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금요일 부산대학교에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 학술대회 즉 세미나가 개최되었습니다. 행사가 종료 이후 저녁 뒤풀이로 횟집과 호프집에 가서 그날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에 소속된 여러 교수님과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연락처를 받아 나중에 연락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제가 어느 한 교수님에게 안부문자 드리니 답변은 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한 답변은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올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솔직히 기분은 영 좋지는 못합니다.

 

왜  좋지 못하는가? 그날 회식자리에 가서 많은 교수님들에게 제가 이야기드리는 것이 만화애니메이션 산업문화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제일 심각한 문제가 바로 만화애니메이션 콘텐츠를 구매하는 소비자에 대한 연구와 그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이나 세계나 자본주의경제구조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에 바로 이 소비자들을 무시하면 한국만화애니메이션문화산업에 좋은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주 건방지게 제 자신이 오타쿠라고 말하면서 말이죠.

 

가령 최근 많은 대중들은 대중문화 중에 웹툰이 무료에 접촉하기 쉬우므로 그냥 공짜라는 횡재에 의지하려고 하나, 이른바 오타쿠라는 불리는 사람들은 웹툰의 무료에 기대하는 많은 분과 달리 직접 만화나 애니메이션, 라이트노벨 등과 같은 콘텐츠를 구매해주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과 달리 이쪽 계통의 소비자는 일시적으로 디즈니나 미국의 거대한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즐기기 위해 콘텐츠를 구매합니다. 그런 소비자에 대한 요건들을 아무런 정보도 모르고, 3년 전에도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기했지만, 역시 지금도 같다는 점에서 참으로 짜증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답장문자에 왜 제가 기분이 좋지 못하는가? 그것은 다음 학회에서 보면 좋겠다는 것이죠. 물론 다음 학회가 어디서 열리지 언제 열리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화가 나는 이유는 저는 만화애니메이션학과의 교수님도 아니고, 만화애니메이션 제작업체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 누구도 저에게 금전적이나 학문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차라리 오타쿠 커뮤니티에 있는 분들이 저에게 도움을 줍니다. 기껏 저에게 지원보다는 격려나 의지를 주는 분은 부산대학교 교수님 정도죠. 얼굴 아는 교수님은 간단히 대화 정도만 하고요. 물론 오타쿠를 떠나 인문학적 발상과 영상비평에 대한 지식에 큰 도움을 주신 교수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개인적인 발전이지, 제 관심은 그것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만화애니메이션 향유자에 대한 환경개선입니다. 제게 주어진 것은 항상 부족하고, 저에게 지원이 오는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짜증이 나는 겁니다. 지금 제가 논문을 적고, 투고를 할 것인데, 만약 되면 좋겠지만,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하겠지요. 그래도 논문을 작성하는 이유는 학회에서 말만 떠드는 녀석이 아니라 학회 정규논문에서 비평논문으로 합격하여 학회 세미나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발표하는 겁니다.

 

저라는 존재가 아직 학회에서 있으나 마나한 존재이니, 그 만큼의 가치를 올리는 게 정당하죠. 그래서 건국대학교 김윤아 교수님이 저에게 말씀하시길, 모든 것은 결과에 의해 보여주니, 열심히 적어 한 번도전해보세요. 대신 논문심사는 제가 들어가니 쉽지마는 않을 겁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되는 한에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제가 여기서나 혹은 다른 곳에서 몇 번이나 강조하는 것이 있는데,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들에 대한 안타까움은 언제나 학술대회나 포럼에 가면 느낍니다.

 

그날 학술대회에서 부산국제영상포럼이 있었는데, 부산영상산업과 관련되어 무슨 진흥원 내지 연구원의 원장님이 오셨는데,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1년 2000명의 애니메이션 관련 학과에서 졸업생이 배출되나 국내에서 5%만 된다. 그렇다면 왜 5%인가? 자신들의 시장조건에서 교수님들의 제자들은 몇 년동안 공부하고 노력해도 국내에서 되지 않아 다른 직업을 하거나 또는 외국으로 갑니다. 그렇다면 사회구조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겠지만, 적어도 구매자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가차없이 날렸습니다.

