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고 카브레 2 - 영화와 마술의 세계로!, 2008년 칼데콧 수상작
브라이언 셀즈닉 글.그림, 이은정 옮김 / 꿈소담이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사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조르쥬 멜리에스의 흑백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쥬라고 할 수 있는, 브라이언 셀즈닉의 그림책은 아마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묘한 흥분으로 전율감을 느꼈을 법한 실험적이고 프로그레시브한 그림책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시큰둥^^*)

지금까지 나온 그림책 중에서 가장 두꺼운, 총 550여 페이지에 걸쳐서 그린 그림은 30년대 파리와 인물들을 그리기 위하여 총천연색의 색을 선택하기보다는 흑백무성영화시대에 걸맞게 흑백의 톤으로 처리했고, 롱 숏과 클로즈 업이라는 영화기법을 사용하여, 아주 혁식적이고 실험적으로 그려졌다. 그림은 이야기를 뒷받침하기 위한 보조적인 일러스트라기보다는 그림자체만으로 독립적으로 글과 이야기가 대등하게 맞물려 진행된다. 

소설이라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그림책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아마도 21세기의 새로운 형식의 선구적인 그림책의 탄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이언 셀즈닉은 <공룡을 사랑한 할아버지>라는 책을 통해 알았는데, 그렇게 매력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작가였다. 그냥 여느 작가들처럼 그림 잘 그리는 작가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큰 일을 낼 줄이야. 솔직히 칼데콧 상타기 전에는 이 책 관심조차 없었다가, 칼데콧상이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에 돌아갔다는 글을 읽고 부랴부랴 검색해서 구입했던 것이다. 오호라, 책을 받고 보니 그의 멜리에즈에 대한 오마쥬에 흥분했고, 칼데콧상 위원들의 작품의 진면목을 볼 줄 아는 안목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브라이언 셀즈닉은 어렸을 때, 레미 찰립의 Fortunately와 Thirteen이라는 그림책을 좋아했다고 . 이 두 권의 그림책은 브라이언 셀즈닉의 작품 활동에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다고 쓰고 있는데, 레미 찰립의 그림책은 그림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행위가 다음 이야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 매 페이지를 넘길때, 비로소 그 전 페이지의 이미지들을 만드는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전 페이지의 이미지와 연결하여 하나의 새로운 이미지와 이야기가 연결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므로 페이지를 넘긴다는 행위가 중요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닌지.) 


그는 위고 카브레에서 (브라이언은 이 그림책을 소설(nove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다른 소설들과 달리, 이미지가 이야기를 단순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스토리를 말하는 것을 돕는다라고 쓰고 있다. 나는 정확하게 소설도 아니고, 완전한 그림책도 아니고, 사실 그래픽 노블이나 플랩북 혹은 영화도 아닌 여러가지가 뒤섞인 책을 만들기 위하여 레미 찰립이나 다른 그림책의 대가들이 사용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몇년 전에 레미 찰립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그 이후로 쭉 친구로 지내고 있는데, 지난 12월(2007년) 레미가 브라이언이 진행중인 작품을 물어왔고 브라이언은 그에게 위고 카브레를 설명하다가 작품속의 멜리에즈와 레미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레미에게 작품속 캐릭터의 포즈를 부탁했다고 한다. 레미는 예스라고 승낙하고 우리가 보는 <위고 카브레>의 멜리에즈는 레미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Deleted Scene" from The Invention of Hugo Cabret

This is a finished drawing that I had to cut from The Invention of Hugo Cabret. I was still rewriting the book when I had to begin the final art. There was originally a scene in the story where this character, Etienne, is working in a camera shop. On one of my research trips to Paris I spent an entire day visiting old camera shops and photographing cameras from the 1930's and earlier, as well as the facades of the shops themselves. I researched original French camera posters and made sure that the counter and the shelves were accurate to the time period. I did all the drawings in the book at 1/4 scale, so they were very small and I often had to use a magnifying glass to help me see what I was drawing. After I finished this drawing I continued to rewrite, and for various reasons I realized that I needed to move this scene from the camera shop to the French Film Academy, which meant that I had to cut this picture. I tried really hard to find ANOTHER moment when I could have Etienne in a camera shop, but, as painful as it was, I knew the picture had to go. I'm glad to see it up on the Amazon website because otherwise no one would have ever seen all those tiny cameras I researched and drew so carefully!
--Brian Selznick

