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열림원 세계문학 4
헤르만 헤세 지음, 김길웅 옮김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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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가 힌두이즘에 대한 심원한 통찰을 담아 창작했던 고전입니다. 역사적으로는 고타마 싯다르타라는 단일 정체성을 가진 대각성인이 한 분 있었는데, 이 소설 속에서는 먼저 깨달아 스승 노릇을 할 수 있는 고타마라는 인물이 있고, 고귀한 태생의 젊은 구도자인 주인공 싯다르타가 따로라는 점도 특이합니다. 싯다르타는 살짝 싱클레어를 닮았고 고타마가 데미안 포지션이기는 하나 훨씬 정서가 안정되었고(ㅎㅎ) 보편적 도덕성을 지향하는 개성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배경도 인도이며 분위기가 심오하고 신비롭기는 하나 이 장편에서 표현된 철학이 과연 불교와 깊은 관계인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그저 헤르만 헤세 고유의 유니버스로 파악하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역사적 싯다르타가 구도의 길을 걸을 때에도 온갖 사악한 영들이 끼어들어 집요하게 그 득도를 방해했습니다만 이 소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p65에 나오듯 마라가 빚어내는 마야의 베일은 그의 눈을 어지럽히지만, 싯다르타가 어떤 필터를 통하지 않고 세상을 그대로 바라볼 때 온 누리는 색(色)으로 마법을 부립니다. 그 색은 물론 구도(求道)와 무관하게 비천한 감각과 욕망을 따를 뿐인 평범한 인간의 눈에도 그리 보이지만, 이 시점의 싯다르타 눈에 보이는 의미와는 그 결이 다릅니다. 이 형상은 대체, 왜 다른 모습이지 않고 그 모습 그 색이라야만 하는가, 이런 심각한 의문과 함께 바라본 형상은, 이제 싯다르타를 전혀 다른 세계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색이 비로소 공(空)임을 그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왜 무(無)가 아니라 공(空)인지도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p86에 나오는 카말라와 싯다르타의 만남 장면은 마치 투르게네프의 소설 <첫사랑>에서 주인공 블라디미르가 지나이다 부인을 만나는 대목과도 닮았습니다. 작품 속에서의 기능은 상당히 다르지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에바 부인의 등장 씬도 연상되는 부분이 있죠. 왜 청년은 헤세의 세계에서 이처럼 어떤 연상의 여인에게 어떤 가르침을 꼭 받고 특정 의례를 거쳐야만 하는 걸까요? 사실 카말라가 싯다르타에게 좁은 의미의 색, 즉 색정(色情)을 마스터해 주는 대목은 이제 제가 나이 들어 읽으니 그리 편하게 다가오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이렇게해서 싯다르타는 또 한 사람의 스승을 떠나보내는데... 어쩌면 카말라 부인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점잖은 분이 아니라 일종의 고급창녀(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라든가) 혹은 한국 텐프로 대마담 같은 사람이었다는 거죠(p168). 다만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이 시점의 싯다르타에겐 그렇게 아득한 스승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습니다. 

소설 초반에 잠깐 나왔던 친구 고빈다가 p140에 다시 나옵니다. 이제는 제법 의젓한 스님 티가 나는데, 그래도 싯다르타는 한눈에 그를 알아보지만 고빈다는 싯다르타, 이제 부처님이나 마찬가지인 그를 못 알아보죠. 그도그럴것이 이제 싯다르타는 누가 봐도 위대한 스승이지 자신과 철없던 시절 함께 발가벗고 뛰놀던 그 소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같으면, 성공해서 외모 관리가 잘 되어 여전히 젊어 보이는 동창이, 그간 너무 고생하여 찌들고 상한 동창을 못 알아보곤 하는 풍속과 정반대이긴 합니다만. 

