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 애플의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조용한 천재
린더 카니 지음, 안진환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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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쿡을 CEO로 밀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2008년 실리콘 밸리의 한 투자자가 <포천> 기자 애덤 라신스키에게 한 말이다. "웃기는 일이 되기 때문이지요. 애플에는 단지 사업이 잘되도록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에 빠삭한 '천재'가 필요하잖아요. 팀 쿡은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지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 아니에요. 게다가 애플은 사업 운영을 아웃소싱해도 되는 기업이라고요." 가혹하지만 일리가 있는 분석이었다.    p.25

2011 10 5,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이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는 1년 생존율 20퍼센트에 5년 생존율 7퍼센트에 불과한 질병을 안고 모든 확률에 저항하며 거의 10년을 살았지만, 56세라는 젊은 나이에 맞이하기에는 너무도 때이른 죽음이었다. 사람들은 잡스와 애플을 거의 불멸의 존재처럼 여겨왔는데,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위대한 혁신가의 죽음은 실로 전례 없는 반향을 일으켰다. , 그렇다면 과연 예지력 있는 리더를 잃은 애플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 이후, 모두가 "애플은 이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애플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애플의 조용한 천재팀 쿡이 있었다.

사실 모두가 예상한 애플의 차기 CEO는 팀 쿡이 아니었다. 그는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제품발표회에 올라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팀 쿡은 대체 어떻게 애플을 1200조 기업으로 만들었는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당시 잡스는 췌장암 치료와 간이식 수술을 받고 자택에서 요양을 하며 회복하는 중이었다. 그는 팀 툭에게 연락해 자신의 집으로 올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팀 쿡은 50세의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도 어려운 자리에 오르게 된다. 혁신의 아이콘이자 세기의 천재 스티브 잡스는 죽음을 앞두고 왜 자신과는 정반대인 팀 쿡을 차기 CEO로 지목했을까? 팀 쿡이 그 자리에 오른 지 6주 만에 잡스는 세상을 떠났고, 사람들은 잡스가 없는 애플은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거리낌 없이 지적했다.

반면 쿡의 전술은 현저하게 달랐다. 그는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문제를 지적할 때는 가차 없었으며, 끝없는 질문 공세로 상대를 녹초가 되게 만들었다. "그는 아주 조용한 리더입니다." 조스위악의 말이다.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고함을 치는 사람도 아니지요... 그렇게 차분하고 침착하지만 질문 공세로 상대방을 조각 낼 수는 있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이라면 자기 일을 잘 알아야 합니다. 모르면 여지없이 당하거든요."   p.146~147

