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newstapa.org/43664

 

성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연극계 거장 오태석 연출가가

사건이 붉어진 이후 어떠한 입장 표명도 하지 않은 채 돌연 잠적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를 최초 고발한 그의 제자 박영희 연극 배우가 그 이후

자신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인터뷰를 통해 토로했는데,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었다며 그중 자신이 들어 본 말중에,

꼭 그랬어야 했느냐? 오태석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연극계가

무너진다고 했단다.

 

시바, 그래서 정말 무너지는 연극계라면 무너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새로 세우면 되는 것이다.

요즘 해외파도 많고, 똑똑하고 잘난 연출가도 많다.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미투 2차 피해를 입히는가?

그럼 오태석이 그짓하는 걸 묵인하고 계속 지켜보잔 말인가?

지금이라도 잘못된 건 바로 잡아야지 도와주질 못할 망정

상처에 소금을 뿌려? 

 

이젠 더 놀랄 것도 없지만 세상의 수컷들이 여태까지

무슨 짓을 하며 살았나를 생각하면 정말 경멸하고 싶어진다.

그렇게 말하는 주둥아리들한테 말한다.

오태석이 연극계 거장이기전에 한낱 수컷에 지나지 않았다고.

오태석은 성추행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사죄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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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진다는 말이 있었다.

비슷한 말 아닌가?

그래서 여러 가지 특혜 의혹이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난 지난 날 메이저 연극을 했던 건 아니지만 

연극 관련된 사람들의 성범죄 보도를

보면서 화가나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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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2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력이라는 게 무서워요. 권력을 내세워서 약한 자의 삶을 짓밟은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권력에 기대면서 살아왔던 자는 잘못된 현실을 바로잡지 않으려고 하잖아요.

stella.K 2018-03-22 14:18   좋아요 0 | URL
미투운동은 단순히 성범죄의 문제만은 아닐거야.
이토록 널리 깊게 퍼져있는 걸 보면 총체적인 문제일 거야.
남성의 성의식뿐만 아니라 인격 및 존재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권력 참 무서운 거지.ㄷㄷㄷ

2018-03-22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2 15:22   좋아요 0 | URL
모조리 접시물에 코를 담궈야 .ㅎㅎ
저는 어찌보면 이해가 갈 것도 같아요.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삼았겠죠.
그리고 그것이 여자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착각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겠지만.

제가 놀라는 건 이렇게도 남자와 여자가 성에 대한
생각이 달랐던가? 왜 그동안 우리 여성은 그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원통하고 절통할 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가 성적으로 너무 많이 문란하고
타락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이참에 정말 싹 다 갈아 엎어야 합니다.ㅠㅠ

바람머리칼 2018-03-22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무너지는 연극계면 무너져야지요
 

김정환 선생님의 <황색예수>가 새로 나왔구나.

며칠 전, 리뷰를 쓰면서( http://blog.aladin.co.kr/hjk4429/9965998) 잠시 선생님이 하시는 창작학원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긴 했지만, 솔직히 그때 처음 뵌 선생님은 나를 좀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어떠한 경계도 없이 스스럼없이 대하는 건 분명 좋은 태도이긴 할 것이다. 하긴 이제 막 등록을하고 수강생이 된 일개의 학생을 선생님이 뭐라고 어려워하시고 부끄러워 하시겠나? 솔직히 그건 나도 좀 배워보고 싶긴 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왜 그리도 낮가림이 심한지. 물론 어떤 사람은 내가 낮가림이 심한 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건 단지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나 보다는 상대가 나에 대한 호감 때문에 그걸 못 보는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는 내가 속한 클래스의 강의를 맡으신 강사 선생님이 결강을 하셨다(그때 강사분이 임헌영 선생님으로 기억하는데 이 분은 정말 천생 양반이시다. 한점 흩으러짐이 없으시고 달변이시다. 지금은 어찌 지내시는지). 그러자 선생님이 땜빵으로 강의에 들어 오셨는데 그때가 또 날씨가 좀 후텁지근 할 때였다. 선생님은 유난히 배가 볼록 튀어 나오셨는데 그게 맥주배라고 얼핏 들은 적이있다. 실제로 선생님은 맥주만 드셨던가 했을 것이다. 속에 소위 말하는 난닝구는 입으셨지만 그 위에 입으신 반팔 남방을 덥다고 풀어헤친 상태였다. 그리고 맨발에 슬리퍼. 아무리 스스럼없는 성격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 많은 수강생을 생각해서 기본 복장은 하셨으면 했는데. 오히려 보는 이쪽이 무안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 강의에서 선생님이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당신 스스로도 몰골이 심한 줄 모르지 않으셨다. 그렇게 된 것이 그 엄혹한 시절 고문으로 인한 것이라고 했다. 그때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워낙 오래된 일이라 확실히 기억은 안 나고, 사람이 경멸을 당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셨던가? 다시 말하면 극한의 모독 같은. 부끄러움이 없어진다고. 그건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도대체 그 시절 선생님께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자세한 말씀은 안 하셨지만 감히 들을 엄두도 나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엄혹했던 시절은 가고 다시는 선생님께 고문을 가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지만 그때의 트라우마는 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때 이후로 선생님은 부지런히 저술활동을 계속 해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세간의 평판은 책이 좀 어렵다고 들었다. 또 그러거나 말거나 선생님은 계속 당신의 글을 쓰신다고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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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선생님에 관한 글은 언젠가 여기에 