역사적 싯다르타에게도 라훌라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소설에서 싯다르타도 저 창녀 카말라에게서 본 아들이 있고, 이제 그 아들이 그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합니다. 아들이 개구쟁이라서가 아니라(뭐 모를 일이긴 합니다만), 그 혈육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지극한 사랑이 부처님으로서 도달한 그의 평정심에 마지막 파문을 일으킨 셈입니다. 하지만 싯다르타는 이 마지막 고비도 기어이 극복합니다. p208에서 이제 고승이 된 고빈다는 다시 싯다르타를 만나지만 또다시 그를 못 알아봅니다. 이제 싯다르타는 모든 이들의 스승이자 초월자가 되었기에, 누가 그를 만나든 간에 그는 팔색의 형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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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2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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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과대학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나?" "네, 민우는 귀공자처럼 자란 아이였고 공부도 잘했습니다.(p112)" 그러나 현태가 찾은 민우의 이모는 매우 냉랭하게 대합니다. 세상의 염량세태가 다 이런 법이므로 너무 서러워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을 넘었다 싶으면 반드시 응징을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이모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는 좀 뒤 p123에 나옵니다. 그 이모는 기지촌 출신으로, 아주 힘든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말하는 뽄새에서도 무식함이 배어나죠. 읽으면서 그 배경을 알고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이 대목은 사실 약간 억지처럼도 느껴졌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이 삽입되는 건 소설의 대중적 매력을 제고하기 위해 필요하긴 했겠지만 말입니다. 

여튼 이 장편 소설은 독자들이 지루해할 틈 없이 페이지가 잘 넘어갑니다. 두 권 분량의 긴 이야기지만 젊은 남녀 주인공 그 비련의 사연을 정석적으로 풀어나가기에, 발표된지 세월이 이렇게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때로는 마음이 아파지면서 독자가 충분히 몰입할 수 있게 진행되는 듯합니다. 1권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최인호씨는 그 시대의 풍속을 충분히 잘 녹여내는 분이라서, 그가 1970년대에 엄청나게 생산해 낸 작품들과는 이 작품이 또 분위기가 달라서 1980년대의 자식임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다소 밝아졌으면서도 여전한 애상이 깃들어서 최인호스러움을 잃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최인호씨가 쓴 예전의 완전한 통속물도 책프 참여 차 읽어 본 적이 있어서 그가 에로티시즘을 얼마나 즐겨 구사했는지 잘 알지만, 이 작품은 마치 황순원 <소나기>의 20대 장편버전처럼 담백하고 청순합니다. 

한때 그렇게나 고결하게 성장하여 장래가 촉망되던 아이였으나 이제는 가장 처참한 지경까지 타락해버린 민우, 우리의 피리부는 소년은 과연 어디까지 망가질 것인지... 선하고 지혜로웠던 주인공이 이처럼 몰락하는 것도 최인호 작품 공식 중 하나입니다. 2권 p170에서 민우의 근황을 전하는 현태의 말을 듣다 보면 차라리 귀를 막고 싶습니다. 민우는 그새 기지촌에서 다른 여성 하나를 만나 아이까지 낳았는데 그 유전자가 어디 안 갔는지 잘생긴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요소가 사연의 비극성을 더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운 처지일수록 그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무분별한 성관계에 빠져들 수 있는데(될대로 되라 심리) 남자건 여자건 이게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파집니다. 

한때 피리부는 소년이었던 그는 이제 고기잡는(p212) 사내가 되었습니다. 현태는 민우에게 다혜 씨의 근황을 알려 주고 그녀에게 졸업을 축하해 주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민우는 자기가 한 짓 때문에 다혜를 볼 면목도 없고 이처럼이나 자신이 망가진 모습을 보여 줄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다혈질의 현태(p225)는 언제나 민우-다혜 커플의 속내를 가장 정확하게 꿰뚫은 관찰자이자 행동가였고, 일부러 민우가 자신을 망가뜨리는 중임을 다혜에게 (불필요하게) 알려 줍니다. 그리고 행여 민우를 자신으로부터 누가 빼앗아갈까 전전긍긍하는 불쌍한 은영이(p230)... 이 소설에서 제일 불쌍한 인물이 바로 은영이죠. 

