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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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네 눈 정말 예쁘다.”

갈비뼈 안에서 심장이 세차게 뛰고, 내 손은 마치 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울퉁불퉁한 그의 손등을 어루만진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지금 나는 코리 필즈를 만지고 있다. 그 코리 필즈를……. (38페이지)


솔깃하지 않은가? 내가 바라보던 우상이 나에게 칭찬을 해준다. 눈이 예쁘다, 목소리가 좋다, 노래를 잘한다. 그냥 칭찬이 아니다. 노래하고 싶어 오디션에 참가한 현장에서, 우연처럼 만난 우상이 나의 노래를 칭찬하고, 내가 가수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이게 꿈인가 싶어서 뛰는 가슴을 단속하지만, 잘 안 된다. 그는 코리 필즈니까. 지금 최고의 가수이자 모두가 만나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고, 이 분야에서 그의 손길을 받는다면 영원히 노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열일곱 소녀 인챈티드는 노래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그녀의 현실은 이 꿈이 쉽게 이뤄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백인 다수의 고등학교에 다니지만, 그녀의 가족은 흑인이고, 복장 규정에 머리카락을 밀어버린다. 그녀의 유일한 친구 갭은 라틴계이기에, 사람들은 둘을 보고 수군거린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게 되는 일상에서 그녀의 유일한 희망은 노래하는 것이다. 그런 바람이 쉽게 이뤄지는 세상이었다면, 그녀에게 이런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다. 잘못한 것이 없어도 단속 대상에 올려지는 게 비일비재한 흑인이니까. 스스로 잘못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일상이 흘러가는 곳이었다.


소설은 노래하고 싶은 소녀 인챈티드가 우상 코리 필즈를 만나면서 이 세상의 어떤 부조리함을 경험하게 되는지,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흑인 소녀를 어떻게 성범죄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지 보여준다. 성인 남자가 자기가 가진 권력으로 어린 소녀를 가스라이팅한다. 심리적으로 조종하면서 성을 착취한다. 누군가의 간절함을 인질로 삼아 온갖 협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취한다. 그렇다면 벌을 받아야지. 그가 하는 짓은 명백한 범죄이고, 세상은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런 정의대로 세상이 흘러갔다면, 인챈티드와 다른 소녀들이 겪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코리 필즈의 범죄가 제대로 심판받았다면, 또 다른 인챈티드들이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어떻게 녹아들 수 있어요?”

좋아. 스튜디오의 규칙은 다음과 같아. 첫째,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무도 몰라야 해. 이곳은 마법이 펼쳐지는 곳이고, 우리의 비밀을 누설해버려선 안 돼. 알겠어? 그러니 그 누구한테도, 네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런 생각조차 유치해 보이는 데다 그는 이미 나를 이렇게나 신뢰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100페이지)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어린 소녀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아무런 벌도 받지 않은 사건은, 실제 일본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와 닮았다. 오랜 세월 남자 아이돌을 키운 제이 팝의 제왕이 연예계 거물이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적 학대를 일삼으며 했던 말은, 아이돌로 키워주겠다는 유혹이었다. 피해자들의 걱정은 하나였을 거다.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의 입김 하나로 연예계가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을 수도 없이 봤을 테니,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겠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왜 그가 그런 힘을 갖게 되었는지, 그 힘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면서 모른 척한 세상의 잘못이다.


인챈티드가 코리 필즈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가 음반을 내주겠다면서 인챈티드의 일상을 소유하게 되는 과정이 눈에 선하다.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하게 만드는 분위기,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은 경찰,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한 사람을 판단하고 우러러보는 시선들이 많은 코리 필즈를 만드는 거였다. 거기에 더해진 인종 차별은 이 사건이 이렇게 커지게 한 큰 이유가 된다. 경찰은, 세상은 흑인 여자가 한 말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책 속의 문장처럼, 인챈티드가 백인이었다면 코리 필즈가 진즉에 경찰에게 잡혀갔을 텐데. 이 문장만 봐도, 세상에서 흑인으로 차별받는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느껴진다. 여성이어서, 흑인이어서 차별받아야 할 이유인가? 범죄의 피해자이면서 침묵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느냔 말이지.


