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에게 보낸 편지 - 어느 사랑의 역사
앙드레 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학고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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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우리에게 `행복 전도사 - 행복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최윤희씨가 남편과 함께 세상을 떠났다.
그 소식이 웹 뉴스에 속보로 실렸을 때, 사람들은 다들 놀라고 의아해 했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세상은 여전히 산자들의 몫이요, 그들만의 세상인 것을...
그렇게 잊혀지고 사람들은 또 우연한 대화에서 오래된 역사처럼 그날을 떠올리려 한참을 애쓸 것이다.

앙드레 고르가 쓴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었다.
육십 년의 결혼 생활과 동반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앙드레 고르.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승을 하직했던 앙드레 고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러다 나는 잠에서 깨어납니다.  당신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당신을 쓰다듬어봅니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P.90)
아내 도린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다.

 고르는 프랑스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공동 창간한 언론인이었고, 장 폴 사르트르의 뒤를 이어 잡지 <현대>를 이끌었던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프랑스 ‘68혁명’의 이론적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1970년대 이래 생태주의 운동에 힘을 썼던 생태철학자였다. 이런 공식적 삶의 배후에서 그 삶을 받쳐주던 내밀한 삶이 있으니, 한 여자만을 평생토록 사랑한 삶이 그것이다. <디(D)에게 보낸 편지-어느 사랑의 역사>는 고르가 사적인 삶을 온전히 공유했던 자기 아내 도린에게 바친 고백록이다. 두 사람이 죽기 1년 전인 2006년 프랑스에서 출간되었고, 2007년 9월 22일 고르는 아내와 동반자살했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수줍음 많은 청년 고르와 영국 출신의 낙천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아가씨 도린의 만남에서부터 결혼 후 '거미막염'이라는 불치의 병을 안고 23년이나 살아온 늙은 아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는 고르 자신의 회고록이자, 여든세 살의 남자가 보내는 연서이기도 하다.  조금 더 일찍 깨닫지 못했던 아내의 감정에 대한 안타까움과 부주의 했던 자신의 행동에 대한 회한, 그리고 시들어가는 생명의 불꽃 앞에서 영원한 사랑을 기원하는 고르의 애절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배반자>가 마침내 출간되자,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느라고 당신의 모든 것을 준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배반자> 한 권을 주면서 맨 앞에 써준 헌사는 이랬습니다.
   `케이'로 불리는 당신. `당신'을 내게 줌으로써 `나'를 내게 준 사람에게.
결국 `내 책'이 된 그 <배반자>를 쓸 때 이 헌서 같은 생각을 좀 더 발전시켜서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P.70)

아내 도린이 구상한 새 집으로 이사한 후 정원에서 땅을 파며 아내가 있는 방의 창문을 바라보았던 장면을 고르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당신은 꼼짝 않고 거기 서서 먼 곳만 건너다보고 있었지요.  당신이 두려움 없이 죽음과 맞서기 위해 죽음을 길들이고 있던 거였다고 나는 확신합니다.  말없이 그렇게 있던 당신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결연해서 당신이 삶을 단념할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지요."(P.83)

아침에 산을 오르노라면 간밤의 바람에 힘없이 떨어진 여린 가지를 볼 때가 있다. 
생명을 다하지 못한 채 스러지는 그 모습이 몹시 처연하여 나는 차마 그 위를 밟지 못한다.
그리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볼 때 아릿한 슬픔이 가슴 저 밑에서 복받친다.
먼저 간 모든 이에게 평화와 안식이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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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니까 사람이다
오영진 지음 / 브리즈(토네이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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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나온 삶이 짧든 길든 간에 사람들은 누구나 `내'가 아닌 `너'의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너의 안부가 궁금하고, 너의 오래된 추억이 궁금하고, 아직 오지 않은 너의 미래가 궁금하다.
삶의 궤적에는 항상 `나'라는 존재가 발자국을 남기지만, 내 상념의 궤적에는 늘 `너'만 존재했다고 한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문득문득 `나'와 `너'는 독립된 개체가 아닌, 전체(또는 우주)에 포함된 일부분임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내 몸속의 각 기관이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하여 독립된 개체라고 인식하지 않듯, 사람들 각자는 `사랑'이라는 질긴 끈으로 연결된 하나의 유기체임을 새삼 확인하곤 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의 파르마 신경생리학 실험실.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쥐기, 들기, 찢기,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기 등 손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전운동피질 영역(F5영역)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 실험에서 놀라운 발견이 이루어질거라 상상하진 못했겠지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학자들은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손의 움직임을 어떤 영역에서 명령을 내리는지 연구하려고 하였습니다.


