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바짝 오른 한빙이 채찍을 날리면서 객잔에서 뛰어내렸다.

파앗!

빙타편이 뱀처럼 감아들어가며 호리병을 손에 든 여인의 손을 물어뜯을 기세로 날아갔다.
그녀는 빙긋 웃더니 호리병을 열고 나뭇가지로 빙타편을 감았다.

뚜뚝.

“어어어?”

한빙은 잠아당겼지만 빙타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원래 그녀 의도대로라면 빙타편은 상대편의 손목에 감겨 있어야 했다. 상대는 가지를 굵은 걸 쓰지도 않았다. 그저 빙타편이 오는 대로 내밀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가지는 빙타편을 팽팽하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한빙!”

객잔위에서 미홍이 그녀를 불렀다.

“도와주지 마십시오. 사관.”

묘령의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소저가 배워야 할 것이 제법 있으니까요.”

빙타편을 당기려고 했으나 되지 않자 한빙은 한 손으로 은자를 꺼내 그녀를 향해 던졌다.
은자는 하나가 곧 세계의 모양이 되어 그녀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은색의 달처럼 날아간 그 은자는 여인의 정수리를 직격, 할 듯 하였으나 그녀는 이내 호리병의 내용물을 꺼내면서 잽싸게 피했다.
그동안에도 빙타편은 여전히 팽팽하게 그 가지에 묶여 있었다.

“괜찮을까요?”

설한의 물음에 미홍이 천천히 대꾸했다.

“...글쎼다.”

“웬만한 자는 상대가 안되는데...무영검주는 과연...”

호리병에서는 물이 나와 그녀를 향했던 은자의 방향이 조금 틀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빙타편을 끌어내면서 그 무게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한방에게 장을 한 방 날렸다.
놀란 한빙은 뒤로 살짝 몸을 비틀어 장을 피한 후 두번 발을 구른 후 다시 객잔위로 올라갔다.

“장하군요.”

묘령의 여인이 웃었다.

“5초식을 넘겼으니...내가 허언한 것으로 되었군요. 빙타편과 은자는 다시 돌려드리지요.”

그녀가 다시 가지를 슬쩍 앞으로 당기는가 했더니 아예 손을 놓아버렸다.

휘리리리리릭!

빙타편은 마치 감아놓은 천이 풀어지는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빙쪽으로 던져졌다.
그 바람에 다시 중심을 잃은 한빙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미홍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개입할 생각도 없었지만 만약 저 여인, 무영검주가 실제로 목숨을 거둘 생각이었다면 한빙의 목숨을 경각에 달렸을 터.
세상은 넓고 선인이 많은 만큼 악인도 많은 법이니까.

“무기가 좋다고 다 좋지는 않은 법이지...”

묘령의 여인이 생긋 웃었다.

“소저들이 깨닫는 바가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짐꾸러미에서 또 다른 호리병을 꺼내 간을 내놓으라는 소녀에게 내밀었다.

“치료가 될 진 모르겠으나, 한번 써보시지요. 요즘 저도 간이 좋지 않아 장복하고 있으니 도움이 될겝니다.”

소녀가 어버버거리고 있는 사이 미홍이 그녀를 불렀다.

“검주. 검주의 약짓는 솜씨는 어디로 가지 않았구려...요즘은 또 어디에 있소?”

“구름 따라 구르는 돌따라 그리 지내고 있지요. 황산에 꽃이 많이 피었던가요?”

그녀는 그렇게 대꾸했다. 미홍은 별다른 말 없이 멍 하니 서 있는 소녀에게 말했다.

“이분은 명의로 소문난 분이시다.괜한 설녀 간보다는 그게 나를 것이니 갖고 가거라. 한번에 한방울이면 충분할게다.”

객잔에 있던 자들은 그제서야 미홍과 검주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패설사관이나 무영검주나 강호에 발을 들이는 일이 잘 없다는 것을 아는 그들이기에 오늘 그 건방진 설녀와 검주의 대결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검주님!!!”

