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변화경 감수 / 이레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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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노는 배웠어야했다. 엄마가 그렇게 등을 떠밀었건만 듬성 듬성 나간 피아노 학원.내 어린시절 부모님이 시킨 일중 말 안들어 지금 가장 크게 후회 하는 일이 '피아노'다. 엄마의 강요에 못이겨 몇번  피아노 학원에 가긴 갔다. 피아노 앞의 나의 태도는  '건성 건성'이었다. 한 이틀 다니니까 재미가 없었다. 우선 바이엘에 나오는 그 의미도 없어보이는 반복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도레 도레 도레미..." 이걸 50번씩 치려면 진짜 허걱....허리가 비비꼬였다. 또 하나는 피아노 학원의 빨간 가방이 문제였다. 남녀간 색깔로 정체성이 구분되던 그 시기에 동네에서 대장 노릇하던 내게 빨강 가방이란 왠말인가 말이다. 왜 당시 피아노 학원 가방은 전부 빨강 아니면 노랑이었을까? 어쨋거나 대장의 카리스마를 일거에 소멸시키는 획일적인 빨강 가방은 비난받아야 마땅했다. 피아노 학원을 등한시 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 '야구' 때문일 것이다. 고교 야구 라이벌 전에 힘입은 대한민국 야구가  프로리그를 창설한 것이다. 이 당시 이야기는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의 마지막 팬클럽>에 보면 아주 적절히 묘사되어 있다. 난 물론 OB팬 이었지만...어쨋든 이러저러한 이유로 못배운 피아노. 결국 요즘은 피아노 음악을 듣는데 만족을 느끼며 산다.그나마 피아노와의 인연을 반쪽은 건졌으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




러셜 셔먼은 국내 꽤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그의 음반을 매장에서 쉽게 구할 수는 없다.하지만 몇차례의 국내공연이 있었고 TV에서도 한두번 쯤 얼굴을 본 적이 있다.국내 음악팬들이 친숙한 느낌을 갖는 것은 그가 한국과 개인적 친분이 있기때문이다.우선 그는 한동안 주가를 올렸던 피아니스트 백혜선의 선생님이다. 또그의 부인은 한국인 피아니스트 변화경 교수 이다. 가까운 느낌을 주는 피아니스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를 들어본적은 없다.국내 공연시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때마침 발생하는 밥벌이의 분주함으로 인해 포수가 날아간 오리 바라보는 심정으로 공연장쪽 하늘만 처다봤다. 그에 대한 안타까움에서인지 서평에서의 좋은 평가때문인지 러셜셔먼의 <피아노 이야기>는 국내 출간되고 바로 구했다.




러셜 셔먼은 5장에 걸쳐 피아노 음악의 본질부터 연주,교수법,예술전반에 걸친 생각들을 풍부한 은유와 일상적인 비유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이 책에는 어떤 평론가들이 쓴  음악에세이들과 비교해서도  문학적인 수사와 표현의 다양성이 풍부하다. 그것도 종적을 잡을 수 없는 그런 메타포들이 아니라 한번에 감이 확하고 오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칠 때를 예로 들어보자. 셔먼은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카스트로 이전의 쿠바소리처럼."" 재즈 밴드의 금관악기처럼"  물론 이에 대한 딴지도 밝힌다.일견에서는 음악의 이해를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비평도 듣지만 그는 단호히 "그게 어때서?" 라는 신념을 밝힌다.




그의 풍부한 은유의 예는 수없이 많이 나온다. 신문서평 같은 곳에서는 피아노와 야구,또는 골프의 유사성을 비교한 것을 예로 많이들었다. 어느 피아니스트는 그가 아니면 누가 야구의 스윙과 피아노연주를 비교하겠느냐고 칭찬을 했다.하지만 솔직히 그 부분은 와 닿지 않았다.문화적 이해 정도의 차이때문이다.러셜 셔먼이 좋아한다는 40년대 다저스나 카디널스의 선수들을 어찌 내가 알겠는가? 요즘 나오는 선수들이라면 채널 돌리다가 한두번쯤 봤을테니까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말이다.미키멘틀,피트 라이저,듀크 스나이더.... 전부 첨 들어보는 이름일 뿐이다. 요즘 야구에 처음 관심을 가진 친구들이 박철순,백인천,하길룡,이선희 하면 아무 그림도 안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표현들도 지천에 널렸다. 피아니스트에게 가장 중요하면 각각 역할이 있는 손가락에 대한 비유이다. " 전문 은행 강도단 처럼 능숙하게 역할을 분담하는, 절묘하게 차별하며 보완하는 음모자들로 이루어진 이 손에게 축복을!"    " 손가락 끝은 음에서 꿀을 추출하는 꿀벌이다.손가락 끝은 음의 유혹적인 불꽃의 표적이 되는 나방이다."





