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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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었다. 책 등에도 "히가시노 게이고"라고 씌여있음에도 어디선가 들어본 제목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오쿠다 히데오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음..ㅋㅋ 사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몇 년 전에 끊었다. 워낙 다작가인 작가의 작품을 연달아 읽다가 너무 비슷해서 이젠 안 읽기로 결정했지만 오랜만이라 읽어보기로.

<방황하는 칼날>은 2004년 출간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2008년 다른 출판사와 다른 번역가로 출간되고 2014년 영화화된 것 같은데, 하빌리스 출판사에서 민경욱 번역가의 번역으로 2021년 다시 출간되었다. 하지만 읽는 동안 지금 이 시대와 전혀 그 간극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히가시노 게이고가 시의성 있는 작품을 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화화가 당연하게 느껴질 만큼 첫 페이지부터 숨 쉴 틈 없이 진행된다. 사실 그동안의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들을 생각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처음부터 너무나 강력한 사건이 발생해서 하마터면 우울해서 책을 내려놓을 뻔. 하지만 또 그 뒤를 이어 다른 사건이 이어질 듯한 느낌에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건들은 "소년범"이라는 강력한 시의성을 포함하고 또한 우리는 누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지키려 하는가라는 문제를 던진다.

그러니 "방황하는 칼날"은 도대체 그 칼날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일 게다. 때문에 책 마지막의 장치까지 포함해서 <백야행>이나 <라플라스의 마녀>를 읽었을 때처럼 다시 한 번 작가의 대단함을 깨닫게 된다. 이제 한국에서 만든 영화도 한번 보고 싶다. 일본에서는 드라마도 만들었다는데 어떻게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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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온 더 트레인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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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철보다 버스를 더 좋아한다. 다른 가족들은 시간이 더 정확한, 절대 밀리지 않고 제 시간에 딱딱 데려다주는 지하철을 더 선호한다. 하지만 나는 다소 밀리더라도(그만큼 더 일찍 출발하면 되니까) 바깥을 구경하면서 가는 이동수단이 훨씬 좋다. 어쩌면 나 말고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유난히 자주, 더 잘 보이는 어떤 건물이나 가게가 있다면 매일 같은 길을 지나며 나름의 상상을 부풀리며 관찰할지도 모른다.

여기, 그런 여자가 한 명 있다. 아침과 저녁, 런던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집들을 바라보는 여자. 그 중 어느 한 집, 한 부부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들 부부의 완벽한 모습을 보며 자신과 비교한다. 아니, 자신의 우울하고 불행함을 모두 그들 부부가 대신 채워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매일 그들을 바라보다 보니 상상은 자꾸 부풀려지고 그러다 그들 부부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마음껏 생각해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그들 부부의 어떤 균열을 목격하게 되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그들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 관찰녀, 레이첼은 그러니까 불행한 여자다. 왜 불행한지는 스포가 될 수 있으니 생략...^^ 어쨌든 그런 그녀가 다른 사람을 관찰하며 대리만족한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무너진 그녀의 삶 속에서 레이첼은 어느새 알코올중독자가 되어버렸고, 그런 그녀의 신원이 일을 점점 미궁 속으로 밀어넣는다.

다른 사람을 너무 깊이 관찰하는 관음증이나 경찰을 통하지 않고 직접 나서는 오지랖, 무엇보다 자신의 상태보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탓하는 레이첼 때문에 읽는 내내 얼마나 고구마였는지 모른다. 제발 술 좀 끊으라고! 라는 외침이 수도 없이 계속됐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불행의 늪에서 이미 중독자가 되어버린 상태에서 어쩌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너무나 깊이 빠져 읽다 보니 고구마가 되었을 수도.

소설은 기차가 폭주하듯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범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범인이 아님을 알게되는 순간! 으악! 하고 소름이 돋는다. 하하...언제나 누구든 의심하라. 드라마 볼 때는 잘만 유추하는데도 스릴러, 미스테리 소설 읽을 때는 잘 안 된다. 결국 이번에도 틀림..ㅋㅋㅋ

사람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가. 어쩌면 누군가를 더욱 사랑할수록, 더욱 신뢰할수록 더 쉽게 조종당할지도 모른다. <걸 온 더 트레인>은 평화로운 아침과 저녁 기차 속 풍경과 그 일상 속에서 얼마나 큰 이질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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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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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낮의 연애>나 <복자에게>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작가, 김금희. 왠지 나는 한국 문학에 잘 손이 가질 않는 습관 때문에 신간보다 한참 지난 책들을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최근 계속해서 약진하고 있는 한국 여성 문학에 박수를 보내고 있던 독자로서 또 한 권 읽어본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언급해서 유행했던 소설. 또 한 타임 지나서~^^ 어려운 소설이 끝난 후 가볍게 읽어볼 소설로 선택. 읽을 책을 고를 때 대강 누가 언급했다던가, 어디서 유명해졌다든가 정도는 알지만 내용은 항상 모른 채 읽게되는 나의 습성으로 인해 그저 읽기 쉽겠지, 재밌겠지~라는 마음으로 선택했지만 곧 심각해지는 내용으로 잠깐 멈칫, 그럼에도 가독성으로 감방 읽어버렸다.

