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의 꽃 - 2019년 5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최수철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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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독이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나의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칠지 모른다고 짐짓 독기를 담아 위협한다. 벗이 한숨을 쉬며 대꾸한다. 독 안 차고 살아도 머지않아 너와 나마저 가버리면, 억만 세대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자라 모래알이 될 터인데, 허무하고 허무한데, 독은 차서 무엇 하느냐?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하고 허무하다.   p.13

오랜만에 정말 '지독한' 작품을 만났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빽빽한 단어들은 시종일관 ''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는 시간도 힘겹거니와,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나 조차도 어떠한 형태의 독에 잠식되는 듯한 기분이다. 리트머스 종이에 살짝 닿아도 순식간에 전체 색깔을 바꿔 버리는 그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독자들을 서서히 물들인다. 독과 약, 선과 악, 성과 속, 삶과 죽음, 의식과 무의식 속으로. 그리하여 ''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계를 눈앞에 펼쳐 보인다.

기본적인 서사는 한 남자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독을 몸에 지니고 있던 그는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그 독을 더욱 키우고, 그 독을 약으로 사용하고, 그러다가 독과 약을 동시에 품고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또한 이 작품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독과 약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극중 몽구는 말한다. 일상적인 삶이라는 건 너절하기 때문에, 삶이라는 음식에 죽음이라는 소스가 살짝 뿌려지는 거야말로 정말 근사한 거라고. 그래서 비소 먹고 죽은 고기를 먹고, 복어 회에 복어 독을 조금 떨어트려 혀에 톡 쏘는 맛을 느끼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분명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비일상적인 분위기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주고 있다. 서사가 뚜렷한 이야기들만 읽다가 이렇게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글을 읽으려니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천천히, 꼭꼭 씹으면서 읽어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독이 아닌 게 없거든.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독을 가지고서 세상과 싸워야 해. 하지만 ''에 대항해서 우리를 지키게 하는 ''도 얼마든지 있어. 독이 약이 되고 약이 독이 되는 거야. 너는 늘 두통에 시달리느라 거기에 신경이 집중 되어 있지.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한 순간도 멍하니 보내는 일이 없이 항상 깨어 있는 거야. 네 두통은 너를 마비시키지 않고 각성 상태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독이자 약이야.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이 세상 모든 것은 사랑을 만나면 약이 되고 원한을 만나면 독이 돼.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우리의 하루하루는 독과 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지.    p.198~199

지난 해 겨울, 화자인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구급차에 실려 한 종합병원으로 옮겨진다. 그곳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받고 하제와 해열제를 투여 받은 후 집중 치료실에 수용되었다. 담당 의사에 따르면, 위에서 보툴리누스 균과 프토마인 균이 검출되었으며, 그 균들로부터 방출된 독소가 몸에 흡수되면서 혈액을 통해 장기를 공격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몸 전체가 독성 물질에 감염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는 한동안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혼몽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다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입원한 지 며칠 만에 처음으로 상체를 약간 일으켜 같은 병실 안에서 한 남자, 조몽구를 발견하게 된다. 그 남자는 낮은 어조로 뭔가를 쉬지 않고 읊조리고 있었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것처럼 웅얼거리는 그 소리는, 저주 같기도 하고 주문 같기도 했다.

조몽구는 태어날 때부터 병약한 체질이었고,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에게 강한 독성 물질로 작용하는 것처럼 알레르기와 습진 등 잦은 병치레를 했다. 그리고 또한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렸는데, 그로 인해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했고 폐소공포증처럼 문이 잠겨 있는 공간에선 패닉 상태가 되었으며, 두통을 어쩌지 못해 쩔쩔 매며 불안정한 성장기를 보낸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를 여의게 되고, 독의 세계에 심취되어 몰두하고 있는 환경운동가이자 행위 예술가인 삼촌과 함께 살아가게 되는데, 그로 인해서 두통이 발생한 원인이 아니라 두통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독에 맞서 싸우는 대신 독과 더불어 살아가게 될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게 된다. 소설은 조몽구의 자전적 진술을 서술자인 ''가 전하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독으로 시작되어 독으로 끝나는 소설'이라는 작품 해설의 문구처럼 시종일관 자기 안의 독과 세계의 독에 대해서 한 남자의 외로운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최수철 작가는 10여 년 전부터 ''에 대한 작품을 구상해왔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래서 이 소설은 오랜 시간 사유의 결과물이자 실험적인 작가 정신의 결정체처럼 보인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 입장에서 읽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시간이었다. 극중 인물의 표현대로 해보자면 '페이지마다 독이 묻어 있어 책장을 모두 넘기고 나면 그로 인해 중독되고 탈진하게 될 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 속의 독에 취할 자신이 있다면, 끝까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비로소 작가가 전하려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것은 독의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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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배틀왕 미스터리 과학 도감 2
아마나 / 네이처 & 사이언스 엮음 / 서울문화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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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과학 도감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수중 생물이다. 단순히 수중 생물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 배틀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되는 시리즈라 더욱 흥미진진하다. 이 책은 연안 생물, 바다 생물, 극지방 생물, 심해 생물, .호수 생물 등 다양한 수중 생물들을 서식지 별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다.

