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현미 이케다 료지 세 번째 테마가 제일 좋았다
세컨과 비올라에 멜로디를 주었는데 애니 오프닝같은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멜로디에성부의 선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성부를 노니며 음이 교체하고 주니받거니미세이동하며 피치가 분산했다
전자음악 미디작곡을 현악9중주에 시각화한 것 같다

들으면서 화성분석도 했지만 딴 생각을 했다.
원래 다들 음악들으며 의식의 흐름이 있지 않나요?

스콜세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묻고 더블로 간 봉준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박찬욱 가장 변태적인 것이 가장 정상적이다
데이미언 허스트 가장 죽음틱한게 가장 잘 팔린다
국현미 허스트 가장 빨리 온 얼리버드가 가장 쾌적하게 관람한다
타란티노 가장 모방적인 것이 가장 독창적이다
놀란 가장 복잡한 과학을 가장 단순한 영화에 넣겠다
히치콕 가장 통제되면 가장 불안하다
타르코프스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영원하다
피카소 가장 안 그린게 가장 완벽하다
로스코 가장 비어있는게 가장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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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밤하늘 - 별자리에 이야기를 새긴 인류 최초의 천문학
유성환 지음 / 휴머니스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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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환 박사의 <고대 이집트의 밤하늘> 흥미롭게 읽었다.

 

성실한 독해와 저자의 인간미가 자연스럽고 녹진하게 묻어나는 정성스러운 책이다. 주어진 포맷에 맞춰 적당한 정보를 짜깁기한 저가형 퀼트책도 많은 인문교양분야에서 396쪽에 이르기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균일한 지적해상도로 글을 썼다. 저자의 통역경험의 유산인지, 고유명사에 이해를 돕기 위해 원어를 병기했는데 그 어학적 범위는 한문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뿐 아니라 일본어, 아카드 쐐기문자, 콥트어, 히브리어, 희랍어, 러시아어, 산스크리트 데바나가리문자에 달한다. 2013년 스틸로그라프 출판사에서 나온, 지금은 절판된 희대의 책, 프랑스 가톨릭대에서 공부한 권영흠의 <곱트어 문법> 이후로 곱트어 글자가 우리말 설명과 함께 있는 모양새를 본 건 오랜만이다.

 

문이과 마스터로 고전어를 천문학과 함께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예를 들어 서울대 역사학부에서 한국과학사를 연구하는 문중양 교수와 경희대 역사학과에서 조선후기 천문역산학을 연구하는 구만옥 교수가 있는데 둘 다 학부는 이과를 나왔고 사학으로 석박사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더 두드러지는 공통분모는 한문서를 탐구하며 우리나라 역사의 기초학술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인데, 이집트 천문학보다는 오디언스가 훨씬 많을 테다.

 

고전학의 극히 세부적인 정보는 전공한 학자가 우리말로 글을 생산하지 않으면 정보가 아예 유통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학문적 짐을 지고 있다. 독자가 극히 한정적인 필드에 외롭게 발신하며 아틀라스적 과업을 홀로 짐지고 그는 근년에 서적 여러 권을 출판했는데 2026년 초의 이 책은 <시누헤 이야기(2024)>, <상형문자 필사노트(2024)> <이집트 창세신화(2025)>에 이어 네 번째 접한 유성환의 대중서다. 2024년은 그에게 생산적인 한 해 였는지 총4권을 냈고 CIR출판사에서 나온 루스터총서의 다른 두 책은 아직 읽지 않았다. 최소 출판시장에는 그가 서술한 지적밀도가 높은 책 6권이 있다.

 

