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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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김현이 사망하기 전 86년부터 89년까지의 독서 일기를 엮은 것이다. 대부분 그 당시에 출간된 시, 소설, 평론, 번역서들을 그 때 그 때 읽고 쓴 글이라, 20대 중반을 맞이하고 있는 나에게는 낯선 작가들이 많다. 낯선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짧게 문단을 스쳐 지나간 작가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이름이 친숙한 작가들 또한 어느덧 중견 내지 대가로 불리우며 휴필, 내지 절필을 맞이하고 있다. 십몇년 사이 어떤 이들은 잊혀지고, 또 어떤 이들은 기억되는 무상함을 돌이켜보면서 '힘 있는 글, 내지 생명력 있는 글은 어떻게 씌여지는가?' 하는 물음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김현의 가차없는 비평글을 읽다보면 '좋은 글'을 쓰는 것보다 '나쁜 글'을 피해 가는 것이 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현은 '나쁜 글'에 대해 무척이나 예민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는 마치 극성스러운 하우스키퍼처럼 먼지떨이를 들고 이 곳 저곳을 부산하게 청소한다. 책과 책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며 부지런히 먼지를 떨어내는 그에게 '북키퍼(book keeper)'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싶다. 멀거니 구경하고 있는 글쟁이 지망생들에게 김현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자, 봐. 더럽지? 이렇게 쓰면 안된다-잉!'

김현이 떨어낸 먼지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 깊은 울림이 없다/ 교과서의 세련된 연습문제 답안지 같다/ 삶의 근저를 흔들지 못한다/ 피상적이다/ 상투적인 기원, 감탄, 흥분, 열망/ 도식적이다/ 표피적이다/ 비진정성이 진정성의 탈을 쓰고 있다/ 지루한 다짐/ 응축된 감정이 없는 절제를 위한 절제/ 거짓 초연함/ 득도한 체/ 깊이가 없다/ 낭비다/작위적이다/ 제스쳐의 왕성함/ 역겨운 기교투성이/ 모범 답안/ 꾸며낸 고통/ 자기방어적/ 오만/ 독선/ 자만심/ 옳다고 알려진 것만을 사유하는 순응주의/ 달관의 제스쳐/ 치기 투성이/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 뿐이다/ 토포스의 나열/ 관념의 체조/ 말주정…

작가의 저마다의 성격이나 기질, 심리, 태도, 의식/무의식 등에 따라 저마다 다른 먼지들을 갖고 있겠지만, 대충 그 기원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착하게 보이고 싶다, 멋지게 보이고 싶다, 의식 있는 인간으로 보이고 싶다. 그렇게 해서 칭찬받고, 이름도 알리고 싶다'는 공명심을 숨기지 못할 때, 또는 어설프게 아닌척 할때 둘째, 옳다고 여겨지는 가치에 열렬히 기탁하는 제스츄어를 취할때, (그것은 모범생 기질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컴플렉스일 수도 있다) 셋쩨, 신인의 경우 젊음을 무기 삼아 치기를 휘둘러댈 때, 중견 이상의 경우 지금까지의 인정을 발판 삼아 권위주의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 넷째, 부족한 재능을 어떻게든지 봉합하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이 드러나고 말 때, 다섯째, 한계를 조건화 해내는 과정에서의 충분치 못한 모색, 즉 이 허방을 피하려다가 저 허방에 빠지고 말 때, 여섯째, '먼지'를 떨어내려다 결벽증에 걸려 뻣뻣해지고 말 때

글을 쓰는 이상 위와 같은 경우를 '완전히'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작가들이란 비루함을 숨기고자 애쓰는 완벽주의자들이지만 결국은 저도 모르게 슬쩍슬쩍 치부들을 내비치고 마는 불완전한 인간인 것이다. 그래도 덜 쪽팔리려면, 끊임없이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 수 밖에 없다. 김현의 표현을 빌자면. '악마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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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8-09-0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배의 선물로 느닷 없이 책장을 차지하게 된 책. 10년도 더 지났건만 다 읽지도 못 했다.
다만, 보던 글이나 책에서 김현의 인용 되거나 언급 될 때마다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곤 했다. 김현의 평론글을 몇 개 읽지 못 했지만서도 [입속의 검은 입- 기형도 시집]
말미에 그의 글을 읽고 나면 시에 한 발 더 다가간 느낌이 들 정도였다.
 
