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잇는 250원의 행복한 식탁
고구레 마사히사 지음, 김우영.선현우 옮김 / 에이지21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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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도 이제 딱 한달이 남았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에 가득 울려퍼지고, 늘 그렇듯 까만 제복의 구세군과 빨간 자선냄비가 등장할 것이다.
그리고 언론 매체에는 자선과 기부를 독려하는 각종 프로그램이 족히 달포는 지속될 것이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불우 이웃돕기 성금’을 비롯한 각종 기부가 학급별로 반강제적으로 집행되었었다.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던 나는 연례행사처럼 진행되던 성금 모금이 영 부담스러웠고, 친구들에게 농반 진반으로 "내가 불우 이웃인데 누구를 도와주란 말이야?" 하면서 불만을 표출하곤 했었다.  그랬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어른이 돼서도 공개적인 성금 모금 행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나는 나의 능력 범위에서 몸으로 부대끼는 노력 봉사를 선호한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결혼 전에는 가끔 꽃동네를 방문하여 중증 장애우의 목욕을 도와주거나 청소를 거들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따뜻한 체온에서 느껴지던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있었다.  세상과 이웃에 대한 믿음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이 있어 푸근해지는 그런 느낌.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는 ’이웃’이라는 안전장치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믿을 건 오직 나밖에 없다는 식의 투쟁 의식, 그래서 더 악착스레 돈에 매달리게 되고, 그럴수록 더욱 외로워지고...

이 책은 일본의 사회적 기업 "테이블 포 투(Table For Two)"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고구레 마사히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한 사회적 기업의 창업 지침서이다.
저자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상대적으로 기부 문화에 인색한 아시아에서 사회적 기업의 발전 가능성을 타진하고, 사회적 기업가로서의 자질과 기본 마인드 및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TFT는 이 ’먹을거리(食)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이 함께 건강해지는 것을 목표로 2007년 2월 발족했다.
사원식당을 가진 기업이나 단체와 제휴해 보통 식사보다 낮은 칼로리로 영양 밸런스를 갖춘 특별 메뉴를 제공하고 가격은 20엔(250원)을 올려 설정한다. 이 20엔은 기부금으로 TFT를 통해 아프리카에 보내서 현지 아이들의 급식비로 쓰인다. 즉 ’식량이 남는 선진국’과 ’식량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세계적 식량 불균형을 해결하는 상생의 구조이다.
그냥 점심 한끼를 해결함으로써 사회공헌에 참여할 수 있으니 생각만으로 일관했던 다수의 일반인들에게 그 틀을 제공함으로써 생각을 실천으로 전환할 수 있는 ’큰 연결’, 즉 그 기본 틀을 형성해 놓은 것이다. 좋은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건강해질 수 있고, 이제까지의 자선 활동에서 갖기 쉬운 의무감이나 심리적 강제와 같은 답답함이 없는 점도 TFT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받는 이유가 된다. 

저자는 또한 맥킨지 앤드 컴퍼니에서 컨설턴트로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회사 쇼치쿠에서 일했던 저자의 이력답게 사회적 기업에도 철저한 비즈니스 스킬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 개략적인 전략을 저자는 5P를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Purpose[목적, 달성목표], Partnering[제휴],People[조직, 인사],  Promotion[홍보],   Profit[이익, 성과]는  ’이익을 올리지 않으면 사업 활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일반 사업과 동일하다는 관점이다.

사회적 기업은 비지니스가 아닌 자원봉사이고, 이윤추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불식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 공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사람들도 생활이 있고 노력이나 성과에 걸맞는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과 도전정신이 투철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실현할 수 있는 장(場)이 열리게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30대 중반에 자신의 ’천직’을 찾았다고 말한다.
비록 이제까지 해온 어떤 일보다 고생스럽지만,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생각을 실현하고 타인을 행복하게 그리고 사회를 좋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일하는 의미’를 찾는 길이며, 매일매일을 가슴 뛰는 두근거림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저자가 부럽다.   

