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는 각각 황소와 사람과 집을 만든 뒤 비난을 심사원으로 초청했다비난은 그들의 작품을 시샘하며 말했다먼저 황소가 어디를 떠받을지 볼 수 있도록 제우스가 뿔에다 눈을 달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했다프로메테우스 역시 사악한 자들이 숨지 못하고 저마다 마음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드러나도록 사람 마음을 밖에 매달지 않은 것은 실수라고 했다세 번째로 비난은악당이 이웃에 자리 잡고 살면 쉽게 이사 갈 수 있도록 아테나가 집에다 바퀴를 달았어야 했다고 말했다그러자 제우스는 그의 비방에 화가 나서 비난을 올륌포스에서 내쫓았다.

-<124. 제우스와 프로메테우스와 아테나와 비난> 전문,  청소년과 성인을 위한 정본 이솝우화』 145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 만큼 완벽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우화의 '공식' 메시지이다.  이 메시지(교훈)를 두 가지로 분리한다. 1)모든 것은 비난할 수 있다. 2)(말 그대로) 완벽한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1)은 비난에게서 자유로운 타인은 없다. 곱씹을수록 무섭다. 그러니 신중하라. 2)는 그러므로 겸손하라, 한 발 물러서라. 그렇게 거리를 두고 사태(사건, 상황)를 바라보라.  비난의 대상(1))에서 벗어나기가 힘드니까.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안다는 것'을 '나는 모른다는 것을 안다(무지의 지)'고 역설하였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내 논리는 완벽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공략될 수 있는 성(城)이다-난공불락(難攻不落)의 철옹산성(鐵甕山城)일 수 없다.  그렇게 말이든 행동이든 시작하는 것이 좋다, 라는 메시지다.  

'<...아테나와 비난>이다. 이처럼 '비난' 자체도 완벽할 수 없겠지만, 우화가 그럴듯이 비난은 단지 한 이름(단어, 개념)으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비난'에게도 '인격'이 부여되어 있는데, 어린이일 때는 그렇게 여기지만 '머리가 굳어진' 어른들에게는 사라진 '인격'이 우화에는 있고, 있다고 여기기에 모든 우화는 어린이들이 주요 독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쨌든 본문 속 '비난'이 견지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제우스-황소]:  황소는 막무가내로 어디나 들이박아 과실치사(혹은 과실치상)를 하거나 무엇이든 파괴(핵무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항공사고 예방하려고 고층건물 일정한 높이에 부착하는 경고등처럼, 황소의 뿔에도 눈을 달았어야 한다.  자동차 후미 브레이크등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에는 스스로 조심하고 한 발 물러서는 배려가 있다.   

[프로메테우스-사람] : 열 길 물속 알아도 한 길 사람속 모른다는데, 왜 그것까지  생각하지 않았느냐, 배려가 부족했다.  사랑은 하트(심장)이라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지 못해 상사병에 걸리고, 그로 인한 사건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이것은 나는 이런 사람, 내 마음은 이래요, "누가 이 사람(나를) 모르시나요"처럼, SNS시대에는 심장(마음)이 몸 밖으로 튀어나와  프로메테우스에 대한 지적질 하는데 설득력 얻고 있다.  

[아테나-집] :  바퀴가 달린 집이  실현 되었지만,  층간 음 때문에 벌어지는 살인사건 등 살기 위해 마련하고 살고 있는 집을 선택하는 일이 쉽지 않아,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느냐,  '캠핑카'나 '이동식 주택' 출현은 비난의 주장을 그저 비난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비난은 누가 만들었을까? 신적인 존재가 창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제우스와 아테네는 12신클럽 멤버이고,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는 그들에게는 반신이겠지만, 그 이상으로 가장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신이기 때문이다. 악의든 선의이든 요즘의 비난은 '댓글'에서 맹렬하게 활동 중이다.  그 방향이 좋은 쪽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떠나 '비난'이 지금처럼 활성화된 적이 없다.  비난은 누가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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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과 집 거리가 가까운 구 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다. 서울이 계란(鷄卵)의 노른자라면 서울을 감싼 경기도는 흰자에 속한다, 그 비유 참신하였다. 이방인 구 씨를 품고 있는 염씨네_세 자녀는 경기도 끝자락 어디쯤 살면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여가 활동은 꿈, 결혼 적령기 넘기고 연애마저 자유롭지 않은 것도 주변에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의 재택근무인 구 씨는 남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대부분의 여가에 술을 사러 오가거나, 마시거나, 취해 있다. 좋게 말하면 애주가나 술꾼, 정확히 술중독이다. 변방에 살기(때문에)에 빠듯한 일상을 반복하는 세 자녀의 눈에 직장과 집이 너무 가까워 (덕분에) 술이나 마시는 구 씨의 대비되는 일상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전철역 부근의 편의점에서 소주 한두 병 혹은 두세 병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를 들고, 가로등1이 내뿜는 빛이 끝나는 지점과 가로등2가 빛을 내뿜기 시작하는 지점 사이를 지나는 구 씨. 소주병이 달그락거리는 음향 효과. 집으로 가는 대체로 어두운 길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길에서 막내딸 미정은 구 씨를 발견한다.

