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식 아파트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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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은 이 한 몸 편하게 쉴 곳을 넘어서서 자산의 의미가 크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다. 어쩌면 나 역시도 집의 의미를 그렇게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 자산이란 집은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집값이 어떻게 될 건가 하는 물음에,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이란, 내가 살 때가 가장 싼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나? 이상하게도 내가 사고 나면 더 하락하는 게 집값이 아니었나? 거의 1년 동안 이 도시에서 새롭게 분양하는 아파트를 다 구경했고, 그중에 내 집이 있을까 싶어 고민했지만 역시나 돈이 문제였다. 바로 두 달 전에도 분양한다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예약했지만, 가지 않았다. 괜히 보고 와서 더 우울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사실 이 아파트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바로 근처에 지어지는 거라서, 정말 생활권 이동 없이 좋을 것 같았는데. 암튼, 작년에 분양하던 아파트는 지금 거의 무피에 거래되고 있고, 두 달 전에 보려다가 안 간 곳은 미분양이다. 대출금이나 유이자, 이걸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은 이거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놈의 타이밍은 간절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쳐 집 한 채 구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잘도 비껴간다. 에이~


그런 집 때문에 최근에 마음이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내 주변의 한 사람은 이번에 새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아파트가 2채나 있기에 세 번째 아파트는 대출 규제가 있어서 신청이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사람은 남편의 사업 확장에 돈이 필요하다고, 여유로 가진 아파트를 1억이나 저렴하게 내놔도 안 팔려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고. 1억을 내려도 웬만한 사람이 선뜻 사기에는 비싼 가격에 속으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많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돈 필요하면 한 채씩 팔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 사실은 많이, 서글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서글픔이 다시 밀려왔다. 잘살아 보겠다고, 전세금 올려달라는 말에 더는 이사 다니기 싫어서 겨우 마련한 집이 계속 하락세라면, 그 마음은 어떨까.


은영에게 이사는 습관 같았다. 결혼생활 십 년 동안 여러 번의 이사였다. 2년에 한 번씩 올려달라는 전세금이 더는 힘들어졌을 때, 내 집 마련의 몸부림을 친다. 그녀의 남편 정수는 연극배우지만, 딱히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연극배우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극판을 떠났다. 아끼고 살피며 살아왔는데, 내 집 장만을 꿈도 못 꾸었다. 갭투자가 한창일 때 전세가는 치솟았고, 더는 버틸 수 없던 은영은 경기도 외곽에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매매하고 이사한다. 이제 더는 이사 가라고 내쫓을 사람도 없는, 내 집이구나. 이 집값도 곧 오르겠지. 이 안정감이 은영의 삶을 바꿔놓을 줄 알았다.


마음이 급하면 뭔가 더 알아볼 겨를도 없다. 은영이 이사한 곳은 소각잔재 매립지 공사 문제로 오랫동안 시청과 싸워온 곳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당연히 집값은 내려갈 거고, 그 환경에 우리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동네 사람들은 시위한다. 반대 서명을 받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며, 매일 시위하는 걸 보면서 은영은 정신이 나갔다. 이제야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고 싶었는데, 동네는 어수선하고 사람은 떠나고, 기피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사가 답이라며 다시 이사를 준비하지만, 그 사이 집값인 3천만 원이 넘게 떨어졌다. 그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중산층인가? 그 기준은 다 다를 테다. 그저 집이란, 아파트란 내가 머물 곳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첫 번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집이란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매번 집을 떠올리면 돈과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은영이 정수와 결혼해서 집을 매매하자고 했을 때 정수는 곧 집값이 내려갈 거라면서 반대했다. 몇 번의 매매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수의 반대로 은영은 전세를 옮겨 다녔다. 정수와 싸워서라도 그때 매매를 했어야 한다면서 후회했지만, 지금은 몇 번을 올려준 전세금으로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됐다. 이게 은영의 현실이자,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집을 구하면서 경험하는 슬픔이다.