자기가 가진 돈과 권력으로 많은 미성년 소녀에게 성폭력을 일삼고, 그 아이들을 가족과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면서 자기만 의지하게 만들고, 세상의 시선이 어떤지 알기에 자꾸만 비밀을 만들게 교묘하게 착취하고 고립시킨다. 친밀함으로 다가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 후에야 숨겨진 발톱을 드러내는 이 나쁜 인간(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지만)에게 죄를 물을 수 없게 하는 세상의 이상한 방식이 답답하다. 이 또한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낸 모양새일 테니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말 그대로 괴물의 탄생은 서서히 스며들 듯 계속되어왔고, 그 괴물을 만든 게 우리 사는 사회였다는 게 충격적이다. 인챈티드가 당한 피해와 코리 필즈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도와주고 있어도 그녀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의 상처를 여러 곳에서 묵인했던 게 한순간 없던 일이 되지도 않는다. 코리 필즈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는 코리 필즈의 죽음에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다. 사람들도 법도 해결해줄 수 없던 게, 가해자가 사라지니 해결된다. 웃음만 난다. 어느 순간, 우리가 차별이 당연시되는 사회에 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피해자의 행실을 탓하며 비판하는 게 익숙해지기 전에, 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사회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가독성이 좋아서 빨려 들어가듯 읽을 수 있었지만, 이렇게 무서운 존재가 인간이라고 느끼는 순간 소름이 돋는다. 이 당연한 걸 간절히 바라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여전히 무섭다. 또 다른 인챈티드가 나오지 않으려면 우리의 시선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경고하는 메시지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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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밍 #가스라이팅 #차별 #인종차별 #성장이야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_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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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테크로 생각보다 많이 모았습니다 - 경제지 홍 기자가 알려주는 똑똑한 절약의 기술
홍승완 지음 / 가디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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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할부로 가방을 질렀다. 이달의 나와, 다음 달의 나와, 다다음 달의 내가 힘을 합쳐 갚으면 무엇도 두렵지가 않다. (68페이지)

- 우리 엄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지. 할부 좋아하다가 망한다고. 하루 커피 한 잔 값 아끼면 살 수 있다는 쇼핑호스트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


나는 투자에 재능이 없다. 여동생이랑 조카가 주식을 알려주긴 했는데, 계좌 개설까지 하고도 막상 주식에 발을 들여놓자니 두려웠다. 게다가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어리바리 몇 년이 흘렀는데도 알 수 없어서 아예 앱을 지워버렸다. 누구는 펀드도 가입해서 관리한다고 하고, 한참 코인이 대세일 때 많이 올라서 좋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변에서 다들 그렇게 투자를 하는데, 나에게 투자는 오르기에는 너무 높은 산이었던 거다. 투자는 포기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누가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말해도 잠깐 부러워하기만 했다. 내 능력 밖의 일에 미련을 두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이번 생에 부자가 되기는 틀렸나 봐. 역시 다시 태어나는 것 말고는 부자가 되는 방법이 없는 걸까? ㅠㅠ 참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금의 치맥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 야심한 밤에 치킨을 주문하고 말았으니. 이상하게도 그렇게 주문한 치킨을 맛있게 다 먹은 적도 없다. 항상 갈등하다가, 어김없이 주문하고, 땅을 치며 후회하고.


포드 자동차 설립자 헨리 포드는 부자 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자가 되는 방법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부모로부터 상속을 받아라. 둘째는 부자와 결혼해라. 셋째는 버는 돈보다 적게 쓰고 저축하라.” 첫째와 둘째는 이번 생에 틀렸다. 난 앞으로 셋째에 집중하기로 했다. (47페이지


