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니트케 (Alfred Schnittke, 1934~1998) - Concerto Grosso No. 1  V : Rondo. Agitato (1977)

 

 

 근대 소련, 혹은 러시아의 작곡가라면 레닌과 스탈린의 압제하에 있던 공산주의의 그늘에서 모두가 벗어날 수 없었다.

 자신만의 예술 세계보다는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는 라흐마니노프처럼 망명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쥐 죽은 듯이 보내든지, 아니면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음악들을 작곡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런 시대니만큼 그들의 음악을 현재 관점에서 볼 때 어떻게 평가해야하는지는 항상 시비가 엇갈린다.

 쇼스타코비치는 20C를 대표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이지만, 대표적으로 그의 교향곡들은 찬반양론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라모폰(영국의 클래식 잡지)의 필진인 마이클 태너는 '쇼스타코비치는 과대 평가되었다. 삶과 작품, 명성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격화 되었으며 공허한 제스처와 자기반복, 느린 악장에서의 유사 허세를 부리는 능력에 우리는 집착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글쎄.. 이런 관점도 있겠다 싶겠지만, 나는 음악 그 자체로서 듣는 경우가 많지, 굳이 그 작곡가의 일면이나 시대상황

을 고려해가며 감상을 하지는 않는다. 외려 작곡가의 일생을 자세히 들여다 봤을 때는 음악을 듣기 싫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나는 아직 바그너의 음악들은 익숙하지 않고, 그의 인생을 알게 되고부터는 음악을 듣기가 더 싫어졌다).

 작곡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허나 인간이기 때문에 해당 인물의 일생이나 시대상황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항상 궁금한 것이, 프랑스 사람들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감상할까?'

라는 거다. 감상할 수야 있겠지만, 러시아 군이 나폴레옹을 물리쳤던 내용을 담고 있는 음악을 곧이곧대로 즐기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몇 백년이 지나면 이런 음악들의 시대상황을 고려하는 것이 그리 큰 이유를 갖지는 않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귀족의 취향을 맞추던 BGM들을 우리는 충분히 즐기고 있고,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를 들으면서 '이 음악은 단순히

야유회에서 귀족들의 여흥을 돋구기 위한 음악들이야. 질이 너무 낮아'라고 생각할 사람도 없다.

 평가란 것은 시대에 따라 항상 달라지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평가한다고해서 반드시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아니.. 슈니트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했는데 왜이리 산으로 왔담.. 다시 돌아가보도록 하겠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러시아도 근대/현대 작곡가 중 대표적으로 꼽을 만한 작곡가들이 있다. 특히 그 수가 꽤 되는 편인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인물들은 프로코피예프, 하차투리안, 쇼스타코비치이다.

 추가하자면 스비리도프, 스트라빈스키, 구바이둘리나, 우스트볼스카야, 슈니트케, 체레프닌(父子 모두), 바인베르크,

카발레프스키, 미야스코프스키 등이다.

 슈니트케는 이미 '대작곡가'가 되어버린 인물이다. 뇌줄중으로 인해 심신이 허약해지지만 않았다면 지금까지 생존해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슈니트케도 젊은 시절에는 시대를 원망하며, 자신의 예술을 그리기보다는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가 맡은 영화 음악만해도 60편이 넘을 정도다.

 1970년대부터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다수 작곡했는데, 명작이자 대표작으로 알려진 것이 상기의 '콘체르토 그로소 1번'

이다. 콘체르토 그로소(Concerto Grosso)는 '합주협주곡'과 같은 말인데, 바로크 시대에만 성행했지 그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소멸된 장르다. 즉, 이 양식을 청취하는 대중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슈니트케도 6곡의 콘체르토 그로소를 남겼고, 다른 작곡가

들도 일정 수 이상의 작품들을 남기고 있지만 큰 의미를 찾기는 힘들다. 앞으로도 이 장르가 성행할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거다.

 여튼 바로크에 대한 오마주 격으로 작곡된 이 작품은 합주협주곡의 대표격인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정도로 명작으로 손꼽힌다.