염씨 부부를 포함하여 세 자녀까지 염씨네 일가와 구 씨가 하는 일의 공통점은 기다림이다. 그들은 무엇, 지금과 다른 어느 때의 무엇을 기다린다. 때로 그 무엇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단지 어떤, 특정할 수 있는 사람만으로는 충족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소주 한두 병을 마시고 떨어지면 다시 24시간 편의점으로 한두 병의 소주를 사러 가는 구 씨(할인마트에 가서 한 박스를 사오세요 제발). 생존을 위해, 자기 계발 차원에서 시간 관리를 하는 이들에게 그는 0점짜리다.

미정은 지금과 다른 뭔가를 줄기차게 기다리고 있으며, 기다리고 있는 자신이 못마땅하여 기다리지 않기 위하여 도발적인말과 행동을 한다. 구 씨는 다른 듯 닮았다. 빈방에 그간 마신 소주병이 가득 전시되어 있다. 그가 뭔가를 기다린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지만, 그는 그것을 모르는 것처럼 술병들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운 풍경에 집착한다. 기다림의 징표다.

염씨네 큰딸 기정은 리서치 회사의 중견간부다. 상사인 남자는 바람둥이인데 그 상대들이 하필 회사 여직원들이다. 좋지 않다. 그는 대상에게 로또복권을 선물하면서 작업을 시작한다. 로또는 토요일에 추첨인데 금요일 퇴근 무렵, 불금’의 시작 시점도 아니고 꼭 월요일에 대상(여인)에게 로또 복권을 선물한다. 여행의 참맛은  출발을 기다리는 시간에 있다. 두근거림. 늘 실망했으므로, 그 메커니즘 알기에, 로또 복권 구매는 부질없고 이성은 허락하지 않는다. (생략) 그런데 내게  금전적인 데미지는 없고 뭔가를 기다릴 수 있게 해준다. 그런 모티브를 제공하는 사람, 이제 그를 기다린다그는 이제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된다.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NFT이든, 기다림에 기댈 수 있는 뭔 그런 것. 이것들도 일종의 기다림의 대상이다.,

뭔가를 건다는 건 외로운 거야” 뭔가를 걸고 싶은데 걸만한 것이 마땅치 않다. 기다리고 싶은데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기다리고 있는 이가 있어 열심히 역경 넘어 서 달린다. <달려라 메로스>처럼, 누군가 내 삶의 어느 지점에서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1이 있을까?


<기다린다는 것에 대한 책들>

그러니까 달리는 것이다. 믿고 있으니까 달리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 늦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목숨도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엄청나게 큰 무언가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를 따라 와라! 피로스트라토스.”(234피로스트라토스는 왕의 인질이 되어 메로스를 기다리는 석공의 제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마도 오지 않고, 아무도 가지 않아정말 못 참겠어.)__1막에서, 에스트라공의 대사

블라디미르 이 모든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 확실한 게 있지 그건 고도가 오기를 우린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엘라스트공 그건 그렇지.

