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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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순간’이라는 단어는 내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찰나지간의 짧은 시간이 내게는 왜 그다지도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일까?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것, 그것은 나와 같은 범인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요, 지울 수 없는 로망이기 때문이다.  순간을 영원처럼 살다 간 사람들을 우리는 `천재’라 부른다.
평생 단 하나의 꿈을 안은 채 시간을 허비하는 인생과 순간순간을 인생 최대의 행복을 맞이한 것처럼 사는 것, 더구나 이룰 수 있을지 없을지 불확실한 하나의 꿈을 향해 절제하며 평생을 사는 우리네 삶을 천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얼마나 한심하고 우매한 짓이겠는가?

소위 천재적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대개 삶을 서서히 이루어 가는 하나의 완성품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삶은 수없이 많은 순간적 행복의 집합체로 인식되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삶은 신이 부여한 선물이며, 축복인 것이다.  그들은 매 순간의 행복과 황홀한 유희를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을뿐더러 그 소중한 시간을 최대한 길게 늘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시간을 늘인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겠는가마는 그들은 시간의 경과를 잊고 싶어 한다.
그 황홀한 순간을 시간의 흐름이라는 훼방꾼에게 결코 방해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훼방꾼으로부터의 도피 또는 망각하는 방법 -이를테면 도박, 마약, 스피드, 섹스 등- 을 끝없이 추구하고 집착하게 되는 까닭도 그것이다.  우리와 같은 범인의 시각에서 비도덕적, 또는 광란이라 치부되는 그러한 것들이 그들에게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최상의 선물(삶)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한 방편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열아홉 살의 나이에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프랑수아즈 사강.  50대에 마약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법정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고 말했던 그녀는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책에서 말하고 있다.  이책은 그녀의 문학과 삶에 대한 자전적 에세이로 도박과 자동차 경주에 대한 사랑, 문학적 영감을 얻은 문학작품들, 연극, 영화 및 당대의 문화예술계 거장들과의 교류 및 그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 아쉬움 등 자신의 솔직한 내면을 털어놓는다.

"자동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다 보면, 쇠로 된 그 카누 안에서 모든 것이 솟구쳐 오르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칼의 뾰족한 부분에, 파도의 꼭대기에 도달한다.  다음 순간 우리는 솜씨 덕분이라기보다는 흐름을 타고 좋은 측면으로 다시 내려가기를 소망한다.  스피드에 대한 애호는 스포츠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도박이나 운명과 통한다.  그것은 사는 것의 행복과 통한다.  그 결과 행복 속에 늘 감도는 죽음에 대한 어렴풋한 소망에 이끌린다."(P.98)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비도덕적이라거나 광란으로 비하하는 그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행복의 도약’ 또는 `행복의 연장’에 필요한 절대적 도구였던 듯하다.  열정과 흥분에 쌓여 매 순간을 살아가는 삶과 죽음처럼 희미한 미래의 `목표’를 향해 힘들게 절제하는 삶은 우리의 삶이 다양함을 말해주는 것이지 그것을 선과 악으로 규정할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악으 범주에 넣는다.  단지 소수라는 이유 때문에...

"그러나 천재의 운명은 얼마나 멋진가.  그날그날 내키는 대로 살면서 미테랑에게 훈장을 받기 위해 파리에 들르고, 관절염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의 농장으로 다시 돌아가고, 터무니없이 적은 금액에 광고영화를 찍는 운명 말이다." (P.113)

실존주의의 엄격함과 이성에 억눌려 허우적대던 시기에 감수성 풍부한 한 여인이 혜성처럼 나타나, 가벼운 터치로 사람들을 즐겁게하고, 자신의 삶을 열정으로 불사르고 떠난 여인.  프랑수아즈 사강을 그리워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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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배우는 작은 학교 - 독일의 성자 안젤름 신부의
안젤름 그륀 지음, 이미옥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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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의 영혼이 자연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시는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면 수필은 계곡을 타고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같다.
그런가 하면 소설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아서  금방이라도 커다란 배를 집어삼킬 듯한 격정이 그 속에 있다.
또는, 철학은 깊고 어두운 심층의 바다를 유영하는 느낌이 든다.
역사는 묵묵히 말이 없는 바위와 같으며, 종교는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닮아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이런 느낌과 딱 들어맞는 책을 읽노라면 은근한 기쁨을 감출 수 없다.