이 장면은 내가 <위고 카브레>에서 삭제해야했던 완성된 드로잉이다. 나는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 해야할 때도 여전히 작품을 다시 쓰고 있었다. 원래는 에티엔이라는 캐릭터가 카메라 상점에서 일하는 장면이 있었다. 파리에 자료조사차 들리면서 나는 하루종일 구식 카메라 상점을 방문하거나 30년대 사진기나 상점의 정면을 찍으면서 보냈다. 나는 오리지널 프랑스 카메라 포스터를 조사했고 그래서 이 드로잉에서 카운터나 선반은 그 시대를 정확하게 재현했다고 확신한다. 나는 책속의 모든 드로잉들을 1/1 크기로 그렸으며, 그것들은 매우 작았는데 그래서 내가 그린 것을 보기 위하여 종종 확대경을 사용해야만 했다. 내가 수정을 계속하면서 이 드로잉을 완성한 후, 여러가지 이유로 나는 카메라 상점 장면이 프랑스 영화 아카데미로 이야기의 흐름이 이동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결국 이 장면은 삭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이 카메라 상점앞에 있는 에티엔의 이 그림을 실기 위하여 다른 가능성도 생각하며 애썼지만 고통스럽게도 이 장면을 떠내보내야했다. 내가 조사하고 애써 그린 작은 카메라를 누구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마존을 통해  이 장면을 볼 수 있어서 기쁘기 그지 없다.

조르쥬 멜리에스에 대한, 흑백무성영화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거리를 쏘다니고, 상상하고, 수 많은 드로잉 작업을 거치면서 창작에 대한 환희와 낙담과 좌절을 느꼈을 것이다. 셀즈닉은 마지막으로 작품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그의 머리 속에는 이야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야기의 흐름상, 자신이 가장 공들여 그린 드로잉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잘라내야 했을 때, 욕심도 함께 버렸다. 그는 창작하는 동안  작품의 요소속의 더하기와 빼기가 책의 완결성을 한층 끌어올린다는 사실을 알았으리라. 만용을 부려 무엇을 하겠는가. 하지만  바로 위의 장면을 커트시켜야할 때, 그는 참담한 기분이 들었을 것 같다. 떠나야보내야했다는 글을 읽는 순간, 작가의 씁쓸함과 옳은 결단성을 읽을 수 있었다.

위고 카브레를 만들기 위한 작업 기간이 2년 정도였다는 것을 작가후기로 알 수 있었는데, 그의 영화와 그림책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작품이다. 아이들과 함께 흑백무성영화 한 편 보고 나서, 이 작품 읽으면 브라이언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아들 이 작품의 두께에 허걱 놀랬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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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릭 게코스키 지음, 차익종 옮김 / 르네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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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드슨의 단편 <매드 하우스>에서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주인공의 자아가 투영된 곳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된 글이 써 쓰지지 않자, 점차 주인공의 정신세계는  분열되고 그와 동일선 상에 있는 그의 집도 주인을 따라 미쳐 간다. 주인공이 신경이 극에 달하자 집 또한 미쳐 괴물로 변하는데, 그와 집은 이제 동일한 자아가 아닌 각각 분리되어, 미친 집은 주인공을 살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단편 읽으면서, 유형의, 단순한 건물에 지나지 않을 것 같은 집이라는 게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리처드 매드슨의 집에 대한 극단적인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집은 주인을 닮아간다는 사실. 예로  깨끗하고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이라면, 집은 주인의 의지대로  먼지 한 톨 없은 집이 되어가는 것이고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소유의 주인이라면, 그 집 또한 쓰레기장과 같은 집으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흔히 어른들이 지나가면서 하는 말로 집이 주인을 닮는다고 하더니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표현일지도.  어쩜 집이 주인의 심리적 성격이나 행동을 여과없이 그래도 드러내는 것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집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집에서 뿜어내는 기운을 감지하고 그 느낌은 각기 다 다르니깐 말이다. 지랄 같은 성격의 소유자집에서 신경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면, 취미 생활을 넘어 강박관념으로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수집광의 집은 어떨까.  수집대상이야 사람마다 천자만별이고 각양각색이지만, 그 수집 대상이 책이라면?  책에 미친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방의 벽마다  차곡차곡 빼곡히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집을 방문하고 나서면,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까. 미쳤군!

