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소년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
다케우치 마코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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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Bicycle, bicycle, bicycle
 I want to ride my bicycle, bicycle, bicycle
 I want to ride my bicycle
 I want to ride my bike
 I want to ride my bicycle
 I want to ride it where I like

                                                                           퀸의 바이시클 레이스중

 

내가 주목하는 번역가 권영주씨의 근간번역작품이어서, 선듯, 아무생각 없이 구입했다. 권영주씨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온다 리쿠의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없겠지.  온다 리쿠의 작품 대부분을 권영주씨가 번역했으니깐. 일단 문장의 매끄러움은 말할 것도 없고 공감력 가는 언어의 선택이 탁월하다고 해야할까나. 외국 작품이 쉽게 읽힌다는 것은 작품자체의 재미있는 흡입력이 그 어떤 것보다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일단 번역을 잘 해서 그런거 아닌가. 들쑥날쑥한 언어의 선택이라든지, 딱부러지지 못한 흐리멍텅한 문장은 딱 질색. 게다가 요즘 일본 작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작가후기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자그만치 한달반동안 감기로 기침을 콜록콜록하는 이유는 아마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 탓일게다. 자동차 운전을 못하니, 단시간안에 내가 가고 싶은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를 준 것은 두 발이 아니고 자전거였다. 걸어다녔을 때는 못 느꼈던 바람의 흐름, 속도, 바람을 가로지르는 느낌이나 전에 못 느꼈던 지면의 상태(상향 또는 하향)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면서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했다. 아마 자동차를 운전하면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겠지. 자전거가 주는 매력은 길을 떠나는 자유로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람의 자유까지도 느낄 수 있어서, 이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저기 누비니, 감기가 제대로 날리가 있나.  어디든 가고 싶어. 바람을 불면 부는 곳 어디든지 그 매서운 바람 맞아가면서 말이야. 

이 작품은 청춘성장소설이라고 자신을 명하지만, 딱히 자전거가 매개가 된 성장소설이라고 정의 내릴 순 없다. 단지  자전거로 좋아하고, 무거운 쪽보다는 가벼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 하다. 성장소설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이유는 화자인 주인공이  청소년시절부터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되어 자신의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고 아들과 함께 할 자전거 레이스에 동참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자의 시선을 확 사로잡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쇼헤이의 친구 소타가 대학친구 쿠르베와 만든 핫카이 런(나중에 핫카이 랠리고 명칭이 변경된다)이라는 하치오지에서 동해까지 자전거 레이스를 만들고 쇼헤이가 그들의 랠리에 합류하면서, 쇼헤이가 관점에서 본 이야기들이다. 쇼헤이 중심으로 자신의 일상과 랠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지만 뮌가 확실하게 와 닿지 않는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작가 후기를 읽고 이야기의 중심무게가 왜 쇼헤이 한명인지를 알게 되었다. 여기 거론되는 중심인물중 하나는 소타인데 말이야. 

이 작품은 원래 2년에 걸쳐 휴대전화로 연재된 내용을 묶어 2004년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쇼헤이와 소타의 자전거를 매개로한 25년간의 세월을 그렸는데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 대폭 압축해서 발간되어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에 흐름에 큰 무리는 없지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쇼헤이와 소타의 관계, 그리고 소타를 중심으로 한 핵심적인 이야기가 없어, 뭔가 빠진 것 같은 개운치 않다라는 느낌이 들 것이다.  달리 말하면 소타의 삶 또한 궁금하단 말씀.

