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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키가이 - 일본인들의 이기는 삶의 철학
켄 모기 지음, 허지은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책 제목 "이키가이"에서 일단 "이키(いき)"란, 문자 그대로는 (들고나는)숨, 호흡, 활동이 왕성한 기간, 목숨을 뜻합니다. 意氣라고 새긴다면, 우리말에서 쓰는 용법과 같습니다. 그러나 역시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p15)이 가장 중요하겠으므로 그에 더 주목하자면, 이때의 용법은 生き, 活き, 즉 우리말로는 "생기"란 뜻이 됩니다. 한편 "가이"는 効, 甲斐 등으로도 쓰는데, 우리말의 "보람"과 통합니다.
책의 같은 페이지에서 저자는 이 "이키가이"라는 말을, 일본인들이 매우 자주 쓴다고 전합니다. 커다란 성취를 올렸을 때는 물론이고, 소소한 쾌거를 맛봤을 때도 그리 주저하지 않고 이 표현을 적용한다는군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비록 원하는 대로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해도, 그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고 후회가 남지 않는다면 당사자들은 얼마든지 자랑스러워하면서 즐겨 이 말을 쓴다는 점입니다.
예전에 저는 일본인들의 품성을 평가한 어느 고문헌에서, "일본인들은 악착 같이 굴기는 하나 간사하지는 않은데, 쓰시마인들은.... (이하 생략)"이라는 대목을 읽은 적 있습니다. 일본인들의 민족성에 대해 그 평가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도, "악착같음"에 대해서는 거의 의견이 일치한다는 뜻도 됩니다. 사실 일본은 길게 늘어지기만 한 국토 넓이에 비해 경작지가 태부족하고, 인구는 많으나 물산이 적고, 천재지변이 잦아 사람이 살기 그리 적합한 땅이 못 됩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은연중 정신 속에 스며든 게 바로 "이키가이" 정신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책을 다 읽고 나서 들었습니다.
얼마 전 신기술을 발명하고도 그 이익이 고스란히 소속 법인에 다 귀속되다시피하여, 이에 반발한 엔지니어들이 소송을 낸 사건이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같은 경우 엔지니어들에 대한 대우는... 글쎄요... 일본에 비해서는 낫다고 봐야 하는지, 그래도 대기업에 다닌다는 평판과 명예가 금전적 부분을 어느 정도는 만회하는지 아리송합니다만, 일본인들이 느끼는 상실감에 비해선 적은 편이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영광스럽게도) 직접 인터뷰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 거장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독자에게 전합니다.
"보상은 돈도 돈이고 팬들로부터의 찬사도 찬사이지만, 창작 작업에 몰두하는 그 자체로부터 얻습니다."
이 말은, 미야자키 감독 같은 거장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산업에 종사하는 수없이 많은 젊은이들이 손에 쥐는 대단히 미미한 보수가 문제는 문제 아닌가 하는 전제에서, 해당 거장이 스스로 토로한 내용입니다. 그러니 그 역시 구조의 모순에 대해서는 의식을 한다는 뜻도 되죠.
제 생각에, 이른바 열정페이다 뭐다 해서, 쥐꼬리만한 대가를 받고 그저 체념적으로 만족하라, 사회가 다 그런거지 뭐, 이런 결론은 아니라고 봅니다(혹시 그렇게 곡해된다면 주의가 필요하죠). 당연하게도, 나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누군가가 가로챈다면 싸워서 도로 뺏어야 합니다. 이는 당연한 의기의 발동일 뿐 아니라,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발휘해야 할 의무입니다. 헌데 그런 경우 말고, 아무리 애를 쓰고 그 결과가 좋았다 해도, 그 당사자에게 반드시 정당한 대가가 귀속되라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꼭 최적화된 구조는 아니라서, 결과가 나쁘게 떨어지는 수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이 경우, 책임 소재를 추궁할 수 있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허나, 어디 대고 하소연도 못할 억울한 상황이 알고 보면 더 많죠. 이 때 분노를 간수하지 못하고 아무데나 화풀이를 해야 할까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일을 방치하다시피 팽개쳐야 할까요?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 봐야 자기 손해이며, 나아가 자신을 낳아 주고 길러 준 부모님, 은인, 지인,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도와 준 이들에 대해 엉뚱하게 분을 풀어대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책임을 물을 장본인을 못 찾았다면, 그의 정체가 드러날 때까지 은인자중해가면서 응징의 저력을 길러나가는 게 차라리 현명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랄까 비결은 바로 "이키가이"입니다.
"이키가이"라고 꼭 일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매사에 생기에 가득하고 넘치는 의욕을 발휘할 곳 어디 없나 눈이 반짝반짝한 사람은 어디 가도 환영을 받습니다. 저 사람하고 일하면 앞으로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고, 설령 이 조직에서 아직 필요한 기능을 습득 못 했어도 금방 배워서 다 따라잡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로부터도 쌍수를 든 인기를 끄는 게 보통입니다.
앞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예가 잠시 나왔습니다만, 저자는 이런 평가와 해석을 하는군요. 잠시 인용하자면 "작가가 행복에 가득 차서 그려내고 창작해 낸 작품은, 그 감상하는 사람들에게 그 행복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이들은 행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바로 구별해 낸다.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이 그처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주된 향유층인 아이들이 그의 작품에서 풍겨나오는 행복을 바로 캐치해 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아닌게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룬 거장은, 표정도 행복하고 자세와 태도에 긍정적인 기운이 넘칩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만 행복한 게 아니라, 전혀 무관한 남들에게까지 그 밝고 맑은 기운을 전파합니다. 얼마나 고마운 분들입니까. 사화의 빛과 소금이란 이런 분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죠.
저자는 이런 생기를 가리켜 지속가능성과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물론 행복한 사람이건 그렇지 못한 이건 길어야 사람의 수명은 백 년을 넘기 힘듭니다. 그러나 행복한 사람이 남긴 자취는 마치 그윽한 향수의 발산처럼, 당사자가 가고 난 후에도 오래 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의 미덕입니다. 당장 건강에 한정시켜 봐도, 행복한 사람은 얼굴과 태도에 확신과 정열이 스며 있습니다.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이고, 그 사람이 하는 일은 손대는 것마다 성과가 좋습니다. 반면 마음에 부정과 어둠이 가득 깃든 이들은 남의 일까지 망칩니다.
한국의 SK가 과거 "선경그룹"이었던 시절, 그 회사의 3대 사훈 중 하나가 "꼼꼼하게 일처리 마무리하기"였습니다. 허술하게 대충대충 마무리하는 자세로는 남도 망치고 나도 망칩니다. 저자는 책에서 왜 근래 일본이 갑자기 관광대국으로 부상했는지를 두고 이런 분석을 합니다. "일본에는 코다와리 정신이라는 게 있는데, 아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마음자세를 가리킨다." 아주 적합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이 뭔지는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데, 일본인들끼리는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군요.
이키가이의 핵심은 작은 일부터 정성껏 시작하여, 내가 원하던 대로 세심하게 마무리지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정신 자세입니다. 사실 이는 우리 선조들도 얼마든지 자각하고 일상의 실천에 옮겼던 성(誠)과 경(敬)의 마음, 또 단사표음으로 상징되는 청빈의 이념과 통합니다. 결과가 안 좋으면 또 어떻습니까? 최선을 다한 나 자신의 모습이 떳떳하고 뿌듯하면, 이미 나는 그것으로 충분한 승자가 된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