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징표
브래드 멜처 지음, 박산호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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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눈물이 없다면 영혼에는 무지개가 없을거야...


성경속 최초의 존속살인인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 와 우리에게 익숙한 슈퍼맨의 이야기가 교묘하게 합쳐진 추리소설이지만 처음엔 책의 두께에 놀랐다. 570여 페이지라 언제 읽지 하는 무거운 맘이 들었지만 책을 펼쳐 드는 순간, 그 모든 무거움은 달아나고 술술 넘어가는 속도감에 '카인의 징표' 와 엘리스의 정체와 그가 데리고 다니는 일명 아벨의 개라 불리는 '벤오니' 의 활약이 궁금하여 급하게 읽어 나갔다. 

노숙자들을 쉼터로 보내고 있는 일을 하고 있는 칼, 그는 아홉살때 아버지가 우발적으로 엄마를 밀어 죽게 하는 장면을 보기도 했지만 그 일로 인하여 아버지와 19년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 아버지는 8년간 수감생활을 하고는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다 19년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 아버지, 루즈벨트와 순찰을 돌던 중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는 사건에 휘말려 들게 된다. 아버지가 맞은 총알은 희귀한, 오래전 미셸 시걸이란 남자가 가슴에 맞고 죽었던 총알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정체가 들어나면서 아버지가 운반하려던 화물속에 있던 파라핀 봉지속의 만화책, 그 책을 쫓는 또 한사람 엘리스라는 차가운 남자,그도 아버지에게 평생 속임속에 살아왔듯이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기법을 빌려 부자간의 정을 풀어나간것이 부제일듯 하다. 가슴에 총을 맞고 죽은 아버지가 심장마비라고 해야만 했던 제리 시걸은 아버지의 죽음을 '슈퍼맨'이라는 만화로 탄생시켰고 칼과 아버지 리오드는 사건에 휘말리며 부자지간에 맺혀 있던 매듭을 풀어 나간다. 

성경속 이야기와 함께 슈퍼맨이라는 이야기가 교묘하게 날실과 씨실로 엮이며 '카인의 징표' 처럼 실마리를 향해 달려가는 칼과 엘리스 그리고 만화를 탄생시킨 제리, 그리고 제리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이 들어나며 그가 아들에게 전했던 '카인의 징표' 를 제리가 과연 어떻게 숨겼는지 찾아가는 스릴감. 사건을 바라보듯 하던 예언자의 실체가 밝혀지고 카인이 아벨을 죽인 살인무기의 정체가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쫓던 것은 거짓의 서이기 보다는 진실의 서이며 칼과 아버지의 관계가 다시금 부자지간으로 돌아왔다는, 진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하듯 소설은 '진실'에 힘을 주며 끝을 맺는다.

'집착하지 않으면 잃어버리는 것도 없어.'... 티모시나 엘리스 그리고 루즈벨트와 아버지, 그들은 '거짓의 서'에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실의 서'일지 몰라도 그들의 욕심속에서는 '거짓의 서'가 되었던 진실을 말하며 '현재의 삶이 있고 과거에 남겨둔 삶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누군가,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그 삶을 같이 하게 되면 과거뿐 아니라 미래를 함께 쓰게 된다.' 라는 말로 끝을 맺으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엄마' 를 부르는 칼. 아버지의 말처럼 가끔씩 '엄마와의 대화' 를 시도하려는 그모습에 짜안하다. 

'카인이 징표' 누구나 자신안에 간직한 '악의 모습' 이라고 하고 싶다. 선과 악의 두얼굴 중에서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은 순전히 자신에게 달린 문제이다. 자신안에 내재된 악의 모습을 더 강하게 들어냈던 엘리스, 엄마를 밀어 죽게 만들었던 아버지를 악의 모습으로 간직했던 칼, 하지만 부던히 엄마와의 대화를 하고 계셨던 모습에서 자신이 생각했던 악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칼 또한 과거를 용서하고 영혼의 무지개를 찾는 카인의 징표는 성경보다는 슈퍼맨이라는 만화탄생 비화가 더 재미를 준 듯 하다. 계속 되는 추격신이 언젠가는 영화로 만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깊어가는 가을밤 뭔가 재밌는 소설을 집어 들고 싶을때 읽으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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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 2009 제1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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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김정호, 그의 삶을 새롭게 조명한 작가 박범신의 첫 역사소설...