블라디미르 아니면 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사이 우린 약속을 지키러 나온 거야(134)





기다림이 가디림이라는 보증이 되지 않은 채, 정처 없이 오로지 그냥 기다린다. 그런 두 사람의 부랑자를 그려낸 희곡이 있다. 바로 사무엘 베케트(1906~1989)고도를 기다리며(1953년 초연).(171)

어떤 의미에서 달려라 메로스는 기다리게 하는 쪽의 괴로움을 그린 작품이다.(60(실제로) 다자이 오사무가 했던 것으로 보이는 말, ‘기다리는 쪽이 괴로울까? 기다리게 하는 쪽이 괴로울까?’라는 말도 세상이라는 우화 속의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62기다리는 쪽은 그저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끝까지 기다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붕괴, 즉 자괴(自壞). 그런데 기다리게 하는 쪽은 기다리는 사람의 신뢰를 시련에 빠뜨린다.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동안 줄곧 타자를 해칠 가능성을 안고 있다. (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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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웃자고 한 소리가 실없이 던진 농담이 아닐 때가 있다. 웃음을 함유한 말(풍자)이 가진 힘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칼럼으로 문명비판을 신랄하게 하였는데,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초판 1995, 개정증보판 1990)이 대표적이다. 책은 에코의 연어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증보판인데, 마지막 옮긴이(이세욱) 글에서 흥미로운 발견이 있다. 에코는 자기 글이 어렵다고 말하는 독자들을 "매스미디어의 <계시>에 힘입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에 길들여 있는 사람들"로 여겼다는 것. 나라 안팎에서 가짜뉴스가 창궐하는 이 즈음, 에코가 살아있다면  어떤 일침을 가할까, <계시>마저 사라진 언론에 대하여!


기호학자이자 작가, 현대의 '고전' 반열에 오를 소설 장미의 이름은 그리스 비극의 미학을 입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후속편이, 곧 희극을 다룬 시학2가 세상에 나왔으나 극소수만 공유하고 있다, 금서를 숨기려는 세력과 발굴하려는 이들 사이의 갈등과 전쟁이 소설 장미의 이름 설정이다. 전문분야인 기호학과도 연관이 깊지만, 그가 장서(藏書)들 틈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소설을 흥미롭게 읽는 또 하나의 관점이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수록된 컬럼들. ‘책과 원고를 활용하기’, ‘서재에 장서가 많은 것을 정당화하는 방법’, ‘공공도서관의 체계를 세우는 방법(1981)’ 등에서 '역설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이 책 곳곳에는 에코표 웃음 코드가 곳곳에 포진하고 있어, 시종일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한 꼭지만 고르라, 곤란한 주문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한 꼭지만 고르라면 <연극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를 아는 방법>(1988)이다. 에코는 세상에 없는 책을 다룬 책(장미의 이름)을 썼다. 이 에피소드에는 문제작 시학(아리스토텔레스)이 극찬한(꽃 중의 꽃) 비극 <오이디푸스 왕> 관련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에코의 미국) 유학 시절, 필자(A)는 기숙사 문 닫는 시간(자정) 때문에 숱한 연극들을 처음부터 보면서도 딱 10분이 모자라 끝부분을 보지 못하였다.(A는 오이디푸스가 그 끔찍한 비밀이 드러났을 때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친구(B)를 만난다. 그도 학생이고 검표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B는 지각하는 관객들 때문에 극의 초반 10분쯤을 보지 못했다). 먼 훗날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대화가 흥미롭게 소개된다.

 


A(에코): 이제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되었는지 얘기 좀 해봐

B(검표원 알바): 간단해 어머니는 목을 매고 그는 스스로 자기 눈을 멀게 하지

A: 안됐군. 하지만 결국 그건 자기 잘못에서 비롯된 거야.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그에게 진실을 알려주려고 했잖아.

B: 맞아 그런데 그는 어째서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 그 점이 늘 궁금하더라고…….

A: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역병이 돌기 시작했을 때 그는 이미 왕이었고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B: 그런데 자기 어머니를 아내로 맞으면서도 그 사실을 전혀…….

A: 당연히 전혀 몰랐지! 그게 바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지.

B: 프로이드의 환자 얘기 같아.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의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천병희 옮김 <오이디푸스 왕>은 국내 공연에서 원전번역 텍스트가 그대로 대사로 사용, 공연되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위 인용 부분이 영화의 엔딩크레딧처럼, 이제 막 연극이 끝난(암전) 무대에서 (미리 녹음된 주연 배우들의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자네가 오이디푸스라도 그들 얘기를 곧이듣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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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마니아
타키투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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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망자의 이름은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망자(亡者)의 이름을 언급하지 말아 달라. 영화 초반에서도  이곳에서는 금기라며, (아프리카) 현지 가이드가 경고하지만 무심코 스쳤다.  감독 시드니 폴락, 주연  니콜 키드먼숀 펜.. 감독도 제작진도 화려한 영화,  2005년에 제작되어 국내에도 개봉된 영화, 넷플릭스에서 만난 <인터프리터>(The Interpreter, 2005) 이야기다.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던 아프리카 오지의 한 나라와 미국 뉴욕 UN본부 안팎,  아프리카 태생인 UN 통역사 실비아 브룸(니콜 키드만 분)이 그녀 외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언어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을 엿들었다고 강력히 주장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제 그녀는 살인 대상 1순위가 되어 목숨이 위태롭다. 그녀가 연방요원 토빈 켈러(숀 펜 분) 의 보호를 받으면서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결말을 향해 간다. 인터프리터(interpreter), '통역사'의 얘기에 귀를 기울울 시간이다.  