일본소설은 흡입력도 있고 재미도 있으며 시간떼우기에 안성만춤이다. 하루종일 아이들하고 지지고 볶는  아줌마인 나한테는 딱 맞는 맞춤소설이라고나할까나. 근데 난 그네들 소설 읽으면, 정말이지 글을 읽는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미스터리 작가든, 성장소설 작가든, 로맨스 작가든 어느 쟝르의 일본 소설을 읽어도 영상적이다, 글이 화면처럼 분할되어 있다라는 느낌은 받지 않는다. 여타의 서구 작가들이 영화를 염두해 둔 것처럼 이야기를 이끌어 내며 미니시리즈나 영화같은 이야기 구조를 갖고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영상적으로 이끌어 내지만, 일본작가들한테서는 그런 것 감지할 수가 없다. 글솜씨가 훌륭하던 평이하든지 간에, 여하튼 내가 글을 읽.는.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번 겨울에 뜨근한 부엌 바닥(보일러 틀면 부엌부터 따스해지더라) 에 앉아, 일본 소설만 줄창 일본소설만 읽는 이유는 바로 읽는다라는 느낌이 확연히 들어서이다.  소설이 영상적 글쓰기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지만, 일단 내가  드라마 안 보고 책을 선택한 이유는 글을 읽고 싶어서지 영상적으로 상상하고 싶어서가 아니거든. 문체가 딱딱하든 건조하든 느끼하든  감정이 풍부하든 적절하든지간에 글을 읽는다라는 생각이 들어지 글을 읽으면서까지 영상적으로 상상하기 싫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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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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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이던가. 여름이 되기전에, 딸아이랑 같이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 학교 근처 아파트주변에서 서성이다가 딸아이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아이들을 모집하기 위하여 연필을 나누어주던 씽크빅인가 뭔가 하는 학습지 교사가 전해주던 연필을 받아 예의상 잠깐 얘기를 나누고 집으로 가려고 뒤돌아 집으로 가려는 순간, 딸아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허둥지둥 주변을 훑어봐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머리가 새하애지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아들애한테 그 자리에서 가만이 있으라고 하고는 아파트단지 안을 아이를 찾아 헤매고 다녔다. 아무리 큰 소리로 딸아이 이름을 불러보아도 울리는 것은 내 목소리뿐.. 엄마, 나 여깄어,하는 아이의 장난끼 넘치는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숨바꼭질 놀이였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 넓은 아파트를 30분동안 헤매는 동안, 미친 듯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아이를 못 찾으면 어떻하나하는 생각에 울음이 나왔다. 아이와 함께 한 순간순간이 머리속에서 휙휙 지나가면서 가슴이 터져 버리고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눈물로 시야가 보이지 않고 울부짖을 때, 울고 있는 딸아이를 발견하였다. 딸아이를 본 순간, 마음 속에선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쳤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은 이눔의 기집애야, 어디 갔었어라며 소리를 꿱 질렀버렸다. 아이를 보자마자 화가 솟구쳐 오른 것이다. 본심은 다행이었을지 몰라도 한순간 애 태운, 아이의 지멋대로한 한 행동에 대한 감정이 복받혀 오른 것이었다.

울고 있는 아이를 동네 요쿠르트 아줌마가 발견하고 집에 데려다 주려고 달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줌마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울고 있는 아이를 업고 큰 애한테 갔다. 아이를 업고 큰 애가 있는 아파트 후문까지 걸어가면서, 천만다행인 이 순간을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얼마 되지도 않았던 30분도 피가 마르는데, 아이를 잃고 사는 사람들은 아이의 생사여부로 인해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이의 죽음만으로도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데,  실종으로 그 아이의 생사여부조차 모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아이가 살아있다는 실날같은 희망만이 그들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될 수 있을까.  난 아이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더욱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져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길거리에서 나를 찾아 헤메는 것은 아닌지, 혹시나 몹쓸 짓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따스한 밥은 먹고 사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피가 마르고 속이 타들어가는 생활을 평생동안 계속할 수 밖에 없는 부모인 그들을 생각하면 나 또한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차라리 아이의 죽음은 매듭을 짓기라도 하지만 아이의 실종은 언제나 이어져야 하니깐.  

뮈소의 이번 작품은 재미면에서 대박이라는 점에서는 인정하지만, 주제와 이야기의 결말은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힘들었다. 제 3의 관점에서 읽어야하는데, 엄마의 입장에서 읽어서 그런가.