딱 생각했던 만큼 좋았던 소설이다. 창경국 내 대온실의 수리보고서를 맡게 된 영두가 자신의 어린 시절 속 장소와 맞닥뜨리게 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나는 좋은 부분을 오려내 남기지 못하고 어떤 시절을 통째로 버리고 싶어하는 마음들을 이해한다. 소중한 시절을 불행에게 다 내주고 그 시절을 연상시키는 그리움과 죽도록 싸워야 하는 사람들을.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 무거운 무력감과 섀도복싱해야 하는 이들을. 마치 생명이 있는 어떤 것의 목을 조르듯 내 마음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을 천천히 죽이며 진행되는 상실을, 걔를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가르쳐주었다. "...156~157p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은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다. 나만의 가치관과 방법들이 생겨난 이후일 테니까. 하지만 어린 시절 겪은 어려움, 상처, 구멍은 잘 메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게 성장소설들이 많은가 보다. 우리는 그 상처들을 계속 들여다보며 조금씩 돌보고 고름을 짜냈다가 연고를 발랐다가 하면서 계속해서 돌봐야 한다. 그 상처를,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평생 나 자신을 괴롭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엉망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영두와 은혜의 딸 산하의 관계가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또한 문자 할머니의 사연이 얼마나 가슴 아프던지. 역사와 현실, 아이와 성인 사이의 이야기를 아주 잘 버무려 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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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 일기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3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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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가 1918년 36세부터 1941년 59세 죽기 나흘 전까지 썼던 일기 26권 중 사후 남편이 책과 관련된 부분만 모아서 출간한 <A Writer's Diary>를 번역한 책이다. 무려 611페이지의 책이라 한꺼번에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그 구상이 어떤 과정을 통해 소설이나 에세이로 씌여지고, 출간되고 그 이후 자신의 책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가감없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한권 한권 읽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면서 동시에 <울프 일기>를 구석구석 함께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한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울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울프 일기>를 읽으면 버지니아 울프는 정말 천재였구나...싶다. 때때로 글에 대한 아이디어가 샘솟고 그것들을 그렇게 그냥 써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새로운 방향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하지만 여성이 비하받던 시절이고 너무나 뛰어난 이 여성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남성들에 의해 헐뜯어지고 그 반응에 요동치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울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조금 여유로울 수는 없었을까 싶다가도 너무나 뛰어난 인물이 그런 세상에서 어떻게 버티고 살았을까 싶어 너무나 안타깝다. 특히 마지막 유서...를 읽고 나면 그 안타까움에 정점을 찍는다.

솔출판사 고독자 미션을 통해 한 작가의 책을 깊이 있게 읽다 보니 훨씬 더 작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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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트 -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
제레미 모로 지음, 박재연 옮김 / 웅진주니어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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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큰 판형의 양장본에, 오로라처럼 아름다운 형광빛이 아름다운 표지 속 홀로 앉아있는 개구리가 눈에 띈다. 소제목이 "어느 작은 개구리 이야기"이니 아마도 이 개구리가 주인공일 게다. 알리트의 엉덩이 쪽에는 뭉실뭉실 기저귀를 찬 것처럼 무언가가 붙어있다. 곧 그것이 개구리 알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고 알을 업고 다니는 이 개구리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 궁금해진다.

몇 년 전부터 아이와 그래픽 노블을 접하면서 그래픽 노블이 줄글 소설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말은 줄이고 그림으로 표현되는 이 그래픽 노블은 분명 아이들 눈높이이지만 굉장히 심오한 철학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들이 많아 정말 매력적이다. 아이도 긴 줄글보다는 훨씬 부담이 적으니 자주 즐겨 읽는다.

<알리트>는 개구리가 주인공이어서 사실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했지만(고학년 아이 입장에서~) 워낙 매력적인 표지와 안쪽 페이지의 예쁜 색감 덕분에 역시나 금방 들고 읽게 된다. 하지만 초반, 개구리 알을 업은 개구리 한 마리가 레탈리트라고 불리는 도로(아스팔트)를 건너다 차에 치이는 끔찍한 장면을 맞딱뜨리게 된다. 하지만 그 개구리는 램포트라는 연못으로 아가들을 데려가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한 연못 속으로 빠져 죽는다. 그 개구리알 중 단 한 마리!가 알을 깨고 나와 세상을 향해 헤엄친다. 그가 바로 알라트다. 책은 그 알리트가 점점 자라며 자신의 부모와 똑같은 과정 속에서 접하게 되는 나쁜 세상(환경오염으로 썩어가는 지구 속에서 아스팔트 도로에서 수없이 로드킬을 당할 수 있는)과 그 세상을 바꾸어보려는 노력을 담고 있다.



처음 알리트가 조금씩 성장하며 만나는 주변인을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은 우리 소설 안도현님의 <연어>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연어>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이라면 <알리트>는 분명한 주제, 사람들의 이기적인 개발로 썩어들어가는 세상과 그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동물들의 노력을 담고 있다. 또한 알리트가 성장해가는 와중에 만나는 이들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최근엔 터널을 만들 때 생태통로를 만든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편하려고 만든 도로는 여기저기 끝이 없고 살 곳이 없어진 동물들은 먹을 것을 찾아,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옮기려다 로드킬을 당하기 일쑤다. 로드킬의 문제만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태양으로부터 만들어진 생명이다. 함께 상생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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