스티브 잡스의 입김 없이 완성된 애플 워치, 아이폰 X의 인기, 그리고 에어팟 이어폰과 하이엔드 시장을 완전히 평정한 컴퓨터까지, 애플의 성공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은 세계 1위 기업의 CEO임에도 지금껏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애플의 조용한 천재팀 쿡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애플에 관한 책은 시중에 넘쳐나지만, 가장 최신의 애플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팀 쿡과 애플의 임원들이 직접 참여한 가장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이 시대 최고의 경영자 팀 쿡, 그가 보여주는 놀라운 혜안과 빛나는 명언, 인간적인 통찰력을 통해, 무엇이 현재의 애플을 있게 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오래 전 아이팟부터 사용해 온 소위 애플 마니아이다.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로 스마트폰은 항상 아이폰으로만 교체하며 사용했고, 아이맥, 맥북, 아이패드 등등.. 애플이 만드는 모든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잡스가 없는 애플이 곧 추락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래서 지난 8년간 팀 쿡이 이끌어 온 애플을 소비자의 입장에서 항상 관심있게 지켜봐왔고, 그가 한 시기의 혁명가였던 스티브 잡스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겨냥하고, 새로운 성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보아 왔다. 물론혁신에 목숨을 걸던 천재 잡스와안정실리에 탁월한 모범생 팀 쿡은 다르다. 너무도 당연하게 팀 쿡은 스티브 잡스가 아니었고, 누구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는 없었다. 팀 쿡은 자신은 결코 잡스와 같아지는 것을 목표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고, 그저 자신이 될 수 있는 최상의 팀 쿡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한 마음과 책임감이 지금의 애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는 애플을 더 나은 회사로 만들었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애플이 꿈꾸는 10년 후 미래가 여전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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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행복한 수채화 캘리그라피
박나미 지음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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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SNS를 보다 보면 책 속 문구나 좋은 글귀들을 멋스러운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표현해놓은 것들이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그런 캘리그라피가 수채화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수채화의 물맛과 그 속에서 느껴지는 투명함, 자연스러운 번짐이 주는 매력이 더욱 돋보일 것 같다. 수채화 캘리그라피는 예쁜 글씨에 수채화 그림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 책은 수채화와 캘리그라피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 보고, 쉽게 생활 속에 접목하는 방법까지를 담고 있다. 간단한 준비물을 가지고 시작해 볼 수 있어 바쁜 생활 속 작은 여유를 누리고 싶다면, 이번 기회에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배워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간단하고 쉬운 수채화와 캘리그라피 기법을 동시에 배울 수 있고, 일상 생활에서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까지 담겨 있어 누군가에게 선물용으로 소품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수채화 캘리그라피에 필요한 종이, 물감, 팔레트, 붓 등 재료에 대한 간단한 설명으로 시작해, 수채화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단계별 방법과 다양한 기법을 익힐 수 있도록 수채화 입문 과정이 먼저 진행된다. 그리고 캘리그라피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연습 방법들과 구성 방법들을 알려주는 캘리그라피 입문 과정이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포토샵을 활용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포토샵을 이용해 캘리그라피나 그림을 좋아하는 사진과 합성하거나, 출력해 다양한 소품을 꾸미는 용도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포토샵 전체를 자세히 배우려면 두꺼운 책 한 권이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소개하고 있는 것은 수채화와 캘리그라피의 배경을 없애고 색감을 수정하는 과정 등을 크게 어렵지 않게 알려 주고 있어 누구라도 따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지막 활용 방법 부분이었다.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생활 속에서 책갈피, 폴라로이드 프레임, 가렌다, 엽서, 이름표, 드라이플라워 액자, 텀블러, 연필꽂이, 청첩장 등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 수 있는 팁들이라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다면 아주 특별한 소품이 될 것 같다.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은 드라이플라워 액자 만들기였다. 요즘은 드라이플라워가 참 예쁘고 다양한데다, 쉽게 구할 수 있는 편인데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통해서 만든 액자에 드라이플라워 장식을 이용해 만드니 너무 예뻤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좋을 것 같고, 집들이 선물로도 너무 특별할 것 같았다.

수채화나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있지만 어렵게만 느껴졌다면, 이 책을 통해서 한번 시작해 보면 어떨까. 무엇보다 실생활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팁들이 가득해 배우기만 하고 쓸모 없는 취미가 아니라, 시간을 들이는 만큼 고스란히 보여지는 실용적인 취미라서 더 좋을 것 같다.

저자 역시 전공을 한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수채화와 캘리그라피를 취미로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재피공방을 운영하며 자신이 느낀 즐거움과 노하우를 수강생들에게 알려줄 정도가 되었지만 말이다. 이 책을 통해 그 동안의 학습과 공방 수업을 통해 쌓은 저자만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다고 하니 거창한 재료나 도구 없이도 생활 속에서 간단하고 재미있게 수채화 캘리그라피를 시작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수채화와 캘리를 함께 하면서 글과 그림이 서로 도와가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빛내 준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소소한 행복과 감성을 느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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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은네디 오코라포르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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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나를 본 순간부터 알았던 거야. 나만 빼고 다들 알았어.

"에우."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게 이런 뜻이에요?"

