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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지 - 붙잡고 싶었던 당신과의 그 모든 순간들
이인석 지음 / 라온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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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발달은 확실히 인간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같은 마을에 산다 한들 두어 리만 떨어져 있어도 물리적으로는 이야기를 나눌 방법이 전혀 없었던 게 옛 사람들 사는 모양새였습니다. 하물며 다른 시, 도, 심지어 외국에 나가 머무는 친지, 연인, 자녀와라면, 아무리 화급한 사정이 생겨도 무슨 수로 의사를 전달했겠습니까. 시외, 혹은 타국의 가입자와 대화할 수 있는 유선전화의 발명은 그래서 획기적인 쾌거였습니다. 실내에 머물면서 회선의 제약을 받는 일 없이, 이동 중에도 상대와 대화할 수 있는 무선통신은 더욱 놀랍습니다.

헌데, 우리는 이런 문명의 이기를 누리며 너무 많은 것을 잃지 않았을까요? 이 책을 펴낸 이인석 님은 "편지 수집가"입니다. 모으신 편지 중에는 한국 안에서 객지 생활을 하며 부모님과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내용도 있고, 외국에서 힘들여 일하며 노동의 대가를 가족에게 송금하는 분의 절절한 사연도 있고, 주한미군으로 보이는 청년이 고국의 애인에게 보내는 영문 편지도 있습니다(영문의 경우 편저자께서 번역도 한 후 이 책에 실으셨네요. 책에 실린 원문의 사진은 달필의 로마자 필기체입니다).

어떤 이들은 편지 쓰기가 그리 내키지 않기도 할 것입니다. 마음에 없는 위로, 격려, 고백을 억지로 줄글로 쓴다는 건 누구에게나 고역이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애써 펜을 들어 편지를 쓰는 일은 벌써 자신의 마음가짐을 청신(淸新)히 먹어야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편지를 써야겠다 싶어 단정한 자세로 펜을 쥘 때, 벌써 한 번은 명경지수 같은 자세를 되찾습니다. 행여 수신인이 나의 글을 읽고 마음 상할 수 있으니, 지우고 고치고 말을 가다듬는 중에 나의 인격이 바로잡히기도 합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과정 그 자체가, 착한 마음의 회복으로 이르는 의미 깊은 수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편지는 물론 당사자 사이의 내밀한 소통입니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이 설마 반 세기 뒤 어느 수집가분의 정성에 의해 책으로 펴내질 줄을 미리 알고 문장을 새삼 가다듬어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런 사적(私的)인 공간의 말들이라 해도, 편지를 쓰는 이들은 막말을 함부로 내뱉지는 않습니다. 자제하고, 반성하고, 온유해지려 노력하고, 혹 격정을 채 잠재우지 못해도 글로 쓰는 과정이니만치, 종이에 적힌 어휘들은 점잖고 삼가는 태가 배어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벌써 화가 줄어들기도 합니다. 반면, 상대의 배신, 게으름, 표리부동을 알아채고 "내 이 녀석을 가만 두나 봐라!" 하며 이동전화를 꺼내 드는 이들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까요? 우리는 몸이 편해진 만큼 그 남은 여유를 선용하는 게 아니라, 원색적 감정을 격발시키는 데에 낭비하며, 마음은 그만큼 더 거칠어집니다. 내 인격에 상처를 내는 자는 바로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내 자신입니다.

이 책에 실린 편지들은 그저 애모하는 정, 보고싶어 사무친 마음만 담지는 않았습니다. 아마도 50여년 전 월남에 파견된 장교로 보이는 남편은, 고국의 아내가 왜 자신의 마음을 바로 헤아리지 못하는 지에 대해 야속해하고 분개합니다. 서신을 주고받아도 오해가 풀리지 않자 예정된 송금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요즘처럼 통신수단이 발달하고, 이동전화로 로밍하여 바로 통화가 가능한 세상이었다면 대판 싸우고 바로 이혼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부부들이 우리 주변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반면 저 시절엔 통신의 불편이 "숙려 기간"을 베풀었고, 편지가 자상한 중재 알선자 노릇을 대행했던 셈입니다. 마셜 맥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명언이 생각나는군요. 편지에 담긴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그 이전에 편지 자체가 사람 사이의 정을 이어주는 심부름꾼입니다. (이 와중에도 어디어디 땅을 미리 사 둘 것이며, 누구에게 논밭을 사 주라며 처세와 재테크[당시에는 그런 말이 없었겠습니다만]에 열중이신 발신자[남편분]의 마음씀이 엿보여 너무도 흥미로웠습니다)

"내 앞으로 다시는, 편지에다 기쁜 나쁜 말을 적지 않으리다."

글쎄 보십시오. 이렇다니까요. 편지는 그 자체로 우리 마음을 순화시켜 주는 진정제입니다. 상대의 나빠지는 기분도 기분이지만, 편지에다 대고 몹쓸짓을 한 듯 내 자신이 못나보인다는 겁니다. 예전 분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편지는 또한 요즘의 문자메시지, 통신체 따위와도 달라, 하오체 등 고아한 문투를 써야 제격 제맛이었습니다. 요즘 흥행인 영화 <킹스맨>에도 그런 말 나오지 않습니까? "Manners Maketh Man."

"겉봉투를 보니 초면이시군요."

물론 편지 안에 사진을 동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초면인지 아닌지는 눈으로 봐야 아는 법인데, 어찌 겉봉투로 판단하겠습니까? 이는 앞면에 적힌 이름자가 낯서니, 익히 교류하던 지인은 아니라는 뜻(그래서 더 반갑다는 정)을 저렇게 재미나고 멋스럽게 표현한 거죠. 편지를 주고받는 이들은 이처럼 일상의 대화에서도 여유와 품격을 남달리 쌓는 혜택도 누린 겁니다.

"여태까지 성장하면서
이런 서신을 수견하기는 처음입니다."

오래전 분들의 소통이다 보니 오늘날 우리에게는 생경한 어휘도 많이 등장합니다(예를 들면 "아빠"의 낯선 용법, "쏘제" 같은 시대상을 반영한 말). 우리가 주관적으로 낯설게 느껴도 국어 사전에 등재되어 있으면 엄연히 자격을 갖춘 우리말입니다. 그러나 "수견"은 사전에도 없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받을 수(受), 볼 견(見)을 써서, 보다 정중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임의로 고안된 어휘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에는 순우리말 접미사 "~님"도, 점잖은 서신 중에서는 한자로 써야 격이 맞다고 여겼거든요(이두?ㅋ). 저 말은 그저 "받아보다"의 뜻이겠습니다. 문법, 어법 오용을 지적한다기보다, 예전 분들의 삼가고 조심스러워하는 그 태도가 흐뭇해져서 하는 말입니다.

"당신의 뺨에 베에제를!"

이는 대학생들이 당시 낭만을 풍기려 현학을 즐기던 풍을 반영하는 어투의 좋은 예겠습니다. 어원은 프랑스어이겠지만, 아마 일본 대중 문학에서 남발되던 투를 따라한 흔적이겠죠. 우리가 쓰는 일빠체(이런 말부터가 정제된 어휘가 못 되지만요), 오타쿠체에 비하면 그나마 성숙함, 조신함이 느껴져 좋습니다.

중동의 열사와 싸워 가며 일하던 근로자들의 애환, 그보다 훨씬 전 한국전 당시 고향의 농촌에서 아들을 기다리던 부모님께 띄우는 서신, 월남전에서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 "나는 짐승이 아니다"를 절규하는 청년, 신문사 편집위원실에 서신을 보내 펜팔 친구 하나를 알선해 달라는 다소 해학적인 사연,... 편지들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온갖 생동하는 감정과 욕구, 이해, 공감, 애련 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때론 시대를 대표하는 목소리, 몸짓도 투영됩니다.

오늘,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 멘션이 아닌, 편지를 한번 써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손으로 정성 들여 수를 놓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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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강적들 - 나도 너만큼 알아
톰 니콜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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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평등주의라는 착각"

이 책의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저렇습니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평등하며, 혹 평등하지 않거나 못한 구조적 모순이 있다면 직접 피해자가 아니라 해도 모두가 나서서 개선해야 합니다. 그게 문명 사회의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지요. 그러나, 남들만큼 노력도 않고, 준비도 덜 된 이들이, 대접만큼은 남들과 똑같이 받고자 한다면 그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가 당면한 이슈에 대해 발언권을 배분할 때에도, 시민, 국민인 이상은 누구나 한 마디씩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역시 모럴 해저드의 일종이겠지만), 해당 이슈에 대해 전혀 소양이 없는 사람이, 역시 존중이나 자기만족감은 남들만큼 채우고 싶기에, 책임감이나 진지한 고려도 없이 마구 목소리를 높여, 모두의 생존과 번영이 달린 중요한 정책 결정이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금언은 여기서도 새로운 의미를 갖습니다.

