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 다치바나 식 독서론, 독서술, 서재론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참 독특한 책이다.
아니, 독특한 사람이라고 해야 옳겠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지만, 자신만의 독서법이 있고, 책에 대한 취향이 있고, 자신만의 독서관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자신의 선에서 끝날뿐이고, 타인이 수긍할만한 독서론으로 인정받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날이 책의 매출이 떨어진다고는 하나 여전히 독서 인구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만의 독서법과 독서론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知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작가의 광적인 지적 욕구와 다독과 속독으로 대변되는 그의 독서법은 부러움과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듯하다.
요즘 내가 선택한 독서법과 견주어 볼 때, 나조차도 선뜻 동감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은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지난 날에 읽었던 책 중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고 있으며, 그 내용을 아주 천천히 음미하고 있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음악적 책읽기’인데 작가는 이 방법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책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살피고 끝까지 읽어야 할 책인지 아닌지를 판단하여, 도움이 되지 않을 책은 과감히 그만두고, 읽어야 할 책은 빠른 속도로 읽는 ’회화적 책읽기’를 권하고 있다.  나는 그의 독서법을 비판할 의향은 전혀 없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고 있는 작가의 열정이 그저 부러울뿐이다.
  "아마도 끊임없는 삶의 연속선상에서 보는 것,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이 세 가지를 반복하고 피드백 과정을 거치다 보면 어느 날 정신적인 비상을 이루는 때가 찾아와 모든 것을 직관으로 파악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야말로 나의 생활을 지탱해 준 기대이자 신념이었다."(P.185)
수만 권의 책을 소장하고, 인간의 한계를 실험하듯 다양한 전문 분야를 넘나들며 글을 쓸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 더하여진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학창시절 이후 문학이나 교양 서적을 거의 읽지 않고 있다는,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작가의 거침없는 발언이 결코 지적 오만이나 거드름으로 비춰지지 않는 까닭은 그는 이미 평범함을 넘어선 ’비범함’의 단계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리라.
"세상에는 시간이 많은 사람과 너무 바빠서 정신없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시간이 많은 사람 쪽이다.  그리고 출판계의 상당한 부분이 시간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의 시간 보내기용 소비(시간도 돈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 서평에서도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추세이다."(P.215)
........................(중략)......................................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과 그들이 쓰는 ’맛깔 나는’ 문장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런 사람들이 쓰는 서평은 기본적으로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대충 훑어보며 책 제목은 재빨리 체크하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읽는 정도이다.  나의 서평은 그렇게 취미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 세상에는 서평을 취미로 쓰는 사람들이 일생 동안 한 번도 펼쳐 볼 일이 없는 책 가운데, 그들이 좋아하는 책보다 몇 배나 귀중한 책이 산더미처럼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P.216)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얼마나 시간이 많은 사람인가' 하는 자괴감으로 마음이 내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만의 독서론을 갖게 되기까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할까' 하는 반성도 같이 하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에 대한 리뷰는 그동안 내가 써왔던 글과는 방법을 조금 달리해야겠다.
나는 고집스럽게도 분석적 리뷰를 싫어했었다.  주제와 인물, 구성 등 소설의 각 요소를 일률적으로 분석하는 리뷰는 소설에 대한 일종의 모독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설은, 어쩌면 문학 전체가, 자연스러운 녹아듬 또는 조화로운 혼합이기에 분류하고 분석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독자가 리뷰를 씀에 있어서도 자신의 삶에 녹아든 조화로운 감동을 글로 옮기는 것이 적당하리라.  분류하고 분석하는 방법이 비록 읽는 이가 쉽게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만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으나 이는 자연과학에나 어울릴 법하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방식을 나는 이 책의 리뷰에 적용하고자 한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고민도 많았지만 내 사고의 틀에서 달리 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이 그 주된 이유가 될 것이다.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의식이나 글쓰기 방식이 나를 그렇게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작가의 집필 의도와 주제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는 이 소설은 미리 설정한 듯한 부자연스러움이 다소 흠이라면 흠이지만 작가의 혼과 열정이 배어 있는 좋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작가는 삶의 근원을 인간의 욕망이라 규정하고 그 전면에 부와 권력 그리고 욕정을 내세우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야기의 화자가 죽은 자라는 것인데, 삶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탐구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감안하면 그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숲 안에 있을 때에는 숲을 바라볼 수 없듯 작가도 삶 안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삶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으리라.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작가는 ’생명의 연약함과 탐욕의 강대함’을 쓰고자 했다.  그리고 그 거대한 탐욕 앞에 작고 무기력한 인성과 사랑이 결국에는 승리하게 된다는 것을 믿고 싶었나 보다.

