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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alto - Rialto
워너뮤직(WEA)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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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Rialto라는 그룹은 다소 음악이 몽상적인 부분이 강하다. 그 이유는 그들은 단순히 음악을 음악으로서 보여주기 보다는 음악을 하나의 영화처럼 보이려고 했기 때문이다. Rialto 1집의 Monday Morniong 5.19의 경우 다소 가사가 어느 남자의 이별에 대해 노래한 것으로 남자가 여자와 헤어진 후에 여자에게 전화해도 그 여자는 받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가사가 I try to call I just get her machine 이다. 남자가 아무리 간절하고 바래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이 그저 자동응답기 기계음만 들린다. 그리고 새벽을 지나 아침이 다가오고 남자는 이제 더 이상 전화할 힘마져 없다.

그런 가사의 전달력으로 통해 마치 우리가 노래를 들음으로 남자의 절망을 알 수 있게금 한다. 그리고 다른 곡으로 When We're Together의 정말 영화같이 만든 뮤직비디오이다. 우리가 기존에 보는 뮤직비디오는 영화와 같다는 생각이 크게 안느낀다. 그것은 단순히 보여주기 급급할 뿐이지 영상 위에 보이는 화면은 지나가는 쇼타임과 같다.

그러나 When We're Together는 정말 한편의 흑백영화를 보는듯 하다. 어느 흑백영상필름에 한 여성이 나오고 스토커는 그녀를 항시 주시한다. 몰래 뒤따라가면 관음적으로 쳐다보는 카메라 시선이 더욱 스토커의 슬픔을 묻어 나온다. 특히 I call her up and disconnect, wait by her house once more to check에서 그녀의 집에 전화를 거는 스토커 그러나 말한다미도 할 용기없이 끊어 버린다.

그러나 I feel my blood rush to my heart 처럼 그 스토커의 마음 속에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다. 마치 스토커가 어느 여자를 열광적으로 훔쳐보는 이 뮤직비디오 슬픈 마음을 고스란히 담긴 것이다. 그런 점에서 Rialto의 음악은 상당히 영화처럼 들리는 부분이 많다.

물론 영화적인 부분이 있다고 음악적인 부분이 없는 것이 아니다. Rialto의 명곡인 Monday Morniong 5.19는 2명의 드러머가 호흡을 맞추며 같이 연주하고 있다. 2명의 드러머의 연주로 곡의 긴장감과 비트감이 넘친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음악은 상당히 독특함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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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 미술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신화 뒤집기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지음, 박이소 옮김 / 현실문화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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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이것은 OOO은 아니다를 알게 된 것은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라는 서적이다. 애니메이션이고도 불구하고 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는 말은 이것이 단순히 애니메이션으로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깊은 내용이 담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서적을 통해 나는 애니메이션을 가지고 철학과 인문사회학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한다면 끝없이 보여줄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충분히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본래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에서 본제는 벨기에 미술가 및 철학자로 명성을 떨친 르네 마그리트 선생의 작품이었다.



르네 마그리트 선생은 어느 빈 공간의 화백에 달란 담배 파이프 하나 그려 놓고서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이상한 작품을 그렸다. 우리 인간의 눈에 분명히 파이프가 맞는데,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라 그 이상이나 혹은 그 이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런 이상한 의미의 내용을 그리던 르네 마그리트 선생은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다소 추상적이고도 초현실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래서 근현대 미술에서 르네 마그리트 선생의 작품은 상당히 가치가 높은 것이다. 예전에 진중권 교수의 미학 오딧세이에서도 르네 마그리트 선생의 작품을 소개하고 여기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작품처럼 우리가 생각하던 기존 관념에 대해 다시금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때까지 살아오면 사회의 인식아래 기존 관념이나 편견, 혹은 독단은 우리 인간 스스로 하여금 속박하게 하였고, 그 속박은 이제 하나의 당연한 사회가치관으로 되기도 하였다.

감성을 억누르는 이성, 여성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남성, 흑인을 굴복시키려는 백인 등 우리는 기존 인식 속에서 해서야 안될 일들조차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인식은 예술 속에 그대로 녹아 있다.

예술은 기본적으로 그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과 사회, 그리고 주변 여견에 따라 변한다. 만약 피카소가 불행한 민간인들의 학살을 보지 않았다면 게르니카, 한국에서의 학살을 어떻게 그렸을까? 피카소는 전형적인 아방가르드 즉 전위예술가이다. 그런 그가 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가는 그 당시 사회가 말해 주었다.

물론 피카소는 기본적으로 마르크스 주의자였다. 프랑스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북한 공산당과는 당연히 다르다.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권력으로 누르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구조주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도 기본적으로 마크르스적인 학문을 차용하였다. 게다가 후기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적인 사상이 된 사람이 마르크스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에서는 인간의 예술은 그 시대적인 흐름과 인식을 반영하는 하나의 구체화된 사물인 것이다. 인간의 정신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은 존재이나 그것이 조각이나 미술, 사진으로 나타나는 순간 하나의 시각정보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여지고 왜 그렇게 되며, 또한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 것인지 조금 더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처럼 남자소변기에 싸인을 하고 "샘"이라고 하던지 모나리자 그림에 콧수염을 붙인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보일지는 모르나 결국 이것이 팝아트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점이 되었다.