바위가 많은 바닷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몸을 숨길 곳이 많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살고 있다고 한다. 날카로운 가시투성이의 가시복, 강력한 독을 지닌 불가사리인 별불가사리, 커다란 집게발로 탕탕 큰소리와 파동을 만들어 내는 딱총새우, 독을 지닌 바다의 달팽이 군소 등이 있다. 먼저 대표 선수들의 랭킹과 주요 능력 등을 보여주고 수중 생존 전략과 방어 자세, 번식 방법 등을 알려 준다. 그리고 나면 가상의 배틀이 만화로 그려져 있는데, 첫 번째 배틀은 가시복과 샌드타이거상어의 대결이다. 상어의 뾰족한 이빨이 부풀어 오른 가시복을 뚫을 수 있을지 흥미롭게 대결이 펼쳐진다.

수중 생물들의 사냥 방법, 번식 방법, 천적, 공생 관계 등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한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과학 도감으로서도 아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바닥이 얕은 바다인 연안에 사는 희귀한 생물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난바다에 살고 있는 공포의 생물들, 남극과 북극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인 극지방의 위험한 생물들, 수심이 200미터 이상 되는 심해에서 생활하는 신비한 생물들, 염분이 거의 없는 담수로 이루어진 강, 호수, 연못에 사는 오싹한 생물들까지 독특한 수중 생물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만화로 표현된 수중 배틀 과정은 매우 세밀하고 역동적인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어 마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한참 동물과 수중 생물, 곤충 등에 빠져 있는 아이들이 피규어를 가지고 놀 때도 항상 싸우고, 대결을 벌이곤 하기 때문에 이 또래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아기자기한 테마들이 많았는데, 대표 선수로 선정된 수중 생물 외에 비슷한 종류의 생물들이 소개되어 있는 페이지도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 같다. 가시복의 친구들로는 적의 입보다 몸을 크게 해서 잡아 먹히지 않도록 방어하는 뿔복, 복섬, 흰점꺼끌복, 거북복 등이 소개되어 있다. 날아다니는 물고기인 날치의 친구들로는 몸이 매우 가늘고 긴 동갈치, 학꽁치, 꽁치아재비 등이 있다. 날카로운 이빨의 포식자인 향유고래의 친구들로는 잠수 실력이 뛰어나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잡아먹는 민부리고래, 황제펭귄, 에델바다표범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동식물, 생물들을 다루고 있는 과학 도서들이 많이 있겠지만, 이렇게 마치 게임처럼 즐길 수 있는 시리즈라면 아이들이 더욱 흥미를 잃지 않고 집중하지 않을까 싶다. 생생한 사진을 통해 다양한 수중 생물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태적인 특징과 수중 생존 전략 등을 배우고, 그들 가운데 순위를 매기고 배틀을 시키는 등 재미있는 요소들이 너무 많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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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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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이야기를 털어놓자 이런 일들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자주 다른 가정에서도 벌어지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하지만 애인에게 털어놓은 것을 제외하면, 이 장면은 여전히 언어도 영상도 없는 듯한 이미지로 가슴속에 간직되었기 때문에, 이를 묘사하려고 사용한 단어들이 낯설고 무례하기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남들을 위한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p.26~27

'6월의 어느 일요일 정오가 지났을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다'는 강렬한 문구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서사를 담고 있다. 그녀가 열두 살 이던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한바탕 말다툼을 벌이셨고, 이내 어머니의 비명과 울음소리와 함께 목격한 것은 아버지가 어머니의 목덜미를 틀어쥐고 낫을 들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 장면에서 그녀가 느낀 것은 두려움과 슬픔이 아닌 '부끄러움' 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 사건은 그저 '나쁜 꿈'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고, 비극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비극의 장면을 도처에서 본다.