 

교수님들은 제자들이 취업이 안 되더라도 계속 그 교수자리에 앉아 일을 할 수 있지만, 제자들이 나와서 작품을 만들어서 누가 사주지 않으면 결국 그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교수님의 제자들이 만드는 것을 사주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오타쿠들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론 오타쿠라도 교수님이 저는 어디에 속하냐는 말에 저는 논문에서 나오는 오타쿠라고 했습니다. 단순히 소비만 아니라 글을 적어 리뷰를 적기에 그렇다고 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계속 소비자를 생각하지 않으면 한국애들은 한국 것 없어도 대다수는 일본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1달에 라이트노벨이 일본에서 백권정도 국내에 들어오고 있는데, 라이트노벨이 뭔지도 모르시는 교수님들, 이미 국내 라이트노벨사인 시드노벨이나 노블엔진을 가진 출판사들은 소비자와 직접 커뮤니티를 형성하여 시장을 만드는데,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학회에 가면 학술적 논의와 토론이 중요하나, 결국 산업과 문화의 발전입니다. 소비자 없는 문화산업의 발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참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는 국내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렇게 글적는 것도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나, 그냥 눈 딱 감고 상대하지 않고 싶을 떄도 있습니다. 저같은 사람이 직접 나와 피드백을 해야 한다고 하나, 아마 국내에 이런 학회가 있고, 교수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는지도 모를 것입니다. 게다가 있다고 해도 감히 갈 수 있을 것 같나요? 제가 가도 반응이 뒤에 보면 별로인데, 일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눈에 보일까 싶습니다.

 

다 그런 분만 계시는 것은 아니나, 솔직히, 짜증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페이트 십덕후 분이 화성인 바이러스로 나오면서 많은 홍역이 치루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도 직장 내에서도 조롱을 받았는데, 어린 학생들은 절교 내지 왕따 같은 일도 당했다고 합니다. 학회에 가입한 동기도 그 사건 이후 너무 짜증나고 답답해서 어떻게 가입되었지만, 그뒤로 나아진 게 있을까요? 아마 많은 사람들은 애니메이션 보면 씹덕후라고 비웃으면서 G-star 게임축제에 가면 몸매 좋은 코스튬 플레이하는 여자 앞에서 침이나 흘리면 사진찍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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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가지색 : 화이트 - 아웃케이스 없음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 줄리 델피 출연 / 대경DVD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세 가지의 색에서 첫 번째는 블루, 즉 자유라는 것이다.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1993년 제작한 자유를 의미하는 blue가 이제 white로 넘어간다. 평등을 상징하는 화이트란 단어로 말이다. 이 작품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의 색에서 가장 코미디 속성이 강한 작품이다. 유쾌하기보단 하나의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이 작품은 프랑스인 여자와 폴란드인 남자의 이야기다. 본래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아내인 도미니크에 의해 강제로 이혼당하여 집에서 내쫓긴다. 그는 폴란드인이므로 프랑스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없었고, 가진 재산이 없어서 추운 날에 당장 먹는 것과 자는 것부터 걱정해야 했다.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아내인 도미니크를 매우 사랑했다. 하지만 도미니크는 그러지 않았다. 언어적인 요소에서 폴란드인이던 카롤은 이혼재판과정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았고, 심지어 이혼 이후에는 자신이 들고 있던 카드마저 사용불가로 되었다. 사랑하는 도미니크를 두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공중전화에 가서 자신에게 있는 동전 1개를 넣고 통화하는 순간, 이상한 소리를 듣는다. 아내인 도미니크는 다른 남자와 Sex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음 소리는 매우 행복하고, 이때까지 카롤이 듣지도 못할 정도로 열기에 가득했다.

