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책들의 미로
발터 뫼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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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작가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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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예상대로 숨을 쉬지 않았다. 뱀파이어가 되면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하는데, 그 속엔 당연히 숨쉬기도 있다.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공기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만약 수영장에라도 간다면 숨을 안 쉬는 모습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겠는가. (스승님은 내가 연습 끝냈다고 했더니 수영장 물속으로 던져 버리셨다, 얼마 뒤에 물 위로 공기방울이 뽀글거리자 그제야 인정해주셨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내쉬고 들이쉬기가 될 때까지 무한 연습을 한다. 나처럼 약간 비리비리하고 능력이 부족한 뱀파이어는 일주일이 넘도록 걸리고, 천재성이 있는 경우는 1분? 1시간? 하여간 그 정도면 마스터한다. 

[이봐요? 내 말 들려요?] 

그녀가 숨을 쉬지도 않고 움직임도 없는 건 분명하지만, 만약 뱀파이어로 변신이 된 것이라면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초창기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청각이 제일 빨리 돌아왔으니까. 

[나도 당신처럼 뱀파이어에요. 내 목소리가 들리면 손가락 끝을 움직여봐요] 

1분..2분..손가락은커녕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갸웃하는데 밖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는 좀 멀듯 하지만 분명 남자의 목소리다. 순간 나는 그녀의 등 쪽으로 두 팔을 밀어 넣고 들어올렸다. 문 쪽으로 다가가 다시 한 번 목소리와의 거리를 가늠해본 뒤 닫았던 문을 발끝으로 열고 나왔다. 내가 들어왔던 벽돌문을 향해 걸어가는 만큼 그 목소리도 가까이 다가와 거리가 조금씩 좁혀져는 게 느껴졌다. 남자는 둘...혹은 셋인데, 나머지 한 명의 느낌이 순수한 뱀파이어 같지 않았다. 반인반뱀이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종류인 듯한 그르렁거리는 숨소리에 온 몸의 털이 곤두섰다. 끝이 없는 듯한 복도를 살금살금 걸어가면서 나는 왜 이 여자를 데리고 나왔는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다. 혼자 도망치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갈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게다가 뱀파이어가 된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그런 여자를... 

[아마도 그녀에게서 너의 과거를 보는 것 같아서..아닐까?] 

머릿속으로 기웅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내 생각을 읽고 답을 찾아준 것이다. 평소 같으면 허락 없이 들여다봤다고 화를 낼 테지만, 지금은 그 말이 망치처럼 후두부를 강타했다. 그 충격은 곧 내 몸 전체를 부르르떨리게 만들었고 더이상의 고민없이 그 여자를 등쪽으로 돌려 업었다. 몸을 돌리는 순간, 희미한 소리들은 어느새 지척에서 느껴져, 제발 그들이 그냥 지나치기를 기도했다.

츠르르르..츠르르르... 

땅에 질질 끌리는 듯한 발자국 소리가 점점 느려지며 뭔가 탐색하는 듯한 느낌이 들자, 내 희망은 공중으로 흩어지듯 무너져버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한후 그녀를 다시 한번 고쳐 안고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가장 가까운 방의 문을 연 후, 그들의 실루엣이 옅은 불빛을 배경으로 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안으로 다시 숨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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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비 2012-07-0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앗 ㅜㅜ 이것으로... 끝인가요.ㅋ.ㅋㅋㅋ
아쉬워라
 

 

 

 

바닥에 쪼그려 손톱을 바짝 세우고 두 손을 문 아래쪽의 문틀 사이에 끼웠다. 지속적으로 힘을 주며 문틀을 눌렀다. 조금씩 조금씩 문과 문틀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몇 분 동안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드디어 내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가 되자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힘을 쥐어짰다. 손가락 끝의 감각은 문이 조금씩 밖으로 나오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이에 고무되어 손가락을 구부리며 당겼다. 생각보다 무거운 문이 마침내 내 한 몸 들어갈 정도로 열리며 어둠을 내뿜었다. 나를 반겨주는 빛은 전혀 없지만, 흐릿하던 소리가 좀 더 진해졌고, 익숙한 피 냄새도 다가왔다. 이 곳에는 분명 뱀파이어가 하나 혹은 그 이상 있는 게 분명하다. 나는 다시 한 번 침을 삼키고나서 몸을 옆으로 돌려 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문은 안 쪽에 손잡이가 있었다. 등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 이제 어둠은 더욱 짙고 음습해졌고, 나는 그 안에서 앞으로 걸어가야만 한다, 오로지 발과 몸의 감각에 의지해서. 문을 닫기 전에 본 기억으로 복도 같은 느낌의 길이 뻗어 있었다. 한 발씩 천천히 아기가 걷듯이 전진했다. 팔을 양쪽으로 쭉 뻗어 십자가에 매달린 듯한 자세로 손에 걸리는 물체가 없는지 더듬었지만, 의외로 복도벽은 벽지를 바른 듯 매끈했다. 일반적인 문이나 유리창이 전혀 없는 긴 골목길의 느낌이라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설 때의 긴장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윽! 아야!] 