레벌루션 No.3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북스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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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 생활의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우울증의 기미가 느껴지는 분, 이 소설 읽어보시면 도움 되겠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백수 2년차다. 이 세상에 어떻게 편입해야 할지 참으로 눈앞이 깜깜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사주의 취업운에는 '아직 노력이 멀었다. 더욱 더 정진하라'고 나오니 애통스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이렇게 주저앉을 수는 없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리라'며 남몰래 내공을 쌓고 계신 분들, <레벌루션 NO.3>읽으며 힘들 내시라.

이 소설을 만화로 각색해도 손색 없으리라. 유쾌한 명랑 학원물로 읽힐 터이니. 군데군데, 배를 잡게 만드는 부분들이 많다. '삼류 남고생들의 일류 여고 축제 기습 작전'이라는 스토리 자체가 황당무계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읽을 때는 전혀 유치하다는 생각이 안 든다. 가슴 두근거리며 '이번에는 어떤 작전이? 얘들아 제발 성공해라'며 읽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 생겨나는 '더 좀비스' 멤버들의 우정과 의리에 찡해지기도 하면서.
그 끈끈한 멤버쉽에서 '우리는 친구 아이가'라는 맹목적 우정 지상주의가 읽히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에겐 영화 <친구>에서와 같은 냉혹한 칼부림은 없다. 이들에게 실수는 있어도 배신은 없다. '왕재수'인 야마시타는 언제나 크고 작은 실수로 조직을 뒤흔들어 놓지만, 절대 축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결해야 할 문제거리를 던져 주고, 웃음을 유발하는 귀여운 광대로 그려진다.

야마시타와 대척점에 놓여 있는 인물이 있다. 벌써 '순신'이라는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다. 이순신 장군을 염두에 두지 않았나 싶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더 좀비스'의 순신은 차별을 뼛 속 깊이 체험하며 자라난 재일 한국인이다. 그럼에도 그는 절대 찌그러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편입하고자 속 깊이 실력을 쌓는다. 고등학생 치고는 어렵겠다 싶을 고차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철학서와 법서 등을 탐독하면서. 게다가 그는 주먹에 있어서도 야쿠자들이 모셔가고 싶을 정도로 실력파다. 그래서 그는 재일한국인임에도 왕따 당하기는커녕 짱으로 치켜세워지는 것이다.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재일한국인 소년을 너무 멋있게 그린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하긴, 이 소설을 읽는 일본인들에게나마 재일한국인들의 이미지가 '업'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좋은 소득일 것이다.

3류 소년들의 명랑 활약기를 읽어나가다보니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떠오른다. 절대 1류가 될 수 없지만 1류에 편승하고자 기를 쓰는 가운데 벌어지는 개그 콘서트. 그러나 <레벌루션 NO.3>의 소년들에게는 다른 점이 있다. 그들은 1류의 토대 없이 1류에 편승하려고 몸부림치는 짓은 승산없는 게임이라는 사실을 벌써 알고 있다. 그러니 차라리 1류의 세계에 바람 구멍이나 내보자는 것이다. 유쾌하고 명랑하게. 그러나 3류는 3류대로 실력을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준엄한 현실이다. '더 좀비스'의 조력자인 아기나, 문무를 겸비한 순신 같은 존재를 떠올려보자면 말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남는 아쉬움 하나. 이 시대의 여성 마이너들이 공감할 수 있는 유쾌한 소설이 눈에 잘 뜨이지 않는다는 점. 가네시로 가즈키는 남자이니 그렇다 치고 은희경씨는 왜 여자이면서 굳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쓴 걸까. '여성 작가이지만 남자들의 이야기도 쓸 수 있다'는 점에 점수를 주기보다 '여성 작가들이여, 여자 이야기를 제대로 써다오'라는 주문을 하게 된다. 남/녀, 남자소설/여자소설의 어설픈 이분법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의 독력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제대로 여성을 구현하는 소설들을 발견하기 힘든 이유에서이다. 어둡거나 내밀하거나 불륜을 저지르거나 모성을 구현하는 식의 여성성은 이제 지겹지 않는가. 이제는 명랑한 처녀들을 만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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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결혼이다
우애령 지음 / 하늘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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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물을 먹은 20대 초, 중반의 다른 여자 친구들처럼 페미니즘 서적을 탐독했고,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주먹을 꼭 쥐어보는 타입에 속한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먹히지 않기 위해 독신도 꿈 꿔 봤고, 여러 다른 형태의 가능성들도 생각해 봤다. 결혼한 언니, 아줌마들을 붙잡고, “결혼해보니 어떻든가요?”하고 숱하게 물어도 봤다.