 

카롤은 거기에 망연자실한 모습이 나오는데, 폴란드인으로서 프랑스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기력에 스스로 자학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아내의 가게에 몰래 가서 잠을 자다가 우연히 아내가 들어와서 두 사람은 키스를 하고, Sex를 하려고 했으나, 이내 카롤은 무기력한 남자로 변하고 아내에게 내쫓긴다. 아무 희망이 없는 카롤이었다, 카롤은 더 이상 프랑스에 있을 수가 없다고 판단하여 고향인 폴란드로 가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스와 폴란드인데, 감독인 키에슬로프스키는 본래 프랑스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었다. 그 역시 폴란드 공산당과 업무를 했으나 공산진영의 모순과 부패로 그는 프랑스로 오면서 자유주의적인 영화를 촬영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주의를 보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주의하고 큰 차이가 있다. 그의 세 가지의 색이란 말 그대로 프랑스의 국기인 삼색기를 말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에서 평등의 가치란 무엇인가? 화이트는 바로 그런 의문을 상징적인 존재보다는 블루에서 나온 졸리 처럼 아주 평범한 인간으로 나온 셈이다. 카롤이 아내를 만난 동기는 그가 헤어디자이너로 활약할 때 우연히 아내를 만나 한 번에 반하여 결혼하였다. 언어도 다르나,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어의 장벽에 가려지면서 카롤은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카롤은 프랑스를 떠나 폴란드 고향으로 가기로 한다. 우연히 위험한 일을 할 것 같은 남자를 만나 비행기를 타게 된다. 자신은 비행기 표도 살 수도 없고, 강제이혼을 당해 프랑스국민이 아니기에 여권도 소지할 수 없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살아있는 인간이나 사회적으로 죽어있는 인간인 호모 사케르였다. 그가 프랑스에서 죽어도 그의 죽음은 한 인간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같다. 카롤이 삶과 죽음을 다 가지기 위해서는 프랑스국민이 아니라 폴란드국민이어야 했다.

 

그래도 역시 프랑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였고, 카롤은 프랑스에서 나오기 위해 그 위험한 남자에게 부탁하여 그 남자의 짐에 자신의 몸을 넣었다. 답답한 가방 안에 몇 시간이나 갇혀 하늘을 통해 폴란드로 온 카롤, 합법적 결혼에서 이제는 불법적 이민자가 되어야 했다. 아마 이런 일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고, 카롤이 온 폴란드는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폴란드가 아니었다. 폴란드도 역시 소비에트 연방에 의해 공산진영에 속했으나 소비에트 연방 해체이후 자본주의가 침투했고, 자본주의는 공산진영과 다르나 새로운 부패와 투기가 일어났다.

 

그는 자신이 일했던 미용실로 와서 화려한 복귀를 하였고, 이전에 오던 손님들이 단골로 계속 찾아온다. 하지만 그는 충분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마음 한편에 아내인 도미니크에 대한 분노와 애정이 같이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불법적인 일을 시작한다. 총을 들고 어느 수상한 남자들이 모인 곳에 서 있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의 위험한 모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땅 투기까지 고려하여 거부가 된다. 과거 국가자본주의이던 공산진영에서 볼 수 없었던 시장경제의 자유에서 카롤은 더 이상 불법보단 합법적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고, 그의 명성은 넓리 퍼지고, 우연히 카롤은 자신을 도와준 위험한 남자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죽었다고 광고를 내어 아내가 오면 거기에 대한 조치를 해달라는 점이다. 엄청난 거부가 된 카롤은 자신의 재산을 유언에 따라 아내에게 주라고 하였고, 전 남편의 죽음을 들은 도미니크는 카롤을 찾아온다. 도미니크는 카롤의 죽음에 슬퍼했고, 실의에 빠졌지만, 남편인 카롤은 죽지 않았고, 시체로 있어야 카롤 대신 어느 부랑자의 시체가 시체보관소에 보관되었다. 시체상태는 매우 심각하여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폴란드의 공산진영의 해체나 자본주의의 도입에서 각각의 장단점은 있으나 자본주의 도입은 결국 돈이면 뭐든지 해결되는 풍조를 다소 비웃기도 하였다.

 

아내 도미니크 앞에 나온 카롤은 이제 자신만만한 남자가 되었다. 프랑스에선 무기력한 남자가 이제 도미니크에게 최고의 Sex를 해주었고, 도미니크는 만족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해피엔딩처럼 보일 듯하였다. 문제는 카롤은 이미 사망신고처리가 된 것이고, 카롤의 살인범으로 아내인 도미니크를 지목한 것이다. 도미니크는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로 인해 혼란에 빠졌고, 자신은 프랑스인이기에 폴란드인의 언어를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제대로 변론조차 못하고 폴란드의 어느 감옥에 5년 동안 갇혀야 하였다.

