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
노동은 외 / 민글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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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쯤으로 기억된다.학교 앞 서점에 흑백표지의 그럴싸한 잡지하나가 걸려있었다.지금 기억에 영화배우 '이경영'이었던 것 같은데...가물가물.표지 디자인이 당시로서는 신선했다.검은 흑백사진에 콘트라스트를 쎄게넣은 멋진 사진이었다.전체 1/4상단에 노란색 밑판을 깔고 '예감'이라고 큼직하게 써있었다.문화예술 잡지 제목으로 최고 아닌가....."예감" .뭔가 있을것 같은 예감에 책을 집어 들었다.

문화잡지란게 요즘과 달린 영화 뒷이야기나 음악팬들을 위한 잡지가 대부분이던 시대 군계일학하는 잡지였다.잡지의 전체 색깔은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민족예술계열을 반영했다.그런데 싯뻘건 색갈과 구호가 난무하는 잡지는 아니였다.그렇다고 후에 나온 "문화과학"처럼 어느정도 학술적 저변이 있어야 볼수 있는 잡지도 아니였다.세련된 편집과 진보적 의식을 담되 대중과 유리되지 않는 것이 이 잡지의 장점이었다. 당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던 압구정을 문화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베스트셀러들의 헛점을 짚었다.한국락음악의 저항성과 상징성을 읽어내었다.또 미군 기지 주변의 삶을 다룬 포토에세이를 통해 반미문제를 표현했다.오윤의 판화를 소개하고 케테 콜비츠의 그림을 알려주었다. 아....그런데 미인박명이란게 잡지에도 적용되는가.3개월인가 4개월 나오더니 없어졌다.허망......아마 수익성이 맞지않았겠지.

이 책 <심장은 탄환을 동경한다>에 나오는 글은 그 잡지 "예감"에서 접했던 것들이 몇 편있었다.그래서 책 이야기에 앞서 금새 사라진 추억속의 잡지를 먼저 떠올렸던 것이다.내가 그 잡지에서 보았던 글중 여기에 수록되어있는 것은 <케테 콜비츠><오윤><빅토르하라> 등이었다.그 외에도 이 책에는 20세기를 살았던 저항적인 예술인들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한 소개가 들어있다.책 제목이 되기도한 러시아 시인 미야코프스키,영화<우편배달부>를 통해 친근해진 파블로 네루다,한참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밀란 쿤데라 등등.

우리나라의 예술인들도 수록되어 있다.박수근,윤이상,오윤,김순남 등이다.이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어법으로 우리 예술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한 사람들이다.그리고 역사발전의 동력인 민중들의 목소리를 그들 작품속에 용해시킨 사람들이다.물론 20페이지정도로 그들의 예술과 삶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하지만 20세기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옳바른 정치의식을 가지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게 돌린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작품을 폄하하는 사람들도 생길 수 있다.과도한 정치성,또는 프로파간다적 예술속성등등.그런데 시대를 읽고 표현하는 법은 누구나 다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 말미에는 문화이론의 장이 마련되어 있다.다른 편들에 비해 조금 더 길게 수록되어있는 편이다.알튀세르와 그람시.그리고 르페브르의 문화이론을 요약설명한다.내가 이 책을 읽던 당시에는 르베브르의 이론이 눈에 들어왔다.거대 담론에 익숙해져 있는 분위기속에서 일상성과 모더니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만만한게 '구조주의'"해체'이던 (사실 그게 뭔지도 잘 몰랐다.) 접근법에서 일상성의 문제와 거대담론이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한 의문과 분석은 신선했다.아마 20세기 문화이론을 좀 압축해서 보고자 한다면 책 말미의 소론을 읽어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마 ....이 책은 서점 테이블에는 없을 것이다.서점 테이블 밑이나 아니면 헌 책방이거나.. 교과서에 나오거나 미술,음악사 개론에만 나오는 예술가 말고 다른 사람들이 궁금하다면 한번 읽어봄직하다.시대가 달라졌으니 큰 공감을 기대하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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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17 18:15   좋아요 0 | URL
<예감>, 심산 씨가 글을 많이 썼던 잡지죠?
오랜만에 그 잡지 이름을 들으니 반갑네요.
'심장'이 들어간 인상적인 책제목으로 <심장에 새기는 이야기>가 있죠.
가끔 와보겠습니다.

