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 눈썹을 두고 왔어 

찾으러 갈까

 

박연준의 시 <침대> 부분. 도발적인 시상 포착이 뛰어난 시인, 시인다운 시다.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 저 혼자 툭, / 떨어질 때가 있다" 시집 베누스 푸디카에서 발견한 이 시의 첫 부분도 쎄다. 한때 자연방목 꽃사슴 목장을 자주 오갔다. 가파른 산을 낀 22만 평 넘는 목장에는 수백 마리 꽃사슴이 자라고 있다(고 했다). 가까이 그리고 먼발치에서도 그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100% 자연방목은 아니라, 동한기 등 야생 먹이가 귀할 때는 사료를 제공한다. 의존성이 생겨 급이할 때가 있다. 사슴들은 그런 관리자에게는 경계를 늦춘다. 하지만 낯선 이들에겐 곁은 물론 한두 끼 굶을지언정 급이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업무상 사진이 필요했다. 지붕이 뚫린 차량 밖으로 몸을 내밀고 최대한 서행하면서 촬영을 시도했다. 그렇게 100미터쯤 전방 들판에 노니는 사슴들을 만났다. 찰칵!, 순간 셔터음을 들은 것처럼, 사슴들은 숲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스포츠 모드라야 했어) 이어진 컷들은 피사체가 흔들려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0여미터를 달리던 사슴들, 말 그대로 '사슴처럼' 달리던 사슴들이 산기슭에서 문득 멈춰 선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다. 차알~, 그렇게 필요한 사진 한 장을 세이브했다. "선생님, 미안해요. 미리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운전석 생산자가 들려준 얘기다. "녀석들은 무섭게 달리다가 잠시 멈춰요. 그리고 뒤를 돌아봐요. 바로 그 순간 녀석들은 총을 맞아요." 사냥꾼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이란다. 노련한 사냥꾼은 바로 그 순간을 느긋하게 기다린다, 했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노루나 고라니들을 곧잘, 그렇게 만났다. 하지만 사슴(꽃사슴)은 교과서()에서 먼저 만났다. 분명하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은 왜 달리기를 멈추고 잠시 돌아보는 것일까? 그렇게 하게 하는 그것은 무엇일까? 둘 중 하나이거나 둘 모두라고 생각했다.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달콤한 먹을거리(풀들), '내가 왜 달려야(에너지 낭비) 하지, 위험은 사라졌나 확인하려고. 하지만 '무엇'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는 왜 그런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런 해석에 필자처럼 사슴을 국어 교과서에 먼저 만난 분들의 아쉬움 없지 않으리라.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 그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본다'가 더, '무척 높은 족속에게'는 걸맞다. 사슴들은 늘 그렇게 바라보아야만 한다. 사물이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 Homesickness 또는 Nostalgia', 향수(鄕愁) 때문이었을까? 면벽 선승처럼 씨름하는 화두쯤은 아니지만 사는 동안 문득 내겐 화두 한두 개 쯤으로 있다. 3~4월 다 자란 꽃사슴의 뿔은 떨어지는데, 녹각(鹿角)이다. 노천명은 '향기로운 관()'으로 읽었다. 새로 자라난 뿔은 6~7월이면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자라고, 이후부터 녹각이다. 이즈음 5월에서 6월 사이 말랑말랑한 뿔을 채취하는데, 새로 자란 사슴의 연한 뿔, 이것이 녹용(鹿茸)이다. () 위에 자란 풀(), 죽순(竹筍과 생리와 채취 시기에서 다를 바가 없다.

 

여기까지, 어린이들도 접근 가능, 이제부터는 잔혹한 동화다. 이즈음 먹을거리를 찾아 꽃사슴들은 속속 급이(급식) 장소에 도착한다. 먹을거리도 차츰 달콤하였다. 이번엔 그냥 돌아갈 수 없다. 수금할 시간. 마취총에 사슴들은 쓰러지고, 두꺼운 천막 위로 옮겨진다. 모든 생명에게 삶은 전쟁, 야전(野戰) 침대다. 생산자는 전기톱으로 사슴의 연한 뿔을 자른다. 피가 흐른다. 지혈을 한다. 해주는‘. 동안 깨어나지 못한다. 후숙이 덜 된 바나나를 만지는 촉감, 최고급 녹용은 그렇게 생산된다. 인위이지만 내겐 카이로스. 다가가 촬영한다. 오얏꽃(자두나무의 )들의 낙화, 꽃비 내려 꽃사슴이 되었구나. 만져본다. 오얏꽃은 조선 왕실의 문양. 그들의 벛꽃이 아니다. 오얏꽃과 벚꽃, 꽃들의 한일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작품 자체, 작품 '' 자체만 보자 그랬다. 뉴크리시티즘(신비평)이다. 첫째, 작품 외적 요소는 배제하고 작품 자체만 볼 것. 둘째, (사람) 작가의 삶을 작품에 결부하는 것도 금물, 기타 등등.