<청구도> <대동여지도> 로 잘 알려진 고산자 김정호, 그가 남긴 지도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 아직도 우리에게 세세하게 남겨져 있지만 그의 삶은 어디에도 들어나 있지 않다. 중인이면서 몇사람이 아닌 모두에게 빛처럼 길을 발혀줄 지도를 남기기 위해 이 땅을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으로 돌아 다녔을지, 그의 녹록지 못한 발자취를 작가를 통해 따라 가며 읽다보니 얼마나 지금 나의 이 시간 모든 것들이 행복인지 새삼 느껴졌다.

종이가 귀한 시절, 판각을 하기 위한 좋은 나무를 구하는 것부터 제재를 받으며 그 모든것들을 짊어지고 다녔어야 할 어깨의 통증, 무엇하나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자신이 발로 일구어낸 결과물이라 그렇게 세세한 것일까. 지도에 대한 이해도마져 떨어져 실용적것보다 첩자로 오해를 받으며 척박함에서 일구어내야 했던 대단한 결과물에 비해 인간 고산자는 그가 그려낸 지도속에 감추어진 것처럼 들어나지 않은 삶이 그의 고뇌와 함께 고스란히 다시 부각되었다.

고산자, 그가 왜 지도를 그려야만 했을까...
변변한 지도가 없던 턱에 그의 아버지가 죽음을 맞이했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만 했던 일을 그는 생생히 기억해 모두에게 이로운 지도를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을 한다. 어려서부터 이 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그, 뜻하지 않은 아버지의 죽음과 길에 버려지듯 하였지만 깊은 인연으로 순실의 어미인 보살님의 어머니의 젖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젖을 나눈 인연으로 부부의 정을 나누지만 그것도 잠시 그들은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순실마져 아버지처럼 험난한 삶을 살게 된다. 제대로 된 지도가 있었다면 고산자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까.. 많은 민초들이 이름없이 죽어가야만 했을까...

'이제 바람이... 가는 길을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길을 내몸 안에 지도로 새겨넣을까 하이, 오랜.... 옛산이 되고 나면 그 길이 보일걸세. 허헛. 내 처음부터 그리고 싶었던 지도가 사실은 그것이었네. 그 동안 자네 신세가 많았어.'  미리 앞을 내다보고 걷는 이들의 삶은 고달프고 외롭다. 자신의 뜻을 알아주지 않던 조정과 양반들, 그리고 천주교박해에 맞물려 더욱 힘든 길이 되었던 지도제작, 하지만 고산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걷고자 했던 힘든 길을 걸었고 위대한 유산을 남겨 놓았다. 그의 삶을 새롭게 그려내기엔 무척 힘든 작업이었을것이다. 길에서 이름없이 피고지는 민초의 삶을 담아 내기에 역사의 기록은 너무도 미흡하지 않을까 했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그의 애환을 담담하게 잘 그려낸듯 싶다. 역사적 인물을 다룬 소설들은 읽고나면 조금 부족한 면이, 다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 배가 덜 부른 면이 있지만 작가는 자신의 뜻까지 잘 피력하고 있는 듯 하다. 대동여지도에서 지금 일본과 우리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독도가 왜 빠져야만 했는지 작가적인 주장을 간접적으로 펼치고 있어 읽는 맛까지 전해준다. 고산자 그의 출생도 죽음도 어느것 하나 기록되지 않았지만 작가적 상상력이 일군 고산자는 그의 대동여지도속에서 지금도 어디쯤 걷고 있을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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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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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안개가 밀려오는군.놈은 안개와 함께 움직이지. 안개가 몰려오면서 데니스 코헨이 나타나고,살인이 계속되고...
놈은 안개 속에 있는데 난 안개를 보면 멀미가 난다고....


<악의 추억>, 제목부터 뭔가 스릴감을 준다. 작가의 이전 작품인 <뿌리깊은 나무>나 <바람의 화원>은 역사추리물이었기에 이 작품은 어떨까 몹시 궁금했다. 표지부터 현대적인 느낌이 그의 소설이 180도 바뀌었다는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첫작품인 <천년후에1,2>를 중고책방을 뒤져가며 겨우 구매를 해 놓고 읽는다하면서 읽지를 못했다. 그 작가를 알기 위해서는 첫작품을 꼭 읽어보는데 다른 두 작품만으로도 커다른 반향을 일으켰기에 그의 작가적 기질엔 의심에 여지가 없지만 역사물에서 갑자기 현대물이라니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그건 단지 내 기우였다는 책을 읽어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작품은 이정명이라는 작가라기 보다는 황금가지의 <밀리언셀러클럽>도서중의 한권을 읽고 있는듯한 느낌으로 외국작가가 쓴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에 몇 번이고 겉표지의 그의 이름을 확인해야 했다.

