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에 다녀왔다. 김장하러 간 후 6개월 만이다. 아이들 학교도 징검다리 연휴에 쉰다는 걸 알고는 남편도 진작부터 휴가를 내놓고 친정에 가기로 했다. 겨울 내내 병원을 들락거리며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린 후에 찾은 친정집이었다.   

옛집을 허물고 새로 지은 집들이 많아 동네 모습이 좀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친정 동네다. 그 동네에 초록이 에워싸고 꽃잔치가 벌어져서 동네가 환해졌지만 노인네 한둘이 사는 집이 대부분이니 인적은 드물기만 하다. 우리 부모님네들 다 돌아가시면 젊은 사람 하나 없는 이 동네는 어찌될 것인지 괜한 걱정도 된다. 나이가 든 탓인지 나고 자란 친정 동네 하나하나가 더 정겹게 다가왔다. 

딸을 보며 반가워하는 엄마 아버지를 보자 때아닌 눈물이 나왔다. 딸네집에 먼저 전화를 하시는 법이 없는 친정아버지가 그동안 몇 번씩이나 전화를 해서 딸의 안부를 물었을 정도로 걱정을 끼쳤다. 건강해진 모습만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 일을 하고 계신 밭에 몇 번 왔다갔다 한 것만으로도 피곤해서는 엄마가 해주시는 밥 먹고 내내 누워 있다 왔으니 울 엄마 딸걱정에 잠도 못 주무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버이날에 친정엄마 생신까지 겹쳐 오빠네랑 동생네도 잠깐씩 다 내려왔다 갔다. 효도 받아야 할 날에 엄마는 내내 자식들 챙겨 먹이느라 더 분주하셨다. 아픈 허리가 더 굽어지는 줄도 모르고 새벽부터 밤늦도록 냉장고 문을 여닫고 하루 종일 도마 다닥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오시면 맛있는 식당이나 찾아 한두 끼 대접하면서 자식의 도리를 다한 듯 생색을 냈던 것 같아 죄송스럽다.  

어제 아침 부모님은 정성과 노고가 깃든 먹을거리를 트렁크 가득 실어주셨다. 출발하는 딸네 차 곁에 서서 한마디 하시던 친정아버지. "마늘 캘 때 또 와라!" 그런데 그 한마디가 나를 울컥하게 했다. 마늘 캘 일손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이 보고 싶다는 표현을 그렇게 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고딩 조카 학원 때문에 밤늦게 왔다가 아침 일찍 떠난 오빠네, 친정에 올 때마다 가까이 있는 시댁까지 챙겨야 하는 동생네, 모두 바쁘기만 하다. 시댁도 멀고 아이들 학원에도 연연해하지 않으니 그나마 삼남매 중 우리가 가장 한가하다. 한 달 후면 마늘을 캘 텐데... "그때 꼭 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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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11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부러워어요 님

소나무집 2011-05-12 10:09   좋아요 0 | URL
이젠 부모님 나이 들어가는 게 확 느껴져서 속상하더라구요. 부모님은 자식들을 더 자주 보고 싶어하시는데 자식들은 그럴 형편들이 안 되고...

울보 2011-05-1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정나들이 하셨군요,,
저는 올해 방콕했는데 옆지기 몸도 안좋고, 해서 시댁이랑 친정은 미리 다녀왔고,,
자주가도 매일 보고 싶다는 엄마 말에 괜실히 짠해진적도 있고 그래도 와라라는 말보다 피곤한데 쉬어라,,라는 말을 더 많이 하는 엄마,,참 엄마라는 이름은 언제 들어도 다정하고 눈물나요,,

소나무집 2011-05-12 10:14   좋아요 0 | URL
친정엄마께 전화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하는데 "너는 어쩜 그렇게 전화를 한 번도 안 하니?"라고 말씀하세요. 아마 엄마 마음은 매일같이 전화를 했으면 싶은가 봐요. 가까이 살아야 부모로 형제로 서로 보살피며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책가방 2011-05-1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황금같은 연휴(5,6,8,9,10일)에 한 일이라고는 영화 두편 본 게 다네요.
시댁에는 남편 혼자 갔다오고,(마침 시댁 근처에 일이 생겨 갔다가 저녁만 먹고 왔다네요.) 친정에는 남편과 스케줄 조정하다가 못가고... 남편의 의도된 펑크인 것 같기도 하고...ㅡ.ㅡ

부모라는 단어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가슴아픈 단어인 것 같아요..