실험에 들어가기 전에 신경생리학자 갈레세는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인가를(결국 어떤 것을 쥐려했는지 기억해내지 못했다는군요.) 잡으려고 손을 뻗자, 그것을 지켜보던 마카크 원숭이의 F5영역이 발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원숭이는 어떠한 것을 쥐려고 하지 않았는데도 손움직임을 관장하는 전운동피질이 발화되었지요. 단순히 남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거울뉴런'이란 놀라운 발견의 시작이었지요. 이후 인간의 두뇌에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두뇌가 상대의 행위에 대해서 인위적인 계산을 할 뿐만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거기에 약간의 비약을 추가하여 상대의 움직임에 대해서 자신도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남성의 주요부위에 매우 강한 충격이 가해지는 동영상을 보았을 때, 그 것을 보는 사람도 움찔해지는게, 거울뉴런에 의해 상대의 고통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책의 내용과는 전혀 상관도 없는 말로 서론이 길어졌다.
이 책은 8,90년대의 특별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각기 다른 소제목의 스물한 가지 이야기가 내게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내가 `나'의 이야기가 아닌`너'의 이야기에 감동하는 까닭은 나는 처음부터 `너'의 일부로, 조각난 시대의 파편처럼 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한 시대의 작은 보푸라기로 살면서 시대 전체를 궁금해 하는 까닭이다.
사랑이라는 질긴 끈이 `너'에게 닿아있는 한 우리는 언제나 하나로써 전체를 품는다.
나는 오늘도 너의 이야기를 읽는다.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던 생면부지의 너에게 구애를 하듯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누구나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나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는 누구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세계의 한 부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닿지 못한 그 부분과 화해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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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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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분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내가 읽는 속도에 따라 200쪽, 100쪽,그리고...
끝이 보인다는 것은 한 사람의 삶이 전해 주는 감동이 다하는 것이요, 그와 더불어 닥터 노먼 베쑨의 안타까운 죽음을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성공한 흉부외과 의사로서 부와 영예를 탐하지 않고, 오히려 전쟁터를 누비며 부상병을 돌보다 목숨마저 내놓아야 했던 그의 삶은 아름다웠다.  진실로 아름다운 삶이었다.
`의사들이 빵을 팔면서 보석의 값을 요구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던 그는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실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우리 모두가 의료행위로부터 사적인 이윤을 배제시켜 나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직업을 탐욕스러운 개인주의로부터 벗어나도록 만듭시다.  가난한 이웃들의 희생 위에서 우리 자신을 살찌우는 행위를 수치스럽게 생각합시다."(P.206)

서른여섯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그가 인공 기흉술이라는 당시로는 충분하게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치료법에 자신을 실험대상으로 내놓음으로써 제2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가 러시아의 사회주의 의료체계를 둘러본 후, 그가 그동안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들은 하나씩하나씩 실천에 옮겨진다.
빈민가의 아동들에게 예술의 기쁨과 창의력을 일깨워 주기 위해 `몬트리올 아동 미술학교’를 세우고 일체의 비용을 자신이 감당하는가 하면, 뜻을 같이 하는 의사들을 모아 국민보건그룹을 창설하기도 하였다. 
 
1936년 진보를 꿈꾸는 전 세계 지식인들이 곤경에 빠진 스페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스페인으로 달려와 프랑코 파시스트에 맞서 싸웠던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 달라는 스페인 민주주의 원호위원회의 부탁을 받고 그는 고민 끝에 이를 수락한다.
그곳에서 그는 전장의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동식 수혈기법을 창안하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모여든 헌혈자로부터 모은 혈액을 저장하여 전쟁터의 부상병들을 살리는 혈액은행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그가 모금을 위하여 캐나다로 돌아와 청중을 상대로 한 연설은 의미있다.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무솔리니는 특등 열차를 타고 로마에 입성하여 권좌를 차지했습니다.  이때 그가 내세운 것이 `공산주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내세우며, 무서운 속도로 국민의 생활수준과 생명, 자유, 행복추구에의 권리들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최근에는 의심할 바 없이 그 신성한 임무의 일환으로 이탈리아를 군국화하고 아비니시아를 파시즘과 유혈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것도 `공산주의 위협’으로부터 독일을 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P.330)

"만약 여러분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자유스럽지 못하다면,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여러분의 자유와 권리를 방위하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이 찍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스페인 국민들처럼 굶주리고 있다면, 그래서 여러분들이 빵을 요구하고자 한다면, 여러분들은 `공산주의 위협’을 제거시킨다는 명목하에서 타도될 것입니다."(P.331)
그는 반공이라는 지나친 사기극을 그만두자고 호소하였다.
이 상황은 작금의 세계 움직임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는 어떤가?