훈련이 덜 된 이, 충분한 사려와 지혜를 갖추지 못한 이가 전문가처럼 행세한다면, 그 사람의 주관적 만족을 위해 많은 타인들의 권익이 희생되는 결과밖에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이런 오도되고 값싼 평등은 이미 평등이 아니며, 오히려, 반평등, 역평등이라고나 불러야 마땅합니다. 권위 있고 유익한 의견을 내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노력한 사람과, 아무 생각 없이 경솔하게 자기 말을 내뱉고만 싶은 사람이 같은 대접을 받는다면 어떻게 그게 정의에 부합하겠습니까?

저자는 물론 소위 전문가 집단에 대해서도 쓰디쓴 충고를 던집니다. 그들의 자질 부족, 낡은 지식에 대한 집착, 과도한 권위주의 등이 누적적으로 대중의 불신을 초래했고, 이것이 웹에 퍼진 일부 무책임한 선동 트렌드와 맞물려 현재의 혼란을 자초한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1장에서 저자는 흥미롭게도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공동으로 각본을 쓴(주연은 맷 데이먼이죠) 영화 <굿 윌 헌팅>를 예로 들며, 대중 앞에서 콧대를 세우고 현학적인 언사로 위신을 가장하는 전문가, 엘리트들을 마구 비웃는 캐릭터 하나를 창조한 이 걸작이, 한편으로는 누구든 독학으로, 혹은 남다른 열정 하나만으로 사회의 정규 기관이 빚은 전문 특수 인력을 능가할 수 있다는 잘못된 환상을 심어 주었다는 지적을 합니다.

사실 이 예 말고도, 난치병에 걸린 아이를 낫게 하려는 부모의 간절한 바람이 결국 특효약을 찾고야 말았다는 사연을 담은 <로렌조 오일> 같은 것도 있죠(어느 정도 실화에 기반했습니다만). 이런 영화들은 모두 그 나름의 진실과 감동을 담았지만, 일반화할 수 없는 예를 놓고 마치 보편적 진리인 양 오도했다는 비난도 피해가기 힘듭니다. 이런 영화의 주인공들은 극히 예외적인 조건을 갖춘 이들일 뿐이며, 차라리 전문가 그룹보다도 더 희귀한 사례이기에 일반 대중, 문외한이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런 가상의, 혹은 과장된 캐릭터들을 보고 대리만족을 하며, 급기야는 현실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되죠.

"아무리 잘 못 고치는 동네 치과의사라고 해도 당신보다는 낫다." 혹은 "1년짜리 경험을 20회 해 봐야, 그것이 20년짜리 경험과 맞먹을 수는 없다." 같은 지적(일부는 동양의 격언을 저자가 재인용한 것입니다)에서 특히 저자의 답답해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는 듯합니다. 실제 이 책은 작금의 지적 타락, 중우정치 경향, 건설적이지 못한 말싸움에 대해 개탄을 참지 못한 저자의 격정이, 집필의 주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2장에서는 몇 년 전부터 대중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개념어 "확증편향" 같은 심리학 용어라든가, 음모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집니다. 사실 이 확증편향도 그렇고, 인식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대부분의 용어들 역시 현실에서 무력하게 쓰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남의 주장과 논변은 확증편향이고, 내가 빠져 있는 편견과 선입견은 소신"이니, 내 가 지닌 확증편향에 대해선 전혀 인정 않으려는 꽉 막힌 위인에게 이런 논지를 펴 봐야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확증편향을 입에 담는 사람이 알고보면 가장 악성의 확증편향 성향을 지녔으니 말입니다. 대개 이런 이들은 그게 자기 개인의 소신이 아니라, 어떤 절대 진리를 자신이 대변한다고만 여깁니다. 그러니 자기 딴에는 공공 봉사 같은 것을 엄숙히, 정의롭게 수행한다고 착각하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인지부조화를 그 나름대로 극복하려고 기댄 장치 중 하나가 음모론입니다. 물론 모든 음모론이 음모론에 그치는 것도 아니고, 어떤 날카로운 직감과 의심이 결국 사실로 판명나기도 합니다(드물긴 해도). 또, 힘없는 소시민들이 뚜렷한 근거를 찾아내진 못해도, 뭔가 의심스럽고 부조리한 움직임이 저 상층부에서 포착된다 싶을 때, 이를 한목소리로 항의할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당한 발언권을 행사하려면, 그에는 합당한 근거와 정의감이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측정이 주관적이라고 해서 아무나 근거 없는 비방을 일삼으면, 사회의 질서는 물론 그 당사자의 안위마저도 결국엔 위협받기 마련이죠.

3장에서 저자가 지적하는 고등교육기관(즉 대학)의 문제들은, 이제는 다소 놀라울 정도로 한국과 미국 두 국가가 닮아가는 양상이라 과연 이 책이 미국 저자에 의해 쓰여진 게 맞는지 다시 표지를 들춰보게도 되었습니다. "... 문제는 대학생들이 너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대학에 갈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란 것이다.... " 며칠 전 읽고 리뷰를 올린 책 <대량살상 수학무기>에도 그런 지적이 나옵니다만, 미국 역시 순전히 학생들로부터 수익을 올리기 위해 날림, 속성으로 모집단위를 채우고, 교육은 부실하게 행한 후, 준비도 채 안 된 졸업생만 사회에 무책임하게 배출하는 행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된 바 있습니다.

이런 학교를 졸업한 이들도 여튼 인가받은 정식 학사학위가 있으니 대우는 평등하게 받고자 합니다. 기업이나 기타 사회의 수요는, 일단 이들을 써 보면 그 수행하는 업무의 완성도가 불만족스러우니 평판을 형성하고 기피하게 됩니다. 버니 샌더스의 말도 인용되네요. "오늘날의 대학 졸업장은 50년 전의 고등학교 졸업장이나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이런 개탄스러운 풍토를 두고 "학문을 이용한 비리 행위나 마찬가지이다."라고도 합니다. 이 3장의 내용은 특히, 주어와 배경과 발언자의 이름만 한국식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아마 큰 논쟁, 소동이 벌어질 만큼 인화성이 가득합니다.

"모든 글의 90%는 쓰레기이다." 이 말은 인터넷이란 게 채 세상에 나오기도 전, 작가 시어도어 스터전이 남긴 명언이며 그의 법칙이라고도 불립니다. 저는 예전에 PC 잡지를 구독할 때, 어느 잡지에서건 자주 기고문을 볼 수 있었던 곽동수 교수님(목소리도 참 차분하시고 마치 직업 성우처럼 격조가 느껴졌던)의 어느 "예언"이 생각납니다. "정보가 넘쳐 흘러서 너무도 행복하겠지만, 대신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걸러내야 하는 다른 고초가 뒤따를 것이다." 그때만 해도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불순한 세력이 정치에까지 끼어들어 대중을 호도하는 "가짜 뉴스"가 판을 치는 지금에서야 그 혜안에 감탄하게 됩니다.

책에서도 지적하는 바처럼, 한 사람의 지혜보다는 열 사람의 숙고의 결과가 나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마음가짐만 바르다면 오히려 당연한 진리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는 부시의 군복무 허위 경력을 "증명"하는 서류가 오히려 가짜임을 지적한, 많은 선량한 시민들의 노력을 그 사례로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온라인 상에서, 조지 W 부시(이 사람이 아무리 한심하고, 지성이 떨어지고, 실패한 정치인이라고 해도)는 "비판해야 제맛"이라며 무작정 매도하는 경향이 얼마나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합니까. 한번 잘못 형성된 "여론"은, 심각한 날조와 중상모략까지도 모두 합리화시키는 어리석음, 범죄에까지 이르기도 하죠.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심각한 사회, 국가적 위기입니다. 근거도 없는 편협한 당파성도 눈살 찌푸려지는 건 마찬가지지만, 그렇다고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그 기본 의무까지 모조리 방기한다면 체제의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고, 정의로운 선구자들이 피땀 흘려 쟁취한 숭고한 과실을 모두 "무(無)"로 화하게 하는 역사의 퇴보입니다. 1990년대 이뤄졌다는 PEW 리서치의 한 조사(p247)은 이렇게 의견을 정리합니다. "... 한때는 젊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현명함과 비판 정신이 절로 담보되던 때도 있었으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더 이상 그들의 선배들보다 똑똑하질 못하다..." 물론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이 든 세대는 지금의 현실이 요구하는 많은 생존 능력, 업무 자질, 센스를 못 갖추고 있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덕목, 가치를 그 정신에서 아직 비워 내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걸 배울 여력이 없습니다.