드팀전 2004-07-19 09:0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밀란쿤데라 편을 심산씨가 썻던 걸로 기억되네요.
근데...이 꼬마 참 귀엽네요.

바람구두 2004-08-30 18:36   좋아요 0 | URL
품절되어 제일 아쉬웠던 책들 중 하나입니다. 만약 품절되지 않았더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을 텐데요. 저는 제 책은 잃어버리고, 친구 책을 빼앗아 소장하고 있는 책이긴 한데... 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다시금 그리움이 새롭습니다. 리뷰 자체도 아주 훌륭하게 읽었습니다. 이제사 님의 서재를 발견하다니... 제 게으름이 하늘을 찌르는군요. 추천하고 갑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천천히 읽어보도록 하지요.
 
좁쌀 한 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
최성현 지음 / 도솔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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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 봄으로 기억된다.당시 시국은 '분신정국'이란 이름으로 대변되듯 87년 6월 이후 최대의 급변기를 겪고 있었다.명지대 강경대 학우가 전경의 뭇매에 죽었다.그 후 학생과 노동자들이 이틀이 멀다하고 자신의 몸을 던졌다.당시 정부는 '전세를 뒤집기 위한 운동권들의 발악'이라고 분신정국을 규정했다.서강대 총장이던 박홍은 죽음을 유도하는 검은세력이 있다고 하며 이후 계속될 주사파 발언의 포화를  열었다.거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바로 김지하의  '죽음의 굿판을 때려치워라'라는 칼럼이었다. 충격이었다.그리고 김지하의 명성 만큼이나 크게 분노했다. 70년대 유신독재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써 김지하의 무게감.그 만큼의 실망과 분노가 함께 했던건 오히려 당연했다.진보적 인사들의 칼럼과 학교 대자보에는 김지하의 발언에 대한 비난이 가득찼다. 그러한 비난 속에서도 김지하에 대해 오래도록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의 발언이 '김지하 답다'고 했다.즉 그가 오래도록 심중에 품고 있던 생각을 밝혔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당시 김지하가  말하고자 했던 사상은 무었일까? 본인은 "생명사상'이라고 했다.

장일순을 알게 된건 그의 동지이자 제자인 김지하의 이름 덕택이다.제자가 유명해져서 스승도 유명해진 건가? 이미 알던 사람들에게야 장일순의 이름이 절대 낯설지 않았겠지만 일반인들은 김지하를 통해 장일순을 알게 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나 역시 그랬다. 그럼 여기서 약간의 상상을 더해본다.만약 '분신정국'의 상황에서 장일순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면 어땟을까? ..... 잘은 모르겠으나 이 책을 보고 난 후 내 나름대로 유추해본다면 그 역시 김지하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길 했을 것 같다. 당시 김지하의 발언은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그리고 그건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그와 장일순이 말하는 '생명의 보편성'으로 바라본다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다만 시기적으로 그럴 필요가 있었느냐는 생각이 있다는 것이다. 장일순과 김지하 식의 저항은 흔히들 말하는 민주화세력과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지만 그 심연은 사뭇 차이가 있다.그 차이를 우리의 저항세력은 전장의 처절함에 동참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으로 구분하여 제대로 이해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장일순을 70년대 암울한 시대 민주화 세력의 거점이던 원주캠프의 청지기로만 그를 기억하는 것은 지독히 편협한 시각이다.

