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할머니의 사생아라고 주장하는 사나이, 진기혁은 뉴스를 보면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적어도 그 작자가 머리를 때릴 때는 열을 받아서 확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부딪친 대상이 자기 생각보다 선량하기 짝이 없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드는 것이었다.

“어떡하죠? 형님?”

그의 옆에 깡마른 친구 하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 일의 핵심. 머리가 지나치게 좋은 대학생인 그는 이번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뿐만 아니라 민시길을 추락시킬 일을 하나하나 계획 중이었다. 

“그냥 포기할까? 지응아?”

현지응, 현재 폐렴을 앓고 있는 이 병약한 대학생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떻게 이제 와서 그럴 수가 있겠어요.”

“문서 위조는 큰 죄야...간지용씨는 가능하다고 했지만...선동만 하고 자기는 쏙 숨어버리면...”

“죄라는 걸 어디 제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 와서 피하면...”

두 사람의 숙덕거림에 안에서 자고 있던 누군가가 잠꼬대를 했다.
이곳은 현지응이 묵고 있는 대학교 기숙사로, 6개월 전에 진기혁은 등록금 미납으로 제적되었다.
그는 원대한 꿈을 꾸는 법대생이었는데, 단지 몇백원의 차이로 제적당한 것이 마음에 계속 걸려 간지용의 수작에 걸려든 것이었다.

-자네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면서-

진기혁과 지용은 지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벌써 제적당...-

-그 이야기도 들었었지. 근데 자네 어머님이 자네를 사생아로 낳았다는 게 정말인가?-

그건 어머니와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가야 할 그림자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선배님이라도 그렇게 말씀...-

-아냐. 모욕하려는 게 아니니까 잘 듣게. 좋은 기회가 생겼어.-

그러면서 간지용이 들려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조사해본 결과 진기혁의 모친은 기록상 모친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 당시 어머니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부친의 호적에 들어있다고...
그런데 그 부친은 민시길의 조부 민주선의 양자로 들어있었을 뿐만 아니라...(다만 곧 파양되었으므로 원래의 성인 진으로 돌려져 있었다.)고모할머니와 민주선이 불륜관계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므로 기록상 진기혁의 부는 그저 그 고모할머니와 민주선간의 불륜관계를 속이기 위해서 들어가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진기혁은 결국 민주선의 아들이자 고모할머니와 아들이라는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자네의 친어머니는 여소장의 고모할머니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문서가!-

-문서가 무슨 문제인가? 아니, 문서로 인해서 진실이 밝혀질텐데 말이야!-

그렇게 지용이 문제들을 다 해결해주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친구가 진짜로 결혼식때 돌려주겠다고 했단 말까지 안했어도...”

진기혁도 정의를 추구해 법대를 들어갔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정의파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나온 것도 다 대학등록금은 모자라서 그런 것인만큼...이 일에 대해서 어느정도 책임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뉴스에 커다란 글자가 떴다.

-문화계의 큰 별 피습당하다. 간지용 백작 사망-

-현재 피습자를 추적하고 있음.-

“형!”

현지응은 비명을 지르듯 소리질렀다.

“이런!”

진작에 일을 저질렀어야 했다고 생각하면서 현지응이 진기혁을 불렀다.
진기혁은 차라리 포기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가 지용이 저지르려고 했던 일을 막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그들이 하려던 일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불안감에 기혁은 천천히 입에 담배를 물었다.

“지응아.”

그리고 그는 천천히 말했다.

“민시길 백작이 알고 저지른 일이 틀림없어. 그 맑은 얼굴 어딘가에 날카로운 통찰력이...”

“그러면 우리가 먼저...”

뒤를 치자고 말하려다 현지응은 누워있는 외국인유학생이 신경쓰여서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을 짐작할 수 있었던 기혁은 고개를 저었다.

