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인, 하고 있습니다 모노클 시리즈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민경욱 옮김 / 노블마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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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청부살인업자는 상상해선 안 돼. 표적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 혹은 이 사람이 죽으면 곤란한 사람이 있겠지 같은 걸 상상해선 안 된다고. 반대로 표적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이런 녀석은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선 안 돼. 상상은 감정 이입과 이어지지. 인간은 감정이 들어간 상대에게는 냉정해질 수 없어. 즉 죽일 수 없다는 말이지."   p.27~28

사람들은 청부살인업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사람을 상상할까. 어두운 양복을 입고 왼쪽 옆구리에 권총을 숨기고 있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 마르고 눈이 쫙 찢어진 얼굴에 조직 폭력배 지시로 움직이는 외국인? 러프한 재킷을 입은 핸섬한 터프가이?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청부살인업자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도미자와 미쓰루는 중소기업을 상대로 평범한 경영 컨설턴트를 하며, 부업으로 청부살인 일을 하고 있다. 보수는 1인당 도쿄 증시 일부 상장기업 사원의 평균 연봉인 650만 엔. 세금을 내지 않는 수입이라 1년에 한 명만 죽이면 경영 컨설턴트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다. 물론 위장을 위해 계속하고 있지만 말이다.

의뢰가 들어오면 이를 받아들일지를 3일 안에 판단하고, 작업에 착수하면 2주 내에 실행한다. 선수금이 300만 엔, 입금이 확인되면 실행을 하게 되고, 완료하면 잔금 350만 엔이 다시 이체된다. 재미있는 것은 살인의뢰를 받는 사람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다. 중간연락책이 두 사람을 중계하고, 그 역시 의뢰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사이에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두고 있어 의뢰인과 청부살인업자는 서로의 정보를 알 도리가 없다는 이중 맹검법으로 이들은 나름 치밀하게 업무를 수행해나간다. 경영컨설턴트이자 청부살인업자인 도미자와 미쓰루, 치과의사이자 살인의뢰를 접수받는 아쿠타가와 이세도노, 공무원이자 중간연락책인 쓰카하라 슈운스케, 이렇게 세 남자가 청부살인을 의뢰 받고, 수행하는 과정이 매우 담백하고 일상적으로 흘러간다는 점 또한 이 작품 만의 특징이다.

 

"나는 의뢰인과 접촉하지 않아. 동기도 모르지. 그래도 여러 명을 죽이다 보면 그냥 알게 되는 게 있어. 인간은 원한이나 증오만으로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지 않아. 그런 동기라면 직접 손을 대지.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하기 위한 조건은 내 생각으로는 상대가 살아 있으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불이익이 생기는 경우야...."    p.132

치과의사, 공무원, 경영컨설턴트라는 남부럽지 않은 멀쩡한 직업을 가진 세 남자가 대체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에 대한 동기나 배경은 알 수 없다. 청부살인이라는 비일상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이 독특한 직업을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일상적으로 그리고 있어 사람을 죽이는 일의 무게보다는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비즈니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실린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각각의 의뢰 건에 대한 단편처럼 읽히는데, 청부살인업자가 의뢰인의 동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미스터리가 주요 플롯이 된다. 그래서 수상한 의뢰인이 등장하고, 청부살인업자는 무심하게 사람을 죽여놓고 그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지를 추리하는 것이다.

저 여자는 왜 한밤중에 공원에서 검은 물통을 씻을까? 퇴근길에 기저귀를 구입하는 저 독신남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자를 흡혈귀에 물린 모습으로 죽여 달라고 의뢰한 이유는? 어딘가 수상한 의뢰인들은 대체 왜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사원이 1년간 열심히 벌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상대를 망자로 만들고 싶은 것인가? ‘살인사건의 진상을 추리하는 청부살인업자피해자의 죽음에 얽힌 사연이라는 독특한 구성이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물론 너무도 쿨하고 담담하게 청부살인을 수행하는 킬러의 모습이 그다지 와 닿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청부살인업자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다소 어이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에 쉽게 빼앗을 수 없고, 거기서 생명을 대신 빼앗아주는 청부살인업자라는 전문직의 존재 의의가 있다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이상한 논리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 또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색다른 일상 미스터리를 만나보고 싶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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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기술 - 침대에 누워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7가지 무기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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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분에게 네 안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으니 네 안의 짐승을 깨우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첫째 여러분은 호랑이가 아니고, 둘째 역시나 여러분은 호랑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도 누군가에게는 효과가 있겠지만 도저히 낯간지러워서 나는 그런 말은 못하겠다. 나에게 그런 일은 억지로 메이플 시럽을 한 바가지 먹으라는 말과 같다. 고맙긴 한데, 사양하겠다. 긍정의 역설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좀 다른 길을 간다.   p.17~18