김지하 시인이 어제 작고했다. 명복을 빈다. 젊은 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상이었던 선배 시인의 다른 견해(모습)에 입은 상처는 여전하다. 애증이다. 애증이니까 사람이었다. <사슴>의 노천명만 보자는데, 노천명의 <사슴>이 보인다. <타는 목마름으로>의 김지하만 보고 싶다. 안 된다. 나만 그러한가?

 

102. 샘물가의 사슴과 사자(이솝 우화, 천병희 원전 번역)

사슴이 목이 말라 샘물가에 갔다. 사슴은 물을 마신 뒤 물에 비친 제 그림자를 보았다. 사슴은 크고 여러 갈래로 뻗어 있는 제 뿔이 자랑스러웠지만, 가늘고 약한 제 다리들을 보고는 몹시 속이 상했다. 사슴이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자가 나타나 사슴을 쫓기 시작했다. 사슴은 도망치기 시작해 사자를 크게 앞질렀다. 사슴의 힘은 다리에 있고, 사자의 힘은 심장에 있기 때문이다. 빈 들판에서는 사슴이 사자를 앞질러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무가 우거진 곳에 이르러 뿔이 나뭇가지에 엉기자 사슴은 더 이상 뛰지 못하고 잡혔다. 숨이 끊어지려는 순간 사슴이 중얼거렸다. “불쌍한 내 신세야! 내가 불신했던 다리는 나를 구해주었는데, 내가 믿었던 뿔이 나를 죽이는구나!

 

사슴은 초식동물. 살기 위해 뜯어야 한다

그런 삶을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 목은 그렇게 길어졌다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다리가 길어졌다

다리가 길어지는 동안, 멀어지는 지상의 풀들을 먹기 위해 모가지가 길어졌다

이상은 생태에서 추출한 꽃사슴들, 그들의 해부학적인 슬픔이다

우리가 혹은 내가 삶의 시간 어디쯤, 꿈속에 두고 온 것은 무엇일까

그런 줄 알면서도 놓지 못하는 그 무엇, 그것은 일종의 ○○은 아닐까?

김지하는 노쳔명은 그리고 나는?


꿈속에 눈썹을 두고 왔어

찾으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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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0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당리에서의 나의 죽음은
출렁이는 가래에 묻어올까, 묻어오는
소금기 바람 속을
돌 속에 흐느적거리고 부두에서
노동자가 한 사람 죽어 있다
--김지하 <용당리에서> 앞부분

프레이야 2022-05-11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지하 시인 별세 소식 들으며 역시 끝이 좋아야, 끝까지 좋아야 한다는 교훈을 떠올렸어요.
저도 같은 마음입니다.
박연준 시집 담아갈게요 표지가 이쁩니다.

Meta4 2022-05-13 22:3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아직도 살아서 인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하는 것은 아직 경기가 진행 중인데 어떤 선수를 우승했다고 선언하며 영관을 씌워주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고 효력도 없지요.˝ 인용 때문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살피는 중인데, <솔론 전>의 한 대목이 생각나 입력해봅니다. 자기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행 중이던 솔론이 있다면서, 크로이소스를 인정하지 않았는데, 솔론이 그에게 한 말이지요. 감사합니다.
 

