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공간은 정보‘라는 말과 함께 3차원, 4차원 등과 같은 차원에 대해서도 간단히 살펴봤었다.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찬찬히 저자의 글을 따라 읽어가면서 이해해보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저자가 들었던 여러가지 예시 중에 만화영화를 볼 때 우리 뇌가 초당 16장의 그림을 연산하여 공간과 이야기를 이해한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예시를 통해 과거에 비슷한 이미지를 동작만 조금씩 다르게 그린 뒤 그것을 여러 겹으로 포개어 빠르게 넘기면 각각의 이미지가 마치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공간‘이라는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공간‘의 본질에 대한 저자의 얘기를 읽다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책을 더 읽으면서 좀 더 명확히 알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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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본 부분에서 p.258에 밑줄 친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보라‘는 저자의 얘기가 ‘공간‘ 이라는 것의 참된 속성을 제대로 파헤쳐 볼 수 있는 좋은 관점이 되지 않을까 예상해보게 된다. 솔직히 아직까지는 약간 추상적인 느낌도 없지않아 있지만, 저자가 알려준 시각으로 공간을 바라보는 연습을 한다면 추상적이었던 느낌이 지금보다는 좀 더 선명하고 명확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건축이든 기술이든 본능적 욕구를 따라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는 말과 함께 애플의 아이폰의 사례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이 갔던 내용이었는데, 이유인즉 지극히 주관적이기는 하나 생뚱맞게도 과거에 읽었던 문학작품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본능적 욕구가 이성의 끈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예전에 읽었던 문학 작품들을 돌이켜보면 등장인물들이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이성의 끈을 끝까지 붙잡기보다는 결국 자신의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들을 참 많이 봤었다. 그 당시 들었던 생각이 아무리 이성이 발달하더라도 인간은 결국 본능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는 몰라도 저자가 기술이든 건축이든 본능적 욕구에 따라 발전할거라는 얘기가 더욱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본능과 관련된 얘기로 인간의 짝짓기 욕구에 기반하여 클럽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현상이라든가 페이스북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 등을 분석해본 저자의 얘기도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핵심은 모두다 본능에서 나온 행동이고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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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동조‘sync라는 키워드에 기반하여 서술되어 있는데 저자가 이 키워드와 관련이 있는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얘기를 하기에 앞서 장황한 과학 이야기를 해준다. 고등학교 국어의 과학관련 지문에서 만나봤던 카오스, 엔트로피, 열역학 제2법칙 등의 용어들이 나오는데 물론 과거에 처음봤을때보다야 덜 낯설지만 여전히 난해한 느낌은 남아 있었다. 평소에 잘 쓰는 용어들이 아니다보니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 전에 빌드업(build up)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제가 발생하는 어떤 원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보니 본의 아니게 밑줄을 좀 많이 치게 되었는데, 건축을 잘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저자께서 아주 친절하고 꼼꼼하게 설명해주셔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저자께 감사드린다.

부가적인 얘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이 밀레니엄 다리를 설계한 ‘오브 아럽‘이라는 회사는 업계에서 아주 유명한 회사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여기 밑줄치진 않았지만 시드니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를 디자인 한 회사라고 하니 뭐 말 다했다. 그만큼 업계에서 인정받는 회사라는 말이다.
인터넷에 ‘오브 아럽‘을 검색해보니 관련 내용들이 이것저것 나오는데 책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추가적으로 더 알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이 하나 더 추가 되는 것 같다.

또한 저자가 밀레니엄 다리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건축이 정말 고려해야할 요소들이 많아서 어렵고 심오하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이 부분도 이제까지의 내용들을 종합적으로 볼 때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부분이었다. 이런 걸 보면서 업종을 불문하고 외부사람들은 일일이 알지 못하는 해당 업계인들만의 고충이 있음을 다시금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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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를 바꿔서 나오는 내용은 우리나라의 코엑스와 관련된 것이었다. 여기서 일일이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저자는 현재 코엑스의 건축 디자인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의 뉘앙스를 지속적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것은 자신이 경험해서 알고 있는 외국의 사례들을 벤치마킹하여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개선해보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었다.

보통 어떤 것에 불만이 있는 경우 그저 불평불만만 쏟아내고 끝나는 경우들이 많은데, 저자는 그러한 수준을 뛰어넘어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게 독자인 나에게 긍정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부가적으로 저자가 대안제시와 관련하여 소개한 곳 가운데 개인적으로 잘 몰랐던 장소인 보스턴의 뉴베리 거리와 푸르덴셜 쇼핑몰 그리고 저자가 코엑스와 비교하면서 간략히 소개했던 파리에 있는 라 데팡스 광장까지 새롭게 알게 된 장소들이어서 아주 유익했던 독서였다. 기회가 되면 해당 장소에 꼭 여행을 가서 직접 두 눈으로 보며 느끼고 오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듯 하다.

마지막에 밑줄 친 부분에는 직접적으로 나오진 않지만 책에 성베드로 성당과 광장, 로마의 나보나 광장의 멋진 이미지가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도 적접 가보면 참 좋을 듯 하다. 특별히 나보나 광장에는 천재 조각가로 알려진 베르니니가 조각한 분수가 있다고 하는데, 사진을 얼핏 보니 잠실 롯데월드에 있는 분수대와 유사한 느낌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좀 다르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다음 의문점은 과연 ‘어떤 정보들이 우리의 공간을 구성하는가?‘였다. 개인적으로 ‘보이드(void), 심벌(symbol), 액티비티(Activity)라는 세 종류의 정보로 만들어진다.‘라고 결론 내렸다. - P257

보이드는 물리적인 양이다. 정량적으로 측정 가능한, 실제 비어 있는 공간의 볼륨이다. 시대와 문화를 떠나서 객관적인 정보이다. 심벌 정보는 간판, 조각품, 그림 같은 상징적인 정보이다. 개인에 따라서 정보 해석의 차이가 있다. 마지막인 액티비티 정보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한 정보이다.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무엇인지가 공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류의 정보가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 P257

사람 간의 소통의 기본은 문장이다. 그리고 문장은 단어와 문장 구성이라는 두 가지로 완성된다. 어려운 말로 시맨틱 (Semantic)과 신택스(Syntax)라고 한다. 시맨틱은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신택스는 우리가 영어 문법 시간에 배운 1형식부터 5형식까지 있는 문장 형식 같은 것을 말한다. 이렇듯 언어의 소통은 문장 구성이라는 그릇에 단어가 담겨져서 전달된다. - P258

마찬가지로 건축 공간은 세 가지 종류의 관계라는 문장 구성에 세 가지 종류의 정보라는 단어가 담겨서 전달되는 것이다. 세 가지 종류의 관계들은 실제적(physical), 시각적(visual), 심리적(psychological) 관계이다. - P258

실제적 관계는 볼 수도 있고 그곳에 갈수도 있는 관계이다. 한강에는 다리가 있어서 강남과 강북은 실제적 관계가 된다. 시각적 관계는 볼 수만 있고 갈 수 없는 관계이다. 한강의 다리가 끊어지고 배도 없다면 강북과 강남은 볼 수는 있지만 갈 수는 없는 시각적 관계가 된다. 심리적 관계는 볼 수도 갈 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관계이다. 마치 계단식 아파트에서 같은 계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벽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702호와 703호처럼 말이다. - P258

세 가지 정보와 세 가지 관계라는 시각으로 건축 공간을 읽어 보기 바란다. 그러면 현실 공간부터 인터넷 공간까지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 P258

 텔레커뮤니케이션: telecommunication. 먼 거리의 통신 체계, 즉 원격 통신 체계를 의미한다. - P387

과거의 사례를 보면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발전할수록 물리적인 접촉과 이동 역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실례로 TV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거실에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TV로 봤으니까 여행은 안가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화면을 통해서 본 세상을 직접 가서 보기 위해 여행이 더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외에도 텔레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더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그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 P259

인간은 그렇게 고상하지만은 않다. 인간은 큰 전염병이 돌지 않는 한 계속해서 모이고, 붐비는 공간으로 모여들 것이다. 가상체험이 3D 입체영상으로 보여도 사람들은 실제로 모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인간은 짝짓기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더 나은 짝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P261

동물에게는 시각적인 것 외에도 냄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이 어떻게 발전을 하든 결국에는 냄새를 맡기 위해서 만날 것이다. 만나서 가까워지면 서로 터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더 모여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상된다. - P261