얼마 전에 그륀 신부님의 또 다른 책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를 읽었을 때의 느낌도 그랬다.  맑고 청아하게 흐르는 작은 시냇물의 느낌이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륀 신부님은 이 책에서 삶에 존재하는 양면성과 두 개의 극단적 대립을 조절하여 균형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연습과 금욕이 필요하고 그것을 일상에서 익힐 것을 주문하고 있다.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는 기꺼이 `삶의 학교'로부터의 초청에 응한다.
수업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수업 - 가치(내 삶을 이끌어줄 나만의 별을 찾아서)
두 번째 수업 - 시간(시간은 나의 하루를 동행하는 천사이다)
세 번째 수업 - 태도(세상의 일부로 살아가되 지켜야 할 나만의 세계)
네 번째 수업 - 마음의 균형(건강한 삶은 막힘 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다)
다섯 번째 수업 - 책임(산다는 것은 상처를 진주로 바꾸는 것)
여섯 번째 수업 - 일하는 즐거움(일하며 땀 흘리는 즐거움, 일을 마친 뒤 휴식하는 즐거움)
일곱 번째 수업 - 존재(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 아름다운 이유)
여덟 번째 수업 - 상처와 치유(괜찮습니다, 산다는 건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아홉 번째 수업 - 평화(어떤 삶에서 기쁨을 누리는가)
열 번째 수업 - 자기애(마음 하나는 자신을 위해, 나머지 하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열한 번째 수업 - 용기(두려움을 이해하는 사람은 지상 최고의 것을 배운 사람이다)
열두 번째 수업 - 행복(해시계처럼 살고, 아름다운 시간만 헤아려라)
열세 번째 수업 - 그리움(그리움이 있기에 지금보다 나은 내가 될 수 있다)
열네 번째 수업 - 사랑(살아갈 날들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끝이 없다)
마지막 수업 - 침묵(삶의 비밀을 들려주는 침묵의 가르침)

모든 수업을 마쳤다.
그러나 나는 `삶을 배우는 작은 학교'에서 졸업이 아닌 수료를 한 기분이다.
졸업 시험에서 보기 좋게 낙방하여 조만간 재수강을 하거나 이보다 더 작은 학교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우리가 지식이 부족하여, 영혼의 성숙도가 미치지 못하여 천상의 소리를 듣지 못할 때가 있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나보다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삶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시 배워야 할까보다.

"고요는 신의 비밀과 접촉하게 해주고 내 삶과 내 자신과 접촉하게 해준다.  그리고 고요는, 내가 완전하고, 순수하고 흠이 없는 공간으로, 신이 나에게 부여했던 장엄함이 빛나는 공간으로 나를 인도한다.  이곳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 있는 곳이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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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스님의 주례사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남녀 마음 이야기
법륜스님 지음, 김점선 그림 / 휴(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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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선남선녀가 만나 사랑을 키우고, 그 사랑의 결실로 결혼을 결심하는 계절.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저런 관계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결혼식 청첩장을 받게 된다.
양복 안주머니에 챙겨간 축의금을 전달하고 카메라 앵글에 내 얼굴을 넣으면 일차 임무는 그것으로 끝.
혼주와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인사를 남기고 돌아설 쯤에는 피곤이 몰려온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상품을 찍어내듯 결혼하고, 세상의 미혼 남녀들이 그렇게 갈망하는 행사이건만 결혼 이후의 삶이 행복하냐? 물을라치면 다들 입을 닫는다.
대답을 못하는 이유야 제각각이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것이 근본 원인 아니겠는가.

