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래를 꿈꾸는 이주민입니다 - 더 나은 ‘함께’로 나아가는 한국 사회 이주민 24명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순심(이나경) 그림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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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며칠간의 외국 여행에서도, 아니, 해외까지 갈 것도 없다. 내가 익숙한 곳이 아닌 대한민국 어딘가에 도착해서도 긴장되곤 한다. 언어까지 잘 통하지 않는 이곳에 와서 삶을 다시 꾸리는 이들의 마음이라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거기에 이 사회의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의 이야기가 편안하게 들려오지는 않는다. 이주민 인권 활동가인 이란주 저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인적 구성이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건 내가 사는 곳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그에 반해 이 상황과 이주민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그 인구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와닿을 수밖에 없다. 지방의 소도시인 이곳은 인접한 시골과 생활권이 같다. 병원, 공공기관 등 웬만큼 큰 곳을 찾으려면 모여든다. 내가 일하는 곳에서도 자주 보는 이주민을 생각하면, 이 책이 우리에게 더 깊게 다가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 것 같다.


24명의 이주민이 그들의 한국 생활과 상처를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한국인 노동자의 차별과 피해를 들어오면서 화를 내곤 했는데, 이들의 한국 생활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사회에 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오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제야 이들의 삶을 제대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 게 아쉬울 정도였다. 도서관에서 다문화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다문화, 이주민의 구성은 커졌다. 그만큼 우리 관심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인식은 같은 비례로 커지지 않은 듯해서 이들의 이야기가 아프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과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생각해야 할까. 인종, 국격, 피부색을 넘어, ‘이주라는 공통의 배경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가 생생하다.


한국 생활 3, 그사이 여러 지방을 떠돌며 살았어요. 남편은 일을 구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 일자리를 유지하는 것도 무척 힘들었어요. 일자리 알선 브로커에게 돈을 뜯긴 일도 여러 번이고, 못 받은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청에 가기도 했어요. 이집트인이라서, 또 불안정한 체류 자격 때문에 무시당하거나 부당한 처우를 받기도 했어요. 나도 일하고 싶지만 아직 기회가 없었어요. 한국 회사들은 히잡 쓴 여자를 고용하고 싶어 하지 않나 봐요. 덕분에 한국어 공부할 시간을 얻었으니 열심히 배워 일을 찾고 싶어요. (224페이지)


생계가 달린 일 앞에서 인정받을 시간을 기다리면서 또 다른 생활고에 시달린다. 난민 심사를 3년째 기다리는 이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인정받고 제대로 된 삶을 꾸리려면 결과를 기다리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을 주는 이도 없다. 얼마나 답답할까. 그 와중에 그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한다. 이주민이라고 모두가 똑같지는 않을 테다. 국적, 배경, 이주의 목적 등 다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사회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받는 시선은 비슷하다. 부당함 역시 이들에게 거침없이 다가간다. 새로운 사회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기도 전에 혐오를 먼저 느끼기도 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마도 우리가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선에 빠진 것은 그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고자 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 그런 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처럼,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라고 인정하지 않아서 생기는 갈등과 차별을 이제는 바로 봐야 할 때인 듯하다.


중학교에 다니는 조카들이, 거리에서 만나는 외국인들을 그냥 관광객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에 살면서 다문화를 이룬 가족, 생산 현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관광객과 다르게 보는 모습에 뭔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된 책이다. 나 역시 이주민을 보는 마음이 어땠는지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주변의 타인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나와 다른 삶, 그들의 목적에 맞는 생활을 꾸리고 있는 누군가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이들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된 기분이다.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그들 나라로 돌아갈 목적이더라도 이 사회에서 똑같이 노동하고 생활하는 한 사람이라는 것,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부당함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 특히 사업자가 외국인 인력 고용을 관리하는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 있을 테지만, 이 제도의 악용도 뚜렷했다. 이 제도 때문에 노동자는 마음대로 일을 그만둘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업주는 이 제도를 악용해 노동자에게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고. 노동자의 가족 역시 동반 입국이 안 된다. 사업주가 아무리 잘못해도 노동자가 그만둘 수 없다는 사실이 이주노동자에게 억울함을 주겠지.