무리들 중에서 검주에게 인사하겠다고. 덤비다가 객잔에서 그대로 굴러떨어진 자도 있었다.

“무영검주님!!!”

한빙은 엉덩이에 멍이 엄청 들었는지 투덜거리면서 아예 다리를 뻗어버렸다.
그러나 놀란 눈매는 바뀌지 않았다. 다만 자존심이 있어 무영검주를 외면할 뿐이었다.

무영검주는 호호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이내 바람처럼 사라졌다.
무영검주를 연호하던 강호인들도 재빠르게 경공술로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누굽니까?”

설한의 말에 미홍이 대답했다.

“모든 검과 도의 주인. 무영검주라고 한다. 한번쯤은 다들 들어보았을 이름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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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은 부모로부터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터뜨렸다.

“무슨 말이에요! 파혼이라뇨!”

“전하께서 원하신단다.”

여소장의 난처한 미소가 경인을 더 화나게 만들었다. 애초에 원하지 않던 약혼이니 차라리 왕의 제안이 그에게 맘에 들었을 것이었다.

“그 공주 유명하잖아요! 나쁜 방면으로! 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거에요!”

“공주님을 모욕하지 마라.”

“내 약혼자는 고작 며칠 전에 만났을 뿐이잖아! 그런데 임신이라는 말도 안되는!”

경인이 늑대처럼 사납게 대들자 여소장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 애가 자신이 알던 원래 딸이 맞던가?

“하여간 혼례식은 예정대로 할 계획이란다.”

“저요? 아니면 민시길 백작의?”

그녀가 또록또록한 어조로 되묻자 소장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둘 다.”

민지린 여사가  경인에게 대답했다.

“어째서요? 파혼인데, 어째서 결혼식은 예정대로 되는 거죠? 설마하니 백작이 분신술을 쓰나요?”

“가문에 가장 가까운 친척이 나타났단다.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얘야. 그렇게 되면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고...민시길 백작이 약속했다더라...너도 그 사람을 만나면 마음에 들거야.”

“천만에!”

경인은 가까이 있던 러시아 인형을 들어서 바닥에 집어던졌다. 와장창!
안에 들어있던 사기 인형들이 겹겹이 박살이 났다. 마치 그녀의 복합적인 마음처럼.

“어차피 그런 거죠? 너란 애는 아무나 좋아할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민시길 백작의 멀끔한 얼굴에 반한 것처럼 이번 남자도 얼굴이 멀끔하니까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네가 전하께 그 이야기만 안 했어도...”

“무슨 이야기?”

경인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그 여자가 살인범이라는 이야기? 어차피 다들 떠들던 이야기잖아요! 그 여자 항상 기분 나빴어요. 왜 남의 약혼자를!”

침묵 가운데 누군가가 그녀가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거실로 들어섰다.
너무나 조용한 태도여서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파앙!

긴 가죽 장갑이 말할 사이도 없이 경인의 뺨을 후려갈겼다.

파앙!

두번째로 경인의 오른쪽 뺨을 후려갈긴 후에야 다들 그녀가 나다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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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공주의 입김으로 인해서 이인극은 상연되지 못했다. 그리고 다희의 자존심이 무색하게 공주와 시길은 한데 붙어다녔다.
마치 스토커처럼 철저하게 따라붙은 다희였지만,그때마다 구진이 나타나 그녀를 그에게서 떼어놓았다.
그제서야 다희는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공주! 구진을 삶아놨어.

시길도 마치 약혼이 없었던 것처럼 공주에게 다정하게 대했다. 음식을 떠먹여준다거나, 다정하게 속삭인다거나...
그와는 반대로 구진과 다희의 사이는 급속냉각되었다.
왕이 배정해준 고급 스위트룸에 재정적인 이유로 둘이 한방을 썼는데...바로 그 이틀째인 밤에 다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진의 팔을 물어버렸다.
피가 방울방울 맺혔다.