 ’한 사람의 식탁을 둘러싸고 선진국의 참가자와 개발도상국의 어린이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함께 식사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테이블 포 투>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날이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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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
미카엘 마르텐센 지음, 김진아 옮김 / 21세기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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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슬픈 영화를 보면서 훌쩍이며 눈물을 찍어내는 노인을 보면 그렇게 궁상맞고 구질구질해 보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절대 울어서는 안 되고, 울음이 헤프다는 것은 내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이들과 TV에서 방영하던 멜로 드라마를 보면서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켰었다.  그때는 눈물샘을 자극하던 드라마가 어찌나 많았던지...  혹시 눈물이 솟을 듯한 장면이 나오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곤 했었다.  우는 모습을 들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된다는 것은 내 어린 자존심이 결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어찌나 울었던지...
붉게 충혈된 나의 눈을 보면서 지켜보던 동료들이 집에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할 정도였다.

이 책은 사랑하는 딸 소피아가 생후 9개월째 백혈병 진단을 받은 후부터 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기까지 그 짧았던 인생을 저자 미카엘 마르텐센이 하나하나 기억을 더듬어 기록한 투병기이다.
페인트 가게 직원이었던 저자는 사랑하는 아내와 큰 딸 사라 그리고 장난스러운 두 마리의 개를 기르던 지극히 평범한 가장이었다. 둘째 딸 소피아의 얼굴에 붉은 반점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생후 9개월부터 4살이 될 때까지 온 가족은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빠의 진한 부성애와 병마와 싸우는 소피아의 혹독한 전투, 그리고 고통 속에서 병마와 싸우는 어린 소피아를 통하여 고통과 눈물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희망, 지금까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사치품이 뭘까 하고 물어보면 돈이나 물건만을 생각한다.  그런데 진정한 사치품은 바로 시간이다.  아이가 하루하루 자라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며 감격하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직장과 돈벌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놀아줄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자주하지 않는가.  이건 정말 큰 잘못이다.  아이들에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지금 이 순간에 함께해 주는 일이다." (P.159)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불치병으로 죽어가지만 설마 자신의 딸이 그런 병에 걸리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저자는 이 믿을 수 없는 얘기에 오열한다. 그리고 투병을 결심하면서 치료에 괴로워하는 딸과, 주변 아동병동에서 죽어나가는 다른 아이들의 모습에서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끝없는 고통과 투쟁, 저자는 소피아의 생일날마다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수백 개의 풍선을 날려보내면서 독일 전국 각지와 주변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수많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받는다.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의 응원 메시지에 감동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불치병으로 또는 두려움이나 절망과 싸우고 있는 많은 이들과 함께 희망을 안고 딸의 병마와 싸워나간다. 그 후 씩씩하고 당당하게 죽음과 맞서는 소피아의 모습은 독일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희망을 남기게 된다.

소피아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았고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았다. 자신의 인생을 방관하며 살아온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점이 아닌가 싶다.

인생에 귀를 기울이는 법, 생의 한 순간 한 순간을 밀도 있게 사는 법, 생의 순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에게 닥치는 어려움도 두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작은 전사 소피아처럼 말이다.   4년간의 힘겨운 삶을 ’아름다운 소퓽’에 비유했던 네 살배기 소피아의 눈을 통하여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배웠다.  그 어린 꼬마에게서.

"전투는 끝이 났고, 결국 지고 말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미래가 없었다.  소피아가 없는 이 세상을 떠나고만 싶었다.  혹시 내가 숨을 멈추면 소피아가 가는 길을 동행할 수 있을까? 소피아가 다시 숨을 쉴 것만 같았다.  정말 죽은 걸까?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버린 걸까?" (P.211)

책을 다 읽고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음~ 생각을 말아요 지나간 일들은
음 그리워 말아요 떠나갈 님인데
꽃잎은 시들어요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걸 서러워 말아요
음 음~~~~~음~~~~~음~~~~