경제신문사의 기자로 일하는 저자는 일찌감치 현실을 깨달았다. 어디 깨닫기만 했을까, 몸소 체험하며 아끼는 습관을 익혔다. 이 책 읽다 보면 어려울 게 없는 방법이었다. 근데, 왜 안 됐던 걸까? 소비습관을 바꾸면 되는데 그게 왜 쉽지 않은 거냔 말이다! (생각해보니, 오늘 낮에 덥다고 망고 스무디도 하나 마셨어. ㅠㅠ) 저자가 경험한 시행착오가 지금의 저자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에 보여주기 위한 소비를 일삼았고, 저축 하나 없이 오늘을 즐기며 살았다. 자기관리는 필수라며 이것저것 사들인 품목에 마음이 풍요로웠다. ... 어느 날 급여통장에 찍힌 잔액 ‘0의 힘이란 무서웠다. 별수 없다. 소비습관을 바꾸는 것 말고는 저자가 통장 잔액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버는 재주가 없으니 짠테크로 살아남아야 했다. 저자의 시작도 그랬다. 투자하려면 종잣돈이 필요한데, 그 종잣돈 모으기가 쉽지 않았던 터였다. 게다가 저자 역시 일을 하는데 통장은 항상 텅장으로 머물러 있었다. 물론 통장 잔액이 바닥이 되는 이유는 다 있었다. 그걸 자신이 다스리지 못한 탓이 크겠지. 버는 돈 안에서 쓰고 저축하고 해야 하는데, 저축은 생각하지도 못할 일상에 익숙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아끼는 거였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금액으로 생활하면서, 물론 급여 일부분을 저축으로 먼저 분리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유롭게 먹는 점심은 기억에서 지우고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 저녁은 어제 먹고 남긴 재료들로 직접 해서 먹을 것이다. 크림을 듬뿍 얹은 커피 대신에 집에서 가져온 커피믹스로 대신한다. 출퇴근하면서 알뜰 교통카드로 교통비도 아낀다. 지출이 아예 없는 날도 만들어보자고 다짐한다. 저자의 하루 대부분이 이렇다. 하지만 돈을 한 푼도 안 쓴 날을 찾기는 어려울 테다. 우리의 일상이 그러하니까. 밥도 먹어야 하고 커피도 마셔야 한다. 필요한 문구도 사야 하고, 욕실에 다 쓴 샴푸도 채워 넣어야 한다. 움직이는 것 자체가, 숨 쉬는 모든 시간에 돈이 들어간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아껴야 한다. 아끼고 또 아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저자가 아낀 만큼 모았냐고? 많이 모았더라. 3년 동안 아껴서 목표 자금 5천만 원을 모았단다. 대단하다. 그 흔한 투자에 눈 돌리지 않고 아끼고 모으면서 이뤄낸 성과였다. 저자가 괜히 아끼는 방법을 택한 게 아니다. 사실 주식이나 펀드 같은 투자 수익률을 계산해보니 가성비가 좋지 않은 재테크였다는 거다. 주식으로 인한 육체적·정신적 노동을 고려했을 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차라리 아끼는 게 더 이득이고 빠르겠다고 판단한 저자의 선택은 옳았다. 버는 재주가 없는데 괜히 투자로 스트레스까지 얹을 필요가 없었다. 아끼는 방법으로 당장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정신건강에 좋은 소비습관으로 더 괜찮은 사람이 되는 방법을 택한 거다. 그럼 절약의 최대 적은 누구일까? 저자는 SNS를 줄이라고 말한다. 괜히 남들이 보여주는 거에 현혹되어 부러워하지 말라는 뜻일까. 신용카드로 쓰는 줄도 모르고 막 쓰는 걸 그만두고 현금으로 생활하는 법을 익힌다. 그의 하루 용돈은 현금 1만 원이다. 쓸데없이 새는 돈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가 팁으로 알려준 몇 가지 방법이 있다. 통신사 선택약정 할인(잊지 않고 꼬박꼬박 날짜 챙겨서 할인받고 있음), 기프티콘 할인가로 사거나 팔거나(이건 전에 몰랐는데 아주 꿀팁), 여러 가지 포인트 쌓는 법(커피믹스 박스의 캐쉬백 포인트 적립은 필수지), 카드 포인트 현금화하기(현금화해서 기뻐할 만큼의 카드 포인트가 없지만 그래도 꾸준히 챙기는 중), 전기세 아끼면서 에어컨 트는 법(3년 전에 에어컨 바꾸면서 오래 틀어놓는 습관 생김), 알뜰폰 사용도 추천, 매달 내는 OTT 구독료 더치페이하기(사실 이건 곧 변경될지도 몰라서 가슴이 조마조마), 소장할 필요가 없는 중고 책 팔아서 책테크(이건 나도 잘함. ^^), 잡기 구독료 아끼고 무료 전자책 잡지로 보기(와우~ 이거 이제 알았음. 정말 좋은 정보), 대중교통 이용할 때 알뜰 교통카드(이거 거의 1년 전부터 사용하고 있는데, 외출 필수템), 정부지원금 혜택 확인하기(찾아보면 많다. 내일배움카드도 몇 년 전에 알아서 지금 열심히 활용하는 중),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청년에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으니 검색 필수), 아파트 세입자가 챙길 수 있는 장기수선충당금, 찾아서 돌려받을 수 있는 게 많으니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버는 만큼 돈이 모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먹고는 살아야 하니 돈을 쓰는 일은 멈출 수 없다. 다만, 놀라운 투자 능력으로 손해 보지 않고 자산을 불리거나,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었다면, 저자의 방식으로 생활하는 것도 돈을 모으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는 걸 알겠다. 짠 내 좀 나면 어떠냐, 그게 다 내 돈으로 모이는데. 식당에서 먹다가 남은 음식 싸가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음식값을 냈으니 내 음식인 거고, 남긴 거 집에 가서 먹으니 환경도 보호하고 더 좋은 거 아닌가. 습관이 무섭다. 집 근처 음식점에서 가끔 수제비를 포장해와서 먹곤 하는데, 언젠가부터 포장비 1천 원을 내라고 하기에, 집에 가서 그릇 가져와서 포장했다. 며칠 사이에 음식값도 1천 원이 바로 올랐던데, 거기에 포장비까지 내려니 너무 아까웠다. 그 후로 그 집에 갈 때마다 집에서 그릇을 가져가서 포장해온다. 사장님도 포장 용기 낭비 안 하니 오히려 더 좋다고 하신다.


사실, 돈을 아끼려면 몸이 좀 부대껴야 한다. 내 몸이 조금 편하여지자면 돈을 더 쓰면 되는 일이기에, 그동안 나는 귀찮고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렇게 돈을 썼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장바구니나 텀블러 가방에 챙겨서 다니고, 준비하는 게 힘들어도 외식보다는 집에서의 한 끼를 챙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어나가는 돈을 생각하니, 그동안 얼마나 낭비하면서 살아왔는지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의 짠테크가 목표 금액을 만들게 해주었듯이, 나도 생각하기만 했던 다짐을 다시 외치게 된다. 읽다 보면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지만, 가능하다. 내가 해봤던 것도 많은데, 이렇게 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고 일상에 아무런 지장도 주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가뜨리지도 않는다. 한 개인의 삶을 완성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습관을 만들어주는 이야기에 한 번쯤 귀 기울여도 좋은 일이다.


투자만으로 부자가 될 확신이 없다면, 종잣돈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똑똑한 소비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해보세요. 어렵지 않은 짠테크로, 모두 부자 되세요!