연방 요원(숀 펜): 분노는요? 이 일이 시작되고 만난 사람 중에서 당신이 주와니(아프리카의 독재자)에게 가장 원한이 많더군요. 그 자의 지뢰 때문에..

통역사 (니콜 키드만)~, 망자의 이름을 말하지 말아요. 사랑하는 이를 잃으면 누구나 복수를 원하죠. 신을 상대로 하더라도. 그러나 아프리카의 마토보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게 슬픔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누군가 살해되면 익사 재판이란 의식으로 1년간 애도 기간을 보내죠. 강가에서 밤새 열리는 의식으로 새벽에 살인자를 배에 태워 물로 띄워 보내 빠지게 하죠. (살인자는) 묶여서 수영도 못 하죠. 망자의 가족이 선택해요. 살인지를 익사시키든가 구해주든가 족은 가족이 살인자가 죽도록 두면 정의는 실현하지만 평생 애도하면서 보내요. 그러나 살려두고 목숨을 뺏는 거로 결론짓지 않으면 그걸로 슬픔은 사라져요. 복수는 애도의 게으른 형태죠. __<인터프리터>, 러닝타임 40분 전후


영화 초입의 의문점이 풀리는 대목이지만 소화하기까지 상당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는 '그렇'지만 가슴을 설득하기까지, 1년이란 애도기간처럼 시간이 필요하였다.  망자와 이별하는 데 필요한 49일처럼,  그날 망자와 작별하는 우리의 49재처럼 1년째 되는 날 진행된다는 의식(Drowning Man Trial)은 많이 닯았다. 살인자를 죽일 수 있고, 살릴 수도 있다.  선택권은 유족들에게 있다.  1년 동안 살인자는 혹은 그의 가족 친지들은, 망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용서를 구했을까? 자세한 언급은 없다. 그들이 어찌했건 용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유족들은 선택할 뿐이다. 살리면 슬픔은 사라진다. 그러나 복수(방치)하면 정의는 실현된다. 하지만 평생을 애도하면서 보내야 한다. '용서'했다면, 더 이상 망자의 이름마저 언급하면 안 된다. 생각의 여지가 넓어지는 대목이다. 


아래 인용에서 '그곳'은 오늘날 독일어권인 게르마니아이고, 수집하고 관찰한 그들의 '생태' 를 들려주는 이는 기원후 100년 전후를 살아가는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다. 


"그곳에서는 아버지나 친족의 원한과 우정이 대물림된다. 그러나 원한이 조정될 가능성도 없이 지속되지는 않는다. 살인사건도 정해진 수의 소나 양을 바치면 속죄되고, 전 가족이 이런 보상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동체에도 이롭다. 원한은 인관 관계가 제약받지 않는 곳에서는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__66면, 게르마니아21장 중에서


우정처럼 '원한'이 대물림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 전제이다. 하지만 다른 길도 있는데, 앞서 살핀 영화에서처럼, 복수심은 주머니 속 송곳이다. 분노를  품은 이가 결국 상처를 입는다.  그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여지를 남긴다는 것이 현재인의 심사에는 더 다가오지 않을까.  원한을 산 자(=살인자)는 '헤아릴 수 없는' 보석금을 내고 용서를 받았다는 얘기일까? 그런 재력만 있으면 살인해도 무방하다는 그런 해석일까? 더 큰 그림을 읽을 수 있다. 

