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나는 스스로 사람을 사랑해 사람이 된 나무라고 생각하며 산다. 내가 구성해온 본성 서사다. 그러나 엄연히 나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람으로서 사람 질병을 치료하는 의자다. 의자로 살면서 의자로서 제국주의에 기생한 무지렁이 부역자다. 그 참회와 속죄부터 해야 순서가 맞다. 순서를 삼가 따른다.

 

1. 한의학은 식물, 그러니까 녹색 생명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의학이다. 엄밀히 따지면 서구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학이 그렇지만, 특히 한의학은 약물 처방을 대부분 식물 자체로 구성하므로 이렇게 말한다. 한의사는 약으로 어떻게 무슨 식물을 쓸지 고민하는 일로 평생을 보낸다. 식물을 훤히 꿰뚫고 있을 듯 보이는 바로 그 점이 함정이다. 필요한 사항만 알기에 식물 서사 전체는 잘, 아니 전혀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면서 아닌 듯 오랜 세월 살아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내가 나무 사람 아니, 사람 나무라고 한평생 굳게 믿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 믿음은 마냥 허구가 아니었으나 바로 그 점이 또 더 깊은 함정이었다. 전제하면 의심하지 않는 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알 수 없는, 그러니까 비 인과적 경로를 통해 식물이, 식물 본성 자체로 내게 들이닥쳤다. 그 순간부터 주업과 부업이 뒤바뀌었다. 광화문 교보 식물 코너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까지 나는 식물 공부에 심취했다. 공부 중 아픈 사람이 치료받으러 찾아오면 맹랑한 부아가 치밀어오를 정도였다. 공부는 식물에서 멈추어지지 않았다. 지의류, 균류, 박테리아, 마침내 바이러스까지 나아갔다. 세계의식이 확장일로를 걷는 동안 인간중심주의는 남김없이 무너졌다. 자연스럽게 지구 생태계, 기후 재앙, 지구 위기 문제가 더한층 날카로운 화두로 자리 잡았다. , 이제는 구체적, 실용적 차원에 뿌리를 내려야겠구나, 하는 순간, 홀연히 내 눈을 사로잡은 책이 앞에서 본 육두구의 저주(아미타브 고시)였다.

 

육두구의 저주는 항일무장투쟁 선봉에 서셨던 증조부 덕분에 생긴 제국주의에 대한 정서 중심 시각을 단칼에 베고, 제국주의 속살을 결결이 들여다보는 이성적 시각을 구축해주었다. 더군다나 현실 문제를 자본주의라는 납작한 범주로만 해석하던 피상성마저 날려버렸다. 지구 위기 문제가 어떻게 제국주의에서 발원했는지 알고 나서 나는 <녹색의학 이야기>를 새로이 쓸 수밖에 없다는 자각 먼저 했다. 그 자각을 2023522일부터 717일까지 브런치스토리에 고쳐 쓴 글을 올림으로써 실행으로 옮겼다. 이제 다시 좀 더 핍진한 반제국주의 의학 서사가 되도록 또 한 번 고쳐 쓴다. 그 시작을 2023818일에 한다.

 

3. 나는 한의학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의자다. 중첩 식민지 무지렁이 부역 의자로서 내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하는 작업을 하려 한다. 내 눈에 나를 둘러싼 풍경은 그대로 질병 포르노다. 병 걸리도록 중독적으로 유혹하는 의료독재 살풍경 말이다. 의료독재가 제국주의를 부추겨 극한 파국으로 밀어 가고 있다. 아니다. 거꾸로다. 어제 제국주의가 의료독재를 구성했으므로 오늘은 그 모진 업보다.

 

여기서 의학이란 무엇인가. 이치에 따라 말한다면 의학은 제국주의에 맞서 혁명하는 논리와 실천이어야 맞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의학, 특히 주류 서구의학은 도리어 제국이 부리는 마름으로서 수탈체제 거대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이를 백색의학이라고 이름한다.

 

백색의학에서 백색이라는 말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제국 권력 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으로서 백색공포라는 백색이다. , 제국 자본주의라는 백색이다. , 화학합성약물이라는 백색이다.