당신은 아마도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제대로 실천한 적은 없을 것이다.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지만 지키지 못했으며, 이런저런 일을 시작할 거라 다짐했지만 한 번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바꿀 모험을 수십 번, 수백 번 시작했지만 이내 시들해지고 만다. 왜 그럴까. 당신이 아직도 똑같은 직장, 똑같은 관계, 똑같은 과체중의 몸에 매여 있다면, 바라던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당신이 죽는 그 순간까지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당신의 임종을 한번 상상해보라. 누워서 당신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 어떤 기분이 드는가? 후회? 회한? 슬픔? 젠장, 깨어나라!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이 책은 이렇게 계획을 세우지만 매번 실천을 못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러한 일에 핑계만 대는 사람, 겨우 시작은 하더라도 제대로 끝을 맺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시작의 기술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내일부터는 진짜 달라질 거라고 결심하지만 언제나 제대로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후회만 쌓여간 경험이 있다면, 무조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하다.

 

 

이런 목표는 실제로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속지는 마라.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다. 그런 자격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말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바라게 만들어서 결국은 인생의 희생자로 만든다. 때로는 그냥 원하는 것을 위해 죽도록 노력하고,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돌진해야 한다. 말그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당신이 만들어야 한다.   p.165

이 책은 처음엔 독립 출판으로 출간되었다가, 독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이내 열성적인 팬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리고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세계적인 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재출간되었으며, 미국에서만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아울러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45주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독자들이 만들어낸 역주행 밀리언셀러인 셈이다. 그만큼 여타의 비슷비슷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책이다. 시작부터 '어쩌면 당신이 좇는 그 행복, 원하는 몸무게, 선망하는 커리어, 갈망하는 사랑은 결코 당신의 것이 될 수 없을지 모른다'고 단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군말 빼고 핵심만 명쾌하게, 쓸데없는 희망을 주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도록, 단호하고 직설적으로 행동을 이끌어내는 책이다.

무엇보다 '당신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는 저자의 말이 임팩트 있게 다가왔다. 그러니까 '당신 머릿속에 있는 것이 당신을 규정하는 게 아니라, 당신이 뭘 하는가가 당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멈춰 서거나 꾸물댄다고 해서 인생이 우리를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거나 두려워한다고 해서 인생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뭘 하든 인생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삶을 바꿀 의지가 있는가.에 있다. 건강하지 않은 몸으로 살 의지가 있는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 의지가 있는가? 절대 성공하지 못할, 지속되지 않을 관계를 참고 견딜 의지가 있는가? 이런 거지 같은 상태를 더 이상 참고 싶지 않다면, 당신도 시작할 수 있다. 만약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의지가 없다면, 당신은 이대로 사는 게 그런대로 참을 만한 게 틀림없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이렇게 현실을 직시하고, 패배감과 무기력을 벗어 던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텔레비전을 끊어라. 읽고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던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끊어라. 과식을 끊어라. 소파에 붙어사는 것을 끊어라. 미루는 버릇을 끊어라. 그리고 그 자리에 뭐든 좋은 것이 들어설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말했듯이, 핑계는 그만 대라! 이제 삽질은 그쯤하고 삶 속으로 뛰어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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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따위 레시피라니 - 줄리언 반스의 부엌 사색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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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달라." 현학자가 저녁 요리를 식탁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치커리를 곁들인 돼지갈비살 두 접시였다. 누가 들어도 자기연민으로 삐걱거리는 어조였다.

"사진과 같으리라 기대하는 건 이의 요정을 믿는 것과 같아." 현학자가 요리를 해주는 그녀가 대답했다.