예술이란 우리가 생각하기에 숭고하고 대중과 멀은 저 높은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적어도 모더니즘 사상이 근원하던 시대나 그 이전에도 그렇다. 프랑스 혁명이전 모든 예술은 귀족과 왕족에게 하나의 권력상징이었다. 그리고 근대시대에서는 지식인이나 부유층들에게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근대이후 나타나는 예술은 백인남성 중심 엘리트가 아니라 흑인, 여성, 제3세계 국가에서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술을 느끼는 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공공용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각하고 느끼고 다가가는 것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미술이나 예술을 좀 더 감상하기 위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철학자와 임마누엘 칸트, 칼 마르크스와 같은 즁세 및 근대철학자, 그리고 기 드보르나 장 보드르야르, 삐에를 부르디외, 질 들뢰즈와 같은 현대 철학자 및 예술가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예술에 대해 깊이 다가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근대가 아닌 현대에서 예술은 그 예술적 가치를 대중들이 알아주지 못할 망정 대중에게 예술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중들에서 보이는 삶과 일상에서도 예술적인 가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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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 Fahrenheit 9/11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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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추석때 화씨 911이란 영화를 보았다. 화씨 911는 21세기 최고의 비극적인 테러인 미국쌍둥이 빌딩이 항공기에 의해 무참하게 찢겨진 사건이다. 이 날의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당시 악몽과 후유증으로 고통받았다. 사람이 죽으면 말이 없는 법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은 말은 남는 법이다. 

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 연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날의 고통을 잊지 못한채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비극의 문제는 비극이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비극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가이다. 세상에 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과 혹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조차도 억울하게 죽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01년 9월 11일 이날 많은 사람들이 어긋난 세계이념 아래 무참히도 살해되었다. 살인자는 누구인가? 테러리스트인가? 아니면 그 외의 누군가인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나는 노암촘스키의 불량국가라는 서적을 읽어보았다. 노암촘스키 교수는 세계의 양심적인 지식인으로 나이가 80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정은 꺼질 줄 모르는 활화산과 같다. 얼마 전에 이스라엘에 가려고 했지만, 그 이스라엘 정부가 거부했다고 한다. 

나이 80대인 할아버지가 뭐가 무서워서 한 나라 정부조직이 거부한다는 것일까? 국내에서는 국방부 불량서적에 올라갈 정도로 낙인찍힌 분이다. 이분이 미국에서 언어학을 가르치고 사회학을 연구하는데 무엇이 무섭다는 말인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말 하나가 진실이다. 진실은 아름답고 정의롭다 말보단 정의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인 미국 전 정치인 엘 고어는 이런 책을 적었다. 불편한 진실, 나중에 이 책을 기반으로 영화도 나왔다고 한다. 환경공학자 입장에서 책을 보았지만, 아직 영화는 감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불편하다는 진실은 환경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와 정치외교에서 얼마든지 등장한다.  

이런 불편한 진실은 언제나 뒤에서 대중들을 눈을 가리고 이익만 챙기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에겐 그야말로 짜증나고 꼴도 보기 싫은 가시와 같을 것이다. 이 불편한 진실을 정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나 그런 내용을 공감할 수 있는 화씨 911, 노암촘스키 서적을 보고 이 영화를 한번 더 보기를 권장한다. 정말 이 영화와 노암촘스키 서적의 싱크로를 따지자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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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사학
서정남 지음 / 생각의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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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작품에 대해 리뷰를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공부와 정보가 필요하다. 애니메이션은 영화, 드라마 등과 함께 영상으로 비추어지는 하나의 서사물이다. 서사구조를 먼저 이해하려면 글로 적혀 있는 문자서사인 소설과 수필 등이 매우 좋겠지만, 애니메이션이란 장르는 글로써 이루어진 서사물이 아니라 영화와 같이 이미지로 이루어진 서사물이다.
그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허나 한국의 애니메이션 비평문화는 주로 영화평론가들 사이에서 다루어진 현실이기에 애니메이션을 이해라혀면 영화적인 요소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영화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인지하게 되면 영화 속의 대사, 소품배치, 효과음, OST 등 다양한 요소를 파악하게 될 것이며, 이런 주변 요소들이 영화 본래의 이야기에 극적인 효과를 전달해줄 수가 있다. 영상서사의 이야기전개나 카메라앵글, 몽타주나 미쟝센기법, 시간적인 흐름과 이야기주체와 객체 등은 영화제작자나 혹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하여금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볼때 영화서사학이란 책은 우리가 영화나 혹은 영상서사물을 보고들을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면서 감상해야하는지를 유도할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대중들이 여가시간를 이용하여 단순히 즐긴다는 것보단 영화라는 전체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지은 서정남 교수는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적인 분석방법을 이 책에서 소개하였다. 물론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체계도 소개했지만, 프랑스 구조주의를 시초인 소쉬르의 기호학으로부터 크리스티앙 메츠, 롤랑 바르트, 제라르 쥬네트와 같은 프랑스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자 연구방법을 이용하여 이 책을 저술하였다.
그런 점에서 분명 이 책은 쉬운 내용이 아니다. 하지만 한번 읽어본다면 영화의 제작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분석해보는 것도 크나큰 즐거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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