 

백색의학에 맞서 질병 포르노 제국을 혁명할 논리와 실천을 창조하는 실재로서 나는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을 제시한다. 그동안 온갖 잡다한 마케팅에서 이 말을 써왔음이 사실이다. 익히 알기에 나는 이 말을 재정의해 혁명 언어로 거듭나도록 한다.

 

반제국주의 녹색의학에서 녹색은 크게 세 가지 함의를 지닌다. 하나, 제국 권력 집단이 혁명 운동에 가하는 탄압인 백색공포에 항거하는 자유로서 녹색이다. , 제국 자본주의에 항거하는 평등·평화 팡이실이(networking)로서 녹색이다. , 치료를 가장한 제국 제약회사 화학합성물질 공격에 항거하는 진정한 치유와 박애로서 녹색이다.

 

대략 이런 방향과 내용을 담고, 흐르는 대로 생각을 펼쳐보려 한다. 때에 따라서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digression)’도 없지 않다. 그동안 이런저런 지면, 하다못해 술자리에서 했던 말들도 나와 돌아다닌다. 그때 했던 말과 어긋나는 말도 한다. 함께 어우러져 이 묵시적 상황에서 내가 흔쾌히 결곡히 쉴 숨 길, 할 말 길, 갈 짓 길을 열었으면 좋겠다. 질병 포르노 식민지에 반제국주의 녹색의학 이야기가 팡이실이 길잡이로 읽힐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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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도봉산 회룡 계곡 바위벽에서 세 번씩이나 굴러떨어져 아프다고 했더니 오랜 벗이 귀하신 몸 그리 마루타로 굴리면 되겠느냐며 웃는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생체 실험 아니고 산 속죄제라네. 기독교식으로 Agnus Dei(Ο αμνός του Θεού) 이러면 이단 소리 들을 테니 아서고 여기서나 그 뜻풀이를 한다.

 

그동안 숲으로 가면서 나는 나무와 풀과 곰팡이가 내게 해주는 말을 듣고자 했다. 듣기 전에 고마움부터 전했다. 고마워하기 전에 속죄부터 했다. 다시 순서대로 하면, 잘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듣습니다, . 정직하게 말한다면 그 가운데 속죄 질량이 가장 가벼웠다. 죄는 제국과 특권층 부역 집단이 졌다고 당연히 막연히 타성을 따라 생각했다. 무지렁이 부역자가 지은 죄쯤이야, 하고 극진함을 덜어내고 말았다.

 

이분법에 편승한 피해의식 탓일 테다. 아직도 털어내지 못한 정신적 유형성숙(neoteny)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벗이 오답을 내준 덕분에 나는 정답을 찾았다. 제국과 특권층 부역 집단은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저들에게는 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룩한 인간 영들은 이미 살해당했으니 그나마 목숨 부지하고 있는 나 같은 무지렁이 부역자가 너덜거리는 영으로라도 속죄하는 일이 유일한 속죄 아닌가

 

옹근 속죄 없는 팡이실이(networking)란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과 부역 인간 범죄가 바로 팡이실이 파괴기 때문이다. 숲에서 숲에 속죄하는 까닭은 숲이 팡이실이 본진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살해당한 거룩한 인간 영들이 숲 팡이실이 공동 주체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회룡 계곡 숲에서 지고 질량 속죄제를 올렸다그렇게 나는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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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역 이야기를 닫으며

 

<우리 부역 이야기를 닫으며> 제목 걸어놓고 이 글을 쓰려면 꼭 도봉산 회룡 계곡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겨울에 눈 덮인 회룡 계곡으로 들어갔다가 길을 잃고 결국은 되돌아 나오면서 見人忘吾를 거쳐 나 자신이 부역자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달았으니 이번에는 결코 되돌아 나오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깨달음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그래야만 했다.

 

망월사역에서 내려 도봉산 3대 계곡 중 하나인 원도봉 계곡으로 향했다. 장마 끝이라 계곡은 아직도 습한 기운에 젖어 있었다. 곳곳에 물놀이하는 피서객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나는 나무와 풀과 버섯과 물, 그리고 바위에 도취해 그 소리들을 바람처럼 날려 보냈다. 망월사를 지나 능선에 도달한 뒤 카카오 지도에 점선으로 처리된 회룡 계곡 길 가까이 접근했다.