“ 그 친구를 만나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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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진은 돌아오자마자 원망에 가득찬 다희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원망...그렇다. 원망이다.
구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희를 몇 년이나 지켜봐온 그로서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시선에 있었다.

“도대체...”

다희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당신 날 사랑하긴 하는 거야?”

“.......”

이 상황에서 쏘아보아야 할 것은 자신이다. 구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영역을 침해당한 짐승이 그런 것 처럼.

“내가 할 말인데.”

구진의 말에 다희는 눈에 살짝 티슈를 갖다댔다.

“내 영역에 다른 놈을 들여놓고 네가 할 말이라는 것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개가 그를 향해서 날아갔다.

“간지용을 죽여버렸어야지! 네가 한다는 게 고작 몸조리 잘해! 그 말 뿐이라면...난 ...차라리!”

“...죽었다.”

구진은 조용하게 대꾸했다.

“네가 원하는대로 멱을 따다 바치지 않아서 유감이겠지만...우연의 일치랄까. 그 놈 죽었다고.”

“간지용을 방에 들였다고 그런 식으로 나한테 말 한 거야? 그런 거야?”

“...그 놈 죽었다고. 그리고 내가 말 하는 건 그 놈이 아니라 시길이다. 민시길 백작.”

그리고 구진은 천천히 누워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틀림없이 울었구나. 그리고 전화해서 그 놈에게 오라고 징징댔겠지.”

“...어...정말 죽은 거야...그 사람?”

“텔레비전 틀어서 직접 봐.”

구진은 그렇게 말한 후 가정부에게 아까 전의 그 칼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리고 정확히 4분 후 잘 닦인 칼이 그녀 앞에 놓였다.

“이게 내가 버클 사이로 찔러넣은 칼이지.”

“...도...도대체 뭘 한 거야...”

“난 깊게 찔렀는데 그 놈은 모르더군...그냥 지나갔어. 워낙 폼 잡느라 이것저것 껴입는 인간이니...”

그 말에 다희는 질린 얼굴을 하고 텔레비전을 틀었다. 방금 텔레비전에 지용의 시체가 나왔다. 모자이크가 심하게 되어 있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지용을 보고 자란 그녀는 단번에 그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난 이런 남자야.”

구진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 말은 마치 다희에게 이렇게 들렸다.

-난 언제고 너도 죽일 수 있어. 날 배반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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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한은 객잔의 3층에서 아무렇게 나무를 깎고 있었다. 벌써 이 객잔에 묵은 지 3일째다. 갈가마귀가 도착한 이후로 사촌 오라비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한 것 같았다. 그녀는 초조해졌다. 황제에게 인가를 받으려면 하루가 다급한 이 시점에 그는 황제조차 무시한 것이었다.

“오라버니.”

“왜.”

설한은 무뚝뚝하다 싶을 만큼 대꾸한 뒤 한빙의 손을 잡았다. 

“어머.”

한빙은 잠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라버니도 참...제 마음 다 알면서...”

그러면서 그녀는 객잔 1층으로 그를 확 밀어버렸다. 물론 2층, 1층에도 사람들은 많이 있었기에 그 남매의 만행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했다.
설한이 뒤집어지면서 엎은 상에는 다름 아닌 비밀리에 궁에서 나온 사관이 하나 있었다.
그는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식사 중이었는데, 어지간한 미식가인 듯 이 객잔에서 낼 수 있는 모든 음식이 다 차려져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떨어진 설한을 팔을 벌려 받아서 세워놓고는 여전한 얼굴로 식사를 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

한 무사가 소리를 질렀다.

“객잔에 무림인이 묵고 있다는 걸 안다면 이런 장난질을 치지 못할 텐데. 매운 맛을 볼 겐가?”

“...잠깐.”

모자를 쓴 남자가 그를 제지했다.

“형씨는 뭐요! 날 내버려두셔! 호된 맛을 보게 해 줄 테니! 그러고보니 당랑적파가 객잔에만 들어오면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현상금을 매겼다더니만, 어째 비슷해보이...”