여태껏 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고통에서 태어났다는 뜻이지. 사람들은 에우로 태어난 아이들은 결국 폭력적으로 된다고 믿어. 폭력이 더 많은 폭력을 잉태할 뿐이라고 생각하지.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건 알아, 너도 명심하렴."    p.55

종말 후 먼 미래의 아프리카, 밤처럼 피부가 새카만 오케케족은 최초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 피부가 태양의 색을 띠는 누루족이 등장했다. 오랜 세월 동안, 무력을 추구하던 누루족은 오케케족을 약탈하여 노예로 삼으며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폭력을 통해 잉태된 혼혈아인 '에우'라는 존재가 있다. 에우 아이들은 누루족과도, 오케케족과도 다른 외모로 태어나 확연하게 구분이 되는데다,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수치로 여겨지기에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천대받는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온예손우 역시 '에우'였다. 그녀의 어머니인 나지바는 누루족 무장단체에 의해 오케케족 마을 사람들이 집단 학살되고, 여자들은 모두 강간당하던 그 날, 피해를 당하고 사막에서 홀로 딸을 낳는다. 그리고누가 죽음을 두려워하는가라는 뜻의 온예손우란 이름을 지어 준다.

그 최악의 날, 누루족이 오케케 여성들을 단순히 고문하고 수치를 주려고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아니라, 에우 아이들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했다. 저자인 오코라포르는 2004년 내전 중이던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여성을 타깃으로 자행되는 강간이 일종의 전쟁 무기처럼 인종 청소를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되는 참상을 취재한 기사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한 전시 성폭력의 처참하고 끔찍한 양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고 있어 더욱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온예손우에게 잠재되어 있던 마법적 재능이 발현되기 시작하면서, 소녀 마법사가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된 세계와 맞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마법이 등장하는 판타지물을 좋아한다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일어섰다. 내 위로 보이는 건 전부 색깔뿐이었다. 수백 수천만의 색깔, 하지만 대부분 녹색이었다. 그 색들이 고이고, 쌓이고, 늘어나고, 수축되고, 무리짓고, 굽이쳤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는 세계와 공존하고 있었다. 이게 이계였다. 염소들을 보니 기뻐 깡충거리며 메에메에 울고 있었다. 그 행복의 동작이 진한 푸른색을 피워 올렸고 그게 내 쪽으로 흘러왔다. 그걸 들이 마셨더니 냄새가...... 근사했다.    p.277

이 작품은 세계환상문학상을 수상하고 네뷸러 상과 로커스 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HBO에서 드라마로 만든다는 소식과 함께 「얼음과 불의 노래」의 저자 조지 R. R. 마틴이 제작에 참여하기로 하여 더욱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나이지리아계 미국인 작가인 은네디 오코라포르는 마블의 「블랙팬서」의 스핀오프 코믹스 스토리 작가로서 활동할 뿐 아니라 SF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의 [야생종] 드라마의 각본을 맡는 등 현재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마법 판타지물에서 자주 사용되는 서사가 바로 십대 소년, 소녀인 주인공이 마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일 것이다.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무게감이 다른 것이 종말 후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성별과 인종 불평등, 할례 의식과 제노사이드란 묵직한 주제를 녹여 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극중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그런데 이 작품은 분명 판타지 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발을 단단히 딛고 서 있다. 실제로 지금도 전세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을 폭력과 악, 그리고 국내에도 만연한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더 이상 허구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한 번 펼치면 내려놓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빠져들게 만드는 재미와 끔찍할 정도의 현실적인 모습에서 오는 강렬한 아픔이 함께하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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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번 핸슨
밸 에미치 외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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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뼈에 사무쳐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안타깝게도 그건 상상이 아니다. 가공을 거치지 않은 100퍼센트 천연 유기농 현실이다. 셔먼 선생님이 있지만 선생님은 시간제로 돈을 받는다. 아버지가 있지만 나한테 눈곱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었다면 이 나라의 반대편으로 이사 가지 않았을 거다. 엄마가 있지만 오늘 저녁에는, 어제 저녁에도, 그 전날 저녁에도 부재중이다. 농담이 아니라 곰곰이 따져보면 누가 있을까?