이탈리아 속담에는 "애정 때문에 결혼하는 자는 분노 때문에 죽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흔하게 듣는 "사랑이 밥 먹여 주냐?"는 말의 의미와 큰 차이가 없을 듯하다.  법륜 스님은 그 적나라한 실상을 민망할 정도로 가감없이 파헤친다.
그리고 그 원인과 대안을 찬찬히 들려준다.  목하 연애 중인 커플이 읽는다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어쩌면 거칠게 항의할 수도 있겠다.  들어가는 글의 제목에서도 스님은 "용감하게 결혼을 결심한 당신에게"라고 쓰고 있다.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고, 바다에 갈 때는 두 번 기도하며,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는 러시아 속담처럼 결혼 생활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스님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부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졌다고 흔히 말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부부가 사랑으로 맺어진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백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그럼, 부부는 무엇으로 맺어질까요?  대부분의 경우 극도의 이기심으로 맺어집니다.  인간관계 중에서 이기심이 가장 많이 투영되어 맺어진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예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았던 것과는 정반대죠?"(P.76)

혹자는 물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하지 말라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결혼은 하되, 행복한 결혼 생활은 자신이 만들어 가기 나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결혼이 불행해지는 근본 원인은 `누구 때문’이 아닌 전적으로 자신의 탓임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출발점에 서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계획하라는 것이다.  결국 행복해지자고 행한 결혼이 불행의 원인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과오가 있겠는가.
좋은 결혼이 극히 적은 것은, 그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하고 있다.고 몽테뉴는 말한다.  다들 행복해 보이지만 실상 좋은 결혼은 그리 많지 않다.  결혼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 결혼은 인내와 수행의 길에 놓인 고독한 두 사람임을 깨달아야 한다.  비단 결혼 뿐 아니라 모든 인생사에서 자신이 주체가 되어 꾸려나가지 않는다면 뒤틀리고 잘못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다.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다 인사받으려고만 합니다.  사랑받으려고만 해요.  이해받으려고만 하고 도움을 받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객꾼으로 떠도는 거예요.  떠돌이 신세로 늘 헐떡거리면서 사는 겁니다.  먼저 주는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P.271)

스님은 결혼하려는 예비신랑, 신부에게 그리고 결혼한 부부에게 값진 선물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준비할 수 있는 최상의 혼수는 마음 다스림이요, 그것이 결혼하려는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선물인 것이다.  결혼은 행복의 출발점이 아니라 산사로 들어서는 수행의 길목임을 알아야 행복한 결혼을 기약할 수 있다.

결혼에 대하여 긴요한 것은 스무 번이고 백 번이고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람은 항상 어찌할 수 없을 때 죽음에 임하듯,
다시 말하면 그렇게 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을 때 결혼할 것이다.
- 톨스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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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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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에게 `행복 전도사 - 행복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최윤희씨가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이 웹 뉴스에 속보로 실렸을 때, 사람들은 다들 놀라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산자들의 몫이요, 그들만의 세상인 것을...
그렇게 잊혀지고 사람들은 또 우연한 대화에서 오래된 역사처럼 그날을 떠올리려 한참을 애쓸 것이다.

앙드레 고르가 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육십 년의 결혼 생활과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앙드레 고르.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승을 하직했던 앙드레 고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P.90)
아내 도린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다.