 폴리스타일리즘(Polystylism)이라는, 인용과 차용이란 그만의 개성적 양식의 음악풍이 가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그의 음악을 열렬히 지지했던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Gidon Kremer, b.1947) 덕에 빛을 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독특하면서도 합주협주곡의 새 지평을 연 작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보리스 차이코프스키(1925~1996)의 피아노 협주곡을 들었을 때처럼 강렬한 충격에

빠졌는데, 얼이 빠진 상태로 계속 반복청취를 했었다. 지금이야 조금 덜하지만.. 들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에 젖게 만든다.

 

 

 음반은 역시 기돈 크레머가 연주한 DG의 1986년 녹음을 추천한다.

 기돈 크레머만큼 20C의 다양한 레퍼토리를 잘 소화하는 인물도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는 음반이며, 그만큼 명반으로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한 작곡가의 음악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많은 음악들을 들어봐야 하겠지만, 그 시작으로

 적절한 것이 이 음반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쓰다보니 음악이 또 땡긴다. 오늘의 감상은 이 음반으로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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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은 현악 4중주로 시작하여 현악 4중주로 끝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조금 과장일지도 모르지만 허언은

아니다. 소나타나 교향곡 등과 더불어 가장 빛나는 음악형식 중 하나인 현악 4중주는 친밀감과 난해함, 조화와 균형, 끊임

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복합적 요소를 갖추고 있다. 첼리비다케(Celibidache, 1912~1996)는 '교향곡은 확대된 현악 4중주

이며, 현악 4중주는 교향곡의 축소판'이라고 누차 강조했다고 한다. 다분히 자신의 파트만 연주한다는 것이 아니다.

 타연주자와의 깊은 교감과 상호유대, 친구와 대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최상의 조화가 이루어진 아름다운 울림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실내악들은 바로크 시대의 트리오 소나타 등이 그 시초라 볼 수 있고, 점점 발전하여 세레나데, 카사치오네,

디베르티멘토같은 형식을 낳기도 하였다. 허나 하이든이 발전시킨 현악 4중주와 더불어 귀족들의 오락적인 성격을 갖는

음악형식들이 축소되고, 아마추어 연주자들이 '음악을 즐기기 위한' 소규모 그룹활동을 하다보니 이 분야에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하이든, 보케리니, 모차르트,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보로딘, 쇼스타코비치 등이

실내악에 많은 공헌을 하였고 지금도 주로 이들의 작품이 연주되고 있다(20C는 쇼스타코비치의 실내악을 제외하면 다른

작곡가의 작품이 연주되는 경우는 적은 편이다).

 

 

 

호프슈테터 (Hoffstetter, 1742~1815)

 - String Quartet in F major, Op. 3, No. 5  II : Andante Cantabile 

(오랫동안 하이든의 것으로 여겨져 왔으나, 지금은 호프슈테터의 작품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핸드폰 통화연결음

으로 누구에게나 친숙하다)

 

 

 

 실내악은 몇 대의 악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분류하는 경우가 많은데, 개괄해보면 다음과 같다.

 

Solo - 솔로 - 독주

 - 독주는 실내악에 포함되지 않지만 피아노 소나타나 '독주 xx(악기) xx(음악 형식)'라고 칭하지 않는 한 (ex. 무반주 바이

   올린 소나타) 대부분이 피아노의 반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2중주로 분류하기도 한다. 애매한 경우이다.

 

Duo / Duet - 듀오 / 듀엣 - 2중주

 - 두 개의 악기로 듀엣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간혹 특이한 경우로 첼로/기타 같은 2중주도 있다.

 

Trio - 트리오 - 3중주

 - 우리나라에서는 '트리오'와 '3중주'란 말의 혼용사용 빈도가 높다. '피아노 트리오'만이 피아노/바이올린/첼로

   로 정형화 되어 있고 '클라리넷 트리오'같이 다른 악기를 사용하면 악기 명칭들을 적는 것이 관습이다.

   현악 3중주는 바이올린/비올라/첼로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있다.

 

Quartet - 콰르텟 - 4중주

 - 바이올린/바이올린/비올라/첼로가 현악 4중주의 정석이다. 가끔 2대의 비올라나 첼로를 사용하기도 한다.