듣다 보면 몰랐던 이주민의 삶에 아픔을 같이 느낀다. 차별을 알면서도 숨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함께하고 싶어서, 한국으로 오려고 했던 목적이 분명해서 말이다. 이주민의 이런 고충은 성인도 감당하기 힘들 텐데, 이주 청소년의 삶을 더 혼란스러웠다. 이주 배경 학생 수가 전체 학생의 3%를 넘는다고 하던데, 앞으로도 이 비율을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다문화, 이주민의 적응에 같이해야 한다는 것도 분명하다. 현실에 그에 발맞추지 못해서 지금도 이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시달리는 이주 배경 청소년들의 마음을 더 읽어야 할 때이다.


시골에서 농사하는 주변 사람들을 볼 때마다, 평소에도 일손에 가담하고 있는 이들의 많은 수가 이주민이다. 농사철이 되면 더한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때마다 시에서는 일반 실직자나 이주민 노동자를 농사하시는 분과 연결해주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만큼 농사에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커졌다. 가끔 몇 시간씩 나도 농사라고 불리는 일에 참여하곤 했지만, 정말 힘들다. 최저임금으로 고된 일을 해내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열악한 거주 환경까지 이들을 힘들게 한다. 때로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에, 부당함과 혐오의 시선까지 감당해야만 하는 이들의 삶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기에, 이 제도를 관리하는 기관이 있기에, 이주노동자의 여러 문제를 국가가 나서고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닐까. 거기에 우리를 비롯한 사회의 관심은 필수이며,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공존을 인정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진다.


세상에는 탕수육에 소스를 부어 먹는 사람도 있고 찍어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너는 왜 나처럼 안 먹느냐고 비난해봤자 소용없죠.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니니까요. 다문화든 아니든, 어느 나라 출신이든, 외모가 어떻든 나와 다르다고 해서 미워하고 싸워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어요. 우린 다 똑같이 사람인데요. (46페이지)


지금도 이주민을 향한 나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종종 듣는다. 이주민이 오면 한국이 망한다고, 우리 고유의 민족은 점점 사라지고, 이주민들이 대한민국을 차지할 거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가 이주민 없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유지할 수 있을까? 아이 돌보미부터 우리의 식탁을 책임지는 시골의 농사일, 산업 현장의 노동자까지, 우리 삶 곳곳에서 이들을 본다. 어느 한순간 이들이 이 공간에서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어떻게 될까. 단순히 이들이 사라지면 우리 사회가 멈추니까 붙잡고 있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제 한국 사회가 이주민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꾸리듯이, 이들도 이제 우리 곁에서 그들의 삶과 꿈을 위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동안에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이주민의 삶, 현실을 이렇게 듣고 보니 이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너그러워지고, 공감하게 된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한 개인의 삶으로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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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점점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를 찾는건 더 많아지고 일반화될텐데,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정책은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면이 많지 싶어요. 우리가 다른 나라에 가서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부당하다고 당연히 생각할텐데 말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이 오래가지는 못하리라고 믿습니다. 세계는 어쨌든 더 하나로 연결되고 있고, 그 거대한 흐름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을거 같아서요. 그에 따라 이주민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의식도 바꿔나가야 하기에 이런 책들의 기획이 더 많아져야지 싶네요.

호우 2022-12-0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지역에도 이주민이 정말 많아요. 조선족이 가장 많지만 동남아에서 온 결혼 이주민 여성들도 많아요. 외국인 때문에 한국인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외국인 노동자들을 많이 쓰는 곳은 한국인 노동자들을 구하기 어려운 곳일 경우가 많아서요. 외국인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서도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 현장들이 없어져야겠지요
 
