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의 사라진 수학 시간
조은수 지음, 유현진 그림 / 다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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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몸에 나빠!"

"수학 공부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소피의 엄마와 아빠는 소피에게 무서운 얼굴로 엄포를 놓는다. 수학금지령. 현실에서라면 잘 듣기 어려운 말이지만, 소피네 집에서는 들을 수 있다. 소피는 프랑스혁명이 터진 1789년 7월 14일, 바깥이 위험해지자 아빠는 소피에게 외출금지령을 내린다. 그렇게 집 안을 돌아다니던 소피는 아빠의 서재에서 우연히 <수학의 역사>라는 책을 읽는다. 거기에서 아르키메데스의 죽음을 읽은 소피는 '도대체 수학이 뭔데 수학을 위해 죽기까지 하는지' 궁금해진다.

어느날 소피의 옷장 안에서 나타난 알키 할아버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3대 수학자 중 한명인 아르키메데스이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가 나타나는데, 그는 페렐만, 수백년간 풀리지 않았던 푸앵카레의 추측을 증명해 낸 그리고리 페렐만이다. 소피는 여성 과학자, 여성 수학자를 인정하지 않았던 프랑스에서 국민적인 추앙을 받는 수학천재라고 한다. 소피제르맹 거리와 학교도 있다고 한다. 셋이 모여 수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소피 제르맹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이 책의 많은 이야기들이 실제 소피 제르맹의 이야기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여기에 아르키메데스와 그리고리 페렐만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져 재미도 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을 몇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듯 우리에게 필요한 본질적 요소도 몇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의 가장 중요한 하나가 바로 인정이야. 가장 친밀한 상대로부터 받는 이해와 인정. 그거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거든. 페렐만은 지금 그걸 얻지 못해서 저렇게 상심하는 거지. 허나 페렐만. 조금만 기다리게나. 자네의 증명은 너무나 비범해서 그렇게 빨리 이해할 수 없거든."(P.100)

소피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페렐만은 어려운 남제를 증명했지만, 사람들의 그의 연구와 결과에 대해 관심을 갖기보다는 그가 받게 된 상금에 대해서만 관심을 보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수학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찾지 못해 평생을 외롭게 보냈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이나 상대로부터 받는 이해와 인정이 그러하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불태우며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는 대중의 인기를 얻어 유명해지겠지만, 대부분은 누군가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길을 간다. 그들의 꾸준한 노력과 열정에 고마움을 느끼고 이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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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을 위한 우리말 생각 사전
우리말알림이팀 지음, 김푸른 그림, 조현용 원작 / 주니어마리(마리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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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 교수가 쓴 글을 어린이에게 알맞은 눈높이로 개작하여 쓴 책으로 보인다. 조현용 교수는 내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교육을 할 때, 많은 활동을 하시던 분으로 기억한다.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고도 하는데,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보면 예쁘고 고운 말, 좋은 말을 더 많이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현실에서야 욕이 난무할지라도 --;;

사실, 나는 주변에서 욕이나 나쁜 말들을 거의 듣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도 실제 언어생활에서는 그런 말을 쓰지 않는데, TV나 영화, 요즘은 유튜버들의 방송을 보면, 어디서 저런 말을 듣고 왔을까 싶은 말들을 많이 사용한다.

옛날에는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면서 언어생활을 했다면, 요즘은 비대면 언어생활이 많다보니 입말이 아닌 글말이 마치 입말처럼 사용되는 경우도 자주 본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어린 친구들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저런 말을 어디에서 듣고 배웠을까? 생각하게 된다. 설마 집에서 그런 말을 쓸까? 안써도 되는 말들을 굳이 쓰는데야 이유가 있겠지만(세보이고 싶거나, 주목받고싶거나...) 이왕이면 곱고 예쁜 말로 주목받으면 좋겠다.

특히, 유튜버들의 언어 사용은 걸러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의 주제들을 살펴보니, 그렇게 예쁘고 고운 말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쭉 훑어 읽어본다. 최대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1장은 '우리 모두를 생각하는 고운 우리말'이다. 제일 먼저 소개한 단어가 '아름답다'이다. 아름답다는 말에서 '아름'은 엣 우리말에서 '나'라고 한다. 그러니 아름답다는 말은 나답다라는 말이다. 나다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이것이 외모를 뜻하는 것은 아닐터, 내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아름다워질 것이라 전한다.

하나의 단어 뒤에는 생각해보기가 있다. '아름답다'에서는 내가 생각하는 '나다움'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장점을 생각해본다. 이렇게 하여 아름답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아간다.

