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중이신 시아버지와 다리가 몹시 불편한 시부모님과 함께 고양 꽃박람회를 찾았다. 매주 월요일 항암주사를 맞으려 일산 국립 암센터를 다녀가는데 진찰이 일찍 끝났김에 바람 좀 쐬자고 말씀드렸다. 두 분 모두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다리가 많이 불편하신 관계로 휠체어를 밀어드리며 2시간여의 꽃 여행을 했다. 아버님은 태양님이, 어머니는 내가 밀었다. 어머니께서는 선물이라며 백합 구근 4개를 내미셨다.

"백합이 흐드러지게 피면 향기가 집안에 가득해! 얼마나 좋은지 몰라~"

 

  집에 돌아와 백합구근을 심었다. 흙을 잘못 선택해 완전히 진흙이 되어버렸다. 백합이 약해서 진흙을 뚫고 나오지 못할까봐 걱정이었다. 그러나 백합이 힘차게 진흙을 뚫고 나왔다. 어찌나 감격스럽던지. 장하다 장하다를 몇번이나 말해주었다.

 

 

  한 화분에 4개의 구근을 심은 것이 잘못한 일이었나보다. 잘 자라는가 싶더니 2개의 줄기가 자꾸 휘어지고 제대로 서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이내 씩씩하게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울어졌던 줄기의 그 꽃봉오리들이 자꾸 아래로 고개를 숙인다. 저러다 죽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두둥!!!!!

 꽃이 활짝 피었다. 그리고 잔뜩 고개를 숙였던 꽃봉오리들도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솔솔 백합향이 퍼지고 있다. 백합향에 취해 죽을 수도 있다는데

언제가 그렇게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

지금은 그렇게 죽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잘 자라줌에 감사하고 나 또한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한 동안 우리집에서는 선인장도 말라죽는다며 우리집은 아니 나는 식물 키우는 능력이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화분 선물을 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씨앗을 심어 봉숭아에 꽃 핀 것을 봤고,  재작년에 선물 받은 산세베리아는 아직 잘 살고 있으며, 작년 스승의 날 받은 장미베고니아가 올해도 살아서 꽃을 피웠다.

농작물이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했던가!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자 선인장도 죽이던 내가 이렇게 많은 꽃들을 집안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비단 꽃 뿐이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나의 가족들, 제자들, 이웃들, 친구들!

물주고 자주 들여다봐주면 이리 예쁘게 꽃 틔우며 세상에 좋은 향기 내뿜으며 살겠지.

 

오늘밤은 백합향에 완전히 취해볼란다~~

 

참! 어머니께 이 기쁜 소식 알려드려야겠다! 오셔서 백합향에 취해 보시라고 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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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년 전 달팽이 식당을 읽고 이런 식당이 있었으면 했다. 나의 마음도 읽어주고 하루에 딱 한 팀만을 위해 정성껏 요리를 준비해주는 식당! 그 팀을 손님으로 받기 위해 먼저 무엇을 위한 상차림인지 특별히원하는 음식이 있는지 묻고 얘기 나누는 그런 식당!

 

그런데 그런 식당이 있었다. 과거형이다. 대학로에 한정식집 "담아" 라는 곳이 있었는데 하루에 딱 두팀만 예약으로 이뤄졌다. 점심팀과 저녁팀. 4~8명 밖에 받을 수 없는 테이블이 딱! 하나인 식당이었다.

미리 전화를 걸어 원하는 음식을 얘기하고 재료비와 수고비등을 고려하여 최대한 원하는 음식을 해준다. 이 요리를 해주는 요리사는 자신을 향연가라 불렀다.

"즐겁게 음식을 만드는 마음을 지닌 사람" 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과거형으로 말한 까닭은 그 식당이 없어져서가 아니라 딱 두팀만 받던 그 모습은 사라져서 이다.

현재는 조금 자리가 넓은 곳으로 옮겨 테이블도 꽤 되고 20여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예약제로 이뤄지며 그 팀의 식성과 행사의 성격을 고려해 음식을 만들어준다.

작년 장사익 선생님께서 생일 잔치를 지인들과 그곳에서 한 모양이다.