드넓은 운동장 둘레에는 개교 즈음에 심었다는 벚나무 고목들이 자라고 있다. 벚꽃으로 유명해서 꽃필 무렵이면 축제가 진행되는 곳 중 하나인 고장. 싸리비로 꽃잎을 쓸어 한 방향으로 몰아간다. 뒤돌아보면 감당할 수 없는 꽃잎들이 흩날리고 더러는 흩어져 있다. 당시는 국민학교 지금 초등학교의 청소 시간, 야외 청소를 울력처럼 하던 봄날 난감했던 기억이다감독은 동급생이었는데, 좀처럼 통과시켜주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려니, 웃고 넘길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군사문화의 얼룩이 초등학교에까지 아로새겨진 때였고, 공정이나 이의제기는 통하지 않았다. 영화(1992)로도 제작된 소설(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한 장면(유리창 닦기)을 언급해야 좀 실감이 날까.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어!' 그 시절을 지켜본 아이의 동무가 마흔 살을 넘긴 어느 날 동창회 자리에서 건넨 소회란다. 아이는 서울에서 갓 전학을 온 '한병태'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엄석대’(소설 속) 무리의 견제 대상이고 늘 지는 쪽이었다. ‘석대는 육성회장의 아들이었고, 아이는 육상회비마저 제 때에 내지 못하거나 선생님이 슬쩍 내주시곤 했다육셩회장(育成會長), 근동의 유지,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기득권이며, 토호(土豪), 때론 정치인이라는 얘기였다


석대는 단 한 번도 아이의 성적을 따라잡지 못했다. 석대의 난동이 왜 하필 아이에게 집중되었는지, 자꾸 생각해도 원인은 이것뿐이었다. 아이의 선생님들은 바로잡아주지 않았다. 바로잡아주지 못하는선생님도 더러 있구나! 희망을 만나기도 했다. 공부 오로지 공부밖에 없다, 힘이 더 센 것도 아니고, 부모가.. (이쯤하자) 아쉬운 것은 또 있다. 왜 반장을 성적순으로 맡게 했는지. 반장(선거) 때문에 새 학년 새 학기면 새로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1학기도 그냥 석대가 하면 안 되나요?” 아이는 못하시는담임에게 청원하기도 했다.


작가가 글을 쓸 때에는 읽을 사람을 머릿속에서 미리 정한다. 이른바 독자의 상정(想定)’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쓸 때, 필자가 머리 속에서 정하고 있던 독자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글의 일부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면서 어린이 독자를 갖게 되었다.” -이문열, 머리말에서


어린이용으로 다시 써야 한다어린이들에게 맞게 문장 구조를 손보고 낱말을 바꾸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작가는 새로 펴내는 책(소설머리말에서 사정을 밝혔다이미 상정한 독자가 바뀔 수 있을까그렇게 독자의 연령층을 낮춘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라떼는식 푸념 하나를 더 얹는 것 아닐까. 그렇게 소설은 애초에 상정한 대로(초판 출간 1987), 작품 속 시절 전후를 살았던 독자들에게 잔혹한 동화로 평가받은 것 아니었을까. 이솝(아이소포스)이 살아 돌아와 21세기 한국 어린이를 위해 자신의 우화를 다시 쓸 수 있을까? 불가하다. <소설원론> 강의, 교수가 그랬다. 소설에서는 작가의 말까지도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이제 논픽션과 픽션의 경계는 거의 없다

 

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그해  서울에서 국제도서전이 있었어. 상당한 규모였지. 전단지를 무차별 살포하는 수준, 

부수가 장난이 아니었지. 거의 모든 판촉물이 들어갈 수 있는 가방, 배보다 더 큰  배꼽 사은품을 만들기도 했고.”

100만 부가 넘는 매체를 인쇄하는 중에 사고를 발견했다. 어른이 된 아이는 그 무렵 어느 매체의 팀장이었다. 담당 팀원(실무)들이 있고 바로 위에 과장, 그 위에 전결인 부장이 있었지만, 인쇄감리까지 맡은 실무책임이기에 캄캄해진 하늘이 무너지고 있었다. 간지로 끼워 넣은 엽서에서 발견한 오자(誤字). ‘벚나무벗나무으로 인쇄되고 있었다. 대형 인쇄소 부근에서 거기 영업본부장과 식사를 하다가 발견한 것. 공교롭게도 엽서였다, 신규 독자를 가늠할 수 없는. 

어느 해 봄밤, 벚꽃이 만개한 여의도 축제 현장을 한 바퀴 돌고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마시면서 아이가 들려준 두 번째 이야기다. 나의 벗이 벚나무 아래에서 벗과, ‘벗나무와 벚나무 사이에서 거듭 경험한 일종의 트라우마. 그날, 인쇄소의 영업본부장이 들려주었다는 위로의 한마디를 빠뜨릴 뻔했다. “가을날 공원에서 낙엽 쓸기와 같은 것 아닐까요(교정이란 것이).”