결혼에 대해 아기자기한 판타지를 가진 또래들을 보며 “쯧쯧.. 저렇게 결혼에 대해 환상을 기지고 있다가 코가 깨지고 말지”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코가 깨지더라도 결혼에 대한 환상이 건강한 삶의 동력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라고 고쳐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니 나는 “결혼”이라는 거대한 제도를 두고 답 안 나오는 고민을 한참 동안이나 해 왔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애령씨의 <결혼은 결혼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화끈한 정의도 아니고 ‘결혼은 결혼’이라는 동어반복의 문답 속에 과연 내가 찾을 답이 있을 것인가 하는 미심쩍은 물음과 함께. 책 날개 안쪽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우애령씨는 후덕하고 인자한 아주머니의 모습이다. 결혼을 통해 그닥 고생해 본 것 같지 않은 인상이다. 아니면, 고난을 현명하게 지나쳐 왔던가.

우씨는 후자 쪽에 속한다. 6대 독자에다 일곱누이를 둔, 유학생활을 거친 철학자가 그의 남편인만큼, 그의 결혼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을 거라는 짐작을 해본다. 물론 그녀의 털털한 성격 덕도 있겠으나 사회복지와 심리학 전공, 오랫동안의 상담자 역할을 통해 쌓은 내공이 그녀의 한 세월을 지탱해 주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눈물콧물 흘려가며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내담자들을 맞이했을 그녀는 이제 독자들과 그 이야기들을 나누고자 한다. ‘결혼 혐오증’ 내지 ‘결혼 공포증’에 걸린 나 같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녀의 에세이를 통해 카운슬링을 받아보기 바란다.

그녀의 입담은 후덕한 외모만큼이나 구수하다. 책 표지에 적혀 있는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솔직한 프로포즈’라는 광고문구가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재미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고전과 동화와 전설, 신화에서부터 최근에 이슈가 됐던 소설과 영화에다 상담사례, 알기쉽게 풀어놓은 심리학 이론이 겹치면서 결혼에 대해 동서, 고금에 걸친 통찰을 가능케 한다. 사실, 진정한 상담자는 내담자로 하여금 스스로 대답을 찾게끔 하는 자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결혼을 하라, 마라 또는 이혼을 하라, 마라’는 식의 점쟁이나 해 줄 수 있는 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잠시 우씨의 얘기를 해 본다. 우씨는 미국 유학 시절, 박사학위를 코 앞에 앞두고 있는 남편과 폐렴 걸린 아이들 사이에서 더 이상 공부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기말 시험을 포기하고 만다. 그 때 지도교수였던 크리슈나는 우씨를 찾아와 “나는 동양식 결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일이 어려울 때 아내가 양보해야 하는 것을요.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에 나오라고 권유하러 온 건 아니예요. (중략) 그렇지만 혹시 시험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 부분은 있는 힘을 다해서 도와주겠다고 이야기하러 왔어요” (99-100p)라고 격려한다. 크리슈나는 무작정 학교로 돌아오라고 설득하지 않으면서, 모든 선택은 우씨에게 맡겨 두었던 것이다. 크리슈나의 현명한 조언처럼 우씨 또한 모든 열쇠를 독자에게 맡겨두고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비로소 ‘나는 왜 결혼 때문에 신경증을 앓아야 했던가’ 하는 물음에 답을 찾았다. 그것은 ‘어째서 결혼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지나치게 완벽하고 이상적인 답을 찾으려 했던 데서 온 것이었다. 물론 결혼은 잃는 만큼 얻는 것이 있고, 얻는 만큼 잃는 것이 있다. 우씨는 이러한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고 이야기한다. 인생의 순환원리를 받아들인 다음에 우리가 해 볼 수 있는 질문은 보다 현실적이다. ‘아내와 어머니로써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그런 다음 결혼의 좋은 점이 문제점을 능가할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 여자들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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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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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라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열 여덟 어린 소녀를 사랑했다가 그 느낌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소녀를 쏘아 죽였다. 조의 아내인 바이올렛은 참을 수 없는 질투심으로 소녀의 장례식에 가서 시체의 얼굴을 칼로 긋는다. 소설은 선정적인 사회면 기사처럼 충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초입부의 강렬한 분위기와 달리 조와 바이올렛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 1920년대 흑인 거주지인 레녹스 주민들의 이야기가 입담좋은 아줌마의 육성으로 펼쳐지기에 흥분한 교감신경은 이내 가라앉을 것이다.