"아내와 어린 아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 피리 부는 소년. 과거는 추억일 뿐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네.(p262)" 현태의 말이 맞으며, 이제 민우는 자신의 현실에 충실해야만 합니다. p285를 보면 여전히 현실에 부적응 상태를 드러내지만 은영이와의 궁합은 무척 좋은 듯합니다. 은영도 지독한 무능자인 민우를 끝내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그나저나, 소설의 결말은 대단히 비극적이고 악인인 노파는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며 기어이 추가 악행을 저지릅니다. 제가 소설에서 가장 몸서리쳐지는 게 저런 썩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버린 듯한 노파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의 삶은중단되었지만 누군가들의 삶은 또 그렇게 이어집니다. 언제나 그러했듯.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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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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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고 최인호씨는 한 시대를 풍미한 문인이었습니다. 대중적으로도 큰 호응을 이끌어낸 분이었다고 하고, 무엇보다 엄청난 다작(多作)을 한 작가였습니다. 스스로도 어느 인터뷰에 나와서 "나는 괴물이었다"고 회고했었는데, 창작 영감의 원천이 마르지 않고 통속물이든 뭐든 끊임없이 지어온 그 엄청난 활력에 대해 평단과 대중 모두가 환호했습니다. 이 <겨울 나그네>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당대 청춘 스타였던 강석우씨 등이 주연으로 기용되어 젊은이들이 많이 관람했다고 전해집니다. 또 이 책 띠지에도 나오듯 지금 뮤지컬로도 상연 중인데, 이미 1990년대 후반에 박칼린 감독이 처음으로 무대에 올린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는 뮤지컬에 대한 국내 인식이 대단히 미진할 때인데 역시 박칼린(이분도 그때는 무명)씨였다 싶습니다. 원작이 워낙 좋으니까, 인프라가 부실해도 히트작이 나올 수 있는 거죠. 

최인호씨의 소설은 장면 묘사가 영화처럼 생생하면서도 독자한테 쉽게쉽게 넘어갑니다. 작가가 천재이기 때문에 본인 눈 앞에 (가만 있어도) 그림이 영상이 절로 펼쳐지므로 큰 수고를 않아도 이렇게 글이 쓰이는 것입니다. 구성이나 날카로운 주제의식 부각은 이문열이 나을 수 있지만 이런 생생한 스토리텔링 면에서는 최인호씨가 훨씬 뛰어납니다. 이 1권 p114만 해도, 민우, 운전사(당시 표현을 따릅니다), 다혜 등이 빚는 장면을 보면 영화를 안 봐도 독자 눈 앞에 영화 한 편이 상영됩니다. 유머러스하게 "호텔 보이처럼" 민우가 다혜한테 허리를 굽히는 매너를 보십시오. 경쾌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선한 마음이 가득한 주인공의 개성이 잘 드러납니다. 참고로 이 시절의 호텔 보이들은 사람 봐 가면서 차별 엄청 했습니다. 지금은? 예컨대 반포 JW 매OO 같은 곳은 직원들이 엄청 친절합니다. 이 대목에선, 민우가 쾅 소리를 내며 차 문을 닫는 장면, 다혜가 민우 옆얼굴을 보며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장면 등이 유명하죠.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은 약속이 아니다(p142)." 이 작품 속에는 부모 세대가 전횡하듯 정한 룰에 숨이 막힐 것 같아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몸부림이 있습니다. 사회가 아주 빠른 속도로 변하고 젊은이들도 그 호흡에 맞춰 살아야 하는데 기성세대들의 훈육은 그 폭발할 듯한 유기체의 약동을 질식시키려 듭니다. 젊은이들이 반항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다혜는 아무 부족할 것 없이 자랐고 그 부모님들도 딸에게 너무 잘해 주는 분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린 영혼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끊임없이 반항합니다. 본래 젊은 세대는 이처럼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태생적으로 반항하게끔 프로그래밍된 존재입니다. 프랑스의 68세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한편 민우는 아버지가 그 끔찍한 사고를 겪고 식물인간처럼 누운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만 의연히 대처합니다. 역시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부친과 잘 통하는 착한 아들입니다. 이 대목에서도 민우는 아버지에게 애써 뭘 말하려 들지 말라며, 나는 눈빛만으로도 아버지가 뭘 뜻하는지 안다며 안심시키고 그 심기까지를 간호하려 듭니다. 이렇게 애가 마음이 착하니까 얼굴에도 그 심성이 반영되어 잘생겨지는 겁니다. 싼티나는 색기 같은 것과는 유가 다르죠. 아, 그러나 형인 민섭이는... 