“이게 무슨 짓이야.”

하지만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구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너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야.”

다희가 냉랭하게 대꾸했다.

“결혼 앞둔 배우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고. 공주하고 스캔들이 나면 얼마나 위험한...”

“위험한?”

구진이 늘 가지고 다니는 손수건으로 물린 부위를 묶은 후 대꾸했다.

“진짜 위험한 게 어떤 건지 가르쳐줘?”

“무슨 말이야.”

“경인양이 널 살인자로 몰았다는 거 몰랐나?”

“...무슨...”

“왕한테 가서 그랬다더군. 당신이 총애하는 여배우는 살인녀입니다. 간지용의 사건의 살인범입니다. 하고.”

“......”

그녀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다시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흥. 감싸주려는 생각이라면...”

  구진의 말에 다희는 고개를 잠시 숙였다.

“아니. 널 옹호하려고 한 게 아니야.”

“...네가 그렇게 이어주려고 애쓰는 두 사람 사이는 이제 끝이야...우린 돌아갈 수 없어.”

“뭐?”

“공주가 시길이를 눈에 들어했어.귀족이니 결혼 상대로는 딱이지.더더군다나 경인양이 힌트를 왕한테 줘버렸어.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공소시효가 사라질 때까지 다른 곳에서 연기를 좀 더 닦을 수 밖에...”

“...잠깐만, 그럼 시길이는!”
“경인양하고의 결혼은 파혼이야. 재산 상속도 끝이지. 하지만 이젠 공주의 남편으로 살 수 있어.”

“연기는! 연기는 어떡하고. 걘 왕립연극단 배우였잖아!”

“포기해야지.”

구진은 스위트룸의 꺼진 전등을 다시 켰다.
그리고 출입구의 거울 앞에 그녀를 세웠다.

“잘 봐. 나다희. 넌 배우야. 천개의 만개의 거울이 아니라 유리창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넌 그런 배우야. 하지만...그 녀석에겐 그게 없지.그 녀석은 거울앞에서만 연기를 해. 너라는 거울 앞에서만...
그런 녀석을 속칭 시민회관 배우라고 부르지...너도 알고 있었잖아? 언제까지 계속 할 수 없다는 거...그래서 네가 그 녀석하고 연기를 같이 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무대에도 부르지 않았던 거 내가 모를 것 같나.”

“하지만...”

막 뛰쳐나가련만 구진은 출입구를 막고 그녀를 나가게 해주지 않았다.

“틀렸어. 막을 수 없어. 공주가 임신했거든.”

“뭐?”

“개월 수야 좀 속일 수 있으니...공주는 시길이를 방패막이로 쓸 예정이야. 예쁜 방패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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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잔에서의 다음날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객잔 밖을 여러가지 무기를 든 자들이 들락거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 이 소녀만큼 기이한 행색도 드물었지만...민간인이 기웃거린다는 사실에 채미홍은 의아했다.

“간을 내어먹어야지.”

당랑적의 근거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빙이 말했던 것이 참이었다.
설한도 한빙의 과잉반응이라고 생각했었으나, 지금 들려오는 소리를 보면 틀린 말도 아닌 듯 했다.
다만 왜 간을 내어먹어야한단 말인가? 돈이나 뜯어기면 될 텐데.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소녀가 미홍과 설한, 한빙이 앉아 있는 좌석을 향해서 힘껏 돌을 던졌다.
돌이 미처 닿기도 전에 설한이 소매를 흔들자 소맷바람에 돌은 다시 소녀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소녀는 그것을 다시 단도로 튕겨냈다.

“대단한 무공이군.”

설한은 빈정거리면서 소녀에게 읍했다.

“소저, 이름 여쭙는 걸 생략해서 죄송합니다만, 돌은 왜 선물로 주시는 겁니까?”