 

지도에서 확인한 회룡 계곡 길 진입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결국 이번에도 길 없는 길로 다시 들어서기로 했다. 경사가 급했지만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지난겨울에는 올라가는 경로, 게다가 눈이 덮여서 실패했지, 이번에는 내려가는 경로라 일단 물길이 시작되는 곳만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시 순진한 생각임이 즉시 드러났다.


회룡천이 발원한 곳

 

물길 주변은 바위투성이면서 높고 낮은 폭포 지형이 형성돼 있어서 위험천만이었다. 돌아갈 수 없는 곳은 위험을 무릅쓰고 직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수직 바위벽에서 세 번이나 미끄러져 굴러떨어졌다. 찰나적으로 사람이 산에서 이러다가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무겁지 않은 외상을 몇 군데 입었을 뿐, 안경마저 멀쩡해 너무나 신기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 도저히 직진할 수 없는 낭떠러지 폭포 바위 위에 섰다. 경사 40도가량 넓적한 바위를 옆으로 기어올라 능선 쪽 우회 경로를 찾아야 했다. 올라가다가 구르면 그대로 끝인 상황이었다. 공포와 용기는 반대말일 수 없다는 진실이 찰나적으로 들이닥쳤다. 생각 멈추고 즉시 바위를 타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에 이르자 갑자기 몸이 소리 하나를 토해냈다.

 

68년 만에 처음 알았다, 몸에서 토해져 나오는 울음이 꺽 하는 소리를 낸다는 사실. 마음으로 제어되지 않았다. 한참 그러고 울다가 깨달았다,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진실. 인적 없는 깊은 숲에서 수염 허연 늙은이가 꺽꺽 우는 광경은 누가 봐도 기이하다. 그러나 나는 거기서 내 운명을 느꼈다, 숲 주체성을 인정하는 삶은 낭만이 아니라 목숨을 나누는 일이라는 진실.

 

물소리와 밀고 당기며 끊길 듯 이어진 소로를 따라가다가 지난겨울 내가 왔던 길을 거꾸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내 알아차렸다. 방향이 같지만, 지난겨울에는 회룡 계곡을 끝내 걷지 못하고 되돌아가는 길이었고 이번은 회룡 계곡을 마침내 걸어 마무리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두 발길이 서로 같지 않은 요체가 성패 자체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나는 즉시 알아차렸다.


지난겨울에는 내 생각을 잃고 타인을 따라갔다. 이번에는 내 생각을 붙들고 숲을 따라갔다. 타인은 느닷없이 대화를 끊어버렸다. 숲은 끝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식민지 인간 부역 이야기를 하는 중에 부단히 숲에 든 까닭은 인간 아닌 숲을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서 궁극적 동지로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실패와 성취 동시 지점에 이르러 나는 이 진실을 확인했다.



달리 말하면 나는 숲을 보고, 그러니까 숲을 따라서 내게 되돌아왔다(見林回吾)고도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사람이 된 나무라는 서사를 소환한다. 이 부름에 응해 나는 의자로 살아온 내 후반 삶을 걸고 사람 나무 생각으로 의학 이야기부터 고쳐 쓴다. 그 너머 이야기를 어찌할지는 아직 모른다. 나중에 알게 되면 이 부분을 고친 다음 그 이야기를 쓰기로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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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며

 

