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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훔치고 싶은 것 미래의 고전 20
이종선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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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집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고,

동무와 재미있게 놀아도

마음은 쓸쓸합니다

 

재미있는 만화영화를 보고,

맛있는 밥을 먹어도

마음은 쓸쓸합니다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을 보고,

꿈속에서 하늘을 날아도

마음은 쓸쓸합니다

 

엄마 없는 집은 쓸쓸합니다

 

 

 

(예전에 그냥 썼던 것인데 조금 어울릴 듯하여)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들 여진, 여경, 민서, 선주. 책을 보면서 나는 또 생각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를. 떠오르는 일은 없는데 내가 그때는 지금보다 감정이 무디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 짜증나는 성격이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과 지금 내가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어른이 되기 어렵겠다고 느꼈다. 그것보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어른은 되지 못해도 마음은 자라기를 바란다. 아이들만 아프면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어느 때나 아프면서 자란다. 아이들이 더 크게 아픔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반대가 되었다. 어렸을 때는 조금 바보였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지만. 다 생각나지는 않는데 아마 나도 학교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온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 모르겠다. 요새는 정말 나 자신이 지난 날로 돌아가서 나 자신을 보고 싶기도 하다. 여기 나오는 여진이는 학교가 끝나면 아무도 없는 집에 왔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엄마가 일을 했다. 쓸쓸함을 채우기 위해서였을까. 여진이는 학교에서 주인 없는 물건을 주워오고는 했다. 그런데 6학년이 되어서는 친해졌으면 하는 민서 물감을 가지고 와 버렸다.

 

여경이는 5학년 때 민서와 같은 반이었는데 민서 엄마 때문에 안 좋은 일을 겪었다. 여경이는 자기가 받은 상처에 대한 보상이라며 민서 돈을 훔쳤다. 여경이는 그게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민서는 집도 부자고 공부도 잘했다. 하지만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잘 몰랐다. 엄마가 나서서 친구한테 선물을 주었다. 민서는 자기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더 사서 친구한테 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경이는 친구 마음을 돈으로 사려 한다고 생각했다. 여진이는 민서와 여경이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다. 여진이는 민서와 함께 여경이가 민서 돈을 훔치는 모습을 보고, 여경이는 여진이가 민서 물감을 가져간 일을 말했다. 그런 세 아이를 보며 선주가 말했다. “서로 자기가 더 상처받은 척, 피해자인 척하는데, 친구들끼리 이게 뭐야? 서로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지, 이렇게 탓만 하고 있으면 되니!” (128쪽) 하고. 여경이는 민서 엄마만을 보았지 민서 마음은 몰랐다. 책속에서는 이렇게 싸우기라도 하는데 현실에서도 그렇게 서로 말할 수 있을까. 말을 해서 풀어야 한다고 쓴 적 많은데 그것을 진짜 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진이는 여진이대로 집에서 엄마와 언니가 알게 되었다. 여진이가 다른 사람 물건을 가져왔다는 것을. 일은 한꺼번에 터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여진이는 엄마와 언니가 자기 마음을 알아준 것만으로도 그동안 얼어있던 마음이 녹았다. 민서와 여경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선주가 양궁 경기에서 동메달을 받아서 여진이, 여경이, 민서 세 사람을 집에 불렀는데 갔을까. 여진이는 갔다. 지금 바로는 껄끄럽더라도 앞으로 사이가 좋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나는 마음을 터놓고 말을 한 다음에도 친구로 지낸 사람은 없다. 아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도 뭣도 아닌 사이가 된 것인지도. 어쩌다가 이렇게 썼을까.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이런 날도 있는 것이지.

 

 

 

희선

 

 

 

 

☆―

 

여진이는 둘 사이에서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진작 이렇게 싸워야 했다고 생각했다. 감추지만 말고 처음부터 털어놓았으면 이렇게까지 복잡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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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2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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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에서

개가

꽃을 그리며

뛰오.