 언젠가 k방송사의 <인물 현대사>라는 프로그램에서 장일순을 다룬 적이 있다.아무래로 역사성을 걷어내고 형상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겠지만   '민주화의 숨은 일꾼' 으로서의 장일순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된 것이 아쉬웠다. 반면 이 책 <좁쌀 한 알>은 선생과 주변 사람들 사이의 일화를 중심으로 장일순의 의식 저변에 깔려 있는 드넓은 우주적 사고의 일면을 보여준다. 장일순은 일체의 모든 것 속에 하느님이 들어있다는 세칭 범신론적인 태도를 취한다. '풀은 부처의 어머니'이며 '밥 하나에 우주가 들어있다'는 것이다.그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에 갸륵하고 섬기지 않아야 할 것이 없다.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을 하느님처럼 모시고 나의 친구를 하느님처럼 모시고....창녀를 하느님처럼 모신다. 진리는 결국 하나의 것으로 귀결되니 종교의 편가름 같은 것은 그에겐 무의미한 짓일 뿐이다. 카톨릭 신자였지만 부처와 노자,장자 그리고 혜월을 가리지 않고 섭렵하고 받아들인다. 교회다니기때문에 법당의 향내 조차 맡기 싫다는 칭찬받을 (?) 신심의 주님의 종들이 도처에 깔린 이 사회에서 그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혼자 잡념에 빠져본다.

장일순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그의 무소유와 겸손함이다.그리고 그의 앎이 실천으로 배여 평생을 함께 했다는 점이다. 하나의 책이라도 하나의 CD라도 더 쟁여 넣으려 나. 조금 아는 지식으로 남들에게 뭔가 알려주려고 하는 나. 그리고 조금 아는 것도 이 핑계 저 핑계...현실적 문제 등등 운위하며 빠져나가는데 익숙해져 있는 나.그리고 그런 변명조차 인간적인 한계라고 선 긋고 맘편안하게 자려고 하는 나.... 이런 나는 얼마나 초라해지는 것인지....

그의 가르침은 '낮아 지고 낮아 지라는 것'이다. 내가 낮아 지지 못하면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고 세상도 변화 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장일순은 그의 멋진 글씨가 '고구마 장사의 글씨'만 못하다 했다. 또 유치원생의 글씨만 못하다 했다. '산길에 소리없이 아름답게 피었다 가는 너를 보고 나는 부끄러웠네'라고 말한다. 그의 집 가훈은 '하늘과 사람을 대해서 부끄럼이 없어야 한다' 였다.

나는 얼마나 사람과 하늘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사는지 반성해본다.잘난 맛에 사는게 인생이라며 얼마나 떵떵거리고 다니는지.....  얼마나 닦으면 표지에 나오는 장일순 선생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P.S) 이 책의 단 한가지 아쉬움이다. 지나치게 좋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 그렇다보니 장선생의 고뇌와 번민들은 빈약하게 다루어진다.그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겐 장일순 판 '용비어천가'로 읽힐 수 있다.오히려 그를 우리곁에 있었던 살아있는 누가 아니라 신격화된 누구로 보이게 하여 반감을 사지나 않을까 걱정해본다.기우라면 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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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4-08-22 23:28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세 여인 (구) 문지 스펙트럼 4
로베르트 무질 지음, 강명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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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얇다.그래서 금방 보려니 생각했다.하지만 왠걸.... 마지막 장을 덮는데 열흘도 넘게 걸렸다.책이 어려워서 그랬나? 사실 그건 아닌 듯하다.가끔 이 핑계 저 핑계가 책장 넘기는 속도를 줄일때가 있다.그럴땐 갑갑증이 발동한다.갑갑증이 발동한다고 뭐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일상의 번잡한 대소사를 처리하다 보니 잠시도 혼자 있을수 있는 절대시간이 부족했다.오로지 화장실에 갔을때만 자유로왔으니 화장실은 나의 도량이다.그나마 변비도 없는 건강한 상태로 그 시간도 길지 않았다.^^