가부장제의 경로를 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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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TV 프로그램은 동치미’, ‘결혼 지옥이다. 특히 동치미를 정말 싫어하는데, 그 이유가 참... 우리 일도 아니고 남의 일이라고, 왜 우리한테 일어나지 않은 일에 감정 이입하면서 흥분하느냐고, 패널들 나와서 자기 가족(특히 배우자) 욕하는 내용이 뭐가 좋다고 보고 있느냐며 핀잔을 주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대답한다. 내 주변 여자들의 결혼생활이 평균 20년에 가깝고, 직접 간접적으로 보고 들은 내용이 너무 똑같아서 오히려 동치미에 공감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라고. 조금만 더하면 우리가 부부싸움 할 것 같아서 참고 있던 중에, 남편이 대꾸할 말을 잃을 일이 생겨버렸다. 한참 시어머니 문제로 남편과 싸우고 있는데, 이럴 수가. 이게 바로 동치미일반판인 거다. 우리 일이 아니라고? 당신 엄마는 안 그런다고? 괜한 감정 이입에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이혼 브이로그라는 신박한(?) 단어에 꽂혀서 읽게 되었는데, 나만 몰랐나 보다. 이미 유튜브에서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영상이었다. 결혼한 지 거의 1년 만에 이혼하게 되었고, 본인의 이혼 일기 혹은 이혼 후의 일상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혹자는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보고 듣게 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이혼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궁극적으로 향해가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전직 며느리의 결혼 마침표가 왜 찍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면, 아마도 많은 이가 대한민국의 결혼제도, 오랫동안 뿌리내린 가부장제의 고통을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신중하게 생각하고, 가장 오래 참고 견딘 뒤 내린 결정이다. 나뿐 아니라 이혼을 겪은 다른 사람들도, 이혼을 고민하면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혼은 결코 절대 네버 쉬운 일이 아니다. (145페이지)


저마다의 이유로 이혼을 선택한 사람들, 내 주변에도 이혼한 사람들이 꽤 있다. 나 역시 살면서 이혼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꼭 이혼하지 않는 게 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이혼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결혼생활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이혼을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혼을 선택하는 건 간단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쉬운 선택도 아니며, 마냥 가벼운 결정도 아니라는 거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일일 게다. 저자의 1년 남짓한 결혼생활도 만만하지 않았다. 까고 까도 끝이 없을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지만, 저자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혼 후 삶이 어떻게 성공적일 수 있는지 보여줬다. 고민 없이 이혼 결정할 수 없었을 텐데, 그 복잡한 심경을 옆에서 조언해줄 사람도 없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누군가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떤 도움이 될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게 있는데, 우리 사회에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부장제와 한 사람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이혼이 아직도 누군가에게 시선 받을 일이라는 거다. 저자가 다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결혼생활 중 이해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는 바탕에는 시월드의 가부장제가 있었다. 습관처럼 그렇게 살아왔고 그게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 뭉쳐있었다. 이 가부장제의 영원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관습에 힘들어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한 사람의 오래된 사고를 바꾸기 힘들다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이 가부장제를 우리 생활에서 몰아내는 것도 어려운 일일 테지. 정말 인상적인 장면은, 저자가 회사 일을 하면서도 퇴근 후 남편의 가게 일을 돕는 건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똑같은 상황을 두고 엄마는 내 딸이 힘들고 피곤할까 봐 걱정하는데, 왜 시월드는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걸까? 바꿔서 생각하면, 당신 아들이 회사에서 퇴근하고 며느리가 운영하는 가게에 와서 일하는 걸 반길까? 설마. 내 아들 고생한다고 땅이 꺼져라 걱정할 것 같은데?