책이 좋아 책을 수집했다가 (단순히 책을 수집했다기보다는 읽고나서 그 책을 소유하고 싶다는 것이 더 맞을지 모르겠다)  희귀본 거래업자가 된 릭 게코스키의 집은  온통 책으로 도배가 된 매드 하우스 아닐까. 그는 분명 어린 시절 뛰놀기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조숙한 소년과 청소년시절을 보낸 후, 대학에 가서도 영문학을 선택해 번듯한 대학교수 자리를 꿰하고 앉아서 지루한 강의나 해대는 삶을 마무리할 듯 하다가, 우연히도 접하게 된 초판본의 신선한 매력과 설레임 그리고 짜릿함을 느꼈던 순간도 잠시, 초판본의 거래가 엄청난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그는 미련없이 대학강사를 때려치우고 희귀본 거래라는 모험의 세계에 뛰어들게 된다. 20세기 문학을 전공한 그는 주로 20세기에 출간된 영문학 소설가나 시인의 초판본을 다루고 있는데, 그의 책 <아주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는  영국의 BBC방송국에서 그가 진행했던 <희귀한 책, 기막힌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를 산 소설가나 시인들, 나보코프, 조이스, 샐린져, 골딩, 케루액, 오스카 와일드, 조지 오웰, 로렌스, 실비아 플라스, 롤링, 베아트릭스 포토, 훼밍웨이, 이블린 워, 그레이엄 그린, 필립 라킨 그리고 존 케네디 툴등, 작가들의 숨겨진 개인적인 일화와 책에 얽힌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치해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일단 한번 읽기 시작하면,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각각의 챕터에서 다룬 인물들과 작품설명에 쏙 빠지는데, 개인적으로 톨킨, 그린, 툴, 롤링과 실비아 플라스의 책과 관련된 일화를 재밌게 읽었다. 제일 관심밖의 인물은 역시 덜 알려진 라킨.

나 같은 사람은 초판본이든 재판이든 그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한 사람이라서, 초판본을 소유하기 위하여 큰 금액을 덥석 지불하는 사람들이 좀 이해가 안 가지만, 그래도 그 거래 금액이라는 것이 미술작품에 비하면 형편없다는 사실에 좀 놀랬다. 현재 초판본 거래는 그 작품이 좋아서 그 초판본을 소유하려고 한다기보다는 투기의, 금전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초판본 책이 팔리는 것 같아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일단 이렇게 책이  관심을 갖는 다는 자체가 책에 관해서는 빠삭한 지식을 무장으로, 그 책에 대해 뭘 알아도 알아야 투기를 하는 것이라서 할 말은 없지만. 케루액의 자필원고는 200만달러에 스포츠 구단주에 팔렸지만 자신은 이 원고를 잠시 보관하는 집사일뿐이라고 한다는데, 그러면 다음에는 도대체 얼마에 팔려고!

난 초판본이라는 것에 관계없이 읽기 위하여 책을 모으는 사람이라 일단 내 수중에 책이 들어오면 왠만해서는 방출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릭 게코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책이라는 것도 운명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한 권의 책이 불특정한 사람들과 만나 읽히고 나서,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이 사람 저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을 가지게 되는 팔자의 책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적이니, 책에게도 팔자가 있다면 , 그런 책은 기구한 팔자라고 해야할지, 아님 팔자가 세다고 해야할지.

