이 연모로 바뀌는 것이 과연 어느 순간이란 말인가.

어떤 것이 연모이며 어떤 것이 욕정이란 말인가.

욕정에 눈이 멀어 크게 실수를 할 수는 있으나

욕정에 눈이 멀어 목숨까지 내놓고

욕정의 상대를 보호하려 들지는 못할 것이다.


연모는 기꺼운 희생이다.

홍림과 왕후가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이 그것.

 
연모는 끝까지 믿고 또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다.

수많은 심증에 마음이 찢기듯 아파도

눈 앞에서 보기 전까지는 믿어주던 왕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이 엇갈림의 비극은 확인하려는 마음 속에서 더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왕후와 홍림은 서로의 마음을 어쩌면 아주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으로 알게 된 운 좋은 케이스다.

 
왕의 분노 앞에서 그들은 서로 고백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정을 확인하고 되물은 것이 아닌

외부의 자극에 의해, 난관에 의해 자연스럽게 깨닫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왕과 홍림은 아주 부적절한 방법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자 했다.
 

서로를 끝까지 내몰아 벼랑 끝에 세운 후에 칼을 들이대고, 칼을 꽂고 묻는다.

눈 감는 순간까지 둘은 서로의 마음을 영영 헤아리지 못한채

미욱한 놈이 되어, 질투에 눈이 먼 놈이 되어 서로를 해하고 죽이고 만다. 

 
나를 사랑하긴 했니? 나는 어떤 의미였니?

우리는 이 숱한 비슷한 류의 질문의 답을 알고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을 받은 사람도 어떤 답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 관계는 균열이 시작된

손 쓸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관계라는 것 또한 자명하다.

 
욕정이 어느 순간 숭고한 연모가 되기도 하고

연모의 끝이 칼 끝으로 상대의 심장을 저미고 말게 될 수도 있다는

이 하나도 새롭지 않은 사실에

여전히 코끝이 찡하고 저릿저릿한 속내를 감출 수 없는 까닭은

사랑이라는 이 거대한 단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인간이기 때문이리라.

 

여전히 나는, 사랑을 모르겠다.

 

* 신께서는 완벽한 조인성에게 하나 안 주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목소리인듯 싶다.

주진모는 예나 지금이나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다. 이번 왕의 연기는 그, 였기에 이만큼이었다고 생각한다.

둘 사이에서 호연을 펼친 송지효에게도 따뜻한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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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1-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고려시대에도 콩깍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군요.
그나저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詩愛羅 : 이걸로 검색하니까요..CEO 등산모임이 떡허니 뜨는군요.)

이리스 2009-01-05 22:32   좋아요 0 | URL
사람이 존재한 이래 콩깍지가 아니 존재한 때가 있었나요? ^^;
제 닉이 좀 연로하긴 하죠. --;;

이리스 2009-01-05 23:34   좋아요 0 | URL
그러면서 동시에 닉을 다시 바꾸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우아암...

다락방 2009-01-05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영화에 호감이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이 글을 읽으니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가에서 보니 이 영화에서는 조인성은 안보이고 주진모만 보였다, 고 하던데. 저도 한번 봐야겠어요, 이 영화.

:)

이리스 2009-01-05 22:32   좋아요 0 | URL
네, 한번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_^
진모님 짱이에요.. ㅎㅎㅎ

무스탕 2009-01-05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가 끝나면서 참 헷갈리더군요. 도대체 조인성이 왕님을 러브한거야 안한거야.. -_-a
어찌생각하면 왕후가 조인성의 첫 여인네였기에 그런 감정으로 러브라인이 구축된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은 누구에게나 소중한거잖아요? +_+

이리스 2009-01-05 22:32   좋아요 0 | URL
그쵸.. 조인성의 강한 부정 역시 분노의 표현이었겠죠.
 



 

뒤늦게 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어쩌다 보니 성탄 특선 영화감상처럼 되어버렸다.  

찌질이 삼종세트가 모여서 진상파티 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이었달까?

참 안되었네 하고 혀를 차다가,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까지? 하고 이마를 짚었다가도

어느 순간 화면 안으로 들어가 울지말라며 안아주고 싶어지는 그런 이야기들.


황우슬혜는 <과속 스캔들>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마네킹 같았는데 <미쓰 홍당무>에서는 사람이고, 

잘 커갈 배우 같았다.

꽤 매력있는 배우로.


역설적으로 나는 이 영화에서 변방에 멀뚱거리며 서 있던 유일한 남자캐릭터인 서종철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평을 보니 양미숙 캐릭터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내고 싶다는 이야기들이 더러 보였는데

난 오히려 서종철의 캐릭터처럼 사는게 정신 건강에도 좋고 속편할거란 생각이 든다.


15년 동안 노력하며 살았는데,당신은 실수 한번 안하냐고 항변하는 모습이나

양미숙과 밤을 보내고 한 침대에 누운 채로 이유리 선생은 어디있는지 아냐고 묻는 뻔뻔함,

아내와 딸, 양미숙, 이유리 선생이 모두 모인 곳에서도 시종일관 '그냥'의 표정을 하고 있는 그 대범함

그 생각없음의 포스가 그저 부럽고 또 부럽다.


찌질하게 감정 콘트롤 못하고 퍼붓고 나면 그렇게 스스로가 부끄러울수가 없다.

너무 부끄러워서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스스로 삽질해서 구덩이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주저앉고 싶을 지경이다.


서종철처럼 사는 일도 쉽지는 않겠지만(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어;;)

지향해보련다.


* 크리스마스와 어울리는 영화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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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 급행 열차를 탔더랬다. 

그리고 내렸더니 머리가 멍하다. 

아, 지금은 다시 일상. ^^;; 

속이 울렁거리고 눈 앞이 팽팽 돌던 현상은 좀 사라졌지만 아직도 후유증이 있다. 

언제나 문제는, 자신을 안다고 자만하는 데서 오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고,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한껏 망신 당하고 나니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그래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스럽다. 

바닥일 때, 그 바닥을 다 보고서도 곁에 있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2008년, 요란하게 떠나가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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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12-27 0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그냥 와 닿는 글이네요. ^^ 요란하게 떠나가는 2008년을 향해 미소 지어 주시길..

이리스 2009-01-04 23:25   좋아요 0 | URL
네.. 이제는 2009년에게 팔벌려 포옹.. ^_^
 

운명이나 인연이라는 표현을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해봐도

15년 정도라면 그 표현을 써도 괜찮은거 아니냐고 자문해본다.

굉장한 겨울이 시작되었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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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12-01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서재 벽지가 너무 이쁩니다. ^^
이미지 사진과도 잘 어울리고.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축하드리고 싶네요.(웃음)

다락방 2008-12-0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도대체 무슨일인가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해요! >.<

무스탕 2008-12-02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년만의 만남이라..
전 조금 더 기다려야 겠군요. 시애라님의 시간에 견줄려면요 ^^
꼭 굉장한 겨울 만드세요!!

이리스 2008-12-02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 서재 벽지 괜찮아요? ^^; 축하 감사합니다. :)
다락방님 / 차차 풀어드릴게요~
무스탕님 / 굉장한 겨울이 시작되었어요., 아직도 꿈같은.. ^_^

무해한모리군 2008-12-03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맛난 와인을 자기 사진으로 해 놓으셔서 구경왔습니다~
저도 한 오년 더 기다리면 무신 답이 나올까요?
서른살 되도록 사랑은 영 꽝이라..

이리스 2008-12-03 21:21   좋아요 0 | URL
FTA반대휘모리님 / 오, 저 와인 좋아하시나봐요. ^^;
이제 겨우 서른이신데요 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