+

이 책 읽다가, 2년 전에 쓰다가 멈춘 가계부가 생각나서 책장에서 꺼내 봤다. 그때 일부러 노트로 된 가계부 쓰면서, 하루씩 한 달씩 내가 어디에 돈을 쓰고 어디에서 줄여야 하는지 많이 살펴보고 했던 게 기억났다. 그때의 습관을 다시 불러오고자 꺼내 봤는데, 이게 뭐냐! 가계부에 현금 30만 원과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이 떡 하니 끼워져 있더라. 그걸 보니 생각났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로만 생활하다 보니 현금을 잘 안 가지고 다녔는데, 갑자기 현금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어서 평소 30만 원 정도 가계부 속에 챙겨두었던 거다. 백화점 상품권은 현금화할 수 없는 포인트 모아서 교환한 건데, 그걸 잊고 있었네. 와우~ 이거 분명 내 돈인데, 내가 아끼고 모아서 만든 건데 왜 잊고 있었지? 암튼, 이 책 읽고 옛날 습관 다시 불러오고자 꺼낸 가계부에서 숨은 돈 찾았다. 결론은, 책을 많이 읽자! 숨은 계좌는 아니어도 숨은 돈은 찾아준다.




좀 길지만, 도움이 될까 싶어 적어둔다. 저자가 재무상담을 받고 전문가에게 받은 조언이다. (197페이지)


먼저 상담원은 수입을 두 가지로 나누라고 조언했다. 바로 쓸 돈과 저축할 돈이다. 쓸 돈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비로소 저축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때 우리가 쓸 돈, 즉 지출은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바로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 비정기 지출이다. 상담원은 지출을 세 가지로 구분할 줄 알게 되면 쓸 돈에 대한 계획이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로 지출을 구분할 줄 모르면 지출을 통제하고 계획하는 데 어려움을 계속해서 느낄 것이라고 조언했다.


고정지출 : 매달 같은 금액이 반복되는 지출로, 고정지출 비용은 개인마다 제각각이다. 고정지출이 많단 뜻은 내가 저축할 돈이 많지 않단 걸 의미한다. 따라서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고정지출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지출에서 40%를 넘는 순간 저축이 어려워진다. 따라서 고정지출 비율은 낮을수록 좋다. 고정지출 비율이 낮을수록 저축할 수 있는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변동지출 : 매달 같은 비용이 나가는 고정지출과 달리 내가 쓰는 만큼 나가는 지출이다. 예를 들어 직장인이 사 먹는 점심이나 간식 등을 변동지출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쓰는 만큼 나가기 때문에 고정지출과 달리 매달 금액이 달라진다.


비정기지출 : 고정지출, 변동지출과 달리 매달 발생하지 않는 비용이다. 보통 비정기지출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쓰는 지출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신발이나 가방을 비롯한 의복비, 전자제품, 의료비(병원, 영양제), 화장품, 여행, 경조사, 기념일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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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4-07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가계부의 기적이네요! ㅋㅋㅋㅋㅋㅋ

구단씨 2023-04-11 22:29   좋아요 1 | URL
너무 기뻤어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그날 엄마랑 마트 가서 상품권으로 신나게 장을 보고, 외식까지 하고 배를 두드리면서 들어왔는데요.
그날 밤에 생각해보니, 음... 제가 배운 짠테크 기술은 그 사이에 어디로 간 걸까요? ㅠㅠ

잠자냥 2023-04-11 23:2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게 궁금했습니다. 어떻게 쓰셨을지…. 짠테크가 과연 두둥 가능했을지! ㅋㅋㅋㅋㅋ
 
김치 공장 블루스 - 매일 김치를 담그며 배우는 일과 인생의 감칠맛
김원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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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엄마 집에 가서 엄마가 새로 담근 김치를 가져와서 저녁 식사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항상 밥 먹을 때 김치를 찾는 사람이라, 이맘때가 가장 난감하다. 지난겨울 김장하면서 만든 겉절이는 한 달 정도면 충분히 먹었고, 그러고 나면 담근 지 한 달 정도 된 김장김치를 이제 막 담근 김치처럼 잘라 먹는다. 그러고 나면 이맘때가 된다. 김장김치는 익어가고, 새 김치를 담그자니 귀찮고 배춧값도 저렴하지 않은 때. 작년의 묵은지로 김치찌개도 끓이고 김치 볶음도 만들어 먹고 하지만, 그래도 막 담근 김치가 생각날 때다. 그럴 때 근처로 칼국수나 수제비 먹으러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겉절이를 실컷 먹고 오는데, 사실 그것도 눈치가 보인다. 만드시는 분의 고단함이 있을 테고, 재료비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봐도 김치는 정말 쉬운 존재가 아니다. 입에 맞는 맛있는 김치 찾기도 어렵고, 없으면 없는 대로 먹기에도 서운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김치 담그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말이지. 언젠가부터 등장한 김치 판매처는 그래서 더 소중하다. 누군가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엄마도 나도 종종 김치를 사 먹을 때가 있어서 그런가, 이 책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다.