   피아노 4중주같은 경우도 있는데, 보통 피아노/바이올린/비올라/첼로이다. 이것 역시 다른 악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악기 명칭을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Quintet - 퀸텟 - 5중주

 - 현악 5중주, 목관 5중주, 금관 5중주, 피아노 5중주 등이 대표적이다. 보케리니가 다량의 5중주 작품을 남겼다.

  

Sextet - 섹스텟 - 6중주

 - 6중주부터는 작품 수도 현저히 적어진다. 전부 현악기나 관악기를 사용하면 '현악 6중주', '관악 6중주'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정해진 편성이 없어 악기 명시를 다 해야한다.

 

Septet - 셉텟 - 7중주

 - 피아노, 플루트, 호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등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는 형식이다.

   정해진 편성은 없다. 같은 악기를 2대 이상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Octet - 옥텟 - 8중주

 - 7중주보다 악기가 하나 더 더해졌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슈베르트나 멘델스존의 작품이 유명하다.

  

Nonet - 노넷 - 9중주

 - 9중주는 작품수가 현저하게 적다. 슈포어, 온슬로, 파랑, 마르티누 등의 작곡가에게서 만날 수 있다.

   악기 편성은 역시 정해진 것이 없으며, 오보에, 바순, 클라리넷, 더블베이스 등 타악기를 제외하면 오케스트라에 동원

   되는 거의 모든 악기를 만날 수 있다.

 

Tentet - 텐텟 - 10중주

 - Decet(데셋)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용어자체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악기의 대수가 커졌기 때문에 실내악보다

   는 앙상블(Ensemble), 실내 관현악(Chamber Orchestra)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다.

   10개 이상의 악기를 사용하면 대부분은 앙상블이라 한다.

  

 

 

 6중주부터는 작품수가 현저하게 적기 때문에 명작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별로 없다. 쇤베르크의 '정화된 밤(현악 6중주)'

정도일까.. 그리고 악기가 몇대몇대라고 해서 무조건 '몇몇 중주'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다면 베를린 필하모닉의

12첼리스트는 '12중주', 한국의 이화첼리는 '25중주'라고 해야 할 판이다. 그냥 '첼로 앙상블'이 보편적인 말일 테다.

 

 개인적으로는 실내악처럼 쉽고 어려운 것도 없는 것 같다. 소규모의 구성으로 다양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멋진 형식이지만

계속 들어볼수록 역시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 곡들이나 쇼스타코비치의 것들은 아직도 내게

넘사벽(?)의 수준이다. 본 윌리엄스나 쇤베르크, 힌데미트 등의 작품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온전히 감상하려면 앞으로도 많은 세월이 필요하겠지만 '들었다'는 것 외에 뭔가를 더 발견할 수 있을는지..

 알듯 모를듯, 쉬운 듯 어려운 게 실내악인 것 같다.

 

 

 몇 가지 곡을 링크해 본다.

 

 Giuliani (1781~1829) - Serenade, Op. 127 (Duet for Flute and Guitar)  II. Minuetto

 http://www.youtube.com/watch?v=HiV5MjZIANk&feature=youtu.be

 

 Danzi (1763~1826) - Wind Quintet in B flat major, Op. 56, No. 1  II. Andante con moto

 http://www.youtube.com/watch?v=M_2Q1QuSxjo

 

 Farrenc (1804~1875) - Nonet in E flat major, Op. 38

 for Flute, Oboe, Clarinet, Horn, Bassoon, Violin, Viola, Cello, Double Bass

 http://www.youtube.com/watch?v=v4p1q0mN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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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틀러 (Hugo Distler, 1908~1942)

 

 

 Distler, H: Die Weihnachtsgeschichte, Op. 10


 Regina Werner (Elizabeth), Volker Arndt (Angel), Heidi Rieb (Mary),

 Hans-Joachim Rotzsch (narrator), Gothart Stier (Simeon),

 Hermann Christian Polster (Herod)
 Thomanerchor Leipzig, Hans-Joachim Rotzsch

 

 

 

 요절한 독일의 천재 작곡가 후고 디스틀러의 대표작인 '크리스마스 이야기(Die Weihnachtsgeschichte)'가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출시되었다(출시된지는 한 달 정도 됐다;;). 일반적으로 요절한 인물들과는 다르게 디스틀러는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여 더욱더 안타깝다. 군에 종사하던 친구의 죽음과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타국의 공중폭격 등으로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나치에 의해 그의 음악이 퇴폐적으로 낙인 찍혀 반강요적 자살쪽으로 보는 견해가 타당하다.