 

플라톤은 여든에 죽을 때에도 여전히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흔아홉까지 살았고, 아흔넷에 자신의 가장 유명한 작품을 썼다. 고르기아스는 두 사람을 한참 어린애로 보이게 하는데, 그는 백일곱 살까지 살았고 죽는 날까지 일에 매진했다.”(439면 마지막 단락)

<13. 보브와르처럼 늙는 법>을 읽는 중이었다다음 440면  중반쯤을 읽어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소크라테스가 99세까지 살았다고, 가장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고? 내가 아는 그 소크라테스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무심코 지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크라테스를 하도 많이 만나(주석을 포함하여) (기원전) ‘469에서 399’라는 숫자가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이다(출생을 기원전 470년으로 보기도 한다). 

생몰연대에 ‘9’가 유난히 많아 어느덧 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99까지를 지나친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소크라테스는 70년 전후를 살았는데……그런 소크라테스가 작품을 남겼단다. 이 소크라테스가 그 소크라테스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저자가 인용한 구절이, 언급하는 인물들까지 원본 텍스트(출처)가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그리스 로마 에세이에 수록가 분명했다. 책을 찾아 살핀다마침 이 책(익스프레스)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 참고하던 참이었다. 예상대로 이소크라테스


이소크라테스(Isocrates, 기원전 436-338)는 아테나이 웅변가로 그의 연설들은 실제로 연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읽히기 위하여 씌어진 만큼 일종의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년에 관하여」, 옮긴이 주석

요즘을 살아간다면 이소크라테스는 대통령 연설담당(Speech writer비서관이지 않을까? 그가 말년에 남겼다는 역작은 판아테나이코스. 소크라테스(Socrates)는 평생 말(말씀)하였을 뿐이고, 한 것이나 하신 것으로 여겨지는 말씀을 담은 글()은 여든 살까지 살았다는 제자 플라톤이 남겼다.


실수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잡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된다.  오탈자가 좀 있네요, 하면 될 것을 부러 글에 담는 이유다. 내가 읽은 책은 작년(2021말에 인쇄된 21쇄 반양장(초판1, 21428)이다. 25만 부 기념으로 발행했다는(2022-03-14) 양장본에 이 대목은 수정되었는지? 2(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만이 아니고 곳곳에 소크라테스가 출연하고, 제목에까지 소크라테스(마케팅)가 등장하는데, 치명적인 오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주석은 길거나 짧거나 해당 페이지에 수록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생략했더라도(그곳 독서환경과 우린 다르다) 역주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리고 해당 페이지에 주석이 없다고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그렇게  보일 뿐. 늦은 봄,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은 만개했다 한 달쯤 전에 졌는데, 친구의 아픈 벚꽃들까지 소환하다니, 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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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8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5-08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를 간다분노에 치를 떤다대상이 있다복수를 계획한다가능하다면.. 그 복수 달콤한 꿀이다단체여행을 할 때, 2인 1실로 하룻밤을 한 공간에서 동성의 파트너와 지낼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코를 고는 것은 아닐까내가 혹은 상대가나는 코를 골지 않는 편이지만가끔 심신이 무척 고단할 때는 그리한다는 것을 아침에 들어서 알고 있다양해를 구한다그런데 상대가 코를 골아 내가 잠을 설친 적은 많아도 내가 폐를 끼친 경우는 드물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그리고 상대도 그럴 수 있음을 늘 감안한다그러던 어느 날저편 침대에서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에 깨어났다찢는?  그 소리에 알맞은 단어를 아직 고르지 못하였다. 이를 가는 그 둔탁한 혹은 날카로운 소리그 소--름을 오랫동안 기억한다맺힌 게 많은신가 보다그럴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치료가 필요하다, 예방이 먼저라는 것 알면서도,  상대가 출장 파트너일 때는 밤새 할 일이 있다며 방 하나씩 잡는 식으로 숙면을 기약한다.