누구나 타이밍을 잘 잡고, 물건을 잘 보는 눈이 있어서 집을 매매하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좋겠지. 그런 소득을 얻는 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일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도 아니기에 매번 결말은 달라진다. 누구는 이익 보면서 추가로 다른 집을 매매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심각한 손해에 빚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르기에, 집으로만 매겨지는 인생 시세 차익도 점점 커져만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 은영이 경험한 IMF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의 이십여 년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지 않다. 우리도 겪었다. 그때의 현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에 선하다. 뭔가 회복하려나 싶으면 다시 경제위기는 찾아오고, 조금 나아질까 싶어 힘을 내려고 하면 다시 반복이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은영이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 건지 모를 희망이었다. 집값도 괜찮고 생활권도 좋은 신림동 은영의 새로운 터전은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다시 은영은 집값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집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을까?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역사를 압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어느 시대를 봐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 역시 은영의 그 세월을 그대로 걸어왔고, 집의 의미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지금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윳돈은 없고, 혹시 지금이 자산으로 집을 구해놔야 할 타이밍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 집값은 또 어디서 마련하나 싶은 걱정만 가득하고. 그러다가 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 봐 또 마음을 비웠다가... 뭐가 이래. 마음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는데,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라도 누가 나가라고 안 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집이라고. 세상은 변했고 엄마의 말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사 걱정 없이 사는 것만도 어딘가 싶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이 자주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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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된 엄마는 지금도 TV를 보면서, 방송에서 휘리릭 지나가는 레시피를 적는다. 엄마의 노트는 벽에 걸린 큰 달력이다. 지나간 달의 달력 한 장을 쭉 찢어서 접어놓았다가, 갑자기 뭔가 적어야 할 일이 생기면 접어둔 달력을 얼른 꺼내어 적기 시작한다. 보관하기 편하게 노트에 적으라고 사다 드렸는데도, 엄마의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건 찢어놓은 달력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습관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무라지 않았다. 엄마가 편하다면 그게 맞는 거지. 어느 날 엄마의 레시피 노트(?)를 보다가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거품을 버끔이라고 적어놓은 문장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사투리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엄마가 여기저기 적어놓는 것들을 찾아 읽어봤는데, 어디서나 맞춤법은 틀려 있었다. 아들을 우선하며 살아왔던 시절에 엄마의 고등학교 학력은 대단한 것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공부에 열중하며 살지는 못했겠지. 한글 문해 교육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보면서 느낀다. 어느 시절의 우리 엄마들은, 자기 이름 석 자를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계속 생각했다. 나이가 되었으니 소개받은 남자와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 보니 생활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편 대신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온 세월이 엄마의 인생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짐을 싸서 나가는 걸 본 적도 있다. 동네 분이 엄마를 찾아서 데리고 오기도 몇 번. 어린 나이에 그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이대로 엄마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의 엄마를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엄마와 쌓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던 건 기억한다. 혼자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하듯 말했던 엄마의 바람은, 이제 혼자서 사는 게 두려운 것이 되어버렸으니, 두 집 살림하듯 사는 지금 나의 일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항상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렇게 빚을 갚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른 자식 많은데 왜 내가 다 감당해야 하나 싶어서 가끔 억울하기도 한데,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나란 여자의 삶이 또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종종 생각한다.


전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읽으면서 어느 정도 저자 어머니의 삶을 엿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으로 저자는 어머니와의 시간을 되짚으며, 어머니 인생 자체의 기록을 다시 쓴다. 단순히 어머니의 지난한 삶을 적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어머니이자, 며느리, 아내로 살아온 여성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일이었다. 글쎄,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저자 어머니의 마음은, 사실 내 딸이 하고 싶은 거 큰소리 내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여자여자를 조심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지나온 역사의 한 가운데 한국 여성이 있다는 걸 알겠는데, 이 역사가 왜 한국 여성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원망 비슷한 것도 생긴다. 엄마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다. 그나마 부유했던 외가의 사정 탓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하는데, 지난한 역사가 만들어놓은 현대의 삶에 왜 엄마들은 한 구성원으로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던 걸까.


경기가 어려워지고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노동의 현장에 나가지 못할 때, 부가 노동자 효과는 빛을 발한다. 단순히 우리 부모의 얘기가 아니다. 저자의 글 속에서도 나오지만, 가세가 기울자 저자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방 두 개까지 옥탑방에 살면서도 방 한 칸을 차지하는 시어머니 봉양에, 자꾸만 실패하는 남편의 시도에, 키워야 할 딸들에. 이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출 엄마는 없을 듯하다. 남성이 채웠던 노동력의 부재를 많은 여성이 채워가면서 이 경제를 이끌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데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수출의 급성장 뒤에는 많은 여성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곧잘 들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자발적이든 강요되었든 희생이 뒤따랐다. 부유하게만 살아왔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자, 저자의 어머니가 나서서 가정 경제를 꾸렸던 일, 대물림하듯 시집살이를 저자의 어머니에게 베풀(?)었던 저자의 할머니. 이상하게 여자를 중심으로 서사는 이루어졌는데, 저자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없었다.