 

 디스틀러가 세상에 머물다 간 시간은 고작 34년이지만, 그가 이룬 업적은 20C 독일 음악에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다.

 바로크 양식에 입각한 작품들과 교회음악의 성격을 갖는 수난곡과 합창곡들이 그것이다. 당대의 번지던 쇤베르크를 위시한

신빈악파의 12음기법을 지양하고, 선율미를 추구하며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그만의 독창적 작곡법은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당대에 반나치라는 꼬리표가 붙긴 했지만..

 

 

 

 연주는 일찍이 나왔던 베를린 클래식스(Berlin Classics) 1979년 녹음의 재판으로,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합창단과

얼마전에 사망한 로쉬(Hans-Joachim Rotzsch, 1929~2013)가 지휘한 명연이라 더욱더 반갑다.

 연주시간이 한 장의 음반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짧은 것이 흠이지만(40분이 채 안 된다), 다가오는 성탄절과 관련하여(?)

디스틀러의 아름다운 합창곡을 감상해보는 것도 특별한 운치가 있을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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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iorgio Antoniotti (1692-1776)

  - Cello Sonata No. 9 in C minor, Op. 1 (arr. for Cello and Double bass)

 1. Adagio e sostenuto   2. Presto   3. Largo   4. Allegro

 

 

 익숙하지도 않은 작곡가에게서 뜻밖의 명곡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정말이지 각별하다.

 허나 애석하게도 안토니오티의 정보란 도통 찾을 수 있는 게 없는데.. 위키피디아에 안토니오토로 소개되어 있지만

생몰년도도 다르기 때문에 동일인물인지 확실하지가 않다.

 

 시기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바로크 시대의 인물이며, 이름의 뉘앙스가 역시나 이탈리아다.

 네덜란드와 영국을 오가며 활동했고, 1736년에 7개의 첼로 소나타집을 출판했다는 것 외에는 인터넷에서 이렇다할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초상화 역시 전해지지 않고..

 

 이런 것만 보아도 잊혀진 인물들이란 얼마나 많은가 새삼 되짚어 보게 된다. 음악의 역사란 것이 이러한 인물들을 빼놓고

거론해도 무방할만큼 가벼운 것일까? 물론 비중이 그리 크지 못 했기에 그럴수도 있지만, 역사란 것이 몇 명이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닐진대 언급도 안 된다는 것은 안타까운 부분이긴 하다.

 여튼 마음에 맞는 곡을 찾았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얼마나 많은 곡들이 잠을 자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오히려 좋아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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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인지, 본인만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현악기, 그 중에서도 바이올린을 사용하는 곡들에 곧잘 감동을 받고는

한다. 음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연주가 가능하기에, 이런 현악기로만 연주했을 때 곡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곡들이

있다. 아무리 피아노나 기타 등으로 멋들어지게 연주해도 별로일 것 같은 곡들.

 물론 작곡가가 악기를 상정하고 작곡을 하는 것이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독주보다는 협주양식을, 또한 협주곡들을 좋아하다보니 바이올린 협주곡 분야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다.

 이것저것 들어보게 되다보면 자신만의 좋아하는 순위가 생기게 마련인데, 나도 마찬가지로 나만의 순위가 있다..^^

 

 

 1. F. 멘델스존 (Felix Mendelssohn, 1809~1847)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2. 비오티 (Giovanni Battista Viotti, 1755~1824) - Violin Concerto No. 22 in A minor, G. 97

 3. 엘가 (Sir Edward Elgar, 1857~1934) - Violin Concerto in B minor, Op. 61

 

 

 바이올린 협주곡하면 누구의 것이 유명할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파가니니, 멘델스존, 브람스, 차이코프스키, 시벨리우스,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예프 등의 곡들이

순위에 올라올 것이다(비발디의 곡들은 유명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작 순위 안에 포함시키는 사람들은 적다).