이집트의 하늘은 신화적 상상력과 정밀한 역법계산이 어깨를 맞대는 문이과 융합의 최전선이다. 문과의 마스터가 이과적 내용을 커버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책 여러 지점에서 쉬이 발견된다. 예컨대 "이차방정식 이상의 수식이 나오면 두뇌의 작동이 멈추는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p6)"이 치윤법 계산하는 한 문단(p136)을 쓰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했을 듯한 노력이 역력히 묻어난다. 물론 이런 역법계산은 복잡한 수학연산의 영역이고 이공계 천문학 논문에서 나오는 더 상위의 수학공식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논문 데이터를 계산하기 위한 가우시안 정규분포나 베이지안 같은 양적 방법론, 오일러 방정식을 통해 성간가스의 압력, 밀도, 속도의 변화가 중력 붕괴로 이어져 별 형성을 유도하거나 폭발에 의한 충격파가 초신성의 팽창을 설명하는 정도의 수학공식이 역법계산에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분석적이고 꼼꼼한 엑셀함수 계산능력이 필요하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화성식민지 등에 대한 대중의 관심사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발맞춰 여러 분야에서 천문학을 통섭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유물분석, 발굴보고, 종교의례를 중심으로 한 문헌학이 지배적인 이집트학계에 최근 들어 천문학에 대한 증진된 관심이 존재하고 책은 이런 트렌드와 직접 참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술시점에서 옅게 맥을 같이 한다 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재작년(2024) 여름엔 이탈리아 피사대학에서 이집트 마술과 점성술과 천문학을 교차하는 여름학술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고, 그 해 초 이집트 아인샴대학에선 파피루스와 금석문연구 컨퍼런스에서 이슬람문명과 그리스로마문명 아니라 고대이집트학을 포함한 다수의 인류문명에서 고고학과 천문학(Archaeology and Astronomy in Human Civilizations)의 중요성에 대해 논설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종교학과 문헌학 중심이었던 티벳학에도 천문텍스트 연구가 활발해진 경향이 있다. OCR리딩과 에이아이 문헌분석기술이 발전하면서 망실되거나 부분적으로 손결된 텍스트를 읽게되어 디지털 인문학의 기여도 두드러진다.


https://egittologia.cfs.unipi.it/en/2024/05/29/new-summer-schools-in-egyptology/

https://www.asu.edu.eg/related-news/astronomy

https://arxiv.org/abs/2512.24197


대중에게 있어 이집트학은 다단계로 강의팔아 먹고 산다는 조롱섞인 밈만 인구에 회자된다. 적당히 알고 넓게 비판하고 느슨한 정보만 유통되는 시절이다. 누구도 제대로 알고 깊게 분석하고 선명히 탐구하려 하지 않는 와중에 저자의 이런 책은 무의미와 쓸모없음에 대한 비관에 맞서 일어선 웅대한 걸음 한 보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집트유물과 성각문자의 존재에 대해선 국중박 이집트전을 통해 널리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오스트리아의 비엔나미술사박물관 소장품 231(2009.4-2009.8)

미국 브루클린미술관 소장품 229(2016.12-2017.4)

미국 브루클린미술관 소장품 94(2019.12-2022.3)

가 있었다. 그러나 성각문자를 직접적으로 해석하는 캡션은 없었고 그 유물에서 문자를 해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지 않았다. 무리는 시각기호의 향연을 소비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을 것이다. 성각문자 기초서가 있긴 했지만 매우 초보적인 수준이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적절한 예시문을 우리말로 제공하는 이 서적이 있어 다소 안심이 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오픈소스편집기로 편집해 둔 성각문자 예시는 James P.AllenMiddle Egyptian primer 정도 읽은 이에겐 매우 유용한 텍스트다. 예를 들어 앨런 기초학습서 2p6-7에서 초보적인 단음문자 s (bolt of cloth), d (hand) 만 습득해도 원어의 풍부만 시각적 세계가 열린다.

 

어학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은 이렇다.

p28 sḫt ḥtp 평안의 들판에서 삼자음

p33 범선 표의문자

p248 sšd 유성, 번개에서 s-šd-d 뒤의 의미한정사

p281 셀케트에서 삼자음 srqt

p106 발가락

p126 각주1번 남성 혹은 여성 10을 의미하는 교집합 기호

p202 청동 금속 주둥이

같은 부분이 흥미롭다.

 

특히 p23의 신 이름이 p24의 그림 안에서 발견된다는 점이 흥미로운 독해를 가능케한다. 라틴어 그리스어 한문 등이 늘 그렇듯 학자가 예시문으로 편집한 텍스트는 쉽다. 원문에서 필체 변주 가운데 스스로하는 건 매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노력은 칭찬받을 만한 훌륭한 업적이다.

 

내용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좋다.

p35-36 빛의 부재에 대한 종교적 해석

p47 1/64에 대한 해석

p75-76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이 두 개 떠있는 <1Q84>와 이외수의 달이 없어진 <장외인간>과 서태지의 <컴백홈>의 검열당한 달 가사 5번트랙, 스타워즈 4

p199 은하수는 누트 여신의 등뼈

p228 오른쪽은 서쪽, 외쪽이 동쪽인 것은 "이집트의 기준 방위가 나일강이 흐르는 방향을 기준으로 상류인 남쪽이었기 때문

여기서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차이는 철학, 신학, 대중교양서에도 많이 퍼져있는 말인데 p235에 이집트인의 양적, 질적 시간 차이에 대해 설명한다. 아마 이에 대한 평소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싶은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평선의 지배자 호루스가 "선사시대부터 이집트 남부에서 광범위하게 숭배됐더 하늘신" 이며 "아득이 멀다를 의미하는 형용사 헤리에서 파생됐다"(p175)는 부분과 왕과 호루스를 동치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진실한 목소리(p202)를 읽고 호루스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깊어졌다

 

이집트인의 도량형을 언급한 p206에서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 길이인 완척이 손가락 28개 또는 손바닥 7개라고 하여 직접 내 팔꿈치까지 세어보기도 했다.