주요 등장 인물

나(딩샤오창)
매혈을 비롯한 갖은 악행으로 마을 사람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고 있는 아버지(딩후이)와  삼촌(딩량)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열두 살의 나이에 독살 당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후에 아버지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현의 최고 책임자인 가오 현장의 딸과 음혼(陰婚:영혼 결혼식)을 추진한다.  가오 현장의 딸은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간질로 죽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과 꿈을 통하여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

아버지(딩후이)
정부 주도로 매혈이 시작되자 사설 채혈소를 차려 마을 사람들로부터 규정량 이상의 혈액을 채취하고, 불결한 주사기를 사용함으로써 마을에 열병을 퍼뜨린 주범이다.  ’혈액 왕’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매혈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많은 사람들이 열병으로 죽어가자 정부에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관을 판매하기도 하며, 결혼을 못하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돈을 받고음혼을 주선함으로써 상상할 수 없는 부를 획득한다.  나의 여동생과 어머니를 데리고 딩씨마을을 떠나 신시가지로 이사를 한 후 공원묘지를 조성하여 더 많은 재산을 모으려 했으나 할아버지에 의해 살해된다.  작가는 아버지를 물욕의 화신으로 상정하고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간다.

할아버지(딩수이양) 
한평생 학교에서종을 치는 일을 담당했던 할아버지는 선생님 중에 결원이 생겼을 때 이를 대신해서 아이들을 돌보고 어문 수업을 가르치기도 했던 까닭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탐욕에 물든 대부분의 사람들로부터 배척되고, 부도 권력도 소유하지 못한, 늙고 노쇠한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의 입장에서 인성의 상징인 할아버지를 통하여 삶에서 인성의 미약함과 숨겨진 정의를 독자들의 동정심에 호소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할아버지는 나의 음혼식날 아버지를 죽이고 감옥에 갇히셨다가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삼촌(딩량)과 링링 
삼촌과 링링은 매혈로 인해 열병을 얻고, 서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죽음을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다.  둘 다 결혼을 했었지만 마을에서 열병에 걸린 사람들만 학교에 격리시키자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삼촌과 링링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사촌 동생의 아내였던 링링을 사랑하는 삼촌.  그들의 불륜은 학교에서 생활하던 마을의 다른 열병 환자들에게 발각되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할아버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신망을 잃는다.  이 기회를 틈타 쟈껀주와 딩유에진이 마을 사람들을 꾀어 마을을 관리하는 위치에 오른다.  역설적이게도 욕정에 사로잡힌 삼촌과 링링은 열병으로 인해 서로를 만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쟈껀주와 딩유에진   
딩씨마을에서 열병에 걸려 학교로 격리되었던 쟈껀주와 딩유에진은 딩후이가 딩씨마을을 떠난 후 딩량이 링링과의 불륜을 계기로 마을을 관리하는 책임자의 위치에 오른다.  할아버지를 협박하여 딩후이가 지니고 있던 관인을 자신들의 손에 넣게되자 학교의 모든 물건을 자의적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분배하고,  관을 짜기 위한 벌목을 허가한다.  쟈껀주는 자신이 죽기 전에 할아버지를 찾아 딩후이가 딩씨 마을에 다시 오면 죽이겠다고 말하며 딩유에진이 갖고 있는 관인을 자신이 죽은 후에 자신의 관 안에 같이 묻어줄 것을 요구한다.  죽어가면서도 권력욕에 눈이 먼 상징적 인물로 그리고 있다.