허나 정보의 과잉에 시달리고,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분간 못 할 상품성 컨텐츠가 너무도 많이 생산되며, 치열하게 고민하기보다 진열장에 잔뜩 널린 아이템 중 아무거나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자는 듯, 내키는 대로 감각에만 충실한 이들이 너무도 많이 눈에 띄는 게 사실입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이런 생각 없는 삶이야말로 젊음의 특권인 줄 착각하는데, 앞서 말한 대로 이를 둘러싼 논의 역시 서로가 상대를 놓고 "확증편향"이라 비난하는 무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도가 없습니다.

예전(1979)에는 버글스란 밴드의 "비디오 킬 더 레디오 스타"라는 노래가, 오디오의 깊은 참맛을 모르고 무작정 시각적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쪽으로 단색화하는 대중문화의 변질을 개탄하기도 했으나, 이 책 5장은 신(新) 저널리즘을 다루며, 극좌 극우 구분않고 극단적인 의견으로 만사를 재단하는 사이비 방송이 판을 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그래서 이제(21세기의 두번째 십년기)는 거꾸로, "(전혀 바람직하지 못한, 당장 얼굴 안 나온다고 무책임하게 막말을 일삼는) 일부 라디오가 비디오 스타를 죽이는 꼴"이라고도 (재치 있는) 풍자를 하는군요. 사실 이는 말초적 선정주의로 일찌감치 치달은 주류 미디어의 잘못도 큽니다. 책에서는 아니타 힐과 클레어런스 토머스 대법관 지명자 사이의 격한 분쟁을 그 예로 다룹니다. 책은 이어, "과연 언론인은 전문가가 맞는가?" 같은 의문도 제기합니다. 이 역시, 우리 나라에서도 일부 미디어 종사자가 "기레기" 같은 비판을 듣는 것과 맥락이 같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국내에서 예견한 경제학자가 아무도 없었듯, 전문가 신화를 무작정 맹신하는 건 오히려 파국을 초래할 뿐입니다. 1980년대 말 그처럼 급작스럽게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었을 때도 이를 내다본 국제정세 전문가가 아무도 없었고(이 대목은 이 책 저자가 국제관계학 전공이므로 더 사무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1962년 핵실험에 참여한 그 똑똑한 과학자 누구도 그저 폭탄의 파괴력만 점쳤을 뿐 EMP 등의 교란 부작용의 정확한 규모를 정확히 못 내다보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의 공정한 시각은, 다음 주제를 "학자(전문가)들의 타락"으로 옮겨가며, 각종 연구 성과의 날조, 조작이 대학가에 만연하는데도 시스템적으로 이를 방지할 어떤 묘안도 없다면서 정직히 무기력을 고백하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나는군요. 비판도 이처럼, 자신을 향해 정직한 반성이 가능한 사람이라야 할 자격이 생기는 법입니다.

결론은, 그래도 "전문가 살리기"입니다. 모두가 제 기분대로 아무 이슈에나 코를 들이밀고 중구난방으로 떠들어서는, 결국 공동체 전체의 자멸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전문가의 양성과정에 보다 공신력과 엄정한 평가를 거치고, 시민은 발언을 하기에 앞서 충분한 숙려를 거치며, 인터넷상의 무분별한 명예훼손이나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제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시민 각자의 자정의식입니다. 나의 방자한 행동이 돌이킬 수 없는 윤리와 질서의 타락을 가져올 수 있음을 항상 명심하고, 개인 차원에서도 깨끗하고 공정한 시야를 유지하게 애써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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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 이야기 - 세계의 과거.현재.미래가 만나는 제7의 대륙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김한슬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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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표면 70%를 차지하는 건 대양입니다. 그 중에서도 태평양의 비중은, 평범한 이의 사고로는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 만큼 어마무시하게 큽니다. 태평양이니 대서양이니 남극해니 하는 게 인간의 편의대로 갈라 둔 인위적인 경계로 붙여진 이름, 구역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오히려 인위적이기에 넓이나 비중, 혹은 무지의 정도가 고르게 배분되었음직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한편으로 신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 이유를 곱씹게 만듭니다. 이런 점도, 어떤 날카로운 이야기꾼, 작가 같은 분이 일일이 발견해서 둔감한 독자들에게 꼬집어 주지 않으면, 그저 당연하겠거니 넘어갔을 화제라는 게 씁쓸하기도 하고요.

태평양이 감춘(그렇다기보다는, 어리석은 우리들이 여태 눈 감고 지나간) 사연의 깊이와 범위는 그 물리적 규격보다 더 엄청납니다. 그 위를 지나다닌 인간들의 곡절도 그렇고, 수천 년 동안 아름답고 풍요로운 섬 위에 터잡고 살다 한순간에 재앙을 맞은 이들의 내력도 그러합니다. 이런 재앙은, 하찮은 인간의 지력으로는 감히 측량도 할 수 없는 자연의 웅대한 깜냥에 의해 빚어진 것도 있고,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못난 (같은 동족인) 인간이, 섭리 무서운 줄 모르고 태연히 저지른 범죄에 기인한 것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게, 저자는 문화권에 따라 논란도 크고 정서적 거부감도 작용하곤 하는 연호, 기원 시점에 대해 새로이 BP라는 표준을 잡자는 말을 서두에서 제안하네요. P가 "퍼시픽"의 약자 아닐까 짐작했으나, 그 말은 끝까지 꺼내지 않고, 대신 수십 년 전부터 여러 논자들이 제기한 것(1950년 1월 1일을 시점으로 재조정)처럼 Before Present의 약자라고만 합니다(그렇다고는 해도, 저자는 여러 "태평양적 사건"이 이 연도 근방에서 일어났음을 상기하며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저 여담만은 아닌 게, 첫째 저자의 1) 미래지향적, 진보적 세계관이 엿보이며, 2) 문화 상대주의를 옹호하는 분명한 가치관이 벌써 암시되는 대목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리뷰 말미에 써야 할 사항을 지금 미리 좀 말하자면, 이 책은 역자 후기에도 잘 나와있듯, 일종의 퍼즐 맞추기식 구성을 취하고도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역자의 표현처럼 "대체, 왜 이런 주제를 이 챕터에서 뜬금없이 꺼내는 걸까?" 같은 의문이 들 만도 한 구성이라는 뜻입니다. 역자 후기까지 읽기 전 일개 독자인 저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역시 저자 윈체스터는 실망시키지 않고 열심히 읽은 이들에게 꽤나 뚜렷한 큰그림을 떠올려 줍니다. 마지막 10장은 그 뒤에 따로 에필로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 아홉 개의 챕터를 어느 정도 포괄, 종합하는 구실까지 합니다. "미국, 서유럽은 더 이상 태평양 서안의 사정에 개입하지 말고, 그들이 그들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도록 돕는 것이 맞다"는, 다소 놀라운(저자가 영국인이고 평소 성향에 비추어 볼 때) 결론을 맺기 때문이죠.

에필로그를 빼고 총 열 개의 챕터인데, 이 중 역사, 인문 관련 주제는 넉넉히 잡아도 다섯 개를 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기후, 지질학, 산업과 기술 관련 토픽들입니다. 몇몇 대중서들이 제목만 "OOO 이야기"로 걸어 두고는, 여러 문헌(다른 대중서 포함)에서 야사(野史) 토막을 짜집기해서 펴내는 관행과는, 진정성과 완성도의 차원이 다르다고나 하겠습니다. 저자가 현지에 다녀와서 느낀 감상과 소회(물론 꽤나 단편적이라든가, "나 책상위에서 적당히 쓴 것 아님"을 강조하려고 억지로 삽입한 듯 보이는 대목도 없지는 않았습니다만)를 일일이 피력하고, 진짜 "태평양"의 일관된(너무 크니까 애초에 어려운 작업입니다만) 사연을 구축하려 치밀한 계획을 세운(저자 서문에도 잠시 그 작업 과정이 언급되죠)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는 책이란 게 분명합니다. 제목이 부끄럽지 않은, "진짜 태평양 이야기"가 맞습니다.