역사물에서 갑자기 현대물이라니... 침니랜드와 뉴아일랜드라는 가상의 도시 또한 안개처럼 모호하게 다가오는데 살해되는 여자들마져 모두 웃는 표정이라니 정말 아니러니 하게 만들었다. 첫번째 케이블카 살인 때문에 조직된 그룹. 헐리, 카슨,라일라,패트릭,매코이 그들 개개인을 들여다 보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된 헐리부터 보면 그 실적은 모두 매코이로 부터인것처럼 그에겐 매코이가 앞으로는 그에게 걸림돌처럼 여겨지는데 그와 한팀을 이루게 된다. 신참내기 심리분석관인 라일라의 과거 또한 특별하다.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카슨의 과거 또한 매코이와의 데니스 코헨 사건으로 인해 매코이와 모호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정직을 당하였지만 누구보다 사건에 열정을 품는 그에게는 데니스 코헨의 사건과 그 사건때문에 머리에 박힌 총알이 문제가 되어 그의 삶은 조각조각 잘려나간 것처럼 흩어져버려 현실인지 과거인지 모호함이 이 작품의 큰 틀을 쥐게 된다.

살인은 다시 다른 살인으로 연결되는 다중살인으로 이어지고 살인자라 추측했던 벤자민 화이트는 누군가 미리 써 놓은 시나리오 대로 행동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다시 살인자로 수면위로 떠 오르게 된 7년전의 '데니스 코헨'. 그는 분명히 매코이의 총을 맞고 죽었고 그의 사체가 발견되고 DNA까지 확인이 되었지만 세 건의 살인사건을 놓고 매코이는 데니스 코헨이 살아 있다라고 확신을 한다.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함을 매코이는 터커를 만나 확인을 하며 자신의 생각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음을 직감하며 사건은 반전을 거듭하게 되고 라일라의 과거가 들어나며 그녀 또한 중요한 인물이 된다. 사건을 맡은 형사들은 모두 깨끗하지 못한 과거, 살인을 할만한 동기, 동전의 양면을 보듯 사람의 선과 악을 들여다 보게 된다. 

7년전 데니스 코헨 사건이 모든 사건의 큰 전환점을 만들듯 과거와 현재가 얼키고 현재의 데니스 코헨을 매코이라 보면서 독자들에게 <스톡홀롬 증후군>을 강하게 주입시키듯 그에게 동화되게 만들다가 그가 범인인가 생각하는 찰나 그를 죽이면서 믿었던 라일라를 의심하게 만든다. 과연 누가 범인일까? 범인은  이 소설에서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공범처럼 범인일 수 있다는 전재하에 소설은 전개된다. 애거서 크리스티여사의 추리소설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열차에 탄 13명의 사람들이 모두가 범인이듯이 이 소설 또한 그런 전재하에 독자들 나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작가 이정명만의 특이함이다. 독자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추리하게 만들면서 추리소설에 훔뻑 빠져 들게 만드는, 안개와 섬의 특이성이 나타내듯 소설은 더욱 모호함속에 빠져 들면서 우리 자신안에 감추어진 내면을 더 깊게 들여다 보게 만든다. 겉으로 들어난 그 사람의 본성속에 감추어진 <악의 모습>, 라일라가 마주보는 샤워장의 거울처럼 자신을 거짓없이 보여주는 <거울>만이 진실을 알고 있는것처럼 누구나 범인이 될 수 있는 <악의 추억>.

하지만 작가는 처음부터 작가가 내세운 범인을 강하게 보여준다. 낱말퍼즐,왼손잡이,살인현장에 늘 제일먼저 달려가는 사람. 하지만 그가 범인인가 생각하는 동시에 그를 죽음에 몰아 넣고 다시금 생각할 공간을 남겨 놓는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처럼 등장하는 침니랜드 지도나 퍼즐그림등은 그만의 추리물에 훔뻑 빠지게 한다. 과연 그것이 실제일지 의심을 품게 하면서 무한한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 소설은 살인사건이나 범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얼킨 사람들의 내면이나 그들의 심리가 더 중요시 여겨진 작품이면서 요즘 떠오르는 <뇌과학>에 관한 소설이어서인지 더 재미있는 듯 하다. 역사물에서 만났던 작가도 대단하게 여겼는데 현대물 또한 그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한번더 그의 이름에 반한 작품이다. 그가 선택해 놓은 단어 하나하나에도 그의 미세함이 숨어 있는 것을 작품을 읽다보면 발견하게 되는 악의 추억, 언젠가는 영화로도 만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며 이 소설이 해외로 나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함을 느껴본다. 번역이 문제라 우리문학이 해외로 나가는 걸림돌이 되는데 이소설은 현대적이면서 모두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라 장애물이 없어 우물안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희망>을 본다. 독자들에게 늘 읽는 재미와 함께 생각하는 기쁨을 주는 작가 이정명, 그의 행보에 기대를 해 본다.