맺음말
삶은 죽은 자의 꿈이었고, 산 자의 현실이었다.
인간의 탐욕으로 빚어진 절망과 불행의 구렁텅이를 관조적 입장에서 정직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작가의 입장이었기에 산 자가 말하는 삶의 모습은 더이상 필요치 않았다.
할아버지의 꿈은 나의 현실이었고, 이야기는 그렇게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작가의 혼과 열정이 느껴지는 작품.  작가는 집필 후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두 줄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늑골을 뽑아가기라도 한 듯이 온몸이 흐느적거렸다.  고독과 절망의 강력한 압박에 무력감이 느껴졌다.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넓은 대해에, 새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외딴 섬에 홀로 버려진 것 같았다."(P.456)
틀에 짜맞춘 듯한 구성, 아무리 아들이 미워도 아비가 어찌 자신의 아들을 살해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하는 비현실적 요소가 소설의 맛을 조금 떨어뜨리는 감은 있지만 중국 농촌의 비애를 알게 된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P.S.  불행하게도 오타가 너무 많아 독서를 방해할 정도이다.

른 아침이라 그런지 해는(P.61)
찻잔에 차를 따라 놓기만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갖춰지는 셈이었다.(P.65)
교정 안에 가득했던 흰 눈이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서 한 조 진흙땅이(P.89)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선 채로 실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P.91)
교정 안에는 따스함과 고함이 가득했다.(P.148)
여러분들 내게 미안해할 일이 있으면 있었지(P.182)
간통 현장에서 붙잡힌 일과 관련된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것을 알게 되었다.(P.216)
그토록 성대한 연극 내막을 알지 못한 채(P.219)
얼굴의 종가 조금 가려웠지만 감히 손을 올려 긁지 못하고(P.274)
링링과 내가 함께 묻힌다 해서 누가 감히 다시 파내기라 하겠냐 말이야?(P.331)
다음 침대 맡에 앉아 삼촌의 자는 모습을(P.332)
한밤중이 되면 간신 잠이 들지만, 잠들 무섭게 해가 창문과 문틈으로(P.380)
그가 할아버지 낮은 목소리로 아저씨라고 불렀다.(P.391)
자신을 따라온 학생들게 끊임없이 뭔가를 지시하고 있었다.(P.400)
작은 구멍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오래였고(P.403)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우리 집 딩씨마을에 있다는 사실뿐이었다.(P.431)
온통 모래 성이인 황허 고도에(P.433)
리얼마을이 햇빛 아래 더없이 고하게 펼쳐져 있었다.(P.4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더 테레사의 하느님께 아름다운 일
맬컴 머거리지 지음, 이정아 옮김 / 시그마북스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가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의 글을 읽을 때 어떤 성인도 흉내낼 수 없는 논리가 숨어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문맥이나 글자의 배열만 놓고 보자면 너무나 허술하고 오류 투성이로 보이지만 마음의 눈으로 읽으면 가장 완벽한 논리로 쓰여진 글임을 부인하기 어려워진다.  이것은 글 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그렇다.  원근법이나 명암 등 그림의 기초가 되는 구성이나 비례 또는 채색 어느 것 하나 지키지 않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기괴하다거나 우스꽝스럽다 느낄만한 그런 작품이 어느 곳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느껴질 때, 이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지기 마련이다.
일상에서도 그런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불치병의 환자가 완쾌되었다거나  지진의 현장이나 탄광의 갱도에 갇혀있다 기적적으로 구출된 사람들.  과학적 잣대나 의학적 설명이 불가능한 그 현실을우리는 ’기적’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인간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일이 우리 앞에 펼쳐질 때, 과연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하는 물음은 우리 인간에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 책은 영국인 저널리스트 맬컴 머거리지에 의해 쓰여진 신앙 고백서라고 하는 편이 옳겠다.
