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집 Self Portrait
동아기획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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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사후에 다시 나온 앨범인 7집 Self Portrait, 그것은 완전한 미완의 앨범이었다 .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은 존재, 그의 존재는 너무나도 타오를 같은 불꽃처럼 눈부시다,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 불꽃은 꺼지기 전에 가장 눈부시다고 한다고 할까나?

 

이 음반을 들으면 그의 명하모니카곡 "한국사람"이 들린다. 무척이나 하모니카 소리가 우울하고 슬프고 아름답고 뭔가 가슴을 찌르는 느낌이 든다. 한국사람이란 제목처럼 우리 한국인 내에 간직하고 있는 恨(한)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Live Voice에는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故 유재하 선생의 이야기도 나온다. 가난한 시절, 배고픈 시절, 그리고 외로운 시절...김현식이란 이름을 들으면 외로운 사랑의 가객이다. 사랑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고 즐거워야 하는데, 그의 목소리에서 느끼는 사랑은 외로움이다.

 

그가 부모님을 여의고, 시골에 내려와 시골에선 서울촌놈이라 무시받고, 다시 서울로 갈 때는 시골촌놈이라 무시당했다. 그리고는 많은 반친구와 싸우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외로움과 그 외로움을 참을 수 없음은 결국 지난 어린시절을 비뚫어 버린 계기가 되었고, 그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뭔가 달랠 수 없는 기분, 뭔가 찾고 싶은 기분, 인간의 가슴 한편에 숨쉬고 있는 박탈감은 그로 하여금 한의 소리를 내게 했다. 지금 나는가수다 내지 추억의 앨범에서 김현식 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정말 그의 노래를 부른 가수들 중에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줄 사람은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가수가 가창력과 테크닉, 카리스마로 무장해도 김현식에게 이길 수 없었다.

 

김현식은 그 한과 열정, 눈물,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지르는 비명과 절규를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병상에서 죽기 전에 부른 곡들은 들으면 그렇게 좋게 들리지 못한다. 그의 목소리는 초반에 그렇듯이 이미 간경화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술과 담배, 그것만으로 부족하였는지 결국 외로움까지 그를 엄습했다.

 

그에게 가족이 있었고, 자신의 피를 나눈 아이도 있지만, 그런다고 그에겐 모두 채울 수 없었던 것 같았다. 이번 비정규적인 정규앨범 7집을 들으면 김현식의 가창력보다는 그 feel이 얼마나 깊고 아름다운지 알 수 있다. 1980년대의 뮤지션이 그러하듯, 대부분 외국 팝송을 많이 따라 불렀다. 우리의 서구화된 문화는 그때 가서 빛을 발한다. 특히 락, 발라드, 팝, 블루스...

 

신촌블루스와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동하던 김현식은 이미 한국 최고의 락블루스 보컬이다. 그래서인지 어느 노래를 들을 때 김현식의 애창곡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갈라진 목소리가 나온 것을 듣고 그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명곡 팝송의 보컬과 비슷했다. 아니 거의 그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죽음과 조우했다. 그가 죽기 전에 이미 그의 친구 겸 동료인 유재하의 죽음도 상기시켰다.

 

봄여름가을겨울 멤버 4명이 모였는데, 그럼 재하는? 라는 대사에서 환절기란 농담은 그의 인간적인 모습까지 옅볼 수 있었다. 김현식의 자화상이 담긴 7집 Self Portrait는 그렇게 김현식의 넋두리를 비친 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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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 사회비판총서 1
연구모임 사회 비판과 대안 엮음 / 사월의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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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철학과 사상에 대해 조금씩 배우려고 했던 시기이다. 철학과 사상이 예술과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담론과 흐름 그리고 비판과 고찰이란 시점을 내놓은 것으로 필두로 거기에 대해 어떤 학파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학자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초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기존 관료화, 제도화, 규격화, 획일화이라는 모더니즘에 거부하는 사상적 풍조로서 베트남전쟁 이후 막 태동하던 사상운동이었다.

 