이기적이고 일방적 의지를 상대에게 관철시키기 위해(본인들은 오히려 피해자 행세를 하며 어지간히 합리화를 시도합니다만), 인간은 어리석게도 번영과 공존을 위한 수단보다는, 나와 상대의 삶을 동시에 파괴시킬 수 있는 무기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피해자 행세도 자신이 수세에 몰릴 때만 어설프게 연기할 뿐,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한다 싶으면 곧바로 정의의 백기사 모드로 돌입하여 폭력과 악의를 윤색합니다.

보통 이런 책들이 비키니 섬, 롱겔라프 섬 원 거주자들의 비극에 대해서만 감성적으로 강조하는데, 저자는 물론 "이 모든 소동이 다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를 되묻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신무기의 치명적 해악에 대해 미진한 예견만으로 무리수를 두었던 모두가 다 피해자라는 시각입니다. 물론, 실험을 주도한 미국의 당국자들, 무심했던 대중에 더 큰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전한 반성과 기조는 열정(여기에는 지난시절 앞다퉈 태평양으로 몰려 온 제국주의에 대한 통렬한 비판도 포함)적으로 표현됩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이 비교적 자세히 설명되어, "준비 안 되었던 미국"의 어설펐던(사악했다기보다는) 면모가 잘 파악되었습니다.

앨런 그레이브스 같은 이는 그런 심각한 피폭을 당하고도 기적적으로 건강을 찾은 놀라운 예죠. 반면, 이 책에도 나오는 해리 댁라이언 같은 학자는 우리가 잘 알듯 사고 후 몇 시간 만에 죽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김정렴 전 비서실장 같은 이는 히로시마의 "그날" 바로 현장에서 피폭을 당한 분인데, 1924년생이면서도 아직 정정히 생존해 있습니다. 여튼 화제도 풍성하고, 시야도 적절히 중립적인데다. "그 장군은 왜 죽었을까?" 같은 음모론도 양념처럼 끼어들기 때문에 읽기에 참 재미있습니다.

저자는 스포츠를 꽤 즐기시는 듯합니다. 책 3장은 주제도 흥미롭긴 합니다만, 본인이 서퍼가 아니라면 쓸 수 없는 내용이 무척 많았습니다. 2장도 대뜸 라크로스 경기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물론 배경 첫 단계가 캐나다이므로 그곳 분위기를 환유할 만한 소재가 나올 필요는 있었겠죠. 참고로 여기(p109: 밑에서 다섯번째)에서는 스포츠 종목 이름이지만, 저 앞 p78: 9에서의 라크로스는 지명입니다. 이 지명도 물론 라크로스 경기장이 그 유래가 되어 붙여지긴 했고, 캐나다에서 아주 멀진 않죠(태평양하고는 무지 멉니다만).

소니는 처음 도쓰코라는 약칭으로 출범한, 자그마한 제조업체였습니다. 도쓰코는 東通工을 일본식으로 읽은 거죠. 펜대를 휘두르는 학자들의 시대가 가고, 이제 엔지니어의 시대가 열렸다는 자못 장엄한 제사가 눈에 띄지만, 사실 문필가들도 그렇고 엔지니어들은 더욱 겸손한 기질입니다. 미국의 앞선 산업 풍조와 연구 성과를 "동양식으로 존중하느라" 처음에는 기를 못 펴고 조심스레 연구했던 일본의 발명가, 엔지니어(당연, 모리타 아키오 회장과 이부카 마사루 같은, 나중에 거물이 된 이들을 포함)들은, 이후 혁신이 작은 성과를 내고부터는 과감한 실험과 개발에 박차를 가해, 세계인이 모두 기억하는 소니 신화(사명 변경은 유행가 가사 한 구절 "sonny boy"에서 따왔다고 책에도 나옵니다)를 이루죠.

에디슨의 GE도 그랬고, 이런 거인들의 출발은 참으로 미미했다는 것,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우아한 이론 과학자의 낭만과 여유는 간데없고 무수히 많은 소재를 두고 시행착오를 거치는 모습도 닮았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신화는 워낙 유명해 지금도 미국의 나이 든 세대는 "일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공식처럼 여길 정도인데, 이 상품의 대히트에는 경쟁 업체의 갑작스런 철수, 전후 처참한 피해(그리고 패전 직전 군부정권의 단속) 때문에 라디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던 도쿄의 사정이 동인으로 개입했다는, 묘한 우연이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점도 저자는 지적합니다. 이 챕터의 말미에는 현재 많이 쇠락하고 초라해진 도쿄 부두와, 세계 최대 규모의 컨테이너항이 자리한 상하이를 비교하며, 그렇게 그렇게 대세의 허브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해 가는 무상한 풍경도 묘사됩니다. 물론 한국 가전 업계의 급부상도 언급되죠.

토르 헤위에르달의 학설이 틀렸다는 지적은 이 책 3장에서도 나오고, 다시 책 저 뒤 에필로그에서, 기적의 항해인 호쿨레아호 이야기에서도 또 나옵니다. 폴리네시아인 포함 태평양의 원거주자들은, 다른 인종이 도무지 흉내 못 낼 뛰어난 항해술을 보유했는데, 마치 철새가 몸 속에 내재된 정교한 생체 기제에 의해 제 갈 길을 찾아가듯, 해도도 전혀 보지 않은 채 항로를 유지하는 놀라운 기법이죠. 서핑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알몸을 드러내고 파도에 올라 묘기를 보이는 모습이, 일부 편협한 선교사들에 의해 비난당하기도 했으나,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누구에게나 평등한 파도(파도가 해안에서 부서지는 물리학 원리에 대해서도 주석을 통해 잘 설명해 주네요)"를 이용해 짜릿한 쾌감을 플레이어(서퍼)에게 선사하는 이 운동에 대해, 태평양 원 거주자들의 공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그 혜택을 누렸겠냐며 무척 열띤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생전 서핑하고는 연이 없는 독자도 구미가 동할 만큼이죠.

4장은 북한 이야기라 우리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는 좀 반응이 엇갈릴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일단 "영, 중, 미, 소 4국이 애초 안(案)대로 분할 점령하여 신탁 통치를 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긴장된 대치 상태가 생기지도 않았겠으며, 찰스 본스틸의 자의적, 편의적 38도선 획정이 부른 비극이겠고, 한국(문맥상 북한을 뜻하는 듯합니다)은 소련의 퇴조에 따라 독립했을 것이다..." 대목은, 너무도 거칠고 근거없는 주장이라 반박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습니다. 이건 정말 대꾸할 가치조차 없는 객설인데, 제가 서평 앞부분에서 저자의 건전한 가치관을 먼저 옹호했던 건, 지금 이 부분을 염두에 두고, 그래도 전체적으로 보면 이 책은 대단히 뛰어난 구성과 비전, 겸손한 주제의식을 가진 게 분명하다는 전제를 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부분을 두고 전체를 싸잡아 매도할 수는 없죠. 정 불편한 분들은 이 4장은 빼고 읽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자는 미국인도 아니고 미국을 옹호할 이유도 없는 분이지만, 이 4장에서는 푸에블로 호의 치욕에만 너무 포커스를 두는 면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책의 기조만 따라가도 그 팩트를 추리자면, 결국 미국이 원산 근해에서 실속도 없고 국제법 관행에 별 부합하지도 않은 무리한 정찰을 감행하다 망신을 당한 것에 지나지 않느냐는 쪽입니다. 물론 그 뒤에 서술된, 이른바 도끼만행 사건은 이 집단의 야만성과 무지막지함을 잘 드러낸 사건이긴 합니다만. 미국이 태평양 서안에서 "정찰"을 벌이다 망신 당한 사건은 이거 말고도 저 뒤 10장에서 중국과의 정찰기 충돌, 8장에서 지중해와 스페인 토마토 농장에 수소폭탄을 떨군 사건 등 여럿이 나옵니다. 참고로 저자는 각주에서 "냉전이란 용어 사용의 최초는 조지 오웰"이라고 하시는데, 우리는 보통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만으로 알고들 있죠. 시기적으로는 이 책에 나온 대로 <트리뷴>에의 오웰 기고가 더 앞섭니다.