나는 또 울컥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삶을 통 털어 누군가의 따듯한 위로와 시선 속에서 맘 놓고 펑펑 울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나 주어지는 것일까?
나는 ’어린 전사’ 소피아 덕분에 그동안 억눌렀던 눈물을 맘껏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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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학교 아이들
무사 앗사리드.이브라힘 앗사리드 지음, 임미경 옮김, 전화식 사진 / 고즈윈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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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은 그 사회의 고유문화를 유지, 발전시키고, 아이들이 그 사회의 일원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배워야 할 것이 그리 많지 않았던 원시사회에서는 교육이 비교적 공평했을지는 모르지만,  현대의 교육은 그 전문성과 더불어 사회적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치품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 책의 저자인 '무사 앗사리드'의 또 다른 작품 <사막별 여행자>를 감동적으로 읽었던 나는 부푼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책을 읽었다.  처음엔 그랬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큰 탓이었을까?
나는 이내 실망하였고, 책을 다 읽었을 때는 리뷰를 남길 의욕마저 잃었다.
저자인 무사 앗사리드와 그의 동생 이브라힘이 어려운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배움을 이어갔던 이야기는 이미 <사막별 여행자>에서 읽은 터였고, 책의 후반부에 기록된 "생텍쥐페리 사막학교"의 설립과 학생들의 이야기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나의 독서열을 되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책의 내용이나 편집에 흠이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의 가슴에 남아있는 <사막별 여행자>의 감동이 그만큼 강했던 까닭이다.
영화도 그렇지 않던가.  원작이 좋을수록 이어지는 2탄, 3탄의 후속작이 원작의 감동을 이어가지 못하듯이...  나는 이책을 먼저 읽고 나중에 <사막별 여행자>를 읽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보처리 기술자인 이브라힘이 자신의 부족인 투아레그족의 아이들을 위하여 보장된 고소득을 포기하고 사막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과 어울려 꿈을 키워가는 장면은 그나마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밤에 아내와 아들, 딸과 나란히 앉아 하늘의 별을 바라볼 때마다 삶이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삶에는 모든 것이 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여러 해 동안 이 학교를 위해 싸웠고, 이제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아직 허약한 부분이 있기는 해도 사랑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또한 꿈의 결실이라고 하기에 충분할 만큼 학교는 활기 있고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P.93)

사막의 유목민으로 태어나 지구별의 당당한 일원으로 성장한 무사 앗사리드와 이브라힘 앗사리드.  자신들이 받은 도움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는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넬슨 만델라와 간디를 존경하는 내가 늘 꿈꾸어 온 것은 세상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내가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야 할 그 세상이 내게 뚜렷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태어난 투아레그족 공동체, 나의 작은 사막학교이다.  내가 투아레그족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손에 든 벽돌 한 장을 어딘가에 쌓기 위해 지구를 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P.220)

퇴근 후 나의 숙소에서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하나씩의 상처를 갖고 있다.
때로는 상처의 칼날이 자신을 찌르고, 다른 사람들에게마저 매몰찬 흉기로 다가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휑한 바람이 불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그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저미도록 아프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지금 얼마 남지 않은 기말고사를 대비하여 각자가 부족한 과목을 자습중이다.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나의 숙소는 사막의 태양처럼 뜨겁다.
투아레그족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그들이 사막에 그리는 꿈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사막의 작은 학교의 아이들도 심한 모래바람에 그들의 꿈이 흩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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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클로스의 시계 - 인연은 시간의 선물이다
장준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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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부로 사는 내게 있어,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내느냐 하는 문제는 오래 전부터 고민거리였다.  사실 직장 동료를 늦은 시각까지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눈치가 보이는 것도 그렇고 해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고자 찾던 중 결심하게 된 것이 주변의 아이들을 모아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렇게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한 일이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나는 이제 아이들로부터 ’선생님’소리를 듣는 교사의 신분이다.  처음에는 수강료 ’무료’라는 말에 반신반의 하던 부모님과 학생들로부터 ’혹시 뭔가 다른 것을 요구하지 않을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조금씩 자신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사이가 되었다.
주변의 반응은 냉랭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말과 함께 ’얼마나 하는지 두고 보자’는 사람들까지 온통 부정적 시선만 가득했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업무시간 중 잠시의 짬을 이용하여 수학 정석을 붙들고 있거나, 피곤에 지친 내가 잠시 눈을 붙일 때면 곱지 않은 동료들의 시선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아이들과의 생활은 내게 또 다른 배움의 장이었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보다 독서량도 늘었고, 오래 전에 손을 놓았던 수학 공부도 새로 시작했으니 말이다.  신간 도서에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 보이면 나는 주저 없이 구입해 읽고 아이들에게 일독을 권하였다.

