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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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권을 들고 꼬박 일주일을 읽었다.
보통 책 한 권을 잡으면 하루만에 후다닥 읽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성마른 성격의 나에게는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처럼 가볍게 대할 수 없는 진지함이 텍스트 전체를 관통하는 경우도 그리 흔치 않은 듯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낸 성과이니 마땅히 그래야만 하겠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위대함과 연구진의 인내심에 새삼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다.
인간의 기억과 추측으로 이루어진 심리학 이론이 결코 가볍다거나 오류 투성이라고 폄훼할 생각은 없지만 믿음과 신뢰의 측면에서 이러한 실증적 연구는 그 대상이 비록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결여한다고 평할지라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게 된다.

지금까지 인간의 삶을 조망함에 있어 특정 연령대를 실증적으로 추적하고 관찰하여 어떤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인간의 삶 전반을 전향적으로 추적하고 관찰하는 연구는 막대한 연구비용도 문제려니와 연구원의 인내심과 관찰대상자의 적극적 참여가 관건이다.  저자가 밝히듯 그것은 행운에 가깝다. 
이 책에서 밝히는 관찰 대상자 집단은 1930년대 말에 입학한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그랜트 연구 대상자 - 하버드졸업생 집단)과 보스턴 이너시티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청소년들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전과과 없는 평범한 소년들의 집단(글루엑 연구 대상자 - 이너시티 집단) 그리고 전설적인 천재아 연구인 ’스탠포드 터먼 연구’에서 90명을 선정하였다.

1990년대 말에 크게 유행했던 ’긍정심리학’의 대부로 올라섰던 저자의 연구가 인간의 행복을 결정짓는 총체적 인자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또는 그가 제시하는 행복의 조건들( 고통에 대응하는 성숙한 방어기제,교육, 안정된 결혼 생활, 금연, 금주, 운동, 알맞은 체중)만 충족하면 행복한 노년은 저절로 보장되리라는 믿음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 하는 물음에 그 방향성은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행복한 삶에도 공식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기자 조슈아 울프 솅크의 들어가는 글에서 그는 이렇게 저자를 평하고 있다.

"베일런트의 담담한 고백을 들으면서 마음에 사무치는 교훈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방어기제를 변화시키는 것보다 방어기제를 관찰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오직 인내와 유연함만을 통해서만 가시 돋은 갑옷을 좀 더 부드러운 방어막으로 갈아입을 수 있다.  생각건대, 바로 여기에 행복한 삶의 핵심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따라가거나 문제를 피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고통과 전제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의 열쇠라는 생각이 든다." (P.28)
  
저자는 행복한 노년의 조건에 덧붙여 미래지향성(미래의 예견과 희망), 감사와 관용,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사랑과 이해),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일을 해나가려고 노력하는 자세를 꼽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느꼈던 점은 복잡했다.
한 권의 소설이 아닌 인간의 전 생애를 파노라마를 펼쳐보듯 논픽션으로 접할 수 있었다는 흥분과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에 대한 수정(이를테면 행복한 노년과 종교는 그다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과 불행한 청소년기를 보낸 것이 행복한 노년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 등)이 더해졌으며, 인간의 삶이 자연의 섭리에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시절에 배웠던 암석의 순환 과정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퇴적물이 쌓여 단단해지면 안석이 되고 이것이 지구 내부의 열과 압력을 받아 성질이 변하고 다시 마그마로 녹아 지표(地表)로 분출되었다가 풍화와 침식 및 운반을 거쳐 다시 암석으로 변하는 ...
어쩌면 우리가 성인에 이르는 시기는 자신의 목표나 욕심을 향해 단단해지는 과정일 것이다.  이 시기에는 누구나 욕심을 부리는 것이 당연하며 그래야 할 필요성도 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나이가 들고 세파에 씻기면 서서히 부서져 다음 세대를 위한 밑거름으로 잘게 부숴져야만 한다.  부드러운 흙 알갱이와도 같이 부드럽게 변한 모습이 노년의 아름다움 아니겠는가?
다음 세대의 씨앗이 자신을 거름 삼아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어야 마땅하며, 그것이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행복한 노년을 맞는 비결이 될 것이다. 
늙어간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끝까지 자신의 것을 움켜 쥐려는 것은 얼마나 추하고 안타까운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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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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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리뷰를 씀에 앞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기 블로거도 아니고,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최소한 나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찌 생각하든 이런 책을 읽으면 전보다 조금은 더 솔직해져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곤 한다.