이 장에서는 재미, 다르다, 못생겼다, 사랑, 인사, 사이가 좋다, 우리, 정, 정말, 실수, 소통, 조화, 만남 등을 다룬다. 이중에서 하나 더 살펴보자면 음...나는 '소통'이라는 단어를 살펴본다. 사전이란 것이 처음부터 줄줄 읽는 책이라기보다, 알고 싶은 단어를 찾아보는 책이니, 이렇게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소통이란 한마디로 말이 통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어디에서 가장 많이 들을까? 나는 당연히 회사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기는 하지만, 그렇지않다면, 소통 진짜 못하는 누군가를 떠올리면서 대화하지 않을까? 그분은 아마도 이 분야에서는 단연 톱일거다.

더 쉬운 말로 '말이 통한다'가 있다. 마음이 맞아야 말도 통한다. 소통을 잘하려면 상대에게 관심이 있어야한다. 그리고 그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효과적일지, 혹시라도 오해하지는 않을지 신경쓰면서 제대로 내 마음과 말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즉, 말하는 것도, 소통하는 것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도 필요하다.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상대도 내 말을 들어준다. 그리고 그런 사람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모여든다.

2장은 '좋은 마음이 자라는 깊은 우리말'이다. 좋은 말은 좋은 생각을 담고, 못생긴 말은 삐뚤어지고 못난 생각을 담는다. 최선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 우리가 평소 자주 하는 말 중에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이 있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무조건 열심히 했다'는 말이 아니다. 최선이란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이라는 뜻이니, 선한 일이나 좋은 일에만 이 말을 쓸 수 있다. 어떤 결과를 얻으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최선을 다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그러면,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까?

최선이 있다면 차선도 있다. 최선이 없어서 그 다음인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 말이다. 늘 최선만 선택할수 없으니 차선을 선택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악을 선택하게 되고 결국은 최악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P.79 요약)

차선을 선택하였더라도 기회를 잘 살려서 최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차선은 나쁜 선택이 아니라 최선 다음으로 좋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더 선택해보면 '왕따'라는 단어가 나온다. 예전에는 '왕따'라는 말이 없었는데, 어느날부터 누군가는 '왕따'가 되어 있었다. 없던 말이 새로 생기면, 없던 상황이나 행동도 같이 생겨나는 것 같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도 따돌리거나 함께 놀지 않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그렇게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사회적으로 따돌림이 지나치게 만연하게 되어 '왕따'라는 말이 생긴 것인지, '왕따'라는 말이 먼저 생기고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너느 누군가를 왕따라고 지칭하는 순간, 그 사람은 왕따로 낙인찍혀 살아간다는 사실은 끔찍한 일이다.

3장은 '들으면 힘이 나는 놀라운 우리말'이다. 여기서는 '차라리'라는 말을 살펴보자. '차라리'라는 말은 아쉽거나 짜증나거나 좀 그렇게 좋지 않은 상황일 때 사용한다. 둘다 마음에 안드는데 그 중에서 이게 좀 낫다...?? 하여간 이런 의미로 쓰이지만, 이 단어의 원래 뜻은 '편안하다'라고 한다. 즉,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라는 뜻이란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말을 쓸 때 후회하는데 쓰지 말고, 이렇게 하면 조금 더 내 마음이 편안해지겠다하고 써보는 것이 어떤가라며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단어들도, 원래 뜻과는 다르게 사용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책 한권 읽는다고 모든 것을 다 알수는 없지만,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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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문장의 기억 (양장본) -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하여
박예진 엮음, 버지니아 울프 원작 / 센텐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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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책을 들고다니며 한문장 한문장 읽고 있었는데, 올 1월 회사에서 소개하는 책도 버지니아울프를 다룬 책이라서 이 묘한 인연은 무엇일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올해 어쨌든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두권이나 읽게 된 셈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엮은이의 말대로 작품보다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최후로 더 유명했다. 게다가 작품이 난해해서 읽기 어렵다는 말만 들었으니, 다가가기 더 힘들었던 작가이기도 하다. 엮은이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만의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소설을 썼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어렵게 다가오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를 바라보며, 그 흐름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라며...


이 말에 용기를 얻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파트1,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넘어서다


[자기만의 방, A Room of One's Own] 버지니아 울프는 지식인이라 불리던 남자들조차도 여성을 하나같이 형편없는 존재로 규정하며 무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알아내고자 하였다. 결국 그녀가 도달한 답은 '고정된 수입'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수입이 없었기 때문이다.


Women have sat indoors all these millions of years, so that by this time the very walls are permeated by their creative force, which has, indeed, so overcharged the capacity of bricks and mortar that it must needs harness itself to pens and brushes and business and politics.