내 앞의 컴퓨터 화면 위에는 이름 하나뿐이다. 에번 핸슨. 나다. 나에게는 그것뿐이다.   p.40

 

뮤지컬 팬들에게는 이미 어느 정도 알려져 있겠지만, 현재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표를 구하기 힘든 작품 중 하나는 바로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이다.

2017년 브로드웨이 최고의 화제작으로 제71회 토니상 9개 부문 노미네이트, 최고의 뮤지컬상을 포함 6개 부문 수상했고, 2018 그래미 어워드에서도 수상했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작사/작곡가로 잘 알려진 Benj Pasek Justin Paul이 작사와 작곡을, 뮤지컬 <렌트> <넥스트 투 노멀>의 연출을 맡았던 Michael Greif이 연출로 참여한 뮤지컬이다. 사회 불안 장애를 앓는 학생이 스스로에게 쓴 편지로 인해 친구가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이 내리는 결정보다 책이나 소설을 훨씬 더 잘 이해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킥젝 선생님의 비평적인 분석 전략을 방금 전에 목격한 실제 행동에 아무 문제없이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아름답고 지당하신 여주인공 조이 머피가 점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건 화자에 대한 평가를 상징하는 행동이다. 조이 머피의 눈에 에번 핸슨은 쓰레기인 것이다.   p.145

 

고등학생인 에번 핸슨은 사회불안장애를 겪고 있다. 주기적으로 심리 치료를 받고 있으며, 항우울제를 먹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그에겐 너무도 어렵기만 하다.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아빠는 꽤 먼 곳에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셨으며, 엄마는 병원 일과 수업 때문에 너무 바빠서 집에 거의 없다. 심리 치료사는 에번 핸슨에게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숙제를 내주었었다. 새 학기 첫날도 어깂 없이 투명인간처럼 보내고, 혼자 컴퓨터실에서 숙제인 편지를 쓰고 있는데, 학교의 문제아 코너가 나타나 그 편지를 가로채버린다. 편지를 돌려받지 못해 불안한 에번은 코너가 자신의 편지를 사람들에게 유포해서 웃음거리가 되어버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하지만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고, 어떠한 폭탄도 터지지 않은 채 하루, 이틀이 지나간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전해지는 코너의 자살 소식, 게다가 코너의 가족들은 그의 옷에서 발견된 에번의 편지를 유서로 오해하게 된다. 에번 핸슨에게,로 시작해서 너의 가장 가깝고 가장 소중한 친구인 내가,로 끝나는 그 편지를 코너가 에번에게 쓴 편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졸지에 에번은 코너의 절친이 되어 버리고, 작은 오해로 시작된 그 일은 점점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에번은 자신이 코너의 비밀친구였다는 거짓말을 시작하게 되는데, 거짓말은 거듭될 수록 점점 몸집이 불어나 상황은 점점 더 제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외로움으로 사무치던 한 사람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과정은 유쾌하고, 따뜻하고, 뭉클하게 펼쳐진다. 사회불안장애를 겪는 한 아이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에 휘말려 조금씩 사회성을 갖게 되는 과정을 통해 어느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또다시 기본값으로 설정된 반응을 보인다. 장난치는 거겠지. 내 앞에서 까부는 거겠지. 하지만 나의 직감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한 얘기는 사실이 아니었다. 그런 사건은 벌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얘기에 담긴 정신과 그의 전달 방식은 묘하게도 진짜처럼 느껴졌다. 그가 진심을 담아서 하는 얘기 같았다.   p.233

 