코스닥 상장기업 ’인포뱅크’의 창업자인 장준호님의 저서 < 산타클로스의 시계>가 내 눈에 뜨인 것도 이 책의 부제인 "인연은 시간의 선물이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제의 의미와는 상반된 책의 내용과 질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책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판매 목적으로 출간되었는지 출판사의 의도도 의심스러웠다.  책의 내용은 부모 잘 둔 덕에 어려서부터 고생 한 번 하지 않고 승승장구 하였던 자신과, 미국의 보딩 스쿨(사립 기숙학교)에 보낸 자식들 둘이 스탠포드 대학과 와튼 제롬 피셔에 다니게 되었다는 것과, 회사 설립 초창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승승장구하게 되었다는 자랑과 함께 인포뱅크의 홍보성 멘트까지 잊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스탠포드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하여 삼성 회장비서실에 근무하였던 저자의 화려한 이력에 걸맞게 자신 주변의 인맥을 이니셜이 아닌 실명으로 거론하며 자랑에 열을 올렸다.

"가난에 찌든 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열여덟에 일본 수병으로 항공모함을 타게 됐다고 합니다.(P.247)....해방이 되던 1945년에 경찰이 되셨습니다.(P.248)...아버지는 1968년 지금은 태백시가 된 삼척군 장성읍 경찰서장으로 부임했습니다.(P.248)"

"기석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보냈습니다.  지금은 미국 동부에 있는 태프트 스쿨 12학년에 재학 중인데 2010년 가을에는 미국 대학에 진학할 예정입니다.(P.110)...미국의 사립 기숙학교는 1년 학비와 기숙사비가 4만 달러에 이르고, 이것저것 합하면 아이 하나 1년 교육하는데 6만 달러는 들어갑니다.(P.111)"

"2012년 2월 새로운 실내테마공간의 문이 열립니다.  우리가 짓는 아이쿠어리움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P.218)...2012년 많이들 구경 오시기 바랍니다.(P.221)"

"개개인으로 만나본 일본사람은 선하다는 느낌이 들고, 미국인들은 스스로 인생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대체로 아름답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P.64)...지난 20여 년간 일본을 방문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가장 많은 가르침을 준 사람들은 일본인이라는 것입니다.(P.215)"

누구나 글을 쓰고, 그 글을 책으로 출간할 자유가 있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중에 하나이니까.  그러나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의 입장에서 한번쯤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은 글을 쓰는 작가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의무이기도 하다.  그 의무를 다하지 않으려면 가까운 친인척과 주변의 동료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비매품으로 출간하는 것이 옳다.  나는 이 책을 혹시 아이들이 읽을까 두렵다.  돈이 없어 남들 다 다니는 학원도 다니지 못하여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인 나의 숙소에 모여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책을 읽게 된다면 얼마나 좌절하고, 낙담할 것인가.  나는 그 상상만으로도 서럽다.
열심히 공부하면 자신의 꿈을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말했던 나의 행동이 경솔하고 허황되다고 따진다면 나는 무어라 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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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산티아고 가는 길
세스 노터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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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그야말로 나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고, 내가 읽은 모든 문자가 머릿속에서 떡처럼 엉겨붙었었다.  하나하나의 낱글자가 자모를 갖추고 제자리에 설 때까지, 그리고 그 각각의 글자들이 모여 문장을 이루고 하나의 의미로 되살아나기까지 많은 시간의 사색과 휴식이 필요했음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장편의 소설이나 글자 배열이 촘촘한 철학서는 마치 글자를 정복하려는듯 달려드는 내게 호승심을 부추기는 형국이어서 나는 오직 줄기차게 읽는(그저 단순히 읽는 행위로써의) 일에만 몰두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 나는 언제 그랬냐는듯 독서와 결별했다.
그 기나긴 휴지, 책을 놓고 문자와 결별한 채 사색과 명상, 때로는 공상의 시간만 지속되었다. 차츰 내 머릿속에서 각각의 글자가 자리를 잡고, 뒤섞인 의미가 순서를 정하게 되었다.  독서도 과하면 체한다는 것을 혹독한 경험으로 체득하게 된 셈이다.   나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글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소화력이 떨어진 노인처럼 나는 몇 번이고 곱씹어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것을 비로소 알아가는 것이리라.