그 근원에서 학문적인 영향이 없을 수가 없었다. 새로운 담론과 사상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대하여 담론을 만들고, 대중을 넘어 시민사회를 이끌어갈 지식인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때 처음으로 내가 만든 사상과 철학이 (후기)구조주의였다. 주로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하여 현대철학과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되던 부류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였다.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사회문화연구소의 개설과 더불어 당시 1930년 전후로 독일에서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시에는 미국이나 국외로 옮겨, 다시 전쟁이 끝나자 독일로 돌아와 세계지성의 큰 중추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글을 적는 스타일과 문화 내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학문과 많은 연관성을 가졌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이성의 대한 비판과 억압에 대한 해방, 인간의 인권으로 당시 나치와 세계대전으로 인한 인류의 큰 위기 속에서 그것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시행한 것이다. 그런 점을 미루어볼 때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라는 서적은 당시 독일 지식인들이 바라보는 국제사회와 그리고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변하고 또한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 고찰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느꼈으나, 대부분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식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영향을 주던 사상가는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그리고 헤겔이었다. 헤겔의 변증법적인 역사적인 논리로 통해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란 말처럼 당시 사회는 이상적이지 못했다. 이성적이란 것은 무엇일까? 차라리 이성이라고 말하나, 실제로는 비이성이 하나의 교조주의로 변하여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결국 인간을 하나의 수동적인 존재로 낙하시켰다. 그러한 것이 당시 독일의 나치가 공산당과 사회당 대립이었고, 또한 소비에트와 나치의 대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기본적인 학문바탕이 되던 마르크스는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을 좀 더 현실적인 인식아래 지켜봐서 유물론적인 변증법을 전파했다. 당시 계몽이란 명제가 진실로 계몽이었는지 보다는 계몽으로 위장한 하나의 억압이요 신화였다. 이런 전반적인 역사적 근거로 하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지식인들은 2차 대전부터 시작하여 베트남전, 심지어는 악셀 호네트 프랑크푸트르대학 3대 소장까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테제들을 살펴본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독일만 아니라 유럽 및 전 세계는 광기로 미쳐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의 산물은 폭력을 해결하는 폭력이라고 했으나, 오히려 그 폭력들을 합리화시킨 도구로 되었다. 그 와중에 인종차별, 남녀차별, 노동자 및 소수약자 인권 침해는 여전히 등한시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으로 우리나라 역시 그런 문제를 지적했다. 산업화라는 모더니즘 경제사회로 돌입하면서 공사장과 공장의 근로자들을 산업화 사회를 위한 일꾼이란 칭호를 사용했지만, 막상 각종 인권침해와 노동착취, 산업재해로 약자들은 피멍을 입었다.

 

국가라는 조직이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나 그 국민을 위한다고 하는 슬로건이 결국 국민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헤게모니적인 부분으로 이런 문제점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아도르노 의견처럼 문화산업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단지 발터 벤야민이 주장한 19세기의 파시주라는 파리의 건축양식처럼 그 양식에서는 꿈, 환상, 현실이 공존하는 몽상의 세계였으나, 20세기에 다가오면서 높은 빌딩이나 백화점은 파놉티콘이란 일망감시체계처럼 상업적 기능을 변화했고, 예전처럼 소비의 대상은 소수 부르주아가 아닌 대다수의 대중으로 바뀌었다.

 

문화의 향유가 결국 소비라는 자본의 사용으로 변모된 것이다. 대중문화라는 것은 결국 문화의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고, 문화의 소비에서 대중들은 각자가 원하는 것을 찾아가기보다는 일정한 틀에 갇히는 꼴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영화, 드라마, 잡지 등은 우리의 취향들을 모우기 보다는 우리가 그들에게 따라가는 셈이 된다. 우리는 과연 현실 속에 살아가는 존재지만, 우리가 담론지어 보는 것은 현실일까? 주변에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대화하면서 자신의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본 환상과 가상이 현실의 이야기를 대체한다.

 

문화산업에서 대중들을 집단적으로 획일화된 관료적인 미디어로 통해 그들은 비판의식을 상실한다. 더구나 미디어의 의해 정치적 참여나 의지 역시 박약해지는 것을 지적한다. 가령 인간들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이 자신의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대안으로 가는 것인가? 아니면 이성을 맹신한 무조건적인 부분이냐는 것이다. 바로 인간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다수결의 이름 아래 존재적 정체성으로 뭉친다.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학력차별로 구분되는 엘리트주의와 저학력자들, 성으로 구별되는 남성과 여성, 지역으로 분리되는 지역주의까지 만연하다.

 

그런 부분은 당시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제기한 문제이고, 오늘날 그 문제의 제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국도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갔다고 해도 그곳은 자유주의국가라고 하나, 단지 자본주의로 이루어진 전제국가였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유색민족에 대한 인종차별, 여성에 대한 인종차별 역시 현실적 문제였다. 아메리카 드림이란 것은 결국 백인남성 우월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에 불과했다.

 

그것이 이성적으로 옳지 않아도 그 속에서는 당연한 논리로 결부 짓는다. 이성의 한계가 와도 이성의 계몽은 결국 자신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칸트의 말처럼 인간들은 여전히 스스로를 억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 1968년 프랑스 파리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난다. 드골의 강압정치와 노동자의 불만, 그리고 여성들과 학생(이들 속에는 중학생도 많았다)들이 정부에 대해 반발감을 일으켰다. 문제는 이 책 서문에 나와 있듯이 그들의 시작은 좋았으나 시작의 철로는 언제나 일직선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탈선하기 마련이다.

