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작은 일기라는 제목처럼, 일기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작가가 써내려간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경험한 그 시간들을 다시 되살려본다. 내가 잠든 그 밤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의결로 해산, 그리고 그 뒤로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내란 우두머리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상식 밖의 짓거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작가는 거리와 광장을 오가며 시민들의 분노와 연대,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낌 소외와 따뜻함까지를 생상하게 담아낸다. 나와 우리집 딸아이도 그 일이 일어났던 다음날 서면에 나가 길거리에서 함께 했지만, 서울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지역의 목소리는, 아니, 부산의 목소리는 조금, 조금 작았다고 느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염원은 서울, 부산이라는 공간을 떠나 같았을지라도... 뭘 하든 눈감고 표를 주는 부산에서는 확실히 내가, 내 아이가 서울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분명 달랐던 것 같다.
이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작가는 식물을 돌보거나, 책을 읽거나(아, 저자가 언급한 도서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사소한 순간도 함께 기록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난 다양한 세대와 연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직은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발견한다.
하룻밤 사이에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날 이후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비상식의 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주듯)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보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6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광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이 사태 초반부터 광장을 채운 다수 구성원의 영향일 것이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여성들."(p.58)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술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p.83)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p.85~86)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줄 절반 이상이 이삽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 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 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려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 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집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p.98~99)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p.99)
"지난 두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p.102)
"공부를 잘한다는 건 뭘까. 내린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p.111)
"초법적 존재들. 초밥적 운명 공동체들. 초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법한 일을 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 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p.112~113)
그 일이 있고 난 후,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곧이어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작가의 에세이는 여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 그리고 선거를 치루고, 대통령이 당선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뻔뻔스러운' 그들은 본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상식이 어디까지 몰상식화되는지, 국민을 대변한다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지를 본다.
요 며칠은, 부산지역 정치인들이, 해수부 이전을 반대하고, 민생지원 25만원이 필요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인과 바다'라던 부산이 '노인과 아파트'라는 오명으로 불리우고 있는다는데, 일거리도 발로 차고, 소비진작을 위한 지원금마저 튕겨내려고 발악한다.
나는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으면서, 숨가쁘게 흘러 온 지난 반년을 떠올린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 일을 겪고도 붉은색으로 덮여있던 우리 지역의 대통령 선거를 기억한다.
덧붙임: 상식이 무너진 국가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