로베르트 무질에겐 무지하게 미안한 일이지만 책을 너무 쪼개서 본 듯하다.안그래도 나이가 들며 단기기억 장애의 증상이 나오려는 즈음 '쪼개어 읽기'는 책의 감동을 느끼는데 치명적이다.볼때 마다 앞 페이지를 넘겨야만 하기 때문이다.물론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귀찮아지기 마련.알듯 말듯한 상황에서도 그냥 접혀있는 장부터 보고 말았다.그래서 책을 본 느낌은 책의 배경 만큼이나 희끄무리하다.마치 습기 가득한 자동차 앞유리창 같다.^^

로베르트 무질이란 작가가 유명한 사람이라는 걸 안건 남진우의 평론때문이다.남진우가 김영하의 <검은꽃> 서평에 인용한 무질의 <통카> 한 구절때문에 그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프루스트에 비견될 만한 작가라고 한다.푸....웃. 프루스트 안다.이름만.<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다.그것 말고 내가 프루스트에 대해 무얼안다는 말인가.그 소설이 유명한 무었이라하여 서점에서 찾아보았다.방대한 량에 질려서 1권도 꺼내보지 못했다.언젠가는 읽기되려나.....  프루스트 만큼 유명하다는데 비교대상도 잘 모르니 그의 진가를 알기는 아직 어려운 듯 하다.거기에 로베르트 무질의 책이 번역된 것도 그다지 많지 않다.독한 마음 먹고 오기로 달려들지 않는 한 무질과 얼마나 가까와 질 수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책<세 여인>은 초기 무질의 단편 세편이 수록되어있다. 소설의 배경은 전부 다 몽환적이다.그렇다고 반지의 제왕 시절은 아니다.과거나 현재에 있는 듯 하면서도 언제인지 알수 없는 시절이다.이 몽환적 배경은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무미건조하게 서술되는 사건의 진행조차 비오느 듯 뿌연 환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등장인물들 역시 구체성을 갖는 개인들이라 보긴 힘들다.전통적인 내러티브 측면에서 보자면 지루하기 짝이없다.앙겔로풀로스나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같다.그렇게 연관 지어가다보니 소설의 배경 역시 그 감독들이 만들었던 미장센과 유사하다는 생각이든다.철학적이라고 ...물론 철학적이고 지루하다.

소설은 여성성에 대한 좀 진부한 담론을 답습한다. 첫 소설에 나오는 그라지아나 포르투갈에서온 그 여인그리고 백치미가 넘치는 통카까지 신비화된 여성의 이미지가 존재한다.그나마 상대적으로 외지인들에게 눈길을 흘리는 <그라지아>의 여인들이 좀 덜할 뿐이다.그래도 그들의 감정은 배제되어있고 관음만이 존재할 뿐이다.소설의 대상이자 소설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여인들은 감성과 자연이라는 상대적 이분법에 의해 묘사되어진다.남자들이 합리와 정복,보수적 합리성을 나타내는데 비해 여성은 창조와 상생을 상징한다.그런데 이러한 도식은 사실 지나치게 전통적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도식이 존재했을까? 근대학문은 원시공동체에서 여성이 갖는 다산과 생성의 이미지를 자연의 순화과 병치시켰다. 그러면서 사적인 축적이 이루어지는 투쟁과정에서 여성은 그러한 이미지로 배제되고 이상향의 근원으로 높은 곳에 자리잡는다.하지만 실제 생활 영역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이와는 정 반대였을것이다. 굳이 여성이란 말로 정치사회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여성성'이란 말로 대체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페르시아의 여인은 존재론적 불안과 타인에 대한 안정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이의 욕망추구역시 흐르는 물이 땅으로 사라지듯 세상의 안정을 위해 녹아 없어진다. 목적론적인 세상에 대한 완충으로 여성성의 유연함에 기대는 것.이건 또 얼마나 진부한가.통카는 이를 더 극단적으로 형상화한다.여기 보이는 신비한 여인 통카는 이성과 합리의 이름으로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지극히 순응적이고 탈이성적이다.북치고 장구치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일은 남자의 몫일 뿐이다.통카에 대한 불신으로 그녀을 보낸 주인공은 통카의 진정성과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선의지에 베드로가 예수를 만나듯 눈이 번쩍뜨이는 계기를 갖게된다. 나는 이러한 지독히 관음적인 여성성에 대한 응시가 과연 항구적 변화의 길이 될는지 의문이다.신비주의적 관점이 주는 현실성에 대한 깨우침은 결국 순간의 감동내지는 작심삼일형의 해탈 아닐까 싶다.