 

카롤은 그런 그녀를 보기 위해 감옥에 찾아오고, 그녀는 말 대신 제스쳐로 카롤에게 대답한다. 여기서 나오면 카롤과 다시 재결합하여 다시 사랑하겠다고, 카롤은 그 모습을 보며, 눈물을 보이면서 영화는 막이 내린다. 그런 점에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화이트를 본다는 것은 아주 평범한 두 남녀의 이야기지만, 그들이 처한 현실적 여건을 블랙 코미디로 보여준다. 소비에트 연방 이후의 국가들은 긍정적인 요소와 더불어 돈에 의해 결정되기에 사람들의 성향이 바뀐 것을 말이다. 카롤이 성공한 이유도 도로건설이 되는 곳에 대해 당시 사람들은 자본력이 얼마나 늘어 가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었고, 시체도 어떻게 입수가능한지도 마찬가지다. 경찰에선 시체매매나 투기보다는 카롤에 대한 살인범에 집착한다.

 

그런 점에서 화이트 블랙코미디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화이트에서 평등은 바로 카롤과 도미니크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카롤은 프랑스에서 폴란드인이란 이유로 차별을 당했고, 특히 언어가 통하지 않은 점은 그에게 치명적인 요소가 되었다. 아내인 도미니크 역시 프랑스에서 폴란드로 오면서 살인범 용의자로 몰려도 결국 언어가 통하지 못해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려도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 평등이란 단어는 참 독특한 색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남과 똑같이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조건이 동일하여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알아야 진정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상대방에 대한 조건에 대해 잘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이란 무조건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회 조건이 균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단지 가난하거나 혹은 병을 안고 있거나 또는 지역적, 민족적, 인종, 성별로 인해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한 불평등이다. 프랑스의 모든 것은 1789714일 바스티유감옥 습격한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다. 매년 714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광장에서는 그 날의 영광을 위해 행사를 거둔다.

 

프랑스혁명을 소개하면 그 중심은 장 자크 루소가 있다.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인간불평등기원론>을 이 작품에서 같이 두고 봐야 한다. 인간은 2가지의 불평등이 있다. 1가지는 선천적인 불평등이고, 다른 1가지는 후천적인 불평등이다. 카롤과 도미니크의 관계는 아마 처음에는 선천적인 불평등인 인종에 의해서라고 볼 수 있으나, 결혼하고 나서는 후천적인 불평등에 의해 갈라진 것이 보는 게 타당하다. 이혼하고 나서 도미니크는 카롤에게 돈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였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불평등이 이제 사회적인 불평등으로 카롤에게 전가된 것이다.

 

영화를 보면 다시 화이트란 사실은 영화배경이 겨울이란 점이다. 추운 프랑스보다 더 추운 폴란드는 눈으로 가득하다. 눈이 내린 공황에서 카롤은 항공기 승객의 짐을 훔치는 도둑에게 심한 꼴을 당한다. 예전의 폴란드와 다르게 강도들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것이다. 하얀 눈이 내리는 폴란드에서 화이트라는 것은 순수의 색보단 다른 색이 들어오면 바로 물들어가는 색이기에 어떤 색이 들어가도 화이트는 그 색으로 변해야 했다. 즉 어떤 부당함이 오더라도 그 부당함은 사라지지 않고 그 흔적을 남기는 셈이다.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의 색 중 화이트는 우리 사회에서 잘 생각해야 한다.