“조심하는데 좋을 게요. 당랑적인지 뭔지 하는 자들도 뭔가 잘못 알고 있군.”

그 얼굴 가린 사나이는 허리에 두 자루의 검을 차고 있었다. 오랫동안 입어 마치 피부같은 느낌을 주는 녹의에 검자루는 하나는 황금, 나머지 하나는 벽옥으로 되어 있었다.

“흥! 보아하니 검 좀 쓰나본데...”

스릉.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는 듯 무사가 검을 뽑아들었다.

“검 쓴다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그가 말을 잇기도 전에 얼굴을 가린 무사의 젓가락이 무사의 검을 튕겨냈다. 미처 공격도 하기 전이었다.

“어...”

“아, 당신은...”

설한이 그를 보고 반색했다.

한때 무림을 떠돌면서 무림의 헛됨을 개탄했던 무자무일옹 노유의 수제자 채미홍이었다.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당하고 연인을 잃은 후, 궁으로 옮겨 간 인물 중 하나로...
사실 그 실력보다는 보통 인간의 몸으로 대륙을 극북과 극남, 극동, 극서를 종횡무진했던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황제조차 만나보지 못한 빙궁을 세 번이나 방문하여 알현한 경험도 있었다.

“조용히 하게.”

미홍이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나야 조용히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있...”

젓가락 신공에 잠시 기가 죽었던 무사가 다시 떠들어댔다. 그 통에 1층에서 찻잔을 머리에 뒤집어쓴 사람, 구운 돼지고기를 자르려다 돼지입에 손가락이 들어간 사람 등등.
모두들 소리를 지르면서 3층으로 뛰어들어갔다.

“앗, 안...돼...는데...”

설한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중얼거림이 맞아떨어지게 이내 3층에서 약 7명의 사내가 밖으로 던져졌다.
가슴팍에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장이 붉게 맺혀 있었다.

“호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한빙신장인가...”

느긋하기 그지 없는 태도로 미홍이 말했다.

“3번 가봤지만 신장 구경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로군...”

“오라버니! 여기도 글렀어요! 다른 객잔...!아, 미홍이다!”

외치던 그녀는 그대로 1층으로 발을 굴러 미홍을 향해 뛰어내렸다. 그녀의 흰 옷자락이 나비처럼 나풀거렸다.

“저런, 오늘 하루에 공주님 안기를 두번이나 하다니...이 미홍이 운이 좋군.”

“...홍. 전 여자가 아니랍니다.”

설한이 낯뜨거운 얼굴로 손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열이 가라앉을까 하는 심정에서 한 것이지만, 어설픈 연기로 보일 뿐이었다.
싸늘한 너울로 얼굴을 가린 그녀를 받아낸 미홍이 말했다.

“그래...마침 너희들을 찾고 있는 중이었단다...까마귀는 받았던 것이겠지?”

그날에 설한이 대꾸했다.

“반지를 가지고 왔더군요.”

“역시...너희들 일부러 이러고 다니는 걸 보고서야 감을 잡다니...이 패설사관 자리도 내놓아야 하나 보다.”

일부러...인가?
설한이 휙 하고 한빙을 쳐다보자, 한빙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고 그랬을 확률이 높았다. 한빙은 무림에 나온 적이 한번도 없으니까...
하지만 채미홍은 ‘일부러’ 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채미홍이 그나마 빙궁이 가까운 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따라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까마귀 이야기도 뭔가 불길했다. 그들이 모르는 불길한 뭔가가 있는 듯 했다.

“미홍, 혹시...”