 

이를 간다그런데 녀석들을 그 흔적을 어김없이 남긴다나무 들보를 갉아놓거나 과실치상처럼 흙벽에 구멍을 뚫기도 한다구멍을 뚫기 위해 갉아내는 건 이해한다, 생존이니까하지만 갈아야 하니까 갈다가 바람벽을 망가뜨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주권 침해이면서 인권침해다. 요즘은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지만 날마다 이런 흔적 때문에라도 쥐라는 동물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다이 작고 앙증맞은 동물은 거대한 부피의 들짐승을 맞닥뜨렸을 때그 이상으로 섬뜩한 뭔가를 준다지금이야 공간을 분리하는 재질들이 콘크리트이거나 금속류 등 그들이 흔적을 남길 여지는 거의 없다그러나 목재 건물은 사정이 다르다표면에 특별한 마감이 필요하다예나 지금이나 쥐는 유해동물로 분류된다퇴치하려면 그 흔적부터 찾아야 한다안 되는 줄 아는지 모르는지갈아야 하기 때문에 갈았을 뿐인데그런 빼박 증거에 그들의 종말은 가까워진다그리스적인(?) 비극이다때문에 녀석들은 이를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걷는다. 살기 위해 걷는다요즘 내게는 걷기가 그렇다 친구 얘기다고향마을에 몇 년 머물렀을 때란다보통 한적한 농촌마을이라고 하지만 결코 한적하지는 않았고요즘 그렇게 한적한 마을은 없다고 했다. 훌륭한 리뷰가 아닐 수 없다. 밭농사에 할 일이 많아 한여름에도 제초작업 등으로 쉴 틈이 거의 없는 아짐들 얘기다저녁 9시쯤이면 두런두런 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가 창틈으로 들려오기 시작한다오늘 화제가 무엇인지는 파악할 수 없다금세 지나치기 때문이다. 8시 30분에 시작된 일일드라마가 끝난 때라는 것을 아는데칸트 선생의 산책을 떠올린다, 그처럼 시간를 맞추어도 될 정도란다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자기 몫 밭일을 하고논일하는 서방님들업무보조(데모도)까지 긴 하루, 일하다 보면 걷는 거리가 상당할 텐데 야밤에 시간을 내서 부러 걷는 것일까그 아짐들 나이 되니비로소 알겠더라, 생활가전들과 이동수단의 눈부신 서비스 덕분에 생활이 곧 걷기이던 건 옛날 얘기가 되었다는,  얘기다.

 

개울(흐르는 물이 그 수준)을 낀 천변이나 학교 운동장을 몇 바퀴씩 걷는 사람들을 목격한다대체로 중년 이상이지만 연령층은 특정할 수 없다종아리는 제2의 심장이니까한쪽 가슴 어디쯤 심장에만 기대어 살았으니그간 고생했을 테니까,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그렇게 걷다가 생각한다씹는 것멸치나 북어포, 황태포나 말린 오징어건과류 등 씹어야 하는 먹을거리를 정기적으로 구입한다어떤 녀석들처럼 이를 갈기 위해서는 아니다. 아니 그럴 수 있다. 씹기와 건강(두뇌)의 친밀성,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씹기와 걷기가 심신 건강에 기여하는 점은 습성과 효과에서 유사하다오늘도 걷다가 잠시 개여울 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다귀를 쫑긋하지 않아도 아짐들의 얘기가 들려온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다저녁 9시에 시작된 농촌마을 아짐들의 걷기에 대해. 씹으면서 걷고 걸으면서 씹지 않았을까악플보단 선플이 좀 더 많았기를오늘도 걷다,  홀로이 개여울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한다말로 버전이다.


그리스 로마 에세이』  중 플루타르코스의 <수다에 관하여참고

건강한 수다는 있을까? 

없을 것 같다.  단언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중 <루소처럼 걷는 법참고

플라톤전집을 읽노라면 소크라테스처럼 걷는 법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건 내가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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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2월 23일 김영삼은 대통령에 취임했다취임한 지 13일 만인 3월 8일 권영해 국방부 장관을 청와대로 불렀다아마 독대였을 것이다.

김영삼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권영해군대에서는 사표를 내지 않습니다명령 하나면 됩니다.

김영삼그래요그럼 됐구먼내가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로 바꾸겠습니다당장 예편하라고 하세요.