드디어 삼차신경통이 끝나면서 송곳니가 튀어나왔다. 잇몸을 찟고 나오는 느낌이 몸서리치게 고약해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졌다. 메아리가 되어 퍼지는 내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떨며 자리에 멈쳤다. 혹시라도 귀밝은 뱀파이어가 들었다면, 이리로 달려올테니 침입자인 내에게 좋은 대접을 해주겠는가. 그런 이유로 검은 복도를 노려보며 벽에 바짝 붙었다.  

1분..2분..3분.. 

속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감안해보는데, 이상하게도 나를 향해 오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운이 좋게 그들이 듣지 못한 듯 하다. 소리 없는 한숨을 크게 내 쉰 후, 다시 팔을 양 쪽으로 뻗어 벽을 집어가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세상에 모든 건 끝이 있듯이 깜깜하고 음습한 복도에서 마침내 문으로 추정되는 곳이 나타났다. 몸을 돌려 두 손으로 살살 더듬어 허리 정도 높이에 달린 길고 가느다란 손잡이를 찾았다. 두 손으로 최대한 조심스럽게 잡아 당겼다.  

무겁고 육중한 문이 조금씩 열리자 흰색의 빛이 복도에 길게 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이 빛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침을 삼킨 후 방안을 둘러보았다. 건너편에는 창문이 있는 듯하나, 두껍고 붉은 커튼이 완벽하게 쳐져있어 외부를 볼 수 없었다. 대신 천장에 달린 형광등이 방 안을 비추어 주었다. 그 빛에 처음으로 인식된 물체는 쇼파에 누워있는 여자였다. 자고 있는지 몸은 쭉 뻗은 채, 고개가 뒤로 푹 꺽여 상당히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인형을 가져다가 눕힌 느낌..  

그녀에게 살금살금 다가가 상체를 수그렸을 때, 목에 생긴 붉은 반점 두 개가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상처는 두 개의 송곳니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피를 흡입한 후, 독으로 잘 마무리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채 여전히 고개를 뒤로 꺽여 있어 손을 살짝 콧구멍에 가져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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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올 생각 하지마] 

그가 뒷걸음질쳐 문을 열고 나간 후, 주인 여자는 한숨을 쉈다. 문득,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난한 불량배 뱀파이어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먹이감은 없을테니까. 

[괜찮아요?] 

예상대로 주인 여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으로 툭툭 턴 후,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곧바로 텅 빈 냉장시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문을 닫아야겠네요. 팔 게 없으니..] 

그녀의 말에 퇴장해야할 때란 걸 느꼈다. 주머니에 있는 묵직한 돈이 이처럼 소용 없는 상황도 있구나..하며 터덜터덜 편의점을 나왔다. 내가 문을 닫자 간판을 비추며 춤추듯 반짝이던 전구의 불이 꺼졌다. 이어 편의점 안의 불빛들도 하나 둘씩 나가는 게 보였다. 왠지 쓸쓸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마지막 불까지 나가는 걸 확인한 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뱀파이어가 되면 부자가 되고, 아름다워지는 줄 알았다. 나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뱀파이어가 되라고 부추긴 남자 때문에 생긴 오해지만, 나는 너무나 어리고, 허영심에 가득차 진심으로 그렇게 된다고 믿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연예계에 있거나 그정도의 미모를 소유한 사람들이라, 지독히도 평범한 내 얼굴이 항상 불만이었으니까. 그걸 정확하게 꽤뚫어본 남자는 아름다워질 수 있냐는 내 질문에 1초도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아름다운가? 티비나 영화에 나온 뱀파이어들처럼 그런가? 불꺼진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인간이었을 때와 조금도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작은 키, 마른 몸매, 낮 은 코와 한국인 특유의 작은 눈. 딱 하나 아름답다고 할만한건 사슴같은 목 선이다.  

[음?]  

쇼윈도 앞에서 고개를 조금씩 돌려가며 나 자신을 훑어보는데 그리운 피 냄새가 느껴졌다. 1킬로 안에서 나는 모든 냄새과 기척을 감지할 수 있게 된 후부터 피는 더 강하고 매력적이 되었는데, 바로 그 피맛이 코를 자극했다. 그 순간 내가 하루를 꼬박 굶었음을 깨달았고, 곧이어 주변에 걸어가는 이가 없음을 확인한 후, 몇 초 만에 500미터를 이동했다. 피 냄새가 나는 지점은 강도의 습격을 당한 편의점에서 네 번째 골목이었다. 성인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서면 약간 비좁을 듯한 작은 골목으로 바닥에 혈액팩이 떨어져 있었다. 아마도 먹다 버린 듯, 약간의 피가 팩 안에 들어있고 그 피의 향이 계속 느껴졌다. 나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주워서 입을 벌리고 팩 안의 혈액을 부었다. 어찌나 좋은지 목과 위가 꿀렁꿀렁 소리를 지른다. 한 방울의 피라고 더 마시고 싶은 생각에 팩을 쥐어짜며 고개를 뒤로 졌혔다. 그 때 골목의 맞은편이 눈에 들어왔다. 대충 훑었을 때는 어둠에 감싸인 막다른 벽돌담이라고 생각했는데, 배를 약간 채운 후 밝아진 눈으로 보니 담인척 하는 문이었다. 아마 인간은 100프로 담으로 알고 가보지도 않겠지만..  