소나무집 2011-05-12 10:16   좋아요 0 | URL
저도 시댁이 제주이다 보니 갈 수도 없고 늘 전화 한 통으로 때워요. 그죠? 나이 들어갈수록 부모님이 자꾸만 가슴으로 파고들어오는 것 같아요.

마녀고양이 2011-05-11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버이날에 시댁에 전화를 드리니
세째 형님이 받으시더군요. 부산에서 통영까지 오신거죠.
반성과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범벅이 되어,
외롭지 않게 어버이날을 보내실 시부모님과 통화를 했어요.
너무 멀어서 매번 용돈으로 때우거든요.
대신 저희는 가까이 사시는 친정과 보냈답니다.
이럴 때는 신랑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래요.

소나무집 2011-05-12 10:18   좋아요 0 | URL
아, 시댁이 통영이시군요. 그래도 함께 해준 형님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부모님들도 나이 들어갈수록 무슨무슨 이름이 붙은 날에 자식들이 안 오면 쓸쓸해하시더라구요. 말로는 괜찮다 하시지만...

순오기 2011-05-1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늘 캘 때 또 와라~~~~~~ 에 눈물이 주르르~~~~~~~

소나무집 2011-05-12 10:21   좋아요 0 | URL
원주는 완도보다 훨씬 가까우니 자주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똑같더라구요. 저도 요즘 눈물이 많아져서는....

엘리자베스 2011-05-11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떡해...눈물나요.
건강이 최고! 힘내세요. 기운 보내드릴께요. 얍! 얍! 얍!

소나무집 2011-05-12 10:2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건강이 최고예요. 보내주신 기운 팍팍 받아서 힘낼게요.

양철나무꾼 2011-05-12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연휴에 시댁 다녀왔는데요.
마늘 캘 때 또 와라...이 대목에서 저도 또르르 눈물 한방울이요.
저희 시댁에선 농약 할때 와라, 하시던데...마늘을 안 하시는 걸까요?@@
마늘 밭의 돈 다발이 생각나서 엉뚱한 게 궁금한~~~^^

소나무집 2011-05-12 10:31   좋아요 0 | URL
나이 든 분들이 농사 짓는 거 넘 힘들어 보이는데 저는 도와 드리지도 못하겠더라구요. 팔다리 허리 아프고 햇볕에 오래 나가 서 있기도 힘들고...
저희 친정 동네에서는 칠순을 넘긴 친정아버지 세대가 가장 젊어요. 부모님 세대 돌아가시고 버려진 땅이 되면 어쩌나 괜한 걱정도 해보네요. 마늘밭마다 그런 돈다발이 숨겨져 있다면 좋을 텐데...

gimssim 2011-05-1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저는 글을 읽으며 내내 가슴이 뭉클 했어요.
부모님께 얼굴 자주 보여드리세요.
마늘 캘 때 꼭 가세요.

소나무집 2011-05-20 13:23   좋아요 0 | URL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군요.
네, 부모님이 한 해 한 해 달리 늙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짠해요.


희망찬샘 2011-06-09 0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 친정이 없어진 저로서도 참 부럽습니다.
 

딸아이네 중학교는 입학을 하고도 교복을 안 입었다. 하복부터 입는다고 했다. 드디어 얼마 전 교복 공동 구매에 대한 설문 조사가 있었고, 딸아이의 의견을 물어 공동 구매에 "찬성"을 표시했다. 

그런데 막상 공동 구매 업체가 결정되고 실제 구매할 사람은 치수를 재러 오라는 설문에 딸아이의 반응은 "공동 구매 안 할 거야I!." 였다. 이유는 단 하나, 중소 기업 업체인 그 회사의 교복을 입고 싶지 않다는 것. 

그래서 어제 교복을 사러 나섰는데... 교복을 사러 가기 전에  지나가는 말로 교복을 사 입힌 엄마들 말에 의하면 "S교복이 괜찮다는데..." 하고 딱 한마디 했다.  