로베르트 무질이 대단한 사람이라 내가 그의 속내를 다 읽어내기엔 내공이 부족하다.그의 단편집 하나만으로는 더욱 그렇다.그의 서술방식과 설정이 기존 형식과 차별성을 둔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한다.하지만 내게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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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몽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단편집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박철민 그림 / 좋은생각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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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라쇼몽'을 처음 읽었던 건 대학4학년 때일이다.이문열씨가 묶은 해외 단편집 중에 수록되어 있었다.책을 넘기다 '라쇼몽'을 발견했을 때 아쿠타가와의 이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보다 먼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생각났다.

 당시는 일본 문화개방 전이라 일본 영화를 본다는건 또 하나의 문화적 특권의 상징이었다.대학 영화동아리들 마다 무슨 무슨 영화제 하며 일본영화를 상영했다.나름대로 금지된 문화에 대한 엿보기를 기존 보수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또는 대학이란 상아탑이 향유할 수 있는 문화적 우월성으로 여기는 분위기 였다. 당시 대중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영화계에서 인정을 받은 구로자와 아키라를 모를 수 없었다. 허름한 강당에서 상영하는 조악한 구로자와 감독전은 요즘말로 '한 영화 한다'고 자부하고자 하는 이들의 놀이터였다.나 역시 자막도 없는 구로자와 감독의 영화 두어편 (<꿈>과 <7인의 사무라이> )을 그들과 함께 보았다.

<나생문>이라고 한문으로 쓰는 <라쇼몽> 역시 구로자와 감독의 영화로 세상이 널리 알려졌다.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작품으로 기억한다.하지만 영화 <라쇼몽>과 소설 <라쇼몽>은 다른 작품이다.이 단편집에 수록된 <덤불 속으로>를 구로자와 감독이 새롭게 각색한 것이 영화<라쇼몽>이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접고 소설 <라쇼몽>을 처음 봤을 때 이야기로 돌아가야 겠다.

처음 그 짧은 글을 읽었을때 '어..뭐 벌써 끝이야.'하는 말을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영화와 소설의 차이를 모르고 있었던 시절이므로 도대체 이런 간단한 시나리오로 어떻게 장편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소설 <라쇼몽>은 각색하지 않고 장편으로 만들기에는 분명히 구성이나 소재가 짧을 듯 하다. 영화의 근간이 된 <덤불 속>은 수많은 논란을 야기 시킨 작품이다.어찌나 그 논란이 컸던지 100년이 지난 최근에도 한국 정치인들 입에서도 그 말이 나왔다. 열린 우리당의 정동영과 김근태 의원이 입각하는 문제를 가지고 서로 아전 인수식 해석을 하며 '라쇼몽'을 언급했다.(정확히는 덤불 속으로겠지만) 이 소설은 늘 진리는 없다라는 식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에게 인용된 듯 하다.세상에 절대의 진리는 없으며 단지 해석만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들 말이다. 대개 반역사적인 행위나 야합적인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이런 주장들을 펼쳤다.그러면서 말한다. '역사가 판단해 줄 것이다' 자신들의 행위는 구국의 결단이었다.뭐 이런식으로 말이다. <덤불 속>을 상대적인 가치관의 해석으로만 판단하면 결국 그들의 행위도 다 나름대로 인정하고 수용해주어야 하는 것이다.과연 세상은 순수한 상대성과 해석만이 존재하는가?