 

파시즘이란 단어는 보통 지극한 우파들에게 붙어지는 칭호다. 그러나 파시즘이란 단어는 좌파 역시 피해가지 못할 단어이다. 단지 그 잔혹성과 원인성이 기존 권력과 무력을 소유한 자로부터 시작한 것이다. 좌파파시즘은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역사적인 변증적 논리로 시작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의 전복이 1789년 프랑스 혁명과 1917년 러시아혁명을 보듯이 기존 정치체를 전복되어도 인간의 세계에는 평화가 오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굶어죽었고, 러시아 국민은 전쟁으로 더 많이 죽었을 것이다.

 

극단과 극단의 수단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오히려 그 문제를 없앰으로서 사회의 장애를 외면하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가 곧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일까라는 의문을 주게 된다. 인간은 자신 혼자서 살 수 없는 정치적 동물이나, 오히려 정치적으로 되었기에 억압과 갈등이 시작된 점이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이성적 계몽과 비판적인 안목으로 타인에 대한 인식과 인정으로 가야하는 점이다. 하버마스나 프롬, 호네트 편을 읽으면 전형적으로 대화단절이란 것을 실감하게 된다.

 

타인에 대한 자신의 외면이 결국 타인을 인정하지 않게 되어 언제나 자신의 소유만 집착하는 것이다. 그런다고 하여 인간의 감성과 무의식까지 억압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예술이란 것은 현실을 그대로 나타내는 것도 안 되지만, 현실에 대한 모방성 역시 중요하다. 예술이 자본의 가치로 환원된 이상 그것은 예술의 가치를 상실하고, 그런다고 예술이 대중들을 탈피한 존재로 있을 수도 없다. 루이 알튀세르의 말처럼 유몰론과 관념론은 끊임없이 대립하여 나가는 것처럼 예술 역시 현실 그 자체와 분리된 현실을 격리하는 게 아니라 새롭게 대립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단락은 아도르노편인데, 그의 사고는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아주 유사한 상황을 지적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현대사회는 정치권력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나 정치적 무정부주의, 극단적 채식주의나 원시적 공동체주의를 지향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우호적 관심을 갖는다. 아무리 극단적인 체제 비판세력이라고 하더라도 이것과 저것 중에 하나를 선택하고, 그에 대해 자기 확신의 논리를 가진 사람은 위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편이 아니라 저편에 봉사하는 논리도 결국은 실천 가능성이나 현실적 유용성을 입증해야 한다면, 결국 같은 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제시된 액자택일은 이미 타율의 일부다.” 이런 방식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사람은 노이로제 환자 취급을 받기 쉽다. 그러나 아도르노에 따르면 자유란 흑백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규정된 선택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다.”>

 

과거의 야만이란 신화가 과학이 들어서면서 깨지는 것이 아니라 그 야만이 과학이란 기술로 통해 새롭게 억압을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그 야만은 통제력이 강하고, 언제 어디서나 인간의 의식구조를 지배할 수 있는 전방위적인 신화이다. 그 신화는 결국 아도르노 말처럼 인간의 극단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더 가속화시킨다. 어떤 나쁜 존재가 있어서 그 나쁜 존재를 없애도 그 존재가 나쁜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엄청난 오산이듯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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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호 2023-12-08 1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보고 이책 삽니다
 
나는 학생이다 - 중국의 大문호 왕멍, 이 시대 젊은이들과 인생을 말한다
왕멍 지음, 임국웅 옮김 / 들녘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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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이다”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학생(學生)이란 누군가에게 배우는 입장을 학생이라고 한다. 그런데 학생의 대부분은 어린 아동이나 청소년, 그리고 대학생들 같이 이제 막 어른의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학생이란 신분에 맞추어 있다. 그래서 나는 학생이다라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학생이 아닌데도 학생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일단 학생은 배우고 연마하고 단련하는 사람이다. 즉 자기가 언제나 부족한 입장이고 계속 뭔가를 습득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작가인 왕멍은 중국 내에서 상당한 입지를 가진 대문호이다. 그런 대문호가 학생이라고 하는 것은 배움이란 평생의 업이라는 뜻이다. 문제는 그 배움은 단순히 고통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즐거움까지 안겨주는 하나의 삶이란 점이다.

 

그리고 배운다는 말은 단순히 지식의 습득 내지 기술의 사용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격이나 성품, 나아가 자신의 인생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다. 그런 만큼 나는 학생이란 말은 우리 인간이 언제나 마음과 사고가 열어야 하며, 그런 다음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큰 사회적 틀 안에서 각자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배움의 기회로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도 한다. 세계 제2차 대전 이래 왕멍이 살던 중국은 청나라가 붕괴되었고, 그 후에 일본에 의해 세우진 괴뢰정부 만주국이 들어섰다. 그런데 이 만주국의 설립은 결국 일본제국주의가 한참 발을 뻗었고, 그 시기에 맞추어 장제스의 국민당의 부패, 새롭게 일어난 모택동의 혁명은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다.

