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음날 조식 시간에 공주와 시길은 나타나지 않았다.다희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구진은 얼굴이 간만에 피었다.
레스토랑에서 조식을 먹던 그들은  서로 마주보며 앉아 이야기를 나눠...야 겠지만, 대화는 어찌된 것이 일방통행이었다. 그러니까 다희가 화제를 던지면 구진은 멍하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그런 대화가 한 1분 가량 지속되자 다희는 자기 하이힐 굽으로 구진의 구두를 밟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구진은 눈을 똑바로 떴지만 그건 구두굽의 효능은 아닌 듯 했다.

“너무 좋아하는 거 아냐?”

“응?”

뭔가 재미난 걸 생각하고 있었던 듯, 구진은 히죽거리다가 그녀의 말에 그대로 굳어졌다.

“어제 말이야...”

“아, 어? 뭐?”

다희는 볼에 손가락을 갖다대다가 마침 그때 나온 그녀의 피나콜라다를 마시기 시작했다.

“공주 마마께서 시길이 방에 들어가는...”

“푸!푸!뭐?”

구진은 냉정을 잃고 자신이 마시고 있던 피나콜라다를 쏟을 뻔 했다. 하지만 그건 다희를 속이기 위한 연기였다.

“혹시 그거 네가 딜 한 거 아냐?”

“...무슨 소리지?”

구진은 자신의 연기를 다희가 읽을 까봐 신중에 신중을 가하면서 천천히, 다희의 눈을 쳐다봤다.
피하려고 해봤지 그 시선은 멈추지 않을 까봐.

“짜고 친 거 아니냐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내 말 잘 들어. 노구진.”

다희가 손톱을 세우고 구진의 어깨에 박아넣었다.

“난 시길이가 맘에 들어도, 약혼녀가 생기고, 네가 날 좋아하니까 그냥 넘어간 거야. 그런데 만약 네가 시길이를 팔아서 뭔가를 꾸민다면 나도 생각이 있어. 경인양이랑 맺은 약혼이 파토가 나면 난 너하고 더 이상 같이 일 안해. 세계에서 제일 가는 배우를 만들어준다는 그 생각도 틀림없이 날 팔아...”

“시답잖은 소리.”

구진은 그녀의 손을 억지로 떼내면서 신음소리를 냈다.

“내가 너하고 그 녀석을 팔아서 무슨 영화를...”

“...정말이지?”

“물론이지.”

물론 아니었다. 다희를 팔아먹은 게 아니라 시길을 팔아 넘긴 것이었으니까.

-당신이 그 소문의 연출가...?-

크루즈 여행에서 기획했던 2인극은 참혹하리만큼 반응이 없었다.
사람 숫자가 모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화제성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 공주님?-

-난 길게 말하는 타입이 아니니 짧게 이야기하죠.-

-네?-

-저 민시길이란 배우를 내게 넘길 생각은? 당신 재력에 저 두 배우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드는데?-

-...모욕적이군요.그러나 사실이니 부인할 수도 없고.-  

승부사의 감이 발동했다. 그리고 구진은 이런 종류의 게임에서 언제나 살아남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 맘에 들어. 그러니...이렇게 하죠.-

-제가 어떻게 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배우 이야기를 들어봐야죠-

-내가 민시길과 여경인의 약혼을 파토내려고 한 그대 계획을 폭로한다면?-

-...공주님은 여러모로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간지용이 귀족의 사생아를 이용해서 시길의 재산상속에 훼방을 좋은 그 계획에 구진도 끼어있었던 것이었다.

-뜻대로 하십시오.-

짧게 그는 대꾸했다.

-어차피 있어봤자 도움도 안되는 백치같은 녀석이니까요.-
 
-그대와 오랫동안 한 팀이었는데도?-

-그 녀석은 원래 시민회관용 배우였을 뿐이니까요...-

그때 공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어떻게 그 남자를 쓰려는지 알고 있군. 당신은? 그래도 되는 건가?-

-때로는 그런 시민회관용 인생 배우도 있는 법이죠...성공하길 빕니다.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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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이웃님들
올 한해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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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1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12-31 16: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태인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년에도 태인님의 꾸준한 활동 기대해 봅니다^^:

태인 2017-12-3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순님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 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도 호랑이힘으로 활동하시길 기원합니다.저도 여기 있는 동안에 글더미를 꾸준히 생성하렵니다...

bookholic 2017-12-31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인님도 새해복 많이 받으시고요..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소개해 주세요~~

태인 2017-12-31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홀릭님/예. 감사합니다. 북홀릭님도 좋은 새해 되셔요. 그리고 북홀릭님이 보시고 좋은 책도 소개해주셔요~ㅎㅎㅎ
 

미홍은 설한과 한빙이 자는 걸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자...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패설사관은 황제의 명을 받드는 직속 수하다. 하지만 황후의 명령도 거부할 수 없다.
황후는 그에게 빙궁의 사람을 보는 즉시 죽이라고 명했다.