많은 딸이 엄마의 삶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엄마는 엄마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아마도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 지점인 듯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아는 건 없는, 그 이름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라고. 배울 만큼 배웠고, 자기 발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매인 것처럼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저자 어머니의 고백과 나의 엄마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보호받고 의지하며 살아온 삶이,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은 한 사람을 살아가면서 바뀌는 거다. 이름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오면서, 누구도 그 존재에 색을 입혀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 다음으로 의지하고 싶었을 남편은 방관자에 가까웠고, 엄마가 해내야 할 다양한 역할은 계속되었을 테다.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했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읽으면서도 자꾸만 나의 엄마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의 그림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엄마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끌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엄마의 역할이고 우리에게 해주어야 할 부모의 도리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고, 혼자 해낼 수도 없는 일이었을 텐데, 도대체 우리가 한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고 이고 가라고 했던 걸까. 어디에도 엄마의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31페이지)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한 사람의 존재로 봐야 하는 일은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엄마의 존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엄마의 삶은 딸이라는 존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엄마와 연결된 나의 삶은 부정할 수 없고, 또 한없이 이해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엄마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싶은 마음은 계속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한 엄마를 이제야 써 내려간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녀 관계이면서,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딸이면서,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외치는 사이의 마음, 말이다. 서로의 마음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이, 닮았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역사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엄마와 연결되었지만,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거부하기만 했던 어느 시절의 모녀를 떠올린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또 한 명의 여성, 저자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저자의 엄마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 , 말동무, 시녀였다고 말하면서 시어머니의 세계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탁 막혔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런 시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한다고 말하려는 걸까 싶어서. 다행인 건 저자의 기억 속 할머니와 엄마의 기억 속 시어머니는 달랐다는 거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도 할머니는 엄마를 괴롭히는 못된 시어머니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함부로 말하고, 며느리의 물건을 막 집어가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굳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애써 적어보고 싶지도 않다. 모든 말머리에는 나쁜사람이라는 존재로 적어갈 것 같아서 말이지. 대신 저자의 기록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못했던 엄마의 엄마가 있다. 기록되지 못했지만 존재하는 사람, 그런데도 엄마의 삶 속에서 시어머니가 존재하므로 엄마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풀어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인정. 마음이 복잡해진다.


많은 독자가 비슷하겠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에도 엄마와 나의 관계는 각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피곤하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이제는 모른 척해야지 하면서도 다시 또 엄마의 옆에서 존재하는 내 마음이 참 여러 가지인데, 지금도 어떤 일 앞에서는 니가 나 때문에 고생이다라고 말하며 미안해하는 표정 한 번에 스르륵 무너진다. 아마도,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보다.










#나는결코어머니가없었다 #하재영 #에세이 #휴머니스트 ##책추천

#모녀관계 #엄마와딸 #여자의인생 #한국에서여성의삶 #엄마와딸의공동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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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숨어 있는 세계 - 언어치료사가 쓴 말하기와 마음 쌓기의 기록
김지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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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세상을 상상한 적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알게 되는 게 일상이면 좋겠다는, 아주 철없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때가 덕지덕지 묻은 어른이 된 후에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을 모를 때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 거라고. 적당한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기도 하고 서로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만들기도 할 텐데, 이상하게 그 말은 적당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너무 모자라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말이 되기도 하고, 너무 넘쳐서 듣기 싫은 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라는 게 참, 어렵다.


에 치료가 필요한 이들이 있다. 저자는 언어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기록하며, 그 시간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한다. 세상과 전혀 다른 법칙이 적용되는 세계도 있노라고. 장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언어에 장애가 있는 아이들, 자폐와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발달을 저자가 돕는다.