 

물론 개인적으로 볼 때 모택동은 마르크스주의라고 해도 그가 이룬 중공은 마르크스주의와 관계가 멀어진 국가로 변모한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루는 왕멍의 이야기가 한편으로 신뢰보다는 다소 실망감으로 떨어지는 기분도 들었다. 어째든 모택동이 혁명을 주도하여 2차 대전의 폐해인 일제와 더불어 부패한 국민당을 몰아내었다. 그런 시기에 왕멍은 이제 11세에 혁명에 뛰어들어 1949년 10년 1월에 모택동이 중공의 주석이 된다.

 

이때 그가 중국 공산당에 활동하면서 많은 활약했으나, 1958년 우파로 낙인찍혀 위구르족이 사는 영토에 유배되었고, 거기서 노동이란 활동으로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배웠다고 한다. 외국어를 배우고 문화와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영감을 나눈다는 점이다. 그 후에 유배가 풀린 후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사고는 확실히 열린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서전을 볼 것 같으면 노무현 대통령의 <성공과 좌절>이 훨씬 나은 것 같다. 그리고 지식인으로서는 미셀 푸코나 루이 알튀세르와 같은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좋은 것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볼 때 왕멍이 지은 도서는 개인적인 영역에서는 좋은 책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갖춘 비판은 너무 자기현실을 낙관적으로 보기에 그렇다.

 

인간이 스스로 낙관적으로 보는 것은 좋은 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거부하고 싶다. 인간이란 스스로 낙관론적인 삶에 빠질 때 철학적인 영역이 단지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왕멍이 적은 글에는 중국의 대혁명과 더불어 자기가 살아온 흔적이 녹아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없다. 중국인으로서 왕멍 개인은 비판해도 왕멍이 살아가는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비판의 강도가 너무 무딘 것이다.

 

살아온 인생이 매우 거칠고 어려운 과정이기에 아름다운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나, 그가 살아온 중국에서 어느 모순이 발견될까? 위구르족과 더불어 살아간 그 농사꾼의 인생은 분명히 아름다울 수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에서 자행해온 이민족 차별과 학대, 게다가 티베트족들의 학살과 라마교 승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볼까? 유물론적인 마르크스주의를 계속 유지했다는 전제 아래 라마교가 영적인 부분을 숭배해서 배제함이라고 하면 이해하나, 그는 중국의 전통적 문화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는 내내 초반에는 그의 긍정성과 발전성 그리고 삶의 지혜가 좋은 것처럼 다가왔으나 뒤로 갈수록 그의 진정성에서 의심이 간다. 좋은 이야기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나, 인간이 추구해서 안되는 이야기에서 그의 비판은 4년이란 그 기간 속에 과연 자신이 나타내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에서 나로 하여금 의심을 갖게금 했다. 어느 책에서 이런 말이 생각났다. 헤겔의 사고는 독일의 사고고, 다시 그 사고는 세계의 사고다. 단어의 적정함에서 제대로 찾았는지 몰라도, 그의 철학은 마치 중국의 전반적인 가치인양 외친다.

 

중국이 행해온 공업화에서 심한 환경오염과 물가상승은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 분명 북경올림픽으로 해결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나, 그 원인에 대한 비판이 없다. 결국 자기 자신은 깨끗하나 중국은 깨끗하다는 의미일까? 아니라면 그런 부분을 외면하려 한 것일까? 스탈린의 경우도 그렇다. 스탈린의 경제성장계획에서 그는 혁명적이라고 말한다. 스탈린의 혁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여긴다.

 

그가 자행해온 살인, 감금, 추방, 강제노동은 혁명이란 단어조차 무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가 행한 굴라크(러시아의 부농)에 대한 살해와 재산몰수, 일국사회주의 이념 아래 권력을 다지기 위해 파시즘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변모시켰다. 당시 독일의 히틀러가 있어서 히틀러가 나치즘이란 과격한 파시스트로 활동하여 반파시스트라는 전제 아래 스탈린의 파시즘은 합리화하려고 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 아래 이 책의 초반과 후반을 비교하면 실망하기를 이루 말할 수 없다. 왕멍 그 자체는 좋은 사람이나, 그는 좋은 사람일 뿐이었지, 정말 지식인으로서 말하기가 거북스러웠다. 단지 내가 볼 때는 중국이란 자기국가와 민족 안에서 대문호일 뿐이지 그 문밖에 나오면 자기만족에 빠진 문장가에 불과하다. 그것이 나쁘다거나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바로 한계점이란 사실이다.