“자아...이젠 황제궁에 까마귀를 보내야 하는 건가...”

그는 검을 뽑았다 넣기를 반복했다. 그 둘이 자는 순간부터 새벽이 올때까지 계속 그걸 반복했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죽은 궁주와 그는 각별한 친구 지간이었다. 남녀를 떠나,검을 나누는 그 순간만큼은 둘은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살고 죽고는 운명일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홍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잊지 않았다. 수많은 고난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그가 강직하게 자신의 길을 달려왔을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대세를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왜 자신을 이 위치에 올린 황후가 그 명령을 내렸을까?

알 수 없었다.
그가 황후의 은인이라서?
아니면...

“안가이. 그대가 부럽군.”


미홍이 처음에 극북으로 향했던 것은 과거 그의 전임이었던 안가이가 현 황제의 첩과 정을 통했기 때문이었다.
패설사관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한 그는 황제가 알기 전 잽싸게 극북으로 향했고...
기실, 극북으로 정복한 자라는 칭호는 미홍이 아니라 안가이였어야 했다.
안가이는 제 버릇을 어쩌지 못하고, 전 빙궁주의 호위이자 친척이었던 여자와 다시 연분을 맺었다.

빙궁은 치외법권의 지역.
미홍은 빙궁주의 묵인 하에 안가이의 여인을 죽이겠다고 협박해서 밖으로 끌어낸 후 그를 쳐죽였다.

안가이의 여인은 울지 않았다.
차분하게 그 시신을 얼음관에 넣고 빙궁주위를 떠도는 유빙에 그 관을 넣어 보냈다.
그녀는 임신해 있었고, 황제는 아이의 목숨은 거두지 않겠다고 해서 이날 이때를 지나왔다.
안가이의 아이는 둘이었다.
그리고 하나는 살아있고, 하나는 죽었다.

“둘 중 하나는 안가이의 자식들인가?”

그는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고 설한과 한빙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황후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는 주머니에 있던 주사위를 꺼내 높이 던졌다. 패설사관의 전통.
알 수 없는 상황에 떨어졌을 때 주사위 놀음으로 결정하는...
주사위가 손바닥위에 떨어졌을 때 그는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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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즐친 감사드려요.
복 많이 받으세요~~

태인 2017-12-30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순님.감사합니다.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해도 잘 부탁드려요.즐친 감사합니다.
 

시길은 자신의 방으로 건너 온 미나 공주에게 당황했다. 공주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다면서 구진이 데려온 그녀는 마치 조각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바로 시길 자신이라는 조각품을!

“왜 피그말리온이라고들 하는 지 알겠어...”

그녀는 살짝 눈꺼풀을 아래로 내리고 그의 뺨에 손을 갖다댔다. 시길은 성격상 능글맞게 받아넘길 수 있는 성격이 전혀 아니었으므로 그녀의 손은 시길의 거칠고 딱딱한 손에 밀려 그의 뺨에 닿지도 못하고 물러났다.

“오라버니가 저 여배우를 맘에 들어하니...”

그러나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왕에게는 솔직했지만 다른 남자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까칠하다고 알려진 그녀가 마치 사냥감이라고 탐색하듯 그와 거리를 두지 않고 다가왔다.

“나는 ...그 속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대와...”

다시 그녀의 손이 다가왔다.

“...그대는 충성명령을 했잖아?”

썩은 냄새가 날 정도로 달달한(아마 향료를 입에 넣고 다니는지...)그녀의 체취가 후욱 하고 그의 뺨에 와 닿았다.

“잘 하면 왕가와 친척관계가 될지도?”

“...유감입니다.”

시길이 될 수 있으면 그너에게서 조금만 더 떨어지려 노력하면서 말했다.

“저는 정혼자가 있습니다. 2주 뒤에 결혼할 겁.니.다.”

“어머나?”

“그러니까...”

“정혼자가 있다고 바뀌지 말란 법 없지?”

그녀가 다시 말했다. 물론 손은 그에게서 멀리 한 상태였으나 포기는 하지 않은 듯 했다.

“난 공주. 그대의 정혼자는 평민.”

“......”

평소같으면 해실거리면서 넘어갈 시길이었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몰랐다.
멍청할 정도로 단순한 그인지라 어떤 해결책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대에게 관심이 생겼어. 무대에서 그렇게 뛰어노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충성맹세보다는 연기라는 가면을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하고. 막상 보니 당신은 기린 같아. 휘청거리는 발로 돌아다니는...
안주하지 못하는 불안한 기린. 그대는 기린같이 아름다워.”

공주가 살짝 그의 어깨를 안았다. 공주는 여자치고는 큰 키였기에 시길과 어깨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신이 내게 와 준다면...”