 

타인에 대해 자신이 일방적으로 우세하다고 하여 타인에게 가해지는 부조리한 태도는 결국 다시 본인에게 돌아가야 하는 점은 분명하다. 전에 어느 선박의 침몰에서 죽은 가족을 그리워하여 절규하는 사람들에게 비수의 칼날처럼 비난하던 자들에게 이 영화를 떠오른 나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들도 이 영화처럼 같은 대우를 받고 자신이 상대방의 고통을 충분히 느껴야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 싶다. 조금 더 생각하건만 세 가지의 색의 화이트를 적고 있지만, 박애를 상징하는 레드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은 분명하다. 하지만 평등이란 것은 기회의 균등과 더불어 상대방에 대한 부조리를 가한다면 그 부조리를 자신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게 진짜 평등이 아닌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몰아넣는 것과 몰아넣도록 하는 것은 역시 불평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영화 포스터 메인장면을 보면 남자주인공이 검지 손가락으로 빗을 잡고 입에 대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이발사로서 빗을 가지고 하모니카처럼 불어대는 재주가 있다. 어쩌면 그의 매력은 아주 뛰어난 헤어디자이너보다는 작은 재주로 상대방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에 온 그는 프랑스어가 되지 않아 자신의 능력을 살리지 못해 저 재주조차도 부리지 못한다. 그래도 그런 카롤을 보고 뒤에서 미소 짓는 도미니크의 얼굴에는 작은 미소로 답을 해주고 있다.

 

아가페적인 사랑(박애)을 의미하는 레드는 아니지만, 적어도 도미니크의 마음은 카롤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메라 앵글은 두 사람의 얼굴이 클로즈업이 되나, 위치적으로 어깨너머 샷으로 도미니크의 뒷모습에서 카롤의 뒷모습을 잡으려는 것은 역으로 배치한 것 같다. 사실 카롤이 크게 보이나, 카메라를 뒤로 하면 카롤이 왜소한 남자로 나오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정면에 보인 카롤의 표정은 도미니크를 생각하면서 걱정하고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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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립다 - 스물두 가지 빛깔로 그려낸 희망의 미학
유시민.조국.신경림 외 지음 / 생각의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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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어릴 때의 5월이란 봄은 아직까지 시원한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 계절이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원래는 비가 여름에 많이 오고 더운 몬순기후이기 때문이었다. 계절적 특징이 몬순기후라면 당연히 5월은 여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울 리가 없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와 산업의 발달, 특히 자동차의 증가는 우리나라를 더운 나라로 만들었다. 5월에 반팔을 입는 것은 어린 시절에 생각하지 않았으나, 5월이 이제는 초여름으로 변하면서 30℃ 이상 넘어가기도 한다. 이런 5월이 언제부터인가 가정의 달이 되었고, 어느 순간 5월은 잔인한 날로 변했다.

 

지금 2014년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은 비참한 비극으로 인해 분노라는 감정이 이제는 증오라는 저주로 변할 정도다. 2014년 이 잔인한 5월을 보내며 가정의 달에서 가족을 읽은 사람들에겐 그저 머나먼 신기루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보니 5월은 광주에서 피로 거리를 물들게 했고, 5월하면 또 생각하는 사람, 노무현이란 3글자다. 당시 군대생활을 하던 시기, 노무현이란 남자가 국군의 통수권자였다. 군대에서 아무리 정부에 대한 비판을 자중하더라도 뉴스로 보면 다 드러난다. 언론이 그때는 자유로운 발언권을 가졌으며, 일부 언론은 자유의 발언권을 지나 자극의 발언권으로 무장하기도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며 안타까운 것은 재난에 대한 대응이었다. 내가 군에 입대하기 전인 2003년 여름, 우리나라에 큰 태풍인 매미가 찾아왔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에 몰아넣은 그 무서운 태풍이 말이다. 당시 대통령은 극장에서 태풍상황을 알았지만, 자리를 비울 수 없어 끝까지 관람했고, 거기에 대한 비난여론이 조성되자, 바로 국민 앞에 사죄했다. 국가지도자가 완벽한 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 직분에 있어서는 충실해야 하는 것은 정치철학의 핵심이다. 그런 상태서 나는 2003년 추운 겨울을 훈련으로 보내고, 다음해 봄에 임관했다. 2004년 자대배치를 받을 때 처음에는 현장에서 직접 유지보수업무를 하는 곳에 있다가 얼마 후에 구청이나 시청에 있을법한 사무실과 같은 곳에 갔다.