만약에 나에게 이 책의 주인공 마크와 같은 일이 생긴다면, 난 결코 극복하지 못 할 것이다. 내가 죄책감과 고통 그리고 끝을 모르는 절망 속에서 나날을 보내질데, 어찌 아이를 데려간 사람을 용서할 수 있으리오. 난 절대로 그들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아이와 보낸 행복했던 추억의 날들이 있기에 더욱더 그들을 용서하지 못하리라. 어쩌면 내가 죽는 날, 그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있고 극복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ps- 기욤, 당신 무늬만 프랑스인지. 미국 영화와 팝음식을 넘 많이 보고 들었어. 이제 프랑스적인 글쓰기는 볼 수 없는 거야. 난 무슨 미국작가 쓴 소설 읽는 줄 알았다니깐. 흡입력은 만땅이고 구성은 영화적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니깐. 이게 세계화야. 그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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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4-27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욤 책 한권 읽고 나서 이책이 왜 베스트셀러인지 이해불가 였어요. 한국에서만 잘팔리는 기이한 현상인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0-04-28 14:48   좋아요 0 | URL
저도요. 이 책 이외에는 기욤 절대로 읽지 않아요. 프랑스아마존도 들어가 봤는데 인기는 제법 있는 거 같던데, 영어로 쓰면 미국대중문학 작가인 줄 알거에요^^
 
작은 전나무 - 안데르센 명작 동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이상헌 옮김, 마르크 부타방 그림 / 큰북작은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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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이 샤롤 페로나 그림형제의 동화와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세요. 음...금방 떠오르지 않는다구요. 혹 그럼 생각해보신 적은 있나요. 만약에 금방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질문을 달리 해볼께요. 이들 세 작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 바보야, 세계적인 유명한 동화작가들이잖아. 딩동댕동.  

일단 갈라보죠. 그들의 차이점을 말이죠. 샤롤 페로나 그림 형제가 낸 작품집은 사람들 사이에서 입으로 입으로 전해내려 온 구전 설화나 민담을 수집해서 낸 것이지만 안데르센의 작품의 경우는, 순수창작물이라는 점이 페로와 그림형제의 동화를 갈라 놓는 가장 큰 차이점일 것입니다. 우리가 안데르센을 페로나 그림형제와 묶어 놓는 경우는 그의 작품들이 100년 이상 입으로, 책으로 한 세대와 다음세대를 이어주고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전동화작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흔한 말로 공전의 히트를 한 부작용이죠. 말이 공전의 히트지 안데르센만큼 자신의 창작물이 전 세계적으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읽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세익스피어가 있다구요. 정말 그럴까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안데르센의 이야기가 몇 개나 될까요.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미운 오리 새끼, 눈의 여왕 또또또 뭐 있을까요. 130여개나 되는 그의 작품을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몇 개의 작품만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며 그를 동화의 절대강자로 알고 있는 것뿐이죠. 

저도 솔직히 그의 작품을 완전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는 그림책분야에 흥미가 있고 좋아하기 때문에 안데르센을 원작으로 하는 그림책이 발간될 때마다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의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저력은 그의 이야기가 지닌 보편성도 한 몫 했겠지만, 20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서, 그림책 분야가 어느 시대보다도 더욱더 활발해지면서, 자기가 어렸을 때 듣던 안데르센 이야기를 자신의 터치로 그림책을 만들어 내면서 안데르센은 더욱더 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동화작가가 된 것이겠죠. 어쩜 이 그림책은 다음 세대와 이어주고 전 세대와 다음 세대의 공통 분모가 되겠죠. 

안데르센의 작품중에서 덜 알려진 <눈의 여왕>이라고 알고 계신가요.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그림책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발간된 눈의여왕은 웅진 주니어에서 나온 키릴 첼루슈킨과 어린이 작가정신에서 나온 P.J. 린치의 작품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발간되지는 않았지만  Vladylav Yeko가 그린 <눈의 여왕>이 있습니다. 아마 이 세명의 그림작가는 어린 시절의 누군가로부터, 아니면 책에서 눈의 여왕을 듣거나 읽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작가들은 성인이 되서 자신의 터치로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재해석함으로써 각기 다른 눈의 여왕이 탄생함과 동시에 이 책을 읽은 어린독자는 또한 성인이 되어 어린시절에 본 이들 작가가 그린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을 다시 자기 스타일로 해석함으로써, 매체가 무엇이든지간에 안데르센의 이야기는 후대로 영원히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끝나지 않겠죠.  