처음에는 웬 뜬금없는 김치 공장 이야기인가 싶었다. 나이 지긋한 어느 어머님의 일터에서, 동네 아주머니들 모여 수다 떠는 것처럼 인생 이야기가 피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광고회사에서 일하며 커리어를 쌓아오던 저자는 엄마가 운영 중인 김치 공장으로 이직한다. 굉장히 고민했을 것 같다. 자기 하는 일을 계속하면 될 것 같은데, 갑자기 엄마의 일터로 자기 인생을 옮겨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터. 엄마가 도전하고 쌓아오던 그곳에서 저자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몸에 많은 근육이 있어도 하는 일마다 근육의 쓰임이 다르다던데, 저자 역시 많은 활동적인 일을 했어도 김치 공장에서 쓰는 근육은 달랐으리라. 그 근육이 탄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의 인생 전쟁터에 참전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야기를 듣기도 전부터 괜히 뭉클해진다.


일단 이 공장은, 제목처럼 김치를 만드는 곳이다. 작은 사업체라고 생각했는데, 규모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공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김치를 만들고 있었나 싶게 놀라웠다. 나이 지긋한 베테랑 손맛 선수부터 외국인 노동자까지, 이 김치 공장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막연하게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때는 몰랐다. 재료 하나에, 작업대의 위치 하나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매일 김치를 담그며 그곳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너무도 생생했다. 맛있는 김치를 만들기 위해 기본적인 재료 수급부터, 손길 하나하나 담긴 김치 완성 트레일러의 움직임까지, 완벽한 포장으로 고객의 문 앞에까지 전달되는 김치의 사연은 다양했다. 고객마다 다른 입맛을 맞추기 어렵기에 들어오는 클레임, 홈쇼핑 생방송 배송에 맞추기 위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작업대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나쁜 재료 절대 못 들인다며 퇴짜를 놓는 사장님, 그러다 보니 많은 이윤을 남기지 못하고 현상 유지에 급급한 현실. 이놈의 코로나는 이 김치 공장도 비껴가지 않았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격리 생활은 타국에서의 설움까지 겹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안타까웠고, 공장 가동이 멈춰버린 현실에 또 얼마나 큰 손해를 만들고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더라. 그때 우리, 참 힘들었는데, 여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도 여전히, 사람 사는 곳이었다. 김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식이지만, 그 김치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공간의 이야기는 새로우면서도 진솔했다. 울고 웃는 게 우리 인생이라지만, 이곳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지, 그들의 다양한 인생에 담긴 이야기도 흥미진진했다. 카리스마 장난 아닌 사장님부터, 배추 트레일러에 서서 배춧속을 채우고 가정에서의 책임도 다하는 여사님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의 정을 나눠주며 책임을 다하는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로열패밀리(?)이면서 이 공장의 모든 곳에서 책임자이자 막내 역할을 하는 저자까지. 저자가 풀어내는 이들의 세상은 애정이 가득 담겼다. 읽으면서 괜히 더 애틋해지고, 성실한 이들의 모습에 등도 두드려주고 싶고, 뭔가 바라는 거 다 이뤄가면서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기도 한, 뭐 여러 가지 마음이 든다. 이상하게 정이 막 쌓이는 기분, 나만 그런 건 아닌 듯? ^^


사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생산직 여사님들, 특히 김치 공장 여사님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얼마 전에 아는 동생이 김치 공장에서 일하다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안 하던 사람이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을 때 궁금했는데, 그 이유가 여사님들 텃세와 괴롭힘에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좀 더 다녀보지 그랬냐고 했을 텐데, 그 동생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서 그런지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면 그럴만하다는 이유가 이해가 되더라. 김치 공장 여사님들 무서운 사람들이구나 싶어서, 정말 모르는 사람인데도 멀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이 책 읽으니 문제는 김치 공장이 아니라,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김치를 만들고, 인생을 알아가는 곳. 나쁘고 좋고 판단할 곳이 아니라 그곳은 그냥 딱 그런 곳, 사람 살아가는 곳이었을 뿐이다.


저자는 큰 회사에 다니다가 작은 김치 공장으로 왔다고 말했는데, 사실 이곳은 그 어느 곳보다 큰 세상이었다. 배춧잎이 켜켜이 쌓여 사람들의 마음까지 쌓인 곳, 더 작은 세상으로 온 게 아니라 더 크고 맛있는 세상으로 온 거였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막연하게 생각한 공장이라는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열심히 살고, 마음을 쏟아내고, 인생을 채워가는, 크고 작은 것을 계산하고 생각할 필요가 없는 멋진 곳이었다. 엄마가 만든 김치를 자랑스러워하며 엄마의 단단한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될 곳, 정말 괜찮은 김치를 만들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김치 공장이다.