아베의 축원은 말글, 교육, 학문, 예술, 종교, 정관계, 재계, 언론계 모두에서 눈부시게 성취되었다. 특권층 부역자가 사회 전 분야를 석권해 난공불락 일류·주류 성채를 구축했다. 부역 특권은 더욱 강고하게 상속된다. 저들은 야누스다. 한 얼굴로는 나 독립 유공자 후손이야!’라고 거짓말하고, 다른 한 얼굴로는 그래, 나 부역자다. 어쩔 건데?’라고 개소리한다. 완전범죄와 자신감에 동시 빙의된다. 대한민국 근본 있는 사람, 아니 야차가 지닌 분열적 본성이다. 분열적 본성은 엄중한 질병이다. 엄중한 질병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 그 질병은 자체로 악이다. 아베가 베푼 악의 향연은 갈수록 거나해진다. 거나함에 취해 특권층 부역 지배집단은 대놓고 함부로 사람을 죽인다. 아수라장 한가운데서 무명인은 더는 국가를 질문하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을 추구한다. 각자도생을 추구할수록 부역 늪으로 빠져든다. 식민지 무명인이 처한 참혹한 모순이다. 참혹한 모순으로 들끓는 대한민국 공시적 지평을 가로지르면서 나는 절망한다. 현실이 그래서라기보다 전복할 길이 있기는 할까 해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싸울 수조차 없지 않을까 해서다. 진실을 알기 전에 지녔던 순진한 정서가 참으로 부끄럽다. 부끄러움이 짙어질수록 남은 삶에 대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은 발끝을 태우며 들어온다. 어쩌나, 어쩌나, ,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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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빨 패거리(언론계) 부역 서사

 

협잡질로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앉히자마자 이동관은 말했다. “공산당 기관지를 언론이라고 하지 않는다.” 무식에서 나온 말은 분명히 아니다. 알고도 그랬다면 그게 바로 특권층 부역자가 늘 입에 달고 다니는 개소리다. ‘반공이 특권층 부역자가 차는 완장이라는 사실에 의도적 무지를 장착한 패거리를 겨냥해 조작하는 상징이다. 패거리 암호임과 동시에 구호다. 자신이 언론을 바로 그 공산당기관지로 만들고자 했던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비난한 공산당은 실체가 없고 그 자신이 공산당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를 임명한 윤석열과 그 패거리만 모른다. 전 세계가 알아서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언론 탓이다라고 하는 그 가짜 언론, 즉 특권층 부역 말빨 집단, 조선일보와 그 패거리를 참 언론이라고 우기는 우스개를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시연하니, 과연 이동관은 전형적인 특권층 부역자 맞다.

 

특권층 부역자 이동관이 말하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공화국 시민의 알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신문이 아니라 특권층 부역자 패거리 곳간 채우려 선전·선동하는 사보일 뿐이다. 조선일보는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찍이 식민지 시절부터 부역 논리와 물리를 갈고 닦아왔다. 해방 뒤 정통성 없는 권력 등에 올라타 정상에 오른 뒤 마침내 그 권력마저 푸들로 부리는 초월적 권력으로 등극했다. 권력 위 권력을 보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짓은 얼마나 가소로운가. ‘밤의 대통령인 사주 아닌 편집국장 따위 놈이 대놓고 우리가 정권을 만들기도 하고 망하게도 한다라고 말한 조선일보를 언론이라 한다면, 한동훈이 한효주다.

 

조선일보는 그러면 어떻게 이런 세상을 만들어냈을까? 본디 조선일보는 항일 민족지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재정난으로 위기에 몰린 1933년 방응모가 인수하면서부터 친일 부역 매체로 돌변했다. 방응모는 철두철미 특권층 부역자였다. 식민지 말기 강제 폐간 형식을 띤 자진 폐간으로 명분을 얻은 다음 해방 후 복간해 반공 우익 노선으로 부역 행각을 이어갔다. 전두환이 권력을 잡을 때 공격적으로 곡필하면서 비약적 성장을 이루어 정상에 올랐다. 이어 김영삼을 밀면서 199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다. 종이 신문 영향력이 급격히 떨어진 2000년대부터 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라 하지만 종편 등을 통해 여전히 부역 매체, 그 가짜 언론 두목 노릇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 일봉 수상 아베가 무역전쟁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때 반일 정서가 전국민적으로 불길처럼 번져가자 조선일보는 두 가지 음모를 꾸며 맞불을 놓았다. 하나는 이른바 조국 사태. 물론 윤석열의 난이라 일컬을 수 있는 사태지만, 정국을 뒤엎는 사건으로 조작한 장본인은 조선일보다. 조국을 때려잡는 바람에 반일 정서는 날아갔다. 조국 사태는 강남 좌파 가면을 벗긴 쾌거가 아니라 일제를 두호한 부역 협잡이다. 다른 하나는 트로트 열풍이다. 조선일보가 벌인 <미스><미스터> 트로트 쇼는 일제와 이승만·박정희를 회상하게 만든 거대한 수구 프로젝트다. 트로트는 뽕짝이고 뽕짝은 엔카다. 엔카는 애상과 순종 정서를 일으키려고 일제 군부가 퍼뜨린 음이다. 이 음이 대중을 사로잡는 바람에 반일 정서는 날아갔다. 조선일보는 여전히, 아니 더욱더 일제에 충성한다. 일제가 조선일보 모국이어서다.