그렇게 설한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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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이소라님이 활동하시는 지 잘 모르겠는데 10년전에 이소라씨 음악방송을 자주 들었었다.
차분하게 잘 깔리는 목소리에 폭발적인 가창력.
물론 내 취향은 좀 더 조용한쪽이긴 했지만...
아, 아직도 생각난다. 김장훈씨하고 친한 편이어서, 이소라씨가 가끔 가벼운 우울증으로 밖으로 못 나온다고 하면 김장훈씨가 대신 디제이 보던 그때 그 시절.
바람이 분다도 그때 자주 들었었는데...(물론 원곡은 다른 사람작품이지만.)
오늘 같이 날씨 쨍한 날에 들으라고 추천하면 좀 그렇겠지만...지금 나는 이소라씨 음원에 취해 있다.
아, 좋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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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0-20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그래요?
이소라 씨 얼마 전 TV 나왔던 것 같던데...
그렇지 않아도 저도 가끔 궁금하더라구요.
예전에 방송활동 많이 했는데
머리 짧게 깍은 후론 좀 조용한 것 같더라구요.

태인 2017-10-20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요즘도 나오시는군요.그 조용하고 담담하게 깔리는 목소리와 진행이 참 좋았더랬죠...보고 싶군요...자주 활동을 안 하니...
 

구진이 다시 계약 건으로 집을 비우자 정신 차린 다희가 가정부에게 물었다.

“누구 찾아온 사람 있어?”

“아까 전에 주인님이 잠깐...”

가정부의 말에 다희는 한숨을 쉬었다. 

“뭐래?”

“푹 쉬시라고...”

“그 남잔...”

그녀는 한숨인지 아니면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뱉고는 가정부에게 말했다.

“민시길 백작에게 전화해줘.”

“예?”

“정신 없이 울고 나니 생각나네.꼭 오라고 전화 좀 해줘.”

민시길은 그때 경인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나랑 결혼해주는 겁니까?”

“당신은...꼭 그걸 말로 해야 아시는 거에요? 부끄럽게...”

흰 백합이 가득한 방에서 그녀는 그에게 살짝 입을 맞추었다.

“꼭 약속해줘요. 나만 사랑하겠다고...”

그때 시길의 핸드폰 벨이 울렸다. 시길은 침대에 앉아있는 경인의 옆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네...”

“백작님. 꼭 와주셔야겠어요. 마님이...마님이...”

“아, 저기 제가 지금 바로 갈 수 가 없어서...”

시길은 그렇게 말한 후 다시 경인의 곁에 앉았다. 경인의 결 좋은 흑발머리에 입을 맞추고 귀에 손을 갖다댔다.
그리고 그 순간, 다희는 채찍에 맞은 고통에 울면서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녀는 1분도 기다릴 수 없어 가정부에게 외쳤다.

“왜 안 온대!”

“마님, 이제 전화했는데...”

“온대?”

“그게 바쁘다고...”

“그 핸드폰 나한테 줘!”

가정부에게서 핸드폰을 뺏은 그녀는 다시 시길에게 전화를 걸었다.

때리리리리~


“전화...”

경인은 시길의 품에 안겨 부드럽게 말했다.

“저 전화 안 받아도 되요?”

“꼭 받아야 합니까...난 당신이...”

“그래도 급한 전화인지 모르잖아요?”

경인은 내심 그가 전화를 받지 않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시길은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는 인간이라 곧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 화면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심드렁함에서 경악으로 바뀌는 걸 보는데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네...누님?”

“시길...나...지금 굉장히 아파...제발 나 좀 살려줘...꼭 날 보러 와줘....너없으면...나는...”

그 말에 시길은 벗었던 윗옷을 다 챙겨 입고 철저하게 재킷까지 차려 입은 후 경인에게 이별을 고했다.

“경인씨. 시간 나는 대로 바로 오겠습니다. 지금은 좀 안되겠네요...고맙습니다.”

“...시길씨!”

“미안합니다...좋은 분위기였는데...”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경인은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민시길이라는 남자는 그녀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냈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수 밖에 없었다.

“좋아요! 맘대로 해요! 어쩌겠어요. 아프다는데.”

“고맙습니다. 경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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