냄새가 해결되면 촉각을 위해서 모이게 될 것이다. 연애하는 커플들이 전화나 문자만 하고 만나서 서로를 만지지 않기 시작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만지고 또 만져지고 싶어 한다. 터치는 인간의 본능이다. 아이폰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만지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한 터치폰을 만들어서이다. - P262

애플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애완동물처럼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선보인 것이다.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혁신은 본능적 욕구에 충실할 때 만들어진다. - P262

건축도 기술도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쪽으로 발달할 것이다. - P262

기술은 가상 공간이라는 지극히 관념적인 공간을 만들어 냈지만 실제로 필요로 하는 콘텐츠는 아직도 본능에 충실한 욕구를 만족시키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도 계속해서 기술적인 발달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본능을 채워 줄 수 있는 물리적인 공간을 필요로 한다. - P262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무시한 채로 디자인된 건축물은 좋은 건축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 P262

인간은 주광성 동물이기에 채광과 통풍은 기본이다. (중략) 햇볕이 들어오지 않고 통풍이 제대로 되지 않는 건축물은 아무리 보기에 아름다워도 좋은 건축물이 될 수 없다. - P262

인간은 동물이면서 동시에 그 이상이기에 배부르고 따뜻하기만 하다고해서 만족할 만한 건축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또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에 기능적인 건축물 이상의 것을 제공해야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이다. - P262

좋은 도시 경관이라는 것 역시 앞서 말한 인식에 근거를 둔 가치와 동물적 요구 사항 모두를 만족시켜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건축이 어려운 것이다. - P262

식구가 세 명이면 사람 간의 관계가 네 가지 나온다. 부부 간, 엄마와 아이, 아빠와 아이, 엄마와 아빠와 아이. 그런데 여기에 둘째가 생기면 발생하는 인간관계는 열한 가지가 된다. 식구는 한 명이 늘었을 뿐인데 관계 조합의 경우의 수가 일곱 가지 더 생긴다. 사람은 한 명이 늘어나지만 사람 간의 경우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 P264

클럽을 가는 주된 이유는 새로운 이성을 엿보고 다양한 방법의 ‘즉석 만남‘에 대한 기대이다. - P264

만약 100명이 있는 클럽에 한 명만 더 들어가도 100가지 경우의 수가 더 만들어진다. 클럽은 ‘관계의 향연장‘이다. 페이스북의 가입자 수가 급속히 늘어난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 P264

가상의 공간이든 현실의 공간이든, 어떤 공간에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짝을 다양한 무리 속에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풀에서 고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유전자의 개선 가능성을 높인다는 장점이 있다. - P265

반면에 제한된 공간에 너무 다양한 인간관계가 존재하게 되면 우리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더 늘어난다는 그림자도 있다. - P265

건축에는 ‘모듈러‘라는 단어가 있다. 근대 건축의 대가 중 한명인 코르뷔지에가 모듈러를 인체 크기와 연관해서 디자인하는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한마디로 사람의 평균 팔다리 길이에 맞추어서 공간을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 P266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면 성인을 위한 평균 책상 높이는 72센티미터, 문짝 높이는 2미터, 팔을 뻗어서 물건을 올려놓는 선반높이는 170센터미터, 계단 한 단의 높이는 최대 18센티미터 등이다. 이러한 것이 나오게 된 배경은 일단 산업 사회를 거치면서 ‘최소한‘의 부피가 얼마인지를 알아내어 효율적인 공간과 재료를 활용하기 위한 것도 있다. - P266

효율성의 근거는 사람의 신체 치수이다. 이처럼 건축은 인식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람의 몸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 P266

자연 속에는 자연 발생적으로 같은 시간에 같이 움직이는 동조라는 보편적인 원칙이 숨어 있다 - P266

카오스라는 이론은 자연의 모습에서 보이는 날씨 같은 불규칙한 패턴이 실제로는 단순한 공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이다. - P266

프랙털(fractal)은 같은 패턴이 스케일만 달리해서 반복된다는 것이다. - P266

카오스에서 더 발전해 나온 것이 ‘콤플렉시티‘ 이론이다. 지난 수천년간 서양 과학은 끊임없이 작은 ‘최소 단위‘를 찾는 데 매진해 와서 양자역학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러한 발견이 생명의 신비를 설명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과학의 흐름이 콤플렉시티 이론이다. 우리말로 ‘복잡계‘라고 번역된다. - P267

(콤플렉시티 이론은) 생명의 발생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만들어진 이론이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불규칙의 상태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규칙이 나온다는 이야기이다. 앞서 말한 싱크가 이 콤플렉시티 이론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의 기본 원칙 중 열역학 제2법칙인 엔트로피 법칙에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 P267

엔트로피 법칙이란 한마디로, 가만히 놔두면 집이 점점 어질러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주는 가만 두면 점차 불규칙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 P267

아이러니하게도 빅뱅 이후 천제는 안 부딪치고 돌아가는 규칙이 만들어졌고, 생명이 탄생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거꾸로 가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우주 전체로는 불규칙이 늘어나지만 부분적인 곳에서는 규칙이 늘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싱크나 콤플렉시티 이론은 그런 부분적인 규칙성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 P268

장황하게 현대 과학 이야기를 한 것은 건축에서 이 동조 이론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있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런던의 밀레니엄 다리가 그것이다. - P268

(다리가 흔들리는) 문제는 사람이 걷는 것과 자동차가 가는 매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 P269

보통 다리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자동차는 바퀴가 굴러가면서 앞으로 나간다. 따라서 자동차의 하중은 아래로만 향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은 걸으면서 왼발을 내디딜 때에는 왼쪽으로 밀고, 오른발을 내디딜 때에는 오른쪽으로 미는 힘이 있다. 이는 사람이 걸을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걸음마를 하면서부터 체득한 방법이다. 우리가 스케이트를 탈 때 얼음을 좌우로 지치는 것을 생각하면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P270

문제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이 걸을 때 횡으로 미는 힘이 발생하게 되면 다리에 미세하게 진동이 발생하는데 이것을 주변 사람들이 느끼고 옆 사람 걸음걸이의 리듬에 맞게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과학에서 말하는 동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발을 맞추게 되고 그럴수록 다리의 움직임의 폭은 증폭되는 것이다. - P270

마치 그네를 뒤에서 밀 때 나아가는 방향으로 조금씩만 힘을 더 주어도 더 높이 올라가듯이 만약에 이 움직임에 사람이 계속해서 리드미컬하게 힘을 주면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다리가 무너지면 자기가 죽는데 그럴 군중은 없겠지만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 P270

구조 회사인 오브 아럽은 다리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잡아 주기 위해서 횡으로 자동차의 충격 흡수 장치와 비슷한 장치를 달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좌우로의 진동이 커지는 것을 일차적으로 잡아 주게 되었고, 흔들림이 증폭되는 현상을 막을 수가 있었다. - P270

이 밀레니엄 다리의 사건에서 보이듯이, 건축은 몸과 심리가 함께 작동하는 장치이자 현상이다. 몸과 심리가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건축은 그래서 더 어렵고 심오하다. - P270

사람은 자원이다. 사람이 많이 온다는 것은 많은 이벤트가 형성되고 그 만큼 중심적인 ‘장소성‘을 구축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축가들이 아무리 무대를 만들고 연출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오지 않으면 그 공간은 죽은 공간이다. 결국에는 사람이 공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 P275

여러 개의 건물로 만들어진 콤플렉스는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대형 공간에 모여서 섞여야 한다. - P275

광장은 유기적인 갯벌 같아야 한다. 다양한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없는 광장은 사막이 되기 십상이다. 파리의 라 데팡스 광장이나 서울의 코엑스 광장은 상업의 생태계가 없는 광야일 뿐이다. - P275

일반적으로 외부인이 한 도시에 애착을 갖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 도시의 도로망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그 이유는 자신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인식이 안 되면 길을 잃기 쉽고 공포감을 느끼게 되며 그러면 주변을 즐길 여유가 없이 경계만 하기 때문이다. - P276

보스턴은 존 핸콕 타워와 푸르덴셜 빌딩이라는 두 개의 고층 건물이 현재 나의 위치를 알려 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특히 존 핸콕 타워의 경우에는 납작한 평행사변형 모양의 평면도를 가지고 있어서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시시각각 변한다. 그것만으로도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 어렴풋이 파악이 된다. - P277