이야기 "하나"
내게는 올해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아들이 한 명 있다.
곧 생일이 다가오는데 아들 녀석은 받고 싶은 선물을 여즉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평일에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까닭에 나는 매일 저녁에 한 번씩 전화 통화를 하게 되는데, 어제는 아들 녀석이 생일 선물을 고르는 기준을 적었다며 들려주었다.  
그것을 굳이 종이에 적은 이유는 성당과 영어 학원을 같이 다니는 여자 친구와 상의하기 위해서란다.  그 기준은 이랬다.  
1.서점에서 살 수 있나?  
2.인터넷에서 살 수 있나?(아들이 불러준 것을 그대로 옮기니 어법에 안 맞는다)  
3.탐험(주일 미사 시간에 아들 녀석은 여자 친구와 성당 주변을 탐험한다)에 얼마나 이익을 주나? 
4.무슨 용도인가? 의 네 가지 기준에 의해 풍력 발전기, 친환경 건전지, 클린 워터, 쏠라 사이언스, 자가 발전기, 감자 시계, 전자석 발전기 중 하나를 고를 예정이란다.  
아들 녀석은 성당을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다.  나와 아내, 할아버지와 할머니 모두 천주교 신자인지라 더 이른 나이에 세례를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종교 문제만큼은 아들의 선택에 맡기고 싶었다.  
아들이 성장하여 다른 종교를 선택하든 아니면 비종교인으로 남든 그것은 아들의 몫이다.  아들은 그렇게 성당을 그저 여자 친구와 놀기 위해 다닌다.
종교가 필요한 나이가 되면 아들은 선물을 고르듯 그 기준을 세워 종교를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  그것은 전적으로 아들의 몫이며 아들의 생각에 달려 있다.

이야기 "둘"
나는 직장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요, 때로는 내 돈이 들어가는 일인데 나는 왜 그 일을 하려고 작정했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고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경쟁과 서열을 부추김으로써 그들의 지적 갈망은 극대화되고 더불어 나에 대한 의존도 강화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는 나는 힘들이지 않고 권위를 얻는다.  
그럼에도 나는 사회봉사라는 포장으로 나 자신을 미화한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윌리엄 S. 버로스의 소설 <네이키드 런치>에서 마약 중개상이 마약 구매자를 중독의 상태로 이끄는 방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마약 구매자에게 마약의 양을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중독에 이르게 한 후, 그 양을 점차 줄이면 그들의 몸과 마음은 중개상의 소유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득권의 지배 방식도 동일하다.  어려서부터 돈에 대한 의존성을 중독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면 그들의 몸과 마음을 쉽게 지배할 수 있고,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자신들의 속셈을 숨길 수 있다.  더구나 어려서부터 돈의 필요성과 돈의 효용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품어온 아이들은 마약보다 더 지독한 중독에 빠진다.
결국 그들은 돈을 지배하기보다는 돈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쉽게 종속된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속성도 모른 채 단순히 가난을 피하기 위해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속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부를 이룬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돈의 달콤함을 가르치지 않는다.  실체도 모르고 집착하는 행위는 노예와 같은 종속만 있을뿐이지 실제적 지배는 일어나지 않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난한 아이일수록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갖고 싶은 돈이 건강 악화로 쉽게 소비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탓이다.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운동을 강조하고 있지만 자발적으로 하는 아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소중한 것, 즉 자신의 건강과 가족간의 사랑, 이웃간의 배려 등이 기반이 되지 않고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결코 이룰 수 없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불행하게도 교육이라는 수단은 충실한 자본주의 노예를 양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나는 내 아들에게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려고 노력하면서도 정작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노력을 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중 잣대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에게 나의 위선을 고백할 용기는 없지만 내 양심은 나를 모질게 꾸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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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7-12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해지지 마 약해지지 마
시바타 도요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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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것일까?  어떤 목적이나 지향하는 목표도 없이, 책을 읽고 또 자신의 생각을 가끔씩 끄적거리게 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의 행동이 항상 어떤 목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반복되는 행동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이유가 따라붙게 되지 않던가.  그래야 납득할 수 있으니까.

아내와 결혼하기 전 연애시절에 아내가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곤 했었다.  만남이 그저 좋았고, 특별히 재밌는 일로 소일하는 것도 아닌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었다.  그럼에도 헤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과 ’이래도 되나?’하는 반성이 발길을 무겁게 하곤 했었다.  본능과 같은 남녀의 만남도 이럴진대, 그리고 연애의 기간도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그리 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기에 비하면 읽고 쓰는 행위는 얼마나 길고 밋밋한 일인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멈추지 않는 것일까?

시집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랫만의 일이다.
그것도 내 나라 시인의 작품이 아닌 타국 시인의 글을...
내가 이 책을 읽어야겠다 마음먹은 것은 저자의 이력 때문이었다.
나이 아흔을 넘겨 시를 쓰기 시작했고, 곧 백 살을 맞는 나이에 시집을 출간했다는 특별한 이력.  이 책을 다 읽으면 왜 글을 쓰는가? 하는 의문의 답을 찾을 것만 같았다.
허리가 아파서 취미였던 일본무용을 할 수 없게 되어 낙담한 저자를 위로하기 위해, 아들이 글쓰기를 권했고 산케이 신문의 <아침의 시>에 입선했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는 작가.