저자가 며느리와 아내를 그만두기까지의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겨우 1년 살아보고 때려치우는 거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의 말을 하는 사람도 있거든? 그나마 빨리 결정해서 다행이라고 말이다. 그런데도 개인의 행복을 위한 결정에 혀를 차며 한마디씩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아직 이 사회는 여성 한 사람의 행복이 아닌 결혼생활, 시월드라는 집단에서 배경이 되어야 하는 존재로 있어야 하는가보다 싶다. 저자의 유튜브 영상에 이혼이 뭐 자랑이냐는 식의 악플도 많이 달렸던 것 같다. 글쎄. 이혼이 뭐 자랑은 아닐지 몰라도 타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받을 일도 아니지 않나. 이혼한 사람들은 고개 숙이고 걸어야 하나? 이런 시선 볼 때마다 한 친구가 생각난다. 이십 대 초반에 결혼하고 이십 대 중반에 이혼해서 엄마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릴까 봐 그랬다고 하더라. (실제로 동네 사람들은 그 친구가 엄마 집으로 돌아온 걸 두고 근거 없는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심지어는 동네 마트도 안 갔는데, 정말 너무 급한 상황이 생기면 걸어서 5분 거리를 차를 타고 갔었다고. 이혼했다는 이유만으로 왜 이런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정말 이혼이 실패일까? 어쩌면 저자가 이혼을 실패로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혼 자체가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안다. 행복해지려고 결혼을 선택했는데, 그게 불행이라는 걸 알고 끝내기 위해 선택한 게 이혼이기도 하다. 결혼하기 전 혼자였던 삶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것뿐이다. 이 시기에 타인의 불편한 시선이나 참견이 오히려 실패한 삶으로 만들기 위해 접근하는 게 아닐까? 저자처럼 때로는 금융치료로 마음을 다스리거나, 언니의 권유로 가드닝을 하면서 일상을 회복해나갈 수도 있다. 말을 재미있게 해서 그런지, 이혼 후 홀로서기 과정이 굉장히 힘차다. 우울하게 주저앉아 있지 않다. 어느 시골 풍경과 맞닥뜨려 유쾌하고 새로운 일상을 펼쳐낸다. 맛있는 것을 먹고, 뭐든 하고 싶은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기 삶을 완성해나간다. 이혼으로 삶이 실패? 아니. 그냥 살아가던 길을 걷고 있을 뿐.


이유는 단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믿었던 게 그저 버티기 위해 붙잡고 있던 것이 속이 텅 빈 공갈빵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더는 붙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 이혼을 권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솔로를 예찬하는 것도 아니다. 예상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닥친 이혼이라면, 내가 수습하고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는 거다. 나를 존중하고 아끼면서, 내가 바라는 인생을 향해가는 법을 말한다. 결혼과 이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그 당사자의 주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조언과 긍정의 토닥임을 준다. 내 주변의 이혼 경험자들을 이해하고 함께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가부장제의경로를이탈하였습니다 #아넵 #위즈덤하우스 ##책추천 #에세이

#이혼 #홀로서기 #나의삶을사랑하는법 #이혼브이로그 #결혼해방일지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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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2-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아는 분이 이혼을 했는데 그 분 하는 말씀이 나 이혼하던 날 진짜 축하받고 싶어서 떡이라도 돌리고 싶더라라고....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 역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부닥치는 무숫한 선택 중의 하나일뿐인데 그것을 인생의 실패라고 생각하는게 말이 안되죠. 심지어 이혼의 경우 여성에게 가해지는 비난이 더 큰 것도 그렇고요. 요즘은 결혼이나 이혼에 대한 생각이 좀 급격하게 바뀌고 있는거 같아요. 나아지는거겠죠?

구단씨 2022-12-04 13:1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한 개인의 선택을 그 사람의 삶을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방송 볼 때마다 어느 정도의 변화를 느껴요. 예전에는 이혼한 방송인들이 TV에 다시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방송 활동 중에 이혼 소식이 전해져도 그들이 방송에 안 나오거나 하지는 않고요. 결혼도 마찬가지. 나이가 지긋해도 싱글로 살아가는 모습이 타인에게 간섭받을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는 걸 보면, 바람돌이님 말씀처럼 나아지고 있는 거겠죠? ^^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하는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 237페이지)