 

 

 

윤동주

 

 

 

 

우리 말로 쓰인 책을 보고 우리 말로 글을 쓸 수 있는 일은 분명히 행복한 일이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 말로 쓰인 글을 읽을 수 없었고, 쓰거나 말도 할 수 없었던 때. 내가 그때를 살지 않았기에 아주 먼 옛날 일 같은데 그렇지만도 않다. 말을 잃으면 나를 잃는 것과도 같다. 그 일을 모두 알았기에 목숨을 걸고서 사람들은 우리 말과 글을 지켰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말과 글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이 책을 보며 새삼 우리 말과 글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말로 쓴 이야기이지만 실제 그때는 우리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상상하며 읽었더니.

 

여기에서 가장 눈에 띠는 것은 책과 글이 한 사람을 아주 많이 바뀌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신을 벌주기 위해 더 나쁜 사람이 된 스기야마 도잔, 동주가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 써준 엽서를 검열하면서 그 글 속에 있는 책을 찾아서 보았다. 그리고 동주가 자신한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는 1권에 나온 것인데 이 부분 꽤 재미있게 보았다.(한번 해 보고 싶은 것이기도) 스기야마가 어떤 일을 했는지 더 알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은 와타나베 유이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스기야마는 동주가 시를 쓴다고 하자 비밀 도서관을 함께 만들었다. 동주는 한글로 시를 쓰고 다시 일본말로 옮겼다. 스기야마는 동주가 쓴 시를 연에 적어 형무소 바깥으로 날려보냈다. 시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 동주가 베껴쓴 책들을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읽고 외워서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해주었다. 이 이야기도 감동스러웠다. 조선 사람 죄수들이 노래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스기야마, 미도리 그리고 윤동주가 함께 꾸민 거였다. 안타깝게도 스기야마는 듣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 스기야마 이야기보다 와타나베가 동주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게 더 많이 나왔다. 앞에도 와타나베가 이야기를 들은 것이기는 하지만. 스기야마가 하던 일을 와타나베가 이어받은 듯했지만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와타나베는 어렸다. 그래서 자기들 일본이라는 나라, 아니 윗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잘 몰랐다. 스기야마는 동주와 조선 사람 죄수들이 의무조치 대상자가 되지 않도록 해주었지만, 와타나베는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생체실험에 대해 알았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기억을 잃어가는 동주를 보는 일은 그리 편하지 않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우리는 와타나베처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더 마음 아픈 것인지도. 일본에는 와타나베처럼 자신한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가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때 있었던 일을 알리려 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도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될까. 일본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은 윤동주와 시다. 조금 마음을 숨긴 것인가. 지금 일본 사람들한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난 날을 알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중요하다.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시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시는 아직도 남아서 빛나고 있다. 그 빛이 꺼지지 않기를 바란다.

 

 

 

희선

 

 

 

 

☆―

 

“독방행을 자처했던 사람들은 단지 자신들을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어. 그들은 일주일 동안 최대한 많은 분량의 책 내용을 외웠지. 독방에서 나간 그들은 감방으로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자신이 외운 책 내용을 전달해 주었지. 책 내용을 들은 사람은 그 내용을 기억하고 한 사람이 기억할 수 없을 때에는 두 사람, 세 사람이 나누어 기억했지. 한 사람이 한 파트씩, 아니면 몇 쪽씩 나누어서 기억한 거야. 짧은 시는 몇 편씩 외워서 시집 한 권을 완성하기도 했어.”  (173쪽)

 

 

“그를 죽인 건 이 무도하고 참혹한 시대야. 모두가 미쳐 가고 모두가 죽어 가고 있어.”  (179쪽)

 

 