난 그림책에 관심이 있어 주로 그림책을 수집하고 있는데, 그 대상이 콜린 톰슨과 신데렐라 여러가지 여러 판본들이다. 때때로 영어권의 그림책 작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 동원된 알파벳 그림책도 모으고 있고. 간혹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정말이지 미쳤구나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물론 월급쟁이 아내다보니, 경매금액이 나의 경제사정과 맞으면 모으는 것이니깐, 단시간에 책을 수집한 것은 아니고 강박까지는 아니다. 최근에 나의 레이더에 걸려든 책은 코미네 유라의 <신데렐라> 이 책은 한 1년 남짓 일본아마존에서 품절이라서 구입할 수가 없었는데, 일본 경매시장에서 우연히 보게 되서 구입한 책이다. 일본 경매시장은 해외배송을 하지 않아 아예 들어가보지 않았는데, 작년 12월초에 일본야후경매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올라와 있길래 구매대행으로 구입한 책이다. 야후경매사이트에서 이 책 봤을 때 아주 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 책이 이사람 저사람을 만나 돌고 돌다가 결국에는 나란 사람하고 만날 운명이었구나,하는 유치찬란한 감상적인 기분이 들었다.

 

원제가 <톨킨의 가운> 또는 <나보코프의 나비>이기도 한 이 <아주 특별한 책의 이력서>에서 언급된 책은 어찌보면 기구한 생을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책 팔자 한번 더럽군 또는 기구하는구 싶을 정도로. 사람들의 눈먼 애착심이나 투기심으로 한 책장에 정착되는 삶은 포기해야 하겠지만 언젠가 탐서광에 책장에 안착하기를.

사람만이 운명적인 만남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나와 사물(책뿐만 아니더라도)이 각기 맺는 그 연이라는 것은 참. 어떤 식의 만남이든지 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길던 짧던 간에 그 동안의 인연이란 각자의 운명 속에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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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나라 호기심 펑펑 - 창의력을 키우는 과학상식
김종철 지음, 유남영 그림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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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글릭의 <천재>라는 책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업적과 삶을 다루고 있는데, 그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일화는 파인만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식 교육이라면 불물가리지 않는, 우리 못지 않은 열성을 가지고 있는 이 유대인의 아버지는 파인만에게 어떤 사물에 대한 정의나 개념을 설명할 때, 상대방이 알아 듣기 쉽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예를 들어 2m의 공룡의 키를 설명할때, 아이들에게는 2미터라는 추상적인 길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집 이층 베란다 높이에 몸무게는 어쩌구 저쩌구..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의 단순한 호기심조차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 아이들의 이해를 돕는지,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그 아이의 사고 체계가 핵을 만들 수 있는 지점까지 다다를 수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화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툭하면 내 뱉는 왜요?라는 질문는 세상을 이해하고 세상을 둘러싼 사물들을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왕성한 호기심의 표출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인 우리들이 더 이상 과학적인 이론과 실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과 반비례하여 사물의 과학적 원리를 알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호기심어린 질문은 우리 어른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종종( 아니 아주 많이) 있다. 사실 어른인 나도 잘 모르는 사실들을 어떤 식으로 설명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학교 다닐때 과학 공부 좀 열심히 할걸,이라고 때 늦은 후회를 하곤 하지만 학창시절에 과학적인 이론을 잘 배운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요즘 아이들의 최신식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까나. 그건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도 나처럼 인터넷 검색해봐라,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아이들이 인터넷을 뒤져본들 자신의 호기심에 대해 100% 이해를 돕는 설명이 있다라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엉성한 답과 얼렁둥땅 설명만 있을 뿐.

 

어쩜 <솟아나라 호기심 펑펑>이라는 책은 아이에 뜬금없는 질문에 대한 궁여지책으로 인터넷 검색이나 뒤져보라는 나 같은 부모를 위해 탄생한 책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초등학교 아이들이라면 절로 생길 수 있는 호기심에 대해, 익살맞은 삽화와 함께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인체호기심,동물 호기심 그리고 생활 호기심 세 파트로 나눠졌는데, 여타의 호기심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호기심에 대한 질문에 대해 곧바로 스트레이트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삼지선답형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세가지 가능성 있는 답을 제시하고 어느 것이 맞는지 답을 맞춰 보는 게임도 해 볼만하고 왁자지껄하니 하는 동안  재밌다. 