90세를 넘긴 뒤
시를 쓰게 되면서 
하루 하루가
보람있습니다
몸은 야위어
홀쭉해졌지만
눈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볼 수 있고
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고
입은 말이죠
"달변이십니다"
"야무지시네요"
모두가 
칭찬해 줍니다
그 말이 기뻐서
다시 힘낼 수 있어요, 나

글을 쓴다는 것.
그 결과가 비록 잘된 것이든 아니든 글쓰기의 어떤 특별한 효과를 나는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운명이라는 굴레에 씌어 원했든 그렇지 않든 살면서 어쩔 수 없이 범한 죄를 비로소 인식하고,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 자책하며 한없이 추락할 때, 우리를 붙잡아 다시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글쓰기의 경이로움이다.  그것은 단지 행위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다.  신은 원죄의 모순 뒤에 고통을 딛고 일어설 글쓰기의 치유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1세기를 살아온 한 여인의 생생한 고백에 잔잔한 감동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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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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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내 인생
단지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았을 뿐인데 몇 모금의 외로움과 한 줌의 슬픔, 그리고 아련한 추억의 편린이 내 마음과 몸의 살갗에 작은 떨림으로 다가온다.
적당히 외로울 것, 적당히 슬플 것, 그리고 적당히 부족할 것.

사진과 글이 번갈아 나오는 책의 배열에 나는 잠시 길을 잃고 흔들린다.
그리고, 오래 전에 길들여진 익숙함을 선택한다.  
나는 언제나 익숙함과 안전함을 동의어로 착각한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글을 먼저 읽고 사진은 나중에 보면 되겠다며 안심한다.
시인이며 여행작가인 저자의 글은 바람처럼 허허롭다.
부석사에서, 내소사에서, 또는 소쇄원에서, 때로는 바람 몰아치는 우도에서...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그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동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는 우리의 믿음처럼 여행은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픽션이 내 팍팍한 현실을 한 발 물러서게 한다. 
책에는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처럼, 또는 자신의 잔존일수를 알 수 없듯이 우리는 지나온 삶을 세며 우수에 젖을 시간이 없다.  또는 무의미함.
사람은 누구나 홀로 외롭고, 까닭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홧김에라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돌은 던지지 말 것, 들을 수 없는 바람을 향해 거친 욕설로 소리치지 말 것, 그리고 우아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것.

"남은 세월,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진짜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로'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단 말이다.
살기 위해 음악을 들어야 하는 날들도 있단 말이다.
내가 제라늄 화분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이유가
못 견디게 힘겹고 외롭고 슬퍼서라는 사실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면 좋겠다."

여행자의 시선이 멋진 풍광으로 흐를지라도, 흐드러진 꽃잎에 머물지라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밤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다락방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한나절 울고 나면 '이제 살아야 겠다'는 가슴 속 역설이 메아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억지로라도 울음이 필요한 날엔 먼 시선으로 이 책을 하염없이 응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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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을 읽고 리뷰를 작성해 주세요
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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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내가 ’박칼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남자의 지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평소에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내가 몇 주를 연속으로 시청했던 유일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의 황금 시간대에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시간 소비(TV 시청)’에 나의 몸과 마음을 묶어 둔 것은 출연진이나 어떤 무대장치가 결코 아니었다.  서구적인 외모의 한 여인.  그녀의 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그녀만의 자력장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녀와 출연진들이 만든 감동의 무대는 내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내밀한 삶이 궁금했던 것은 참으로 오랫만의 일이다.
나는 그렇게 무심하다.  사람에게도, 주변의 사건이나 풍경에도...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특이하거나 문장이나 수사가 화려한 수필집도 아닌, 오히려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책이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읽어낼 수 있게 만든 것도 알 수 없는 그녀의 매력 때문이리라.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일과 가족,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에서의 추억 등을 빼곡히 적고 있다.
우문이지만 나 스스로 ’책은 왜 읽는가?’하고 자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책만큼 미련이 남지 않는 일도 드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이나 물건 또는 어떤 풍경 등 실재하는 어떤 것과의 만남은 항상 미련이나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책과의 만남은 내가 그 책을 다 읽어냄으로써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책이든 마음에 탁한 앙금을 남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책도 그랬다.  

저자의 에피소드에는 유난히 만남과 여행이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저자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도전 정신이 강한 저자가 여행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만남과 여행의 상관관계를 생각했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그 궁금증이 지속되었고, 종국에 나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여행이 내 몸의 감각기관이 낯선 환경이나 자연과 만나는 것이라면 만남은 내 영혼이 낯선 영혼의 세계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이라고.
여행은 만남을 통해 완성되고, 만남은 여행 없이도 스스로 빛난다는 소박한 문구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하고자 한다.  저자도, 나도 남은 삶의 여정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의 흥분처럼 한껏 설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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