멜로디에 대한 비유는 이렇다. "멜로디는 여전히 여왕벌이다.다른 목소리들은 열심히 여왕을 보좌함으로써 집단을 위해 봉사해야한다.여왕의 건강과 안녕과 광채가 없으면 집단 전체-그리고 곡-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에세이스트 같은 문장 속에 러셜셔먼은 현재 음악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다.우선 공쿠르제도에 대해 부정적인 그의 견해를 들어보자. " 기본적인 수준을 넘어서서부터는 음악가를 심사하는 것은 미스 아메리키를 심사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결국 화장술과 환심 사는 솜씨가 이기게 된다." 공쿠르가 레퍼토리를 제한하고  보편적 해석만을 만연 시킨다고 평가한다.그는 바르토크의 말을 빗대서 음악을 마치 경주장의 말처럼 이해하는 결과에 대해 우려한다.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가끔 공쿠르 결과에 반대해서 심사위원석 박차고 나온 이야기는 아는사람들은 다 안다.음악청취자들 중에도 그런 경마에 참여하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꽤있다.   "알프레드 브렌델!  게는 가짜야...폼만 잡고 뭔가 있는 척하지..사실 게는 아무것도 아니고 에밀 길레스를 들어봐.그게 진짜라니까! " (클래식 듣다보면 이런 사람 부지기수로 만난다.)  연주자를 경마장의 말로 인식하는 것이다.그렇다면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 알프레드 브렌델. 뭐 장단점이 있지만 난 에밀 길레스가 취향에 맞는 것 같고 그의 해석이 좋아 ! " 




 러셜 셔먼의 글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은 대중음악.그중에서도 락음악이다.러셜 셔먼은 락음악을 시대적인 불화를 소음과 저항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저속하게 분출하는 무었으로 파악한다. 거기에 상업주의가 결합을 하므로써  우리의 영혼을 삭막하게 만든다고 본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러셜셔먼의 엘리트적 대중문화관에 전적으로 동의 할수는 없다. 나 역시 대중문화의 천박함에 일견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하지만 나를 비롯한  대중문화 옹호자들은 여기서 대중문화의 질적 차이를 이야기한다.(여기에도 비판의 여지는 있다.결국 문화를  고급문화 입장에서 위계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어쨋거나 대중문화의 자기혁신성이라는 부분에서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 음악을 듣는 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부분도 인정해야한다.어떤 이들은 영혼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듣지만 어떤 이들은 그저 시름을 잊기위해 또는 그저 심심하지 않기 위해 들을 수도 있다.전자만 진짜 음악이라고 한다면 러셜 셔먼이 스스로 강조한 폭넓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된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재즈피아니스트 아트테이텀의 공연을 보고 나서 "그는 현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다" 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러셜 셔먼도 델로니오스 몽크를 살짝 언급하긴한다.) 피아노는 모든 장르에 걸쳐 두루두루 이용되는 악기이다. 퀸의 처연한 락발라드의 서주부분에 주로 등장하는 피아노 전주는 얼마나 우리를 설레이게 했던가?  파웰,몽크, 빌에반스,윈튼켈리,맥코이 타이너,허비행콕....등등 피아노를 마치 신체의 일부이자 영혼의 일부인 듯 다루는 재즈 피아니스트의 몸놀림은 얼마나 감동적이었던가? 러셜 셔먼은 피아니스트가 짊어진 두개의 십자가를 이야기한다. 그 중 하나가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레퍼토리가 무궁무진하고  일부만 마스터하는 데도 한평생이 걸린다고 한다. 듣는 입장에서야 조금 수월하긴 하겠으나 클래식을 포함한 다른 모든 음악들도 다 들어보려면 역시 한평생도 모자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음악은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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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12-05 09:38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음악하시는 분 아니셨나요? 전부터 음악에 관한 페이퍼를 많이 올려놓으셔서 그쪽 계통으로 일하시는 줄 알았다는...^^

저도 어렸을 때 피아노를 쳤었죠. 정말 엄마 때문에 쳤지 내가 좋아서 친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그래서 울기도 많이 울었죠. 투정도 많이 부리고. 결국 엄마는 그만두게 하셨는데 그때의 해방감이란...! 근데 나중에 약간 후회는 남더라구요.

글 잘 쓰셨네요. 읽어보고 싶었는데...추천하고 가요.^^

마태우스 2004-12-06 01:41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은 정말이지 다방면에 박식하십니다.... 호로비츠는 물론이고 국내에 잘 알려졌다는 러셀 셔먼도 전 처음 들어봐요....

드팀전 2004-12-06 09:29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저 음악하는 사람아닌데^^ 듣는거만 좋아해요.

마태우스님>그게...뭐 딱히 내세울만한 전문분야가 없어서 그런거 아니겠습니까.마태우스님이 클래식쪽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위에 나오는 사람들이 낯선건 당연하겠죠.저도 기냥 이름알고 몇개 cd들어본 정도죠.제가 미토콘드리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거나...뭐 그냥 그런거 아니겠습니까?^^

드팀전 2004-12-06 15:49   좋아요 0 | URL
참고로..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20세기 최고의 클래식 피아니스트 중에 한명입니다.지휘자 토스카니니의 사위이기도 하구요.연말에 최고의 피아니스트 뽑기 설문을 가끔 잡지에서 하는데...항상 1,2위에 오르는 사람이죠.

내가없는 이 안 2004-12-10 08:11   좋아요 0 | URL
얼마전 이 책을 저도 읽었는데 잘 정제된 님의 리뷰를 보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군요. ^^ 그런데 별을 세 개 주셨군요. 님 지적대로 몇몇 곳은 그의 사견이 좀 도드라졌지요.

mannerist 2004-12-10 23:07   좋아요 0 | URL
이거 한 번 읽어봐야겠는걸요. 보수적인 시각이 좀 거슬리지만 적당히 생각 더하고 빼어 받아들이면 괜찮을듯하네요. 그리고...하하... 바이엘 상/하권 떼는데 1년이 걸린 음악지진아 매너는 하농 뚱땅거리다가 손 놓은지 10년만에 작년부터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은 시험 준비하느라 손을 놓고있는 상태지만... 계속 해야죠.