나는 그런 영혼을 가졌던 남자를 알고 있다. 바람 속에서 태어난 아이, 태어나면서부터 조국을 잃어버린 아이, 자두나무 울타리와 우물이 있는 집에서 살았던 소년, 오디를 따먹고 우물 속을 들여다보던 소년, 우물물에 비친 파란 하늘을 사랑한 소년, 까마득한 종탑 끝의 십자가를 바라보던 아이, 잃어버린 조국을 괴로워한 소년, 톨스토이와 괴테와 릴케와 잠을 사랑했던 소년, 헌책방에서 구한 책을 가슴에 품고 세상을 얻은 것처럼 기뻐하던 책벌레, 차가운 하숙방으로 돌아와 밤새워 그 책을 읽던 학생, 남모르게 어둠을 밝히며 시를 쓰던 시인, 긴 외길을 따라 산책하기를 좋아했던 소년, 벙어리처럼 한 소녀를 사랑했던 소년, 자신이 쓴 시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시인, 어두운 시대와 차가운 현실의 어둠 속에 사금파리처럼 깨져버린 식민지인, 깨어진 자신의 몸을 비벼 불꽃을 뿜던 청년, 이름을 빼앗겨 버린 식민지 청년, 낯선 항구의 배를 타고 조국을 떠났던 여행자, 남의 나라 육첩방에서 홀로 침전하던 유학생, 시대의 아침을 기다리던 청년, 모국어로 시를 썼다는 죄로 수갑을 찬 죄수, 멀리 북간도의 어머니를 그리던 아들, 차가운 감옥의 새벽 나팔 소리를 기다리는 사내, 바람이 부는 날 바람을 맞으며 연을 날리던 죄수, 웃음이 문신처럼 입가에 새겨진 미남자, 그리고 결국 그 웃음조차 잃어버린 사내…….            (236~237쪽)

 

 

 

 

 

편지

 

 

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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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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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흰 깃발을 던졌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모두 풀려났지만,

후쿠오카 형무소 간수부 간수병인 와타나베 유이치는 갇혔다

하급 전범으로

와타나베 유이치는 말한다

자신한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죄’가 있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막지 못했고, 전쟁을 멈추게 하지도 못했으며,

죄가 없거나 아주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다시 와타나베는 말한다

자신이 쓰는 글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우리 영혼을 구해주기를 바란다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난 한 시인과 한 검열관의 이야기

히라누마 도주와 스기야마 도잔, 아니 윤동주와 스기야마 도잔

 

1944년 스기야마 도잔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사람들은 스기야마를 악마라 했다

죄수들을 죽기 바로 전까지 때리고 엄격한 검열관이었기에

그런 스기야마 주머니에는 시가 적힌 종이가 있었다

스기야마 도잔은 겉으로 보이는 대로 악마였을까

 

스기야마에 대해 새롭게 드러나는 사실

음악을 들을 줄 알고, 시인이었다고

스기야마의 마음을 흔든 것은 윤동주의 시였다

거친 스기야마한테는 시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세계를 만난 스기야마

그러나 모두가 스기야마와 같지는 않았다

 

조선말로 시를 쓴 동주는 15일 동안 독방에 갇힌다

간수장은 동주가 쓴 시들을 스기야마한테 태우게 한다

동주가 쓴 시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 스기야마였지만,

자기 손으로 시들을 불태웠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시를 쓰지 않게 된 동주한테 시를 쓰라고 하는 스기야마

자신만이 동주가 쓴 시를 되살릴 수 있다며 종이에 적어 주머니 깊숙이 숨겼다

자신의 시가 어딘가에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동주

정말 그렇다면 시를 불태운 죄책감을 덜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스기야마

 

나라와 말을 잃고 더욱 절망에 빠져버린 동주한테

스기야마는 어두운 밤이면 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삶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 있다고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 밤 동주가 읊은 <별 헤는 밤>을 스기야마는 받아적었다.