처음 언어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말더듬이나 언어장애로 소통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수업하고, 그 후기 같은 기록을 남긴 거다. 다 설명하자면 긴 듯하지만, 말더듬을 위한 처방(?) 같은 지침이 실제 이와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낱말의 첫소리를 늘려 말하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동화를 함께 들으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거다. 자폐 초등학생과는 놀이터에서 같이 그네를 타기도 하고, 게임을 함께 하기도 한다. 무슨 치료가 이럴까 싶은 마음은 넣어두시라. 다른 질병도 그렇겠지만, 저자의 말을 듣고 보면 특히 언어치료는 타인이 소통의 상대이니만큼 서로가 가까이 다가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겠다. 누군가에게 마음속 말을 하려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것을 여기에서도 새삼 배운다.


이야기의 중반부로 들어갈수록 이 언어 세계는 더 깊고 진득하다. 저자는 언어치료의 전문가이지만, 그에게도 항상 성공적인 경험만 있던 건 아니었다. 소통이 잘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진 일도 있고, 치료에 잘 접근하기 어려워 힘들었던 적도 있다. 의외의 순간에 아이가 마음을 열었던 것도 기쁨의 순간이었다. 이런 장면에서 알게 되는 건 역시 교감이었다. 요즘 관심 두던 상담에서도 비슷한 과정이 나온다. 상담사와 내담자의 시작은 라포를 형성하는 거라고. 저자도 이 라포 형성을 시작으로 치료에 접근하고, 그 시작은 치료로 마무리되기도 하고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다양한 사례가 저자의 경험에 쌓였겠지만, 역시 실패로 끝난 수업은 그의 가슴에도 오래 남을 일이 되었을 테다. 그럴 때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더 좋은 치료 수업을 위해 노력한다.


장애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까? 전혀 극복할 수 없는 문제인 걸까?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 우리의 부족한 문제 치료에 중요한 일인지 알 것 같다. 언어장애가 있어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고, 그 행복의 추구는 보통의 사람이 똑같이 향해가는 일이었다. 저자가 만난 아이 중에서도, 자격증을 따고 미래를 설계하면서 인생을 완성하는 이가 있다는 걸 보면, 장애가 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증명한 셈이다. 우리 사는 사회에서 정상의 기준은 필요 없음을 이렇게 확인한다. 그저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중요한 것이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배우고 알아가면서 채워가면 되는 일이었다.


우리 언어를 이루는 명사, 동사, 형용사가 이 아이들이 사는 세계에 가득했다. 저자는 아이들과 수업하면서 그 세계를 찾아냈고 뛰어놀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이해하는 방식을 배운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역시 이 세계와 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언어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누구도 다를 바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어치료사로 살아가면서, 저자에게도 시행착오의 시간이 있었을 테다. 그런데도 언어가 가득한 그 세계에서 치료와 소통의 노력을 멈출 수 없는 건,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무엇보다 저자의 문장 곳곳에 묻어나고 있던 건 인내심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져 자기도 모르게 아이를 다그치고 자책하던 일은, 나와 조금 다른 상황에서 서로에게 다가가는 일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달한다. 아이에게 언어장애가 있거나 언어발달이 조금 늦는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들어도 좋고 이 아이에게 필요한 언어놀이나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말이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소통이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언어에 장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그대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게 어려운 순간은 종종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저자가 여러 아이를 만난 후 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놓은, 각 에피소드의 끝부분에 자리한 마음을 만나봐도 좋겠다. ‘완벽한 언어를 구사하는 것보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꼭 말이 아니어도 대화할 수 있는 손짓 몸짓도 괜찮다라는 것. 많은 사람 낯선 이들과도 말과 글을 나누는 이유는, 우리 사는 이 세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으니까. 나 역시 언어장애나 언어치료의 분야에 익숙한 사람이 아닌데도,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배우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으로 소통하는 일은 우리 사회의 기본인 자세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저자가 전달하는 이 감동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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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고 싶은데,
다른 거 생각하고 걱정하느라 책을 거의 못 읽었다.
당분간 계속 이럴 거 같은데,
그 와중에 신간 기웃거리면서 또 책을 사긴 했는데,
택배 상자 안에 고이 모셔두었다.
꺼내면 읽고 싶을까 싶어서, 어차피 못 읽을 거 괜히 짜증날 것 같아서.