 

하지만 한가지 태클을 걸자면, 호기심어린 질문중에 사람들은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나요라든다 술을 물보다 더 많이 마실 수 있는 이유는?,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카락이 빨리 자란다는 이야기가 진짜 일까요 또는 성형수술을 하면 관상이 바뀌나요? 같은 항목이 왜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런 항목에 관심을 기울리고 있다고, 솔직히 지면 낭비다. 이런 몇 가지의 엉뚱한 질문 빼고는 호기심에 나름 성실하고 적절하게 설명을 했고 아이의 호기심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훗날 아이의 정신적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 호기심을 바탕으로 아이가 천재(혹은 그 비스무리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자양분을 다져주는 것이나 다름 없으므로, 이 책 한권 정도는 집에 구비하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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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p.s. i love you
모리 마사유키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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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할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몰래 감추고,속으로 삭이고 애 태우며 느릿느릿 한발자국씩 서서히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사랑이야기이다. 지금 세대가 보면 답답할 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했던 80년대 사랑은 바로 이런 식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에 애틋함과 설레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시절. 요즘 세대들처럼 미팅에 나가서 끌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을 콕 집어서 지명하거나 사귀어보자는 말 한마디 못 하고 감정의 아쉬움만 가슴 속에 새겨두기고 자리를 뜨던 세대들이었다. 60년대 혹은 70년대 초반 생들이 대부분 경험했을 법한 수줍은 사랑이야기. 이 세대들은 전 세대와 후 세대의 틈바구니에 낀 과도기 세대들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목 말라했던 전 세대에 갑갑함을 느끼면서도 70년대 후반 생들의 직접이고 노골적인 사랑의 표현과 대시에 부러움과 묘한 질투의 시선을 보내는 어정쩡한 세대말이다.
 
이 만화는 1988년에서 89년까지 만화 오리지널에 13회에 걸쳐 연재된 만화를, 당시에 작가가 우물쭈물하는 바람에 단행본으로 낼 시기를 놓쳤다가 한참이나 지난 15년 후인 2004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만화책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15년이라는 세월은, 우리에게 과학적인 편안함고 안락함을 가져다주면서 초스피드로 바꿔버렸다. 아날로그 편지 대신 이멜이, 전화대신 휴대폰이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버린 것이다. 즉각적인 연락과 반응. 예전의 기다림의 시간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이루어 지게 되었다. 기다리는 동안이란 표현은 하루이틀이라는 피 말렸던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잠시 동안을 의미할 정도로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예전에 연락방법은 전화 아니면 편지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편지지를 고르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편지지를 사들고 무엇을 쓸지를 이리저리 곰곰히 생각하면서 이쁜 글씨로 쓰기 위하여 한자한자 정성들여 쓰던 시절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인 셈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지금 나오게 된 것에 대해 진부함이라고 표현했지만 그 세대를 같이 공유했던 나로서는 진부함이라는 표현대신 그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라고 말하고 싶다. 그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만화를 통해 나의 80년대 그리운 시절을 떠올린 다는 것은 행복한 일 아닌가. 

만화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간단한 라인 단순 명료한 색과 화면분활이 어지럽지 않아서 보기에 편하다. 그림의 색은 화려하기 보다는 기본 삼색이 바탕이며, 화면 컷은 다양하며,큼직큼직하니 시원하다. 화면 컷과 그 안에 담긴 그림은 작가의 절제된 감정의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컷 안에 중요 배경화면은 없지만 주인공들의 애틋하거나 쓸쓸한 심리묘사가 잘 표현되어 있다. 아마 작가가 경험한 비슷한 랑이야기거나 적어도 작가가 이런 사랑을 한 번쯤은 해 보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담백한 사랑이야기를 만나서, 아니 적어도 내가 공감했었던 한 시절의 사랑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서 한껏 이야기에 빨져 들 수 있었다.