 

p212-213의 중왕국 시대 이디의 목관에 그려진 순성의 주기를 정리한 표를 이렇게 깔끔한 도표로 정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그런데 저자는 이 대각선 별시계를 어떻게 활용했을지 알 수 없다고 p216 말한다.

   

 

문체적으로 특이한 부분이 있다.

설화석고의 화학적 특징이 석회 황산염CaS04, 2H20)를 언급했다. p203

한창 인문역사를 이야기하다가 단 한 부분에서 과학적 해상도가 선명해지는 것이 흡사 서울대 국문과 박희병 교수의 1014페이지에 달하는 책 <능호관 이인상 서화평석 1(돌베개, 2018)>에서 그의 회화의 벽돌책에서 그의 회화 64점을 한문체로 평석하는 중에 p426에서만 화학식이 나오는 것과 닮았다. 운모를 찧어 종이를 만들었다는 부분을 언급하며 갑자기 "운모는 규산염 광물의 일종으로 SiO4사면체가 3개의 산소 원자를 공유하여 층상구조를 이룬다"라는 이과적 표현이 부각된다. 유성환의 p243에서 공작석과 방연석 같은 광물용어가 조형예술적 특징과 설명하기 위해 결합하는 정도, 라는 문장도 비슷한 감각이다. p232-233에서 갑자기 중세에서 20세기 전자기술의 압전효과와 물리학 등이 나와 판타레이같은 문체로 변한다. 한편 p91 천문학과 고전학이 교착하는 실험 완전한 문체 통일이 안되어있고 텍스트의 질감이 각기 재료의 분절적 조합인 샐러드에 가깝다.

 

 

 


예를 들어 좋은 부분 이렇다.

p75 <1Q84> 등장인물 가와나 덴고, 아오마메 마사미의 일어한자병기, 伊邪那岐命의 정확한 음차(いざなぎのみ, p96), 심지어 엑스선 형관 부석법 XRF도 풀네임으로 쓰는(p249), 아마의 학명Lunum usitatisimum까지 베푸는(p85)

단순히 한자의 한글독음뿐 아니라 p168 각주에서 장식 띠를 견대라는 한자로 추가병기까지 할 정도다.

네덜란드어 정확한 발음 하위헌스 p206

p250 각주영프단어에 이어 대문자로 시작하는 독일어 명사 정확한 표기

p42 굳이 삭망을 한자로 주어서 그 다음 삭망월에 대해 선명히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p58 옆댕기(辮髮)

p92 단출旦出heliacal rising (혹은 신출)은 처음 알게 되었다.

p99 러시아 민담 웃지 않는 공주 원어로 표기

p160 stasis를 의미하는 정체성은 한자를 停滯性로 병기하지 않았으면 identity를 일컫는 正體性과 헷갈릴 수 있어 표기선택이 적절했다.

p168 전페이지에서 이어진 각주1번에서 이집트의 천문관을 신의 종, 선지자라고 오역한 그리스인에 대한 부분도 흥미롭다

p191-192 대주교이자 천문학자였더 필리포 루이지 질리가 오벨리스크 기단부에 만든 자오선 표시는 한국어로 정보가 아예 없다. 인터넷에 찾아보아도 대개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일본어 등으로만 자료가 찾아진다.

filippo luigi gilij

https://romainfinita.com/los-sampietrini/

 

https://esploraromablog.com/2016/06/06/il-cuore-di-nerone-e-la-sua-leggenda/

 

https://ameblo.jp/trinakria/entry-12695694672.html

 

책에는 오타가 적지 않은데 AI가 최종 글을 배설하지 않았다는 인간적인 증거다. 아래는 오타가 개정판에서는 수정되길 기대하며 적어둔다. 허나 이러한 리스트가 저자의 노력을 폄훼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한다.


주말에 일정이 많아 글을 지금 쓰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 같아 일단 독서 노트를 그대로 옮겨 발행한다. 나 역시 다소 오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오류들은 저자의 정확한 용어를 기술하려는 노력에 대비되어 특히 두드러진다. 앞서 언급한 놀라운 지적 선명도에 대해 옥의 티 같은 것이다.