그 말이 생각납니다. 피아노 전공하는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당연히(?) 혹은 압도적으로 리히테르지만 가장 부러워하는 피아니스트는 호로비츠. 라고 하더군요. 두 사람에 대한 재미있는 비교가 아닐까 하네요. =)

2004-12-10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분홍달 2004-12-14 14:39   좋아요 0 | URL
축하합니다~축하합니다!! 드팀전님의 성실한 리뷰가 언제나 맘에 듭니다^^다시 한번 축하요!!

달팽이 2004-12-14 20:51   좋아요 0 | URL
두드리는 건반위의 손가락이 듣는 이의 영혼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셔먼의 말대로 이 피아노 속에 자신의 인생과 우주를 담아내어야만 하는 작업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술이 예술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생과 우주로 이어지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내어야만 가능한 일일테니까요... 그래서 비로소 시공간을 초월하여 작곡자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을 통해서 청취자의 마음으로 전달하는 일이 진정으로 가능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마왕과 황금별 - 세계문학 8
미셸 투르니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종문화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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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의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부친 "마왕"을 듣고 있다.



가수가 마왕,아버지,아들,그리고 해설까지 1인 4역을 맡아서 노래를 해야한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수의 목소리 연출을 주의깊게 들어야  재미있는 곡이된다. 시의 내용과 연주는 음산하다.처음부터 시작되는 말발굽 소리.셋 잇단 음표의 연탄으로 추운겨울 벌판을 급하게 달려가는 아버지와 아이.말의 질주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마왕이 아이를 부른다. "귀여운 아가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니? 내가 너와 함께 놀아줄께. 수많은 꽃들이 가득하고 나의 어머니는 황금 가운을 많이 가지고 있단다."...    " 아버지, 아버지 마왕이 나에게 약속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



<마왕과 황금별>은 미셀 투르니에게게 1970년 공쿠르 상을 안겨준 소설이다. 투르니에의 이 소설은 문명과 원시,신성과 세속, 소유와 희생, 역사와 신화라는 대립각의 상관 관계를 2차세계 대전이라는 장을 통해 신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간다. 주인공 아벨 티포주는 어려서부터 소위 '왕따'를 당한다.하지만 그의 내적인 침잠은 운명적 예지 능력으로 발전하게 된다.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중학교 시절 친구 네스트로이다. 이 둘의 관계와 대화는 소설 전반에 걸쳐 큰 틀로 작용한다. 네스트로는 주술적 마력을 가진 친구이다. 네스트로가 티포주에게 알려준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는 이 소설에게 전이와 변용을 거치게 되지만 중심축으로서 기능한다. 성 크리스포트는 쉽게 말하자면 악당짓을 하다가 예수를 알게되고 자신을 희생하여 의를 이룬 사람이다.친구 네스트로는 왕따인 티포주를 무등태우며 성 크리스포트식 '짊어지기'의 의미를 인식한다.티포주는 네스트로가 학교에서 불타죽은 이후 십여년이 지나 그의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짊어진다' 의 의미를 육화한다.



"짊어진다" 는 것은 결국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 존재에 대한 무게감을 온전히 수용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투르니에는 이 "짊어진다"는 행위를 단순한 순교적 희생으로만 파악하고 있진 않은 듯 하다. "짊어진다"는 행위에 선행되는 것은 사실 육체에 대한 소유권이다. 타인의 육체에 장악력을 바탕으로 희생은 이루어진다. 티포주가 정비공장 시절 어린아이들을 응시하거나 사진을 찍는 행위 등은 관음증적인 소유욕을 의미한다. 그의 순수한 존재에 대한 과도한 애착은 후에 인간사냥꾼이란 변용된 형태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소설 사건의 진행과 공간의 변화가 역사적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형이 예상되는 티포주가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거나  비둘기 사육병에서 포로수용소로 옮겨진다거나 포로신분에 칼테보른의 모집담당관이 된다거나 하는..... 이 일련의 사건들은 우연에 가깝다. 하지만 티포주는 이것이 전부 상징적인 작용에 의한 운명의 전이라고 생각한다. 티포주가 가진 성향중에 하나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건들이나 현상을 계시나 상징,기호로 읽는 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 소설의 한글판 제목인 <마왕과 황금별>의 직접적인 의미는 이탄지에서 발굴된 미라이다. 티포주는 진흙속에서 수천년을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으며 시간과 함께 존재해온 미라의 존재에 존경을 품는다.이 마왕의 모습은 결국 소설 끝부문에서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로민텐 숲속의 아지트 '캐나다'가 아우슈비츠의 보물창고 '캐나다'로 의미가 전복되는 것등등 이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은  이중적 상징으로 볼 수 있다.하나는 그 사건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성이 신화에 영향을 받은 상징이다. 두번째는 소설 속에서 모든 사건들이 다음에 올 사건들에 대한 계시이며 또 다른 상징적 복선이 된다. 티포주의 날것에 대한 애착은 변용된 상징으로 오발사고로 죽은 어린아이의 사체에 대한 애정으로 전이된다.또 정비공장 시절 어린아이에 대한 애착은 나폴라의 집단 숙소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소년대원들에 대한 응시나 아이들과의 목욕을 통한 정화과정으로 바뀐다.