5장은 태평양 서안 여러 지역에서 식민주의 시대의 본격 종식을 알리는 여러 상징적인 사건을 다루는데, 그 자체로는 야사라서 정치적 중요성을 갖지 않지만, 저자의 이야기솜씨가 너무 구수해서 꼭 주제에 동조하지 않더라도 사연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습니다. 격동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잘 알려진 둥젠화의 부친 이야기부터 해서, 둥젠화가 자금 사정으로 궁지에 몰렸을 때 대륙(그때도 그 정도 여유가 있었나 보죠? 아직 본격 개혁개방 성과가 나타나기 전인데)에서 융자를 받고 "입 안의 혀처럼 굴며 태도를 바꾸었다"는 서술이 특히 눈에 띕니다. 대처 당시 수상이 덩 주석과의 회동을 마치고 충격을 받아 넘어졌다거나, 찰스 왕세자가 정부 이관 과정에서 각별히 불쾌감을 표시한 것 등, 영국 왕실로부터 훈위도 여럿 받은 저자의 감정도 곳곳에서 느껴지는 대목도 있죠. 핏케언 제도의 성 추문, 베트남에서 미국과 프랑스가 나란히 겪은 치욕 등, 이 챕터는 이차 대전 후 정신 못 차리고 과거로 회귀하려던 식민주의의 참패상을 (이 책 전체의 주제와 연결하여) 서술합니다.

저자는 본디 지질학자입니다. 6장에서는 그래서인지, "엄청난 표면적을 통해 태양 에너지를 흡수 혹은 복사하는 태평양"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태풍 등 기상 현상의 결정적 인자를 다룹니다. 저자가 특별히 존경심을 품었을 길버트 워커의 발견, 자연재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일본이 보유한 슈퍼컴퓨터, 또 이를 최근에 능가한 중국 측의 시설 등, 방대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태평양의 "심기"를 헤아리기 위한 각국의 노력과, 그에 비해 여전히 압도적 위력을 자랑하는 태평양의 위력도 실감나게 표현되네요.

7장은 호주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고프 휘틀럼이 총독과 알력을 겪으며, 이 상호 파면 소동을 통해 비로소 오스트레일리아가 영국으로부터 "사실상 독립"을 이뤘다는 식으로 리버럴 성향의 해석을 내립니다. 제가 눈여겨 본 건 특히 이 대목인데, 앞서 말한 대로 저자는 켐브리지를 졸업하고 여러 수훈도 입은 신분입니다. 영국인임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죠. 헌데 여기서는 오스트레일리아 좌파 진영을 노골적으로 옹호합니다. 저자의 편향되지 않고 공정한 집필 태도를 여실히 확인할 수 있죠. 사실, 고프 휘틀럼은 꼭 동시대인들로부터 지지만 받은 정치인은 아니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 그가 물러나고 오히려 반대노건이자 라이벌이었던 맬컴 프레이저가 장기집권을 할 정도였죠(저자는 자기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명백한 팩트를 흐릿하게 표현합니다). 여튼 저자는, 오늘날까지도 일부 비뚤어진 백인들이 가진 "인종차별 경향"을 끝까지 비판하며, 이런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상 오스트레일리아는 결코 태평양 사회의 일원이 못 될 것이라며 다소 강경하기까지 한 고발로 마무리짓습니다. 이민자 정책에 대해서도 그의 입장은 확고한 리버럴 쪽입니다(각주를 보세요). 이 외에도,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건축, 설계에 얽힌 뒷이야기부터 해서 재미있는 읽을거리가 많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 섬 이야기는 불과 며칠 전에도 신문에서 보도되었을 만큼, 어머니 가이아를 노하게 할 만한 인간들의 우행 그 상징입니다. 이 책의 8장과 9장은, 왜 이 책이 "태평양 이야기"라는 제목을 달 자격이 있는지를 증명해 주는, 아름답고 유익한 서술로 채워진, 농도 높은 태평양의 내력을 담았습니다. 전통 이론은 태양 광선을 통해 전해진 에너지로 광합성을 식물이 이루고, 이를 먹이사슬 최하에 둔 채 고등 생물이 진화했다는 쪽이었습니다만, 심해에서 전혀 햇빛을 못 받고(엄청난 압력에까지 시달리는) 일부 생명체가 어떻게 독자적인 생존을 이뤘는가, 그 답은 바로 콜린 캐버너가 최초 제기하고 증명까지 마친, "황을 산화시키는, 갯지렁이 체내의 박테리아" 이론이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자는 9장의 래리 앨리슨에 대해서도 그렇고, 저 앞 3장에서 서핑 도구 제조업자 조지 클라크에 대해서도 그렇고, 괴짜 기업가에 대해 그리 고운 시선을 주지 않는 태도네요.

중국과 미국은 앞으로 과연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야 할까요? 10장은 빼어난 전략가들의 보이지 않는 (자국에의) 기여가 역시 저자 특유의 쉬운 문체로 서술됩니다. 앤드루 마셜 같은 탁월한 이가 창안한 전략, 이에 대해 A2/AD로 대응한 중국 측의 맞수(마치 만리장성 건축을 연상케 합니다. 책에는 그런 말이 없습니다만) 과정을 보면, 세상이 이처럼이나 우리가 모르는 배후에서 치열한 계산과 잇속을 챙기며 무섭게 돌아가는 점 뼈저리게 각성합니다, 정작 태평양에 면해 있으면서도 내부 갈등과 근시안적 편견으로 미래는커녕 현재까지도 망치는 우리들의 어리석음은 어떻게 교정되어야 할까요? 저자의 진단대로 미래는 태평양 시대인데, 한국은 "태평양 공동체"에서 얼마나 큰 지분, 발언권, 비전을 예비했는지 그저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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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혈 2017-10-13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439 제사에 보면 ˝이 사랑스러운 풍경은 구름마저 라틴을 찾아오게 하네..˝라고 나오지만,

Not all the botany of Joseph Banks, (중략) could find the Latin for this loveliness . . .

이렇기 때문에,

저 조셉 뱅크스의 모든 식물군이, 그 아름다움에 걸맞은 라틴 (학명)을 찾는 건 아니라네...

뭐 이 정도로 옮겨야 하지 않을지요.
특히, ˝구름˝이란 단어는 원문에 전혀 없습니다. 아마 조동사 could를 cloud로 잘못 보신 것 같아요.
 
주식투자, 전자공시로 끝장내기 - 공시 속에 기업의 본심이 숨어 있다!
윤킴 지음 / 아이앤유(inu)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어떻게 투자해야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고, 후회도 남기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은 아직도 전근대적인 동기와 방식에 의해 결정하고, 큰 돈(본인에게는)의 용처를 정하며,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듭니다. 자료와 분석과 합리적인 전망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분위기에 휩쓸리고, 주위의 입소문에만 의존하고, 감정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어쩌다 한 번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그것이 추세화되어 지속적인 수익 창출로 이어질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투자뿐 아니라 세상사 모든 이치가 마찬가지입니다만, 공부, 연구를 한 후 신중하고 이성적인 과정을 거친 후에 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럼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가? 어떤 정보를 참조해야 하는가? 그 답은 "전자공시"에 다 나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열람을 위해 다소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했으나, 현재는 모두에게 오픈시켜 둔 사이트 몇 곳에만 접속하면 일목요연하게 정보를 살필 수 있습니다. 정석의 길이 여기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관성적으로 입소문, 근거 없는 충동에 또다시 기댑니다. 저자분이 이런 책을 펴낸 것도, 이런 현실이 안타까워서일 겁니다. 바른 방법을 젖혀 두고, 구태여 굽은 길을 택하는 생리가 딱해서일 겁니다.

전자공시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사이트에서 이뤄지고 투자자들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소는 http://dart.fss.or.kr입니다만 책에도 나와 있듯 전자공시라는 키워드를 유명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써 넣는 편이 훨씬 빠르고, 혹 문자 일부를 미스타이핑했을 때 위조 사이트로 잘못 이동되는 위험도 막을 수 있겠습니다. DART나 "다트"는 번거로운 다른 정보가 함께 제시될 수 있으므로 "전자공시"가 가장 무난하겠고, 한번 접속하신 후 즐겨찾기를 해 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은, 마치 부동산 하시는 분들이 국토교통부나 민원24 같은 데 아예 붙박고 살듯이, 입수 가능한 것 중 가장 객관적인 정보를 옆에 끼고 살아야 그 결정에 후회가 없습니다. 비슷비슷한 수준끼리 백날 짙은 담배연기 뿜어대고 부족한 공신력 품앗이하며 미심쩍은 정보 주고받아 봐야 소용 없죠.