흑인 이주민들의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뿌리뽑힌 삶'이라 할 수 있다. 1870년대 이후 백인들의 박해와 궁핍을 못 이긴 남부 흑인들은 희망을 안고 북부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는 이들에게 무엇이었을까.'도시에서 그들은 낯선 신참 주민이지만 그들의 자아는 더더욱 새롭다. 훨씬 더 강하고,훨씬 더 모험적인 자아가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갓 도착했을 때부터, 또 도시와 함께 20년 동안 성숙한 뒤에도 그들은 새로운 자아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망각하고 만다.'

하지만, 비로소 참된 자아를 찾은 듯한 느낌은 도시의 매혹이 가져다주는 착각에 불과하다. 백인들의 거주지에서 떨어진 흑인 할렘가에 기거하며 백인들의 사무실을 청소해주거나 파트타임으로 벌어먹으며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그들 삶의 실상이다. 도시로 이주했지만 채워지지 않는 이들의 뿌리 깊은 박탈감은 '흑인'이라는 정체성에서 기인한다. 결코 바꿀 수 없는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추구할 때 결국 분열이 초래되고 만다.

바이올렛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바이올렛은 '흑인'이라는 핸디캡과 더불어 '여자'이기에 분열의 정도는 훨씬 극심하다. 궁핍한 삶과 부양의 의무를 버리고 대의명분을 찾아 집을 떠난 아버지와 자식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거운 짐과 핍박을 견뎌내다 못해 자살한 어머니를 보며 자란 바이올렛은 '어머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뒤늦게 찾아온 모성에 대한 갈망은 그녀를 괴롭힌다. 남의 아이를 충동적으로 훔치기도 하며 정신나간 여자 취급을 받던 바이올렛은 남편의 외도에 직면해 뿌리째 뒤흔들리고 만다.

소녀의 시신에 칼을 댄 것만으로도 모자라 죽은 소녀의 이모인 앨리스를 찾아가 소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아주머니라면 안 그러시겠어요? 자기 남자를 지키려고 싸우지 않으시겠어요?'라는 바이올렛의 절규에 앨리스는 외도한 남편의 죽음과 남편의 장례식에 나타났던 남편의 애인을 상기해낸다. 버림받은 여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앨리스는 바이올렛을 따듯하게 감싸준다. 이렇게 해서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인물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화해는 바이올렛과 죽은 소녀의 친구인 펠리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 바이올렛은 인생의 마흔줄에 이르러 겪은 커다란 방황을 펠리스에게 들려준다.