날씨가 변한다는 것은 불편한 요소가 될 수도 있지만 건축에서는 그 같은 변화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긍정적인 다양성의 요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나라 같이 사계절이 뚜렷한 날씨는 일 년 365일, 같은 날이 하나도 없다. 같은 거리라고 하더라도 날씨에 따라서 다르게 인식이 되어서 찾아갈 때마다 다른 얼굴의 거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 P278

한결같다는 것은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 P278

뉴베리 거리는 역사가 깊은 옥외 거리이다. 우리나라의 북촌이나 인사동거리에 비유될 만하다. 그리고 그 거리에서 한 블록 떨어져서 평행하게 위치한 푸르덴셜과 코플리 쇼핑몰은 실내 공간으로 몇 개의 호텔과 백화점이 연결되어 만들어졌다. 관광객들은 뉴베리 거리를 보다가 비가 오거나 추우면 푸르덴셜 쇼핑몰로 들어간다. 반대로 쇼핑몰에 있던 사람들이 답답하면 뉴베리 거리로 나와서 거리를 걷는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 P279

유럽의 성공적인 광장에는 두 가지 법칙이 발견된다. 하나는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축물이 있거나, 둘째로 광장 주변으로 가게들이 위치해 있다. - P280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장소가 만들어지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사람이 모일 목적지가 될 만한 가게나 랜드마크 건물이 필요하고, 사람이 정주할 식당이나 카페가 필요한 것이다. - P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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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용 중에는 ‘거울신경세포‘ 라는 것이 나오는데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흥미로웠다. 이것은 뇌과학 분야의 내용인데 저자는 아직 이 분야의 퍼즐이 극히 일부만 발견된 상태이며 아직도 발견해야 할 퍼즐들이 많이 있다고 말한다. 뇌과학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좀 더 정확히 알게 되면 좋을 듯 하다.

뒤이어서 나오는 내용 중에는 저자께서 ‘전향‘이라는 키워드로 뇌과학과 인문학을 결합하여 풀어놓은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자아와 자유의지, 뇌에 있는 신경세포 등에 대한 얘기들이 섞여서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갑작스럽게 자신의 태도를 180도로 바꾸는 ‘전향‘의 이유에 대해 단순히 자아의 변화나 자유의지의 변화가 아니라 뇌과학에 나오는 신경세포의 변화만으로도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오늘 독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좀 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더 넓어진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저자께서도 자신이 인문학만 공부할 때보다 과학공부를 하고나서 세상을 보는 시야가 확실히 좀 더 트이고 넖어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책의 중간중간에 볼 수 있었는데, 독자인 나 또한 세상을 보는 눈과 생각의 폭이 이 책을 읽기 전보다는 확실히 더 넓어진 것 같아서 뭔가 책을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이타 행동은 생물학적 유전자를 공유한 가족구성원 사이에 가장 먼저 그리고 강력한 형태로 나타난다. - P84

인간의 뇌는 작은 신도시가 아니라 오래된 대도시를 닮았다. 설계도에 따라 창조한 기계가 아니라 맹목적인 진화의 결과 나타난 기계이기 때문이다. - P84

논쟁을 종결하려면 사실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 P85

1992년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진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발화하는 원숭이 두피질의 일부 뉴런이 다른 원숭이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도 발화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후속 연구자들이 인간의 뇌에도 같은 기능을 하는 뉴런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울신경세포‘mirror neuron라는 멋진 이름을 얻은 그 세포는 세상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마음을 읽는 세포‘라거나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명예로운 별명도 생겼다. - P85

거울신경세포는 대뇌피질을 비롯한 뇌의 여러 부위에 분포해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행위를 조장하거나 억제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 또한 공감과 도덕적 동기 유발의 기초를 제공하며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염려하고 덜어주는 행위를 장려한다. - P86

거울신경세포가 모방과 공감에 관여한다면 문명을 만든 뉴런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모방하고 공감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언어를 익힐 수 있다. 언어가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공동 행동을 조직할 수 있었고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가 되었으며 생산력을 높이고 문명을 건설했다. - P86

언어는 종교와 함께 문명을 가르는 가장 강력한 경계선이다. - P86

우리의 뇌는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이다.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고 협력하고 배려하게 해주는 것은 거울신경 ‘세포‘라기보다는 여러 종류의 뉴런이 협동해서 만든 거울신경 ‘시스템‘인지도 모른다. - P87

"과학이 제공하는 사실을 모르면 우리의 마음은 세계를 일부밖에 보지 못한다." - P88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이며 본질을 드러내지 않는 실체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 P88

사람은 변한다. 그런데 그게 꼭 좋지 않은 일일까? 시간이 흘러도 늘 같은 모습인 게 반드시 좋은가? 그렇지 않다.
좋게 달라지면 변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그런 변화는 ‘발전‘이라 하고 더 못해지면 ‘퇴행‘이라 한다. - P89

그들의 인생은 그들이, 내 인생은 내가, 인생은 각자 책임지는 것이다. - P91

좋으면 가까이, 싫으면 멀리, 그렇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 P92

돌이 날아오면 몸을 틀어 피하는 무의식적 반사행동부터 파생금융상품을 매매하는 전략적 의사결정까지, 우리의 뇌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게 받아들여 적절한 대응책을 찾는다. 왜? 생존하기 위해서다. 그것이 뇌의 존재 이유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본업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뇌에 깃든,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철학적 자아는 그 일을 하려고 애쓴다. 성능이 지나치게 좋은 생존기계라서 그렇다. - P93

뇌에 깃든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쉼 없이 흔들리고 부서지고 비틀리는 가운데 스스로를 교정하고 보강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견딘다. 자유의지는 그런 자아가 지닌 것이다. 자아가 불안정한데 자유의지가 어찌 강고하겠는가. - P93

모든 전향을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으로 본다면 자아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자아는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보다는 뇌의물리적 변화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때문에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다. 인문학보다는 뇌과학과 신경생리학이 전향이라는 행위를 더 잘 설명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P94

뉴런들은 전기·화학 신호를 주고받아 정보를 처리하는데 전기 신호는 전자로 교환하고 화학신호는 신경전달 물질로 주고받는다. - P95

과학자들은 중요한 신경전달 물질을 이미 100여 개나 발견했고 새로운 것을 계속 찾아내고 있다. 아드레날린 · 도파민  · 세로토닌 · 옥시토신 · 엔도르핀 · 멜라토닌 같은 것이다. - P95

전자 교환과 화학물질 분비에 변화가 생기면 뇌의 정보처리 패턴이 달라진다. 특정한 신경전달 물질 하나의 부족 또는 과잉이 소프트웨어 전체의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 P95

도파민은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함으로써 동기를 부여하고 습관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도파민 분비량이 너무 적으면 사람은 둔감하고 느려지며 지나치게 많으면 충동적이고 급해진다. - P95

뇌는 기대보다 큰 보상을 받았을때 도파민을 분비한다. 행복해지려면 욕심을 줄이라고 한 현인들의 말씀은 전적으로 옳다. 도파민 분비에는 절대적으로 큰 보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여기서 보상은 먹이·짝·지위·권력 등 생존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말한다. - P95

도파민은 중독을 일으킨다. 사람들이 알코올·니코틴·카페인이 든 물질을 좋아하는 것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 P96

코카인과 암페타민 같은 마약성 물질은 도파민을 대량으로 나오게 하고 이미 분비된 도파민의 회수를 방해함으로써 신경세포에 작용하는 도파민 농도를 높인다. 중독 행위를 유도하는 시냅스 연결을 강화하고 유전자 발현 패턴을 바꾼다. 무엇에든 잘 적응하는 우리의 뇌는 도파민 농도를 유지하려고 금단증상을 일으켜 더 강력한 마약을 찾게 한다. - P96

도박· 게임 · 쇼핑· 만화 · 음식 같은 것도 도파민 분비와 관련이 있다. 물론 나쁜 것만 뇌에 보상을 주는 건 아니다. 성취감·희망·공감 같은 것도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일중독자·기부천사·헌혈왕이 아무 이유 없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것이다. - P96

우리의 자아는 언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는 땅 위에서 전자와 신경전달 물질의 홍수와 가뭄과 해일과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 자유의지더러 모든 악천후를 극복하고 철두철미한 일관성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유리창이 깨지고기와가 날아가고 기둥이 흔들린다고 해서 부실 건축물이라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전향은 뇌의 시냅스 연결망과 연결 패턴의 변화로 생긴 현상일 수 있다. - P96