 

바닥에 버려진 과자봉지들을 밟을 때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릴 뿐, 이 순간 골목은 완벽하게 정적을 유지했다. 마치 나와 골목만 존재하는 듯한 기분에 침을 꿀꺽 삼키며 세 걸음 만에 문 앞에 당도했다. 손바닥으로 문을 훑고 건드려보았지만, 밀리거나 열릴 기미가 없었다. 안에서 밀어야만 열리는 구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돌 껍데기로 장식된 문과 1센치도 안되는 틈을 가진 문틀 사이에서 뭔가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예전의 나라면 절대로 듣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진동이라 새삼 업그레이드 된 능력에 감탄하며, 돌아갈까 열어볼까 갈등에 휩싸였다. 항상 그렇지만, 호기심은 예측불허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는 지름길이 아니던가. 이거참..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호기심에 지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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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점을 열기 직전에 피를 마셨는지 양 볼은 분홍색이고, 눈은 반짝거리는 검정 앵두같다. 게다가 옷이 참...스트리퍼가 오면 동료라고 부르고도 남겠다. 다시 눈을 들어 붉고 탱탱한 입술에 시선이 가는 순간, 그녀는 공짜로 피를 마실테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여기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 

나는 그녀에게 고개만 까딱한 후, 편의점 중앙에 전시된 냉장 혈액팩들 쪽으로 걸어갔다. 요즘 유행이 유기농이라 그날 짠 피만 판다는 플랭카드가 어디선가 불어오는 약한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이런식이라면 곧 혈액팩에 생산자 추척 시스템도 붙지 않을까..바코드를 찍으면 이게 몇 등급이고, 어디 사는 인간의 것인지 알고 먹을 수 있게. 윽. 너무 배고파서 그런가..지나치게 시니컬해졌다는 반성을 하며 눈 앞에 있는 1+1 세일 혈액팩 15개를 바구니에 담았다. 제대로 사는 건지 개수를 세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엎드려!]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순간, 나는 잽싸게 바닥에 배를 대고 누웠다. 고개를 살짝 돌렸지만 진열장에 가려 누가 총질을 하는지 볼 수 없어 답답했다.  

[여기에 모두 담아! 빨리]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게 초보인 듯 하다. 나는 엉금엉금 기어서 진열장 끝부분까지 전진했다. 머리의 1/3만 내밀어 건너편 바닥을 보니 한 명이다. 고개를 조금 위로 올렸다. 시야가 더 넓어져 총을 살살 흔들어대는 남자를 확인했다. 물이 빠진 청바지에 곤색 잠바를 입었고 머리에는 검정 모자를 썼다. 그는 내가 바라보는 걸 모르는지, 혹은 신경 안쓰는 건지 편의점 주인 여자만 닦달하는 중이었다. 그가 뱀파이어인 건 맞는데, 뭔가 좀 묘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풍기는 기가 순수하지 않고 뭔가 뒤섞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의 정체는 뭘까? 

[너! 여기에 혈액팩 담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또 다른 검정 가방을 내게 던졌다. 그 가방을 얼굴에 맞고 나서야 그가 내 움직임을 이미 느끼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는 말 없이 일어나 냉장 혈액팩들을 쓸어담았다. 그에게 가방을 던져주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 바구니에 있는 것도 담아야지] 

윽. 살 짝 발로 밀어 진열장 안 쪽으로 숨겼는데도 그는 내 양식마저 요구했다.  

탕..... 

그는 재빠르게 내 쪽을 향해 총을 쐈다. 그의 총구가 돌려지는 순간, 옆으로 비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바닥에 흉터를 남긴 셈이지만 상당히 소름끼쳤다. 뱀파이어라서 총에 죽는 건 아니지만, 총의 종류에 따라서는 회복되는 동안 고통이 심각하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내 음식들도 고스란히 담은 뒤 던져주었다. 주인 여자가 돈을 담는 일을 끝냈는지 두 개의 가방을 한 손에 쥔 남자는 우리 둘을 향해 총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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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읽기 2011-05-23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와우 뱀파이어들도 강도짓을 하는 구나..인간사 나 그들이나 별반 사는게 다르지 않네..쩝!!!

최현진 2011-05-26 09:04   좋아요 0 | URL
제가 설정할때...가난한 뱀파이어도 있고, 부유한 뱀파이어도 있는 걸로 했고, 또 기본적으로 인간과 같은 커뮤니티에서 생활해요..그러니..도둑도 있겠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