티포주가 식인귀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독일 사령관 괴링과의 사냥에서 이다. 이 소설 속에서 사슴은 존엄성을 가진 인간일 수 도 있고 또 문명일 수도 있다. 나치스의 마왕은 집단 학살과 도륙을 통해 이 문명파괴에 쾌락을 느낀다.티포주는 자신보다 더한 식인귀가 있음을 알고 놀란다. 티포주가 뒤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조력하게 되는 나치즘의 폭력성은 티포주를 정화시키기 위한 시련의 과정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예수의 순교에 있어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고통이 그런 역할을 하듯이 말이다. 티포주의 경우는 그 결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이 운명의 힘이란 불가역성에 의존한다.그는 자신이 칼테보른의 식인귀로 불리운다는 것을 소문을 통해 듣는다.괴테의 시에 나오는 영상이 그대로 인용된다.티포주는 아이들을 사냥하여 나치의 국가주의에 희생양을 만드는 제사장이 된 것이다. 이 소설이 단지 신화의 재해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소설의 양상을 띠는 것은 신화와 상징을 통한 파시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로민테른의 숲속에서 칼테보른 나폴라의 소년교육대까지 나치즘이 사회에 갖는 식인귀적인 속성이 상징적인 은유를 통해 드러난다.



나치즘에 간접적인 조응자로써 티포주의 정화과정은 에프라임이라는 한 소년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소년은  유대인으로  성경에 의한 예언적 힘을 믿는다.티포주는 이탄지의 마왕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자신의 '짊어지는'행위의 종착역이 거의 다 이르렀음을 안다. 소련군의 공격이 이어지고 티포주는 소년의 순진함이 피로 얼룩진 세상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라 믿으며 갈대숲의 마왕처럼 아이를 짊어진다.소설 속 티포주의 삶은 이 정화과정을 통해  예언이 현실화되는 자기충족성을 얻게된다. 



<마왕과 황금별> 책 뒷표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20세기 전쟁문학 가운데 부동의 위치에 선 최고 걸작. 보통 우리나라에서 '전쟁문학' 하면 리얼리즘 작품을 떠올린다.하지만 신화와 종교,현실과 환상이 이렇게 잘 직조된 작품을 만나고 보면 생각이 바뀐다.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아벨 티포주를 생각하면 이미 고인이 된 안소니 퀸이 그 역에 어울렷을 것 같다. 안소니 퀸이 또 다른 전쟁문학의 대표작 게오르규의 <25시>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일까?  안소니 퀸을 스크린에 불러올 방법은 이젠 없겠지만 머릿속에서 <마왕과 황금별>의 아벨 티포주와 <25시>의 주인공 모리츠의 마지막 웃음 장면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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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4-11-28 19:22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뮐러의 겨울나그네를 보며 와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들으며 혼자 감동했었는데, '마왕'은 고등학교때 음악시간에 테이프 틀어주던 기억과 몇년전인지, 그 커다란 흑인 소프라노 이름이;;; 제시 노먼이던가. 왔을때 들었던 것이 굉장히 인상깊게 남아 있네요.

분홍달 2004-11-30 15:35   좋아요 0 | URL
'짊어지다' 후우~~ 보따리를 짊어지는 건 순간을 견디는 것이지만 생명있는 존재에 대한, 역사에 대한 짊어짐은..... 신화와 종교, 현실과 환상의 직조! 저도 한번 만나봐야 겠네요

비로그인 2005-02-26 03:19   좋아요 0 | URL
마왕과 황금별.. 두번 읽게 만드는 책입니다. 식인귀가 성스러움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짊어지다'의 행위는 끊임없이 언근되고 변화하고 대두되죠. 이 책은 비단 문학이자 역사서일 뿐만 아니라, 저로 하여금 이면성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서이기도 합니다.. 전 지금 다시 한번 책의 첫장을 넘기렵니다.

ckshgnl 2008-03-15 09:28   좋아요 0 | URL
투르니에의'마왕과 황금별'이라는 책을 주문했다. 몇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책을 읽은 뒤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작가의 독특하고 넓은 세계와 2차대전과 그리고 인간심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박상륭의'죽음의 한연구'다음으로 인상적인 책이었다. 투르니에의'마왕과 황금별'이라는 책을 주문했다. 몇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그 책을 읽은 뒤 소장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작가의 독특하고 넓은 세계와 2차대전과 그리고 인간심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박상륭의'죽음의 한연구'다음으로 인상적인 책이었다.
 