요즘에 일하는 곳에 찾아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신청하고 가는 어르신들 볼 때마다, 항상 우리 삶이 죽음과 공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나중에 아파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됐을 때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두는 것이다. 사는 동안 생각하는 죽음의 순간이리라. 이미 여러 번 병원을 경험하면서, 한번 병원에 입원할 때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비슷한 서류에 사인한 적이 몇 번 있다. 위급한 순간이 왔을 때 가슴을 뚫고 호스를 끼우고 생명을 연장하는 행위를 한 것인지 말 것인지 물으며 서류를 내미는 의료진에게 처음에는 오해했었다. 자기들 일 편하게 하려고 이런 거 미리 받아두는 건가 싶었는데, ·퇴원과 중환자실 드나드는 일이 반복될수록 이 서류에 관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미리 의논하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긴 시간 고민하지 않고 이 서류에 사인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가 이 죽음을 같은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어떤 죽음은, 죽은 이보다 곁에 남은 이들에게 더 죽음을 알게 하는 것 같다. 떠난 이는 모를 죽음 이후의 시간이 남겨진 자들의 몫인 것처럼, 그 시간에 견뎌야 할 감정도 남겨진 이의 것이다. 이 별에서의 이별은 장례지도사인 저자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순간의 기록이다. 그 기록의 시간 속에 죽은 이, 남겨진 이,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있다. 아마도 저자는 그들을 지켜보는 이가 되겠지. 죽은 이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누군가는 해주어야 했다. 그것은 온전히 남겨진 이의 몫이었고, 저자는 남겨진 이가 의뢰하는 현장에서 그 일을 해낸다. 내가 처음 장례지도사를 본 건 외숙모의 장례식장에서였고, 그들은 그저 돈을 받고 장례식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을 정리해주는 정도로 생각했다. 이 책으로 처음 알았던 건, 장례지도사가 죽은 이의 집에 가서 직접 시신 수습을 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죽은 이를 가장 아름답고 편하게 보내줄 수 있게 돕는 사람, 유족이 슬픔으로 해내지 못하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계속 듣다 보면 정말 궁금해진다. 장례지도사를 어떻게 시작하고,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망자와 유족을 대하는지 말이다. 읽고 있는 어떤 순간에는 내가 이 길로 한 번 들어서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일이 만만해 보여서가 아니라, 이 일로 내가 느끼고 배우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 의미 있게 배우고 싶기도 했다. 어쨌든 그건 더 고민해야 할 문제였고. 지금은 저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하기에도 벅차긴 하다. 인상적인 몇 가지가 있었는데, 시신의 화장이었다. 아버지의 입관식도 보지 못했던 터라, 정말 시신에 화장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자살한 사람의 목에 난 멍 자국을 없애려 조심스럽게 화장을 한다는 말에 놀라웠다. 훼손된 시신에 아름다움을 입혀주는 일. 수의를 입히고, 그들의 사연을 가슴에 묻고 조용히 보내주는 인사를 하는 저자의 마음이 읽히기도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의 기록으로 보고 있자니, 그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장면으로 뛰어든 것만 같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일을,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어머니는 봄날 꽃밭 위에 이불을 덮고 잠든 딸을 만나러 입관실에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딸의 손끝 하나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 얼굴도 삼베 천으로 전부 가려놓아 그저 관 속에 누운 사람이 딸일 거라고 믿는 수밖에. 어머니는 왜 딸의 몸을 전부 가려놨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숨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운 이 공간에는 어떻게든 견디어 보려는 사람들만 애처롭게 남아 있다. (이 별에서의 이별, 28~29페이지)