김영삼은 가장 강력한 무력집단인 군대의 수뇌부를 해체하기 시작했다-39면, 사회적 성취의 기반-역량의 의미 中

   

거침없이! 군사 쿠데타의 육묘장이며 잠재세력인 하나회 해체는 시작되었다검찰마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해괴한 눈치로 사는 때였다최동석은 성취 예측 모형』 1장에서 YS를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빛나는 개혁을 단행한 대통령으로평가한다공과(功過)가 극과 극이나 인정할 건 인정하고 있다. 시대가 소명을 만들고 그것을 할 때 인물이 탄생한다

그래요그럼 됐구먼.‘ 이 대목을 읽다 나는 문득 9년차 전쟁이 한창이던 트로이아 해변 어디쯤으로 간다, 시간여행이다. 생각처럼 앍기가 쉽지 않다는일리아스』 2(2/24)의, 전반부 어디쯤이다.  2권 대부분은 이 책읽기의 악마의 코스라는 함선 목록인데바로 그 앞의 에피소드다. 테티스의 청원에 잠 못 드는 제우스는 아가멤논에게 승리를 확신하게끔  거짓 꿈을 보낸다. 아가멤논은 원로들의 회의를 소집하여 대대적인 공격을 기획한다여기에는 공격 전에 전사들의 사기를 가늠하기 위한 트릭이 있다. “우선 관례에 따라 말로 그들을 시험해보고자 나는(아가멤논) ..달아나자고 권할 테니" 그대들(참석한 군 지휘관들)은 말로 그들을 제지해보라는 것. 

전사들의 마음을 읽는 절차다.  그들의 마음을 얻는 과정이다. 트로이아군보다 숫적으로 열 배나 많은 그리스연합군이지만 전사들의 전투의지가 해이된 상태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함선들과 막사들에서 떼 지어 회의장으로 몰려온 전사들은아가멤논의 철수 선언에 술렁인다. 환호가 분명한 이 분위기돌이킬 수 없다곧이어 전사들은 함선들을 끌어내리고 그간의 전리품을 챙기는 등 귀향을 서두른다아킬레우스 없이도 전투는 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없는 전투에서 승리는 상상할 수 없다. 아가멤논이라고 별 수 있겠어,! 아가멤논의 오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 파업을 선언한 상태(1)아가멤논이 대규모  공격을 히려는 이유, 아킬레우스와의 대결에서 실추된 권위 등, 만회하려면 반전이 필요했다. 최고사령관이니 인간들의 왕이니 뭐니 해도 아킬레우스 없인 안 돼!‘전사들의 마음은 그렇게 흔들렸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다.

 

원로들의 회의에 참석했던 장수들에게도 철군(撤軍)은 기정사실이다. 사태 수습에 공식처럼 오뒷세우스가 등장한다. 모든 전사들이 다시 모인 회의장. "이의 있습니다!‘" 당당하게 오뒷세우스에게  맞서는 전사가 있다. 테르시테스(Thersites)수다쟁이지껄이는 사람. 그는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그리스군 중 제일 못생긴 사내였으며유명한 독설가다평소에 그가 말칼을 날리는 상대는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였고, 두 지휘관의 미움을 샀다이번엔 아가멤논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가장 아픈 데를 후빈다. 그대 혼자서 붙들어놓고 사랑을 즐길 젊은 여인을 원하는 것이오?” 이어 아킬레우스를 변호하며 겁쟁이이며 수치 그 자체라며 아가멤논을 비난한다.

"원망하되 전쟁에는 일절 관여하지 마라." 아들에게 여신 테티스는 당부했다.(1권) 이 어미에게 '계획이 있다.'.  너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아들의 성정을 알기에)  한두 발 물러서서 관전만 하라.  아킬레우스는 말씀을 받아들였다. 테르시테스는 그런 아킬레우스마저 소환한다.  "아킬레우스는 마음속으로 노여워하기는커녕 태연했소. 그렇지 않았던들."(67면)  아가멤논-오뒷세우스 VS 테르시테스-아킬레우스'라는 연대와 갈등 전선이 형성된다.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 전사들이 있다. 우리도 이 전쟁의 당사자라는 발견. 아킬레우스는 전투 파업을 선언했지만 아직 미련이 있다. 그리고 인간 테르시테스는 전쟁 반대를 외친다.  말은 못해도 대다수 그리스군 전사들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고향마을죽음이 내일모레인 부모님늙어가는 아내와 눈에 밟히는 자식들훗날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반대하는 그리스 곳곳 시민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전력 우위만으로 전투(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전력에는 군사력이, 군사력에는 군사들의 사기(전투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에피소드에 이어지는 생소한 지명(地名낯선 인명(人名)투성이인 <함선 목록>은 무력시위쯤으로 보면 된다앞세워야 할 것은 승리겠다는 전사들의 열망이니까오뒷세우스는 국면을 잘 수습하고 대규모 전투가 재개된다머지않아 아킬레우스도 전투파업을 풀 예정이다그런데그리스연합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입장에서 일련의 사태(1권에서 2권 전반)를 복기해보자.