 모두 아름다운 곡들이지만 역시나 개인취향이 반영될 수 밖에 없는 듯 싶다.

 

 이 곡들은 내게 그야말로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며, 앞으로도 살면서 평생을 듣고 싶은 싶은 마음이다. 글쎄, 아직 많은

레퍼토리를 접해보지 못 해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이보다 더 내게 잘 맞는 곡들을 찾기는 힘들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누가 연주했느냐도 역시나 크게 선택의 기준이 되는 문제이다. 난 연주자는 '잘못된 연주(틀린 연주가 아니다)'만

아니면 별로 가리지 않는 편이라 이것저것 듣지만, 무의식 중에 '나만의 결정반'으로 정해진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러면 그다지 대단하지도 않은 나만의 음반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Violin : Vadim Storozhuk / Conductor : Igor Ivanenko / Philharmonica Symphony Orchestra

 

 멘델스존이 작곡에 5년이나 쏟아부었다는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나만의 결정반'이라해서 뭔가 대단한 게 튀어나올

줄 알았다면 김이 팍 새버릴지도 모르겠다. 'Forever Classics'란 앨범으로 작곡가별 16CD에 담긴 일종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예전에 지인에게 선물받은 것인데, 연주들은 다들 괜찮은 편이다.

 그 중에 포함되어 있는 멘델스존 음반..! 핑갈의 동굴 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번 '이탈리아'가 수록되어 있다.

 바딤 스토로즈후크는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거의 정보가 나오지 않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이 음반에 참여했다는 것

외에는 정보도 없다. 그야말로 무명수준의 연주자인 셈.

 나는 멘델스존 E단조에서 하이페츠같은 속주나 혹은 지나치게 늘어지는 듯한 연주도 별로라고 생각하는데, 스토로즈후

크는 적정길이의 연주시간 내에서 나긋나긋한 표정으로 곡의 매력을 여실히 포착하고 있다.

 세부가 빛을 발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으며,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한 번 들으면 꼭 끝까지 듣게 만들어 버리고 만다.

 지금도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이 듣고 싶을 땐 항상 이 음반에 손이 먼저 가게 된다.

 컴필레이션이라해서 평가절하되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연주다!

 

 

 

 

 

 

 

 

 

 

 

Viotti - Violin Concerto No. 22 in A minor, G. 97

Violin : Rainer Kussmaul / Conductor : Johannes Goritzki / Deutsche Kammerakademie Neuss

 

 비오티의 이 음반은 이전 페이퍼에서 여러번 언급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피하겠지만.. 한마디로 '비오티가 원하는 걸

그대로 재현한 해석'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고전적이면서도 낭만의 향취가 풍기는 곡이지만 쿠스마울은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연주하지도, 감정에 휩쓸리지도 않는 중용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눈물을 머금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

이며, 고리츠키와 DKN의 반주 또한 단호하고 열정에 찬 모습이다. 

 

 

 

 

 

 

 

 

 

 

 

Elgar - Violin Concerto in B minor, Op. 61

Violin : Hilary Hahn / Conductor : Sir Colin Davis / London Symphony Orchestra

 

 엘가는 한 곡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남기고 있는데, 모든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틀어도 이렇게 자전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작곡가 스스로도 교향곡 2번, 뮤직 메이커스, 바이올린 협주곡 이 3작품 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보여주었다고 하기도 했다. 크라이슬러의 위촉으로 작곡, 초연되었으며 후에도 예후디 메뉴인이나 알버트 새몬스 등

전설적인 연주자들이 숱한 명반들을 남겼다.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나름의 인지도가 있는 곡이며,

상당히 길고 난해한 곡이기도 하다.

 연주자들마다 연주시간이 좀 차이나긴 하지만 대략의 시간은 45~50분 정도이다. 첫 악장의 서주부는 언제들어도

나를 설레게하며, 곱씹을수록 새로운 것이 느껴지는 협주곡이라고나 할까.

 장황하면서도 약간 정돈되지 못한 느낌일 수도 있지만, 외려 그러한 점 때문에 다시 듣게 될 때마다 매력이 가득하다.