오타 편집 오류는 이렇다.

1. 프랑스어 관련 오타는 다음과 같다.

p20 각주1번 르메르트 Lemaître 르메트르, p149 아래에서 네 번째줄 d'Églantine e위에 악쌍떼귀 붙여야함

 




2. 아랍어는 모두 표기가 잘못되었고 읽으며 매우 매우 매우 매우 거슬려서 출판사 편집부에서 이 부분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p82부터 시작해 p350까지 내내 아랍어가 분절되어서 너무 거슬린다.


p82 각주1번 세 번째줄 안닐, p83 위에서 11번째 줄 바튼 엘-하자르, p84 두 번째줄 안-날 알아바이드는 철자도 틀렸고, 이어 5번째줄 안닐 알아즈락은 앞 뒤가 바뀌었는데 한글에서 자주 있는 실수, p100 각주14-5번째줄 알니타크, 알닐람, 민타카(참고로 여기서 알닐람의 경우 원래 알니잠al-niẓām(النظام)인데 중세 라틴어에 습합되며 발음이 잘못 굳어버렸다는 점을 지적하면 더 좋겠다), p120 각주 2번 네 번째줄 라마단, p177 위에서 15번째 줄 노루즈, p178 각주 아래서 두 번째줄 니싼, p247 위에서 네 번째줄 파즈르, p269 아홉 번째 줄 세르답, p316 8-9번째 줄, 알주반알주나비, 알주반알샤마리야 (심지어 이도 연음해서 읽으면 알주바닐이 될테지만), p350 일곱 번째 줄 피르만, p371 아래에서 두 번째줄

 

아랍어와 마찬가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는 자음중심 문자체계인 히브리어의 경우 상대적으로 틀림없이 정확히 쓰였기 때문에 아랍어의 右書 역전 표기오류는 상대적으로 부각된다. 예컨대 마겐 다비드(다윗의 별) p242와 창세기 16절의 궁창 라키아 어근 p29 정확히 표기되었다.

 

3. 성각문자 음차에 대한 것은 이렇다.

p353의 카르투슈 안 성각문자 표기가 3wtqrtr에서 t가 아니라 d로 보인다. 물론 이는 로마 황제 아토크라토르의 성각문자 음차이긴 하다.

 

p31 6번째 줄 mqst -> msqt

 

p228 6-3은 아마 이메네티와 이아베티는 제외하고 성각문자만 표 안에 구겨넣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 잘 모르겠다.

 

4. 그리스어

p195 각주1번 여덞 명의 바람의 신 그리스어 표기 중 다 정확하나 πηλιώτης만 아펠레오테스가 아니라 아펠리오테스다.

p358 각주1번 네 번째 줄의 찬가의 여신은 복수표기로 폴리힘니아라면 Πολυύμνια라고 써야하고 그리스어 그대로 읽는며 폴륌니아다.

p362 각주3번에 그리스어로 병기한 유레카의 이중모음 위에 거친 기음표시(῾)가 있기에 정확한 발음은 헤우레카ερηκα. 대중의 인식은 유레카로 고착되었으나 정확한 그리스어 표기를 적었다면 발음도 원어로 써야한다.

 

5. 로마 제정시대 원로원 승인에 따른 신적인 존재라는 divinus 용어를 사용할 것이라면 중세에 변한 ㅂ가 아니라 반모음을 존중해 디위누스divinus라고 하며 좋았겠다. 틀린 것은 아니다.

 

 

첨언으로, 뒷장의 은색 부분이 읽을 때 특이한 그립감을 준다.

 

 

 

p273-276에서 주류 이집트학의 입장에서 오리온자리 상관 이론이 논거가 빈약하다 비판한다. 근거 부족, 비교군과 비정합적, 실용적 이유 부족 등으로 임의적 선택에 의한 비전문가의 왜곡된 낭설이라는 요지다. 이 부분은 마치 서울대 역사학부 고대사 전공 권오영 교수의 서가명강 <삼국시대 진실과 반전의 역사 2020>의 서문과 <미래를 여는 한국고대사, 서울대출판문화원, 2022>에서 제기한 낭설에 대한 비판을 닮았다.

 

 

 

피라미드의 별자리에 대한 부분은 정연식, 경주첨성대의 기원, 주류성: 2023. 가 생각난다.

 

정연식 서울여대 교수는 경주 첨성대가 전통적인 견해인 '천문관측대'가 아니라 선덕여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적 표상라 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77636.html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3180802

   

 

새 학명 Ibis religosa아니고 religiosa
The Sacred Ibis (Threskiornis aethiopicus, formerly Ibis religiosa) is an African wading bird historically worshipped in ancient Egypt as the embodiment of the god Thoth.