 

“나는 학생이다” 이란 제목에서 나는 많은 공감을 받았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이미 정규교육과정을 마친 지가 예전이고, 대학교 졸업도 제법 오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배울 것은 여전히 많고 생각할 것도 많다. 그러나 배움과 삶은 항상 변화하게 되는 마련이다. 왕멍은 변화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그 변화에서 모순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의 모순은 현실이란 자기 안에서 자기 영역에서 아니라 타인의 영역도 관찰을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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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 유동의 철학 - 한 철학자의 지적 초상화 리좀 총서 6
우노 구니이치 지음, 김동선.이정우 옮김 / 그린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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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어본 질 들뢰즈, 그에 대한 이야기는 가끔 현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동양권 국가에서 유명한 프랑스 철학자 중에 하나란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전에 인터넷 사이트 철학관련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질 들뢰즈가 직접적으로 언급된 것은 아니나, 적어도 한국인지 세계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으나 3가지 학문사상이 주류로 차지하고 있다고 말이다. 1번째는 마르크스주의, 2번째는 구조주의, 3번째는 라캉주의라는 것이다.

 

적어도 주류에서 마르크스야 말로 비주류에서 탄생한 주류학파이고 20세기 초반부터 21세기가 도래된 시점에서 마르크스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마르크스 유령이 오고 싶은 것이 아니라 계속 오게 만드는 사회적 현상일 것이다. 마르크스 이외에도 다른 사상가의 사상을 흡수하여 탄생한 구조주의, 그 구조주의 안에서 4인방 중 하나인 자크 라캉, 일단 그래도 자크 라캉은 정신분석학자로서 마르크스보다는 프로이트의 사조를 재발견했다.

 

그러나 일단 요 3가지 사상이 주름잡는 것은 사실이다. 이미 프랑스에서 구조주의가 쇠퇴하고 있다고 하나, 한국에서 쇠퇴하기 어려운 것 같다. 한국이란 워낙 사상적인 자유나 담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들뢰즈와 무슨 관계가 하냐면, 지금 막 읽어본 <들뢰즈, 유동의 철학>에서 들뢰즈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흄, 스피노자, 니체, 베르그송, 프루스트와 같은 사람들인데, 그가 말년 죽기 전에 마르크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저술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그의 철학적인 자세는 언제나 활성화라는 것을 추구하려 했던 것 같다. 단지 예전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를 직접 만나고 친분이 있던 우노 구니이치라는 일본인의 <들뢰즈, 유동의 철학> 속에서 내가 들뢰즈를 알기란 어렵다. 이 책은 우노 구니이치라는 사람이 들뢰즈란 인물을 알고 그의 서적을 읽고 연구하였기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것은 천의 고원에서 보이는 리좀이란 단어였다.

 

어디든 심오하게 영상비평이 들어간 자리에 리좀이란 단어가 그물망처럼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라는 존재 역시 들뢰즈의 이름을 알았던 계기는 철학을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미학과 비평에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알았다. 그는 철학자이기도 하나 오히려 영화평론가로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그가 서구철학의 반항아인 니체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 그가 실존주의적인 면에서 삶의 부정보다는 긍정을 추구하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는 폐가 너무 좋지 않아 자살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의 죽음에 관하여 죽음은 인간에게 좋지 못한 행위이며, 신의 가호 아래서는 죄악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자면 죽음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극단의 상황이다. 하지만 죽음이라고 하여 그 죽음을 택하는 것에서 긍정의 철학자 들뢰즈를 두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이라고 하기에는 그가 해온 인들이 아닌 것 같다.

 

어느 구문에 적혀있는 것처럼 죽음은 자연적인 현상이고, 그 자연적 현상에서 개인이 그 죽음은 선택하므로 죽음이어야말로 최고의 자연적인 행위가 아닌가라는 점에서 죽음을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그저 언제나 같이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망각의 세계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플라톤이 저술한 서적 중에서 주인공이 대부분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많이 나온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죽음이란 존재가 힘들고 괴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철학자라고 한다. 죽음과 삶이라는 것은 반대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같이 함께 하는 존재이므로 삶이란 죽음과 같이 걸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란 점이다.

 

아니라면 죽음이 당장의 생물학적 생명에는 멈추어서 정지하더라도 인간의 이성과 영혼은 끊임없이 부활한다면 그것은 죽음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삶이란 것일까? 하지만 인간의 인식과 존재에서 어느 특정한 영역에서 업적을 남기지 못하면 존재의 상실은 영원히 이어진다. 그러면 존재라는 객체가 있더라도 그 존재가 있었다로서 종말을 고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20세기의 슬픔은 하이데거가 차지하고 20세기 기쁨은 들뢰즈가 차지한다고 했다.