'말하자면 형사는 걸레 같은 존재야. 한번 더러워진 수건은 다시 빨아도 깨끗해지지 않지.영원히 걸게가 되고 만다고..'
'두려움은 사람의 감정을 유발하죠.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화를 내고 미워하고 고통스러워하니까요.'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에 대해 알지 못해요.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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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이레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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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 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원작을 읽기전에 영화를 먼저 보아서인가 처음엔 망설여졌다. 영화를 보아서 내용을 알기에 실망하는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읽다보니 영화에서 세세히 받아들이지 못한 틈을 원작이 매꾸어준 듯 하여 더 좋았고 영화의 영상이 더 깊게 각인되는데 한 몫을 한 것 같다. 영화도 한번 보다는 두번을 보고 싶은 느낌이 강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다시 보고 싶어졌다. 놓쳤던 부분들을 이제는 다 받아들일 수 있을것 같다.

15세의 미하엘 베르크는 간염때문에 전차를 타고 가던중에 구토로 인해 내리게 된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던 전차 차장이던 한나 슈미츠는 그를 도와주고 집까지 바래다 준다. 그녀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꽃다발을 사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던 미하엘은 한참 사춘기의 성에 대해 민감할때 원숙한 그녀에게 반해 그녀와 비밀스런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 그것이 평생의 짐이 될것이란 것도 모르고..

그녀가 일하는 전차에 대한 것 외에 그녀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고 그녀 또한 말을 해주지 않는다. 그녀의 모든 것은 비밀스럽지만 그들은 만나면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잠시 누워 있기를 반복하는 의식과 같은 만남을 계속 이어간다. 한나는 미하엘이 다가오는 것을 거리감을 두듯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늘 반복되는 만남은 지속하는데 어느날 그녀가 홀연히 사라지고 만다. 그에게 헤어지겠다는 말한마디없이.. 그런 그녀를 다시 만난것은 대학교때 법정에서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이 감시원일을 했다는 한나가 법정에 선 것. 그녀를 잊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던 그에게 다시 악몽처럼 그녀에 대한 감정이 시작되고 그녀를 지켜보던 그는 그녀가 자신이 문맹임을 몹시 수치스러워 하고 자존심 상해한다는것을 알고는 그 사실을 밝히지 않는다. 만약에 그 자리에서 미하엘이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혔다면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 전,후의 세대간의 격차라고 할까.. 종신형을 선고 받은 그녀를 지켜보기만 하는 미할엘 역시 현실에서도 그녀를 지울 수 없어 그의 결혼생활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끝을 맺게 되고 그는 다시 그녀에게 향한다.

어린시절 연애때처럼 그녀에게 책을 읽어 녹음한 테이프를 전해주는 그, 그의 테잎을 듣고 글씨를 스스로 깨우친 그녀는 한줄의 편지를 보내며 과거속의 사랑이 아닌 현실에서의 지속적인 사랑을 원하지만 미하엘은 그녀를 과거속에 묻어두듯 그녀에게 답장 한장 보내지 않는다. 좀더 미하엘이 적극적이었던가 한나의 세대를 이해했더라면 아쉬움이 남는 소통의 불협화음. 그녀는 18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가석방을 하게 되고 그녀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지만 그녀를 과거의 상태로, 과거의 사랑으로 가두어둔 것을 알게 된 한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비로소 그녀는 미하엘을 평생 간직하며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꾹꾹 참는 미하엘,  ' 내가 그녀를 쫒아버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사실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유죄였다, 그리고 범죄자를 배반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으므로 내가 유죄가 아니라고 해도, 나는 범죄자를 사랑한 까닭에 유죄였다.'

