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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 그의 생애와 사역
F. F. 브루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3월
평점 :
사도
바울은, 조직적인 교단으로서 기독교가 원활히 기능하는 데에 초석을 놓은 행정가였고, "서신"을 통해 교리 원형의 기반을 닦은
"신학자"였으며, 불 같은 정열로 지중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 활동가였고, 마음에 티끌만큼도 신앙에의 동요가 없었던 성스러운
사도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생전에
직접 조우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 앞에 홀연히 나타나 눈 앞의 비늘을 떨구어 준 그 성스러운 체험을 잊지 못 해
모두와 함께 진리를 공유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이전 그의 행적을 보면 "믿음에의 길"과는 다분히 먼 경력을 구축했던
그였기에, 이런 갑작스러운 회심이 어떤 동기에서 비롯했는지, 그의 심원하고도 치밀한 논리를 갖춘 교리의 본체가 무엇인지는 여전히
논의와 연구의 대상으로 남습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저자 F F 브루스 교수의 통찰과 연구가 참으로 원대하고도 심오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 본인이
직접 남긴 저술의 양은 기독교 신약 성경 텍스트의 상당 부분을 차지할 만큼이므로, 진지한 학자가 일생을 두고 연구해도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그런데 이 두꺼운 책에서는, 그 방대한 텍스트를 거의 모두 인용, 분석해 가며,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언급과
논술을 일일이 연결하거나 통합하여, "바울은 누구였고 무엇을 말했는지" 정연하고도 구체적인 하나의 체계를 완성합니다.
물론
신약은 신약만으로 고립된 맥락에 머물지 않고, 모든 구절이 구약과의 역동적 연계점을 마련하기에, 브루스 교수의 시야는 홀리
스크립트 66권 전반을 아우릅니다. 책 어느 페이지를 펼쳐 봐도, 거의 중복 없이 요소요소에서 새롭고 엄정한 논변과 성찰을
서술하며, 성경 구절의 구체적 전거에 의지하지 않는 대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 절 매 장의 논지는 "사도 바울"로
귀결합니다. 신앙심의 깊이와 사색의 습관화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타고난 두뇌 자체가 명석해야 이런 책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잘 알려진
바처럼 벤야민 지파 소속입니다. 저자 브루스 교수도 여러 번 언급하듯, 바울은 자신의 신분과 정체성에 대해 대단한 자긍심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I am a citizen of no mean city."라는 유명한 말에서도 드러나듯, 그는 타르수스의 가장
번영한 구역에서 나고 자라 충분한 교육을 받고 넉넉한 재산을 모았으며 사회적 평판도 훌륭한 편이었습니다.
벤야민
지파는 솔로몬 왕 사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갈라질 때 유다 왕국 편에 섰고, 그 전이나 그 후나 대체로는 거대한 유다
지파와 우호적 관계였습니다. (원래의) 이름도 하필이면, 그들 겨레(12지파)가 세운 최초의 군주 사울인데, 사울 왕 역시 벤야민
지파였고 이 때문에 그들은 현실 정치에서 유다 지파에 뚜렷이 구분 안 되는 입장이었을 뿐이었는데도 여튼 역사적으로는 도드라진
표지를 지닌 이 "벤야민 소속"임을 자랑스럽게 드러내어 왔습니다. 바울 역시 이런 종족의 분위기를 그대로 계승하는 인물이었던
듯합니다.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는
자." 이는 무엇보다 바울 본인이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회고하며 규정한 표현입니다. 다메섹은 오늘날 통용되는 지명으로는
"다마스커스"가 더 익숙한 고도이자 수천 년에 걸쳐 정치적, 상업적 중심지로 번영해 온 고장입니다. 그전까지 기독교도들을 잡아들여
당국에 고발하고 기존 질서 유지(정통 유대교의 대제사장 등의 입장)에 열심히 기여해 온 바울은, 바로 이 다메섹에서 예수의
특명을 받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저자의
배경 설명을 보면, 특히 초기 기독교 교단에서 "헬라 파"에 속했던 이들은 유대 밖으로 내몰리게 되는데, 유대 지역 밖이라고
해서 산헤드린의 적의와 응징의 손아귀로부터 자유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제사장들의 눈밖에 나 검거되고 재판 받고 십자가형을
선고 받을 때, 빌라도 총독이 마지막까지 그에게 방면의 기회를 주려 드나 오히려 율법학자들이 거세게 반대하며, "그를 놓아주는 건
제국의 질서에 반역하는 행위"라며 오히려 총독을 협박하려 드는 장면이 있죠.