#김치공장블루스 # 김원재 #알에이치코리아 #문학 #한국문학 #에세이

#김치공장이야기 #식탁위의김치 #김치인생 #감칠맛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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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식 아파트
서경희 지음 / 문학정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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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집은 이 한 몸 편하게 쉴 곳을 넘어서서 자산의 의미가 크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그렇다. 어쩌면 나 역시도 집의 의미를 그렇게 새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 그 자산이란 집은 언제나 타이밍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집값이 어떻게 될 건가 하는 물음에, 많은 이가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이란, 내가 살 때가 가장 싼 거라고. 그 말이 정말 맞나? 이상하게도 내가 사고 나면 더 하락하는 게 집값이 아니었나? 거의 1년 동안 이 도시에서 새롭게 분양하는 아파트를 다 구경했고, 그중에 내 집이 있을까 싶어 고민했지만 역시나 돈이 문제였다. 바로 두 달 전에도 분양한다는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예약했지만, 가지 않았다. 괜히 보고 와서 더 우울해지는 거 아닌가 싶어서. 사실 이 아파트는 지금 사는 아파트 바로 근처에 지어지는 거라서, 정말 생활권 이동 없이 좋을 것 같았는데. 암튼, 작년에 분양하던 아파트는 지금 거의 무피에 거래되고 있고, 두 달 전에 보려다가 안 간 곳은 미분양이다. 대출금이나 유이자, 이걸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선택은 이거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놈의 타이밍은 간절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바쳐 집 한 채 구하려는 사람을, 언제나 잘도 비껴간다. 에이~


그런 집 때문에 최근에 마음이 서글퍼졌던 적이 있다. 내 주변의 한 사람은 이번에 새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아파트가 2채나 있기에 세 번째 아파트는 대출 규제가 있어서 신청이 어렵겠다는 말을 들었다. 또 한 사람은 남편의 사업 확장에 돈이 필요하다고, 여유로 가진 아파트를 1억이나 저렴하게 내놔도 안 팔려서 걱정이라는 말을 하고. 1억을 내려도 웬만한 사람이 선뜻 사기에는 비싼 가격에 속으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많은 아파트를 보유하면서, 돈 필요하면 한 채씩 팔아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 사실은 많이, 서글펐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서글픔이 다시 밀려왔다. 잘살아 보겠다고, 전세금 올려달라는 말에 더는 이사 다니기 싫어서 겨우 마련한 집이 계속 하락세라면, 그 마음은 어떨까.


은영에게 이사는 습관 같았다. 결혼생활 십 년 동안 여러 번의 이사였다. 2년에 한 번씩 올려달라는 전세금이 더는 힘들어졌을 때, 내 집 마련의 몸부림을 친다. 그녀의 남편 정수는 연극배우지만, 딱히 언제 빛을 볼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연극배우였지만 결혼과 동시에 생활비를 벌기 위해 연극판을 떠났다. 아끼고 살피며 살아왔는데, 내 집 장만을 꿈도 못 꾸었다. 갭투자가 한창일 때 전세가는 치솟았고, 더는 버틸 수 없던 은영은 경기도 외곽에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를 매매하고 이사한다. 이제 더는 이사 가라고 내쫓을 사람도 없는, 내 집이구나. 이 집값도 곧 오르겠지. 이 안정감이 은영의 삶을 바꿔놓을 줄 알았다.


마음이 급하면 뭔가 더 알아볼 겨를도 없다. 은영이 이사한 곳은 소각잔재 매립지 공사 문제로 오랫동안 시청과 싸워온 곳이었다. 뒤늦게 알고 보니 그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다. 당연히 집값은 내려갈 거고, 그 환경에 우리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동네 사람들은 시위한다. 반대 서명을 받고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며, 매일 시위하는 걸 보면서 은영은 정신이 나갔다. 이제야 살아갈 만하다고 여기고 싶었는데, 동네는 어수선하고 사람은 떠나고, 기피 지역이 되어버렸다. 이사가 답이라며 다시 이사를 준비하지만, 그 사이 집값인 3천만 원이 넘게 떨어졌다. 그 도시를 떠나고 싶지만, 이제는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게 됐다.


정말로, 아파트 한 채 있으면 중산층인가? 그 기준은 다 다를 테다. 그저 집이란, 아파트란 내가 머물 곳이어야 한다는 게 가장 첫 번째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집이란 그런 곳이어야 하는데, 매번 집을 떠올리면 돈과 연결이 되고, 그 연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 은영이 정수와 결혼해서 집을 매매하자고 했을 때 정수는 곧 집값이 내려갈 거라면서 반대했다. 몇 번의 매매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정수의 반대로 은영은 전세를 옮겨 다녔다. 정수와 싸워서라도 그때 매매를 했어야 한다면서 후회했지만, 지금은 몇 번을 올려준 전세금으로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됐다. 이게 은영의 현실이자,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가 집을 구하면서 경험하는 슬픔이다.