데이터도 자아에 영향을 준다. 뇌는 학습하는 기계다. 하드웨어인 뉴런과 소프트웨어인 시냅스 연결망으로 매순간 방대한 데이터를 빛과 같은 속도로 처리한다. 스스로 학습하는 기계는 데이터를 많이 확보할수록 성능이 나아진다. 데이터가 늘어나면 소프트웨어 성과가 좋아지고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면 하드웨어 활용 방식을 개선한다. 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뇌는 같은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은 뇌와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고 같은 과제를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 한해서 우리는 누군가 자유의지로 전향했다고 조심스럽게나마 말할 수 있다. - P97

자연이 생존을 위해 조합한 천연지능은 스스로 학습해 도덕을 알고 감정을 느끼는 우리의 뇌가 되었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고 단언할 수 없다. - P98

천연지능은 인간 개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소멸할 수밖에 없지만 인공지능은 스스로 복제함으로써 영생할 수 있다. 하드웨어를 무한 증강하고 소프트웨어를 끝없이 개선하고 데이터를 무한 집적해 천연지능의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 P98

뇌의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와 달리 더 더 늦게까지 스스로를 개선한다. 학습과 경험을 통해 뇌가 획득하는 데이터는 노년기까지 계속 증가할 수 있다. - P99

‘뉴런은 서로 연결함으로써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만들어내고, 사람의 생각과 행동은 거꾸로 뉴런의 연결 패턴에 영향을 준다.‘ 자아가 뇌에 그저 깃들어 있는 게 아니라 뇌를 형성하고 바꾼다는 말이다. 물질이 아닌 자아가 물질인 뇌를 바꾼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 P99

내 뇌의 뉴런이 순조롭게 다양한 연결망을 형성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책을 읽고 생각한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세상과 연대하며 낯선 곳을 여행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뇌에 새로운 데이터를 공급하는 것뿐이다. 어리석어지는 속도를 늦추는 유일한 방법이다. - P100

나는 내 자신을 무한정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드는 때가 올 것이다. - P100

뇌의 하드웨어 퇴화로 인해 벌어진 신경생리학적 사건으로 여겨 주기를 - P100

내 자아가 오늘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로 그런 변화를 선택하지는 않을 테니까. - P100

다시 강조한다. 우리의 자아는 단단하지 않다. 지진으로 흔들리는 땅 위에서 해일과 폭풍우를 맞으며 서 있다. 흔들리고 부서지고 퇴락해 사라질 운명이다. 자유의지는 그런 곳에 기거한다. 있다고 말하기엔 약하고 없다고 하기엔 귀하다. 그래서 나는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확언하지 못하겠다. - P101

뇌과학을 조금 알고 나니, 나를 포함해 어떤 인간도 무한 신뢰하거나 무한 불신하지 않게 되었다. - P101

사랑하기엔 흉하고 절멸하기에는 아깝다. - P101

악과 누추함을 되도록 멀리하고 선과 아름다움에 다가서려 노력하면서, 내게 남은 길지 않은 시간을 살아내자. 이것이 내가 뇌과학에서 얻은 인문학적 결론이다. - P101

좋은 책은 읽을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 - P105

무인도에 책을 한 권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그 책(칼 세이건의《코스모스》)을 선택할 것이다. 밤하늘 · 별 · 바다 · 풀 · 나무 · 새 · 구름 · 바람 · 비가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 고독을 견디는 게 수월해질 테니까. - P105

다윈주의Darwinism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사상·이념·철학·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다윈주의자는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가리킨다. 인문학자도 얼마든지 다윈주의자일 수 있다. - P106

『종의 기원』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모든 종은 공통의 조상에서 유래했다.‘ - P106

역사에서는 ‘최초‘가 중요하다. 다윈은 인간이 어디에서 왔는지 말이 되게 설명한 최초의 인간이다. 그 전에는 설화나 신화밖에 없었다. - P107

오늘날《종의 기원》은 생물학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추론하고 논증하는 능력을 키우는 데는 보탬이 된다. - P108

‘개체는 변이가 있다. 생존에 유리한 변이를 지닌 개체는 불리한 변이를 지닌 개체보다 생존할 확률이 높고 자손을 퍼뜨릴 가능성도 크다. 그리하여 생존에 유리한 형질은 널리 퍼지고 불리한 형질은 소멸한다.‘ - P109

인문학 이론은 가끔 과학의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인구론이 대표 사례다. 맬서스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반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질병이나 전쟁으로 사람이 충분히 죽지 않으면 식량 부족으로 사람이 굶어 죽는 사태가 찾아들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 P109

다원은 ‘사람은 양육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자녀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맬서스의 견해를 사실로 받아들여 생물학 연구에 적용 - P110

진화론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인류의 지성을 한 차원 높였다. - P110

우파는 생존경쟁을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으로 간주하고 격차와 불평등을 발전의 동력이라고 옹호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정책에 반대하는 개인과 집단이다. - P111

좌파는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인가 하려는 개인과 집단이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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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포스팅에서 프라이버시와 익명성에 관한 얘기가 잠깐 나왔었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이 이어진다. 저자는 유명인들과 일반인들을 비교하면서 유명인이라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고 유명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님을 독자들이 느끼게 만든다. 나 또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든 게 다 좋을 수도, 다 나쁠 수도 없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은 창의적인 사무 공간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다. 여기서 핵심은 천장의 높이를 높인다든지 해서 빈 공간을 만들면 사람들의 창의성이 발휘될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여유없이 빽빽한 공간보다는 뭔가 텅 비어 있는 공간을 보면서 우리의 머릿속이 새롭게 환기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이라고 보면 될 듯 하다.

뒤이어 우리나라의 무슨무슨 방(PC방, 노래방 등)문화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개개인의 욕망과 현실적인 제약이 결합되어 탄생한 것이라는 저자의 얘기가 설득력있게 느껴졌다.

이어서 아파트와 돼지를 비교한 글이 있는데, 처음엔 이게 무슨 조합인가 싶었지만 저자의 설명을 통해 둘 사이에 유사한 속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p.235에 밑줄친 내용을 참조하시길 바란다.

익명성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보통 사적인 공간에서의 자유를 소유하려면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도 그 크기가 건물의 규모를 넘기 어렵다.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이 된다면 우리는 한 도시 크기의 공간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 P223

우리는 모두가 유명해지기를 원하지만, TV에 많이 나오는 연예인들은 유명해지면서 동시에 이러한 익명성을 포기해야만 한다. 유명인들은 익명성이 없기 때문에 점점 더 큰 집을 소유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집만이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 P223

대신 우리는 집은 작지만 대문 밖의 모든 공간에서 자유롭다. 유명인이 아닌 분들은 여러 도시를 소유한 부자인 것이다. - P223

사무 공간이라는 것은 개인의 업무를 진행함과 동시에 협업도 해야 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극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좋은 사무 공간은 개방성과 폐쇄성이 적절하게 배합된 공간이다.  - P223

좋은 사무 공간은 직원들이 큰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구성한 공간이다. 우리가 천장고가 높은 종교 건축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같은 원리로 사무공간에서도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천장 높이가 높은 사무실이 창의적인 환경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 P225

뇌 연구가 앤드류 스마트의 책《뇌의 배신》에 의하면 사람은 아무 일도 안하고 멍 때리거나 명상을 하거나 빈둥거릴 때, 즉 뇌의 상태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되었을 때에 창의적이 된다고 한다. - P225

분명한 것은 창의적인 사무 공간이 되려면 편하게 빈둥거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 P225

사람이 사는 모습은 수천 년의 시대가 지나가도 그 형식이 조금 바뀔 뿐 그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이 좀 작아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밖에서 일하고 집에서 가족 단위로 쉬는 형식은 똑같다. - P230

건축도 많이 바뀐 것 같지만 실상 잠자고, 밥해 먹고, 싸기 위한 공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경제와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의식이 강해지고,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욕망이 커져 온 것은 있다. 따라서 주거 공간에서 과거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생활 속에서 사적인 공간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사는 집에서 방 하나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P230

카페는 우리의 파트타임 거실인 것이다. - P230

개인의 욕망과 공간의 부족이 충돌되는 상황에서 시장 경제는 노래방, 비디오방, PC방, 룸살롱 같은 방 중심의 문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의 밀폐적인 방 문화는 우리나라 사람이 방을 좋아해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욕망과 공간적 제약이 합쳐져서 만들어 낸 해결책으로서의 결과물이다. - P231