 고르는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공동 창간한 언론인이었고, 장 폴 사르트르의 뒤를 이어 잡지 <현대>를 이끌었던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프랑스 ‘68혁명’의 이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70년대 이래 생태주의 운동에 힘을 썼던 생태철학자였다. 이런 공식적 삶의 배후에서 그 삶을 받쳐주던 내밀한 삶이 있으니, 한 여자만을 평생토록 사랑한 삶이 그것이다. <디(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는 고르가 사적인 삶을 온전히 공유했던 자기 아내 도린에게 바친 고백록이다. 두 사람이 죽기 1년 전인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2007년 9월 22일 고르는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수줍음 많은 청년 고르와 영국 출신의 낙천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아가씨 도린의 만남에서부터 결혼 후 '거미막염'이라는 불치의 병을 안고 23년이나 살아온 늙은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고르 자신의 회고록이자, 여든세 살의 남자가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다.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했던 아내의 감정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주의 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회한, 그리고 시들어가는 생명의 불꽃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고르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배반자>가 마침내 출간되자,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느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준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배반자> 한 권을 주면서 맨 앞에 써준 헌사는 이랬습니다.
   `케이'로 불리는 당신. `당신'을 내게 줌으로써 `나'를 내게 준 사람에게.
결국 `내 책'이 된 그 <배반자>를 쓸 때 이 헌서 같은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서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P.70)

아내 도린이 구상한 새 집으로 이사한 후 정원에서 땅을 파며 아내가 있는 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던 장면을 고르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당신은 꼼짝 않고 거기 서서 먼 곳만 건너다보고 있었지요.  당신이 두려움 없이 죽음과 맞서기 위해 죽음을 길들이고 있던 거였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말없이 그렇게 있던 당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결연해서 당신이 삶을 단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P.83)

아침에 산을 오르노라면 간밤의 바람에 힘없이 떨어진 여린 가지를 볼 때가 있다. 
생명을 다하지 못한 채 스러지는 그 모습이 몹시 처연하여 나는 차마 그 위를 밟지 못한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아릿한 슬픔이 가슴 저 밑에서 복받친다.
먼저 간 모든 이에게 평화와 안식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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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사람이다
오영진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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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삶이 짧든 길든 간에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너의 안부가 궁금하고, 너의 오래된 추억이 궁금하고, 아직 오지 않은 너의 미래가 궁금하다.
삶의 궤적에는 항상 `나'라는 존재가 발자국을 남기지만, 내 상념의 궤적에는 늘 `너'만 존재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문득문득 `나'와 `너'는 독립된 개체가 아닌, 전체(또는 우주)에 포함된 일부분임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내 몸속의 각 기관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여 독립된 개체라고 인식하지 않듯, 사람들 각자는 `사랑'이라는 질긴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임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의 파르마 신경생리학 실험실.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쥐기, 들기, 찢기,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기 등 손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전운동피질 영역(F5영역)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실험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질거라 상상하진 못했겠지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손의 움직임을 어떤 영역에서 명령을 내리는지 연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신경생리학자 갈레세는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인가를(결국 어떤 것을 쥐려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는군요.) 잡으려고 손을 뻗자, 그것을 지켜보던 마카크 원숭이의 F5영역이 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는 어떠한 것을 쥐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손움직임을 관장하는 전운동피질이 발화되었지요. 단순히 남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거울뉴런'이란 놀라운 발견의 시작이었지요. 이후 인간의 두뇌에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두뇌가 상대의 행위에 대해서 인위적인 계산을 할 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거기에 약간의 비약을 추가하여 상대의 움직임에 대해서 자신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남성의 주요부위에 매우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동영상을 보았을 때, 그 것을 보는 사람도 움찔해지는게, 거울뉴런에 의해 상대의 고통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말로 서론이 길어졌다.
이 책은 8,90년대의 특별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각기 다른 소제목의 스물한 가지 이야기가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내가 `나'의 이야기가 아닌`너'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까닭은 나는 처음부터 `너'의 일부로, 조각난 시대의 파편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한 시대의 작은 보푸라기로 살면서 시대 전체를 궁금해 하는 까닭이다.
사랑이라는 질긴 끈이 `너'에게 닿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하나로써 전체를 품는다.
나는 오늘도 너의 이야기를 읽는다.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던 생면부지의 너에게 구애를 하듯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는 누구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의 한 부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닿지 못한 그 부분과 화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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