공시는 수시로 이뤄지므로 어떤 것이 가장 업데이트된 보고인지는 한눈에 안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께서는 검색창 우측의 "최종 보고서" 란에 체크를 하는 옵션을 소개해 줍니다. 이런 팁도, 좀 뭘 아는 그룹과 담소를 나눠도 나누는 분들은 아는데, 주식 투자를 몇 년씩을 했다면서 "그런 게 다 있었어?"라고 되묻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발전이 있으려면, 애초에 수준이 되는 무리에 끼든지, 아니면 독한 마음 품고 수준 업그레이드를 위해 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주식 투자를 한다면서 정작 배당이 뭔지, 왜 특정 날짜를 넘기면 "배당락"이란 게 발생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면서 무작정 남들 따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주식을 보유하는 목적은 본디 투자자로서, 혹은 회사의 지분권자(아무리 미미해도)로서 그 회사가 올린 실적을 공유받기 위해서죠. 배당은 그래서 주식 보유의 본체이자 본질적 목적입니다. 매도 차익은 그 다음 문제이고요. 하기는 요즘 이슈인 "딥러닝"이란 것도, 목적도 모르고 알고리즘도 형성 안 된 컴퓨터에다 입출력세트만 잔뜩 집어넣어서 패턴을 형성하게 하는 게 기본 원리입니다만, 사람은 기계처럼 연산 능력이 뛰어나지도 못할 뿐더러, 몇 번의 요행을 통해 바른 교훈을 얻기(컴퓨터는 혹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보다는 전혀 상관 없는 개인적 신념이나 근거 없는 자신감만 강화하는 버릇이 있습니다("난 타고난 주식 촉이 있나봐!"라든가, "공신력 있는 아무개 말을 따랐더니 잘 되었어!" 같은). 생각 없는 추종, 관성적 투자라면 서너 차례야 운이 좋았다손 쳐도, 언젠가는 단단히, 공부 안 한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보통 교과서에는 딱딱한 설명과 정의만 나열되어 있지만, 이 책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함께 듭니다. 예를 들면 p031에 나온 "선데이토즈"의 액면 병합 결정인데, 그 다음 페이지에 "5의 배수가 못 되고 남는 단수주"의 처리 같은 건 어떻게 하는지도 설명이 친절히 나와 있습니다. 과거에는 이런 걸 단주(端株)라고 했죠.

주식시장을 꾸준히 관찰 안 한 이들은 현재 네이버, NHN엔터, 그리고 웹젠의 소유지분관계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책에는 사항 설명을 하면서 든 예시 중에, 이해진 회장, 이호준 회장,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등의 그간 사정을 설명해 주고 있어서,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부수적으로 이 스토리가 머리 속에 자동 연결, 생성될 정도입니다. 고수의 책은 이처럼, 여담이나 예시 속에서도 어떤 교훈이랄까 맥락을 배울 수 있는 점이 좋습니다.

pp. 38~40에는 특히 2016년에 있었던 NHN 유상증자(실패한)에 대해 일종의 케이스스터디처럼 독자를 위한 설명을 베풉니다. 입소문이나 추종 투자를 하는 이들은, 이처럼 뭔가 거대한 움직임이 수면 아래서 이뤄져도 그 맥락을 못 찾습니다. 혼자 힘으로 이처럼 정확한 분석을 하려면 그래서 따로 이런 책을 보고 정석 공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남들처럼 맥락 있는 이해를 하고는 싶어서 열심히 귀동냥을 합니다만 그런 저급 정보를 아무리 모아 봐야 근본 바탕이 없는데 양질전화가 이뤄지겠습니까.

우회상장 같은 좋은(그런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슈가 대두되면 또 일부 소양 없는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광풍이 휩쓸고 지나갑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비상장은 펄이다, 상장은 쉘이다 같은 근거 없는 도식화가 이들 공부 안 한 분들 사이에서 이뤄지지만, 요런 심리를 정확히 꿰뚫는 기업사기꾼들의 먹잇감이나 될 뿐이죠. 저자는 그래서 이른바 먹튀 IPO, 배임, 횡령을 특히 주의하라고 권고합니다. 투자에서 어떤 스테이지만 단편적으로 주목하면 사기 당하기 딱 좋습니다. 이 책에도 잘 소개되어 있듯, 지금은 숨은 진주나 의기양양하게 공개하는 듯 기대를 모으지만, 혹 나중에 어떤 한심한 꼴로 "상폐"를 예비할지도 경우의 수 중 하나로 머리 속에 그려져야만 합니다. 이 챕터 후반에는 몇 년 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스팩" 형태의 상장도 소개됩니다. 저자의 한 마디, "스팩이 제안하는 조건은 정식 상장할 때에 비해서는 좋지 않은 게 보통이므로,... 직접 코스피, 코스닥에서 공모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일반 투자자들도 염두에 둬야겠습니다. 용어를 정확히 알아야 올바른 스토리가 형성되고 내가 행하는 기대가 정확한 예측에 가까워집니다.

유상증자는 물론 책에 나온 대로 대개는 악재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어떤 동기, 계획에서 이 유상증자가 이뤄졌는지 투자자 입장에서도 입체적 분석을 해 봐야 후회 없는 투자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악재, 호재, 악재,.. 처럼 메뚜기뜀을 뛰어 봐야 엉뚱한 이들 좋은 일만 시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기존 주주들은 꼭 청약을 해야 하느냐? 책의 표현처럼 "해 봐야 본전"이지만, 안 하면 지분율이 낮아지는 게 또 현실입니다(단, 자기주식 보유 경우 다소 예외). 행사를 안 하려면 신주 인수권은 따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적절하게 이를 두고 "콜옵션의 일종"으로 규정합니다(이에 대해서는 p102의 전환사채 파트도 참조. 또, p104 등에 나온 신주인수권부 사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함께 읽어 두면 유익합니다).

반대로 무상증자는 대개 호재로 간주됩니다. 저자는 "꼭 좋다고만은 못할 이 이슈에 대해 왜 시장은 (대개) 호의적으로 반응할까?' 같은 의문을 제기하며, 그에 대한 분석을 독자들에게 해 줍니다. 환율과 금리 변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똑같은 조치 단행이, 어떤 때는 청신호이며 어떤 때는 경계경보가 되는지, 정보를 입소문에 의해 단편적으로 처리하는 습관이 굳은 이들은 도통 이해를 못 합니다.

20년 전 외환위기 때 지겹게 들은 것처럼, 감자 중 무상감자는 보통 회사의 결손이 심각하여 살아날 가망이 없을 때 이뤄집니다. 오늘도 80원이나 하락한 지엠피의 경우가 책에 나와 있기도 한데요. 다만 이런 한계에 몰린 기업 주식들이 가끔 단기호재(혹은 그러리라는 오인)로 상승하는 국면이 있기는 합니다. 책에서 누누이 강조되는 대로, 경솔히 일희일비할 게 아니라 배후의 동인을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유상감자가 이뤄지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투자자금 회수, 갑작스런 벌과금 부과, 소송 패소, 상속세 납부, .... 책에 소개된 제페토의 사례는 투자금 회수의 경우로 보고 있습니다. 결론부에 나온 대로, "... 이 과정을 통해 지분 정리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같은 대목을 유심히 읽어야 하겠습니다.

출자전환은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외환위기 당시 하이닉스가 겪은 일이 그 대표라고 할 수 있죠. 당시 근로자 대표는 채권단을 향해 "출자전환을 하란 말입니다!" 같은 절규를 내뱉기도 했는데(안 그러면 당장 거리에 내몰리는 대량 실업 사태 발생), 여튼 그런 과정을 거쳐 현재는 워크아웃 규정도 많이 정비되고, 상법 관련 규정도 개정되고, 통합 도산법도 만들어져 시행되는 상황입니다.

리픽싱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죠. 저자께서는 "전환가액 조정 방법은 참고만 하면 된다"고 독자에게 부담을 덜어 주려 하시는데, 바로 두 페이지 뒤에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돈 벌려고 하는 공부인데 이걸 날림으로 벼락치기로 하면 부모님 선생님이 속 썩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손해입니다. 공부하는 이유는 주식카페나 피씨방에서 아는 척 하는 게 아니라, 내 머리 속의 예측 모델을 덜컹거림 없이 유연하게 동작시키려는 겁니다. 공식을 잘 읽어 보면, 아 그래야만 하겠구나 하고 상식선에서 이해가 됩니다. 쓰잘데기없는 정치 가십은 잘만 외우면서 정작 필요한 공부는 최소한으로만 하려고 요령을 피워선 안 되죠.