 

부모가 아이를 앞에 두고 다투는 것은 어느 가정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목을 조르고 때리는 장면을 바라보는 열두 살 소녀의 모습은 어쩐지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더 이상한 것은 아버지가 평상시에 폭력을 휘두르던 가장도 아니었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말처럼 그녀의 부모들 역시 그날 일을 전부 잊기로 결정한 듯 행동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에르노는 열두 살의 어느 일요일 정오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들을 마치 일기처럼 글로 써낸다. 그럼에도 감정적이지 않고 매우 건조하게, 마치 남의 일기를 두고 분석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냉혹하고 담백하게 쓰고 있다. 내 부모가 부끄럽고, 내 가난이 부끄럽고, 아무리 노력해도 품위 있고 우아한 생활이란 내 가족들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건조한 문장들 속에서 아프게 읽힌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    p.137

누구에게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 혹은 규정해버린 어느 순간, 어떤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차마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어떤 것이든, 그렇지 않든 말이다. 에르노는 그러한 부끄러움을 글로 옮기면서 말한다. ', 모든 글은 가장 극적인 것을 포함한 어떤 행위도 정상적인 것처럼 만들어버리나 보다' 라고.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그것을 글로 쏟아 내면서 불가능하고, 끔찍했던 장면도 생각보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평범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에르노는 기억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글이라는 수단과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며 찾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응시하고 있다. 부끄러움이란 달리 말하면 불편함일 것이다. 숨기고 싶은 것을 드러내야 하는 데서 오는 수치스러움과 심연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서 오는 고독과 슬픔 또한 고통을 동반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부끄러움에 대한 작가의 내밀한 고백이다. 교육받지 못한 부모, 가난한 집, 부끄러움은 자신에게 너무나 당연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그날 이후 부끄러움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고 말이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회상을 통해서 에르노는 자전적 글쓰기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이 작품을 발표했다.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 없는 책. 나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다.”고 말하는, 가장아니 에르노다운 글쓰기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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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하루, 밤에 피는 꽃 웅진 지식그림책 53
라라 호손 지음, 홍연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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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너무 예쁜 그림책을 만났다. 웅진 지식그림책 53, 라라 호손의 <일 년에 하루, 밤에 피는 꽃>이라는 작품이다. 사와로 선인장이 일 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그 하루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노란 사막은 미국 남서부에서 멕시코 북서부까지 펼쳐져 있는 넓디넓은 사막이다. 이곳에는 '사와로'라는 아주 특별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이 거대한 선인장은 일 년에 딱 하루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이 선인장은 길이 15미터에 무게가 9톤이나 되는데, 수명이 200년 정도 된다. 조직의 반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덕분에 유사시 인디언의 음료수로 이용되기도 한다.

드넓은 사막의 밤, 일 년에 한 번뿐인 꽃 축제를 즐기기 위해 사막의 여러 동물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일 년에 딱 하루라 꽃이 피어 있는 시간은 짧지만 화려한 꽃잎을 활짝 펼치고 달콤한 향기를 내뿜어 박쥐와 나방, 비둘기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을 불러들인다. 이 동물들 덕분에 사와로의 꽃가루는 멀리까지 퍼질 수 있다고 하는데, 그 특별한 하루는 사막의 여러 동물들에게는 마치 축제와도 같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 사막에 사는 독특한 곤충들과 동물들을 만나게 되는 점이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는 무지개메뚜기, 긴 줄무늬 꼬리를 가진 호랑이꼬리고양이, 늑대의 축소판이라하는 남부메뚜기쥐, 나는 것보다는 땅 위를 달려 움직이는 갬벨메추라기, 세상에 알려진 단 두 종류뿐인 독액을 뿜어내는 도마뱀 중 하나인 아메리카독도마뱀 등등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와로의 친구들은 모두 낯설지만, 그만큼 매력적이다.

페이지를 펼치면 드넓은 사막에 아침 해가 떠오르고, 분홍, 주황, 노랑, 빨강.. 사막에 꽃들이 활짝 피어난다. 햇볕이 점점 땅을 뜨겁게 달구는 한낮의 열기 속을 지나, 사막에는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지며 밤이 다가온다. 그렇게 어둠이 내리고, 찬란한 달빛 아래 사와로 선인장에는 새하얀 꽃들이 피어 오른다.

따뜻한 대지와 붉은 해가 떠오르고 시간이 지나 밤이 되며 색상이 변해가는 사막의 하늘, 싱그러운 초록빛을 뿜어내는 사와로 선장과 알록달록한 저마다의 개성과 색상을 가지고 있는 사막의 여러 동물들이 페이지 하나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아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바로 계절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푸릇푸릇한 봄부터, 시원한 초록빛의 여름, 노랑, 빨강으로 물드는 가을, 회색과 무채색의 겨울의 모습을 모두 경험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각 계절에 맞는 꽃과 나무, 곤충들의 모습 또한 너무도 경이로운 자연이 줄 수 있는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 아름다운 광경들을 놓치며 산다.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잊어 버리고 살고 있는 풍경들을 자연의 경이로움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재현시키고 있다. 단순하지만 우아한 선과 따뜻한 채도의 생동감 있는 컬러들로 표현된 사막의 하루는 그림이지만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막의 건조한 바람도 따뜻하게 느껴지고, 무더운 날씨도 생기 있게 보이며, 페이지 여기저기에서 달콤한 꽃내음이 나는 것만 같다. 어둠 속을 날아다니는 희끄무레한 나방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한 가득 피어난 사와로 꽃에서 나는 진한 향기가 책 속에서 묻어날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무더운 여름 밤, 사막의 동물들과 함께 자연의 신비로운 여행을 떠나 보자. 사막의 아름다운 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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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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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따개비 연구가 끝났을 때쯤에는 다윈의 아이들도 아버지가 집에서 실험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무척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때 다윈의 첫째 아이가 15살이고 막내는 세 살이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따개비를 연구하는 모습을 내내 보며 자랐다. 다윈 가족의 이웃이었던 존 러벅은 이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다윈의 아이 중 하나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그 집에 현미경이나 해부 도구가 없는 것을 보고, 그러면 네 아빠는 따개비 연구를 어디서 하시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다윈의 아이들은 다른 아빠들도 모두 따개비를 연구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p.115~116