그 순간 딸내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변하는 조짐이 보였다. 발걸음이 쿵쿵거리고 입에서 나오는 말도 툴툴툴....  

순간 저 딸이 왜 그러는지 눈치를 못 챈 나는 "너 왜 그래?" 소리만 반복하다가 말을 할 듯 말 듯 뜸을 들이던 딸, "E교복이 더 좋단 말이에요." 라는 한마디에 분위기 파악하고는 뜨악~  

"교복을 입어본 것도 교복 가게에 가본 것도 아니면서 E교복이 좋은지 어떻게 알아? 엄마들은 S교복이 더 편안하고 천도 좋다던데, AS도 잘해주고..." "친구들이 그랬어요."  

"뭐가 좋다는데?" "몰라요. 좋대요."

딸아이랑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 분위기는 험악해지고 교복 가게 앞에 선 딸아이는 엄마가 사고 싶은 곳으로 가란다. 하지만 난 딸아이가 사고 싶다는 교복 가게로 먼저 가서 입어 보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에 내가 마음에 두었던 교복 가게로 갔는데 딸아이는 교복을 대충 걸쳐 보고는 "S 교복은 별로예요."  

결국 E교복에 다시 가서 딸아이가 사고 싶어하던 대로 교복을 사 가지고 나왔다. 딸아이의 얼굴이 세상을 얻은 듯 환해졌다. 

이젠 엄마의 말보다 친구의 근거 없는 한 마디가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나이가 된 것 같다.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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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5-02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또래일때는 또래문화를 무시할수가 없답니다~ 지나고나면 알게되는 참 유치찬란한 시절이잖아요~~
전 이상하게 교복 못 입어봐서 잘 모르지만, E교복을 사고 좋아라하는 딸이나 내딸이 이럴줄이야하시는 소나무집님이나 다 이해는 되요^^;

소나무집 2011-05-11 10:29   좋아요 0 | URL
울 딸은 무조건 엄마 편이라는 생각이 요즘 와장창 깨지고 있답니다. 무시할 수 없는 또래 문화 인정해야겠지요?

BRINY 2011-05-1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E교복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군요.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소나무집 2011-05-12 10:33   좋아요 0 | URL
저는 그 교복이 그 교복 같던데...
단추 색깔이 예쁘다거나 뭐 그런 사소한 게 아닐까 싶어요.^^

희망찬샘 2011-06-09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이런 과정을 겪게 되는군요. 한 번씩 말 안 들을 때면 앞으로 닥칠 반항의 시간을 떠올리게 되는데... 너무 앞선 걱정이지요?
 

일어나! 일어나라니까! 벌써 7시 30분이야!  

왜 춥긴, 창문 열어놨으니까 춥지. 빨랑 옷 입어!  

왜 그러고 있어?  

아침부터 유희왕카드는 왜 만지작거리고 있어?

지금 책 볼 시간이 어딨어?  

책가방은 챙겼니? 준비물도 있던데... 숙제는 다 했고? 

밥 먹으라니까 식탁 밑에서 뭐해? 

세수 해야지! 양치질도 하고!!! 

......  

...... 

 

이런 말까지 

차곡차곡 챙겨넣고 

지퍼를 꽉 채워서 2박 3일 안면도로 수련회를 떠났습니다.  

 

아들이 없는 아침은 참으로 고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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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4-14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유희왕카드 알아요.
한때는 아들 녀석이 가지고 있는 유희왕 카드 다 합치면 적어도 차가 한대라는 잔소리도 하곤 했었는데...
이젠 그런 잔소리 할 일은 없네요~^^

그런데, 2박3일 갖고 보고싶으시다구요?^^

소나무집 2011-04-15 10:29   좋아요 0 | URL
5학년 정도 되면 카드 같은 거 안 가지고 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수련회 가서 깐죽대다가 혼이나 나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책가방 2011-04-1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아이중 한 아이만 없어도 집이 얼마나 썰렁하던지..
그래도 2박3일 동안은 남은 한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때론 수련회가 기다려지기도 하더라구요.
근데 올해는 두 아이의 수련회 날짜가 같은 날이여서 많이 쓸쓸할 것 같아요.
아빠까지 그 기간에 출장이 잡혀 있으면.... 아~~ 너무 외로울 듯...