약간의 오류를 고친 개정판이 나온다면 모두의 서가에 구비해두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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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매일씁니다 2026-04-02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학명 Ibis religosa아니고 religiosa
The Sacred Ibis (Threskiornis aethiopicus, formerly Ibis religiosa) is an African wading bird historically worshipped in ancient Egypt as the embodiment of the god Thoth.
 
우리가 사랑한 도시 - 역사, 예술, 문화, 미식을 넘나드는 인문 기행
김지윤.전은환 지음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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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도시> 재밌게 읽었다.

피렌체, 교토, 워싱턴 D.C., 에든버러, 암스테르담, 상하이, 파리, 런던 이렇게 동양 2도시, 서양 6도시 총 8도시에 대한 인문기행집이다. 꼭지별로 구조적 공통분모가 있다. 다루는 도시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로 흥미를 돋우는 두 사람의 대화로 포문을 열고, 역사 정치 예술 문화 등 종횡무진하며 이야기하다가 라디오에서 라스트 코멘트하는 식으로 은환on 지윤on하며 한 문단씩 마무리한다. 마치 on air 불 들어 온 것 같다. 대개 이 부분에서 맛집을 다루지만 메인 글에 포함된 경우도 있고, 둘이 아니라 한 명만 등장하기도 한다. 그 도시는 해당 패널이 다녀오지 않은 모양이다. 맛집 소개하는 여행도서가 아니므로 구체적인 식당정보는 없다. 심지어 여행 때 그립다는 이유로 파리 한식당 우정에서 순두부찌개를 먹는다. 이렇게 개인이 솔직하게 생각하고 느낀 도시에 대한 단상이 묻어난다. 비슷한 결의 책이 생각난다. 예컨대 짧은 대화문 형식을 미술사 대중서에서 처음 도입한 양정무의 난처한 이야기 시리즈 역사 정치 문화를 종횡무진하는 고 남경태 번역가의 양서들 시공사에서 나온 김상근의 <나의 로망 로마> <붉은 백합의 도시 피렌체> 연대 졸업 학벌이 느슨한 접점인, 도시와 예술을 통섭한 책을 쓰는 박학다식한 전원경의 550쪽에서 630쪽에 달하는 예술 3부작 시리즈 저자가 역사적 인물을 생각하며 걷고 여행하는 이야기가 포함된다는 아이디어는 아르테 출판사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40여권과 구완회의 <여행하는 일본사> 언뜻 생각해보아도 이런 책들이 떠오른다. 저자들은 확실히 서양을 좋아한다는 점이 글에 드러난다. 과고에는 암기중심 화학생물 vs 원리중심 물리수학파가 나뉘고, 외고에는 문법구조의 알파벳파 vs 표의문자의 한자파가 나뉘는데, 미술사는 동양과 서양으로 취향이 나뉜다. 좋고 나쁨이 아니라 마음의 지향점이 나뉘는 경향이 있다. 에딘버러를 강력 추천했다고 말하고(p115) 피렌체는 정말 들를 곳이 넘쳐난다 감탄하며(p22) 파리는 냄새가 좀 날지언정 일단 너무 예쁘지 않냐 경탄하고(p193) 워싱턴은 지루했던 첫 인상과 달리 살아 움직이는 핫 플레이스로 생각이 달라졌다고(p69) 대화하며 암스테르담은 모든 것이 과하지 않고 그래서 더 만족스러운 곳이라고(p149) 평가하며 런던을 거닐며 연속성의 힘이 대단하다 느끼면서 대영제국 부심이 부럽다고(p238) 찬사한다. 그러나 상하이나 교토를 다룰 때는 이런 도시를 다룰 때는 보이지 않던 미세한 톤의 차이가 보인다. 이를 통해 동양에 대해 다소 박하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교토와 상하이의 장점과 인상적인 포인트는 충분히 설명한다. 허나 서양을 다룰 때는 보이지 않던 투덜거림이랄까 볼멘소리가 약간씩 드러난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던 천황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은 꽤 역설적이다."(p49) 이런 표현은 혹여 번역이 되면 다소 강한 어조라고 느낄 수 있다. 문단의 맥락은 메이지유신이 분기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또, "천황은 궁궐인 교토 어소 밖을 거의 나가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창살없는 감옥이 아닐까?("p52)라는 구절도 있었다. 이어서 광대한 어소에서 견딜 수 있을 것이라 부연설명하나 이때도 서양을 호출해 유비한다. "세계적 소국 모나코 공국 면적의 절반에 가까우니 이런 규모라면..."(p52) 상하이에서는 아트 토이 및 피규머 파매점 팝마트 일화를 언급하면서 고른 몇 개의 박스에 같은 인형이 나와 실망감이 크다(p163)고 고백하고 털게 식당은 가격이 다소 부담스럽다(p170)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런 볼멘소리는 일부이고 AI가 쓰지 않고 인간인 썼다는 점을 드러내는 동시에 저자 개인적인 인상을 진실되게 전했다는 증거로 기능한다. 전체적으로 도시에 대해 긍정적인 톤으로 서술했다. 