전쟁 중 명령불복종엔 엄혹한 처벌이 따른다충무공은 난중일기(혹은 영화 <명량>)에 탈영병 등을 즉결 처분(참수)한 기록을 남겼다아가멤논은 왜아킬레우스의 전투파업을 방치하고일개 전사인 테르시테스를 처분하지 않았을까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대한민국 군()의 통수권자(統帥權者)인 대통령이 정말 몰라서  물었을까알 수 없다전시(戰時아니라고한반도는 지금도 휴전(休戰상태다다만쿠데타와 유사 쿠데타로 집권을 연장한 군인 정치의 날들의 너무 길었다다음(Daum)에서 문민 대통령이라고 검색하면 김영삼‘ 아니냐고 되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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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일지라도 전화를 받는 친구가 드물지만 있다. 좀 늦었지만 퇴근 중이다. 한 잔쯤 걸친 목소리다계속 다녀야할지 고민이다. 내게도 그런 고비가 몇 차례 있었지. 선생이 그러시더라.  측간(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어 봐야 냄새만 밴다, 라고 했지만 도움 될 것 같지는 않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할 일 한 것 아닐까,  그래도 마음은 편치 않다.  


354. 항아리들 

오지항아리와 청동항아리가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오지항아리가 청동항아리에게 말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헤엄치란 말이야가까이 오지 말고너와 부딪치면 나는 깨질 거야내가 본의 아니게 너와 부딪쳐도 그렇고.”


'날강도 같은 권력자의 이웃에 사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인생이 늘 불안하다.' 이솝우화 한 대목을 슬쩍 언급하지만 꼰대가 꼰대에게 하는 소리쯤으로 들릴 것이다. 시종일관 한 직장에서 일하고 정년퇴임을 한 이들이 느낄 허전함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찾지마, 히말라야 산등성이 어디쯤에서 트래킹이나 하면서 살아갈거야,. 한 잔 하면 대학 산악반 시절을 떠올리며 호언장담하던 공무원은 지금 인테리어업자인 친구 회사에서 업무보조(데모도)로 일하는데, 일과가 끝나고 친구들과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이 그렇게 달콤하단다. 청동항아리(갑)가 오지항아리(을)의 오지항아리임을 알고 협력을 이끌어낸다면 좋겠으나 사는 것이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다. 한두 차례 당한 것으로 액땜하려니 하지만, 늘 한 발 물러선 그 이력 때문에 유사한 처지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오뒷세우스는 집으로 가기 위해 무려 10년을 세상 곳곳을 떠돌아야 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던가. <일리아스>에서 지장(智將)으로 손꼽히는 활약을 하지만, 트로이아 입장에서는 그런 그가 얼마나 얄미웠겠는가. 트로이아 편을 들었던 신들도 저주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20년 만에 오뒷세우스는 집으로 돌아간다.  이후 삶은 행복했을까?  이후로도 그는 그간의 행위를 정화하는, 자숙의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퀴클롭스, 그대는 내 유명한 이름을 물었던가요? ..내 이름은 '나무도아니'요. 사람들은 나를 '아무도아니'라고 부르지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그리고 다른 전우들도 모두.' (오뒷세이아, 9권, 228면) 


평범한 삶 쉽지 않다. 기회에서 벌이에서 양극화는 심화될 조짐이니 더욱 그렇다.  궤도를 벗어났을 때에야  그렇고 그런 삶이 대단하게 다가온다. 내게도 꿈이 있었다. 지굼도 꿈이 있다., 라면 좋겠는데, 완료형 마무리가 씁쓸하다.      




친구야, 최근에 <노바디>란 영화를 보았어, 주말에 찾아서 보렴.  조심조심 살아, 어쩌겠어. 그리고 국내영화로 하나 더 추천한다.  <쏜다>(2006)이던가.  


아래, 영화 <노바디> 스틸 컷. 


아래, 영화 <쏜다> 도입부,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온 박만수 인생에 어느 날 갑자기 아내는 함께 사는 게 재미없다며 이혼을 요구하고 회사는 유도리 없다고 정리해고를 통보한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 박만수는 평생 최선을 다해 모범적으로 살아온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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