(여커라고 읽어야하나요. 그의 눈의 여왕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눈의 여왕이 두권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섬세하고 화려한 일러스트에 반해 구입하게 되었지요)

<작은 전나무>의 경우, 몇몇의 작가들이 그림책으로 내 놓긴 했지만 그다지 유명한 작품은 아닙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안데르센의 <작은 전나무>가 그림책으로 나온 경우는 이 작품 마르크 부타방의 그림이 유일무이한 버젼입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안데르센의 동화집으로 묶여 있는 경우는 있지만 그림책으로는 아예 없습니다. 일단 글밥이 많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면 읽을 수 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의 10살난 아들하고 이 책 읽었는데, 아들은 현재 가치의 소중함을 모르고 다른 세계를 동경하다 한 줌의 재로 남겨진 전나무이야기의 의미를 쉽게 받아 들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기사 인생 10년 산 놈이 현재를 소중히 여겨라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안데르센할어버지의 말을 제대로 알아 들을 턱이 없지요. 한번 더 제가 읽어 주었는데 막판에 다 읽고 엄마, 나 무슨 말인지 진짜 잘 모르겠어,라고 하더라구요. 안데르센의 동화는 끝이 좀 아린, 묘한 씁쓸함과 아이러니가 강한데 이 작품도 현실의 행복에 만족하지 못한 전나무의 비참한 최후라는 점에서, 결코 해피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훈적이라면 교훈적이지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생이란 이런 것이란다,라는 어느 정도의 사회경험과 나이에 이르러서야 깨달을 수 있는 인생의 도를 10살짜리 아이가 금방 알아채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현재 지금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미래는 현재의 결과물이니깐. 

부타방의 그림의 색채는 중간톤으로 화려하거나 섬세기보다는 소박하다는 느낌이 들고 그림의 라인은 가늘어 여리여리합니다. 겉표지의 눈 내린 나무가지를 그린 그림을 보면 아시겠지만 전체적으로 싸한 파스스름한 차가운 겨울이라기보다는 실내에서 바라보는 겨울 풍경처럼 따스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크리스마스쯤에서 아이들하고 뜨근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읽어주거나 읽으면, 집안 분위기가 절로 따스해질 정도입니다.  

이 부타방의 <작은 전나무>를 읽고 나서, 언젠가는 이 부타방의 그림을 능가하는 <작은 전나무>의 다른 버젼이 나오겠지요. 그게 우리나라의 작가였으면 합니다. 비록 원작이 안데르센이긴 하지만 그림은 우리나라 작가가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작품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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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된다는 것 - 유명 작가들의 별난 소년 시절 이야기
존 셰르카 엮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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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에서 풍기는 남자가 된다는 것의 어감이 동네 똘마니 불량배들을 만난 것처럼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경멸을 자아내, 이 책 살까말까 고민 좀 했었다. 아들을 키우는 입장이기는 하지만, 난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처럼 사내는 이래야된다라고 앙팡지게 아들에게 주입하거나 몰아부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게 다 책을 읽은 죄라면 죄 아니겠는가. 살면서 책하고는 담 쌓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는 남자가 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어야하는 것은 당연지사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책 깨나 읽었다는 나는 아들에게 중성적인 성향을 요구하고 사내라는 말조차 거부감이 드니 말이다.  