맞는 말이다. 다년간의 영웅적 노력 끝에 조금이나마 요리의 지혜를 터득했는데도 왜 그걸 잊고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지 참 한심한 노릇이다.   p.91~92

우리 집 서재에도 요리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큰 편이다. 나도 한때는 요리를 책으로 배웠던 초보 요리사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요리에 대한 열정도 그만큼 넘쳐났던 터라, 프랑스 음식에 꽂히면 프랑스 요리에 대한 책을 줄줄이 사서 한 동안 저녁 식탁에는 듣도 보도 못하던 프랑스 요리가 이어졌다. 일본 가정식에 꽂히면 일본 요리책들이, 파스타에 꽂히면 이탈리안 요리책들이, 그 외에도 전골 요리, 오븐 요리, 채식 베이킹, 디저트 요리책 등등 수많은 요리책들을 섭렵했다. 하지만 책에 실려 있는 사진처럼 요리가 나왔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셰프들이 알려주는 계량법은 늘 헷갈렸으며, 분명 레시피 순서대로 했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맛의 요리가 완성되는 경우도 너무 많았다. 그렇게 나처럼 요리책과 사투를 벌여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그야말로 공감 이백프로에 페이지마다 킬킬대며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시대의 지성, 줄리언 반스의 요리에 대한 에세이이다. 어려서 요리를 배울 기회가 충분치 않았던 줄리언 반스가 중년이 되어 뒤늦게 낯선 영역이던 부엌에 들어서서요리를 책으로 배우며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레시피대로하면 맛있는 음식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완벽주의를 고수하지만, 이상하게도 요리는 늘 어딘가에서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백 권이 넘는 요리책을 사 모으며 요리 경험과 교훈을 쌓아나가게 되는데, 까칠한 부엌의 현학자가 투덜거리는 말들이 거의 모두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어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바로 그거다. 빵을 고르는 일. 버터를 마음대로 마구 쓰는 일. 부엌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일. 재료를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 친구와 가족을 먹이는 일. 다른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단순화할 수 없는 사회적 행위에 참여하는 일. 내가 아무리 트집을 잡고 항의의 말을 했어도 콘래드의 말이 맞는다. 그것은 도덕적 행위다. 온전한 정신의 문제다.    p.192

특히나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줄리언 반스가 실제로 다양한 요리책들을 사서 읽고, 레시피를 재현해보고, 불친절한 레시피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 지를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거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돈으로 대가를 치른 조언을 해주면서, 요리책을 구매할 때 주의사항에 대해 낱낱이 알려주기도 한다. 우선 첫째, 요리책의 화보를 보고 책을 사지 말 것. 음식을 전문으로 촬영하는 사진 작가의 화보대로 실제 요리가 완성되는 경우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둘째, 지면 배치가 복잡하고 화려한 요리책은 절대로 사지 말 것. 셋째, 범위가 너무 넓은 책은 피할 것. 넷째, 요리책을 노골적으로 진열해놓은 음식점에서 충동 구매하지 말 것. 다섯째, 집에 주스기가 없으면 주스 책을 사지 말 것. 등등.. 오랜 세월에 걸친 그의 요리책 수집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조언들이 사실 대부분의 요리책들에 해당되는 핵심을 찌르고 있어 매우 유쾌하기도 했다.

 

우리네 엄마들이 해주던 음식의 특징은 정확한 계량이 아니라 대충 손짐작으로 넣는 재료들과 분명 냉장고에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얼마 안 있으면 뚝딱뚝딱 마술처럼 완성품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아닐까 싶다. 어릴 때 가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는 너무 맛있어 방법을 물어보면 대부분 적당히, 한움큼, 살짝 등등 이해할 수 없는 계량법을 알려 주곤 했다. 그게 뭐야. 했는데 그 뒤로 세월이 흐르고 보니 매일매일 음식을 만들면서 쌓이는 노하우라는 것이 정확한 레시피와 계량법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건 매일 요리를 일상처럼 하게 되는 경우에 알게 되는 것들이고, 대부분의 요리 초보자들 혹은 가끔 요리를 하게 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레시피야말로 대체 어쩌란 말인가 싶은 불친절한 요리법일 것이다. 게다가 그것이 요리책이라 이름 붙은 레시피의 설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일 것이고 말이다. 줄리언 반스는 스스로를 아마추어 요리사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굉장히 요리를 자주, 관심 있게 하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그가 모호한 요리책에 퍼붓는 혹독한 독설이 그냥 투덜거림이 아니라 지적이고 위트 있는 에세이가 될 수 있는 것일 테고 말이다.