 

 

 

2

 

차갑고 어두운 밤을 밝혀주었던 당신의 시는

지금도 누군가를 위로해 줄 것입니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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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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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감동으로 가슴이 가득찰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런 이야기를 쓰다니 하면서.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분위기가 처음은 아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말했으면 보기를 들기도 해야 할 텐데 쓸 수가 없다. 그렇다 해도 ‘이 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거 맞구나’ 하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으로 히가시노 게이고를 처음 알게 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작가를 다른 사람보다 늦게 알아서 아쉬울 때도 있지만, 나보다 늦게 알게 되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아마 책을 읽지 못한 아쉬움보다 앞으로 만날 책이 많다는 게 더 설레기 때문이겠지. 마음은 참 이상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이 책으로 알게 되는 사람이 부럽다. 그 사람은 바로 다음부터 잘 볼 테니 말이다. 나는 예전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히가시노 게이고나 미야베 미유키 책을 읽었다. 지금이라고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늦은 밤 어디선가 나쁜 짓을 하고 도망치던 세 사람 쇼타, 아쓰야, 고헤이는 차 배터리가 나가 하룻밤 숨어 있을 곳을 찾는다. 그곳이 바로 오래전에 문을 닫은 나미야 잡화점이었다. 세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고 얼마 뒤에 누군가가 잡화점 앞에 있는 우편함으로 편지를 넣었다. 편지에는 지금 자신이 놓여 있는 환경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처음에 한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지만 두 사람은 무엇인가 말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 결국에는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서 답장을 썼다. 이 나미야 잡화점에서는 오래전에 걱정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얼굴을 보고가 아닌 바로 편지로. 자신이 가는 길이 옳은가를 망설이다가 편지를 쓴 사람, 편지를 받고 오래 생각해서 답장을 쓰는 나미야 할아버지, 나미야 할아버지한테 상담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길을 고른 사람, 그리고 나미야 잡화점에 마지막으로 편지를 쓴 사람. 나미야 잡화점을 둘러싸고 일어난 다섯 가지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 해도 처음과 끝은 이어져 있다. 아니 모두 상관 있다. 감동을 주는 게 바로 그 부분이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는 말 지금까지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늘 혼자였기 때문에. 그래도 지금은 조금 믿게 되었다.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나미야 잡화점이 있는 한정된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해도 아주 놀라운 일이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작가는 글로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내가 말로 하기보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구나. 나 또한 그런 편인 듯하다. 때로는 한마디 말이 더 힘을 줄 수 있겠지만, 내가 그것을 못하는데 어떻게 하라고. 나 같은 사람도 있는 거 아닌가. 슬쩍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고 말해버렸다. 내가 말하는 보여주기는 직구가 아닌 변화구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상담을 전문으로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별거 아닌 일도 진지하게 대답해주었다. 대답을 받은 사람도 도움을 받았겠지만, 나미야 할아버지도 누군가가 자신을 의지해줘서 답장 쓰는 보람을 느끼지 않았을까. 사람은 한쪽만 있으면 안 된다. 서로가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이다. 이 말 모르는 사람은 없겠구나.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서 신기한 경험을 한 세 사람도 전과는 달라졌다. 앞으로는 다르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자신은 혼자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꼭 만나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자신과 이어져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희선

 

 

 

 

☆―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은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생각 저 생각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나.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절대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사람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못 본 척해서는 안 돼.”            (158~159쪽)

 

 

“내가 몇 해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상담자는 거의 벌써 답을 알아. 다만 상담으로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가운데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167쪽)

 

 