사실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이 유명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음악 때문이었다. 뮤지컬 넘버들이 굉장히 현대적이면서도 대중적이라, 한번 들으면 그 멜로디가 계속 귀에 남는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의 곡을 만들었던 작가, 작곡가의 음악이라 더욱 매력적이고, 가사들이 모두 희망적이고, 힘을 주는 메세지를 안고 있어 듣고 있으면 정말 심장이 쿵쿵 뛰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 작품은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예정인데, 뮤지컬 넘버들이 너무 좋아서 제2 <라라랜드>가 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번에 뮤지컬을 원작으로 하는 소설이 나올 예정이라 가제본으로 미리 만나보게 되었는데, 너무도 뭉클하고, 따뜻하고,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음악으로만 들었던 내용을 소설을 통해서 깊이 있게 알게 되니, 책을 읽고 나서 다시 듣는 뮤지컬 넘버들의 감동은 그야말로 두 배가 되었다.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핫한 뮤지컬이라 언젠가는 국내에서도 공연이 될 것 같은데, 그 전에 소설과 영화로 먼저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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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태어났으니 산다 - 열심히 살기는 귀찮지만 잘 살고는 싶은 나를 향한 위로의 한마디
해다홍 지음 / 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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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존재가 소중하고 사랑 받을 만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존재가 굳이 소중해질 필욘 없다. 그냥 내가 나로서 살아 있어도 충분한 환경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게 전부다. '장점 찾으면 좋은 거지, 좋게 생각해' 따위의 말은 지겹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 무엇이 더 필요할까? 큰돈을 벌지 않아도, 인형처럼 생기지 않아도, 모든 분야에 다재 다능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나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p.17

일단 태어났으니 산다? 열심히 살기는 귀찮다? 뭐 이런 무기력한 제목이 다 있나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럴 때 있지 않나. 충전해도 방전되는 배터리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쉽게 지쳐버리고, 일상이 무기력해지는 그런 경험 말이다.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 압박을 잠시 잊고 싶은 순간, 당신은 좀 대충대충 살 필요가 있다.

네이버 블로그 방문자 약 12만 명,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자 약 5천 명 그리고 수백 명의 독자들이 선택한 독립출판물까지, 연일 화제를 일으키며 대중의 진심 어린 지지를 받은 해다홍 작가의 이야기가 새 옷을 입고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일과를 끝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엔 얼른 들어가서 누울 생각에 설레고,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그래도 '일단 태어났으니 살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웃픈' 마음을 위로해 준다. 열심히 살기는 귀찮지만 잘 살고는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세상엔 노력해서 획득할 수 있는 것보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사실 더 많다... 열심히 하면 다 되는 시대는 지나 간지 오래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그래도 우리는 자신을 방어하며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최선을 다했던 많은 사람이 노력이 부족했다는 식의 자책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자책하며 땅굴 파고 싶을 땐 그냥 남 탓, 세상 탓을 해서라도 스스로를 지키기를.   p.73

어른이 되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상처를 받더라도 감정을 잘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어른이라고 별 수 없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돌아서지만 해묵은 감정들을 한쪽에 쌓아두거나, 아무한테도 말 못하고 혼자 끙끙대거나, 결국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쌓이게 된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왜 그렇게까지 애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마음도 함께 비집고 나오게 마련이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얼른 퇴근하고 싶고, 사소한 것에 쉽게 싫증 나고, 사소한 것에 쉽게 동요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평범한 모습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책이 필요하다. 일상의 무게에 지쳐 아무것도 되지 않을 자유를 원하지만, 막상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받아들일 자신은 없는 '요즘 것들의 감성'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요즘 가장 부러운 건 절박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왜냐하면 그럼 자신의 구차한 모습 따위는 안 봐도 되니까. 품위를 잃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건 다 비슷하고, 생각보다 구차하고, 처량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 속 이야기들이 모두 부정적이고, 우울한 내용들이지만 만화를 읽으면서 그렇게 어둡게만은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누구나의 속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매사에 불평이 많다고 해서 삶에 대한 애착까지 없는 건 아니니 말이다.

소심하지만 너무도 유쾌한, 귀여운 투덜거림들이 공감이 되고, 위로가 될 것 같다. 편안하고 친근한 그림체로 가끔은 익살스럽게 또 가끔은 진지하게 풀어내는 일상의 소소한 고민들이 바로 우리의 이야기이니 말이다. 때로는 버겁고 비뚤어질 때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일상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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