요리란 쓰는 식재료와 먹는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이들 모두에게 귀를 기울이는 소통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한 그릇의 요리가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당신도 그렇다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요리를 시작한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요리를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는 것에 대해 유쾌하고 따뜻한 사유를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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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왕 위장 생물 배틀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2
위장 생물 배틀 편집부 지음, 기타무라 신이치 외 그림, 고경옥 옮김 / 글송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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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 12권은 '위장 생물 배틀'이다. 생물들의 놀라운 생존 기술인 위장술의 특별한 비법을 만나볼 수 있다. 생물 83종이 선보이는 나뭇잎, 낙엽, 나뭇가지, 모랫바닥, 사람 얼굴 등의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위장술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고, 먹고 먹히는 위험한 환경에서 천적에게 잡아 먹히지 않도록, 혹은 먹이를 좀 더 쉽게 사냥하도록 생물들은 진화해 왔다. 그 중에 '의태'라고 하는 생존 수단이 있는데, 몸 색깔이나 모양을 바꿔서 주변의 환경으로 위장해서 주위를 속이고 착각하게 만드는 생존 기술이다. 이러하나 기술을 가지고 있는 생물들은 식물이나 다른 생물, 돌이나 바위 등을 흉내 내기도 하고, 몸의 무늬를 이용해 자신보다 더 강한 생물인 척 위장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곤충, , 물고기, 파충류, 양서류 등 위장술의 달인들은 생생한 사진으로 위장 전과 위장 후의 모습으로 실려 있다. 위장 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면 사진을 한참 들여다봐도 어디에 숨었는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이들은 위장 기술이 뛰어나다. 녹색 나뭇잎과 똑같이 생긴 나뭇잎벌레, 낙엽을 잘라서 만든 장식품 같은 사탄나뭇잎 꼬리도마뱀붙이, 나뭇잎 위에 올라가면 갑자기 자취를 감춰 버리는 남작 애벌레, 돌돌 말린 낙엽처럼 생긴 기생재주나방 등 도무지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는 위장 생물들이 많았다.

강한 척 위장하는 생물들도 흥미로웠다. 곰개미로 위장해서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불개미거미도 있고, 독성 생물의 모습을 흉내 내서 몸을 보호하는 흑점얼룩상어, 납작벌레로 위장하는 제비활치, 생김새와 날갯짓 소리까지도 벌처럼 보이는 줄녹색박각시나방, 흑백 줄무늬를 이용해 바다뱀으로 위장하는 줄무늬장어도 있다. 줄무늬장어의 포식자는 놀랍게도 바다뱀이라, 바다뱀의 눈을 잘 속이면 다행이지만, 위장한 것을 들키면 바다뱀에게 잡혀먹을 수도 있다고 하니 이들의 위장술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생존 기술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와 함께 최강왕 시리즈를 자주 보는데, 무엇보다 화보가 생생해서 아이가 재미있게 보는 책이다. 특히나 이번 책은 위장 전후의 모습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하듯 놀이처럼 읽을 수 있어 더욱 흥미로웠다. 본래 모습과 위장 모습을 비교해서 살펴볼 수 있고, 아이가 숨어 있는 위장 생물을 찾는 동안 해당 생물에 대한 설명 페이지를 읽어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생물들이 왜 위장을 하는 것인지, 위장술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밝혀지지 않은 위장술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보통 위장 생물하면 나뭇잎 벌레나 카멜레온 등을 바로 떠올릴 텐데,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위장 기술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뭇잎으로, 낙엽으로, 나뭇가지로 위장하는 생물들이 있었고, 육지 환경으로, 바닷속 환경으로 위장하는 생물들, 그리고 강한 척 위장하거나 다양한 모습으로 위장하는 생물 등 매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 배설물로 위장하는 벌레나, 암컷에서 수컷으로 성전환 위장을 하는 물고기도 있었고, 사람의 웃는 얼굴로 변장하는 노린재, 넙치나 바다뱀 등 다양한 생물로 변신할 수 있는 흉내문어 등 각각의 위장 기술이 천차만별이었다.  과학 학습 도감 최강왕 시리즈는 그 동안 동물, 공륭, 생물, 요괴 등 다양한 시리즈로 출간이 되었는데, 다음 시리즈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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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B] 빨강머리 앤 : 에이번리 이야기 (오디오북) 오디오북 빨강머리 앤 시리즈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엄진현 옮김, 이지혜 낭독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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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고 행복한 날은," 앤이 언젠가 마릴라에게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다. "대단히 멋지거나 놀라운 일, 신나는 일이 벌어진 날이 아니라 단순하고 사소한 즐거움이 실에 궨 진주알이 한 알씩 미끄러지는 것처럼 하나둘씩 자연스럽게 생기는 날인 것 같아요."