과거에 식량은 곧 생존이었다. 현대 사회에는 돈이 그 역할을 한다. - P235

과거에 식량 저장의 한 방편으로 돼지를 키웠다면 현대에는 돈을 저장하는 방식으로 부동산을 산다. 부동산도 돼지나 발효식품처럼 부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 P235

고대의 농부들이 돼지를 키우는 것은 남는 식량을 오랫동안 보존가능한 식량으로 바꾸는 기술이다. 소비 후에 남는 감자나 고구마를 돼지에게 먹이고 수년 후 기근 때에 돼지를 도살해서 식량으로 전용하는 것이다. - P234

돼지가 기근을 넘기는 방식이 되듯이 현대인들에게 돈이 부족한 시기를 넘기는 방식은 부동산을 처분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 문화에서 아파트는 환금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돼지의 역할을 한다. - P235

대부분의 중산층 국민들은 은퇴 후 아파트를 처분해서 돈의 기근 시기를 넘긴다. 우리가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고 매월 대출금을 갚는 것은 옛 선조가 자신의 식량을 아껴서 돼지를 키우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돼지와 아파트는 다르지만 같은 기능을 하는 사촌지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고령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감안하면 수많은 아파트 돼지들이 도살을 기다리고 있다고 느껴진다. - P235

건축은 사람의 수명보다 오랫동안 지속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비로소 건축은 사람의 삶을 담아내고, 사람 냄새가 배어나는 ‘환경‘이 되는 법이다. - P236

아무리 흉측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 P237

때때로 시간은 사춘기의 가슴 아픈 실연의 기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다. 건축물 역시 그렇다. - P237

쓰리베이: 3-BAY. 아파트 평면을 구성할 때 전면을 세 개의 공간으로 구획한 것으로, 흔히 방, 거실-부엌, 방으로 나누어지는 구성을 뜻한다. - P386

툇마루 공간은 우리나라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중간적인 성격을 띠는 공간이다. 그 이유는 처마 아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처마 아래에 있다는 것은 비가 올 때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신발을 신지 않고서 바깥바람을 쐬러 나갈 수 있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고로 외부와 내부의 중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공간인 것이다. - P240

현대 시대에서 아파트의 발코니도 이런 중간적인 성격이지만 신을 신고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툇마루와는 약간 성격을 달리한다. 게다가 발코니에는 높은 난간이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난간이 낮거나 없는 툇마루에 비해서는 외부 공간과 더 단절된 느낌의 공간이기에 툇마루가 가지는 내외부의 중간적인 성격이 부족하다. - P240

다이어그램: diagram, 건물의 설계 취지, 배치, 구성, 시스템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간략화한 그림. - P386

굵은 가지에서 잔가지로 갈라져 나갈수록 나뭇가지는 나누어지고, 나누어진 나뭇가지의 끝끼리는 다시 연결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파트에서는 거실 복도에서 나누어져서 일단 방으로 들어가면 방끼리 연결되지 않고 분리되어 있는 공간 구성을 띠게 된다. - P242

집에서 아이들이 자기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닫으면 그대로 나머지 식구들과는 단절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수목적 관계의 공간 구성은 서구적인 사생활을 만드는 데는 효율적이다. 하지만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기에는 좋지 않다. - P242

창문과 문은 엄연히 다른 건축 요소이다. 문은 바라보면서 동시에 들어갈 수 있다. 문은 프라이버시를 ‘0‘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하지만 창문은 서로 바라볼 수는 있되 건너갈 수는 없는 건축 요소이다. 창문으로 연결된 공간은 적절한 사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느슨하게 관계를 형성해주는 장치이다. - P244

건축계에는 흔히 노벨상에 비유되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al Prize)이 있다. - P244

건축이라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큰 돈이 들어가는 일 중에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모아져야 하고 수많은 과정을 통해서 문화, 정치, 경제, 사회가 합쳐진 종합 예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상(프리츠커 상)을 받는 것은 단순히 한 건축가가 받는 상이라기보다 그 나라의 문화 수준에 주는 상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 P244

한국은 지금까지 한 번도 수상한 적이 없는데,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포르투갈도 ‘알바로 시자‘라는 수상자를 배출했다. - P244

몇 천 세대가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 하나는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몇 명의 건축가가 디자인하면 된다. 하지만 몇 천 세대가 주택으로 공급되어야 한다면 수백 명의 건축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소규모인 주택은 대형 사무실의 조직으로 수행하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따라서 주택은 소형 설계사무소가 주로 맡아서 디자인을 한다. - P245

건축적으로 보면 주택은 모든 건축의 줄기세포 같은 건축물이다. 주택에서 방을 여러 개 만들면 호텔이 되고, 거실을 넓게 하면 컨벤션센터가 되고 마당을 키우면 경기장이 된다. - P246

관광객이 사랑하는 도시들은 모두가 다 하나 이상 브랜드화시킨 이미지들이 있다. 뉴욕은 타임스퀘어와 센트럴 파크, 파리는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런던은 빅 벤과 템스 (Thames) 강을 내세워서 마케팅을 한다. 라스베이거스 같은 경우에는 도박과 밤새도록 켜 있는 현란한 네온사인이다. - P250

자국의 간판은 싫어하면서 외국에 나가서보는 지저분한 간판에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이것은 문화의 사대주의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지식적 배경에 의해서 외부 환경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 P251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는 현란한 네온사인 역시 결국에는 간판이다. - P250

간판 경관에 대한 판단은 경험하는 사람이 그 간판을 정보로 이해하느냐 아니면 장식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251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미국인들에게 라스베이거스의 네온사인은 정보로 인식되어 정보가 과부하되는 상황이 된다. 하지만 같은 사람이 홍콩에 가서 한자로 쓰인 간판을 볼 경우엔 그것들은 모르는 글자이기 때문에 정보가 아닌 아르누보 장식과 같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 P251

아르누보: Art Nouveau, ‘새로운 예술‘을 뜻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유럽 및 미국, 남미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유행한 장식 양식이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하고 새롭고 통일적인 양식을 추구했는데, 특히 초기에 자연 형태에서 모티프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얻고자 했기 때문에 덩굴풀이나 담쟁이, 섬세한 꽃무늬 등의 반복적인 패턴이 대표적이다. - P387

도시 경관의 많은 부분들은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 의해서 가치가 평가된다. 특히나 풍경 속에서 사인물(Signage) 같은 상징적인 요소들은 사람들 개인의 인지에 따라서 크게 차이를 갖게 된다. - P251

라스베이거스 간판의 경우에서 보이듯이 건축은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서 다르게 경험되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건축 공간이라는 것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내는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 P252

공간을 완전히 다른 객체의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고 보는 것이다. - P252

과거에는 공간이라는 것을 하나의 물리적인 객체로 보아 왔다. 뉴턴 같은 과학자는 시간과 공간을 따로 독립된 객체로 본 상태에서 만유인력의 법칙 같은 근대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는 법칙들을 고안해 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독립된 것이 아니고 하나로 연결된 개념인 시공간임을 증명해냈다. - P252

최근 들어서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 같은 21세기의물리학자는 그의 책《우주의 구조》에서 시공간이라는 것 자체가 실존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의식에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개념의 틀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이런 최신 물리학의 개념은 건축 공간을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바라보는 시각과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 P252

건축 공간을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시각은 현대인에게 필요한 공간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인터넷 안에서 구축된 가상 공간과 우리가 태초부터 살아온 현실 공간을 넘나들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 P252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것이 주관적 인식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것 - P253

인터넷과 가상 공간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체험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더 주관적인 인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따라서 건축 공간이라는 것도 어느 하나의 확정된 물리적 조건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대신 정보의 해석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로 보는 것이 이 시대에 건축 공간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일 것이다. - P254

공간은 어떻게 인지되는지부터 생각해 보아야했다. 그러다가 유럽 여행 중 우연히 17세기 화가 안드레아 포초(Andrea Pozzo)의 천장화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포초의 그림은 르네상스 시대에 발전한 투시도 기법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천장 면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늘이 열린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완벽한 그림이었다. 2차원 평면의 정보이지만 내 뇌는 그 안에서 3차원 공간을 보았던 것이다. - P255

N차원의 존재는 N-1차원 이하의 존재만 완벽히 이해 가능하다. 몸을 가진 우리는 3차원의 존재이다. 3차원의 존재가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2차원의 평면, 1차원의 선, 0차원의 점일 뿐이다. - P255