전 세계 지식인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내전은 결국 파시스트의 승리로 끝났다.  시민군의 열정은 무참히 꺾이고 말았으며, ‘게르니카’가 고발하듯 잔인한 학살도 자행되었다.  그 학살을 지켜보면서 베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스페인은 내 마음의 상처다.’ 라고 했던 베쑨의 한마디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내가 베쑨의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면 너무 과장된 것일까? 그 뜨거웠던 열기와 참혹한 살육의 현장을 직접 목도한 그의 심정을 말이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다음 해 베쑨은 다시 의료품을 챙겨들고 중국으로 떠났다. 1939년 11월 수술 중 베인 손가락이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사망하기까지 그는 중국 팔로군과 함께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 
베쑨의 절망과 좌절, 그리고 가슴에 깊이 박힌 상처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 것 아닐까? 

세계는 변하였고 냉전체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끝났다.
그러나 그 이름을 달리한 사기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공산주의 위협’에서 `테러와의 전쟁’으로 그 럴듯한 포장지만 바뀐 셈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잔혹한 억압과 학살은 모두 `공산주의 위협’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목으로 벌어진 일이었다.
수많은 희생자의 삶과 자유, 행복에의 권리는 과연 그 허무맹랑한 사상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가치 밖에 없는지 자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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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로 가는 길 - 라사의 앞 못 보는 아이들, 개정판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김혜은 옮김 / 도서출판빗살무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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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가 강원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지금은 기억도 희미해진 어느 봄날에 먼 친척뻘 되는 분이 우리집을 방문했었다.
그날은 마침 토요일이었고, 일찍 귀가한 나는 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며 놀고 있었다.
산중턱에 위치한 우리 동네는 기껏해야 집이 서너채에 불과하여 일년 내내 낯선 이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유난히 목청이 큰 우리집 개가 `컹컹’ 짖어대는 것을 필두로 우리의 시선도 그 낯선 방문객에게로 향하였다.
기타를 어깨 쪽으로 가로 질러 매고, 검은 선글라스를 낀 모습도 궁금증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한 손에 든 흰지팡이로 더듬어 산비탈을 오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 붙박힌듯 물끄러미 낯선 방문객의 행동거지를 한동안 바라보기만 하다가 놀던 것도 그만 흥미를 잃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는 우리가 동구밖 언덕에서 보았던 그 사람이 어머니와 마주앉아 있었고, 어색하게 인사를 건넬 때에야 비로소 그분이 시각장애인임을 알았다.

어린 마음에 들었던 그때의 기억은 앞도 못 보는 분이 동행도 없이 어떻게 그 깊은 산골 오지를 찾아 올 수 있었을까 하는 것과 구슬픈 트로트 자락을 능숙하게 연주하던 그분의 기타 실력과 동네분들에게 침과 뜸을 놓아주던 유난히 길고 가는 손가락이었다.
그 후 단 한번도 그분을 다시 보지 못했지만, 거리에서 가끔 시각장애인과 마주칠 때면 늘 그분의 모습이 겹쳐지곤 했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묵고 석양을 등진 채 떠나던 그분의 모습은 애잔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왜 그렇게 오래되고 빛바랜 기억을 떠올렸던 것일까? 
저자 또한 독일에서 태어난 시각장애인이다.
1970년 독일 퀼른에서 태어난 저자는 두 살 때, 시력을 잃게 되는 병으로 알려진 망막질환을 선고 받았다. 어릴 때에는 색이나, 얼굴, 풍경 등을 알아볼 수 있었지만 열 두살, 시력을 거의 상실한 무렵 그녀는 마브르그에 있는 시각장애 특수 김나지움에 입학하여 점자를 배웠고,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일년 동안 미국에 체류했으나 다시 독일로 돌아와 본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도 그녀에게 가장 불가능해 보이는 언어학 전공, 티베트학으로. 그리하여 사브리예는 지도교수의 권유로 티베트 점자를 연구하게 된다.
1997년 스물여섯 살의 저자는 단신으로 티베트 라사로 향한다.
그녀의 꿈은 티베트의 앞 못 보는 아이들을 위하여 시각장애인 학교를 설립하고, 그들에게 점자를 가르쳐 동등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었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티베트 라사에 시각장애인 학교를 세운 한 여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녀는 현재 라사 시각장애인 학교 및 직업교육센터의 운영과 사업규모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전생에 지은 죄에 대한 벌로 이생에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고 돌마는 설명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시각장애인들이 귀신과 교류하며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이 터무니없는 편견 때문에 시각장애인들이 기피대상이 되는 곳도 종종 있었고 심지어 시각장애인의 몸에 스치기만 해도 불결하고 부정탄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P.57)