 

그것이 왜 그런지 몰라도 하이데거와 같은 경우 니체의 실존주의를 따라가고, 그의 초인사상을 이끌렸다. 문제는 하이데거가 살아가던 시절은 유럽에서 가장 시끄럽고 잔인하고 무서운 시기였다. 현대사회는 참으로 변증법적인 역사가 눈에 보인다. 왕정사회의 붕괴와 착취와 투기의 시대 그리고 민주주의로 위장한 파시즘의 세계 그 모든 것이 유럽의 20세기 중반까지의 모습이다. 그 파시즘의 극치는 결국 전쟁이다. 전쟁은 어느 순간 전쟁이란 그 자체에 목적이 아니라 국가란 장치아래 하나의 도구로 되었다.

 

당시 하이데거가 문제된 이유가 독일 나치스의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현대에 사는 사람치고 히틀러하면 떠오르는 것은 독재자에 전쟁광이다. 물론 당시 독일의 상황과 주변관계를 보면 그가 하는 전략은 독재자로선 합리적 판단일 것이다. 내부의 갈등과 분열을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묶어내어 외부의 상대를 적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제국이어야 말로 최고고 선이라는 가치로 무장하면 그것만큼 쉬운 선동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2차 대전의 그늘은 들뢰즈에게 존재했다.

 

이 책에서 안 사실은 그의 가족 중에 형이 2차 대전 중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전쟁이란 광기 아래 가족을 잃은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그러나 전쟁의 비극이 있으면 항상 철학의 사유란 새로운 동이 트이는 것 같다. 플라톤 역시 청년시절에 고대그리스 아테네에서 살던 시절에 전쟁이 있었다. 28세 때는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이성 아닌 이성에 죽임을 당했다. 이 책에 언급된 “이성은 감정 중의 하나”이듯이 소크라테스가 신을 모멸하지 않음에도 모멸됨이 성립되는 것은 이성이 정말 감정 중의 하나로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질투라는 감정이 이성화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권력으로 하여금 한 인간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비극이어야 말로 오히려 인간을 다시 성찰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라고 여긴다. 물로 그런 점들은 들뢰즈가 오래 전부터 눈여겨본 스피노자에서 시작된다. 스피노자에 대해 자세히 모르나 단지 “내일 당장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를 주장한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당시로서 무척이나 박해를 받았다고 한다. 유대인이면서 유대인 사이에서 배척당하고, 유대인을 배척한 기독교인들에게 역시 배척당하고, 그의 사상과 생애는 배척의 역사이다. 괴로움과 좌절감으로 맛보면서 눈감던 그에게 이제 그의 철학은 현대 기라성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된다.

 

당시의 패배, 오늘의 패배가 내일과 미래의 승리라는 여러 가지 역사적 사실이 그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들뢰즈에게 그의 사상은 많은 변화를 준 모양이다. 스피노자가 당시에 아주 거친 인생을 살았으나, 스피노자의 지구멸망에서는 그의 인생관은 정말 철학적이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이어야 말로 오히려 차분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다르게 보자면 사과나무 한 그루의 의미에서 세계가 망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또한 사과나무를 심는 그 행위로서 희망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것이 들뢰즈가 희망으로서의 철학을 두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내가 아는 블로거 중에서 분명히 이 이름을 사용한 분이 있었다. “천의 고원”이라고 말이다. 천의 고원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저술한 명저이다. 물론 앙티 오이디푸스도 있겠지만, 천의 고원에 녹아들어있는 사상의 깊이와 사유의 세계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 몰랐다. 그저 그런 아이디에서 그런 책제목이 있다는 사실을 여기서 알고,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지를 측정할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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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로 간다 - 열혈 명계남, 리얼 증언과 한맺힌 싸움의 기록
명계남 지음 / 모루와정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2012년 5월 23일 나는 정말 봉하로 갔다. 이번에 출판된 문성근 배우의 친구이며, 영화제작자 겸 배우인 명계남의 책 제목인 <봉하로 간다>라고 말이다. 이 책은 명계남 배우가 노무현이 처음 정치스타로 되는 시기인 2000년으로 올라간다. 그 당시 북구강서구 을인 허태열 후보에게 패배한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른바 노사모가 결성되었다. 그는 그런 노사모의 중간에서 노사모와 더불어 노무현, 그리고 문성근,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갔다.

 

여태까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자서전 내지 일화를 다룬 서적들을 보면 상당히 고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받쳐 슬펐다고 한다면, 이번에의 이 서적에서는 그리움으로 복받쳐 악으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단순히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당시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다루는 것보다는 그런 일들에 대하여 아주 열렬하게 깐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조금 즐겁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배설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배설이란 단어에서 말을 막 내뱉는 것이나, 그 내뱉게 한 일련의 과정과 형태를 보자면 배설 따위는 양반인 것 같았다.

