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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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은 나에게 항상 물음표같은 작가다. 한번만 읽어서는 작품에 담긴 심연을 잘 찾기 어렵다. 다시 읽어내려가는 일이 되게 많은데, 이번 단편집도 담긴 의미를 찾기 어려운 것들이 몇 편 있었다. 특히 동명의 단편인 `파씨의 입문`은 더더욱.. 무엇일까. 파도와 파씨와 처절한 그들의 일상에 담긴 의미는.

묘씨생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디디의 우산과 양산 펴기, 파씨의 입문은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옹기전도 좋았지만, 이 아이의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인가 싶을 정도로 왔다갔다해서 아쉬웠다.

근데 북플은 왜 컴퓨터로는 쓸 수 없을까 밑줄 긋다가 눈빠질뻔....

외롭고 두려운 것도 관성이 되었다.
관성적으로 외롭고 두렵다.
외롭고 두렵고 무엇보다도 지루하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진다.
어디든 충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삼년째 떨어지고 있으니 슬슬 어딘가 충돌해도 좋을 것이다. 부서지더라도 충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엔 뭘 할까 뭐라고 말할까 고마워요 정도면 친절할까. 친절하게 충돌해주어서 고마워요. 아무에게도 아무곳에도 닿지 못하고 떨어져내린다. 언젠가는 어딘가에 닿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더라도 이렇게 떨어져서야 가망이 없다는 낙담뿐이다. 누가 누가 누가 없어요 나와 나와 나와 충돌해줘.
- <낙하하다>

꼬마야.
네.
그 항아리, 끔찍하게도 생겼구나. 너 그런 몰골의 항아리 같은 것만 유심히 보고 있다가는 뒤처진다. 사람이 매사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못쓰게 된다. 못쓰는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건지 너 아냐. 변변한 직장도 없어 돈도 못 벌고 비웃음당하고 사람 구실 못해 친척들에게 무시당한다. 너 그런 어른 되고 싶으냐. 항아리 같은 것을 따지면서 그렇게 살고 싶으냐. 그런 것 말고도 좋은 게 얼마나 많은 세상이냐. 내가 너만한 나이였을 때는 온갖 난리에 살기가 어려웠어도 지금은 말이다, 터널도 파고 지하철도 뚫고 고속도로도 만들어서 이 나라 벌써 선진국 아니냐. 이 좋은 곳에서 좋은 것만 보고 살아도 인생이 모자라거늘 하물며 꼬마가 말이다, 그런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어디 내버려라. (96-97)

남자는 삽을 바닥에서 뽑아내 그걸 끌먀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았다.
어쨌든 옹기는 맡기고 꼬맹인 가라. 우리가 묻어주마. 우린 이 일을 어제도 했고 오늘도 했으니 내일도 할 거다. 전문가들이란 말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묻을 수 있다. 자리가 있다. 언제나 있다. 어떻게 있느냐. 지반이 가라앉는다. 옹기란 무겁잖아. 덕분에 우린 계속 묻는다. 어제도 묻고 오늘도 묻고 내일도 묻고. 그렇게 묻어서 뭐 난리난 적 있냐. 이렇게 묻고도 세상은 멀쩡하다. 당장 어떻게 되는 일 없다.
어떠냐, 하며 그가 뒤쪽에서 내 어깨를 잡았다.
이제 그거 묻을까.(100)
- <옹기전>

인간도 고양이 못지않게 우는 경우가 다반사인데다가 이 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생물이 인간이라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억울해 땅을 칠 노릇인 것이다. 도무지 이 몸이란 짐승 역시 먹고사는 것을 제일로 여기는 처지, 먹고사는 일로 따지자면 어느 짐승의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지는 누구도 간단히 말할 수 없는데도, 자기들만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듯 아무 데나 눈을 흘기는 인간들이 승하는 세계란 단지 시끄럽고 거칠 뿐이니 완파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114-115)

털을 곤두세우고 인간으로서의 노인의 얼굴을 지켜보았다. 웃는다 운다 애석하다 통쾌하다 어느 것도 아니게 다만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고 있자니 이 몸과 같은 묘씨생보다도 못한 일생으로서의 인생, 바로 그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서 더욱 그랬는지도 몰랐다.(120)

다시 산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또 한 번의 일생을 두려워하고 있다. 너무 많은 갓들이 그들의 손에 달렸으니 목숨조차도 내 것 같지 않은 이런 세상은 두 번도 성가시다. 일생일사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다른 짐승들과는 다르게 눈물 흘린다. 다시 일생이 어떨 것인가 내일이라도 이 장막 안에 나타날 인간은 또 어떨 곳인가 생각하며 어디까지나 비천하게 걱정하고 있다.
묘생 십오년, 이름은 몸.
일생이 곧 끝날 것이다. (129)
- <묘씨생>