 

구청에 가면 건설과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여름에 비오고 나서 이래저래 건축물에 대한 관리를 맡으면서 하자보수의뢰를 건설사에 맡겼는데, 이때 시설물 하자보수 관리대장을 보면서 2003년 여름과 가을에 많은 보수공사가 이루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지붕방수나 벽체방수 등과 같은 공사를 말이다. 사무실에 같이 근무하신 상사(그 당시 계급 역시 상사였다.) 분에게 물어보니 정부에서 예산을 긴급으로 내려 유지보수하게 해준 것이라고 했다. 군에서 긴급예산이 돌아오기를 기대할 수 없다. 중기계획 내지 경상계획 혹은 대규모 보수 및 소규모 보수라도 예산을 올려 본부에 올려 국방부에서 자금이 조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군사조직 역시 국가예산에 의해 운영되니 금방이라도 내려올 리가 없다.

 

그런데 그때 그 예산이 긴급으로 들어올 수 있던 것은 당시 대통령이 업무를 수행하면서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판공비가 긴급보수 예산으로 집행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정말 놀랐고, 이때까지 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는 것을 알았으며, 다음 대통령이 되던 사람이 서울시장인 시절에 서울공항 활주로 각도를 틀지 않기 위한 것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전역 후에 대통령이 바뀌고, 참모총장이 바뀌면서 서울시에서 허가해준 제2 롯데월드가 국방부장관과 공군참모총장이 바뀌면서 드디어 착공이 된 것이었다. 나는 아직까지 기억이 난다. 「군용항공기지법」, 시행령도 아니고 시행규칙이 아닌 법률에 활주로가 건축물로 인해 영향이 받는 게 아니라 건축물이 활주로에 의해 결정되는 사실을 말이다.

 

활주로 위로 달리는 전투기가 곧 우리 국민의 방패인데, 어느 재벌을 위해 틀어진 활주로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근무한 곳은 아니나, 하늘과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은 당시나 혹은 예비군훈련이 끝나가는 지금 역시 그렇다. 내가 공군교육사령부에서 보던 푯말에 이런 말이 기억난다. “다시 태어나도 공군”, 군대생활하면서 힘든 일은 많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대한민국 남자라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내가 공군을 선택한 것은 그 만큼 보람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노무현이란 사람보다 노무현이란 대통령을 좋아한 게 동기는 군대에 가서이다.

 

군대를 생각하면 열악한 병영시설이 생각나고, 거기서 사는 사병들의 열악한 병영생활이 보인다. 병영시설에 들어가면 비가 새는 낡은 건물에서 이제는 침대가 있는 신식건물을 바꾸고, 내무반 휴게실에는 최신 컴퓨터에 인터넷까지 보급되어 사병들의 생활이 좋아졌다. 그런 과정을 내 눈으로 직접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 아마 그분이 다른 대통령과 달리 직접 육군 만기제대를 했기에 자신이 겪은 군생활의 고초를 알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또한 자이툰부대에서 복무했던 많은 전우들이 내 주변에 있었다. 그들을 찾아 직접 C-130H 탄 그의 모습에서 잊을 수 없었다.

 

나는 노무현이란 대통령을 남들처럼 그 무섭다고 하던 1980년대 군부독재시절을 본 게 아니라 군대에서 처음 느꼈다. 군에 가기 전에는 대충 이런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알았다. 아직 학생인 나로서 세상에 대해 잘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 않았다. 내가 전역 1달 전에 그는 다시 봉하로 내려가고, 힘든 대통령 생활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군에 있을 때이니 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옛날 공자가 제자에게 정치를 가르쳤을 때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정치로 인해 고통이 없어 정치에 대한 관심보단 삶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 좋은 정치라고 했다.

 

그런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그렇게 정치적으로 안정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관심이 없고, 내가 좋아하는 관심사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는 왠지 모를 허무감에 젖어들었다. 지금도 약간의 허무주의적인 요소가 나에게 남겨져있다. 정치적으로 무지한 나였으나, 어느 순간 책이 내 손에 잡혀있었다. 차별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내가 차별에 대한 부조리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런다고 어떻게 해볼 힘은 없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가 너무 그립게 느껴졌다. 바른 말하여 잡혀가는 세상이 예전에 있었지만, 다시 또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닌가 라고 말이다.