"한형국, 일어나라, 나와 담판하자. 너한테만 안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 독자들이야 민우한테 감정이입하여 저 비정한 채권자를 욕할 수 있지만 이 사람한테도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면 대체 이 채권자들이 무슨 죄로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합니까. 잘못은 한민섭이란 악당이 저지르고 그 죄책은 부친, 남은 아들, 채권자가 뒤집어쓰는 건데 이때만 해도 가족이라면 연대책임을 져야만 하는(법적으로야 아니지만) 시대상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민우는 그 별명이 피리부는소년이었습니다. 소설도 소설이지만 영화가 워낙 큰 히트를 쳐서 1980년대 당시 여대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와서는 강석우씨(지금은 노인인데)가 형상화한 피리 부는 소년의 이미지 때문에 설레서 잠을 못 이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1권 p296에서 피리부는 소년은 드디어 아버지에 대한 비보(悲報)를 듣습니다. 이 여린 마음을 지닌 소년(청년이긴 합니다만)은 험한 세상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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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O Ontology 온톨로지 - 병원 경영을 ‘JUMP UP’ 시키는 MSO는 무엇이 다른가?
유하린 지음 / 라온북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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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께서는 이 책의 제목과 비슷한 엠에스올로지 社의 대표입니다. MSO란, 이 책 p18의 설명에도 나와 있듯이, management service organization의 약자이며(책 앞표지에도 나옵니다) 간단히 말해 병원경영관리 혹은 경영지원입니다. 저자는 실제로 여러 병원의 창업을 이끌었으며 기 개업한 병원들에 대해 컨설팅 업무도 맡아 보신 결과물 중 일부를 이 책에 담아 내었는데, 컨설팅이라는 직역이 으레 그렇듯 기업(여기서는 병원) 사례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론과 실무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법이겠습니다. 특히, 존재론을 뜻하는 ontology라는 단어가 주는 묵직한 의미가 독자에게 와 닿습니다. 

요즘은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아야 기업의 퍼포먼스도 덩달아 향상됩니다. 병원이라고 이런 이치가 다르지 않습니다. p72에 나오듯, 병원 역시도 직원들의 워라밸이 보장되어야 업무의 충실도도 높아집니다. 특히 책에서는 MZ세대 직원들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의 사기를 높일 줄 알아야 한다는 당부를 합니다. 더군다나 병원은 일이 힘들기도 하고, 직원들은 특수 기능을 익혀 전문화한 직능을 발휘하는 이들이므로 이런 요구가 더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보통 마케팅에 돈 아끼지 말고 쓸 돈은 팍팍 써야 기업의 긴 장래가 살아난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p100 같은 곳에서 저자는 우리 통념과 매우 다른 주장을 합니다. 병원의 경우 마케팅 비용을 공연히 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위적 마케팅에 돈을 쓰면 쓸수록 비용은 줄어들 줄 모르고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케팅을 하는 게 정석일까요? 일단 원장님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응대와 진료가 최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병원은 자신 있으면서도 솔직한 원장님의 매너 덕분에, 그 원장님과 잠시 상담만 나눠도 환자가 활력을 얻어 병원을 나가기도 하는데 이런 병원은 SNS 따위에 구태여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당연한 상식인 듯하면서도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정석이라고 생각됩니다.    