다만, 짚고자 하는 점은 그저 서양 도시는 압도적으로 기분이 들떠서 신나고 재미나서 썼고 약간의 불편함마저 미화되었는데 동양 도시는 그만큼은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영어가 편해 서양도시는 이해가 빨라 친근함이 느껴지고 배경지식도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거리는 가깝지만 다소 생소한 문화에 언어장벽이 친연성을 다소 떨어뜨리는지도. 책은 물론 미술관 답사기의 외피를 입지는 않았으나 서양은 모두 뮤지엄을 언급하면서 동양에서는 뮤지엄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교토는 문화유산인 금각사와 은각사와 청수사라는 사찰을, 상하이는 조계지와 동방명주 등의 스팟을 다루었다. 이에 더해, 교토의 경우 아서 골든의 <게이샤의 추억> , 도널드 킨의 <메이지라는 시대>, 상하이의 경우 조너선 카우프만의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등 서양인의 도서를 경유해 영미권의 시점으로 이해한다. 다 좋은 도서이고 개인적으로도 재밌게 읽었지만 현지인, 내부자의 시점의 설명이 결여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예술은 국제성이 내제되어있어 정치학자 김지윤의 시각은 이해에 큰 기여를 한다. 동주 이용희는 국제정치학자이자 한국미술사가였고 히라노 겐이치로는 국제문화론을 지어 문화를 정치현상처럼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처음 글에 꼭지별로 공통분모를 간략히 다루었는데 세부적으로 뜯어보자. 1) 다루는 도시에 대한 개인적 관심사로 흥미를 돋우는 두 사람의 대화로 포문을 열고 2) 역사 정치 예술 문화 등 종횡무진하며 이야기하다가 3) 지윤on, 은환on하며 라디오 라스트 코멘트식 대화 한 문단씩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구조적 유사성 속에서 내용적으로는 어떤 라이트 모티프가 있을까? 우선, 구조적으로 걷는다는 모빌리티를 강조한 문장이 나와 드라마틱한 이동성이 느껴진다. 도보이동하는 시각적 묘사가 있다. 아울러, 모든 꼭지에서 미술관과 맛있었던 음식이 등장한다. (영국 미식문화가 악명이 높아서 그런지 런던만 음식이 없고 맥주와 까페 한 마디만 나온다) 그리고 전술했으나 교토와 상하이만 미술관 대신 문화유산, 역사유적, 관광지가 나온다. 예컨대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 T본스테이크 교토의 카레우동과 소박한 뷔페식당과 KULM까페 워싱턴 D.C.의 국립자연사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와 필립스 컬렉션 그리고 포시즌즈 호텔의 스테이크 하우스와 마틴스 태번과 블루 덕 태번 에딘버러의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그리고 위스키, 순대 해기스와 피시앤칩스 암스테르담의 뮤지엄플레인, 반고흐미술관,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 국립해양박물관 그리고 파넨쿠켄과 인도네시아 나시고랭 상하이의 조계지, 동방명주, 털게, 만두 샤오롱바오, 차 파리의 오르세, 루브르, 갤러리 라파예트, 그리고 크루아상(얼마나 좋았는지 p180, p192-193두 번 언급된다), 바게트, 한식당 우정과 세토파 런던의 테이트브리튼, 테이트모던, 내셔널갤러리, 윌리스 컬렉션 그리고 음식은 맥주 한 마디만 나오고 대신 쇼핑만 비중있게 언급된다. -5장 암스테르담에는 지윤on이 없고 은환on이 없다. -8장 런던에는 지윤on이 있고 은환on이 없다. 나아가 각 꼭지에서 인물과 건물과 책이 나온다. 메디치, 미시마 유키오 페르메이르 쏭칭링 벤야민 나폴레옹 셰익스피어 영국왕등등. 건물과 책은 생략. 그리고 가능하다면 도시에서 한국과의 접점을 주려고 한다. 별도의 주제로 다루거나 아니면 한 문장으로 처리한다. 피렌체는 한국직항이 없고 로마, 밀라노를 거쳐온다. (p15) 교토는 서울의 1.36배다. (p61) 워싱턴의 주미공사관과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p87-90) 런던에서 에든버러까지 거리는 약530km..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430km인 걸 생각하면 제법 먼 거리다(p98) 상하이 임시정부(p168-170) 파리의 한식당(p204) -그리고 앞서 on이 하나씩만 있던 것처럼 5장 암스테르담과 8장 런던에는 일단 한국언급은 없다. 에필로그에서 전은환은 모든 사람의 여행은 저마다 다른 모습이라 말한다. 인문예술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 책에서 정치학자와 경영전문가가를 닮은 여행의 모습은 어떤지 알 수 있다. 한 사람이 같은 도시에 다시 갔을 때 얻는 경험도 매번 달라진다하니(p246) 다음 번에는 동양은 조금 더 너그럽게 보아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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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중한 성공회 사제이자 여자인 Fleming Rutledge가 쓴 By the Word Worked는 세미나리에서 진행된 강연을 바탕으로 쓴 세 부로 이루어진 짧은 설교집이다. 인간의 도덕적 결함이 신의 행위를 무효화하지 못한다는 고갱이로, 특히 성례의 효력이 집전자 개인의 윤리적 상태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제목은 라틴어 ex opere operato의 직역이자 핵심논제로 2부에서 집중적으로 논한다.