공주가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그의 귀에 갖다대고 말했다.

“당신은 영생하는 조각이 되어 전국에서 당신의 이름을 칭송할텐데...”

“...공주님!”

선실밖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공주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길에게 말했다.

“다희 누나!”

“저 여자에게 돌아가라고 말해.”

공주는 아예 그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공주님! 시길군은 배우에요. 배우에 맞는 대접을!”

다희의 날카로운 명령조에 공주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

“다시 이야기하겠어. 저 여자에게 돌아가라고 말해.”

“......”

시길은 눈을 감았다...

“공주님...”

“저 여자가 죽어도 좋아?”

“......”

공주가 다시 말했다.

“다시 말하지 않게 해.”

“...누나...”

시길이 억지로 목소리를 짜냈다. 그 순간에야 그는 그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거 같았다.

“누나 방으로 돌아가요. 이건 내 일이니까...”

“시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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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미나는 일본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국내로 들어오고 있었다.
미나! 그녀는 현 왕의 사촌 여동생이었으며, 엄밀히 따지자면 왕위 계승 2순위였다.
여자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야심이 많았다면 그녀와 왕 사이의 계승 다툼이 치열했을 터였다.

“공주님.”

“왜 또 따라오는 거죠?”

공통점은 있었다. 왕과 그녀는 유희를 꽤나 즐겼다. 두 사람만의 농담이나 난잡하게 쓴 소설이 왔다갔다 하기도 했는데,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전하께서는...”

“오빠와 나 사이에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추악한 일 따위는...”

왕이 적당한 스캔들을 즐긴다면, 그것도 악취미스럽게 사촌 여동생과의 스캔들을 꾸며댄다는...
그녀는 정말 치열한 순간들을 즐기며- 그녀에게 한번도 허락되지 않을 것이기에-공부 외에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녀에게 말을 걸 던 사나이가 신문을 하나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 신문에는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희롱하던 사촌 오빠가, 드디어 사랑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그가 그 감정을 자각하자마자 상대에게 뻥!하고 차인 것...

“훗.”

그녀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 깔깔할 정도로 거친 오라버니가, 자신 외에는 주고받지 않는 그 시시껄렁한 감성을 발휘한 것이다.

한 여배우에게.

“디아길레프라도 되나 이 사람은?”

그녀는 웃으면서 기사를 읽었다. 앞에 정체불명의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고.

“그럼...공주님께 소개를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말이죠?”

공주는 앞의 상대를 다시 노려보았다. 자세히 보니 남자의 모자로 깊숙이 가린 볼에 살짝 긁힌 자국이 있었다.

“아무래도 최고의 배우를 손에 넣었지만, 후원이 떨어져서 말입니다. 겨우 1인극이나 할 수 있을...”

“아, 디아길레프!”

그녀는 그제서야 신문에서 그 요란한 배우의 후견인을 맡았다는 사람을 알아보았다.

“당신은 그, 우리 왕에게서 여배우를 빼앗았다던 그 사람이군요! 노구진씨 맞나요?”

“...황송하게도...”

간지용의 죽음이 살인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그 도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의 몸에 어떤 자국도 남지 않았기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리고, 얼마 뒤 진상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다희의 유모가 정체불명의 열병을 심하게 앓았고...
그 뒤에 그녀는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나이가 많았고, 설마하니 농아가 되리라 생각한 적도 없기에 그녀는 수화도 배운 적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목격자로 지목할 사람도 없었기에...
그녀는 입을 다문 채 다희를 모셨다.

다만 짐작과는 데가 없지 않았던 왕은 노구진과 나다희, 그리고 민시길에게 해외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시길의 약혼녀, 경인에게는 전혀 배려가 없었다.
여소장은 평민에서 겨우 올라온 터라, 왕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젊은이 그룹에게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젊은 것들이 지위만 믿고 오만하다며 부인에게 푸념을 늘어놓았고, 그녀 역시 생각이 같았기에 부부는 오래간만에 오붓한 분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여기서 초조한 것은 그저 경인 한명뿐으로...
그녀의 미모에 반한 소그룹의 청년이 접근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얻기는 힘들었다.
겨우 상대를 설득해 왕에게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왕은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에게 그저 참으라고만 했을 뿐이었다.

“기다리라. 그대. 진정 사랑한다면 그 사내는 너에게 돌아올 것이니...”

아니면.

그녀가 돌아간 후 빈 알현소에서 왕은 중얼거렸다.

“모든 게 다 허사가 되리라.”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촌 여동생이 탄 배에 그 배우들과 연출가를 태워 귀국하게 했다.
귀국까지는 3일. 크루즈 여객선에서,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지...그로서는 재미있는 일이었다.
사촌누이도 이런 유희는 제법 즐길 것이다...

“내 여자를 빼앗아갔으니 그 놈들도 벌은 좀 받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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