소나무집 2011-04-15 10:33   좋아요 0 | URL
딸아이랑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가질 틈은 없더라구요. 숙제하고 나더니 친구랑 전화 통화를 한 시간 넘게 하던데요. 무엇이 재미있는지 미친 듯이 웃어가면서요. 담주에는 딸아이가 수련회 가요.

무스탕 2011-04-14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부터 큰 녀석이 다시 등교하기 시작했어요.
정말 집이 얼마나 고요한지... T^T 그 고요한 틈을 타서(?) 세탁기 두 번째 돌리는 중..;;;

소나무집 2011-04-15 11:21   좋아요 0 | URL
교통 사고 소식은 정말 무서워요. 크게 다치지 않고 그만하니 다행이에요. 우리 모두 같이 조심해요.

마녀고양이 2011-04-1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고요한 느낌이 팍 전해지네요. ^^

소나무집 2011-04-15 10:48   좋아요 0 | URL
고요함으로 아들의 존재감을 느껴요.^^

순오기 2011-04-14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한 아침에 아드님이 보고 싶으셨군요.^^
우리 아들은 낼 아침에 소풍가서 고기 구워먹을 휴대용 가스렌지 가지러 온다네요.
일주일에 한번 보는 아들도 보고 싶답니다~~~~~~

소나무집 2011-04-18 10:58   좋아요 0 | URL
아니 요즘은 학생들도 휴대용 가스렌지 들고 가서 고기 구워 먹나 봐요? 학교에서 그런 걸 허락한다는 게 신기해요.
먼저 학교 일은 잘 해결된 거죠?

순오기 2011-04-16 00:58   좋아요 0 | URL
요즘은 소풍을 반별로 알아서 가고, 학생들이 의논해서 결정하더라고요.
가까운 유원지에 가서 고기 구워먹고, 다른 조 아이들이 준비한 소주를 다같이 나눠먹고, 선생님이 준비한 케익으로 4월에 생일인 아이들 축하했대요. 유원지가 떠나가도록 큰 소리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렀다네요.ㅋㅋ

2011-04-16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11-04-18 10:59   좋아요 0 | URL
요즘 소풍 가는 방법이 단체로 가는 것보다는 더 좋은 것 같네요. 아이들이랑 선생님이랑 더 친밀해질 수도 있고. 근데 소주를 먹는다는 건 또 놀랍네요.

세실 2011-04-15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아침풍경이 연상됩니다. 아침에 엄마들은 잔소리를 몇번 할까요? ㅎㅎ
이 모든 잔소리 안해도 되는 아침 저도 가끔은 그리워요~~~

소나무집 2011-04-15 10:51   좋아요 0 | URL
잔소리 안 한 날은 전화가 와요. 설문지 좀 갖다 주세요. 실내화 좀 갖다 주세요.....ㅜㅜ

세실 2011-04-17 10:49   좋아요 0 | URL
제 딸내미도 학교가는 토요일엔 그래요. ㅠ
어제도 "엄마 집에 계세요? 죄송한데 과학공책 갖다주실수 있으세요?" 으이구....달려가죠. ㅋ

소나무집 2011-04-18 10:58   좋아요 0 | URL
세실 님도 달려가시는구나.^^
 

우리집은 2층인데 창가에 피어난 노오란 산수유가 참 예쁘다. 남편은 3월에도 주말마다 서울, 경주, 고흥 등의 꽃소식을 몰고 왔는데(출장 다니며) 원주는 이제야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어제는 배꽃님이 식이요법을 하느라 한 달 내내 집에만 있는 나를 납치하러 왔다. 치악산 기슭에 있는 커피에 가서 봄바람도 마시고 차도 마시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오후에는 기운이 펄펄 났다. 어떤 날은 아이들 간식을 한 보따리 사다 주고, 어떤 날은 반찬을 바리바리 해다 던져놓고는 휭하니 간다. 늘 엄마처럼 챙겨주는 배꽃님, 고마워! 