마더 테레사가 이렇게까지 국제적으로 크게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68년 작가와의 만남 덕분이며, 그 특별한 만남을 통하여 노년기의 작가가 로마카톨릭에 귀의하게 된 것은 우연이라 말하기 어렵다.  성공한 방송인이자 논객으로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던, 어찌 보면 낯설고 기괴하기까지 한 작가가 알바니아 출신의 작고 가녀린 한 수녀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인생관과 종교관이 바뀌게 된, 어쩌면 그의 전 인생이 바뀐 데에는 마더 테레사의 인간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구걸을 마치고 돌아온 나병환자들을 보기라도 하면 벌이가 어땠는지 그들에게 직접 물어볼 태세였다.  마침 그녀와 내가 함께 있던 그 날은 벌이가 신통치 못한 것 같았다.  그녀는 벌이가 변변치 못한 나병환자들에게는 위로의 말까지 전했다.  열성을 다하다 못해 그들에게 그토록 절실한 문제를 논의하면서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실로 아름다울 따름이었다.(P.28)
로레타 수녀원을 나와 동전 몇 푼만 지닌 채 캘커타에서 가장 가난하고 비참한 구역을 자신의 거처로 삼았던 마더 테레사의 용기와 깊은 신앙심에 어느 누군들 감동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가난보다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공허함임을 마더 테레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마더 테레사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받았던 그의 솔직한 느낌과 마더 테레사의 신앙과 인터뷰 내용 및 마더 테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마더 테레사의 생전의 모습과 캘커타의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실려 있어 그 감동을 더한다.  깊게 패인 주름과 깡마른 얼굴로 따뜻한 미소만큼은 결코 잃지 않았던 마더 테레사의 모습은 이기심으로 병들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커다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진심을 다해 서로  사랑하라고.

이 책을 종교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읽는다면 마더 테레사를 미화했다거나 종교적 색채가 진하다고 비판할 여지는 있으나 그것까지는 논하고 싶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꽃을 다오 시간이 흘린 눈물을 다오
윤후명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영어를 공부하면서 외워도 외워도 늘 어렵기만 했던 단어들은 동식물의 이름이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어려서부터 늘 곁에 두고 익혀도 세월이 가면 잊혀지는 것이 그들의 이름이거늘 제 나라 말이 아닌 외국어로 어찌 그들의 이름을 세세히 기억할 수 있었겠는가.
매일 아침 산을 오르며 만나는 풀과 나무의 이름을 우리말로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으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윤후명의 산문집에는 식물학자가 되기를 소망하였던 작가의 이력 탓에 많은 식물의 이름이 등장한다.  유별난 식물 사랑이다.
언제였는지 기억도 가물거리던 어느 봄날.  내가 알지 못하던 식물의 이름을 익히고자 화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필기도구를 챙겨 들고 방문한 화원에서 그 생감새를 눈과 머리로 기억하고 이름을 하나하나 빼곡히 적어가던 중 나는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두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했었다.  종류의 많음도 그랬지만 이름을 적고 지나쳤던 식물을 다시 대하면 번번이 다른 이름과 뒤섞여 가름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일 아침이면 산을 찾는다.  이름도 모르는 나무와 풀과 꽃.  그 속에서 나는 온전한 평화를 누리곤 한다.
세상에 나고(生) 사라질(滅) 때 모든 동물은 본의 아니게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다.  인간은 어미라 불리우는 한 여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남는 자에게 잊혀지지 않는 슬픔을 남겨둔 채로 죽는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는 그 죄를 보상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것도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 원죄에 대한 작은 죄씻음이다.
살아 있는 것 중에 스스로 나고 자라 고통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식물 말고 또 있을까.
그 선(善)함과 드러내지 않는 겸손이 작가를 그토록 매료시키지 않았을까?