누구나 타이밍을 잘 잡고, 물건을 잘 보는 눈이 있어서 집을 매매하고 시세 차익을 얻었다면 좋겠지. 그런 소득을 얻는 것도 살아가는 즐거움일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기회도 아니기에 매번 결말은 달라진다. 누구는 이익 보면서 추가로 다른 집을 매매할 수도 있고, 누구는 심각한 손해에 빚만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알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가 다르기에, 집으로만 매겨지는 인생 시세 차익도 점점 커져만 간다. 소설에서 주인공 은영이 경험한 IMF부터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의 이십여 년을 보고 있노라면, 낯설지 않다. 우리도 겪었다. 그때의 현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눈에 선하다. 뭔가 회복하려나 싶으면 다시 경제위기는 찾아오고, 조금 나아질까 싶어 힘을 내려고 하면 다시 반복이다. 그런 시간을 얼마나 더 겪어야 하는 걸까 싶지만, 은영이 마지막에 보여준 것은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온 건지 모를 희망이었다. 집값도 괜찮고 생활권도 좋은 신림동 은영의 새로운 터전은 어떻게 발전해나갈까. 다시 은영은 집값 오르기만을 기다리며 집의 의미를 다시 쓰고 있을까?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이건 소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경제 역사를 압축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 어느 시대를 봐도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 역시 은영의 그 세월을 그대로 걸어왔고, 집의 의미를 다양하고 복잡하게 생각하느라 지금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윳돈은 없고, 혹시 지금이 자산으로 집을 구해놔야 할 타이밍인가 싶기도 하고, 그럼 집값은 또 어디서 마련하나 싶은 걱정만 가득하고. 그러다가 이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빚 갚으면서 평생을 살아가게 될까 봐 또 마음을 비웠다가... 뭐가 이래. 마음이 참 씁쓸하기만 하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는데,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라도 누가 나가라고 안 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집이라고. 세상은 변했고 엄마의 말도 의미가 없다고 여겼는데, 이사 걱정 없이 사는 것만도 어딘가 싶을 때마다 엄마의 그 말이 자주 생각난다.



#복도식아파트 #서경희 #문학정원 #소설 #한국소설 #문학 #한국문학

##책추천 #아파트 #자산 #님비현상 #부동산#내집은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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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이 된 엄마는 지금도 TV를 보면서, 방송에서 휘리릭 지나가는 레시피를 적는다. 엄마의 노트는 벽에 걸린 큰 달력이다. 지나간 달의 달력 한 장을 쭉 찢어서 접어놓았다가, 갑자기 뭔가 적어야 할 일이 생기면 접어둔 달력을 얼른 꺼내어 적기 시작한다. 보관하기 편하게 노트에 적으라고 사다 드렸는데도, 엄마의 손에 가장 먼저 잡히는 건 찢어놓은 달력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습관이라고 여기면서도 나무라지 않았다. 엄마가 편하다면 그게 맞는 거지. 어느 날 엄마의 레시피 노트(?)를 보다가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거품을 버끔이라고 적어놓은 문장에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찾아보니 사투리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엄마가 여기저기 적어놓는 것들을 찾아 읽어봤는데, 어디서나 맞춤법은 틀려 있었다. 아들을 우선하며 살아왔던 시절에 엄마의 고등학교 학력은 대단한 것이었을 텐데, 그마저도 공부에 열중하며 살지는 못했겠지. 한글 문해 교육 프로그램이 많은 것을 보면서 느낀다. 어느 시절의 우리 엄마들은, 자기 이름 석 자를 쓰지 못하는 삶을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엄마의 시간은 어땠을까 계속 생각했다. 나이가 되었으니 소개받은 남자와 결혼을 했고, 결혼하고 보니 생활력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남편 대신 가정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온 세월이 엄마의 인생이었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한밤중에 눈을 떴을 때 엄마가 짐을 싸서 나가는 걸 본 적도 있다. 동네 분이 엄마를 찾아서 데리고 오기도 몇 번. 어린 나이에 그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이대로 엄마가 돌아오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때의 엄마를 나는 잘 알지 못하지만, 엄마와 쌓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나는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던 건 기억한다. 혼자서 편하게 살고 싶다고 노래하듯 말했던 엄마의 바람은, 이제 혼자서 사는 게 두려운 것이 되어버렸으니, 두 집 살림하듯 사는 지금 나의 일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항상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왔는데, 이렇게 빚을 갚는 건가 싶기도 하다. 다른 자식 많은데 왜 내가 다 감당해야 하나 싶어서 가끔 억울하기도 한데, 어쩌면 거부할 수 없는 이 시대의 나란 여자의 삶이 또 그런 건가 싶은 마음에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을 종종 생각한다.


전작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읽으면서 어느 정도 저자 어머니의 삶을 엿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 책으로 저자는 어머니와의 시간을 되짚으며, 어머니 인생 자체의 기록을 다시 쓴다. 단순히 어머니의 지난한 삶을 적기 위한 시간이 아니었다. 어머니이자, 며느리, 아내로 살아온 여성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게 무엇인지 묻는 일이었다. 글쎄,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던 저자 어머니의 마음은, 사실 내 딸이 하고 싶은 거 큰소리 내면서 살아가길 바라는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여자여자를 조심시키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지나온 역사의 한 가운데 한국 여성이 있다는 걸 알겠는데, 이 역사가 왜 한국 여성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원망 비슷한 것도 생긴다. 엄마는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다. 그나마 부유했던 외가의 사정 탓에 큰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하는데, 지난한 역사가 만들어놓은 현대의 삶에 왜 엄마들은 한 구성원으로 그 고통을 혼자 감내하고 있었던 걸까.