“조금 전에도 말했잖아. 중요한 건 본인의 마음가짐이야. 내가 보낸 답장이 누군가를 불행하게 만들었을까 봐 마음이 괴로웠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스운 얘기다. 나처럼 평범한 영감 답장이 남의 삶을 좌지우지할 힘 따위, 있을 리 없어. 그건 아주 쓸데없는 걱정이었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버지 얼굴은 흐뭇해 보였다.  (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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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즈가 보낸 편지 -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수상작
윤해환 지음 / 노블마인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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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셜록 홈즈의 모험 가운데 하나인 《바스커빌 집안의 개》를 읽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책을 보는 데 도움이 되어서였다. 바스커빌 집안의 개는 셜록 홈즈를 처음 만나게도 해주었고, 다음에 볼 책은 더 재미있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제목은 《홈즈가 보낸 편지》지만,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정탐소설을 쓴 김내성이다. 그리고 홈즈의 일을 도와주었던 카트라이트도 나온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에 홈즈 소설에 나온 카트라이트와 김내성이 만난다고 했을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시간여행이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카트라이트는 소설 속 사람이고 김내성은 실제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때 시간여행을 떠올렸을까.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카트라이트와 김내성이 비슷한 나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책속에 나온 카트라이트는 진짜 카트라이트가 아닌 카트라이트 아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김내성한테는 언제나 친구 카트라이트였다.

 

우연히 만나게 된 빨간 곱슬머리에 파란 눈을 한 양인 카트라이트 그것도 겨우 하루뿐이었지만, 이 만남은 김내성의 삶을 많이 바꾸었다. 김내성은 홈즈와 탐정소설에 빠지고 정탐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려고 했다. 그리고 카트라이트와 함께 풀려고 했던 살인사건은 김내성을 줄곧 따라다녔다. 십칠 년 동안이나. 김내성은 그 일에 대해 글을 쓰려고 했지만 끝맺지 못했다. 어쩐지 이것은 매듭 짓지 못한 일이 있으면 앞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김내성은 일본에서 소설을 써서 정탐소설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조선에 돌아와서는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런 내성 앞에 십칠 년 전 평양에서 만났던 양인 카트라이트가 나타났다. 거기다 홈즈가 쓴 편지도 갖고 왔다. 그럴 때는 바로 반가워할 수도 있겠지만 내성은 그러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카트라이트를 만났지만 내성은 거짓말쟁이라며 카트라이트를 쫓아내버렸다. 그러고는 마음 아파했다.

 

책속에서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내성과 아내 영순이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이것은 내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내성과 영순은 이 글을 쓴 윤해환의 두 가지 모습처럼 보였다. 아무리 다른 사람 이야기를 쓴다 해도 작가 자신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부분을 쓸 때 윤해환은 아주 즐거워했을 것 같다. 카트라이트와 내성이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에서 다른 말을 한 듯한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영순은 내성이 카트라이트를 줄곧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성이 카트라이트를 쫓아갈 수 있게 영순이 힘을 주었다. 친구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친구다.(동무라고 할 걸 그랬나) 내성과 카트라이트가 부러웠다. 내성은 카트라이트뿐 아니라 일본에서 쥬니치로도 사귀었다. 쥬니치로는 일본사람으로서 조선사람한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썼기에 이런 것만은 아니겠지. 정말로 그때 일본에는 쥬니치로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살인사건, 납치사건 그리고 서대문형무서에서 한 사람을 구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정탐소설(추리소설)을 쓴 김내성의 이야기로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알리고 있다. 좀 더 나아가서는 글을 쓰는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작가는 모든 작가다. 그래도 윤해환은 김내성의 입을 빌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자신을 사랑하고, 또한 글을 읽는 사람도 사랑한다고. 그렇다면 이 글은 윤해환이 우리한테 보내는 편지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쪼록 많은 사람이 이 편지를 한번 받아본다면 좋겠다.

 

 

 

희선

 

 

 


☆―

 

카트라이트가 소리쳤다.

 

“자네는 글을 써야만 하는 인간이야!”

 

“어째서 그런데!”

 

“자네는 글을 쓸 때에 진정으로 행복하니까.”

 

글을 쓰면 행복하다.  (308쪽)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오.
이리 글을 쓰는 나 자신을,
이 글을 읽는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여 참을 수 없기 때문이오.  (309~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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