상환전환 우선주는 "주식"인데도 이제는 그 실질을 반영하여, 전환사채나 마찬가지로 부채 계정에 분류되게 합니다. 단 상환권을 기업에서 가질 때는 자본으로 인정된다는 점 유의해야겠죠. 이래서 (책 맨앞에도 나오지만) 주석도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소한 듯 보여도 날짜 계산을 잘못해서 손해를 안 보려면, "거래일, 휴장일"의 변동에 따라 언제까지 체결을 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겠습니다. 마침 2018년 연말이, 책에 나온 대로, 자칫하면 착오를 일으키기 쉬운 경우이기도 합니다.

자사주 매입이 왜 이뤄지는 지도 책은 자세히 설명합니다. 이 파트 말고도, p138에 보면 공개매수는 어떤 동기에서 이뤄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이처럼 같은 현상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은 "어떤 시나리오의 일부"로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한 개념 파악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초두에 개념 파악을 정확히 해야, 후회 없는 투자가 가능할 뿐 아니라, 뭘 자기 힘으로 예측하고 적중시키는 쾌감이 생깁니다.
단, 좀 아쉬운 건 2016년 4월의 한미글로벌 사례가 좀 자세히 다뤄졌으면 했는데요. 이 사례에 대해 저자님의 탁견이 궁금해서였습니다.

p151의 인적 분할, 물적 분할은 많은 이들이 구별을 어려워하는 문제 중 하나인데, 저자께서 직관적으로 최대한 쉽게 설명해 줍니다. 바로 뒤에 일동제약의 2016년 사례가 소개되는데, 이 케이스가 공교롭게도 두 유형이 동시에 융합되기도 했고, 설명이 소상해서 제 주변에 있는 이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이 대목만이라도 꼭 찾아서 읽어들 보셨으면 하네요.

그 뒤에 보면 메가스터디 이야기가 나오는데, 신정부뿐 아니라 직전 정부도 사교육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었으므로 새삼스러운 소리는 아닙니다(그 앞 MB 정부 제외). 또, 이 기업도 사업다각화(브랜칭아웃)를 통해 생존의 길을 절실히 모색하지 기존 노선만 미련하게 고집하겠습니까? 공무원 시험 응시, 편입, 자격증 대비 등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외연이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회사원(직딩)들도 공부를 해야 해요. 일일이 어떻게 정부가 너구리잡듯 이런 걸 다 손을 대겠으며, 또 그럴 유인이 뭐겠습니까?(애들 교육은 학부형들이 아우성이니 그렇다 쳐도) 그 기업 오너, CEO가 얼마나 똘똘한지, 시장에다 적정 신호나 줄 만큼 여유가 있는지, 전략적 대처를 하는지를 더 살펴야 합니다. 업종이 문제가 아니라요.

p170에는 영업양수도와 자산양수도의 구분에 대해 역시 직관적인 설명이 잘 나와 있습니다. 특히 자산양수도는 고용 승계의 부담이 적으므로 "악용"되기도 한다는 서술이 돋보입니다. 영업양수도에 대해서는 2014년 삼성 - 한화 그룹 간의 이른바 "빅딜" 사례를 참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화는 직원들의 "신분 강등"을 고액의 성과급으로 잘 무마한 듯합니다. 하긴 성과가 잘 나오고 나서야 가능한 조치이긴 하죠. 회장님이 통이 크시니까...

지주회사 전환시 일거에 양도차익이 발생하면 납세 부담이 커집니다. 이런 부담을 줄여주고 정책적 배려가 이뤄진 게 과세이연인데, 과세이연은 이 경우뿐 아니라 다양한 이유, 조건에서 규정됩니다. 그래서 주식 공부하시는 분들은 세법책, 회계책도 틈틈이 보고 완벽에 가까운 소양을 쌓아야 합니다.

부록에 실린 "사업보고서 읽기"도 우리가 눈여겨 봐야 하겠습니다. 사실 공시사항 확인에 버릇을 잘 들이면 계속 정보가 "고프게" 되고, 해당 기업 사정이 막 궁금해지면 이런 보고서를 안 들춰 볼 수가 없는데, 처음에 습관이 안 들면 어렵죠.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땐 내가 필요한 것만 뽑아 보겠다는 생각은 좋지 않습니다. 고수의 조언을 통으로 흡수해야 합니다.

p218에 보면 "....'카카오'를 마치 남의 일처럼 써 놓았다. 왜 그럴까?" 라고 의문을 제기합니다. 보고서, 혹은 무엇을 읽을 때라도, 처음 배우는 입장에선 모든 게 다 신기하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무덤덤하게 수용하면 그게 예전에 하던 입시 위주의 죽은 공부죠. 존속법인이 다음커뮤니케이션이고, 소멸되는 법인이 카카오이므로 저런 주객 구분이 이뤄진 겁니다. 단, 책에도 나와 있듯, 이후에는 사명 변경이 이뤄졌다는 설명이 나오므로, "카카오가 소멸되었어?" 같은 의문은 자연스럽게 해소됩니다.

책은 깔끔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사항만 정리되었으므로 산만하지 않게 읽을 수 있으나, 예시와 심화 팁도 많이 삽입되었으므로 맥락 있는 이해가 가능합니다. 물고기 그 자체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일러 주는 책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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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메이커 - 개정증보판
박희아 지음 / 미디어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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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의 세계적 위력에서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듯, 어쩌면 산업 전 분야를 통틀어 현 시점에서 가장 막강한 크리에이티브를 뽐내는 섹터는 이런 대중음악 공연 섹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모두 여덟 분 "아이돌 메이커"들과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가장 경쟁도치열하고 폭발적인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분야인만큼 그 완성에 기여하는 분들의 정신 자세, 직업적 소명의식, 프로페셔널리즘, 개인적이기까지 한 애착 등이 정말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책에도 나오듯이 이 분야 종사하는 이들이라도 다 여기 인터뷰이들처럼 "목숨 걸고" 일에 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남의 성과를 가로채려는 이, 남의 고민과 창의력을 착취하면서도 "난 꼰대 아냐. 페이는 준다고."처럼 지레 생색을 내는 뻔뻔스러운 사람, 일은 대충 하면서 잘 결과가 안 풀리면 남탓 환경탓이나 하는 인간 등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한심한 군상이 목격됩니다. 결국 살아남는 건 그런 불성실하고 무능한 이들이 아니라, 책에 실린 분들처럼 자기 일 소중한 줄 알고, 내가 작은 기여(작지도 않지만)를 베푼 이 퍼포먼스, 이 기획, 이 "아이들"이 다 내 작품이라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미션, 프로젝트에 임하는 분들이 점점 늘어날 때, 한국의 자본주의 전체 스케일도 더 효율화, 고도화, "윤리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일반 독자들은 간신히 "허 그런 분들이 무대 뒤에서 실질적인 창조주 노릇을 했구나." 같은 반응이 나올 만한, 성함이 낯설게 들리는 분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혹은, <프로듀스 101> 방영 당시 TV 화면에도 잠시 모습이 나왔던 분도 계신데, 그 사실(책 중에서는 다소 기억하기 낯뜨겁다는 듯 언급됩니다)을 아는 이들이라면 "아 그분!"하고 바로 연상도 되겠습니다.

여튼 우리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들이지만, 인터뷰어 박희아님은 익히 잘 아는 분들이었다는 듯(그쪽 매체에서 오래 취재하셨으니 당연하기도 합니다만), 평소부터 그들의 동선과 경향에 깊이 공감하셨다는 등 자연스럽게, 또 핵심을 찌르는 질문들을 하셔서, 책의 내용과 기획 취지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 독자를 대신해서 궁금했던 걸 해소해 주시네요."라기보다, 아예 "이런 걸 궁금해했어야 옳았고, 독자의 미진한 인식을 선도적으로 깨우치는 질문들"이었다고나 해야 타당한 평가겠습니다.