매출 매입 관리 역시 정석에 따르라고 합니다(p132). 또 혹 고객이 현금영수증 발급을 거부한다 해도, 병원 측에서는 발급을 해 줘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현금영수증 발급이 자주 누락되면 세무 당국에서 하나의 징후로 포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일반 기업과 병원이 구분된다고도 할 수 있는데, 병원의 소득 탈루에 당국이 특히 민감하다 해도 아주 틀리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에서 MRO라는 걸 배웁니다. p155에도 나오지만 maintenance, repair, operation의 약어인데, 간단히 말해 소모성 자재의 구매, 관리, 컨설팅이라고 책에서는 가르칩니다. 특히 유념하여 볼 것은, 작은 지출이 쌓이고 쌓여 큰 지출로 확대된다는 지적인데, 병원처럼 그 본분이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기업의 경우 이런 세세한 지출에는 원장님이 무신경할 수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간호사에게 업무를 맡길 게 아니라 전담 경리사원을 두라고 책에서는 특히 강조하는데, 입출금 창구가 완전히 단일화해야 소소하게 새는(?) 지출이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병원의 확장은 동선의 효율화와 기능의 분리를 목적으로 했다(p207)." 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병원의 분위기가 고급스럽게 느껴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그 공간과 직원에게서도 고급화의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고 책에서는 역점을 두어 주장합니다. 책에 나온 사례의 A 병원은 특히 병원 밀집 구역에 소재한 곳이었는데도 이 전략을 잘 구사한 덕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병원 경영이 과학적으로 진행되어야 원장님이 그 본분인 진료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해지는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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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위버멘쉬
신호철 지음 / 문이당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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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멘쉬는 독일어로 초인이라는 뜻입니다. 니체 이전에도 여러 철학자가 이 개념에 대해 논했으며, 독재자 히틀러가 아주 잘못된 방향으로 왜곡하기도 했으나, 본디는 참된 인간(멘쉬)의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도구로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던 관념이기도 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 앞표지에도 "순수한 인간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몇 년 전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무서운 질병이었습니다. 당황해하는 채신도 채신이지만동네 아줌마들, 그 중에는 금니를 박은 호들갑스러운 이도 한 명 포함되는데, 또 코로나가 번지는 것 아니냐면서 부산스럽게 설칩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가뜩이나 불안정한 분위기가 더욱 나빠지는 건데 다만 주인공들은 대체로 의연합니다. 그러나 채신의 침착함에도 한계가 있어서 일단 추루 보강을 걸고 조퇴를 신청하는데 꽉 막힌 원장은 대뜸 짜증부터 냅니다. 상황이 바뀌면 원칙의 적용도 뭔가 신축적이어야 하겠는데 말입니다. 

"거룩한 긍정. 세계의 상실 후 나의 (프라이빗한) 세계를 비로소 얻은 그 누군가." 니체의 말처럼 보이지만 p86에 잘 나오듯 곽경식 교수 해설서의 한 발췌입니다. 소설 속에서 갑자기 루푸스가 퍼지고 그 부작용으로 위버멘쉬와 (그냥)멘쉬 사이의 분화가 일어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느슨한 동포애나마 갖고 작동되던 사회는 이제 옛 모습대로 남은 멘쉬와, 고통을 통해 다른 존재로 거듭난 위버멘쉬 사이에 서로 타자화와 적대화가 진행됩니다. 어느 시대나 그렇지만 이처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 그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도가 일어나고, 곽경식의 해설서는 그 중 가장 너른 지지를 얻은 경전이라 하겠습니다. 

페니실린 역시 의도치 않았던 실수에서 비롯했듯, 이 극적인 변용 역시 박 실장 등 일단의 연구진들이 모스를 잘못 다뤄 일어난 불의의 결과였습니다. 그러니 박 실장이, 예컨대 p118 같은 곳에서 한 마리 기니피그처럼 비참한 신세로 떨어지는 것 아닌지 전전긍긍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채신의 병세는 다행히 나아지지만(p122) 이는 이제 다른 문제 하나를 잉태할 참입니다. 뭐 세상 일이 다 이런 식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위버멘쉬니 뭐니 떠들어도 인간의 본성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그 중에는 성욕의 변태스러운 충족도 있는데 이게 그나마 위버와 노르말(혹은 운터)을 이어주는 고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여성을 파멸시키려 드는 데에 어쩌면 이렇게도 한심한 술수가 쓰일까요? 저는 이 대목에서 폴 버호벤의 영화 <할로우맨>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새 시대의 교주로 떠오른 곽경식은 말을 잇습니다. 니체의 말을 또다시 인용하며, 너의 자아에 혼란이 일어닌다 쳐도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고 합니다. 그게 너의 자아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일깨워주는 본질이라면서 말입니다. 뭔가 알쏭달쏭하면서도 의기가 물씬 솟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래, 불안해하지 말자, 이 길을 따르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가 나오겠지.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연대의 덕목을 잊으면 안 됩니다. 혹 그러면, 둘로 갈라진 세계는 이제 항쟁하다 종말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털오라기 없는 신인류에 대해 멘쉬들도 어지간히 경멸감을 발동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 소설의 알레고리가, 어느 순간 부의 도약을 이룬 한국 사회를 겨냥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부를 손에 넣고(그저 운이 좋았던 이들도 있습니다) 나머지 낙오된 전(前) 동족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공감을 못 느끼게 된 신흥 중산층은 새로운 동류의식과 세계관을 형성하고 이제 도태와 배제의 알거리즘을 만들어나갑니다. 과연 이 항쟁은 어떻게 마무리될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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