 

노무현이란 인물이 당한 것도 그러하나 명계남 자신이 당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제일 인상 깊은 이야기가 바다이야기란 사행성 도박게임에 대한 일화다. 당시 명계남은 전혀 도박과 무관하고 그 엄격하고 무서운 칼날을 지닌 검찰과 법원에서조차도 무죄로 분명히 판결났다. 그러나 누가 명계남이 바다이야기의 중요사업자란 말을 억지로 만든 것이 이른바 공상 과학적 사고를 비꼬는 pata-physics라는 형이상이상학 영역으로 넘어갔다. 쉽게 이 단어에 대한 말한다면 나는 당신이 그것을 직접 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않았으나, 나는 당신이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법이 여태까지 우리 일상과 사회에서 가장 잘 통용되는 이야기다. 또 다른 것을 다루어볼까? 명계남은 노무현 시절에 국가정치인사에 등용되지 않았다. 물론 노사모 많은 회원도 그렇다. 얼마나 참 국내 인식이 웃기는지 어느 사람이 사업을 벌이려다가 노무현 출마를 보고 대선지지를 호소했다. 그런데 막상 되고 나서 그 사람은 아무런 자리를 받지 않았다. 그는 받을 생각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그 사람의 동네에서 그는 자리 하나 못 찬 병신이라고 하여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갔다고 한다. 보통 일반인이 이 정도면 유명인이라면 어떠하랴?

 

명계남의 이야기를 보니 어느 신문을 쓰던 기자가 명계남이 장관자리 요구라는 기사를 썼는데, 그런 허위사실에 대한 정정과 사과를 요구하던 명계남에게 기자는 어이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냥 그런 기사를 썼고, 그게 사실이 아니면 말고, 왜 미안해야 하는 것이다. 흔히 한국의 언론수준은 세계적으로 상류에 끼지 못한다. 끼지 못하는 이유는 미디어란 자체가 경제적, 정치적 권력에 상당히 영향을 받고 있는 만큼 그것에 알맞게도 저널리스트가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 사진기자들이 받는 상인 퓰리처에서 우리나라 기자들은 몇 명이나 받을 수 있을까? 아니 몇 명이나 거기 후보에 올라갈 수나 있을까에 더 이상 희망을 거는 건 포기하겠다.

 

그 정도로 한국에서 언론이란 것이 과연 진실과 정의를 보도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허위와 불의로 가득한 세계로 조장하는지 궁금한 것이다. 언론의 미디어 기능에서 사람들을 일차원적인 사고로 한정짓게 만드는 일은 정말 무섭다. 명계남의 일화에서 어느 부산 횟집식당에 갔는데, 명계남보고 봉하에 가면 한 몫 하겠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신문과 방송에서 그런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니 믿지 못한 것은 이해하겠다. 그렇지만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결정하란 말에 왜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에 처음부터 언행일치가 되지 않은 의도를 왜 들이대는 것이냐 말이다.

 

봉하사저를 설계한 정기용 건축가가 자신이 설계하고 만든 가옥이 아방궁이란 말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고 한다. 그런 정기용에게 분노를 만든 대표적인 신문사의 싸움일화는 정말인지 질리지도 않을 이야기다. 단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천황을 하늘처럼 떠받들며, 관동대지진으로 일본인들이 느낀 군중심리적 불안요소를 조선인들에 대한 탄압과 마녀사냥으로 풀었다. 사실 대지진이든 소지진이든 지진이란 현상은 자연과학적으로 지각 아래 맨틀과 맨틀의 운동으로 발생하는 자연현상이다. 누가 주술을 부려 만들 수 없는 일이거와 억지로 무기를 동원해도 만들 수도 없다.

 

지진으로 일본이 술렁거리고 있을 때 모 신문 사주는 천황에게 자신이 제대로 조선인들을 통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다. 허구일까? 거짓일까? 적어도 일본이 대동아전쟁을 벌일 적에 오만 칭송에 조선인들을 관동군으로 보내는 것이 영웅화시키는 얼간이란 점으로 본다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 존재다. 그들이 한참 선전하던 시기에 사용된 윤전기가 있었다. 신문을 만들어서 빨리 보급하려면 인쇄시설이 필요하지 않은가? 처음에 독립기념관에 있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 일제강점기 시절에 못된 짓만 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용한 사주가 다시 반환 요구했으나 독립기념관에서 거부했다. 그것이 기증된 이상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아이러니한 현실이 한국에서 최근에 벌여진 일이다.

 

스펙타클(spectacle)이란 단어는 본래 이미지가 매개로 되어 구성된 인간사회를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펙타클이란 단어를 모른 채 뭔가 엄청나고 상당한 일들을 보면 이래 말한다. “우와 스펙타클하다!” 오히려 스펙타클한 것은 그 사람들이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정신적으로 파고들어가고 있는 그 사람들의 의식이다. 어째든 정확한 용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엉뚱하게 발언되는 스펙타클하다가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째든 명계남이 직접 본 노무현이란 인물은 내가 알고 있는 노무현보다 더 바보였다.

