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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도대체, "가족"이란 무엇일까. 때로는 남보다도 못하고 (남에게 잘 못하는 비수 꽂는 말들도 가족에게는 가능하다.) 때로는 이 세상 천지에 혼자라는 외로움에 치를 떨 때 그래도 그 순간 생각나는 사람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갈 데 없는 나를 받아주고 마지막까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가족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막 대하기도 하고 더 미워지기도 하며 더 극한 틈이 생기기도 한다. 바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가족>>은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대체 이 가족이 가족이기나 한 걸까...싶을 정도로 혈연의 시작부터 각자의 이해 관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다. 가족의 끈 같은 것은 전혀 없을 것 같은, 스무 살이 넘자 각자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만의 삶을 이어오던 이 가족이, 결국 각자의 손에 남은 것 하나 없이 하나 둘 엄마의 집으로 모여든다. 평균 나이 사십 구세. 자식들은 각자의 삶에 성공하여 가식적으로라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번듯한 생활을 해야 할 그 나이. 이 가족은 그 나이가 되어서야 다시 엄마 밑으로 모여들며 지난 날 그들이 풀지 못했던, 혈연과 이해 관계의 끈을 조금씩 잡아당겨 본다.
"일찍이 꿈을 안고 떠났지만 그 꿈은 혹독한 세상살이에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혼과 파산, 전과와 무능의 불명예만을 안고 돌아온 우리 삼남매를 엄마는 아무런 조건 없이 순순히 받아주었다. 그리고 그 옛날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 다시 끼니를 챙겨주기 시작했다."...39p
"밥 챙겨 먹었니?" "끼니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라.".... 하루에 한 끼쯤 굶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자식들에 비해 우리 어머니들은 유독 "밥"에 강한 집착을 보이신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자식이 자라 그의 자식을 보면, 또 밥 타령이다. 우리에게 밥은 "애정"이며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다. '나'의 엄마는 다 큰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어도 좌절의 시기에, 다시 자신의 보호 아래로 들어온 것이 마냥 기쁘다. 그리고 다시 재충전하여 밖으로 나갈 힘을 주기 위해 "밥"을 챙겨주는 것이다.
주인공 '나'가 밝혔듯이 삼류 막장드라마의 끝까지도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소설은, 하지만 사실 중심이 그 삼류의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닌, 이들의 심리와 이들간의 관계와 어머니 밑에서 다시 사회로 내디딜 수 있었던 "가족"에 있기 때문에 훌륭하다. 서먹하고 연대감이 없던 이 막장 가족은 좁은 공간에서 살을 맞대고, 함께 식사를 하며 어려운 경험을 함께 쌓았기 때문에 진짜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란 단지 혈연에 갇혀 있지만은 않다는 것. 그보다는 함께 생활하고 함께 이해하고 함께 경험하는 데서 온다는 것.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가족은 혼란스럽고 위태로웠던 과거와 화해하고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또한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었지만 패티김의 노래가 울려퍼지던 그날 아침만큼은 우리 집도 평화로운 가정이었다."...244p
무겁지만 무겁지 않은, 재미있지만 가벼지만은 않은... 좋은 작품을 읽었다. 한국 소설에서 이렇게 중심이 잘 잡힌 작품을 접할 때면 정말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