이 단편집에서 재미있게 본 작품은 <투도> <갓파>이다.먼저 <투도>는 이기적인 인물들의 묘사와 설정이 재미를 준다. 샤킹이란 여자를 중심으로 타로와 지로형제,그리고 샤킹과 부적절한 관계를 이루고 있는 양아버지와 할멈.이들은 샤킹의 음모에 따라 성을 털러 간다.샤킹의 음모는 타로와 지로에게 형제를 죽음으로 몰고가야할 당위를 만들어낸다.서로의 죽음을 내심 기대하며 갈등하는 두 형제의 심리묘사가 아주 뛰어나다. 아쿠타카와가 소설인물들에게 부여한 캐릭터는 인간의 이기적인 양면성이다.샤킹과 타로형제들 역시 작가의 조종(?)에 의해 선악의 문제를 쉽게 넘겨버린다.작가가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에서 언급한 '선악은 없으며 쾌불쾌'만 있다는 가치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구한 할멈을 적의 무리속에 홀로 남겨두고 도망친 양아버지,그는 소설의 마지막 반전을 위해 중요한 인물이 된다.백치인 아코기가 낳은 아이(아코키는 지로의 아들이라 믿는다.) 가 그의 자식일 줄 이야...^^

<갓파>의 경우는 소설<점귀부>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 가족의 정신병력에 기댄 작품이다.<갓파>를 쓸 당시 아쿠타카와 역시 심각한 신경증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작가는 <갓파>라는 일본 민담에 나오는 특이한 존재를 현재에 복각시킨다.작가는 갓파들의 세계를 인간 세계의 대응점으로 두면서 후자의 세계에 대한 신랄한 조소와 비판을 날린다.인간들의 가식과 차별,예술에 대한 검열등이 갓파세계에서 비꼬아진다.자본가에 대한 풍자는 거의 컬트수준이다.실직된 직장인은 직공 도살법에 의해 잡아먹는다는 것이다.자본이 인간을 대상화 시킨 것에 대한 아쿠타카와식 상상력이다.당시 맑시즘에 관심이 많았던 탓이 아닐까한다.그외에도 작가는 니체와 스트린드베리 등의 종교에 대한 관점등을 갓파세계에 비추어 말한다. 처음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와 다른 갓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 시선으로 대한다.하지만 점점 갓파의 세계에 동화되어간다. 하지만 친구인 토크의 죽음이후 원래 살던 인간세계로 돌아오지만 결국 정신병원 행이다.그래도 주인공은 갓파들과 현실세계에서 즐거운 교류를 갖는다.그들이 찾아와 주니까...

아쿠타카와는 지금으로 부터 한 세기전 사람이다.당시 일본은 근대화를 이루고 후발제국주의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였다.아마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이었더 우리의 근대문인들도 아쿠타카와의 글을 일본어로 읽었을 것이다.그때 그 사람들은 이 글을 어떤 느낌으로 읽었을까 궁금하다.아쿠타카와가 정치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그의 아포리즘을 읽다보면 그가 한 세기는 먼저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요즘 일본에서 뛰는 작가들은 과연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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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으로부터의 탈퇴 - 국민국가 진보 개인, 반양장
권혁범 지음 / 삼인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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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때(그래 여기도 국민이구나.)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다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울랄라.....방과후까지 남아서 이걸 다 외워야 집에 갈 수 있었다.나름대로 잘 나가던 난 우리반에서 가장 먼저 이걸 외우고 당당히 책가방을 쌌다. 집으로 돌아갈 마음에 들뜬 내 뒤통수에 대고 선생님 왈 "넌 남아서 못 외운 아이들 도와주고 가렴'  ....'그럼 그렇지.... '   결국 국민학교 5학년이 다되도록 구구단도 못외우던 친구에게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암기를 시켰다. 그러나 될 턱이 있나.해도 눈치를 보며 서산으로 넘어가려는 시간, 더듬더듬 외우던 친구들도 돌아가고 그 친구와 둘이 남아서 계속 '길이 물려줄 영광된 통일조국'의 앞날을 생각하며 외우고 또 외웠다.  결국 선생님도 데이트를 가셔야 했는지 아님 중간고사 채점을 다 끝내셨는지 내일까지 다 외워올 것을 친구에게 다짐 받으며 돌아가도 좋다고 말씀 하셨다. 어스름 운동장엔 미루나무 그림자가 짙어지는 시간이었다. 친구는 콧물 덕지 덕지 묻은 소매자락으로 다시 한번 코를 훔치며 미안하다고 했다.또 선생님에 대한 원망도 빠뜨리지 않았다.난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대신 니가 내일 축구할때 꼴키파 봐야돼." ^^

