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타 드립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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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1(상큼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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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아리차 #4(고소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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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 식당 4 : 구미호 카페 특서 청소년문학 30
박현숙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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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한 약속이 중요하다(약속 식당, 229)’라고 말하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야 할 것은 지나가 버린 시간에 머문 약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머무는 순간의 약속이 더 중요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것을. 굳이 이런 말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알면서도 자주 잊고 살기 때문이다. 아는데 잘 안 되는 것. 알면서도 망설이다가 놓치고 마는 의미들 말이다. ‘구미호 식당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구미호 카페에서 그 의미를 한 번 더 만난다. 우리가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묻는 이야기에 빠져들어 간다.


우연히 설문 조사에 응했던 성우는 받아든 전단에 홀린 듯 구미호 카페를 찾아간다. 달이 뜨는 날만 문을 열면서, 죽은 사람의 물건을 파는 곳이다. 카페에서 파는 목록치고는 좀 이상하지? 어쨌든, 뭐든 가게 주인 마음이니까 그렇다 치고. 더 이상한 건, 카페에 드나드는 사람들이었다. 성우는 미심쩍은 이 카페를 며칠 지켜보던 중, 학교에서 짝사랑하던 지레를 본다. 성우만큼 지레도 이 카페의 물건이 필요했던 걸까.


달이 뜨는 날만 문을 여는 이곳, 구미호 카페에서는 죽은 자의 물건을 판다. 무슨 카페가 이런가 싶지만, 뭔가 또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이들의 행태를 지켜보게 된다. 카페의 주인 심호는 불사조를 꿈꾼다. 카페의 직원 꼬리는 정해진 규칙대로 손님을 대한다. 카페에 진열된 물건은 모두 죽은 자의 물건이며, 그 물건을 필요한 사람에게 되판다. 가격은 얼마냐고? 그건 카페 주인에게 물어보시고. 성우나 지레가 이 카페에서 무엇을 샀을까 하는 게 더 궁금했다. 며칠 카페를 살펴보던 성우는 누군가의 다이어리를, 지레는 빨간 털장갑을 산다. 물론 지레와 성우는 서로를 알아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카페의 규칙 또 하나, 카페에서 일어난 일은 밖에서 말하지 않는다. 카페에서 서로를 봤다고 해도 카페에서의 일을 묻지 않는다.


이 카페의 물건에 무슨 힘이 있는 걸까? 각자 산 물건에는 저마다 원하는 것을 이뤄주는 마법이 있다고 한다. 그 소원을 어떻게 이뤄주는 건지 모르겠지만, 물건마다 정해진 가격은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 궁금한 건 성우가 산 다이어리와 지레가 산 빨간 장갑에는 무슨 힘이 있고, 카페에서는 어떻게 알고 이 아이들에게 딱 맞는(?) 물건을 팔았느냐 하는 거다. 여기에서 카페의 규칙 하나 추가. 카페에서 물건을 사면, 정해진 시간 동안 간절히 바라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어때? 이 정도면 구미호 카페에 한번은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은데. ^^


아이들이 사간 물건과 아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이뤄질지 기대되면서 읽게 된다. 이 시리즈가 언제나 그렇듯 죽은 이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죽은 자의 시간을 현재를 사는 자가 이어간다. 죽은 자의 물건이 전달하는 의미를 현재 이 물건을 손에 든 자가 해결하듯, 죽은 자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처음 시작은 호기심에, 그 물건을 손에 들고 자기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의심 반 믿음 반으로 바라는 것을 말해버리고 기다린다. 이뤄져라, 이뤄져라. 그리고 이루어진다. 성우는 사촌 재후가 지레에게 반지를 준 것을 보고 돈벼락을 맞길 바라고, 지레는 빨간 장갑에 얽힌 사연을 다시 떠올려주길 바란다. 구미호 카페를 찾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사고 바라던 게 이뤄진다. 하지만 말이다. 그 소원은 끝은 어디일까 궁금하지 않나? 그렇게 이뤄진 게 끝이 되는 게 맞나? 그 이후로 더 바라는 게 없는 삶을 만들 수 있을까.


구미호 카페를 방문해 내가 원하는 시간을 살 수 있다는 달콤한 제안에 귀가 솔깃해진다. 살면서 마주치는 여러 상황에서 정말 부러웠던 게 있지 않았던가. 공부 잘하는 아이가, 돈이 많은 사람이, 사랑을 이룬 커플이, 예쁘게 생긴 외모가, 자기 미래를 찾은 사람 등 부러운 것투성이였다. 나는 안 되는 게 그들은 어떻게 다 가능했던 것일까 부러워서 미칠 것 같은 때. 그럴 때 구미호 카페의 제안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 그런데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어김없이 우리에게 찾아드는 깨달음이 있다. 바라던 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게 분명히 있다. 시간, , 마음 같은, 우리가 반드시 내야 할 금액을 잊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그런 부러움에도 결코 내 것이 될 수 없는 게 있다는 사실과 그렇게 구매한 것이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거다.