또 이렇게 말을 하면 너무 어려운 책 아닌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독자 중 오히려 나이 어린 연예인 지망생이라든가, 그저 아이돌 가수들을 좋아해 온 평범한 십대들이라면, 이 업계의 복잡한 생리라든가 다소 혼탁하기도 한 분위기, 일반 사회인(성인)으로서 이해가 잘 안될 법한 인사이드 스토리도, 오히려 바로 그 본질이 피부에 와 닿을 만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됩니다. 그런 어린 독자들에게라면 미리 "이 바닥"의 뜨겁고 다이내믹하고 한편으로 추접스럽고 개탄스럽기도 한 사정에 대해, 미리 면역력까지도 길러 주는 좋은 읽을거리가 되겠으며, 일반 성인 독자에게라면 세상에 이처럼 치열하게 사는 분들도 있구나, 뻔하게 남들 하던 루틴에만 묻어가며 남들 받는 건 다 챙기고 싶어했던 태도가 얼마나 부끄러운지에 대해서도 정신이 화들짝 들 만큼 좋은 각성의 소재가 될 것 같네요.

"밖에서 만난 엄마(p22, p63 등)". 어떤 멘토라든가, 스승이라든가, 조력자 같은 개념에 비해, 이 말은 "아이돌 메이커"들이 해당 업계에서 아직 어린 연예인(혹은 후보자)에게 어떤 위상인지를 정말 잘 요약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가출팸 같은 걸 떠올리지는 맙시다. 그건 그럴 걸 대뜸 연상하는 이의 영혼이 찌들었다는 뜻) 이 말씀은 보컬트레이너 기성은 님의 멋진 한 줄 요약인데, 비단 보컬트레이너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모든 인터뷰이, 성실한 종사자분들에게 두루 해당될 것 같습니다. 정작 낳아준 엄마들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자기 자식들"을 훈육하거나 침착하게 잘못을 교정하기 힘들지만, 이들 "가르치는 엄마"들은 직업상, 공적인 일에서의 과업까지 효율적으로 해 내야 합니다(물론 성별이 남성인 분들은 아빠가 되는 거겠고요). 일만 상대하면 되는 게 아니라, 작품으로서의 인간들과 소중히 교감하는 직종이니 더하죠. (기획사) 사장님들도 "내 새끼"라는 표현 속에, 자신이 가꿔 나가는 연예인 자원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묻어내는 걸 보기도 합니다.

보컬 트레이너는 특히 아이돌 상대로 한 훈련에서, "잘되면 좋고 안 되어도 어쩔 수 없는" 직종이라고도 합니다. 이 인터뷰 중에는 "예전(이라고하면 문맥상 1990년대 중반 이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읽었네요)에 얼마나 우수한 자원이 많았나. 그들도 요즘처럼 좋은 환경에서 케어받았다면 훨씬 오래가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같은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복면가왕> 같은 걸 보면 무시로 아이돌들이 나와 깜짝 놀랄 만한 가창력을 뽐내고, 예전에 주현미씨도 "가수도 진화하는구나" 하며 놀라워한 적이 있죠.

한편으로, 어떤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단시일 안에 연예인의 체계적 양성을 위한 놀라운 민간 환경에 구축되었는지도 그러 놀라울 뿐입니다. 이에는 일단 상품 소비를 위한 거대한 시장이 생겼기에(국내, 해외), 그 수요에 부응한 창의적인 공급자가 대거 출현할 수밖에 없었고, 다음으로는 소위 3대 거대 기획사가 과점 비슷한 위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틈새 시장을 노려 열심히 "자기 아이들"을 다듬고 가꿔 팬들에게 어필시킨 중소 규모 사장님들의 패기가 대단했다고 봅니다. 저 같으면 3대 메이저가 버티고 있다는 그 여건에서부터 벌써 질려버려, "어차피 경쟁도 안 되는 것" 하며 지레 포기했지 싶습니다. 물론, 이처럼이나 비옥한 환경이 조성되게 한 일등 공신이라면, 이 책에 실린 "아이돌 메이커"들의 보이지 않는 기여, 열정, 그리고 재능이겠지요.

"가수를 가르치는 직업인데 가수보다 못해선 안 되는데...." 아티스트로서의 리스펙트를 원하는 만큼 못 받고 지나친 것도 아쉽지만, 이처럼 보컬 트레이너로서도 사회적 인정이 그저 맹숭맹숭하다는 건 더군다나 그들을 힘들게 합니다. 이 보컬 트레이너뿐 아니라,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이들의 직종에 대해 일반인, 혹은 관심 있는 인접 분야 종사자, 심지어 학부형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게, "생계가 넉넉히 유지되며 합당한 보수를 받는지" 여부일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인터뷰이 여덟 분 중 누구도, 그리 자신 있는 대답을 안 하시네요. 물론 당사자들이야 최고니까 동종 종사자보다, 그리고 일반인보다 훨씬 윤택한 삶이 가능하겠지만, "이 직업에 종사하는 다른 이들, 평균은 어떤가"에 대해선 확답을 못 하는 겁니다. 제 생각엔, 직업에 대한 관점이 아직 우리가 합당한 수정이 안 된 탓이 있지 않을까 봅니다. 이분들은 적성이나 재능으로나, 이것 아니면 다른 길이 없고 확 끌려서 이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게 아니라 생계 방편으로 남들 하는 수준만 따라서 무덤덤한 직업의 일종으로 이 길을 고르려는 이들이라면, 전혀 못 버텨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크리에이티브와 열정으로 대비해야 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앞으로 모든 직업이 그리 될 것이고 말입니다.

제가 가장 관심 있게 본 분은 안무가 이솔미씨 대담 파트였습니다. 연예계 종사자라곤 해도 그 하시는 일, 걸어온 역정마다 일일이 다른 색채를 반영이라도 하듯, 어쩜 저렇게 외모들이 첨예한 개성을 뽐내는지 신기하기도 했는데, 이 이솔미씨는 말씀하시는 내용도 그렇고, 하, 이렇게 생기신 분도 있구나, 같은 느낌이 머리 속에 떠나질 않았습니다. 본인 대답 중에 나왔듯 키는 별로 안 크시다고 하는데, 사람이란 정말 고유의 철학, 경험, 사유로 어필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외모 속에 그 많은 부분이 압축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싶더군요.

"헤어, 의상, 다 챙겨주고 맨마지막으로 지급되는 게 안무다." 거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안무의 창의력이 아니라 공연의 성패는 그저 아이돌들이 가진 기본 기량, 비주얼, 스타일에 의해 좌우된다는 생각이겠지요? 실제로 과거 같으면 예컨대 보이밴드다 했을 때 안무가 별 차별화가 안 되기도 했습니다(뿐 아니라 스타일, 코디 등도 마찬가지). 이런 건 그야말로 1세대 아이돌들을 막 부릴 이십 년 전의 풍조이죠. 하부 섹터는 창의력으로 혁신을 거듭해가는데, 막상 윗분들(사장님, 임원진)의 인식이 1990년대식 그대로에 머물러 있으니 능력 있는 젊은 인력들이 아픔을 겪는 것이겠고요.

이분 인터뷰 중 가장 또 인상에 남는 게, 어느 "오빠"가 해 주셨다는 말(그분도 거물 아닐까요? 우리가 알만한 분이지 싶어 실명이 궁금합니다), "너희들은 왜 거울만 보고 춤을 추냐? 옆에서도, 심지어 뒤에서도 너희를 본다는 생각은 안해?" 이게 저는 참, 이솔미씨 본인 못지 않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일을 할 때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타성에 젖는 것, 남의 눈이 아니라 자기 만족으로 그저 대충 하고 마는 것, 저 "오빠"께서 해 주신 충고는, 비단 이 업종뿐 아니라 모든 직업 종사자들이 공통적으로 마음에 새기고 금언으로 삼아야 할 내용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돌은 대중 예술의 영감". 그런데 이제는 대중 예술 섹터 전체가, 타 산업의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대중을 감동시키고, 열광하게 만들고, "나 요즘 쟤네들 보는 맛으로 산다"는 반응이 절로 나오게 하는 그런 창조적 마인드라야, 이제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 교훈은 누가 작위적으로 지어낸 게 아니라, 이 책 8인의 인터뷰이처럼 자기 일에 미쳐 사는 이들(성장 환경도 참 다양합니다. 갑자기 가장의 건강 악화로 궁핍해진 분들, 미국에서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아 귀국한 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기에, 일반 독자들의 마음도 이처럼 각성시킬 수 있겠지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좋은 교과서 한 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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