근데 정말이지,
인터넷서점 배송비 오르니까 한 권씩 사는 기쁨이 사라졌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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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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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보니, 저자의 책이 많이 출간되었더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저자의 책을 읽은 지 한참 되기도 해서 궁금했던 참에 이 책을 만났다. 두께도 상당했지만, 내가 읽었던 전작의 느낌을 떠올려 그의 차분한 말투 속의 경건함(?) 같은 분위기 다시 만나고 싶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말투는 여전했고, 그의 철학은 감히 내가 평가하기 어렵지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말을 더하고 싶을까 하는 궁금증이 잠깐 생기기도 했지만, 어렴풋한 생각으로는 어쩌면 이 책의 그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에게 암이라는 몹쓸 놈이 찾아오기 7년 전의 단상들이 모였다. 그것도 양이 상당하다. 1348편의 글이라고 한다. 각 단락에 숫자가 쓰여 있기는 하지만, 장마다 다시 시작하는 그 숫자를 다 세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많은 기록으로 남겨진 줄 몰랐다. 짧은 글은 한 줄 한 문장 정도, 긴 글은 한 페이지를 넘기기도 하는 터라 한 단락마다 양이 일정하지는 않다. 그래서일까, 그가 그때그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놨다는 게 실감이 난다. 어느 날은 메모지에, 어떤 날은 책상 위에 펼쳐놓은 노트에 써 내려간 말들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언제 어디에다 썼는지 뭐가 중요할까. 누군가의 생각이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지고, 후에 누군가 이렇게 읽고 있다는 게 중요하겠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잠깐 생각하고, 혹시 그 순간의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적었을까 또 생각하는, 생각이 이어지는 거 자체가 이 책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 하나를 맞으려면 생각 하나를 쫓아내야 한다. 이럴 때는 뇌가 아프고 슬프다. 발자크는 문장들이 쇄도하고 범람해서 잠을 못 잔다고, 상드에게 썼다. 그 또한 얼마나 머리가 슬프고 아팠을까. (572페이지)


아마도 나만 느낀 건 아닐 듯하다. 이상하게도 그의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그가 암 선고를 받을 것을 미리 아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한, 이 묘한 기분(우리는 그걸 우울증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같은 거 말이다. 그의 죽음은 정신적인 문제와 거리가 있었지만, 어쨌든 그의 글은 차분하면서도 무게 있게 다가왔다. 존재를 고민하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철학자의 사고에 닿으려고 애쓰는 듯, 그렇게 어느 햇살 좋은 날 생각에 잠긴 그를 상상하면서 문장을 읽게 된다.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 많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문장은 가득 차 있었다. 우리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외로움, 인간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고, 한 사람이면서 다양한 존재(남자, 철학자, 가장 등)로 살아가는 역할에 대한 고뇌, 그가 오랜 시간 마주해온 철학과 문장에 대한 사유 등, 마치 온 세상을 망라한 또 하나의 철학서를 보는 듯했다. 아마도 그의 사유는, 책 소개에서 말했던 것처럼 철학과 문학의 힘이 바탕이 되는 건 아닐까 싶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줄곧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현자의 말에서 답을 찾기도 하고, 어느 작가의 문장에서 확인하게 되니까. 그가 말하는 것과 그가 살면서 담아온 것들을 소개하듯 전달하는 문장들에 시선이 머무는 건 그런 이유겠지. 조용한 일상이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묵직하게 다가오는 까닭 말이다.


눈도 침침해진다. 손가락 통증도 심해진다. 모든 것들이 쓰는 걸 은밀하게 방해한다. 아니면 격렬한 충동질인가. (382페이지)


그의 사유를 따라가면서, 누군가의 하루를 읽기도 하고 어떤 책의 문장에 눈길이 머물렀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오늘 무얼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어떤 약속을 지키며 살았는지, 잠이 드는 순간까지 그의 시간을 엿보면서 동시에 그의 삶을 보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의 건강에 문제가 시작되고 있었음을 느낀다. 혹시 그가 조금이라도 더 일찍 몸의 이상을 알아챘더라면, 지금쯤 마지막 책이 아니라 다음 책을 기다리는 독자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여전히 사랑과 믿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냥 아쉽기만 하다.


한없이 인간적으로 보이면서도 때로는 무너져 내리는 인간을 구원할 철학자의 면모도 갖춘 그였다. 때로 고독하고 우울할지라도 결국 용기 내어 살아가는 게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음에, 그의 문장은 더 친근하고 마음 깊숙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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