가을이다.
산에 올라 보면 여름내 나무의 성장을 돕던 나뭇잎들이 제 소임을 다했다는듯 화려한 단풍으로 치장하고 마지막 휴식을 취하고 있다.
여한이 없는 모습.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나뭇잎은 가지와 연결된 생명의 줄을 스스로 놓을 것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나뭇잎처럼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미련없이 생명의 줄기와 결별하는 일이 아닌가.
나는 알고 있다.
봄이 육체의 성장을 도모하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영혼의 성장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나는 낙엽을 밟으며 영혼이 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올 겨울이 지나면 숲도, 나도 한뼘쯤 자란 성숙한 영혼으로 다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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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만든 책 - 새끼 고양이, 길 잃은 고양이, 집 없는 고양이를 위한 지침서
폴 갈리코 지음, 조동섭 옮김 / 윌북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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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던 시절,  내가 살던 신림동의 한 아파트에는 유난히 도둑 고양이가 많았다.
밤마다 들리는 고양이 울음 소리는 마치 갓난아기의 울음 소리와 너무나 흡사해서 `뉘집 아기가 이렇게 우나?’하고 문을 열어보면 배고픈 고양이가 쓰레기장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목격하곤 하였다.
달빛에 반사된 고양이의 파란 눈빛은 섬뜩하였다.
그때마다 언제 적에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에 얽힌 미신이 생각나곤 하였다.
나는 고양이를 잘 몰랐었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이 책은 고양이가 쓴 암호를 해독하여 옮긴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물론 사실일 리 없는 저자의 주장이지만, 스포츠 기자를 역임하고, 복싱 선수로도 뛰었던 저자의 경력에 비한다면 이런 귀엽고 앙증맞은 거짓말은 그럭저럭 봐줄만 하다.
생후 6주 만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엄마를 잃은 착하고, 똑똑하고, 영리한 고양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새끼고양이, 길잃은 고양이, 집없는 고양이를 위한 인간 길들이기 지침서이자 고양이의 눈에 비친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꿰뚫어 보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는 그런 책이다.

"인간 여자를 절대 과소평가하지 마.  인간 여자는 아주 영리해.  남자를 사로잡아서 접수하는 게 여자니까.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영리하지.  인간 부부 중 남편을 쉬 접수했다 하더라도 조심해야 해.  그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자기 남편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다 알아낼테니까. "(P.41)

기록에 의하면 고양이가 애완동물로 길들여지기 시작한 것은 BC 1500년경 고대 이집트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양이의 머리로 여신을 경배하였으며 따라서 고양이를 매우 신성시했다 한다.  이후 고양이는 다른 문화권에도 퍼져 BC 500년경에는 그리스와 중국에 흔하게 되었으며 인도에는 BC100년경에 알려졌다고 한다.이처럼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신성한 동물로 귀한 대접을 받았던 영광의 역사서부터 마녀사냥이 횡행했을 때는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던 수난의 역사까지 두루 갖고 있다. 그리고 각 문화권마다 가장 희비가 많은 짐승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고양이를 부정한 짐승으로 보는 경향이 많았고, 이런 까닭에 나는 고양이와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 책에 의하면 나는 무식한 인간 남자에 불과한 것이다.

"인간이랑 말을 더 섞어서 좋을 일은 없어.  이건 인류학적 입장에서 관찰한 결과이고, 또 어느 고양이나 인간과 오래 산 뒤에는 깨닫겠지만, 인간이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경우의 대부분은 끝없는 말과 수다에서 비롯된 것이거든. "(P.130)

애묘가들 사이에서 `고양이책의 고전'으로 손꼽힌다는 이 책에는 고양이가 인간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지침들을 기록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언어와 습성을 모르고 앞으로도 가까워질 것 같지 않지만,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들(혹은 고양이에게 접수당한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이 많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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