장사익 선생님께서 직접 써서 향연가에게 주신 "꽃" 이라는 글귀가 꽃같이 곱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dama_s>

 

이 마음 이대로 한팀 한팀 정성껏 대하는 그녀, 향연가의 마음이 오래도록 지속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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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 독자였던 보르헤스는 때로는 줄거리와 백과사전의 항목만으로 만족했고

[피네간의 경야]를 끝까지 읽은적이 없으면서도 조이스가 언어학에 남긴 기념비적 업적을

주제로 강의를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의 서재에는 우연과 무질서의 법칙에 대한 믿음이 반영되어 있었다.

 

                                                                                     - p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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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지인들과 함께 수연산방을 찾았다.

수연산방은 상허 이태준 선생의 고택으로 철원의 생가를 그대로 뜯어다가 지었다고 한다.

현재는 외종손녀가 찻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단체 손님이 들어갈 수 있는 처마밑 작은 방으로 들어가 오미자, 미숫가루, 묘한 아이스커피, 팥빙수까지 신나게 먹고 수다를 떨던 중 책꽂이에서 책 한권을 발견했다.

 

 

 

 

사진에 보이는 책꽂이에서 발견한 책은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이라는책이다. 책 표지 안쪽을 살펴보니 망구엘이 열여섯살 때  작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보르헤스가 손님으로 찾아와 자기집에 와서 책을 읽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망구엘이 승락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이다. 책 읽어주기는 4년동안 계속됐고 망구엘은  성장했다. 그리고 현재의 망구엘이 되었다.

 

문득 미술관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시절 건축가 고 정지영 선생님이 지인과의 약속이 잘못되어 어찌할바를 몰라하시다가 나를 보고 핸드폰을 빌려달라던 기억이 났다. "내가 밟는 곳이 다 내 집이다" 라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던 선생님을 그렇게 만나고 얼마나 설레였던가... 나는 그것으로 인연이 끝났고 선생님은 이내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망구엘과 보르헤스는 그렇지 않았다.

 

우연히 만난 책 한권이 나의 수많은 우연한 만남들을 기억나게 했고, 앞으로 올 우연한 만남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든 하면 6개월이 고비일정도로 끈기가 부족하다.

망구엘과 보르헤스는 4년, 물만두 언니의 리뷰는 10년, 김지은의 아나운서 경력은 20년, 박혜란의 여성학 공부는 27년...

 

우연을 가장한 인연으로 나의 모든 만남에 감사하며 이제 나눠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만남으로 뭘 얻을까가 아니라 나의 제자들과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을 허투루 보내지 말고 소중하게 아껴주며 사랑해줘야겠다.

그러려면 내가 좀 더 자라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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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도서관이 들어선지 언 5년째가 되어가는데 생각보다 자주 가보질 못하고 있다.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세수도 안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친구가 애증(?)하는 허연님의 책을 검색하고 책들을 살펴보던 중 "물만두의 추리책방"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파란여우님의 깐깐한 독서본능을 봤을 때 만큼 가슴이 두근 거렸다. 어머나 이분도 책을 내셨구나!

멋지다 멋져!!

 

그런데...

책 표지를 넘기고 마음이 너무 먹먹해졌다. 2010년 12월 13일 영원이 잠들었다는 지은이 소개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창 서재에 들락거리던 시절 물만두님은 주간리뷰의 달인에 윗자리를 항상 차지고 계셨다.

나는 어려워하는 추리소설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그녀가 너무 부러웠었다. 있어보였다 ^^;;

그래서 그녀를 따라 몇편 읽어보려고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

그녀가 추리소설 입문으로 소개해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여전히 마무리 되지 못한채 책꽂이에서 먼지가 푹푹....

 

오늘 그녀의 때늦은 부고장을 접하면서 미안해졌다. 그녀의 추천을 아직도 실천하지 못했음이...

그녀가 가장 아파했을 그 시간들에 위로도 기도도 해주지 못했음이...

서재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지난 시간 허투루 보냈던 시간들이 후회스러워졌다.

 

정말 하늘의 별처럼 그녀의 삶이 반짝였노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녀의 별 다섯 인생을 읽으며 그녀와 함께 했던 인생의 한 순간을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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