마주치다 눈뜨다 - 인터뷰 한국사회 탐구
지승호 지음 / 그린비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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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칭찬부터 하기로 하자. 인터뷰만으로 구성된 책을 서점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다.몇년전 인문서적으로는 꽤나 인기를 끌었던 <춘아 춘아 옥단춘아..>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 책을 읽었다. <춘아 춘아..>가 출판사의 기획에서 나온 책이라면 <마주치다>는 저자 지승호의 개인적 노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물론 출판사의 물심양면의 지원이 있었겠지만.) 인터뷰란 것이 사실 매체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특히 인터뷰는 매체의 특성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TV매체 속 인터뷰를 예로 들어보자. TV 인터뷰는 사실상 이미지가 가장 큰 역할을 맡는다. 시간 제약이라는 것도 있고 화면상 비춰지는 인터뷰이의 느낌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조금 형식은 다르지만 TV토론이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적 TV토론인 케네디와 닉슨의 경우를 보자.맥루한이 말한 '쿨미디어'인 TV에서 닉슨에 비해 케네디가 우세를 보인건 당연하다.양김씨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경우도 TV란 매체적 속성을 보자면 '쿨'이 강한 김영삼이 유리하다.이처럼 TV가 이미지에 좌우되는 경향을 갖는데 비해 지면이나 인터넷 매체는 인터뷰의 내용성을 담보하는데 훨씬 유리한 매체이다. 저자 지승호는 인터뷰라는 장르가 자리잡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성의와 열정을 가지고 나름대로 선구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제 조금 쓴 소리를 해야할 시간이다. 우선 이 책에서 가장 흠잡을 곳은 '인터뷰이의 선정의 편재성'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터뷰이의 면면은 이렇다.김동춘,홍세화,한홍구,진중권,정욱식,손석희 등등... 나름대로 우리사회에서 진보주의자들의 선두에서 필명을 날리고 계신분들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의 고민과 현 시국을 바라보는 진보의 목소리를 듣는데 이 책을 쓴 목적이 있다면 나름대로 성공적이다.하지만 다분히 개인적인 감상인데 좀 지루하다는 느낌이다.오히려 수구꼴통이라는 조갑제,정형근,김용갑씨등의 인터뷰가 있었으면 훨씬 다이나믹하고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인터뷰이 선정에 있어서 좀 지루하게 된 면이 없지 않다. 개혁적인 성향의 사람들이라면 이미 위 인터뷰이들의 책들을 한두권쯤은 읽었을 것이다. 이 내용들이 동어반복적으로 각기 다른 인터뷰이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몇몇 말들을 생각나는 데로 적어보면 이렇다. 해방이후 진보공간이 설 자리가 없었다. 한국전쟁과 개발독재시기를 거치며 빨갱이컴플렉스가 국민의 의식속에 내재화 되었다.우리가 저지른 국가폭력에 대해 인정하고 자성해야한다.등등등.... 사실 이러한 내용에 관심이 없는 국민의 대다수일 지도 모른다.그런 차원에서라면 끊임없이 외쳐야하는 것이 사실이고 또 당연하다.하지만 책 안에서 여러화자를 통해 반복되는 이이야기들은 좀 정리했어도 괜찮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의 책을 몇권씩 읽었음에도 이 책을 또 보는 이유는 단지 학습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이들의 비판적인 생각에 동의하고 100% 공감함에도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듣는 것은 지루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한홍구와 정욱식이 말한 '진보진영의 안보,국방 전문성 결여'이다.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이렇게 된 데는 역사적인 맥락이 있다. 독재세력에 빨갱이로 몰리던 집단이 국방이니 안보니 하는 분야에 접근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 국내적인 민주화 문제가 발등의 불이였기에 대외적인 시야를 확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조속한 시일내에 진보적인 안보개념과 국방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전문 인력충원이나 장기적으로 인력풀을 동원해야만 하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가장 재미없는 인터뷰는 손석희였다. 가끔 출근길에 그의 방송을 듣는데 그때만다 '이사람 딱 자기 할 것만 하는군.정나미 없네.' 이런 생각을 한다.인터뷰에서도 그랬다.방송진행자로써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무기가 인터뷰이로써는 최악이 된 듯하다. 방송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위치가 스스로의 대외적 의식이나 이미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자기일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역시 투표하러 가면 누군가 찍어야할 텐데 그 속내를 밝힐 수 없는 사람의 심정도 참 답답하겠다는 생각은 든다.어쨋거나 손석희 인터뷰의 대부분은 " 제 위치에서 그부분에 대해서 뭐라할 수 없군요"가 전체적이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늘 분쟁의 소지가 되는 진중권에 대해 한마디 해야겠다. 그의 발언이 인신공격적이고 그의 태도가 오만한 것은 사실이다.김어준이 '자기 무오류성'에 빠졌다고 본 것도 어느정도 인정해야한다. 본인은 본인의 글쓰기를 도발하기 위한 글쓰기라고 규정했다.그렇다면 다분히 공격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나온 인터뷰이 중 진중권의 사회적 위치가 가장 자유롭다. 겸임교수가 직함의 전부인 듯한데...당연히 사회적 위치가 가져다 주는 의식성에서 자유롭다는 뜻이다. 이것 저것 눈치 볼 것도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진중권의 도발적 글쓰기는 그의 전술인 듯하다.논리적으로 반론펴라고 하면서 자신의 공격에 인신공격적인 양념을 쳐놓는다.받아 들이는 입장에서는 양념을 제거하는게 급선무가 되다보니 늘 지면은 부족하고 시간도 모자란다.나 역시 진중권이  이제는 전술적 변화를 주기를 기대한다.하지만 그의 지적들은 충분히 유효하고 귀담아 들을게 많이 있다.그의 과도한 NL에 비판 역시 문제는 있지만 개인적으론 동의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또 이 책에도 실린 유시민 비판에는 거의 99% 동의한다.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보여준 유시민의 정치적 수완들은 욕을 먹어야한다.그 특유의 말빨과 상황논리에 수많은 비판적 지지자들이 힘을 얻었고 또 다른 사람을 설득했다.그건 옳지 않았다.앞으로도...