 

한편에서 이런 말들이 오간다: 방가 패권이 저물고 홍가 패권이 뜬다. 조선일보 시대가 끝나가고 중앙일보 시대가 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변화는 대한민국에 과연 어떤 의미일까? 단도직입으로 말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방가가 홍가로 바뀌어 판이 달라진다면 무슨 식민지겠는가. 그보다도 방가든 홍가든 아무 차별이 없다는 사실은 저들이 지닌 부역 근성 아닌 전혀 다른 근거에서 확인된다. 혼맥이다.

 

미디어오늘 201179일 자 신학림 님 글을 일부 인용한다.

 

··동의 무소불위한 힘의 원천과 배경은 무엇인가? 바로 권력(power)과 영향력(influence)을 독점한 네트워크(network).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세력은 실질적으로 교체된 적이 없다. 지연과 학연은 제쳐두고 그들은 혈연, 즉 혼맥으로 똘똘 뭉쳐있다.

 

어떤 사회가 덜 사악한 사회가 되려면, 두 가지 중요한 가치와 수단에서 독점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정치권력(political power)3권분립을 통해 견제와 균형을 추구하고, 다른 한편으로 '영향력(influence)3권분립'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도 헌법상으로는 3권분립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입법, 사법, 행정에 종사하는 고위층들, 즉 상당수 국회의원, 대통령, 장관, 고위 관료, 검사, 판사, 변호사 등이 혼맥으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영향력은 어디서 나오는가? 일반적으로 돈(money), 권력, 명예(권위) 등에서 나온다. 돈을 가진 재벌,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정치인과 국회의원들, 명예를 먹고 사는 사학재단 등을 운영하는 자들이 한통속이다. 글자 그대로 '또 하나의 가족'이 돈, 권력, 명예 등 모든 것들을 쥐고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무소불위의 권력이 가세한다. 족벌언론 권력이다. ··동을 비롯한 족벌 사주들이 이 무시무시한 혼맥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중앙> 사주부터 보자. <중앙> 홍석현(1949년생) 회장의 매형은 이건희 삼성전자 전 회장이다. 이건희-홍라희(1945년생) 부부의 둘째 사위가 <동아> 사장 김재호(1964년생)의 동생 김재열(1968년생) 제일모직 부사장이다. 김재열과 손위 처남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중학교 동기동창이다.

 

홍석현 회장의 장인, 즉 부인 신연균(1953년생)씨의 친정아버지가 신직수(1927~2001). 그는 우리 헌정사에서 다시 보기 어려운 기록을 지니고 있다.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 자리를 모두 거친 유일한 사람이다. 검찰총장직을 무려 8년 이상 지낸 것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그전에는 중앙정보부 제2인자, 즉 중앙정보부 차장이었다. 신직수 전 중앙정보부장의 두 아들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27홀 규모의 대형 골프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조성 혹은 매입 자금의 원천에 대해 우리 언론은 관심을 가지거나 추적 보도한 적이 없다.

 

홍석현의 21녀 중 장남인 홍정도(1977년생)씨는 현재 <중앙> 부사장이다. 그의 장인은 윤재륜 서울공대 재료공학과 교수이고, 홍정도의 처조부는 성보문화재단과 유화증권 등을 설립한 재벌 못지않은 부를 가진 윤장섭(1922년생) 이사장이다.

 

홍정도의 여동생 홍정현(1980년생)의 시아버지가 허광수(1946년생)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고, 허광수 회장의 둘째 형이 허동수(1943년생) GS-칼텍스 회장이고, 사촌 동생이 전경련 회장이자 GS그룹 회장인 허창수(1948년생)씨다. 허광수 회장의 아래 동서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6남 정몽준(1951년생)이다.