초록지붕 집의 삶은 그런 날들로 가득했다. 물론 앤에게도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일어나긴 한다.    p.294

'빨간 머리 앤'은 빨간 머리의 주근깨투성이 고아 소녀 앤이 실수로 커스버트 남매에게 입양되면서 생기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소설인데,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에이번리의 앤'을 비롯하여 9권의 후속 편들이 이어지는 시리즈이다. 이번 두 번째 작품에서 선생님이 된 앤의 첫번째 부임지에서의 삶이 펼쳐지고, 이어지는 후속 편들에서는 길버트와의 사랑과 결혼 생활, 아이들의 삶 등 앤의 일생이 그려진다. 얼마 전에 예쁜 일러스트와 함께하는 에이번리의 앤 이야기를 읽었었는데, 이번에는 오디오북으로 만나보게 되었다.

요즘 오디오북이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해외에서는 꽤 많은 소설들이 오디오북으로 제작되어 이미 익숙한 책의 소비 채널이지만, 국내에서는 이북 리더기의 기계음으로 듣는 정도였다. 그런데 작년부터 서서히 오디오북으로 소개되는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고전 명작들뿐만 아니라 국내 소설가들의 작품이나 자기 계발서 등등 그 분야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 책은 두툼한 책의 표지에 USB가 삽입되어 있고, 실제 소설의 내용을 종이책으로도 만나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오디오북 음성 파일이 수록되어 있는 USB PC 또는 노브툭에 꽂은 뒤 파일을 모두 PC 등 저장 장치에 복사해서 들을 수도 있고, 케이블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옮겨서 들을 수도 있어 매우 편리하다. mp3음악 파일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들을 수 있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은 곳에서도 손쉽게 오디오북을 이용할 수 있다.

", 그냥 너무 아름답잖아... 옛날이야기처럼... 너무 낭만적이고... 그리고 슬퍼." 앤이 말하며 눈을 깜빡여 눈물을 흘려보냈다. "완벽하게 아름다워.... 하지만 어쩐지 조금 슬픈 감정이 뒤섞여 있는 것 같아."

", 물론 누군가하고 결혼하는 건 무서운 일이긴 해요." 샬로타 4세가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셜리 아가씨, 남편보다 더 무시무시한 것이 이 세상에는 많거든요."    p.479

빨간 머리에 콤플렉스가 있었던, 하지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초록지붕의 생활에 적응했던 앤이 어느 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그렇게 수다쟁이에 공상을 좋아하는 여자 아이는, 회초리 대신 애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를 굽히지 않을 만큼의 어른이 되었다. 물론 아직은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여전히 실수투성이에 덤벙대기도 하고, 여전히 혼잣말하는 어린 시절의 버릇도 고치지 못했지만 말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주근깨 빼빼 마른 소녀를 읽던 당시의 어린 소녀에서 지금은 어여쁜 숙녀가 되어 다시 돌아온 앤보다 훨씬 더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이 작품을 낭독한 이지혜 배우님의 목소리는 <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에서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로 만난 적이 있다. 이지혜 배우님이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화자인 여섯살 옥희의 목소리로 주요섭의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읽으며, 엄마, 손님의 목소리까지 소화해 내고 있어 마치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었다. 그래서 더 기대하며 이번 작품의 음성 파일들을 듣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이 훨씬 더 이지혜 배우님의 매력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다. 꽤 두툼한 분량의 소설이라 지문이 많은 편인데, 지문을 읽을 때와 인물들이 대사를 할 때의 톤이나 발성 등이 전부 달라서 이야기에 막 빠져들어 가면서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앤의 단짝인 다이애나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 매력이 더욱 돋보였는데, 그 이유는 직접 오디오북을 통해서 다들 들어보면 더 좋을 것 같다. 이번 기회에 귀로 읽는 독서라는 오디오북만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져보면 어떨까. 베테랑 배우가 인물들의 성격에 따라 목소리로 연기를 하듯이 낭동을 하고 있어, 더 즐겁고 더 쉬운 독서의 세계를 경험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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