많은 사람들이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이 책을 나는 참 지겹게 읽었다. 그래도 2주에 걸쳐 수없는 밑줄까지 그어가며 끝까지 읽어서 기특하긴 하다. 진즉에 100쇄가 넘게 출판이 되었고, 누구나 읽는 대중적인 책인 것 같아 구입을 했거늘...  

지겨웠던 가장 큰 이유는 생각하기 싫은데 자꾸 생각하게 만들어서였다.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등등. 거기다가 이름만 들어도 아득해지는 철학자들의 수많은 이론들. 

오늘도 저 높은 곳에서 아주 낮은 곳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공정한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일들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니 정의가 실현될 날이 올까 의문이 들어 슬퍼진다. 그리고 정작 정의를 생각해야 할 사람들은 이런 책쯤은 거들떠볼 것도 같지 않아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정의 때문에 아픈 머리를 화~악 식혀준 책이다. 구구절절한 이론과 설명 대신 촌철살인의 짧은 글 속에서 발견하는 정의의 개념이 내겐 더 살이 되고 피가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신중하라.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한 시간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만족감과 정태련 님이 그린 아름다운 물고기 그림을 실컷 볼 수 있다는 미덕도 있는 책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한 비법을 가르쳐준다.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속성을 바꾸어본다든가, 물질 혹은 비물질 명사와 오감에 따른 서술어를 결합해보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시키는 문장 훈련. 이외수가 평생 글을 잘 쓰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글을 잘 쓰고 싶으니 모두  따라해보고 싶은 과정들이었는데 난 그저 눈으로만 읽고 말았다. 그러니 글을 잘 쓰긴 글렀다.  

요즘 우리 아들 딸이 이외수 팬이 되었다. 화천 감성마을에 놀러가잰다. 60대와 십대가 통했으니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보람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나온 신간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도 궁금해졌다. 

 

   

순오기님이 보내주신 책이다. 내가 가본 곳들도 있어서 익숙한 풍경 앞에선 반가웠다. 그동안 많은 여행서들이 정보와 감성을 함께 들이댔다면 이 책은 감성을 건드려준다. 그것도 아주 개인적인 감성들이다. 그래서 나도 가보고 싶어...라는 마음이 들게 만든다.  

여행에 필요한 정보는 여행자의 수첩란에 따로 나온다. 사진들이 모두 눈길을 머물게 한다. 남편이 사진작가라서 함께 다니며 작업을 할 수 있으니 더 좋았겠다. 

 

 

울 아들이 책제목에 나온 "습지가 뭐예요?" 라고 묻더니 "책에는 습지 이야기가 안 나와요." 그런다.  

습지 생태에 관한 책이 아닌데 제목 때문에 생태 분야로 분류되는 건 아닌가 염려가 된다. ㅋㅋ

나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집을 나와 결혼하기 전까지 늘 자취 생활을 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최규석의 자취 생활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많지만 여대생의 습지생태 보고서도 나오면 참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습지에서 고생한 최규석 작가가 요즘 잘돼서 참 좋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굶어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가슴 아프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정의에 대해 또 생각하게 된다.  

아들의 질문에 아빠가 대답해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중딩 딸아이와 함께 읽으려고 구입했다.  

 

 

 

  

일본에 지진이 나고 원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원자력발전소가 무섭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 없다. 이 책도 언젠가 사놓은 채 책꽂이에 꽂혀 있기만 했다.

한 번 불꽃이 터져버리면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지만 그 불을 꺼뜨리지만 않으면 아주 훌륭한 에너지원이 된다는 핵. 하지만 그 핵이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안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 일본 원전 사태로 알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었다.

우리 아이들은 둘  다 너무 무서워서 다시는 읽기 싫은 책이라고 했다. 주인공 엄마가 눈도 없고 팔도 기형인 아이를 낳고 죽어가던 밤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울고 있었다. 핵이 터지던 날 도시와 함께 사라진 친정부모님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소리 없이 다가오는 핵의 위험들.  

