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무리들 앞으로 다가가자 뱀파이어들은 홍해가 갈라지듯 양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레고리는 뭔가를 들은 것처럼 자리에 우쭉 멈쳐섰다.
[입구 쪽에서 침입자의 소리가 나는데..]
그레고리가 중얼거렸다. 그들은 귀를 세우고 동쪽을 바라보았다. 나에게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그들은 무엇인가가 정말 들리는지 다급히 뛰어갔다. 아마도 그가 만들어낸 환청 같았다. 그는 그들을 보며 큰 소리로 웃다가 나에게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빚은 반드시 받을테니 잊지 말도록..]
그는 손을 올려 내 얼굴을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뒤에서 이 모습을 본 기웅이가 으르렁댔지만, 그는 조금도 신경쓰이지 않는 듯 내 귀를 어루만졌다. 나는 참기 힘들 정도로 소름이 돋았지만 스승님을 아직은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 없어 눈을 감고 참으려 노력했다. 마침내 그의 손길이 사라진 걸 느끼는 순간, 눈을 떴다.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또다시 소리없이 사라진 것이다.
[가자]
나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뱀파이어 무리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내 뒤로 따라오는 프릭스들에게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전력으로 달렸다. 몇 개의 건물을 지나 주차장 근처에 도착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차가 한 대도 세워져 있지 않은 넓디 넓은 공터에는 개미 그림자도 없을만큼 깨끗했다. 나는 프릭스들을 바라보며 먼저 숲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에스더와 오소리들이 괜찮은지 확인하고 알려달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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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기웅이는 무사히 스승님을 차에 실어 집으로 돌아왔다. 스승님을 본 아주머니는 너무 놀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주인어른..]
그녀는 나와 기웅이가 침대 위에 그를 조심스럽게 눕혀놓자 엉금엉금 기어와 울며 매달렸다. 그의 심장 위에 박힌 말뚝은 다행이도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제가 살릴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가씨..하지만..]
나는 오열하는 아줌마를 붙잡고 단호하게 말했다. 기웅이는 멀뚱하니 서서 우리를 바라보다가 어떻게 해야 살아날 수 있냐고 물었다. 아줌마가 대답을 하려는 찰나에 나는 그녀의 어깨를 눌렀다. 그가 방법을 알아 좋을 것 없다는 뜻으로 아줌마의 눈을 쳐다보며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목숨을 내놓으려고 한다는 걸 안다면 그는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 분명하니까.
나는 주방으로 가서 혈액 팩을 많이 꺼냈다. 몸 안에 부족한 피를 최대한 채워야 스승님께 도움이 된다. 파카글라스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데 오늘따라 피냄새가 유난히 역하다. 입에 넣기도 전에 이러면 먹기가 더 고역스럽다. 나는 눈을 꼭 감고 한 잔을 비웠다. 그리고 바로 두 잔째를 마시고, 다시 세 잔과 네 잔을 깨끗이 비웠다. 위는 평소에 먹 던 양에 비해 몇 배나 될 엄청난 액체가 계속 들어오자 울렁이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도 끊임없이 구역질로 인한 가스가 차, 잔을 들고 마시기가 버겁고 고통스러웠다.
[아가씨, 그만 드세요]
아줌마는 덜덜 떨면서 울먹였다. 나는 아무 대꾸 없이 그 잔을 들어올렸다. 머리와 심장이 더는 먹지 말라고, 먹으면 다 뱉어버리겠다고 위협하지만 스승님을 위해 입 안에 넣고 손으로 꾹 눌렀다. 다섯 잔, 여섯 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곱째 잔을 마신 후 의자에 털썩 앉았다. 단 한 방울도 뱉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고개를 뒤로 꺾어 천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