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취해 있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이것만이 문제다.

어깨를 억눌러 그대를

아래로 구부리게 하는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노상 취해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에?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다만 취하기만 하라

그러다가 궁전의 계단에서나, 도랑의 푸른 풀 위에서나,

당신 방의 음침한 고독속에서,

당신이 깨어나 취기가 이미 덜하거나 가셨거든 물어보라.

바람에게, 물결에게, 별에게, 새에게, 시계에게,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울부짖는 모든 것에게,

굴러가는 모든 것에게, 노래하는 모든 것에게,

말하는 모든 것에게 몇시냐고 물어보라

그러면 바람이 물결이 별이 새가 시계가 대답해 주겠지.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구박받는 노예가 되지않으려면

취하라 노상 취해 있으라! 술에건 시에건 미덕에건

당신 뜻대로.

ㅡ보들레르

 

 

다른 이들에게 책 선물을 할때 앞에다 끄적이는 두 글자가 있다.

"뜨자"

세상을 똑바로 보는 눈을 뜨자는 것이며, 어떻게 해도 세상이 변할 것 같지 않으면 그 세상을 떠 버리자는 의미로 끄적인다.

그런데 보들레르는 반대로 취해버리잔다. 시간의 짐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해버리잔다.

그것이 꼭 술일 필요는 없다. 취하자는 건 그것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잊어버리자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취한 순간은 시간이 흐르면 결국 깨게 마련이다. 노상 취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 것인가? 그러나 노상 취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 것인가?

뜰 수 없다면 취하자.

아~나도 취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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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신하에게 세상의 모든 지혜를 적어내라고 명령한다. 10년의 세월이 흘러 30권이나 되는 백과사전이 완성된다. 왕은 어느 세월에 이걸 다 읽겠느냐며 요약해 오라고 다시 명령한다. 또 10년의 세월이 지나 단 한권의 커다란 책이 완성된다. 그러나 책은 너무 무겁다. 왕은 다시 더 줄여 올것을 명하고 다시 흐르는 10년의 세월. 왕은 커다란 침대 위에 드러누워 있다. 신하들은 한 문단으로 줄였다. 임종을 앞에 둔 왕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침내 신하들은 한 문장으로 줄여 가지고 들어온다.

"공짜 점심은 없다"

ㅡ 가비오따쓰 P150 중 요약

 

가슴에 꽂힌 말과 글이라기 보다는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거리라고 여겨져 적어본다. 무노동 무임금을 언뜻 떠올리게도 하고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리고 그리 오래 산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서도 공짜로 얻어먹는 점심이란 분명 없는듯이 보여진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이것을 한번 설명해보자.

얘들아 세상에 공짜 점심이란 없단다.

아이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파고다 공원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얻어먹는 공짜 점심. 노숙자들이 얻어먹는 식사들. 다 공짜다. 뒤에 숨겨진 무엇인가 있을 것 같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분명 공짜다. 세상은 꼭 교환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굴러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가 가르쳐준 화폐의 기능이 세상을 온통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길을 가다 귀여운 아이들에게 과자 한 봉지 사다줄 수도 있다. 땀흘려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에게 그냥 그대로 보내도 되지만 식사 한끼 대접한다.

한 없이 퍼주는 삶도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방식이 꼭 정답인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도 있을 것이다. 라고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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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7-2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옳습니다.... 저도 아무런 대가 없는 점심을 먹었던 기억이....없지 않으니까요...

하루살이 2004-07-29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게 받았는지 많이 받았는지 따져보지 않아도 되는 그런 교환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놈의 머리는 그걸 계산하느라 어찌나 바쁘게 돌아가는지. ^^;;; 잠시 휴대폰이 아니라 머리를 꺼 두셔도 좋겠습니다. ㅋㅋㅋ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실수투성이들이잖아.

                                영화 <페이 첵>중에서

 

세상을 움직인 발명이나 발견중 어떤 것들은 실수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잠을 자다 우연히 흘린 침 한방울로 인해 발견된 페니실린이라든가 고양이가 떨어뜨린 실린더를 통해 발견되어진 안전유리 등등.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를 깨우치는 것 중의 하나는 그 사람의 실수를 통해서 일수도 있다. 흔히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다는 말로 실수를 위로하곤 하는데 그것은 단순히 위로가 아니다. 정말로 그 사람의 다른 모습을 그 속에서 찾아볼 수도 있다. 실수 그 자체를 넘어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를 통해서 말이다.

그러니 실수를 두려워말라. 모든걸 완벽하게 해내려고 주저하는 사이 아무것도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때론 저질러야 한다. 실수도 다 나의 것이다. 그 실수들이 쌓여 완벽을 꿈꾼 바로 그곳으로 향할 수 있다. 왕도만을 찾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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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언론의 윤리이다.

김훈<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85쪽)

 

실은 설득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될 것은 언론뿐만이 아니다.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옳다고 주장하는 세상속에서 조용히 들을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 또한 입보다는 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부끄러움은 행동을 제약한다. 어떤 행동들은 전혀 부끄러운 것이 아님을 알아챘을 때 우린 그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다. 설득이라는 것이 원래 타동사로서 누구를 이라는 목적어를 가지고 있지만 반대로 피동사로 쓰여져 자신이 설득되어지는 경우가 있다. 피동사라고 해서 그냥 멀뚱히 서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설득되어지는 것은 행동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 부끄럽지 않다. 그래서 일보 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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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

법은 그것을 위한 도구다

-메리 로빈스 전 아일랜드 대통령

 

정의가 중립을 지킨다면 그건 강자의 편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정의는 항상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강자는 힘으로 정의를 짓밟을 수도 있다. 따라서 법이라는 제도는 그것을 막기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법치주의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의 법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제도를 말한다. 내가 혹시나 강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아래 그 강자의 권리가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그 악마의 유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아왔는가?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그래서 나만은 집에 풀장을 두고 요트를 타고 낭만을 즐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헛된 욕망들. 그것이 존재하는한, 권력의 달콤함이 존재하는 한 항상 정의는 약자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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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04-05-31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도 어제 저녁에 텔레비전으로 메리 로빈스를 보았지요...~

하루살이 2004-05-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역쉬 그냥 알아보시는군요.
코비의 컨설턴트 보다는 메리 로빈스라는 인물 그 자체에 가장 관심이 가더군요. 리더십보다는 파트너십이라는 말에도 수긍이 갑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강력한 리더십을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박정희에 대한 향수도 아직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군요(쓸데없는 말인가?^^;)
어쨌든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위해 정의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에겐 늘 용기가 부족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