어떻게 우리는 3차원의 공간을 인식할 수 있을까? 우리가 3차원 공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의 단기 기억력에서 나온다. 우리는 기억력을 통해서 다른 시간대의 장면 속에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머릿속의 의식은 여러 시간대에 존재할 수 있는 4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 P255

빛이 물체를 때리면 반사된 빛이 수정체를 통해서 우리의 눈으로 들어오고, 망막에 상이 맺히고, 그 상은 전기적 신호가 되어 뇌로 전달된다. 뇌는 그 정보를 연산해서 공간을 만든다. 현실은 뇌가 초당 200장 정도의 그림을 연산해서 만들어 낸 것이다. 자전거의 휠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순간 거꾸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의 뇌가 연산하는 그림의 조합이 어느 순간 거꾸로 돌아가는 연속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보아서 우리의 뇌가 무한대의 이미지를 연산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 P255

현실은 마치 우리가 만화영화를 볼 때 초당 16장의 그림을 연산해서 공간과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 그림의 숫자가 영화는 초당 32장이고, 현실은 200장일 뿐이다. 같은 원리로 모니터상의 2차원 정보를 보면서 우리의 뇌는 공간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텍스트뿐인 화면의 연속 장면이 공간이 되는 것이다. -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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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마지막 부분에서 칸트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칸트는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지식을 수준급으로 갖추고 있었던 철학자라고 한다. 칸트가 자신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공간과 시간의 개념에 대해 논한 것이 있는데, 이 내용이 상당히 추상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이 뭔가 심오한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쓰여있다고 한다. (실제로는 칸트 본인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칸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차이점을 비교해주는데 개인적으로 굉장히 공감가는 부분이었다. 이것의 핵심은 밑줄에도 쳐놓았는데, 간략히 언급하자면 과학자는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만 인문학자는 잘 몰라도 일단 아는 것처럼 둘러댄다는 것이다. 이 말에 근거해본다면 칸트는 과학적 지식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책에서 바로 앞 문장에서 언급했던 인문학자처럼 행동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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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나오는 내용은 칸트의 ‘불가지론‘이라는 것인데 얼핏보면 굉장히 난해하게 느껴져서 무슨 말인가 싶은데 저자의 설명과 저자가 제시한 다양한 사례들을 따라 읽다보면 그래도 어떤 느낌인지 정도는 알게 되는 것 같다.

이와 관련된 기초적인 과학 개념들이 나오는데, 전공자들에게는 아주 기본중의 기본일 수 있겠으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전공자들에게는 이마저도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싶은 개념들이 나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자께서 문과출신이다보니 비전공자들도 이해하기 쉽게끔 낯선 지식들을 잘 풀어서 설명해주었다는 점이다. 읽으면서 각각의 개념들이 좀 낯설긴 했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데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러한 것은 이 책을 쓰기위해 과학관련 책들을 꽤나 여러권 독파하신 저자의 노력덕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저자의 수고 덕분에 나같이 과학에 무지한 독자도 기본적인 과학지식을 익히는데 조금이나마 수월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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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는 맹자에 관한 얘기가 등장한다. 이와 관련하여 묵가와 양주학파에 대한 내용이 간단히 소개되어 있다. 뒤이어지는 내용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진다.

과학자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만 철학자는 모른다는 말도 무언가 아는 것처럼 한다. 과학자와 인문학자는 무엇보다 그런 면이 다르다. 나는 그게 인문학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으로 증명한 사실만 책에 담아야 한다면 국립중앙도서관 따위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 P68

칸트의 글을 해석하려면 그가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 P68

칸트는 과학적으로 옳은 견해를 말한 경우에도 사실의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논리적 추론 과정을 생략한 경우도 많았다.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할 수가 없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 P68

칸트는 인간의 인식을 ‘선험적‘ (아 프리오리)인 것과
‘경험적‘(아 포스테리오리)인 것으로 나누었다. - P68

도덕법을 알게 하는 것이 이성 그 자체의 기능이라는 칸트의 말을 달리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에게는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없는 준칙을 거부하고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기피하는 본능이 있다.‘ - P69

진화생물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를 통해 우리가 도덕이라고 하는 사회적 본능을 획득했다고 말한다. 칸트는 옳았다. 인간은 배우거나 경험하지 않아도 도덕법을 알 수 있다. - P69

칸트의 글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인 성과 비슷하다. ‘접근하면 발포함‘ 따위 경고문은 필요 없다. 거기 들어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 P69

인간이 도덕법을 선험적으로 안다는 칸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책으로《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스티븐 핑커 지음, 김명남 옮김, 사이언스북스, 2014)를 들 수 있다. 진화심리학자인 핑커는 전쟁·약탈·강간·살인과 같은 폭력의 역사를 다룬 기록과 자료를 분석해 인간이 자신의 폭력성을 억제하는 능력을 키웠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책 9장과 10장은 도덕법에 대한 칸트의 주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P69

우리는 주관적 감성형식(공간형식과 시간형식)과 열두가지 범주의 사고형식을 통해 외부의 대상을 인식한다. 이런 형식이 활동하지 않고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주관의 형식으로 인식한 대상은 ‘현상‘ Erscheinung으로 우리의 주관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있다고 상정하는 ‘사물 자체‘Ding an sich가 아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므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자연은 우리 주관의 형식에 따른 자연이지 주관과 관계없이도 존재하는 자연이 아니다. - P70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옳았다. - P70

어떤 천재도 자신의 시대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한다. - P71

칸트의 인식론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사물이 우리의 주관과 무관하게 존재하지만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 P71

뇌는 감각기관이 보내는 정보를 특정한 패턴으로 처리함으로써 외부 환경 변화를 빠르게 인지하고 몸을 신속하게 제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 P72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이다. 전자기파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상호 변화를 유도하면서 퍼져 나가는 파동으로, 진행 방향과 수직으로 진동한다. 초속 30만 킬로미터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데 매우 긴 것부터 극히 짧은 것까지 파장의 길이가 매우 다양하다. 속도가 일정하기 때문에 파장이 긴 전자기파는 초당 진동수가 적고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는 진동수가 많다. - P72

인간의 신경세포는 파장이 380~720나노미터인 전자기파만 감지한다. 그것을 ‘가시광선‘ 또는 ‘빛‘이라고 한다. - P72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다. - P72

우리 뇌는 가시광선 영역의 전자기파를 파장의 길이에 따라 긴 쪽부터 ‘빨주노초파남보‘로 인식한다. - P72

파장이 720나노미터보다 긴 전자기파(적외선)와 380나노미터보다 짧은 전자기파(자외선)는 감지하지 못한다. - P72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 전파, 전자레인지의 마이크로파, 진단 장비에 쓰는 엑스선은 모두 전자기파다. 파장과 진동수가 다르지만 물리학의 관점에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 - P73

별개의 현상인 줄 알았던 전기와 자기가 서로를 유도하는 결합 현상임을 밝힌 영국 물리학자 패러데이 Michael Faraday(1791~1867)와 몇 개의 방정식으로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정리한 스코틀랜드 물리학자 맥스웰James Maxwell(1831-1879) - P73

전기부터 전화·라디오·텔레비전·인터넷과 휴대전화까지 우리가 쓰는 모든 전기·전자 기기는 패러데이와 맥스웰의 발견에서 비롯했다. - P73

우리는 빛이 우리 신경세포가 감지하는 영역의 전자기파임을 알면서도 전자기파나 가시광선보다는 빛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과학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여러 감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P73

‘빛은 파동이고 입자다.‘ - P73

인간은 감각기관으로 인지한 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파동인 동시에 입자인 전자기파의 성질은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그런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가 없다. - P74

모든 입자가 그런 것처럼 빛도 일정한 양의 에너지가 있다. - P74

태양이 내뿜은 빛의 에너지는 지구에서 공기를 만나 열에너지로 바뀐다. 우리가 햇볕이 따스하다고 느끼는 것은 빛 자체가 따뜻해서가 아니라 빛이 공기를 데우고 우리가 따뜻해진 공기와 접촉하기 때문이다. - P74

진공에서도 ‘빛의 속도‘로 달리는 빛은 어떤 대상을 만나면 자신의 에너지를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덜어 준다. 이 현상을 우리는 복사輻射(radiation)라고 한다. - P74