그녀의 꿋꿋한 겉모습을 보면 그녀에게 그런 수치스런 '약점' 이 있으리라곤 생각되어지지 않는다. 늘 반듯하고 속옷까지 다려입는 그녀에게 <문맹>이란 치부나 마찬가지였고 미하엘의 녹음테이프로 자신의 약점을 고쳐나갔기에 그들의 사랑도 어쩌면 다시 받아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늘 과거속에 가두어 두고 멀리서 바라만 보려는 미하엘, '그녀는 그녀 인생에서 내게 허용하고 싶은 만큼의 자리만 내주었을 뿐이다' 이해보다는 자신의 소심함으로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것은 아닌지.  .' 

'한나에 대한 사랑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 보다 그 운명에서 더욱 빠져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 자신을 좀더 진실되게 변호했더라면 한나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녀를 위해 미하엘이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운명이란 생각처럼 단순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보다. "꼬마야, 많이 컸구나.." 그녀가 한말이 가슴에 먹먹하게 남는다. 그들의 비밀스런 사랑과 독일의 시대적 배경이 가슴을 아프게 했던 '책 읽어주는 남자' 영화로 한번더 다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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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미초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가스미초 이야기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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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기억은 오래된 영화의 스틸사진과 비슷하다.


표지의 그림처럼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 가슴을 잔잔하게 적시는 아시다 지로의 자전적 연작 소설을 만났다. 책을 읽기 며칠전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현충사를 다녀와서일까 표지의 그림은 더 가슴에 와 닿았던것 같다. 거기에 할아버지와 사진에 대한 추억이니 얼마나 아련할까 하는 생각을 소설을 읽기전부터 할 수 있었고 '빛나는 청춘과 함께 사라져버린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향수를 담아내다' 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가을은 지난 무언가를 추억하기에 정말 좋은 계절이다. 이런 좋은 계절에 감성을 자극하는 이런 소설을 읽는 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기도 하다. 이노는 할아버지의 눈으로 보면 방탕한 손자이다.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여자친구와 하룻밤을 함께 하는 일들도 있다. 그런 이노가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선, 그들과 함께 그의 청춘을 기억하고 18년 자신의 전속사진사처럼 손자의 일상을 사진으로 남겨주신 어용사진사 할아버지와 게이샤였던 할머니를 거금을 들여 빼내어 결혼을 하지만 혼전 사랑으로 인한 자식을 자신의 아이처럼 키우고 아끼고 자신의 직업까지 대물림 하려 했지만 전쟁으로 인하여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할아버지,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지만 결코 자신의 제자인 사위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죽는 날까지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으셨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는 죽는 그 순간까지도 손에 <라이카>를 들고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아름다운 지난 사랑까지 고스란히 떠 안으며 감싸준 멋진 할아버지, 할머니의 지난 사랑이던 노신사의 마지막 영정사진까지 멋지게 찍어 주신 할아버지는 손주와 친구들의 멋진 졸업사진까지 찍어 주시고는 마지막 죽음 그 순간까지 사진과 함께 한 사진이 명장이시다. 그런 할아버지, 노스승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늘 스승님을 먼저 챙기며 스승의 그림자를 밟지 않듯 하시는 이노의 아버지 역시 사진을 잘 찍으시지만 결코 스승앞에 나서시지 않으셨던 멋진 분이시며 스승이며 아버님의 뒤를 이어 받아 사진일을 하시니 대단하시다. 

소설은 이노의 청춘과 함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외 친구들의 이야기들이 추억의 일부분처럼 얽혀 있지만 가슴 따듯한 이야기들로 할아버지를 축으로 하여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기도 하고 디저털 보다는 아나로그적 추억이 가슴을 잔잔하게 적셔준다.  '난 이 사람들의 장례식 사진을 모두 내 손으로 찍었단다. 사진사는 참 죄 많은 직업이야. 이럴 줄 알았다면 이 직업을 내 대에서 끝냈을 텐데.' 돈보다는 사람 사이의 정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신 할아버지는 이노에게 큰 산과 같은 인물이 되었겠지만 글을 읽은 독자에게도 많은 것을 전해주신다. 이노의 청춘과 할아버지의 멋지게 물든 연륜이 고운 색으로 섞여 한층 돋보였던 연작 소설이며 이 가을에 꼭 한번 읽어봐야 할 소설인듯 하다. 한 번 손에 잡으면 끝까지 읽어 내려가야 할 소설로 이노의 추억으로 인해 나 또한 지난 추억을 한번 되새겨 보는 좋은 기회를 가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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