 

나같이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이라도 고급 메이커 이름 정도 하나 둘은 외운다. 가령 차는 벤츠, 아우디, 포르쉐라든지 내가 좋아하는 전자기타는 깁슨, 펜더, 잭슨이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자동차라는 것은 운전하는 사람만 몰고 전자기타는 기타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구매한다. 그러나 옷은 다르다. 옷은 자동차처럼 개인 선택이 아니고, 기타처럼 취미영역도 아니다. 옷이란 것은 일상생활에 늘 입고 있어야 하는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래서 옷에 명품을 생각해보면 그다지 아는 것이 없으나 대충 듣기론 닥스나 폴로 정도만 안다. 그리고 알마니 일까나? 노무현이 넥타이가 하도 낡고 지저분해서 새로 받은 넥타이를 차는데, 그것이 알마니인줄 모르고, 알마니가 유명하다고 물었다.

 

할 말이 없다. 그는 나보다 더 비주류적인 인간생활에 빠져 있던 것이다. 비주류다 못해 같은 비주류권조차도 비주류였다. 그가 탄핵 이후 노사모에서 시위를 했고, 얼마 뒤에 진보사회단체에서 항의시위를 할 것이니 노사모는 빠지라고 한다. 문제는 그 단체들은 시위 후에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이 정도면 양반이 아닐까? 그가 대통령 경선에서 이인제를 이기기 전에 그를 매도하는 것은 반대진영이 아니라 같은 후보자였다. 그가 대선후보로 지정되자 그의 사무실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같은 당내에서도 아웃사이더였다. 아주 철저하게 말이다.

 

당내에서 그를 밀어준 것이 아니라 노사모가 그리고 노사모를 본 국민들이 그를 밀어줬다. 물론 돼지저금통으로 만든 대선자금 말고 또 다른 돈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정녕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가 달린 대선운동은 다른 후보와 달랐다. 다른 것은 그가 가진 것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본 바보들이 있었다. 물론 너무 바보스럽게 오면 비판의식이 상실한 교조주의자로 변질될 수 있겠지만, 그런 점들은 노무현이란 진보적인 대통령의 맞수인 보수주의자보단 오히려 진보주의자였다.

다른 서적들을 보면 노무현은 상당히 진보주의자들에게 실망하고 섭섭한 감정을 털어 놓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통령이 1번 바꾼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계속 꾸준히 하나씩 개혁으로 통해 풀어갈 수 없다. 대통령은 혁명이나 쿠데타로 뽑은 자가 아닌 이상 그는 모든 것을 조금씩 고쳐갈 운명이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러시아혁명으로 통해 차르를 붕괴하고 케렌스키와 백위군을 몰아내도 여전히 러시아는 가난하고 어지러웠다. 단지 그들은 더 망가지기 전에 스톱만 했을 뿐, 혁명이 일어나도 그 스톱된 위치가 개선된 점은 아니다.

 

물론 그것은 프랑스혁명도 마찬가지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을 단두대의 이슬로 보내도 여전히 프랑스 내의 농민과 노동자는 계속 굶고 허덕이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계속 어지럽고, 당통이 죽고 로베스피에르도 역시 단두대 아래 사라진다. 혁명조차도 그런 난항을 겪는데, 혁명보다 더 정부를 운영하기 힘든 개혁정치는 오죽하겠는가? 그런 정치적 역사적 사회적 교훈으로 통해 얼마든지 우리는 알아갈 수 있는 점들을 노무현은 알고 있었으나, 그에게 돌아가는 것은 진보주의자들의 비난이었다. 내가 가장 속이 시원한 부분 중에 하나 명계남이 그런 진보주의자들을 무척이나 비판한 것이다. 진보라는 존재는 인식에 대한 재확인, 재인식,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도리어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다.

 

물론 진보도 문제이거니와 보수는 그런 인식에 대한 재확인, 재인식, 전환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적어도 제대로 하고 있다면 사회적인 불평등, 부익부 빈익빈, 지역갈등, 노동문제 등은 기본적으로 나올리는 없을 것이다. 모르겠다. 최근에 부산 북구강서구 을에 후보로 나온 문성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금 아이러니한 부분이 있다. 올해 겨울에 나온 부러진 화살에서 그 영화 속에 문성근이 출연한 이유로 그 장면이 나오면 안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선거 전에 영화배우 인물이 공식적으로 이미지가 보이면 선거활동에 유리한 점이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아주 예전에 문성근이 출연한 영화중에서 그가 아주 변태적이고 정신병자 역을 맡은 영화가 TV에서 100회나 방영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요건 무엇인가? 지금 나온 것은 그렇지만, 과거는 왜 나오는 것인가? 어째든 내가 적는 글이기는 하나 이 글이 100% 객관적이고 비판적 입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 있었던 일화로 본다면 반 이상은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있지도 않은 일들을 꾸며 되어 기정사실로 만들고 있는 전문적인 소설가들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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