한없이 이뤄질 줄 알았다. 구미호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원하던 것을 얻고 만족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은, 재후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빗나갔다. ‘오호라, 이 녀석도 구미호 카페를 찾아갔던 거군.’ 섣부른 나의 판단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고 있던 거다. 며칠 동안 비를 쫄딱 맞고 들어온 재후의 모습은, 그 아이가 간절히 바라는 게 잘 이뤄지지 증거로 여겼다. 구미호 카페의 물건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라고, 그래서 재후가 실망하고 불안한 마음에 방황하는 거로 생각했던 거다. 아니었다. 그건 재후의 간절함을 이루기 위한 다른 방향의 과정이었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많은 말은 하지 않겠다. 다만, 이 작품 속 아이들이, 구미호 카페를 찾은 이들이 발견하게 되는 건, 소원을 이루는 그 자체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성장하고 배워가는지, 세상을 어떻게 마주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묻고 답하는 이야기였다.


남의 시간은 결국 내 것이 될 수 없었고, 내 삶을 책임지고 나아가야 하는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 또한 내가 이뤄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이뤄가는 인생의 과정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 중심에는 항상 내가 있어야 했다. 누군가 가진 것을 부러워하거나 탐내는 게 아니라, 내게 주어진 이 순간의 최선이야말로 내가 만들어가는 내 삶이다. 구미호 카페에서 팔았던 것은, 부러움이 넘치는 남의 시간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선으로 채워가는, 자기 삶이었던 거다. 잠깐이나마 구미호 카페 앞에 서서 무슨 물건을 사고 무슨 소원을 빌어볼까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진다. 이 나이를 먹고도, 아직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


#구미호카페 #구미호식당 #박현숙 #특별한서재 #소설 #한국소설 #청소년문학

#시간 #내인생 #자기삶 #내삶을채워가는건나자신 #간절함 #원하는것을이뤄가는법

##책추천 #청소년소설 #성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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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다시 시작하려는 이에게, 끝내 내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들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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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세상을 구원해줄 거냐고 물어본다면, 분명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도 비슷하다. 뭐라고 말해야 누구나 이해하는 문학의 정의가 될지 모르겠다. 대신 문학이 힘이 세다는 말은 긍정의 끄덕임을 날릴 수 있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내가 작품 속 문장 하나를 오랫동안 바라봤던 것처럼 말이다.


문학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내가 스스로를 학대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 누구도 믿지 못할 때 문학은 한없이 다정한 눈길로 속삭였다. 너의 불안과 너의 절망과 너의 증오조차 사랑한다고. 우리의 그 어처구니없음과 울퉁불퉁함과 대책 없음이 세상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임을 문학은 내게 가르쳐주었다. (76페이지)


자기가 읽은 책 속의 시간과 장면, 단상을 끄집어내어 펴낸 책을 마주한 게 이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정여울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한번은 펼쳐보고 싶은 이상한(?) 이 마음은 뭐란 말인가. 그동안 저자가 출간해왔던 많은 책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저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시간을 불러오고, 나 같은 독자가 다시 마주함으로써 그 여운이 마치 다단계 회원 확보하듯이 뻗어 나간다. 특히 저자의 이 말이 이 책의 궁금증을 더해줬다. ‘끝을 모르던 자존감의 바닥에서 구해준 게 바로 문학이었다고. 사실 지금 내가 그렇다. 뭔가 하고 싶은데 이게 맞는 건가 싶고, 잘 안 되니까 이렇게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의심스럽고. 강사가 뭐라고 말을 하고, 다른 수강생들 다 알아듣고 끄덕이는 것 같은데. 나만 이해 못 하는 거야? 중요하다고 말하는 문장들이 왜 한쪽 귀로 들어와 다른 쪽 귀로 스치듯 지나가 버리는 건지. , 맞다. 나는 외우는 거 못해서 학교 다닐 때 암기 과목 거의 빵점 수준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다 외는 것뿐이니, 이게 될 리가 있나. 내가 그렇지 뭐. 그렇다고 지금 포기하자니 자존감을 넘어서서 자존심까지 나를 떠나버릴 것 같고.