예전에 샬롯 졸로트의 <윌리엄의 인형>이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는데, 윌리엄은 공놀이을 하는 것보다는 인형을 갖고 노는 것을 좋아 하는 사내아이다. 게이성향이 드러난다고 할까나. 당연히 윌리엄의 아빠로서는 심히 못마땅할 수 밖에. 그는 인형을 갖고 노는 윌리엄을 윽박질러 사내애처럼 키우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그 아이 성향이 있는데 아버지 뜻대로 되간. 아버지의 강압에 못 이겨 윌리엄은 인형을 갖고 놀지 못 하게 되자, 슬픔을 느낀다. 그러자 윌리엄의 할머니가 윌리엄의 아버지를 설득하고 나선다. 어차피 아이가 커서 아버지가 되면, 아기를 돌봐야하지 않겠냐고. 윌리엄이 지금 하는 인형놀이는 나중에 아버지가 되긴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할머니가 윌리엄의 행동을 정당화하면서 끝나는 그림책이었는데, 몇 년 전에 이 책 읽었을 때, 그 거부감은 실로 말할 수 없었다. 당시 우리 아들애가 5살 무렵이었는데, 그 때만해도 남자아이에게 이런 계집애같은 행위나 샌님같은 행동은, 아무리 유명그림책이지만 받아들여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근게 이게 웬걸! 지금은 남자가 된다는 것이라는 책제목에 반감이 슬면시 생기니, 이게 뭔 조화여. 학습효과의 성공적인 결과라고 해야하나. 일단 서점에서 책소개를 에는 미국 유명 글쟁이들이 대거 참가하여 쓴 잡문성격이 강한 글이어서 읽어 볼 만 한 것 같았고, 현재 미국에서 잘나가는 작가가 누군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그림책 작가들이 글을 쓴 거라서 일단 구입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난 토요일에 받아 보았는데, 이 책 받고 그 날 하루만에 다 읽어치웠다. 존 셰스카의 주도하에 현재 미국내에서 어느 정도 자리잡은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 편집장 그리고 작가들이 남자가 된다는 것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형식에 구애됨 없이 쓴 글들이다. 제목만큼 남자다움을 선언한 글은 대런 샌의 사나이 선언문 정도이다.대부분 자신의 요절복통 어린 시절의 회고담인데 작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재미와 감동 그리고 여운을 남겨준다. 게중에는 성의 없는 글이 한 두개 보이기는 하지만 현재 미국 내 미국그림책 작가들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하는 필독책이다. 대체로 그림책 작가들은 토크쇼에 초대되는 법이 없으니깐, 이렇게 책으로 밖에 그들에 대한 어린시절의 정보라든가 에피소들 알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한국땅에 앉아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것은 우습고 미국내 그림책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는 잘 모르지만, 그네들의 책이 한권 한권씩 쌓이면서 드는 생각은 미국내 그림책 작가들이 서로 간의 친분 관계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여타의 다른 분야 보다도 확실하고 공동작업등 서로 주고 받은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림책 시장이 워낙 파워을 형성할 만한 세력이 아니어서 눈에 안 뜨는 것 뿐이지, 그림책이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서로간의 이해와 친화력이 그들을 강력하게 묶어놓은 것 같다. 그래서 드는 생각. 존 셰스카와 친한 레인 스미스는 왜 빠진 거지.  

01소년, 남자가 되다, 02맞아, 우리 땐 누구나 그래, 03아빠와 아들만의 이야기, 04상상력이 우릴 구원할거야, 05우릴 미치게 했던 것들 그리고 06꿈은 이렇게 시작됐지 6개의 소제목으로 나눠 작가들이 나름대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어린시절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것. 걸죽한 입담의 소유자 존 셰스카는 다섯형제중 둘째로 자랐으며 <안돼, 데이빗>의 작가 데이빗 섀논은 자신의 작품의 탄생배경을 이야기하고, 우리 딸애가 좋아하는 그림책 <거미와 파리>의 토니 디터리치의 그림책 작가가 된 상상력의 근원지를 이야기하고, 학교 다닐때 부터 반항적인 대니얼 핸들러 등 그림책 작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 만하고 대체로 글들이 재밌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놓기 싫어진다. 이 책에 나온 작가들중 아는 사람은 한 1/3정도. 그 밖의 사람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대표작들이 따로 소개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가장 인상적으로 읽었던 글은 잔잔한 감동을 준 데이빗 클래스의 <울아빠>였는데,  독자인 나에게 묘한 여운을 남겨놓을 정도로 작가가 진심으로 이 글을 썼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ps- 미국애들은 운동에 미쳐, 책이라면 안 읽을 것 같은 분위기인데 듣도 보도 못한 작가들의 글을 보면 한결같이 탄탄한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우리네가 어릴 때부터 논술이네 전집이니 뭐 열심히 시키고 사다 받치는 거에 비하면 펄프픽션이나 잡지 나부랭이나 읽은 애네들은 왜 이렇게 글을 잘 쓰고 자신만의 문장이 있는지 모르겠다. 궁금해. 궁금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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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8-01-23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오는 책들 보면 로알드 달과 퀜틴 블레이크처럼 존 세스카도 레인 스미스랑 짝궁(?)인가 봐요. ^^