우연처럼 장례지도사의 길로 들어섰지만, 저자에게도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현실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고 이 일을 감당하는 게 돈 때문은 아니리라.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와 인구 고령화, 사망자가 늘어가는 것이 이 직업에 관심 두게 한 것도 있다. 많은 이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 직업에 뛰어들었다. 몇 달의 연수 기간을 채우고 현장에 투입되면서 실수도 있었을 테다. 제대로 배우려고 두 눈을 부릅뜨기도 했겠지. 저자는 그렇게 시간과 경험을 쌓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식을 먼저 보내고, 들여다보지 못한 사이에 부모가 죽고, 장례를 치러줄 이가 없이 외롭게 죽어가고, 신혼여행지에서 배우자의 익사를 겪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는데 죽음마저 쓸쓸해지는 사람들을 보면서, 죽음의 순간에 삶을 생각한다. 죽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삶이 더 빛난다는 말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읽은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에서는 자기 죽음의 결정을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싶은 마음이었는데, 이 별에서의 이별을 읽다 보니 죽음을 생각하면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이가 보냈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정말 빛나지 않았을까 싶다. 안락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우리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더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솔직히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이 책은 읽고서도 마음에 안 든다. 종교의 색이 너무 짙다. 제목만 보고 펼쳐 들었는데, 페이지를 계속 넘길수록 제목에 낚인 기분. 죽음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는 했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냥 이렇게 무료하고 기대할 것 없이 살다가, 죽음이 다가오면 삶도 끝나겠지 싶은 순간을 보내기도 했다. 뒤늦게 뭔가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늦어도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몇 번의 장례식을 다녀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닥친 위기를 지켜보면서 지금이라도 내가 해야 할 것을 생각했다. 늦었지만 하고 싶은 것, 늦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삶을 더 채우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특히 지금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아픈 사람들, 취약계층이 주로 찾아온다. 내가 의료진이 아니니까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더 죽음에 가까울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그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을까, 내가 힘들어도 친절하게 대해야지,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순간을 기억해야지 하는 마음. 죽음의 현장에서 내가 죽은 이가 될 수도 있고 남겨진 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어떤 자리에 있어도 덜 슬플 수 있게 살아가야지 하는 다짐.


죽음에 대한 공부는 마치 세상의 안과 밖 경계선을 더듬는 것 같습니다. 해안선처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선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선은 가르고 막는 역할이 아니라 만나고 접속케 하는 의미를 갖습니다(그렇다면 경계라고 해서는 안 되겠지요). 삶에게 죽음을, 죽음에게 삶을 소개하는 맞선 자리 같은 거죠.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둘이 함께 탄생하고 함께 소멸합니다.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134페이지)


누구나 죽는다. 삶을 맞이했으니 죽음으로 끝을 맺는 거겠지. 생전에 어떤 삶이었든, 죽음의 순간은 비슷하다. 죽은 몸을 맡기고 떠난다. 남겨진 이들은 이 이별의 과정을 묵묵히 진행한다. 그 과정에 함께하는 이가 장례지도사다. 임종과 사별의 현장, 눈물과 후회와 사랑을 느낀 순간을 그대로 기록한 이야기에서 그리움을 견디는 법을 배운다. 어떤 죽음이든, 내가 감당할 죽음 앞에서 어때야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죽은 이를 떠올리는 마음, 그 마음에 담아야 할 것들, 이별 후의 삶을 만들어가는 것까지, 이 의식 속에 있다. 죽음, 이별 후에 새로 시작되는 삶에 관해, 육신의 소멸이 아니라 기억에서 잊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에 관해 우리에게 묻는 이야기가 아닐까.









#이별에서의이별 #양수진 #싱긋 #삶과죽음 #이별 #에세이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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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죽음을어떻게다뤄야할지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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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12-10 13: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점점 싸늘해지는 주말이네요. 건강 조심하세요.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 - 지금의 의료 서비스가 계속되리라 믿는 당신에게
박한슬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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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의사 한 명이 하루에 보는 환자의 수가 48.3명이라고 한다.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6배에 가깝고, 이는 환자의 목숨값이 6배나 가벼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단다. 일반 개인병원부터 종합병원까지, 일 년에 몇 번씩이나 가는 병원에 관해 관심 없을 리가 없다. 당연히 저자가 하는 말이 새삼스럽지 않다는 것도 안다. 엄마 때문에 주기적으로 가는 개인병원이 3곳 정도 되는데, 그중 두 곳의 병원은 의사 한 명이 오전에만 거의 100명에 가까운 환자를 보는 곳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의아했지만, 두 눈으로 목격한 일이니 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나마 차분하게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진료하는 의사도 있다는 게 인간미 느껴지기도 하지만, 환자 한 명을 대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건 사실이다. 특히 종합병원 진료 때는 그 부족함을 더 느낀다. 진료실에 들어서서 1분도 안 되어 밖으로 나왔던 경험도 있던 터라, 지금 이게 치료가 되는 길인가 싶었던 적도 있다.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닐 테다. 병원에 드나드는 많은 이가 비슷하게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였을 거다. 그런데도 궁금하긴 하다. 어떻게 해야 지금의 이런 현상이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고령화 현상은 더 진하게 나타날 것이고, 더욱 급속해지는 고령화 속에 내가 들어가게 될 테니까. 급여에서 착실하게 거둬가는 건강보험료가 모든 것을 공평하게, 균형 있게 해결해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 이 정도의 의료 서비스라도 받는 게 다행인 걸까. 저자는 지금의 의료 평형이 젊은 인구에 기대어 있다고, 이 평형은 곧 깨질 것을 우려한다. 더군다나 한국의 고령화 속도가 다른 선진국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기는 곧 닥칠지도 모른다. 이 위험을 감지하고 답을 찾기 위해 현재 한국 의료 제도 및 정책을 살펴보는 것을 권한다.