그 회복의 순간을 저자는 문학작품에서 찾았다. 찾아내려고 애쓴 게 아니라, 계획된 우연처럼 그 순간을 만난 거겠지. 문학으로 위로받은 저자는 문학의 힘을 믿는다. 그 힘의 중심에 우리가 이뤄가는 사회, 관계, 마음의 사이에 존재하는 법이 있었다. 누군가 소설을 왜 읽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사람은, 허구의 세상에서 허우적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환상 속에서 내내 살게 되는 이야기가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하던 이였다. 그때부터 생각했다. 내가 소설을 왜 읽는지를. 지금처럼 일상의 답답함과 빠듯함에서 잠깐 떨어져 있고 싶기도 할 때, 전혀 답을 모르겠는데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막막할 때. 대충 이 정도인데, 어쨌든 두 가지는 분명하다. 이야기 자체로의 즐거움을 누리거나, 타인의 삶을 엿보면서 내가 사는 세상 속 이야기를 듣는 거였다. 저자가 말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는 것들로 세상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테다. 내가 그 세상에 접촉하고 스며들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은 언제나 충족되지 못했다. 내 안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알면서도 모르고, 몰라서도 모를 그 마음을 문학작품 속 한 문장에서 알게 될 때가 있는 걸 보면, 역시 문학의 힘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힘들 때마다 데미안의 문장을 떠올린다고 한다. ‘우리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 해내는 누군가가 살고 있어.’(14페이지) 불러오면 좋을 듯하다. 그래서 내가 뭘 모르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이 존재를 불러와 그렇게 다 아는 것을 좀 말해달라고 하고 싶다.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내 안에 있어서 부르면 소리를 낼 것 같은 희한한 위로가 이렇게 들려온다. 나는 그런 사람이야. 내 안에 이런 존재가 있어서 나를 지켜주고 내가 잘할 수 있게 응원해주고 있어. 그러니까, 잘 될 거야.


문학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독자의 영혼에 상처를 준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서만 배워지는 것들이 있다. 상처의 틈새로 온 세상의 햇살이 온통 나에게로 쏟아지는 듯한 벅찬 감정을 통해 내가 아는 나나조차 아직 꺼내보지 않은 내 잠재력의 경계가 기쁘게 무너진다. (199페이지)


저자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작품으로, 우리 삶에 끼어드는 타인과의 비교하는 일상을 말할 때는 많이 놀랐다. 갖고 싶은 거, 원하는 게 많아지는 세상에서 자꾸만 타인이 가진 것들이 눈에 들어오곤 한다. 부러움을 바탕으로 한 자기 비하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나는 왜 안 될까, 나는 왜 가질 수 없을까, 나는 안 되는가 봐. 그럴 때마다 소유하지 않아도 되는 생활을 넌지시 비추는 문장들에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많은 게 없어도, 타인이 가진 걸 내가 갖지 않아도 느긋하고 여유 있는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왜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은 조급해지는지, 왜 안 되는 걸 자꾸만 마음에 두고 있는지, 왜 타인의 삶을 자꾸 내 삶에 복사해서 붙이려고 하는지 묻게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세상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지만, 타인과의 비교가 우리 삶에 끼어들어 나를 갉아먹게 하는 건 문학의 역할이 아닌 듯하다. 저자가 느끼고 싶은 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연대하고 공감하는 마음일 테다. 소설 속 주인공이 겪는 고통을 공감하고, 고난을 이겨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그 순간 말이다. 좌절하고 무너질 것 같다가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는 순간을 포착하는 게 독자의 시선이고, 작품이 말하려는 궁극적인 지점이 아닐까. 그런 과정을 통과하고, 이제 좀 다르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까지 장착하게 하는 것. 문학의 힘은 이렇게 확인하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읽다가 계속 리스트가 추가됐다. 몰랐던 책, 알았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장면들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 정말 놀랐던 장면 하나 생각난다. 프랑켄슈타인의 무서운 외모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정작 그가 했던 간절한 말 한마디는 생소했다. 자기랑 똑같은 존재를 하나 더 만들어달라고, 그럼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그는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안의 외로움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던 거다. 자기가 사라지면 외로움도 사라지겠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그의 외로움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의 말처럼, 자기랑 똑같은 존재가 있다면 그의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덜어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 그 간절함이 문장으로, 문장으로 그린 내 머릿속 장면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이 나를 놀라게 했지만 나 또한 삶을 놀라게 해줄 거야.” (46페이지)


작품들 속에서 시간을 찾는다. 일상의, 삶의 기회를 만든다. 어느 순간 무너진 마음을 일으키고 싶은, 나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때로는 내가 막연하게 바랐던 어른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을 다 쏟아내듯 담아낸 작품들 속에서, 꼭꼭 숨겨놓았던 마음을 꺼낸다. 설명하기 어려운 속내를 다 긁어낸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순간인 거다. 문학으로 삶을 확장해나가는 방법을 이렇게 배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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