'내 인생이라는 걸 잊어버렸어. 내 인생, 내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라면서 거리만 왔다갔다 걸어다닌 거야.'
'누가요, 누가 되고 싶으세요?'
'누구라기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야겠지. 백인, 빛, 다시 젊어지고 싶어.'
하지만 그녀는 결국 '나 아닌 나'를 버리고 나니 '나'가 남았다는 자기긍정에 도달한다. 가끔씩 떨칠 수 없는 회한이 스며들 때면 우울하면서도 신명 넘치는 흑인들의 음악- 재즈가 그녀를 위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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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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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여행을 떠나려는 당신에게 저는 '어디 가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무엇 때문에 여행을 가십니까?'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신들은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로 대답합니다.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거나, '기분 전환하러' 또는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을 위해서'라고. 사흘 뒤, 일주일 뒤, 아니면 한두달 뒤 여행에서 다녀온 당신들에게 물어봅니다. 애초의 목표들은 잘 이루셨냐고. 당신들은 피곤한 얼굴로 머뭇머뭇합니다. 뭔가 기대만큼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일겁니다. 저는 여러분들과의 대화에서 한가지 의문을 느낍니다. 왜 여행은 기대만큼 충전을 가져다주지 않는가?? 제가 느낀 의문에 공감하시는 분들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여행의 책>을 통해 특별한 경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베르나르가 제안하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우리는 살갗을 속박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완전한 그대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여행은 시작됩니다. 이 여행에서 동반자는 없습니다. 오로지 '바보'가 되어 당신 혼자 떠납니다. 프랑스어에서 '바보'란 '목발이 없는 사람'이라는 어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바보란 목발도 지팡이도 보호자도 없이 홀로 서서 걸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감이 오실겁니다. 이 여행은 오로지 당신의 상상력, 정신력 그리고 오감을 통해서 깨달아 가는 과정입니다. 그대에겐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육체적인 오감 뿐만 아니라 감정, 상상력, 직관, 의식, 영감 등 정신적인 오감도 있답니다. 아마 이 여행을 통해 충분히 활용하게 될 겁니다.

우선 우리들은 집 한채를 짓게 됩니다. 시야가 툭 트여진 넓은 공간에 당신의 상상력과 재능으로 어떤 형태로든, 원하는 대로 그대의 안식처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대의 내밀한 안식처, 뭔가 일이 잘 안될 때면, 언제라도 가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비록 상상속의 집이지만, 한 재산 얻은 듯 든든한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새로 지은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다구요? 하지만 이 여행은 단지 휴식만으로 채워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일곱 번의 싸움을 거쳐야 합니다. 이 싸움을 거친 후에야 당신은 진정한 평안을 맛볼 수 있을 겁니다. 투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데서 시작하여 그대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친 자와의 싸움, 체제나 조직과의 싸움, 질병과 불운과 죽음, 마지막으로 그대자신과 싸우기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이 싸움이 반드시 고통스럽지만은 않은 것은 <여행의 책>이 주는 조언 때문일 것입니다. 가슴을 파고드는 대목들이 여럿이나 한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해학은 죽음보다 강하다' 물론 한번의 여행으로 괴로운 문제들을 모두 해결할 순 없겠지만 든든한 무기를 얻은 이상 의연한 도전과 투쟁은 우리를 자유케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여행은 과거로 갑니다. 당신과 당신 부모님, 조부모, 또 그 윗대 할머니 할아버지... 중세와 고대를 거쳐 선사시대의 조상들을 만나고 유인원과 물고기를 닮은 더 먼 선조와 단세포생물, 물 분자... 그 이전의 빛... 그리고 태초의 빅뱅, 그것이 그대 존재의 가장 깊숙한 근원입니다. 느껴지십니까? 저에겐 좀 어렵게 느껴지는군요. 태초의 빅뱅에 대한 기억, 이제 우리존재의 근원에까지 이르렀으니 길고 길었던 여행을 마칠 때인가 봅니다. 하지만 <여행의 책>이 이르기를 이것이 여행의 끝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대는 단 하나의 시공간을 탐사했을 뿐이다. 외적인 오감과 내적인 오감의 지각력을 높여서 다른 시공간들을 여행해 보라.'는군요.

이 여행을 마친 뒤에 저는 가뿐하고 생기발랄하며 든든하고 강해진 느낌입니다. 올여름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나신다는 분들에게 <여행의 책>을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마도 여러분들께서 갖고 계시던 막연한 물음들이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다가올겁니다. 물론 그 물음에 답해야 할 것은 목발없는 바보- 바로 당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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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2008-09-0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의연한 도전과 투쟁은 우리를 자유케한다..... 아 정말 마음에 와닿는 문구입니다.
여행이 책과 다른 좋은 점이라면 바로 이런 것들이겠죠. 여행을 다녀온 후 당장은 느낄 수 없지만, 마치 보약을 먹은 후, 서서히 그 효과를 느끼듯, 여행도 알게모르게 스스로를 강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힘= 내공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책 한번 읽고 싶네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