P.S. - 나에게 오는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세대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있을 수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 편지는 청구서나 안내문뿐이니, 그렇게 편지라는 것에 그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을지 모르겠다. 요즘은 이멜이나 블러그가 대세니깐. 하지만 한통의 진실된 편지가 사라진다해도 서로가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은가. 덧글도 소통의 한 방법이고. 그래서 난 누가 나를 위해 써 준 한줄의 덧글도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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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방랑기
가쿠타 미쓰요 지음, 신유희 옮김 / 해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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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미쓰요가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자신의 책 후기에다 이런 글을 썼다.   이제까지 나는 말을 잘하기 위해, 순수하게 지식을 위해 책을 읽은 경우는 없다.15년전에 걸쳐 깨달은 것이다. 세상에는 나보다 500배, 1000배나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을 쫓아가려 해도 소용없다. 그런 일을 할 여력이 있다면 지식 같은 것 없어도 상관없는, 나를 부르는 책 한권을 읽는 게 낫다. 그래, 책은 사람을 부른다. 책이 있는 곳이라면 도서관이든 헌책방이든 대형서점이든 어릴 적의 대형서점과 마찬가지로 나를 흥분시킨다. 그리고 내게는 네 살 때 얻은 그림책도, 어제 읽기 시작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도, 지금 다시 읽고 있는 하야시 후미코도, 모두 다 같다. 눈으로 글을 좇기만 해도 그것은 내 손목을 부여잡고 생면부지의 곳으로 데려가준다. 그리고 그 구석구석을 보여준다.라고 말이다. 그녀의 작가 후기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의 솔직함이, 진실이 그리고 어떤 씁쓸한 감정(아무리 내가 많이 책을 읽었다고 해도 타인은 더 많이 읽고 글도 잘 쓰는)이 묻어나는 것 같아, 그녀의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보면서 애착과 자부심을 가지고 읽어왔던 책들이 타인의 독서편력에 비하면 형편없었다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 순간, 밀려오는 어떤 허탈감에 내린, 나를 부르는 책 한권이라도 읽는 것이 낫다라는 그녀의 위안적 결론에 나도 모르게 찐한 공감을 불러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난 책이 지닌 무거움과 가벼움이, 물리적인 추상적이든간에 상관없이 읽는 편이다. 내가 아틀라스가 아닌 이상, 무거운 주제를 다룬 책만 읽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심심풀이 땅콩처럼 가벼운 주제의 책만 읽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나이가 들면서,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인데, 요즘 한 일이년 동안은 일본소설을 꽤 많이 사 들이고 읽었던 것 같다. 일본 소설의 글쓰기가 가볍다 보니 읽기가 쉬워서 그런가. 나름 읽고 나서 생각거리도 많고, 우리의 일상이 소설적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다. 가쿠다 미쓰요라는 일본 작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가 요 근래 들어 도서관에서 몇 권 빌려 읽었는데,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스쳐지나가는 일상의 어느 한 순간을 포착해, 삶의 따스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주제가 맘에 들었다. 예를 들어 <전학생모임>의 <꽃밭으로>라는 단편에서 불행한 일이 연속해서 터져도 꽃밭의 꽃을 보고 이쁘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살다보면 누구나 다 그렇게 한 번 쯤 생각해보지만 그런 소재를 가지고 쓴 글을 읽어본 적이 없는데, 일본작가는 참 편안하게  별 것 아닌 일상의 소재로 글을 쓰는 구나 싶었다. 그런 가벼우면서 진지한 일상적 글쓰기가 무거운 주제의 소설보다 끌리고.

허나,   왜 그녀의 그 많은 좋은 작품은 놔두고, 하필이면 <가족방랑기>를 구입하게 된지는 모르겠다. 기대가 컸나. 중단편에서 보여준 빼어난 글솜씨는 어디가고, 지리멸렬한 글 늘리기에 주력한 가족소설을 고르다니.  이런 집안의 속사정은 알고 싶지도 않았는데, 그냥 풋내나는 어린 고등학생의 일기장과 뭐가 다르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일지도 모르고. 아마 주인공 리리코의 나이 또래 고삼 정도나 대학생들이 이 책 읽었다면, 공감하는 부분이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매들 개개인이 선택한 삶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특히나 아리코의 이혼, 전 남편과의 불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이혼을 하게 된 것인지 완전 독자의 상상으로만 남겨놓은 것) 막연한 희망을 품고 끝내는 ,작가의 불친절한 일일연속극식 의도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이가 먹어셔야!). 뭐가 뭔지 모르는 채 이야기는 끝나고, 기대해 마지 않았던 작가 후기도 없었다. 차라리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해명후기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 텐데..요전에 게이고의 <괴소소설> 읽으면서 뒤에 써 놓은 작가 후기도 재밌게 읽었는데 , 그런 식의 작가 후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어떤 경우는 본 소설보다 작가 후기가 인상적이라는. 여하튼 이 책 읽고 나서 소장하기에는 돈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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