기억의집 2008-01-23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아영엄마님, 반갑습니다^^*
존 세스카 그림책이나 레인 스미스 그림책보면 둘이 친한 것 같던데요. 책을 헌사할 때 누구누구에게 할때 마다 서로에게 헌사한 것을 보고 그리 짐작할 뿐입니다. ㅎㅎㅎ
저야 아영엄마님의 독서 편력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안돼, 데이빗! 지경사 데이빗 시리즈
데이빗 섀논 글 그림 / 지경사 / 199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니 우째 내 속을 훌러덩 뒤집어 넣능교

 네 니한테 그 과자 꺼내 먹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엉!

 니가 나한테 과자달라고 하몬 과자 안 주건나

 아까붜라. 이 깨진 그릇 니 어떡할끼여

 

 몸 씻는데 물은 왜 이리 철철 틀어놓능교.

 수도물 값 니가 내나.

 어딜 고추바람으로 나가나,

 이 눔의 시끼, 이리 못 온나.

 내 이제 동네 창피해서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니나

 

 좀 조용히 해라 안 칸나.

 밑의 썽질 드러분 할베 올라올대이

 내 이제 그 양반 구질구질하 레퍼토리

 듣고 싶지도 않타

 

 집에서 야구 하지 말라고 했쩨

 집이 놀이터고?

 썩 나가서 놀지 못하건나.

 

 와장창장~

 

 아이고야

 내 몬 살것다.

 네 니한테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나 

 니 귓구녕은 장식품으로 달렸지

 우찌 내 말을 거지씨부랑이 말처럼

 안 듣는기여.

 

 내가 니한테 공부를 하라고 잔소리를 하나.

 티비 본다고 뭐라카나

 가슴에 손 얹고 말 좀 해보그래이

  

 내 니한테 암 소리도 안하는 기다

 저기 저 갱냄 아줌씨  자식들 봐봐라

 개네들 아침 몇시에 나가 저녁 몇 시에 들어오는지

 니 양심이란 게 있으면 말 좀 해 보그라.

 

 며칠전부터 일기랑 수학 숙제는

 해 놓고 놀으라고 했제.

 말했나 안 했나.

 니 자꾸 이러면

 내 가만 안 있을기라.

 이눔의 자슥

 뭘 잘 했다고 엄마를 째려보노.

 내 틀린 말 했나

 학생이 공부 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야

 니 아무래도

 몇 대 맞아봐야

 정신 차리겠구만

 아이구

 진짜로 니가 밉다. 미워!

 

 ................................

 

 

 하지만 어쩌것노

 니 내 배 안파서 난 짜식인걸

 내 이리 말해도

 내 가슴 한 귀탱이엔

 니를 향한 사랑이

 언제나

 늘

 비어있대이

 

 하지만 어떨 때는 진짜 밉대이.................

 

얌전하기만 한 우리 아이도 한 때 데이빗 같이 저지렛만 치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이 지나, 아이가 자라면서 통제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 땐 어질러진 방만 치우면 됐지만 지금은 가슴 속이 꽉 막힌 게 답답하다.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아야지하고 마음 속으로 작정하지만, 말 좀 잘 듣고 공부도 잘 했으며 더 바랄 것이 없겠건만. 언제나 내 맘 속의 바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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