앞으로 이런 인터뷰 책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하지만 좀 더 다양한 층의 다양한 목소리가 섞여있는 다이나믹한 인터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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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4-11-09 13: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지승호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책을 내고 나면 한동안은 좀 뿌듯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늘

아쉬운 부분만 드러나게 되더군요. 지적하신 내용 역시 많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수구꼴통진영이라고 해야하나요? ^^)의 인터뷰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하다보니 제가 진보

진영분들의 인터뷰를 쭉 해와서 그렇게 찍혀(?) 버린 부분도 있는 것 같구요.

다만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좀 더 다양한 계층의 분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겠네요. 그래도 또 한가지 저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쉽지 않은 여건에서 꽤 다양한 계층의 인터뷰이들을 만났습니다. 그

점 이해해주시구요. 여러가지 약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후한 점수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내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드팀전 2004-11-09 17:25   좋아요 0 | URL
시비돌이님> 어허라...저자께서 친히 글을 써주시다니 영광이며 동시에 부끄럽군요.책을 내시고 다수의 대중에게 평가를 받아야하는 지승호님의 입장은 더욱 그러하겠지요.제 평가는 다분히 개인적인거죠.^^ 제가 위의 분들의 책을 즐겨읽는 입장이다 보니 뭔가 더 새로운 이야기는 없나 하는 마음에서 생긴 아쉬움입니다. 그 내용이나 인터뷰의 구성이 모자란다는 뜻은 아니니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구요.이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셔서 신문 같은데 이름걸고 하는 인터뷰 칼럼 같은 것도 하시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건투......

마태우스 2004-11-09 21:46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님이 댓글의 마지막에 쓴 것처럼 지승호님이 일가를 이루셔서 인터뷰 칼럼도 쓰시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요. 진중권에 대해서 님과 제가 의견이 다른 듯하지만,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건 같다고 생각합니다.
 
선방일기
지허 스님 지음 / 여시아문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4년전 겨울이었다.함께 일하던 젊은 친구가 그만 둔다고 술 한 잔 사달라고 했다.독립영화 공부하는 친구였다. 나름대로 생각도 깊고 성실함도 좋아보였다.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결국 12시가 넘어서 회사 앞 포장마차로 차가운 손을 부비며 들어갔다.둘다 안경을 쓰고 있어서 들어가자 마자 안개천국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홍합탕을 하나 시켜 놓고 그 친구 이야길 들었다. 결론은 이제는 영화일을 하러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겠다는 것이다. 난 술 잔을 권하며 '좋은 영화 만들어서 나중에 영화관 스크롤에 네 이름 보자...' 뭐 이랬던 것 같다. 한 참 주거나 받거니 하던 중 그 친구가 코트 주머니에서 얇은 책 한권을 꺼냈다. 오징어만한 크기에 오징어 보다 조금 더 두꺼운 책이었다. 책 표지에도 요란한 수식어 하나 없이 그냥 <선방일기>였다. 

 우연히 책장을 돌아보다 이 작은 책을 발견하고 다시금 뒤적였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저자인 지허스님이 몸을 맡기신 곳이 상원사 선방이었다. 올 여름 휴가를 다녀오면서 "추운 겨울의 이곳은 또 얼마나 고적하고 아름다울까?" 혼자 떠올렸던 말이 생각났다. 이 책과의 인연이 그렇고 상원사와의 인연이 그렇고 세상사의 많은 일들이 결국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느낀다.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던 그 젊은 친구의 이름도 책 앞에 써있다. 여자이름 처럼 보이지만 "해원"이었다. 별로 의심없이 썼었는데 이렇게 바라보니 불교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이름이다. 그 친구는 좋은 인연을 많나서 또 좋은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그렇게 되길 바란다.