“소협, 소협한테는 볼 일이 없으니 그 설녀나 내어놓아요!”

발끈한 한빙이 탁자에서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내가 물건이냐?”

“나도 너한테 억하심정은 없지만...우리 아버지를 살리려면 그 수 밖에 없다. 간을 내놔!”

소녀의 무공은 사실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생사를 가리자고 들면 한빙의 신장 하나로도 목숨을 앗을 수 있었다.
한빙은 그건 알고 있었지만, 궁주의 죽음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냉정을 잃고 있었다.
미홍이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참아야 한다. 한빙. 이제 남은 설녀는 너 밖에 없으니.”

“간을 내놓으라니 그건 뭔 소립니까?미홍, 당신은 알고...”

설한의 말에 미홍이 한숨을 쉬었다.

“이젠 황궁에서도 기다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더 이상 나도 개입이 되면 안되는 문제고...”

그 말을 한빙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설한은 단번에 이해했다.

“황궁에서 빙궁을 말살시키려는군요.”

그 둘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느라 한빙을 내버려둔 사이 한빙은 의자에 내려놓은 보따리에서 빙타편을 꺼내들었다.

“간을 한번 내어먹어보렴!”

기다란 얼음채찍이 바닥을 귀가 찢어질 정도로 소리를 내면서 아래에 있는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전설의 무기 중 하나인 빙타편은 스치기만 해도 위험한 물건이었다.
맞으면 돌과 단도만 가지고 있는 소녀로서는 대항할 수 없는...

그때였다.

“소저. 너무 위험한 장난은 치지 마시죠.”

소녀 앞에 나타난 여인은 가느다란 나뭇가지 하나로 빙타편을 감아들었다.

“너는 뭔데 참견이냐!”

소녀가 앙칼지게 외쳤다.

“아, 저 말인가요.”

여인이 빙긋 웃었다.

“지나가는 길이었는데  두 분이 말다툼하는 걸 보고 염치불구하고 말리러 왔는데, 실례였나요. 설녀님은 그렇다치고 아가씨는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요.”

 그녀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고 다시 웃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 미소에 순간적으로 소녀가 움찔했다.
여인은 얼핏 보아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얇은 비단옷을 입고 손에는 호리병과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소...손에 든 그거 가지고 내 빙타편을 상대하겠다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한빙이 외쳤다.

“어디 한번 해보시지!”

그녀가 나뭇가지에 감긴 빙타편을 잡아당겨 다시 바닥을 후려쳤다.
설한과 미홍은 미처 말리지 못했다. 말릴 만한 상황이 아니었거니와 미홍은 개입하지 않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상대의 정체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건드려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소저.”

여인이 말했다.

“전 소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헛소리!”

“위에 있는 상태에서 절 상대하면 2초식만에 소저가 저에게 집니다. 아래에 내려오면 가만 있자...한 5초식 이후에 소저의 빙타편이 제 것이 되지요.”

“묻지도 않은 헛소리 하지 말고, 무기를 꺼내!”

“문답무용인가요...”

여인은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흔들어보였다.

“보시다시피 호리병과 이 나뭇가지 하나면 소저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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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남은 50을 위한 50세 공부법 - 현실이 된 75세 현역 사회에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다
와다 히데키 지음, 최진양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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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히데키 선생님은 10년전에 공부법을 내신 이후부터 줄곧 내 마음의 선생님이었다.
그러나 이번 책에 한해서는 호의적인 평을 할 수가 없다.
같은 분의 마흔에 독학하라..(책 제목이 길어서 외울 수가 없군.)는 책과 내용이 거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양심있게 쓰시려면 두 개를 한권에 통합했어도 될 것이었다.
2권 다 읽고 나니 허탈하다.
2권 다 내용이 거의 동일하므로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두 권 중 한 권만 고르셔도 될 듯 하다.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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