 권혁범 교수의 글은 이미 각종 잡지를 통해서 자주 읽었다.그때마다 우리가 평소에 간과하던 부분에 대한 그의 핀셋으로 뽑아낸 것 같은 지적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 <국민으로부터의 탈퇴>에서도 그의 칼날은 녹슬지 않았다.그가 뽑아든 칼날의 대상은 대한민국이란 국가와와 한국민의 근대성이다.이 책은 우리가 지극히 당연시 여겨왔던 국가,국민,민족이란 개념에 대해 성찰적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한다.책은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에서는 국가주의를, 2부에서는 미국에 대한 인식을, 3부에서는 환경이나 젠더 문제를 주로 다룬다. 물론 책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비평의 관점은 탈근대적 정치사회론이다.이미 탈근대적 관점의 한국사회 분석은 무수히 이루어져 왔다.아마 그 선두에 계간지 <당대비평>이 있었을 듯 하다.물론 권혁범 교수도 <당대비평>의 편집위원으로 있었다.(지금도 그런진 모르겠지만) 그 외에도 임지현 교수(물론 당대 소속이다)의 책들과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전설적 인물 문부식의 글등을 통해 2000년 필두부터 민족주의의 허구성과 국민국가의 폐해,한국 사회의 왜곡된 전체주의 구조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특히 진보층에대한 비판적 성찰은 논쟁의 주요 화두가 되어왔다. 인문사회학 책치고 잘팔린 <우리안의 파시즘>같은 책은 이러한 탈근대적 관점의 한국사회분석 압축판이며 근대론자들과 탈근대론자들의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권교수는 우선 우리의 국가관에 대한 특징으로 '국가 무오류성'을 지적한다. 물론 여기서 국가는 '대---한민국' 이다. 신성화된 국가가 개인의 충성을 요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 '단결'과 '애국'이다. 일상적인 생활 영역에도 깊숙히 침입해 있는 단결과 애국이란 용어는 개개인을 국가와 국민이란 이름으로 총체화 시켜버린다. 권교수가 이 과정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국민국가라는 이름이 필충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타자화'이다. 사실 모든 근대적 패러다임이 '타자화'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를 위해 우리가 타자화 시킨 것은 무었인지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특히 권교수의 지적 중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가 신성시 하는 국가라는 것이 무의식과 공론의 영역에서 실제보다 과장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권교수는 '위선적 이중성'이라고 말한다. 즉 국민 개개인이 공동체는 선이며 공동체 중 가장 상위에 해당하는 국가나 민족을 중요시 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 국가에 대해 불신하며 개인적 혈연이나 학연등 전근대적 요소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근대론자들은 온전한 국민국가의 건설 미비를 그 원인으로 내세운다. 친일파문제라던가 장기간의 우익 독점적 정치구조,냉전이데올로기의 내제화,외국 군대의 주둔,민족 통일의 미완성 등과 같은 문제의 청산이 이루어져야 온전한 국민국가가 완성되어야 국가의 공적영역에 대한 정당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사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근대론자들의 주장을 너무 단순화한 느낌이 들어 찝찝하지만 골자는 그렇다는 것이다. 기실 이 문제는 오래도록 치열한 공방이 되던 주제였고 요즘은 다들 중용적인 태도로 문제를 수용하는 듯하다. 권교수 역시 책 말미에 이 부분에 대해 개념적으로 '진보'와 '탈진보'의 중층적 해결이 선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진중권 역시 <사회비평>에서 엘리아데와 푸코의 예를 들어가며 근대론자들의 발전주의적 해결에 반대하며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를 중층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에서 권혁범 교수는 민족주의의 보수성과 그 허구성에 대해 지적한다.