  자신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글, 수사(修辭)만을 앞세운 글, 뭔가 보여주겠다는 글만의 글이 내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늘 '자연을 교재로, 역사를 부교재로'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다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 마음이 들꽃 한 송이로 내 안에 피어나기를 비는 마음이다.  한 송이 하늘하늘 피어난 너도바람꽃이 이 지구를, 우주를 대변하는 모습임을 내 글이 당당하게 읊을 때, 내 문학도 비로소 우주를 유영(遊泳)할 수 있으리니.(P.105) 
그렇게 꽃과 함께 한 그의 인생에 꽃처럼 아름다운 지인들과 문우들에 대한 추억 그리고 전쟁통에 재혼한 어머니와 그의 계부에 대한 이야기, 자신의 문학에 대한 소신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 등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와 삶의 진지한 성찰이 묻어나는 글은 꽃처럼 달콤한 향기를 머금은 듯하다.  때로는 젓갈처럼 곰삭은 맛이 난다.
세월을 건너뛰는 돌다리처럼 이어지지 않는 추억의 편린이 애잔하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잘 살게나'하고 말하는 그의 덕담이 들리는 듯하다.
내 등을 토닥이는 투박한 손길의 촉감마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영학 콘서트 - 복잡한 세상을 지배하는 경영학의 힘
장영재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방선거가 끝났다.
일반 국민들은 자신을 대신해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할 사람을 뽑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는 종결된 것이지만 정치인들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것은 이번에 당선된 사람이나 중앙정부의 정치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투표 결과를 놓고 자신에게 유리한 입장으로 분석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여러 미디어에서 자주 보게 되니 말이다.
이 책의 내용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선거의 결과를 내가 굳이 꺼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전체 국민의 안녕과 발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치가들이 낡은 사고의 틀과 켸켸묵은 이론으로 국민들 위에서 거만한 표정과 몸짓으로 군림하려는 모습을 본다는 것은 한심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기업 경영의 첨단 이론과 과학적 모델로도 기업의 최상 목표인 이윤 극대화를 이룩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그 규모와 인원에서 일개 기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국가의 의사 결정권자라는 정치가들이 그렇게 무지하고 한심한 말로 국민들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볼 때 답답함을 넘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공부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여와 야를 가리지 않고 동일하다.  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정치가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이 책에서 간략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는 여러 이론 중에 하나의 예를 들어 우리 나라 국가 경영의 낙후성을 점검해 보자.
미국의 ’AT&T’사가 도입했다는 큐잉 이론이다.  전화 회선의 연결 직원의 수에 따라 송신자의 대기 시간이 결정되는 기업의 특성상 그들은 이 이론을 통해 직원수를 결정하고, 고객 예상 대기 시간을 산정하여 운영에 참조했다고 한다.  국가의 생산물이 행정 서비스라고 할 때 다양한 종류의 행정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는 국민들의 대기 인원과 그 내용을 처리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행정 기구와 공무원의 적정 인원을 수학적 모델이나 컴퓨터 공학의 방법론으로 계산이나 해본 것일까?  자신들의 취향이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무시해버리거나 자신들의 이익과 기호에 맞는 기구만 새로 만들거나 공무원의 확충을 꾀한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국민들 대다수가 이념적 편향이나 지역적 연고에 의해 이번 선거의 후보자에게 표를 던졌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 행정 서비스의 최종 소비자인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도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기에 그 불만의 표시를 투표로 행사했을 뿐이다.  그것은 내가 상점에서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받지 못한 것과 다르지 않다.
상점에서는 그 판매자와 대면하고 조목조목 따질 수나 있지만 실체가 없는 국가 경영의 주체에게는 그마저도 통제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국민들을 대신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이념 이데올로기와 지역 연고의 고루한 틀 속에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1%의 수익을 더 얻기 위해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기업 구조를 최적화 하려 노력하는 기업 경영인의 노력과 그 첨단 이론들을 우리 정치인들이 배웠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