한 부족이 생존하는 데 구성원들이 그런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한이 대물림되고 쌓이면 공동체 전체가 내분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다. 인근 부족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고 약탈하고 약탈당하는 싸움이 진행 중이다. 거대한 로마 제국과도 맞짱을 떠서 치명타를 날리는 그들의 힘은 이런 가능성을 열어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투키디데스는 복수혈전이 진행되는 어지러운 로마 황실을 떠올리면서 '한편 부럽고 한편 두려운' 게르마니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했다면 죄송합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용서를 구하는 것인지 통보하는 것인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태도로 용서를 구하는 경우가 최근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목격된다.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건부 감사 못지 않게 조건부 용서도 개운치 않은 뭔가를 남긴다. 용서도 아니고 감사도 아니다. 이런 무늬가 통용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영화 속 용서는 한편으로는 남은 이들의 이기적인 선택이다. 책 속의 용서는 '조건'이 따르지만 더 '인간적'일 수 있다. 가문이 멸망할 정도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살인, 하려면, 하렴. 현실에는 말 그대로 현실적으로 따라야 할 문법이 필요한 것. 그래도 책이나 영화나 용서를 구하는 이의 진정한 참회가 전제되어 있겠지, 생각하고 싶다.  이 선택 또한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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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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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오면 참고서 따위를 모아 폐지했다. 책장 정리도 했다, 아이들이  아직 학생일 때. 떡 본 김에 지내는 제사,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책들 함께 정리하는 책들의 장례식,  소멸의 의식이었다. 올해는 늦은 봄 주말에야 짬을 내어 책을 정리했다. 그렇게  공선옥의 장편소설 영란』을 만났다. 친구의 선물이었다.  소장할 책인데, 절판이라, 택배로 보낸다. 읽어보아라, 아니 꼭 읽고 만나자 했다. 목포 원도심 여행 가이드는 기꺼이 맡을 것이니, ‘꼭 읽고 오렴’, 조건이었다.

50 : 50. 당일은 출장, 다음 날 하루는 휴가, 그렇게 12일 여행 겸 출장이었고, 친구가 속한 업체 방문이었으므로 친구는 월차를 내고일을 마치자마자 곧장 목포로 달렸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땅거미가 내려, 다도해의 일몰 풍경은 포기해야 했다. 항구에 있는 H모텔에 방 두 개를 잡았다. 하나는 우리 부부 다른 하나는 친구와 그곳 후배가 묵을 예정이었다. 이곳 사장님은 고향이 신안(군)의 어느 섬이래, 손님이 많을 때나 적을 때나 늘 두세 개의 방을 남겨 둔다고 해. 폭풍우로 배가 끊겨 발이 묶인 고향 사람들을 위한 배려란다.

멋지네, 지금도 그럴까?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예약된 횟집을 찾았다. 민어회 등을 ‘6시 내 고향처럼 차리는 곳, 너무 잘 알려져 목포기행의 필수 코스가 된 민어의 거리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당연히 그 집인가 보다 했는데, 친구가 안내한 곳은 널리 알려진 ○○횟집 바로 옆집이었다. 4인상에 15만원이었던가, 맞춤한 가격에 부딤 없이 민어회 풀코스를 위해 네 사람이 모였다는 듯이. ‘어느 집도 안면 있는 건 아니고, 이곳 지인들 따라 몇 차례 오간 곳'이라고 했다. 다만 옆집 상호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했을 뿐.


“‘이름이 뭐여?’ 나는 이름을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왠지 모르게 쑥스러웠다. 내가 머뭇거리자, 할머니가 말했다. ‘누가 물으면 인자부터 영란이라고 해불제 뭘.’”(61)

목포 선창의 허름한 영란여관. 여관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할머니가 무심코 붙여준 이름 영란’, 서울내기인 는 낯선 곳에서 그렇게 영란으로 살아간다. 친구는 내가 당연히 숙제를 해온 것으로 알았겠으나, 출장 준비하랴, 그래도 여행이니 이것저것 챙기랴, 일상 업무까지 사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주인공 두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가 있는 덕수궁 대한문 부근에서 만나는 장면이 나와, 작품 속 시간을 떠올렸던 기억이 난다. 이후 작품 속 공간(배경)이 목포라는 데까지도 파악하지 못한 셈이다. 목포를 다녀와 나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영란은 우리집 책장 어딘가에 꽂혀 한두 해를 살았던 모양이다,