3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이 책은, 종합병원의 상황, 지방 의료시스템과 약업계, 현재 우리가 직면한 의료 서비스를 이야기한다.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보게 되는 종합병원이 사실은 한국 의료 문제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었다. 인기과와 기피과, 태움 현상이 왜 생기는 것인지, 왜 진료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지 말한다. 우습게도 진료 시간은 짧아지는데 검사 시간은 맞추기 힘들고 길어진다. 이는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진료 예약, 진료 보고 검사 예약, 검사받고 다시 진료 예약 등 이상하게도 내 몸 상태를 한번 확인하는데 몇 번의 예약과 며칠의 시간이 걸린다. 많은 환자가 종합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은 마음도 이 현상에 한몫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해도 이런 문제가 단순히 환자가 몰리기 때문만은 아닐 거다.


거기에 당연하게 생략되는 복약지도나 가고자 하는 병원의 선택 문제까지, 이는 서울과 지방의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드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이상하게 나부터도 어떤 질병을 떠올리면 서울로,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엄마의 고질적인 무릎 통증 치료를 위해 항상 다니던 이곳의 개인병원이 아닌 서울의 대형병원 예약을 찾아보곤 했으니까 말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와 연결된다. 의료인에게는 지방 기피의 이유가 되고, 지방 의료에서는 더욱 의료 공백의 심각성을 보게 되는 것. 여러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우리는 더욱 안전 불감증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런 문제들 가운데에 우리 목숨이 있다.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 19 상황을 겪어오면서 의료계의 현실과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 의료계와 정부, 초고령 사회에 근접한 우리 현실에서 그려야 할 미래의 모습은 모두의 숙제가 된 셈이다.


저자가 하는 말에 가장 귀에 들어왔던 건, 현재 의료 정책이 젊은 인구에 기대어 있다는 거였다. 정말 걱정된다. 어떻게 겨우 유지되는 현재의 의료 정책이, 현재의 장년층이 노인이 되어 의료 서비스를 받아야 할 때쯤에는 인구구조 자체가 지금과 달라져 있을 거라는 경고였다. 알 것 같다. 그래서 더 염려되는 것도 있다. 경제활동 활발한 생산가능인구가 노령인구보다 적어질 때, 현재의 의료 서비스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늙는다. 나이 들어가면서 질병과 죽음의 문제가 가까워진다. 분명 의료 전문가는 존재하고 우리 목숨을 그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도 맞지만, 의료 전문가와 환자인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다른 영역이다. 그러니 의료 정책의 이해와 구조 변경은 필요한 일이라는 거다.