이 책은 이미 30여년전에 쓰여진 책이다.73년 신동아 논픽션 부문 수상작이라고 한다.지허스님은 서울대를 다니다 출가한 분이라고 하는데 그 외 기록은 없다. 책은 스님이 상원사 선방으로 향하면서 시작된다. 상원사 선방에서 신출나기로써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이야기들과 동안거 동안의 이야기,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맹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그리고 해제날 모였던 스님들이 자신의 길을 따라 떠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요즘은 <인간극장>이라든가 <vj특공대> 하는 식으로 휴먼 다큐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스님들의 동안거도 많이 소개되었다.수행하는 장면 뿐만아니라 동안거동안의 일상적인 모습도 화면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하지만 화면으로 느낄 수 없는 삶의 속닥함들이 있지 않은가. 지허스님의 일기 형식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결제일에 들어가며 스님은 선방생활과 병영생활을 비교한다.그만큼 규율이 엄격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선방의 규율에 따라 스님들은 자신의 업무를 담당한다. <선방일기>를 구성하고 있는 가장 큰 두 축은 바로 수도승으로써 진리를 따라가는 일과 또 인간으로써 깊은 산속에서의 생활이다.지허스님은 땔감준비하는 부목이었단다. 이 책에 보면 스님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많이 나온다.선승이 일년에 사용하는 생활비라든지 선방에서의 자리를 둔 위계, 다양한 군상의 스님들의 모습. 예를 들자면 늦게 출가한 스님 '늦깨기'와 어린 나이에 출가한 '올깨기'스님의 작은 갈등같은 것들이다. 세상사의 고통을 겪을 만큼 겪은 '늦깨기'스님과 어려서부터 절밥을 먹은 '올깨기'스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이 다를 것이다.처음에는 출가후배인 스님들이 어려워하다가 좀 지나면 '올깨기'들에게 대든다. '절밥만 축낸 올깨기'라고 놀리는 것이다.스님들의 세계에서뿐 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지허스님은 서로 견성하자고 독려하는 차원의 것이 아니냐며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외에도 스님들의 일상은 아주 재미있다. 원주스님 몰래 뒷방에서 감자구이 동호회를 연다거나 좌선으로 인해 신경통을 앓는 스님이 많다거나 하는 것이다.또 연륜이 있는 상방쪽 스님들의 좌선과 하방쪽 스님들의 좌선 풍경도 재미있다.당연히 후자들은 비비꼬고 졸고 하다가 죽비세례를 받지 않겠는가. 그렇다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선승의 수행에서 오는 자기와의 싸움의 치열함,그리고 고독감같은 것들도 담담하게 쓰여있다. 단식스님의 위선을 통해 머리만 커버린 스님들이 가져오는 한계도 보여준다. 지허스님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듯 균형감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자신과 스님들의 생활과 고민을 하나씩 적어나갔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눈 앞에 강원도 깊은 산속의 설경이 그득해진다. 스님들이 찾고자 하는 진리가 우리 일상에서도 그대로 현현되길 바란다. 부처가 예수가 마호메트가 ...또 기타 선지자들이 그렇게 외쳤건만 강원도 산속의 평화가 세상에는 없다. 언제나 깊은 평화를 인류가 맛볼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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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1-07 09:36   좋아요 0 | URL
처음 보는 책인데 읽어볼랍니다.

옛 한지책을 제본한 것 같은 장정도 마음에 듭니다.

물론 무늬만 그렇겠죠?

마녀물고기 2004-11-07 15:58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떠오르는 말들, 생각들은 그저 가슴에나 묻고 갈게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

내가없는 이 안 2004-11-08 03:06   좋아요 0 | URL
전 지허스님의 이 글을 책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책도 너무 아담하고 고풍스러우니 소유하고 싶게 만든 듯 보이네요. 세상에 없다는 강원도 산골의 평화... 여운 있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파란여우 2004-11-08 16:02   좋아요 0 | URL
책의 심플함이 좋습니다. 나이들면서 단순함이 제일 아름답게 보여 집니다. 이 책 님 덕분에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리뷰는 언제봐도 멋지십니다.^^

드팀전 2004-11-08 16:47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한지책 제본한것 같은 표지.아...그 단어를 쓰고 싶었는데..그렇게 짧은 단어가 생각이 안나더라구요.^^ 저의 무심함에도 매번 댓글을 달아주시는 마음에 세번 꾸벅 ..꾸벅...꾸벅...인사드립니다.

마녀물고기님> 요즘 ...안보이시더니...전화기 그림으로 돌아오셨군요.그림 좋아요.

이안님>처음 인사드립니다.님 서재를 둘러 봤는데...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열하일기><검은꽃>은 저도 리뷰를 써서 그랬는지 더 눈에 들어오더군요.자주 뵈요.

파란여우님>책들이 돌고 돌아 누군가에게 가는 것도 또 좋은 연이 닿아그런거겠지요.전공노 때문에 시끄러운데 ...(님의 생각은 모르겠으나) ....역사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유연히 결론지어졌으면 합니다.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 성공회대학교 NGO총서 9
조희연 지음 / 아르케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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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은 진짜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밥벌이의 어려움이란 이렇듯 가끔씩 광풍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허겁지겁 해결하며 또 내일을 걱정해야하는 일 일것이다. 그나마 장기 실업상태에 계신 분들에 비하면 쌓여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고민일지 모른다. '새벽별 보기 운동' 을 시작한지 한 달 쯤 지나면서 나름대로 여력이 생긴다. 뭐든 첫단추 끼우기가 가장 어렵고 수고로운 법이다.그 자당한 명제의 체험적인 경험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밥벌이의 수고로움은 자연스럽게 책읽는 사적 시간을 앗아갔다.넘기다만 책장이 마치 강건너 버려 두고온 자식처럼 눈에 밟혔다.하지만 어쩔소냐? 책장에 수면제를 발라 놓은 듯 한두장을 넘기면 졸음이 먼저 나를 당기는 것을. 책 첫장에 오픈기념일을 써놓은 시점으로 부터 무려 한달을 넘겨버렸다. 비질비질 거리면서도 어제 이책을 다 읽고 앓든 이 빠진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조희연 교수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5-6년전 <한국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이란 책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았다. 진보적인 관점에서 한국정치의 성격과 사회운동의 향방을 짚어준 책으로 기억한다. 우리 정치를 바로보는 시점에 개인적 정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시의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이후 한국 정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며 판도변화를 겪었다.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응전하고 자극이 되어준 사회운동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긴 책제목을 가진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에서 정상성에 대한 저항으로> 이 책은 참여정부의 출범을 기점으로 해방이후 우리 사회의 성격과 각 단계별 사회운동의 성격, 그리고 저자가 제2단계 민주화 시기로 규정한 참여정부 이후 시민운동/민중운동의 과제를 살펴본다.