그러면서 한발 더 나아가 저항적 민족주의 마저도 결국에는 자민족 중심주의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한다고 말한다. 민족주의가  더 이상 진보의 개념이 될 수 없다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하지만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의 경험이 있는 우리 역사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자칫 반역사적이거나 몰역사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과거  경희대 도정일 교수는 <당대비평>에서  '내셔널리즘의 전면배척'에 대해 반대했다.패권적 민족주의에 반대하지만 피압박민족의 저항적 민족주의에는 찬성한다는 것이다.그러며 한마디 더 붙이기를 문화 다양성을 파괴하는 시장 유일주의 속의 반민족주의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권혁범 교수는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화의 경제적 부문만 부각되고 이에 대한 민족 경제적 반감에 대해 유의할 것을 주장한다.오히려 다양성이 서로 교류되는 '파이프현상'을 예로 들며 보편적인 세계주의 타당성 관점으로 바라보길 권한다.교조주의적 세계화 반대세력과 대세론적 세계화 수용세력 양자가 다 성찰적으로 돌아보아야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세계주의적 관점이 적용되는 부문이 3부에 나오는 환경과 민족문제이다. 사실 환경문제와 민족문제는 별개의 문제처럼 작동해 왔다.권교수는 민족이 부국강병의 매커니즘 속에서 환경파괴를 지속적으로 감행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임을 지적한다.그러면서 제3세계가 환경문제에 있어서 환경파괴의 근본원인으로 제1세계를 지적하며 환경이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아쉬워한다. 즉 귀책사유의 대부분이 1세계에 있다고 하더라도 보편적 이성이 요구하고 전지구적인 컨센서스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환경민족론이 해악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야 준주변국으로 여기저기 눈치보며 적당한 수준에서 국제환경문제에 발을 담고 있지만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부분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탈근대적인 사회분석에 매력을 느낀다.우선 지독히도 '우리'와 '하나'와 '대동단결'을 중시하던 한국 사회의 갑갑성에 대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도 분명히 그러한 느낌은 내게 간파당했었다.당시 목소리 컸던 사람들은 지난 대선에서 또 대개 큰 목소리로 '비지론'을 주장했다. ^^  물론 소수파도 있지만^^  또 한가지 거시담론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일상생활 영역을 움직이는 힘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서 반갑다. 하지만 내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지는 양심적 병역거부가 여론조사에서는 7:3으로 밀리는 이런 형국에 또 다른 탈근대적 접근이  현실적으로 어떤 힘을 발휘할 지는 의심스럽다.(그리고 ..나 군대 갔다 왔다. 이런 자기방어기제를 꺼내지 않아도 되는건 언제일까?)그나마 그런 이슈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이 아니었을까 위안해 본다.

후기) 아...국민교육헌장 못외운 친구...지금 생각해보니 그 집이 생활보호대상자 였던 것 같다.다 쓰러져가는 슬레트 집에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았는데...  지난해인가 수십년만에 동창싸이트에서 그 친구의 글을 보았다. 여전히 맞춤법은 개판이더군.그래도  이름난 경비업체에 취직해서 잘 다니고 있었다. 그 친구의 글 말미에 코 끝이 찡해졋던 기억이난다. ' 우리 국민학교 동기들 중 가장 못난 ㅇㅇ 가 너희들이 보고 싶다." ...그 친구 옛날부터 골키퍼 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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