 

 힐러리 한의 연주는 그야말로 '깔끔'하다. 얼음공주란 별명과 연주 스타일이 엘가의 곡과 너무나 호흡이 잘 맞는다.

 복잡하고 난해한 이 곡을 명징하게 풀어냈으며 콜린 데이비스 경과 LSO와의 호흡도 척척이다.

 앞으로도 엘가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들을 더 구매 할 순 있겠지만, 힐러리 한의 연주는 언제나 선두에 서게 될 것 같다.

 

 

 

 어느 장르나 그렇듯 바이올린 협주곡 분야도 망망대해다. 잘 알려진 것들부터 그렇지 않은 것들까지 그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내가 좋아하는 3곡이라고 했지만 일부만을 들어본 채 한정된 범위 내에서 추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음반들도 지극히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이라 다른 이의 취향에 맞을지 어떨지도 장담할 수 없다.

 허나 자신만의 좋아하는 순위를 정해보는 것도 나름 신선한 경험이다.

 나도 몇 년전까지 그냥 다 좋아라하고만 있었지 내 자신만의 애착을 가지는 것들을 구별해놓지는 않았었는데, 이렇게 순위

를 정해보니 음악에 대한 새로운 희열이 생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오히려 새로운 음악들을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어 여러가지 장르에서 시도를 해 볼까 한다..^^

 

 

 끝으로 내 TOP3 안에는 못 들었지만 우수하며 좋아하는 곡들을 몇 개 나열해 본다. 더 많은 곡들을 발견하길 바라며..!

 

 Pierre Rode (1774~1830) - Violin Concerto No. 6 in B flat major, Op. 8

 Antonio Vivaldi (1678~1741) - Violin Concerto in B minor, Op. 9, No. 12 (RV 391)

 Rodolphe Kreutzer (1766~1831) - Violin Concerto No. 19 in D minor

 Philip Glass (b. 1937) - Violin Concerto

 Johann Nepomuk Hummel (1778~1837) - Violin Concerto

 Giuseppe Tartini (1692~1770) - Violin Concerto in E major, D. 50

 Joseph Martin Kraus (1756~1792) - Violin Concerto in C major, VB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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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12-05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저도 정말 좋아하는 곡인데, 작곡가가 이 곡을 만드는 데 5년이나 걸렸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저는 조금 아까도 1FM을 통해 이 곡을 들었는데 여전히 모든 일을 '멈추게' 하네요.
(11. Mendelssohn *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64 중 1. Allegro molto appassionato * Henryk Szeryng/바이올린, Bernard Haitink/지휘 암스테르담 로얄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 [13:27])

그런데 오늘 라디오로 들은 RCO의 연주는 가끔씩 바이올린 연주를 너무나 아름답게 받쳐주는 느낌이 들어 새삼 놀랐어요.

저는 작년에 RCO 내한공연 때 재닌 얀센의 연주로,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내한공연때 힐러리 한의 연주로 두 번씩이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연주를 들었는데, 실황공연이 음반을 들을 때만큼 놀라운 감동을 안겨주지는 못한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은 실망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도 이 곡은 라디오로 들을 때마다 '모든 게 멈추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언제나 받곤 해요.
(http://blog.aladin.co.kr/oren/565128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리내 2013-12-05 21:11   좋아요 0 | URL
멘델스존이 작곡을 하고서도 스스로의 완벽한 성격 때문인지 지속적으로 수정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전의 베토벤같은 작곡가들이 이룩해 놓은 업적에 필적 혹은 뛰어넘기 위한 압박감이 모든 작곡가들에게
작용했기 때문일 겁니다. 지금이야 불멸의 걸작이 되었으니 보상을 받은 느낌이지만요.

헨리크 셰링의 멘델스존 또한 명연이지요..^^
그래도 실황으로 여러번 들으신 것 같아 부럽습니다. 저는 신아라 씨의 연주로만 멘델스존 E단조를 실황으로
접해보았어요. 괜찮았던 연주로 기억합니다. 자신이 기대하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그에 못 미치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실황 연주만의 매력도 있는 것 같아요. 여러번을 감상 못 한다는 것은 아쉽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