 

허광수 회장의 딸 허유정(1974년생)이 방상훈(1948년생) <조선> 사장의 2남 중 장남인 방준오 <조선> 미래전략팀장의 부인이다. 방상훈 사장과 홍석현 회장은 허광수 회장을 매개로 사돈이다. 홍정욱(1970년생)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방준오 팀장의 사촌 동서이고 정몽준 의원이 처이모부다.

 

허광수, 정몽준 회장의 장인은 외무부에서 'DJ 사단'을 거느리고 있던 김동조(1918~2004) 전 외무부장관이다. 그는 주미, 주일대사도 거쳤다. 그를 따르던 후배 외교관 중에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있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멘토다. 노신영 전 국무총리는 홍석현의 여동생 홍라영(1960년생) 삼성미술관 리움 부관장의 시아버지다.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둘째 며느리가 정다미(1961년생)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인데, 그녀의 작은 아버지가 바로 이병철 회장의 5녀 이명희(1943년생) 신세계그룹 회장의 남편 정재은(1939년생) 신세계 명예회장이다. 정 교수의 부친 정재덕(1931~2004)씨는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장과 신세계 고문을 지낸 바 있다.

 

홍석현 회장의 첫째 동생 홍석조(1953년생) 전 광주고검장은 현재 보광훼미리마트 회장이다. 보광훼미리마트는 우리나라 24시 편의점 회사 중 점포 수가 가장 많다. MBC 이상호 기자의 X-파일 보도 당시 후배 검사들에게 삼성의 뇌물성 떡값을 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이를 부인하며 광주고검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의 부인은 1970년대 강남개발과 지하철 건설 등으로 유명한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조카딸이다.

 

홍석현의 둘째 동생 홍석준(1954년생)은 보광창업투자 회장이다. 홍석현 회장의 형제들은 몇 년 전 보광창업투자를 통해 제대혈 회사인 메디포스트에 투자해 100억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석준씨는 보광창업투자를 맡기 전에는 삼성SDI에서 부사장으로 근무했다.

 

홍석현 회장의 막내 남동생 홍석규(1956년생)는 외교관으로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한 후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외무부를 떠난 뒤 지금은 ()보광의 회장으로 보광그룹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평창에서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평창에 있는 보광휘닉스파크 등의 시설에서 스키경기 등이 열리게 된다.

 

<조선> 방상훈 사장 가족의 혼맥도 장난이 아니다. 방상훈 사장의 부인 윤순명(1946년생)씨의 8촌 할아버지가 윤보선 전 대통령이다. 방 사장의 손아래 동서가 신희철(1947년생) 서울대 산부인과 교수다. 방상훈의 차남 방정오의 장인은 이인수(1952년생) 수원대 총장으로 수원대학 설립자 이종욱(1921~2009)의 차남이다. 이 가족은 사학재단을 운영하면서 2개의 골프장을 갖고 있다.

 

방상훈 사장의 작은 아버지 방우영(1928년생)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31남의 자녀를 두고 있다. 장녀 방혜성(1961년생)의 남편이 서성환 태평양그룹 창업주의 장남 서영배(1956년생) 태평양개발 회장이다. 방혜성은 성덕여중 등을 운영하는 태평양학원의 이사다.

 

방 명예회장의 차녀 방윤미의 시아버지가 9대 유정회 국회의원을 지낸 김도창(1922-2005) 전 법제처장이다. 3녀 방혜신의 남편이 정연욱(1962년생) 경남에너지 사장이고, 시아버지가 국회 외무위원장을 지낸 정재문(1936년생) 대양산업 회장이고, 정재문 회장의 부친이 7선 의원을 지낸 정해영(1915-2005) 전 국회 부의장이다.

 

방우영 명예회장의 외동아들 방성훈(1973년생)은 현재 스포츠조선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있는데, 그의 장인이 영풍그룹 공동창업주 최기호(1908~1980)씨의 3남 최창근(1947년생) 고려아연 회장이다.

 

방우영 명예회장의 손아래 동서 중의 한 사람이 민정당 정책위원회 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임철순(1937년생) 전 중앙대 총장이다. 임 전 총장은 이승만 정부에서 상공부장관을 지낸 임영신의 양자다.