이처럼
형식상으로는 타 민족의 식민 통치에 굴종하는 모양새였으나, 그 실질을 따지고 보면 오히려 로마의 행정, 군사력을 갖고 놀며
종래의 기득권을 철옹성으로 만드는 게 바로 그들의 노회한 행태였습니다. 헬라파라고 해서 언제 국외에서의 "범죄자 송환"에 걸려
들어 처벌을 받을지 모르는 형편이었고, 바로 이 일을 바울이 앞장 서서 해 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줄리어스 시저가 이집트(역시
속국)에 보낸 서한에서는, "유대의 자치권을 최대한 존중하여, 행여 불순분자가 그곳에서 도피처를 마련하면 즉각 적발하여
이송하라"는 내용까지 다 있다고 합니다. 저자 브루스 교수의 박학다식함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근대
형법의 원칙 중 하나가 "성문형법주의"입니다. 명시적으로 국가의 형법전에 "죄"라고 규정되지 않으면, 범죄가 성립하지 않고
처벌도 불가하다는 뜻입니다. 라틴어로는 nulla poena sine lege라고 쓰는데, 브루스 교수는 이 언명을 신학에도
적용하여 심오한 논변을 전개하는군요. 인간은 율법의 수명 이전에도 얼마든지 죄를 짓고 타락한 생활을 자의적으로 벌였으나, 율법이
주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죄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그 대속행위가 가능했다는 말입니다.
헌데
바울, 혹은 바울을 그런 방향으로 해석하는 브루스 교수는, 오히려 죄를 엄벌하는 율법 규정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을 죄로
"유인"하는 결과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죄인에 대해 사형을 선고하는, 신의 뜻에 반하는 제도까지 자리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로마서 7장 9절을 인용하며 "계명에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는 텍스트에는 바로 이런 뜻이 함축되었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의의를 전면 부정하는 건 당연히 아니며, 아무 자각이 없던 인간에게 죄가 무엇인지 의식하게 된 건
전적으로 율법의 공로라고 평합니다.
마르틴
루터는 그가 젊은 수도사였던 시절 어두운 숲 속에서 악천후와 뇌우를 만나 죽음에의 공포를 온몸으로 느끼고 신에 대한 각성을
선명히했다며 고백한 바 있습니다. 헌데 훨씬 전 사도 바울 역시,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상하며, 율법이 무엇인지 죄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서한에다 가감없이 털어놓습니다. 모든 신앙은 그 출발점이, "내 죄를 어떻게 씻어내며
용서받는가"의 깨달음과 회한에서 마련된다고 봅니다. 뻔뻔스럽게 죄를 짓고도 그저 형식적인 몸놀림, 입에 발린 거짓 뉘우침, 남
보란 듯이 벌이는 위선 따위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사도 바울의 행적으로부터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태생적으로, 세속의 폭압적 권력에 대한 고발자요 반항아였습니다. 그는 물론 서한 중에서 "지상의 권력에 대한 존중
의무"를 신도들에게 설교하기도 했으나, "불법의 사람" 등의 표현을 통해 민중의 양심을 억압하는 독재자에 대한 단호한 경계를
촉구한 인물이었습니다. 이 책 p255에서 언급하는 폭군 가이오는 우리가 흔히 칼리귤라라는 별명으로 알고 있는 가이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입니다. 황제는 겸허한 마음으로 직분을 수행하여야 하며, 가이오(칼리굴라)처럼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자는
스스로를 망칠 뿐 아니라 세상의 질서까지 무너뜨릴 수 있음을 그는 지적했다고 저자는 평가를 내립니다.