신이 이 자연을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자연신학이 주류이던 19세기 초반, 찰스 다윈은 그러한 믿음에 의심을 품었다. 자연의 진리를 밝히기 위해 위대한 지적 탐구는 4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던 다운하우스의 시골집 뒷마당 실험실이었다. 그의 집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의 집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개구리 알을 덮은 축축한 종이로 복도가 어지러웠고, 뒤뜰 새장에서는 비둘기들이 요란하게 울어 댔으며, 온갖 씨앗을 둥둥 띄운 소금물로 가득한 항아리가 지하 창고에 수두룩했다. 모아둔 비둘기 뼈 때문에 악취도 진동했는데,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렇게 다윈은 끊임없이 기이한 실험을 했던 빅토리아 시대 괴짜 박물학자쯤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러한 실험 덕분에 오늘날 생물학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역사적인 인물이 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가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웠던 진화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모든 과정이 이 책에 담겨 있다.

화학, 생물학, 해부학, 박물학, 지질학 등등 다윈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고, 끈질긴 관찰과 투철한 실험정신을 바탕으로 친구, 사촌, 조카, 어린 자녀들은 물론이고 집사와 가정교사까지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자신의 연구에 참여시켰다. 딱정벌레를 수집하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비둘기를 키우고, 온실에서 덩굴식물을 기르고, 벌들을 쫓아다니며, 파리지옥에 손톱과 머리카락을 먹이로 주고, 지렁이와 대화를 나누며 합주곡을 들려주는 등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실험들이 펼쳐지는데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항상 바보처럼 실험한다'는 다윈이 말처럼 그의 행보는 어딘가 웃음을 자아내는 구석이 다분했다. 그럼에도 '천재가 하는 바보 같은 실험'은 결국 위대한 발견을 해내는 도약의 발판이 된다.

다윈의 관점이 언제나 옳은 사실로 증명된 것은 아니지만,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기의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 끈기와 독창성을 발휘하는 모습은 과학적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한 교훈을 시사한다. 그 동안 해왔던 수많은 견구처럼 분산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그가 오랜 시간 소박한 방식으로 기발한 실험을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비밀을 밝히는 데 필요한 것은 약간의 독창성과 자원을 활용하는 지혜가 거의 전부가 아닐까 한다.   p.271~272

다윈의 <종의 기원>이 그가 청년 시절 5년간의 역사적 항해 동안 남미와 대서양·태평양·인도양을 넘나들며 수많은 동물·식물을 채집하여 연구한 것에서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영국으로 돌아와 20여 년 동안, 진화론을 입증할 방대한 증거와 자료들을 수집했던 그 긴 과정에 대해서 아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비글호의 좁은 선실에서 시작된다윈의 실험실은 이후 그의 생애 대부분을 보냈던 다운하우스 시골집의 서재와 복도 그리고 정원에서 계속되었다. 무엇보다 그가 했던 실험들이 무슨 거창한 도구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위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도구와 재료를 갖고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는 매 장마다 '다윈의 실험' 이라는 메뉴로 다윈이 했던 여러 가지 실험들을 실생활에서 직접 재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이 소개되어 있다. 씨앗 날리는 실험, 다윈이 변이의 중요성을 인식할 수 있게 했던 따개비 관찰, 잔디밭 실험구 만들기, 벌집 분석과 비눗방울 실험, 식충식물 관찰하기 등등.. 누구라도 쉽게 구할 수 있고,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실험들이 위대한 다윈의 이론의 바탕이 된다니 그저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책은 <종의 기원>을 대중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가교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열정의 실험가이자 10남매의 아빠, 자상한 남편, 다정한 이웃으로서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찰스 다윈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해주는 특별한 재미도 준다. 그리고 근대 과학사의 흥미로운 장면들을 직접 엿볼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웠고, 평범한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린아이의 눈높이로 모든 현상에서 '' '어떻게'를 질문하는 것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놀라운 과학적 발견의 탄생 과정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어 감동적이기도 했다. ‘위대한 이론의 탄생 현장에 함께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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