여성들이 수백만 년 동안 방 안에만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이제 벽에 여성들의 창조력이 모두 스며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방 안의 벽돌과 시멘트가 여성들의 창조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한계에 다다를 정도이므로, 이제 여성들은 펜과 붓을 사업과 정치에 써야 할 것입니다. p.28


19세기 초는 여성이 쓴 작품으로 서가의 한칸을 채울 수 있을만큰 여성문학이 발전했던 시기이다. 이때는 대부분이 소설을 썼는데, 제인오스틴의 사례를 보면, 가족으로부터 빈번하게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던 중산층 가정집의 구조를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브론테 자매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경험 부족이 작품의 한계로 이어진 것처럼. 그래서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가 주어진다면 더 훌륭한 여성 문학가가 탕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 깊이 공감한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여성도 당연히 자기 직업과 경제권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 여성 자신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렇게 만들어버렸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이 높은 교육열은 그 집안 여성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남성만을 위한 교육열이었던 적도 있다. 여성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지 이제 겨우 몇십년인데, 남성 역차별이라 하며 핏대를 세우는 이들도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그 시절과 지금은 분명히 많은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방'을 갖지 못한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 사실이다. 


it is fatal for anyone who writes to think of their sex. It is fatal to be a man or woman pure and simple; one must be woman-manly or man-womanly. The whole of the mind must lie wide open if we are to get the sense that the writer is com-municating his experience with perfect fullness.​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별을 의식한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의식적인 편향을 두고 쓰는 글은 소멸하기 마련입니다. 마음 속의 남성과 여성의 협동이 일어나야만 예술 창작이 온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3기니, Three Guineas]에서는 전쟁과 독재를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가 낳은 폐해(p.37)라고 말하며 남성 중심의 엘리트 교육과, 대다수 고위전문직을 남성이 독식하고 있는 점,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에 반박한다. 그렇다고 여성과 남성을 갈라치기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그녀의 문장을 일부만 떼와서 극과 극으로 갈라치기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과 남성이 조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 영문 필사를 하고 있는데, 마침 이 책에도 주제문장을 필사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잘 활용할 수 있었다. 


부록,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I am I: and I must follow that furrow, not copy another. That is the only justification for my writing, living.


나는 나입니다. 나는 누군가를 모방하지 않고, 나만의 길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내 글, 삶의 유일한 정당성입니다.


I will not be "famous," "great." I will go on adventuring, changing, opening my mind and my eyes, refusing to be stamped and stereotyped. The thing is to free one's self: to let it find its dimensions, not be impeded.


나는 "유명한”,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모험을 계속할 것이고, 변화할 것이고, 내 마음과 눈을 열 것이며, 낙인이나 고정관념을 거부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그것이 방해받지 않고 자신의 차원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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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살아 있는 이들을 위한 열네 번의 인생 수업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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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서, 가장 자주 듣는 소식 중 하나가 부고가 되었다. 지인들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나의 지인들의 부고 소식이다. 사람이 태어나면 다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자신의 죽음을 혹은 타인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만큼 삶에 대한 애착이 커서인지, 아니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 그것을 피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지, 자신의 죽음은 아주 먼 곳에 있다고 여긴다. 


나에게 찾아올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죽을 때,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내가 죽어서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면, 내가 살아있을 때 그들이 그렇게 변했으면 좋겠다.


햇수로는 6년 전, 나도 암에 걸렸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에 지인들이 나의 태도, 생활모습 등을 보면서 '내가 아무렇지도 않아함'을 보고 놀란 이들이 많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삶도 죽음도 커다란 의미이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기에, 어쩌면,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을 알아버릴 것 같다. 


마침 바로 전해에 시어머님이 위암에, 그리고 다음해에 내가 유방암에 걸림으로써 가족들은 많이들 놀라고 안타까워했지만,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예전에는 그냥 노환인줄 알고 넘어갔을 일들이, 의학의 발달로 빨리 확인되고 있다는 점, 그래서 치료를 할 시기를 놓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까?


나는, 모리 교수가 루게릭병으로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동안, 미치 앨봄과 나누었던 대화들을 읽으면서, 나와는 조금 다르겠구나 생각했다. 모리교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을 힘들어한 것 같다. 아마도 그 자신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의논하고, 함께 했던 순간들에 의미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나는, 어쩌면 이것도 나의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를 더 원하며, 여러사람과 어울리기 보다 그냥 혼자 침잠하기를 원하는 나의 태도를 볼 때, 굳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를 기억해달라 하고 싶지는 않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삶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삶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p.8


나는 이 문장이 마음에 든다. 어떻게 죽어야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서 방점을 찍고 싶은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한 것이다. 지금, 당장, 바로, 살아가는 내가 행복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을, 읽고 싶은 것을, 먹고 싶고 보고싶은 것을 모두 누리며 살아가고 싶다. 삶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것들을 나중에 아쉬워하며 그리워하고 싶지 않다. 