어쨌든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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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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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게 된 건 사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를 읽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읽다보니 다른 작품에 더 눈이 많이 갔다. 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들이었지만..
대상 수상작인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는 금방 읽히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 그러고나서야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인 것 같지는 않고, 뭔가 더 깊숙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 찜찜함이 있다. 결국 진심은 그 안에 포함되고 싶지 않았던 맹금류의 시선, 그것이 전부일까...
작품을 읽으면서 눈길을 끌었던 건 윤이형의 `쿤의 여행`과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였다. `쿤의 여행`을 읽으면서 결국 나도 나 자신의 쿤에게 업혀 살고 있진 않은가하는 생각을 했다. 상상력이 기발하면서도 냉철했다고나 할까... `쇼코의 미소`는 요즘에 보기 힘든 전형적인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독특한 기법도 없고, 기발한 상상력도 없다. 오직 이야기와 인물이 가진 힘으로 이런 흡인력을 끄는 소설을 쓰다니.. 게다가 이게 등단작이라니.. 가장 긴 분량이었는데도 지루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읽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더 쓸까..
다 읽고 다시 쭉 훑으면서, 상을 받은 일곱 명의 작가가 모두 여성이라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남녀를 가리는 건 아니지만, 문학상 작품집에 여성작가만 있는 걸 본 게 처음이라서..(하긴 남성작가만 있는 경우도 본 적이 없다) 현재 문단의 흐름이 반영된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최은영, 쇼코의 미소 (p.271)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최은영, 쇼코의 미소(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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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쫓기면서 읽은 까닭도 있겠으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찾기가 힘들었다. 황석영 단편전집에서 `타인에게 말 걸기`를 처음 읽고 감탄해서 읽게 된 두 번째 작품인데, 생각보다 실망했다고 할까.. 다시 한 번 읽어 봐야겠지만, 읽고 있는 것만 여러 권이라 언제쯤 다시 보게 될지.. 그때는 단편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

커피를 마시며 화집을 뒤적이다가 한 문장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이 지상에서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면 비바람치는 밤하늘을 떠돌더라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있어야 한다. 코코슈카가 <바람의 신부>에 붙인 글이었다. 아마 이 구절을 적어 보냈다면 지영 언니는 카드을 돌려보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안나는 생각했다. 고독한 사람에 대해서 사람들은 늘 오해한다. 그들은 강하지도 않고 메마르지도 않았으며 혼자 있기를 전혀 좋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해도 사람은 늘 자기만의 고독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코코슈카의 잠 못 드는 연인처럼 서로를 껴안은 채 각기 푸른 파도의 폭풍우 속을 떠내려간다.
-은희경,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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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전집이 집에 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양장이 아닌 것도 좋고.. 책장에 꽂아놓고 보니 뭔가 뿌듯하고 그렇다. 원래 이런 전집을 사면 순서대로 읽는 것이 습관이었는데, 이번에는 아무거나 들어서 보고 싶은 단편을 골라 읽는다. 제일 먼저 읽은게 황정은의 묘씨생이었고,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명절을 쇠고 서울로 올라오면서 열 권 중 9권만 가지고 와서 하나씩 읽고있다. 그냥 시간 날 때 하나씩 읽으면서, 이 전집이 내가 여태껏 읽지 않았던 작가들의 작품에 호기심을 갖게하는 촉매제가 되는 것 같다. 성석제나 은희경, 한강.. 이런 사람들. 읽어야지, 읽어봐야지하면서 한 권도 찾아보지 않았던 그런 작가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욕구를 다시 피워주는 것 같아 고맙고,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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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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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얼마나 굴곡진 삶을 살고, 얼마나 예민한 감정을 가지고 있길래 일상을 이렇게 쓸까. 오래 전부터 언니네이발관의 팬으로서 노래를 듣고 있지만, 그의 글도 노래 못지 않게 청승맞다. 하지만 경국 내가 그의 노래를 계속 듣는 것도 그 청승맞음 때문이니까 마냥 싫지만은 않다. 그냥 가끔 ˝아, 진짜 청승맞다..˝하고 생각할 뿐.
이 사람은 도대체 왜 이럴까하고 공감할 수 없는 꼭지의 글도 더러 있었지만, 처량하고 감성적인 느낌에 괜히 내 감정에 예민해지는 것 같다. 역시 예술가는 좀 (많이) 굴곡진 삶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살아봐야 하는 것일까.
빨리 6집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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