 

<그가 그립다>란 책을 읽는 순간, 아마 나보다 그 책을 저술한 사람들이 더 그가 그리울지 모른다. 영화 변호인에 나오던 송변처럼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 대사, 정말 이러면 안 되는 게 되는 현실이 그때나 지금 역시 그렇다. 나는 그저 군인으로서 그에게 크게 이끌려서 찾아왔다면 이 책에서는 순수하게 노무현이란 인물이 어떤 여파를 헤쳐 나오는 것을 알고 적었다. 하지만 보면서도 조금 마음이 아픈 이유가 참여정권 시절, 노무현 대통령 이전에 지지하던 이들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비판하다가, 막상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당시 그들이 했던 차가운 비판의 칼날이 다시 자신에게 찾아올지 몰랐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이 지지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비판해야 하고, 그것이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미국 정치철학자 존 롤즈의 <정의론>에서 정치적 선택은 최고의 결과보다는 최악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어떤 선택이든지 모두가 좋게 다가갈 수만 없다. 어떻게든 누군가에 대해 불평등한 처사가 뒤따르는 것이고, 그 불평등에 대한 부조리를 다시 보완하여 정리하는 것이 정치의 필요다. 법이란 것이 너무 늦게 변하니 그것을 풀어가는 게 정치라는 것은 정치철학의 본질을 말해준다.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에 유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정치적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정치적 해결보단 이분법적인 논리에 의존한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면서 자유라는 것은 공적인 영역의 이성이 추구되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는 칸트나 롤즈의 사상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적 흐름은 이성이 아니라 이성 안에 가려진 무의식적인 조합이다. 세상에는 왜? 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이 틀렸음에도 그 틀림을 인정하지 못한 채 자신의 틀림이 결국 정의라고 보여주기 위해 폭력이 등장한다. 영화 <변호인>에서 무고한 사람을 잡아 구타하고 괴롭힌 그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으며, 권력 앞에 국민을 기만한 자는 국가라는 이름으로 국가를 모욕하고 있다.

 

국가를 모욕하는 자는 헌법에 명시된 모든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게 권위의식을 가지는 자인가? 아니면 그 권위의식에 대항하는 자인가? 분명히 자유주의철학자들의 책에도 시민의 권리에는 부조리한 권력에 대한 불복종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부조리조차 하나의 정의 내지 도덕으로 받아들이는 기가 막히는 일들이 발생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왜 도덕을 그토록 부정했을까? 왜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것인가? 정의와 신의 이름이라고 외치는 것이 하나의 도덕으로 꾸며진 힘의 논리가 숨어 있을 때 그것은 정의를 파괴하고 신을 매장한 거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그립다>처럼 나 역시 그가 그립다. 그가 분명히 100% 잘 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100%에 안 되는 것도 알고, 될 수도 없는 것도 알지만, 끊임없이 걸어가려고 한 것은 존중해야할 가치관이다. 그의 전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바란 삶의 철학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시대정신이 만든 미숙아처럼 우리는 아직 미개라는 이름을 버리지 못하는가? 그러나 미개한 것이 야만스러운 것보다 더 나은 것으로 생각한다. 토크빌의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처럼 그 나라의 정치는 곧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이란 것처럼 우리는 아직 미개할지 모르나 성난 이리처럼 야만스러우면 안 된다.

 

세월호의 사건에서 피해가족과 국민들에게 미개하다던 어느 청년, 우리의 정치적 수준이 국민의 수준을 반영했다고 하면 그는 자신의 야만적인 성향을 몰랐다. 그 야만스러운 인간들에게 물려 사라져간 노무현이란 세 글자엔 우리 시대의 아픔과 모순 그리고 아련함이 새겨진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지, 국민이 대통령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불러 욕을 해서 국민들이 기분이 좋아지면 그것에 대해 기쁘게 받아들이는 그, 우리는 다시 그런 사람을 볼 수 없는 것일까? 비가 오는 5월의 저녁 진심으로 그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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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1 - 개정판
진중권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극우멘탈리즘에 대한 비판담론설은 우리 사회에도 아직도 통용될 수밖에 없다. 전체주의는 결국 그 나라를 멸망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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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다 (반양장) - 노무현 자서전
노무현 지음, 유시민 정리,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돌베개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노무현의 인생에서 보는 한국의 살아있는 민주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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