빛은 또한 파동이고 파장에 따라 에너지가 다르다. - P74

독일 물리학자 플랑크Max Planck(1858~1947)는 빛의 에너지를 파장별로 측정하는 과정에서 빛에는 불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에너지 값을 가진 진동자가 있다고 추측했다. 진동수에 작은 상수를 곱하는 방식으로 빛의 에너지를 알아냈다. 그 상수는 6.6260755를 10^34로 나눈 극히 작은 값이다.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플랑크 상수‘라고 한다. - P74

플랑크는 빛의 복사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의 방출 ·  전달· 흡수 현상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발견한 불연속적인 에너지 덩어리가 바로 ‘양자‘量子(quantum)다. - P74

빛의 복사는 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설명하는 고전역학 classical mechanics으로는 다룰 수 없는 현상이었다. 플랑크가 발견한 현상을 설명하고 원자를 구성하는 입자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물리학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量子力學(quantum mechanics) 이다. - P75

플랑크의 발견은 아인슈타인과 프랑스 물리학자 드브로이 Louis de Broglie(1892~1987)의 연구를 거쳐 오스트리아 과학자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1887~1961)의 파동방정식으로 결실을 맺었다. - P75

파장 380~720나노미터영역의 전자기파가 물방울을 만나 굴절한 것을 우리는 무지개라고 한다. 뇌가 특정한 파장 영역의 전자기파에 대한 정보를 각각 다른 패턴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우리는 무지개를 일곱 색깔로 본다. - P75

‘사물 자체‘는 굴절한 파장 380~720나노미터 영역의 전자기파이고, 일곱 색깔 무지개는 우리의 감성형식으로 질서를 부여한 ‘현상‘이다. 둘은 같지 않다. 우리는 무지개를 볼 뿐 ‘파장 380~720나노미터 영역의 전자기파‘는 보지 못한다. 따라서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 P76

물질은 모두 원자의 집합이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와 전자를 비롯한 여러 입자로 이루어진다. 얼음과 물과 수증기는 각각 다른 ‘현상‘으로 보이지만 ‘사물 자체‘는 모두 동일하다. 산소 원자 하나와 수소 원자 두 개가 전자 두 쌍을 공유하는 분자화합물이다. - P76

물은 온도에 따라 분자의 활동성이 달라서 고체 · 액체 · 기체로 바뀌는 상전이相轉移(phase transition) 현상을 일으키지만, 물 분자 사이의 간격이 넓어졌을 뿐 ‘사물 자체‘가 달라진 건 아니다. - P76

나는 칸트의 ‘감성형식‘과 ‘사고형식‘을 패턴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작동 방식으로 해석한다. - P71

‘내가 보고 만지는 이 탁자는 우리의 감성형식이 질서를 부여한 현상에 지나지 않아. 사물 자체가 아니야!‘ - P76

사람만 주관적 감성형식이 있는 게 아니다. 뇌를 가진 동물은 다 저마다의 감성형식이 있다. 그 사실을 알면 칸트의 불가지론을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다. - P76

박쥐는 자신이 쏜 초음파가 대상에 부딪쳐 되돌아오는 것을 감지해 뇌에서 외부 세계의 이미지를 만든다. 밤에 곤충을 사냥할 때는 초당 200회씩 이미지를 조합한다. 사람이 눈으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박쥐는 소리로 사물을 보는 것이다. - P77

동물이 경험하는 세계의 형태는 뇌의 정보처리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의 뇌가 빛의 파장 차이를 색깔 차이로 처리하는 것처럼 박쥐의 뇌는 음파의 파장 차이를 나름의 방식으로 처리한다. 인간과 박쥐는 주관적 감성형식이 달라서 동일한 ‘사물 자체‘를 각각 다른 ‘현상‘으로 인식한다. - P78

칸트는 옳았다. 그러나 여기까지만 옳았다. 그의 시대에는 망원경만 있었고 현미경이 없었다. 고전역학은 있었지만 양자역학은 없었다. - P78

칸트는 인간의 지적 잠재력과 과학혁명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다. 인간이 감각기관으로 포착하지 못하는 대상을 인지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분자·원자·전자 같은 미시입자는 우리의 감각기관으로 인지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무지개라는 현상의 ‘사물 자체‘가 무엇인지 안다. 그 둘이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도 안다. - P78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깊이 탐구한 것만으로도 존경하기에 충분하다. 시대를 초월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 P78

‘자아‘, ‘인격‘, ‘정체성‘은 무엇인가. 일단 물질은 아니다. 사람의 몸을 해부해 샅샅이 뒤져도 그런 것은 나오지 않는다. 원자 단위까지 쪼개도 헛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것이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과 타인을 대한다. - P79

사람은 저마다 인격과 정체성이 있다. 가치관 · 개성 · 기질 · 취향이 다르다. 그 모든 것을 지닌 삶의 정신적 주체를
‘자아‘라고 하자. 사람은 외모만 다른 게 아니라 자아도 다르다. 한 사람의 자아는 사는 동안 계속 달라진다.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에 깃들어 있다. 내 몸이 없으면 자아도 없다. - P79

사람의 자아는 각자 다를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자아 안에도 서로 다른 여러 면이 있다. 모든 자아는 복잡하고 변덕스러우며 주체적이고 괴팍하다. - P80

맹자는 군자君子의 미덕인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측은지심惻隱之心(여린 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董惡之心(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자신을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마음)이라는 본성에서 나온다고 했다. - P81

묵가는 이기심을 모든 사회악의 근원으로 간주하고 유가의 가족중심주의가 악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모두가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는 평등 세상을 지향했다. 자급자족 공동체를 형성해 모든 구성원이 생산 활동에 참가하면서 검소하게 살았다. 자기 몸을 아끼듯 남을 아끼고 자기 부모를 사랑하듯 남의 부모도 사랑하자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공산주의 운동이나 무정부주의 생활공동체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P82

양주학파는 묵가의 반대쪽 극단이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상호 불간섭주의를 표방했고 국가 제도와 사회의 지배적 문화양식을 부정했으며 세상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천하를 준다 해도 목숨과 바꾸지 않겠다든가, 내 몸의 털 한올을 해쳐서 천하를 구할 수 있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다 그런 태도에서 나왔다. 극단적 고립주의 또는 은둔형 무정부주의라고 할 만한 사상이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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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팅 마지막 부분에서 마당의 장점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는데, 오늘은 이와 관련된 내용들이 이어진다.

특별히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과의 다채로운 교류가 사람들 사이의 끈끈함을 만들어 내고 다양한 추억들을 쌓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에 마당이 가지는 장점이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우리 개개인의 기억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좀 더 보태자면 그냥 막연하고 추상적이었던 생각들이 저자의 글을 통해 뭔가 구체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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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천장의 높이, 경사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단순히 물리적인 차이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뒤이어 인구 밀도가 도시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사무실의 가구배치가 나타내는 권력의 관계도 흥미로운 읽을거리였다.

또한 형광등의 폐해(?)에 대한 얘기도 잠깐 나오는데, 형광등이 햇빛에 기반한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게 하여 현대인들을 피곤하게 만들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굉장히 설득력있게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프라이버시에 관한 얘기들이 등장한다. 프라이빗한 공간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안전추구 본능에 기인한다는 것부터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익명성으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공간에서도 프라이빗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독자인 내가 그냥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느꼈던 것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극장처럼 한 방향을 바라보는 공간에서는 사람들끼리의 다채로운 교제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하지만 정방형의 공간은 다양한 방향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 간의 교류가 다양해진다. 이처럼 정방형의 마당이 담을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관계성은 다양하다. - P195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하게 기억되는 공간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벤트 별로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각기 다른 기억의 서랍들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인식된다. - P195

주택은 천장의 높이와 모양이 다양하다.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하고 경사가 지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의 체험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 P195

아파트는 보통 2.25미터, 주상복합은 2.4미터의 천장 높이가 고작이다. 천장 높이가 조금만 높아져도 25층 이상의 건물이 되면 한 층이 더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천장 높이는 최소한으로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아파트의 경우에는 어느 방에 가든지 똑같은 천장 높이를 가지고 있어서 공간 경험이 단조롭고 지루할 수밖에 없다. - P196

주택의 경우는 천장 높이가 다채로운데다가 마당으로 나가면 천장 높이가 무한대가 된다. 이렇듯 다양한 공간 체험, 이벤트, 날씨 등이 반영된 공간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다른 책처럼 저장된다. 이런 기억이 모이면서 10평짜리 마당은 100평이 넘는 기억의 서랍에 저장되기 때문에 더 넓은 집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 P196

하나는 녹지 주변 상황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땅의 기울기 문제이다. - P196