긴 미래와 아이들을 위해 핵은 사라져야 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고 눈가리고 아웅 하는 이들이 빨리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핵은 나뿐만 아니라 죄없는 수많은 이웃까지도 힘들게 만든다는 걸 이번에 경험하지 않았나 말이다.

작가가 글을 몰아쳤다고 해야 되나... 누군가 채찍을 들고 쫒아오는 것 같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 개운하지는 않다. 여울이 가족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  

엄마가 다른 형제들의 다사다난함, 사업이 망해서 감빵에 가는 아빠,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가 사업이 망하고 가족으로부터 버림까지 받은 삼촌, 잔소리쟁이 팔순 할머니, 나를 선택해주지 않는 남자친구... 그 중 한 가지만 내 삶 속에 끼여 있어도 불행해 죽을 것만 같을 텐데 잘 견뎌내는 여울이가 대단하다. 

그래도 가족 때문에 진화할 생각을 하니 가족은 참 위대하다는 데 나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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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1-04-1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에서 뒹굴뒹굴 재밌는 책 많이 읽으셨네요.^^
전 요새 책은 뒷전이고 매일 놀러 다녀요.
소나무집님 몸은 많이 좋아지신거죠? 건강하시길 빌게요.^^

소나무집 2011-04-12 13:57   좋아요 0 | URL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만 봐요.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느라 바쁘시던데요.
많이 좋아졌어요. 요즘은 그냥 푹~ 쉬는데 그게 더 힘드네요.^^

책가방 2011-04-1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저도 한동안 책 안 읽다가 최근에 몇권 읽긴 했습니다만...^^

코끼리에게 날개 달아주기.. 머리맡에 놔둔지 한참 됐는데 아직 손에 잡히진 않네요.
조만간 읽어봐야겠어요..^^

소나무집 2011-04-14 10:55   좋아요 0 | URL
아무 일도 안 하고 있으니 할 일이 책 읽을 것밖에 없더라구요.
침대에 누우면 책꽂이가 보이는데 안 읽은 책들 한 권씩 빼서 읽게 되네요. 가벼운 것들로요.^^

엘리자베스 2011-04-13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외수의 '글쓰기의 공중부양' 딱 한 권 읽었네요.
저도 분발해서 요런 페이퍼 한 번 써봐야겠어요^^
알라딘에서 공중부양할 날이 올까요?

소나무집 2011-04-14 10:56   좋아요 0 | URL
애들 책은 읽고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못 올린 것도 많아요.
리뷰 좀 써야지 하고 들어왔다가 결국 읽은 증거만 남기네요.^^
이미 공중부양 시작된 것 같은데요 뭘~

순오기 2011-04-14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뒹굴뒹굴하면서 책 읽는 게 제일 좋은데~~~^^
이외수 글쓰기의 공중부양, 눈으로만 읽어서 잘쓰기 글렀다에 왠지 공감하고 싶은...ㅋㅋ

소나무집 2011-04-14 10:22   좋아요 0 | URL
두문불출 뒹굴면서 사는 것도 넘 힘들어요.
글쓰기 훈련은 정말 해보고 싶어지더라구요.^^
 

딸아이가 다니는 중학교가 집에서 아주 가까운 편은 아니라서 아침에만 데려다 준다. 오후에는 운동삼아 걸어오고. 차에 타서 시동 걸고 데려다주고 집에 오면 20분 정도 걸린다. 딸과 함께하는 시간은 고작 1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딸아이는 계속 재잘대는데 오늘 아침은 자화자찬이다. 

: 엄마, 난 너무나 훌륭한 학생인 것 같아!!!   

엄마 : 왜?? 

: 친구들은 사회가 다 싫다는데 난 사회가 넘 좋아. 특히 역사가 들어 있어서 2학기가 기다려져. 역사는 흥미진진하잖아.  

엄마 : 옆동 아무개는 사회 때문에 역사 논술 한다는데 넌 그런 거 할 필요 없겠다. 고맙다. 엄마 그런 거 시킬 돈도 없는데...

: 그런데 있지 과학은 더 좋아. 재미있어. 꿈을 과학자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야.  

엄마 : 그럼 기자는 어떡하구? (우리 딸의 요즘 꿈은 저널리스트다)

: 과학이 재미있다는 얘기야. 그리고 국어는 울 담임이 재미있게 수업해서 더 좋아. 