칼리굴라의
뒤를 이은 사람이, 오늘날까지도 그 정체나 자질에 대해 논의가 설왕설래 중인 클라우디우스입니다.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베스트셀러
소설로도 잘 알려진 그는, 지혜를 감추고 세상을 속이며 은밀히 포부를 떨친 현자였는지, 아니면 그저 덜 떨어진 바보가 운이 좋아
치세를 유지했는지 여전히 베일에 가린 통치자이기도 하죠. 라틴어로 claudere는 "막다"라는 뜻인데, 오늘날 영단어에도
clandestine(비밀스러운) 같은 게 그 어원의 먼 후손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자는 대체로 부정하고 있지만 혹 사도 바울이
정말 "막는 사람, 압제자"라는 뜻으로 당대 황제의 이름을 비꼬았다면, 상당한 소양이나 언어적 재치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혹은 claudicare라고 해서 "절뚝거리다"라는 동사를 그(황제 클라우디우스)의 이름에 빗대었다고도 하는데, 이는 실제로
당대에 저 황제를 마뜩지 않게 보던 이들이 그의 신체적 특징을 조롱하며 입에 올렸던 바이기도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끄제 올린 리뷰 중에서 크레타인 에피메니데스가 "크레타인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라고 했을 때 자기지시의 역설이
발생한다는 사항을 언급한 적 있습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 역시 그의 서한 중에서 이 유명한 토픽을 거론합니다. 브루스 교수는
그의 풍부한 지식을 원용하며(교수 역시 20세기의 신학자이므로 괴델 이후 전개된 인접 학계[철학]의 아포리아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갖춘 분이죠), 바울이 자신 종족(히브리 중 벤야민 지파)이나 기독교(그가 막 완성해 가던 도중의 종교)의 신을, 스토아적인
범신론 관점에서 파악하는 걸 단호히 거부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신은 또한 어떤 형태를 갖출 수 없으며, 이로부터 헬라적인 우상
숭배와 단호히 절연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신과 인간 사이의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관계 회복은 회개, 죄사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재삼 분명히합니다.
신령한
은사는 여전히 현대의 신앙인들에게도 수수께끼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바울은 당대 기준으로 상당한 지적 소양과 상식을 갖춘
이였으나, 이른바 방언과 관련된 "생리적 현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었다고 저자는 단언합니다. 단 저자는 1861년 이래의
의학적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브로카 부위의 제1대뇌반구 세번째 전뇌회의 자극을 통해 방언이 가능할 수 있음을
언급합니다(p297:10). 어디까지나 저자의 입장이고 견해입니다.
그리스도는
옛 창조의 머리뿐 아니라. 새로운 창조(신약과 새로운 계명)의 머리에서도 여전히 송영(頌榮)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교회는
몸이며, 그리스도는 그 교회의 머리"라고 한 바울의 표현은 이전 경전의 텍스트에서 찾아 보기 힘든 바울만의 독창 산물일
"가능성"이 크다고 저자는 신중히 말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몸"이 곧 교회라는 생각은, 마치 기에르케의 유기체설이나 헤겔의
변증법적 통합을 연상케도 하는데, 저자는 영지주의나 스토이시즘, 심지어 유대교의 전례에서 영향 받았다기보다, 공동체 전체를 놓고 한
인격으로 취급하는 히브리 전통 사상의 먼 가지라고 정리합니다. 그리스도를 우주적 보편적 존재로 보고, 종족이나 지역의 협소한
범주에 가두지 않을 것을 단호히 천명한 바울의 태도를 보며, 우리 현대인들도 인류 공영과 평화의 실천에 대해 시사 받는 바가 클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