읽는 중에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흥미로운 책이 떠올랐다. 부르디외의 제자로 문화사회학을 연구하는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이자 여자인 Gisèle Sapiro가 쓴 책, Peut-on dissocier l'œuvre de l'auteur, 작품을 작가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가다. 창작자의 행위와 작품의 가치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며 이를 소비하는 우리의 윤리적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 우리가 신뢰하는건 행위의 순수성인가 아니면 약속의 지속성인가? 에 대해 충돌시켜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정답은 없고 해답만 있다. 접근방식을 더듬어 보는 훈련을 거친 독자 개개인이 알아서 판단해야한다.


신학자인 루틀리지의 생각은 효력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성례를 인간이 수행하는 종교적 행위이 아니라 신이 약속한 방식으로 역사하는 사건으로 본다. 따라서 성직자는 매개자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런 입장에 따르면 성직자의 치명적인 실수에 의한 도덕적 타락은 성례의 객관적 효력을 훼손하지 않는다. 신자는 인간의 도덕성에 의지하지 않고 신의 약속에서 믿음의 근거를 정초해야한다. 만약 성례의 유효성이 매번 집전자의 상태에 따라 흔들린다면 공동체 전체가 영적 불안정 상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이 지점을 방어하며 실용적인 안정성을 제공하려 한다. 인간은 불완전하다고 전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총은 작동한다고 말한다.


사피로라면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작품은 결코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작품은 생산, 유통, 수용이라는 촘촘히 조직된 네트워크 속에 존재한다. 창작자의 행위는 그 네트워크 안에 존재하고, 작품의 의미를 상호구성한다. 사생활이 문제된 영화제작자 등, 타락한 창작자를 너무 도덕적으로 매도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을 완전히 자율적인 것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작품을 여전히 소비하는 행위는 그 작가의 상징 자본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에 조심해야한다는 것이다. 의미의 생산은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신자를 관객, 성례를 작품, 성직자를 창작자로 일단 거칠게 치환한다면


루틀리지나 사피로나 사람의 도덕적 타락은 권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생겼을 경우 막을 수 없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신자=관객은

성직자=창작자라는 인간과, 그들이 행하는 성례=작품을 구분하자는 데까지는 함께 할 것이다.


이후 루틀리지는 성직자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성례는 여전히 지속된다고 주장할 것이고

사피로는 계속 참가하면 창작자의 의미생산 네트워크와 상징자본을 공고히하니 주의해야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둘은 갈라져서 루틀리지는 성직자는 창작자가 아니라 매개자이고, 진정한 창작자는 신이라고 주장할 듯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루틀리지

핵심: 성례의 효력

기준: 신의 약속

변수: 인간은 신뢰할 수 없다.

충돌지점: 타락한 성직자가 있다손해도 성례는 지속되고 신자는 영향받지 않는다.


사피로에게

핵심: 작품의 의미

기준: 사회적 맥락

변수: 인간 행위는 의미를 바꾼다.

충돌지점: 타락한 창작자의 작품소비는 관객이 주의해야한다.


이런 입장이 제출되는 까닭은 루틀리지는 효력은 인간을 초월한다 생각하기 때문이고 사피로는 의미는 인간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떄문이다.