저자는 87년 6월 항쟁을 우리 정치,사회 변화의 가장 큰 전환점으로 파악한다. 반독재 투쟁의 3가지 큰 줄기였던 자유주의적 정당정치와 자유주의적 사회운동, 민중운동이 거대한 적에 맞서 연합투쟁에 돌입한다. 6월 항쟁의 원인이자 결과로서 시민사회운동은 87년 이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다.이후 우리사회의 정치지체 현상은 시민사회운동에 대한 과잉대표성을 부여한다. 초기 시민단체들의 중산층 지향의식과 보수언론의 지지는 민중운동을 국지적이고 주변적인 상황으로 몰고갔다. 이후 시민단체들은 분화와 다양성을 확보하며 2000년 총선의 '낙천낙선운동'이라는 세계시민운동사에 남을 거대한 역량을 과시한다.하지만 '낙천낙선운동'에서도 드러났던 민중운동과의 대립구도는 여전히 존재했다.이후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저자는 시민운동이 정부의 파트너가 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시민운동 차원에서의 변화를 요구하고있다. 시민운동이 개량주의적 개혁에서 침체해서는 다양하게 부각되는 문제에 기민한 대처를 할 수 없고 정치권의 '변형주의'적 전략에 인적 배급원이 될 뿐이라고 주장한다. 시민운동이 현단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이념노선을 조희연교수는 '급진적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선 문화적,생활적 체계에서의 보수화를 극복하고 진보성을 확보해야함을 주장한다.또 민주화이후 확산된 '평등성'의 급진적으로 확보를 위한 노력을 요구한다. 책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풀란차스의 말을 인용한 그는 '비정상성'에 대한 형식적인 '정상성'확보는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파악하는 것이다.물론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완전한 정상국가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바는 아니다.진보의 깃발이 현재 이루어온 '정상성'  영역에 도전하고 또 그 그림자가 되는 부분까지 드리워져야한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도 '근대성을 완성하지도 못했는데 어쩌구..' 하는 논란은 다분히 단계론적이며 발전의  다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본다.

조희연 교수의 90년대 시민운동의 한계에 대한 가장 큰 지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분이다. 책의 두번째 장은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쟁점들과 시민운동,민중운동 영역의 대응에  대해 할애한다.이를 위해 세계화의 성격과 세계화에 반대하는 반 세계화운동의 이념적 논거를 정리한다. 반세계화의 움직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간단하게 알기를 원한다면 이 장은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민주정부들이 상황논리 또는 내재적 개혁원리를 내세우며 저항없이 따라가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이부분에 대해서는 시민운동에 대해서도 현재 신자유주의에 대한 현상황의 수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저자는  범지구적인 반세계화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여러면에서 산만해지기 쉬운 정치,시민사회의 변화과정와 성격을 쉽게 정리해 놓았다.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변화를 요구하고 또 세계화의 문제와 쟁점들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3장에서는 중복되는 부분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정치개혁과 낙천낙선운동에 대한 평가,그리고 언론개혁에 대한 전술적인 제안- 안티조선의 도발적 문제 제기의 부분을 인정하면서 향후 대중성을 얻기 위한 전술변화요구-등도 다루고 있다.일관된 시각을 가지고 87년 이후를 정리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하지만 그가 제시하고 있는 대안이란것은 좀 피상적인 수준이다.물론 한 저자에게 모든 대안을 제시하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폭력이고 꼭 욿은일은 아니다.하지만 조희연교수가 말하고 있는 시민운동과 민중운동의 상호협력,또는 급진적 민주주의의 개념등은 모호하다. 반세계화를 위한 반워싱턴컨센서스라는 것도 말그대로 '의식개혁과 계몽'이라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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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10-26 13:25   좋아요 0 | URL
한국민주주의와 사회운동이란 책 말이죠, 읽으려고 산지 벌써 5년이 지나 버렸군요. 대학 교과서처럼 생겨서 영 당기지가 않아서요. 비싸게 샀으니 읽긴 읽어야 할텐데요... 그걸 읽고나서 이 책에 도전해 보렵니다. 님의 리뷰를 읽고 신자유주의의 수용을 반대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느냐, 그게 횡적 연대로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겨납니다...

드팀전 2004-10-26 13:4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저도 역시 그게 좀 의문이 됩니다.저자 역시 신자유주의의라는 세계화에 대해 전면적 투쟁을 주장하는 건 아닌듯합니다.일단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규제-토빈세 등-를 위한 노력을 주장합니다.그런데 님의 말씀 처럼 토빈세등도 국민경제 수준에서는 그 외압을 감당해내기 어려울텐데...이런 실천을 위한 횡적연대에 대해 의문이 됩니다.다양한 층위의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있어왔는데 이것을 인적,물적 토대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하지만 비록 예전보다는 활성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아직 정책 변화이 이르기까지 압력을 가할 힘을 가지진 못했다고 보입니다.일단은 신자유주의가 대세이므로 어쩔수없지 않느냐는 (TINA증후군이라 하더군요.There is no alternative)주의에 대한 비판과 자극이 일상영역에서 우선시 되어야 할 듯 합니다.

마태우스 2004-10-26 17:58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상세히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티나 증후군을 저부터 깨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