경기가 어려워지고 가장이었던 아버지가 노동의 현장에 나가지 못할 때, 부가 노동자 효과는 빛을 발한다. 단순히 우리 부모의 얘기가 아니다. 저자의 글 속에서도 나오지만, 가세가 기울자 저자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한 몸부림을 멈추지 않는다. 방 두 개까지 옥탑방에 살면서도 방 한 칸을 차지하는 시어머니 봉양에, 자꾸만 실패하는 남편의 시도에, 키워야 할 딸들에. 이 상황에서 움직임을 멈출 엄마는 없을 듯하다. 남성이 채웠던 노동력의 부재를 많은 여성이 채워가면서 이 경제를 이끌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진 데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수출의 급성장 뒤에는 많은 여성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가 곧잘 들려오는 걸 보면 말이다. 어쨌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자발적이든 강요되었든 희생이 뒤따랐다. 부유하게만 살아왔던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기자, 저자의 어머니가 나서서 가정 경제를 꾸렸던 일, 대물림하듯 시집살이를 저자의 어머니에게 베풀(?)었던 저자의 할머니. 이상하게 여자를 중심으로 서사는 이루어졌는데, 저자의 어머니의 어머니는 없었다.


많은 딸이 엄마의 삶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다. 왜 엄마는 엄마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왔던 걸까. 아마도 이 이야기의 시작은 그 지점인 듯하다. 나와 가장 가까운 것 같은데 내가 아는 건 없는, 그 이름 어머니의 인생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오랜 잠에서 깨어난 거라고. 배울 만큼 배웠고, 자기 발로 어디든 갈 수 있는 한 사람이 마치 보이지 않는 사슬에 매인 것처럼 살아온 세월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저자 어머니의 고백과 나의 엄마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아버지에게 보호받고 의지하며 살아온 삶이,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은 한 사람을 살아가면서 바뀌는 거다. 이름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오면서, 누구도 그 존재에 색을 입혀주려 하지 않았다는 것. 아버지 다음으로 의지하고 싶었을 남편은 방관자에 가까웠고, 엄마가 해내야 할 다양한 역할은 계속되었을 테다.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관장하기를 기대했다는 표현 그대로였다. 읽으면서도 자꾸만 나의 엄마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우리 집의 그림 역시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 엄마가 그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이끌어야 하는 거라고, 그게 엄마의 역할이고 우리에게 해주어야 할 부모의 도리라고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의 나이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고, 혼자 해낼 수도 없는 일이었을 텐데, 도대체 우리가 한 여자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고 이고 가라고 했던 걸까. 어디에도 엄마의 이름은 없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네. 돌아가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시기를 꼽으라면 그때인 것 같아. 학생이었던 시절, 누구의 아내도 며느리도 엄마도 아니었던 시절, 내가 그저 나였던 시절. (나는 결코 어머니가 없었다, 31페이지)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한 사람의 존재로 봐야 하는 일은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전히 엄마의 존재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엄마의 삶은 딸이라는 존재와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거다. 엄마와 연결된 나의 삶은 부정할 수 없고, 또 한없이 이해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엄마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묘사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엄마에 대해 생각하고 쓰고 싶은 마음은 계속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함께한 엄마를 이제야 써 내려간 저자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녀 관계이면서,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온 딸이면서,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겠다고 외치는 사이의 마음, 말이다. 서로의 마음 알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가장 모르는 사이, 닮았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의 역사와 내가 살아온 시간을 생각한다. 엄마와 연결되었지만, 엄마의 삶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거부하기만 했던 어느 시절의 모녀를 떠올린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또 한 명의 여성, 저자의 할머니이자 엄마의 시어머니가 등장한다. 저자의 엄마에게 시어머니는 며느리, , 말동무, 시녀였다고 말하면서 시어머니의 세계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하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가슴이 탁 막혔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그런 시어머니를 이제는 이해한다고 말하려는 걸까 싶어서. 다행인 건 저자의 기억 속 할머니와 엄마의 기억 속 시어머니는 달랐다는 거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도 할머니는 엄마를 괴롭히는 못된 시어머니로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며느리에게 함부로 말하고, 며느리의 물건을 막 집어가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굳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애써 적어보고 싶지도 않다. 모든 말머리에는 나쁜사람이라는 존재로 적어갈 것 같아서 말이지. 대신 저자의 기록 속에는 거의 존재하지 못했던 엄마의 엄마가 있다. 기록되지 못했지만 존재하는 사람, 그런데도 엄마의 삶 속에서 시어머니가 존재하므로 엄마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풀어갈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인정. 마음이 복잡해진다.


많은 독자가 비슷하겠지만, 이 책을 읽은 이후에도 엄마와 나의 관계는 각자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피곤하고 가끔은 짜증도 나고, 이제는 모른 척해야지 하면서도 다시 또 엄마의 옆에서 존재하는 내 마음이 참 여러 가지인데, 지금도 어떤 일 앞에서는 니가 나 때문에 고생이다라고 말하며 미안해하는 표정 한 번에 스르륵 무너진다. 아마도, 살아가는 일은 이런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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