엄마 : ...... ??

: 그리고 수학도 점점 좋아져. 학교 수학샘보다 훨씬 재미있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게 가르쳐주는 명강사 덕인 것 같아. (요즘 우리 딸 ebs 수학 강의를 빼놓지 않고 듣는다) 

엄마 : 그래 너 훌륭한 학생 맞다!

: 영어랑 도덕은 좀 그래. 영어는 수준이 너무 낮고, 도덕은 진짜 싫어. 

선행도 예습도 없이 중학교에 간 우리 딸이다. 이제 고작 중학 과정 딱 한 달 공부했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아이를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오는데 딸아이가 왜 그리도 듬직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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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3-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때의 저의 상태인듯 오버랩됩니다 ㅋㅋㅋ
중2때는 영어선생님이 장국영을 닮아서 영어도 열심히 하게 되었었답니다~ 아, 장국영은 가고 없지만 그시절 88년도 그 멋진 남자선생님은 어디서 뭘하고 계실까요^^?

소나무집 2011-04-01 09:05   좋아요 0 | URL
입학했을 때는 모두 이런 상태가 되는 거군요.ㅎㅎ
선행 같은 거 안 하고 중학교 갔기 때문에 걱정했거든요.
여전히 멋진 중년의 영어샘이 되어 계셨으면 좋겠어요.^^

hnine 2011-03-3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기자는 어떨까요?

소나무집 2011-04-01 09:06   좋아요 0 | URL
제가 과학 기자는 어떠냐고 추천해 볼게요.^^

순오기 2011-03-3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학생이고 훌륭한 딸이 맞아요~~~~ 공감의 추천 꾹!^^
우리 애들은 저희들은 너무 반듯하게 자랐다고 자화자찬해요.ㅋㅋ

소나무집 2011-04-01 10:19   좋아요 0 | URL
하루는 딸 때문에 흐뭇하고 하루는 아들 땜에 속상하고...
한 뱃속으로 낳았는데 어찌나 다른지...
반듯한 애들도 넘 이쁘지요?

마녀고양이 2011-03-31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오, 책가방님 서재에 이어 여기서도 흐믓한 글을 연이어 보니
너무 좋네요. 진짜 이쁜 따님이예요. 아유. 부러워요, 부러워요~

소나무집 2011-04-01 09:09   좋아요 0 | URL
딸들은 여우 같아서 엄마 마음를 위한 서비스 멘트도 좀 있었지 싶어요.^^

프레이야 2011-03-31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작은딸이 동학년이군요.
아주 야무져보여요. 소나무집님이 그동안 해오신 가르침이 배여있는 것 같은걸요.^^

소나무집 2011-04-01 09:13   좋아요 0 | URL
님댁도 잘 적응하고 있지요?
제가 늘 부족하고 게으른 엄마다 보니 그동안 해온 가르침 같은 건 별로 없어요. 진짜로 ^^

책가방 2011-04-0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작은아이도 중1이랍니다.
별명이 고슴도치라면 성격이 어떤지 대충은 짐작하시겠죠..?ㅋ
사춘기가 지나면 고슴도치 탈을 벗고 예쁜 숙녀가 되리라 믿고!!! 꾹 참고 있답니다.

전 고슴도치 작은딸보다 착하기만 한 큰아이가 더 걱정스럽더라구요.

소나무집님 아이는 학교 공부가 정말 재밌나 봐요..^^

소나무집 2011-04-01 09:16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중1 자녀가 참 많네요.
동지들이 많다고 생각하니 힘이 돼요.^^
선행을 안 시킨 게 오히려 학습에 흥미를 더 준 건 아닌가 싶어요. 다행스럽게^^
울 딸도 순식간에 고슴도치로 변신할 때도 많아요.
아들은 5학년인데 엄청난 고슴도치라서 제 고민이 끊일 날이 없구요.

꿈꾸는섬 2011-04-01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너무 예쁜 딸을 두셨어요.^^

소나무집 2011-04-05 10:45   좋아요 0 | URL
네, 예쁜 딸이에요. 저 고슴도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