 

방 명예회장의 막내동서 민광기(1947년생)씨는 한일합방 공로로 자작 작위를 받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민영휘(1862~1935)의 증손자다. 민영휘의 차남 민대식(1882~1951)도 일제 때 총독부에 국방 금품을 헌납한 사실 등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민대식의 차남 민병도(1916~2006)씨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출판사 을유문화사를 공동으로 설립했고, 휴양지 남이섬도 개발한 바 있다.

 

방우영 명예회장의 세 여동생 중 막내가 방선영(1938년생)인데 그녀의 시아버지가 숭실대 이사장과 총장을 지낸 김형남(1905~1978) 일신방직 창업주이고, 남편 김창호(1935년생)는 숭실대 이사장에 이어 일신방직 미주지사를 담당하고 있다. 차남 김영호(1944년생)도 숭실대 재단이사장에 이어 일신방직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또 삼성문화재단 이사도 지낸 바 있다.

 

방우영 명예회장은 연세대 이사장을 오랫동안 맡고 있고, 방상훈 사장은 숭문고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렇듯 조선일보 사주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나 관계가 있는 사학재단이 한두 개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전교조 문제만 나오면 게거품을 물 듯 전교조 비판과 공격에 열을 올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면, 하루가 멀다고 사학비리가 터져도 조선일보가 전교조와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들이대는 비판의 잣대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그것도 하등 이상한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동아> 김재호 사장 가족을 보자. 김재호 사장의 증조부가 <동아>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1891~1955) 부통령이다. 김 사장의 장인은 이한동(1934년생) 전 국무총리이고 손윗동서가 허태수(1957년생) GS홈쇼핑 대표이사 사장이다. 허 사장의 큰형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자 GS그룹 회장이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대재벌 감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보기에 따라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는 배짱(?)도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부와 혼맥(네트워크)을 보면 정치권력을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의 사돈이 바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김영무 대표변호사다. 김영무 대표의 장남 김현주(1972년생)씨가 바로 허창수 회장의 사위다. 김영무 대표의 장녀 김선희(1974년생)씨의 남편이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둘째 동생 정몽우(1945~1990) 전 현대알루미늄 대표의 차남 정문선 비앤지스틸 상무다. 노현정 전 KBS 아나운서가 김선희씨의 아래 동서다. 손윗동서는 구자엽(1950년생) LS산전 회장의 장녀 구은희(1976년생)씨다. 구자엽 회장의 부친이 구태회(1923년생) 전 국회 부의장이고 큰아버지가 구인회(1907~1969) LG그룹 창업주다.

 

김재호 사장의 작은 할아버지 김상기(1918년생) <동아> 회장의 장남이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수석에서 물러나 현재는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병국(1959년생) 고려대 교수다. 김성수 부통령의 94녀 중 5남 김상오(1924년생)의 장남이 고려대 총장 김병철(1949년생) 고려대 교수다.

 

김재호 사장의 증조부 김성수 부통령의 동생이자 삼양그룹 창업주인 김연수(1896~1979)씨는 슬하에 76녀를 두었다. 이 가족들이 소유, 지배, 경영하고 있는 기업들과 혼맥까지 감안하면 <동아> 김재호 사장의 배경도 <중앙>의 홍석현 회장이나 <조선>의 방상훈 사장 못지않다.”


 

이 패거리가 하는 말, 이 패거리가 쓰는 글을 어떻게 언론이라 할 수 있는가. 정말 중요한 사안은 거짓말과 개소리로 일관하는 신문·방송을 어떻게 언론이라 할 수 있는가. 일본과 USA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말빨로 대한민국을 착취하고 살해하는 족벌 동맹을 어떻게 언론이라 할 수 있는가. 다시 한번 상기하거니와 대한민국이 망한다면 그 원인은 분명히 저들 사이비 언론에 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저들 때문에 대한민국은 이미 망했다.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국가적 가치 실재가 공동화된 국가를 국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금 망한 나라 망한 백성으로서 만가를 부르고 있다. 그 만가의 코다가 말빨 패거리 서사라는 사실이 통절해서 통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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