여행 이튿날, 친구 후배는 출근하고 우리 일행 셋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목포해상케이블카였다. 북항 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유달산 중턱 정거장에 잠시 정차했다가 고하도 승강장(종)까지를 왕복하는 코스다. 가는 길 케이블카 안에서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를 보았다.  고하도 해변 길과 산길을 걷는 것까지 일정을 소화한 우리는 돌아오는 케이블카에 탔다. 그런데 갑자기 유달산 정차장에서 내리자는 것이다. 북항에 주차한 차는 한 사람만 택시로 이동하여 가져오면 된다는 것. 그렇게 산 중턱에서 목포 원도심까지 도보로 이동하였다.  길이 있는 듯 없는 듯, 조금 내려오니 유달산 둘레길을 만나고, 더 내려가니 목포 원도심에서 대반동(목포해양대학교가 있는)을 오가는 고갯길 정상이다. 케이블카를 오가면서 살핀 풍경 속으로 문득 들어와 버렸다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 신기한 일인데, 친구는 정상에 있는 자그마한 수퍼에 들러 음료든 아이스크림이든 하나씩 먹고 내려가자는 것(손님이 뜸해 그곳에 아이스크림은 없었다). 7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사장님과 친구는 아는 사이인지이런저런 안부를 나누었다.


유달산(해달 228m)의 생명력 넘치는 풍경, 항구도시 사람들의 정겹고 따스한 온기와 부대끼며 는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 영란으로 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란으로 거듭난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몇 년째, 물놀이 사고(익사)로 보낸 어린 아들, 곧이어 차량 전복사고로 곁을 떠난 남편까지, 혼자 남은 나, 곁을 떠난 가족들의 빈 자리를 항구의 사람들이 채우기 시작한다. 목포의 영란여관’(에서) 홀아버지 밑에서 자란 수옥, ‘를 보며 가슴을 두근대는 완규, 그의 여덟 살배기 조카 수한, 치매 걸린 어머니와 사는 슈퍼 안주인 조인자 등등. 그리고 지고지순한 청각장애인인 모란, 그 딸을 묵묵히 돌보는 모란의 아버지 황진생이 있다.  친구는 설명하지는 않았다.  최근에 읽으면서 대반동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에 하나뿐인 구멍가게 가, 황진생과 그 딸 모란이 사는 집(모델)이었음을  깨닫는다.


내가 맞춤 가이드라고 했잖아! (사실은 소설을 다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어) 가게 주인은 나하고 사돈네 팔촌쯤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작가가 거기(원도심) 상당히 머물렀던 것 같아. 그래서.”

친구도 원도심에 일정 기간 살았는데, 소설 영란속 공간(배경)의 디테일은 상상 이상이라고 했다. 고갯마루 가게를 나와 옛 목포제일여고를 왼쪽에 끼고 내려오는 길, 목포의 사업가가 생전에 살았다는 저택(일부는 성옥기념미술관으로 개방, 저택은 <장군의 아들> 촬영), 등산로 초입의 목포근대역사관1(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 노적봉까지 둘러보고 전날 들렀던 민어횟집 부근, 목포 원도심을 찾으면 으레 걷는 코스까지. 12일 일정은 끝났다.

목포근대역사관1(옛 목포 일본영사관) 앞 대로변에는 돌기둥이 서 있고 <國道 1·2號線 起點 紀念碑 >(국도 1·2호선 기점 기념비)라는 상당히 복잡한 한자가 새겨져 있다. 목포에서 신의주까지(국도 1호선), 목포에서 부산까지(국도 2호선), 우리나라 1·,2번 국도가 시작되는 곳이면서 끝나는 기점이 거기 있었다. 친구가 그 기념탑을 배경으로 우리 부부더러 사진 한 컷을 촬영하자고 한 뜻을 이제는 알 것 같다. ‘영란에게 항구 목포는 삶의 끝이면서 새로운 시작이었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미안하고 감사해, 친구가 마련한 문학기행의 마침표를 이제야 찍는다.


너무 늦지 않게 민어회 먹으러 가자던 약속 아직 못 지켰네.”

, 그렇지 뭐. 그나저나 코로나 때문에 고생이 많다.”

K-드라마도 아닌데 K-드라마인 줄 안다. 최근에 OTT드라마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파친코>의 일부 배경(부산 영도)이 목포 원도심이란다. 목포근대역사관(1) 건물을 왼쪽에 끼고 노적봉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문득 스치는데, 검색해보니 그렇더라고. 다음 목포기행은 좀 더 풍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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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란』종이책은 절판 상태이네요. 전자책은 살아 있고.. 링크가 종이책으로 걸려서 적습니다.

2022-05-13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