사피로의 입장에서 루틀리지는 한층 더 비판해보자면 제도적 면책 위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어차피 성례는 유효하다는 논리는 성직자의 도덕적 책임을 상대화하고 권력 남용을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아가 공동체 신뢰가 붕괴될 수 있다. 왜냐하면 성례의 객관적 효력과 별개로 신자들은 인간을 통해 경험하기 떄문에 집전자의 타락은 성례의 체험적 의미를 훼손할 수 있다.


아울러 문제가 되는 성직자가 계속 성례를 집전한다면 상징자본과 권위는 유지된다. 문화적 정당성이 재생산되는 것이다.


사피로의 이러한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루틀리지는 이렇게 반박하리라.


은총은 인간의 도덕성보다 더 크다. 만약 성례를 인간 윤리에 종속시키면 구원의 확신이 붕괴된다. 제도와 효력은 구분되어야 한다. 당연히 타락한 성직자는 징계되어야 하지만 그가 집전한 성례까지 무효화할 이유는 없다. 신자의 신앙 보호에 대해서도, 이미 받은 성례의 유효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신앙 자체를 흔드는 일이다.


이런 프레임으로 미국의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특종 탐사를 다루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스포트라이트(2015)>를 다시 생각해보면 재밌겠다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두 입장은 양립불가능하지 않고 화해시킨 후 이중구조로 모델화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성례는 객관적 효력을 가진다는 성공회 신학자와

그러나 그 의미와 경험은 관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학자의 논쟁이다.


이를 합치면

효력은 신에게서 오지만 의미는 공동체 속에서 형성된다고 합의가 가능하다.


성례는 유효하지만 타락한 성직자는 공동체에서 배제되어야 하며 신자들이 느끼는 상처 역시 신학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야한다.


아울러 수행성을 경유해 논리를 보강해볼 수도 있다. (요즘 퍼포먼스 전시를 많이 봤기 때문에 생각해본다)

언어행위적으로 성례는 말해지는 순간 발생하는 사건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수행은 화자의 신뢰성에 영향을 받지 않는가


이런 접근으로는 모든 성직자(매개자)를 발화에서 분리시켜 기계적으로 행위자화 시키는 ex opere operato는 지나치게 형식주의적이다.

관계 네트워크를 맹신하고 모든 창작 소비자가 높은 수준의 지적 윤리적 능력을 지녔다 전제하는 사피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작품과 작가의 완전한 분리도 완전한 동일시도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성례는 신의 행위면서 동시에 신뢰 위에 서 있는 수행이다. 즉, 완전한 분리도, 완전한 동일시도 불가능하다. 


신학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사회학은 불확실성을 드러낸다.

신학은 신자의 확신을 보호하고 사회학는 윤리적 긴장을 유지한다.


그렇지만 신학와 문화사회학, 즉 종교와 예술은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고 비슷한 결의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매개자의 타락이 전달되는 진리를 훼손하는가? 

설교자와 작가는 같은가? 

같다면 작가(창작자)의 사생활문제가 그가 표현하는 작품감상을 방해하는가?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가? 

우리가 신뢰하는건 행위의 순수성인가 설교자의 아니면 약속의 지속성인가? 


앞서 언급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 뿐 아니라  넷플릭스 왜 보나 성해나 소설 보면 되지의 <혼모노>에 수록된 길티 프레져도, 어제 넷플 등 OTT에 대거 풀린 홍상수의 영화들도 이런 프레임으로 톺아보기 좋은 생각의 재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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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의 글은 N2 수준에서는 꽤 좋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한 시간 동안 읽고 한 권을 한 달 걸려 읽겠지만 모든 학습과정이 그렇듯 시간이 지날수록 빨라진다. 재미없고 지루한 인고의 과정을 견뎌낼 수 있는가, 에 관건이 달렸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문고본이 주는 작은 평화는 덤이다.

그러나 그 소확행에 안주하면 곤란하다. 김영민 교수는 지적 영양실조를 주의하라 하였는데 마스다 미리의 글이 그렇다. 늘 비슷비슷한 주제의 일기형 에세이다.

특정 문형을 눈에 익히고 10자 이상의 글자로 이루어진 관습적 어미를 한 큐에 넘어가는 훈련을 하는데는 좋지만 어느 수준에 올라서면 졸업할 필요가 있다. 공회전이 정상정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역사, 경제, 정치,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어휘를 제공하는 다른 호흡의 글을 읽어야 실력의 퀀텀점프를 할 수 있다

시오노 나나미를 집었다가 너무 어려워 포기했었다.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지만 다시 집어도 여전히 난해하다. 언젠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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