알지만 모르는 것, 어쩌면 알면서도 지금 불편하지 않으니까 모른 척하는 것.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그게 큰 착각이었다는 것도 이 책이 전하는 적나라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알게 되었다. 언젠가 우리는 늙을 테고, 지금도 매일 늙어 간다. 당장 내가 처한 문제가 아니라고 이 문제를 모른 척하면 안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이미 노인이 된 엄마가 병원에 자주 드나들면서 겪는 문제는, 내가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는 걸 알기에 말이다. 의료계와 정책이 같이 만들어가야 할 의료 서비스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어떤 문제가 내 앞에서 나를 힘들게 할 때 답을 찾는 건 늦다. 문제가 다가오기 전에, 다가올 문제를 위한 답을 준비하는 게 현명한 삶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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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12-08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구단씨 2022-12-10 13: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직면하는 마음 - 나날이 바뀌는 플랫폼에 몸을 던져 분투하는 어느 예능PD의 생존기
권성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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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에는 톡파원 25를 보면서 랜선 여행의 재미를 느끼고, 화요일에는 벌거벗은 세계사를 보면서 재미있게 하는 역사 공부의 시간에 빠진다. 목요일에는 한블리보면서 블랙박스 속 다양한 사고에 혹시 모를 일을 배운다. 금요일에는 나 혼자 산다보면서 혼자인 삶의 하루를 공감하듯 바라보고, 토요일에는 내 사랑 유느님의 놀면 뭐하니를 기다린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놀란다.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 이들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할까 싶어서 말이다. 어디서 이런 아이디어가 나오는지, 단순한 재미만이 아니라 인간미까지 철철 넘치게 하는 장면을 어떻게 뽑아내는지. 그러면서 생각했다. 예능이란 단순히 웃음을 던져주는 게 아니라, 웃음의 바탕이 되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거라고.


미안하지만, 나는 저자의 이름을 이 책으로 처음 들었다. 어디선가 봤던 톡이나 할까프로그램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이 낯선 이름의 저자가 하는 말이 듣고 싶었던 이유는 그가 말하는 피디의 이야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TV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 정도로 여겼던 것이, 내가 이 분야의 생리를 얼마나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겠더라. 그동안 저자가 겪은 방송계 이야기, 일의 시행착오, 방송하면서 얻은 팁, 거기에 방송국 생활을 직접 겪고 싶은 이들을 위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풀어낸다. 그는 드라마와 시사교양 그 어디쯤 예능이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예능의 위치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르게 보면 예능이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가 예능 피디로 살아오면서 느낀 많은 것이 이 범위 안에 고스란히 살아있는 듯하다.


한 프로그램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게 피디라고 한다. 그의 역할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탄탄한 구성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기도 하는 게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헛웃음이 났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완벽한 구성이 있던 게 아니었어? 한편으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애드립의 매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주먹구구식의 방송이 더 진솔하고 인간미 넘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디의 역량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지막까지 편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피디의 책임까지 확실히 감당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현장감 넘치는 에피소드 역시 예능의 한 장면이었다. 상암동 이야기를 시작으로, 프로그램 제작을 꿈꾸는 이들에게 좀 더 현실적인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물론 어디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는지, 낯선 것에서 시작해서 익숙해져도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되는 비결, 직업 특성상 자기관리는 기본으로 갖춰야 하는 것까지 현장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한다.


가끔은 요즘 흐름을 예능에서 발견할 때가 있다. 피디는 그 흐름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채고 프로그램에 반영하는 것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동시에 이 흐름이 너무 빠르고 다양해서 생기는 우려도 있지만, 언제나 그 안에서 존재할 진실에 바탕을 두고 만든다면 누구라도 빠져들 만한 프로그램이 되리라.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도 거짓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 이게 그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게 톡이나 할까였던가 보다. 말하기의 다른 방법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카톡을, 화려한 삶 이면의 속마음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좋은 인터뷰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것에 한 포인트 다르게 함으로써 새로움을 표현한다. 이게 예능이고, 시청자들의 시선을 계속 붙잡고 있는 매력이 된다.


사실, 예능 피디는 뭔가 달라도 아주 달라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마음으로 펼쳤는데, 그 다름을 눈을 씻고 찾아보려는 것보다 오히려 인간다움에 더 마음을 빼앗긴 것 같다. 프로그램 뒤의 사람들을 보는 느낌,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찾는 과정 등 일상의 모든 순간에 시선을 두고 사는 것만이 답인 듯하다. 그러다 보면 더 깊고, 더 멀리, 더 넓게 보는 눈으로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읽게 되겠지. 그가 이런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그가 보일 또 다른 프로그램 역시 기대된다. 시원하게 웃음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들이 와닿지 않을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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