세스 노터봄이 지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젊은 시절의 내게는 호승심을 불러일으켰을 듯한 그런 책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과 빽빽한 글자들.
책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로 한숨을 쉬게 할만하다.  책을 싫어하면서 더하여 인내심도 없는 독자라면 쉽게 포기하고 말았을 그런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종교적인 색채의 책은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자주 찾는 순례 코스, 야고보 길을 도보로 여행하며 기록한 순례기가 결코 아니라는 말이다.  독일의 인기스타인 하페 케르켈링의 도보 여행기 <그길에서 나를 만나다>와 비슷한 류의 책을 원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유럽에 매달려 있지만 유럽이 아닌 나라, 그 황량하고 넓은 들판을, 험난한 산악지대를, 메세타 고원을, 그리고 외부의 방문객을 두려워 하는 작은 오솔길을 작가는 느릿느릿 더듬고 있다.

"이것은 순례의 길이기도 하지만 명상의 길이기도 하다.  중간중간 들르는 곳이 많은 데다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 보면 여정은 더디기만 하다.  나는 이중으로 여행을 한다.  하나는 렌트카를 몰고 다니는 여행이고, 하나는 요새와 성과 수도원이, 또 그곳에서 미주친 문서와 전설이 불러일으키는 과거를 누비고 다니는 여행이다." (P. 69)

그에게 여행은 질러가는 길이 아니라 에둘러 가는 길이다.
별 필요도 없어 보이는 상상과, 어느 책에서 읽었던 역사적 사실과, 시간이 멈춘 듯한 어느 농가 마을과, 심지어 시어(詩語)를 떠올리게 하는 지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선은 여정을 벗아나 끝없이 샛길로 흐른다.  작가의 상념의 기저, 그 밑바닥까지 읽어내려가노라면 여정은 마냥 늘어지고, 지치고 허기진 독자가 잠이라도 청할 즈음에 그의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느린 여정의 이면에는 부지런한 기록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을 독자는 까맣게 잊는다.

"날이 어둑해지자 나는 광장으로 산보를 나가지만 광장을 제대로 본 것은 그 다음 날이었다.  나른한 오후, 남자들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시청 위에 걸린 깃발도 축 늘어졌다.  나는 칠레 왕국의 총사령관이었으며 고향 땅을 두 번 다시 밟지 못하고 쿠스코에서 죽은 디에고 데 알마그로의 기념상에 적힌 시를 읽는다." (P.169)

이십일 세기의 현대 문명에서 스페인은 마치 저 멀리 떨어진, 현대인의 손길이 닿지 않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해야 닿을 듯한 역사적 무인도로 느껴진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소설가이며 시인이자 여행작가인 그가 그려내는 스페인은 특별하다.

"마드리드의 2월은 춥다.  춥고 맑다.  내 밑으로 저 아래 누운 도시가 비행기에서 보인다.  돌의 포로가 된 저 풍경은 스페인의 혼을 어느 곳보다도 잘 드러낸다.  그 나라에 도착할 때 유난히 내가슴이 아려 오는 나라가 둘 있다.  스페인하고, 내 나라 네덜라드다." (P.475)

휘적휘적 걷다보니 내 상념의 보따리는 저만치 멀리 떨어져 지나온 어느 발자국에 미아처럼 내려 앉았다.  작가도 그랬을 터.  현대를 사는 내 몸뚱아리가 잰걸음으로 앞서 갈 때, 급할 것 없는 내 사색의 그림자가 멀리서 방향을 잃고 한참을 헤매이다 어느 산길, 외딴 오두막에서 둥지를 틀고 무심한 주인을 온종일 기다리리라.

"나그네는 바닥돌을 딛는 자기 발소리를 듣는다.  탑들과 경이로운 궁전들로 쏟아지는 달빛을 본다.  저 역사의 방벽 너머에는 또 다른 스페인이 있음을 나그네는 안다.  나그네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쩌면 알아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업을지도 모르는 스페인, 나그네의 에움길은 끝났다.  그의 스페인 여행은 막을 내렸다." (P.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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