공원 주변에 접해 있는 주거와 상업 시설은 공원 공간의 성격을 바꾸어 놓는다. - P198

주거와 공원이 접하는 면이 길기 때문에 그 둘 사이에서 많은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이다. - P198

센트럴 파크는 대부분 평지로 되어 있어서 다양한 형태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다. 반면 남산과 북한산 같은 산들은 모두 경사져 있다. 이 말은 사람들이 그곳에 가도 모두 한 방향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P198

산에 간 사람들은 둘로 나누어진다. 올라가는 사람과 내려오는 사람. 두 가지 경우 다 앞 사람의 등만 처다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경우라야, 잠깐씩 휴식을 취할 때 삼삼오오 불편하게 앉아 있거나 마주 걸어오는 모르는 사람을 쳐다볼 때뿐이다. 이 말은 경사지인 산은 평평한 땅과 비교해서 사람이 서로 마주보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기 어려운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경사는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 P198

외국인들은 한 나라를 생각할 때 그나라의 대표적인 도시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도시의 이미지가 그 나라의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의 이미지 형성은 국가 브랜드 형성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P199

지금 서울 시민들에게 한강은 마치 비어 있는 마당이나 도가 사상으로 만들어진 선정원같이 정신없는 서울의 일상에서 벗어난 비움의 공간으로 잘 이용되고 있다. - P201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상상의 전기》라는 시를 살펴보자.

처음에 아이는 한계도 모르고, 포기도 모르고, 목표도 없이.
그토록 생각 없이 즐거워한다.
그러다가 돌연 교실이라는 경계와 감금과 공포에 맞닥트리고 유혹과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 P205

기술력과 경제적 조건, 사회적 요구 등이 합쳐져서 나오는 것이 새로운 건축 양식이다. - P206

우리 민족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활을 쏘는 민족이었기 때문에 손에는 다른 민족보다 근육의 종류가 몇 가지 더있다고 한다. 반면에 뛰어다니지 않고 대부분 말을 타고 다녀서 서양인종과 비교해서 다리에는 몇 가지 종류의 근육이 없다고 한다. - P207

농사라는 것은 계절에 따라서 파종과 수확, 휴지기가 나누어진다. 일 년에 4분의 3을 일하고 겨울철 4분의 1은 노는 것이 농업 사회이다. - P208

《뇌의 배신》이라는 책을 보면 저자 앤드류 스마트는 빈둥거리면서 노는 시간에 창의적인 생각이 나오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 P208

지역마다 주식으로 삼는 농작물이 다르다. 예를 들어서 유럽은 밀을 주로 먹고, 동아시아는 벼를 주식으로 삼는다. 이는 그 지역의 강수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강수량은 그 지역의 건축 양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자연 발생적으로 다른 기후대마다 다른 건축 양식이 발생하고 수천 년을 이어져 왔다. - P208

상업에 근거를 둔 경제 구조이니 땅이 필요 없고, 당연히 고밀화된 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고밀화가 되면 사람들의 짝짓기 본능이 자극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죄악의 도시‘인 소돔과 고모라가 탄생한 것이다. - P210

인구 밀도가 낮은 시골에서 태어나 거기서만 계속 산다면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도 적다. 따라서 성적인 자극이 덜하기 때문에 도시보다는 성범죄율이 낮다. 하지만 상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게 형성되었던 소돔성과 고모라성은 성범죄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P210

현대인은 당시의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고밀화된 도시에 살고 있다. 지금의 서울이 성적 욕망이라는 면에서는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더 자극적인 도시일 것이다. 다만 지금은 여러 가지 법과 치안으로 일정한 규칙 안에서 그러한 욕망을 분출하고 있을 뿐이다. 적절한 분출구와 제약 장치들이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을 막아 주고 있는 것이다. - P210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흩어져서 살아야 하지만, 공업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깝게 모여 살수록 이익이 많이 창출된다. 이러한 필요조건에 의해서 사람들은 고밀화된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 P211

회중시계는 부유한 귀족들의 상징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청이나 학교에 있는 시계탑의 시계를 보면서 그 시간에 맞추어서 살아야 했다. 시계탑이 있는 런던의 빅 벤 같은 건축물이 이러한 세태를 잘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 P213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자유를 갖는 것이고, 자유는 곧 권력 - P213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과 권력을 키워 나가려고 노력하는 법 - P214

간단한 가구 배치만을 통해서도 권력을 표현하거나 집행할 수 있다. - P216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창조되었다고 말하고 있을 정도로 인간들은 자존감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신이 동물이라는 것을 잊고 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 P216

인간은 동물이다. 그중에서도 주광성 동물이다. 인간은 빛이 필요한 동물인데, 산업화가 되면서 인간의 본능과 상충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된다. - P216

현대 건축의 최고의 적은 형광등 - P216

과거에는 사람들이 햇볕을 받기 위해서 창을 내어 창가에 살았고, 건축가들은 자연 채광을 들여오기 위해서 재미난 단면을 고안해 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값싸게 인공의 빛을 만들 수 있는 형광등이 건축에 도입되면서부더 건축물은 더 이상 햇볕이 들어오는 디자인에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형광등이 건축 공간을 단조롭게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P216

과거 농경 시대에는 우리가 항상 하늘을 보면서 햇빛 아래에서 일했다면 지금은 형광등 불빛 아래에서 일을 한다. 여기서 현대인의 비애가 발생한다. - P217

현대인은 자연과 분리되어 사는 ‘자연스럽지‘ 못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P217

현대인들은 고밀화된 도시 공간 구조 속에서 공간을 통해 권력의 조종을 받게 된다. 그 스케일은 도시 스케일에서 미세한 자리 배치에까지 이른다. - P217

인간이 삶을 영유하기 위해서는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실내로 햇빛을 들여오기 위해서 창문을 만들었다. 더 넓은 실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창문이 필요했다. - P217

인방보: 창문 등 개구부 바로 위의 벽을 받치기 위해 걸쳐진 콘크리트 돌, 나무 혹은 스틸의 수평 부재 - P386

서양 건축은 주로 벽이 구조체이다. - P217

동양에서는 나무 기둥으로 된 네모진 모듈러(기본 단위)로 건축물을 만들었다. - P218

동양 건축은 건물의 폭이 좁고 가로로 길어서 자연과 접하는 표면적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 P219

20세기에 들어 철근 콘크리트 구조가 발달하면서 공간을 가로세로 수평으로 무한정 확장할 수 있게 되었다. - P219

형광등의 보급으로 햇빛을 위해서 천장 높이를 높이거나 정원을 끼고 긴 선형을 만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 P219

제한된 높이에 더 많은 층을 넣기 위해서 천장 높이는 머리만 안 닿을 정도로 최소화되었다. 그래서 현재 우리는 높이 2.4미터의 천장 높이에 가로세로 폭이 수십 미터에 이르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 P219

만약에 형광등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아직도 천장 높은 사무실 또는 어느 자리에서나 정원을 바라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일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형광등은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킨 공공의 적인 것이다. - P219

이상과 현실은 항상 다른 법이다. - P220

우리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가 필요하다. - P220

혼란의 세상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하는 것은 선사 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안전을 추구하는 본능이다. - P221

프라이버시는 다른 말로 일정 공간의 완전한 소유를 뜻한다. 우리는 완전히 소유할 수 있는 공간에서만 사생활을 노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유를 뜻한다. 가장 프라이빗한 공간은 자기 집이나 방이다. - P221

요즘같이 인구 밀도가 높은 세상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을 소유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 큰돈을 들여서 큰 집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시간당으로 작은 공간을 렌트한다. 노래방, 비디오방, 모텔 방 같은 곳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자동차를 산다. - P221

자동차는 차의 내부가 방음이 되는 완벽히 사적인 공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용한 곳에 가서 주차만 하면 주변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 P222

요즘 젊은이들은 집보다도 자동차를 먼저 산다. 자동차는 이 사회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완벽히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이동하면서 공간의 성격도 바꿔 줄 수가 있어서 가격 대비 성능이 가장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 P222

프라이빗한 공간을 얻는 다른 방식은 익명성을 통해서 얻는 것이다. 대도시화되면서 공간의 부족으로 없어지는 사생활의 자유는 대도시의 익명성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회복된다. 나를 모르는 여러 사람들속에 섞여 있게 되면 나는 더 자유로워진다. 더 자유로워질수록 그 공간에서 사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사적으로 행동한 만큼 그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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