그는 '죽어 간다'라는 말이 '쓸모없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님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p.54


'죽어간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죽어가는 것이 쓸모없다라는 말과 동의어처럼 취급받는다면, 우리는 누구나 언젠가 '쓰레기'가 될 운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말이된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비록 제 손으로 제 몸조처 가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모리 교슈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듯이, 또는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주었듯이 여전히 가치가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라”

“과거를 부인하거나 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타인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너무 늦어서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p.63


모리 교수가 아포리즘처럼 남긴 말들이다. 앞선 자들이 남긴 어록들을 살펴보면, 뭔가 특별한 가르침이기 보다는, 평범하지만, 실천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하다. 특별한 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남은 삶을 어떻게 살것인가라기보다, 지금보다 더 많이 남은 '창창한 내 삶'을 살아갈 진로를 결정해야한다. 십대에만 진로결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반백년 살고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이다. 


"죽어 가는 것은 그저 슬퍼할 거리에 불과하네. 

불행하게 사는 것과는 또 달라.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불행한 사람이 아주 많아."

"나는 죽어 가고 있지만 날 사랑하고 염려해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지 않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p.83


모리교수와 나는 이런 점에서는 조금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죽어가고 있지만 사랑하고 염려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외롭지 않게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건 모리교수의 상황이다. 


나라면, 조용하고 고요한 곳에서, 남은 인생을 조용히 반추하며 사람들과 좀 떨어져서 살고 싶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에 둘러싸여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고, 사랑받으려 애쓰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삶이 달랐듯이 그렇게 죽음도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모리교수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따뜻했다. 찾아갈 노은사가 없음을 아쉬워하기도 했고, 누군가의 죽음이 '평생 회환'이 아닌, '그와 함께 했던 즐거움'으로 남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반백년 살고 나서, 연초에 읽기에 꽤 괜찮았던 책이라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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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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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처음 접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 보니 2013년 쯤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공연장에서 직접 본 것이 아니라 오페라 공연 실황을 비디오 ( ? ) 로 감상했던 정도였다.

그때 본 것이 라보엠, 카르멘 이런 작품이었다. 솔직히 대사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고 노래나 음악 정도만 감상하는 정도였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나마 한 십년 동안 성악가들의 공연도 보고 유튜브로 조금 맛을 본 것도 있어서인지 완전히 낯선 건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오페라의 벽은 높다. 쉽게 공연을 직관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오페라 공연 실황을 보았을 때 해설을 해 준 분이 있어서 이해에 도움을 받았었다. 이 책은 그때의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 오페라도 콘서트나 뮤지컬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장르" 일까? 나는 최근 뮤지컬을 자주 보러 간다. 기회가 된다면 연극도 본다. 이 공연들을 더 자주 보지 못하는 이유는 솔직히 '돈'때문이다. 부산에도 뮤지컬을 올릴만한 공연장이 생겨서 그나마 뮤지컬을 보러 가게 되었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되면 좀더 기회가 많아질까?

'방구석 오페라'는 깊이있는 오페라 설명서가 아니다. 입문자를 위한 길라잡이 성격이 크다. 책의 서두에 있는 오페라용어 해설도 입문자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3막으로 구성된다. 오페라 대본을 리브레 토라고 하며 오페라 가수는 프리마돈나, 프리모우오모.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이다.

5개 PART 로 구성된 이 책은 25 편의 오페라를 소개한다. 익히 들어서 익숙한 오페라도 있고 처음 접하는 오페라도 있다. 먼저 오페라의 줄거리를 소개하고 이어서 주요 노래의 가사를 알려준다. 한국어로 공연되지 않는게 대부분이라 줄거리와 노래가사를 알고 본다면 오페라의 내용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는데 도움이 된다.

그런다음 이 오페라를 작곡한 작곡가나 원작에 대해 알려주고 오페라 역사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 작품이 다른 작품과 구별되거나 높이 평가 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소개한다. 메인 뮤직과 대표곡을 감상할 수 있는 QR코드가 있어서 바로 들어볼 수도 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오델로, 니벨등의 반지, 토스카, 투란도트, 파우스트, 카르멘과 같은 익숙한 오페라를 비롯하여 이 책이 소개하는 25편의 서사를 오롯이 즐겨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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