썼을 것이다. 내가 안 쓸리가 없다. 그래도

여기 처음 오시는 분도 있을테고, 마침 이 책이

다시 나왔다기에 생각나서 다시 써 본다.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문무일 검찰 총장이

고 박종철 씨 아버지께 31년만에 찾아가 사죄를

했다는 보도를 전한다. 아버지는 아흔이 넘은

고령이시고 그나마 거동이 어려워 누워만 지내신다고

하는데 국가가 이 아버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를 생각하면

너무 늦은 사죄 아닌가? 그동안 개인 자격으로라도 가서

사죄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은 나라가 한 개인의

잘못을 은폐해줬다는 말도 되는데 이게 정말 나란가 싶기도 하다.

 

이 아버지 오늘 내일 하시는 것 같은데 언제 가실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사죄는 받았으니 가실 때 편히 가실 것 같다.

사죄 받아 안심이라기 보단 오히려 마음만 더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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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1 17: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1 18:04   좋아요 0 | URL
사과는 했지만 영혼이 느껴지는 건 아니었지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법도 합니다.
그래도 이게 또 정권이 바뀌었으니까
이나마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국가가 국민에게 참 못할 짓 많이했어요.ㅠ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0788182193

 

오늘이 내가 페이스북 개설한지 8년됐다고 써프라이즈를 해 준다.

그런데 그게 넘 마음에 든다.

그냥 개설만하고 거의 방치해 둔 상탠데

이러니까 이제부터라도 애정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알라딘은 뭐 좀 안 해주나?

그럼 좀 더 애정해 줄 텐데...

알라딘 개설한지 언젠지도 모르겠다.

까마득하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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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18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19 13:3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점점 더하는 것 같아요.ㅠ

psyche 2018-03-1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래전에 큰 아이 감시?용으로 계정을 만든 후 제가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몇년 전 오늘 그거 저도 맘에 들더라구요. 네이버 블로그에도 나중에 그 기능을 만들었어요. 알라딘 서재는 기능도 별로 없고 사용하기도 불편한데 서재 이웃님들이 좋아서 이렇게 쓰게 되네요.

stella.K 2018-03-19 13:38   좋아요 0 | URL
저는 페이스북이 선전 도배가 많고
알 수도 있는 사람해서 다닥다닥 붙는게 많아서
좀 어지럽더라구요.
이 사람을 아는 척 해 줘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되구요. 그래서 안 쓰는데 최근 아는 분이
그곳에 계셔서 소통하느라 자주 가 보는 편이에요.
나름 장점도 있긴 하더라구요.
그래도 끈끈하기로는 여기만한 곳이 없긴하죠.^^

서니데이 2018-03-19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stella.K님의 페이스북 가서 보고 왔어요. ^^
오늘 비가 와서 그런지 조금 서늘합니다.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2018-03-19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19 2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3-20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역시 스웨덴 영화는 낮설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많이 접하게 되는 영화는 우리 영화를 비롯해 허리우드와 아시아 메이져 영화, 서유럽 몇 개국으로 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볼 영화들이 너무 많아 권역을 넓히지도 못하겠다. 그나마 스웨덴 영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 수년 전 <렛 미 인>의 선전 때문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이렇게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권 영화를 낮설어 하는 건 그것이 주는 이미지도 이미지지만 배우들 역시 특별히 아는 바가 없어서는 아닐지? 그나마 이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미카엘 니크비스트란 배우는 다소 풍채도 있고 부담스럽지 않은 것이 친근감마저 준다. 하지만 여자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노미 라파스란 배우는 코에 피어싱을 하고 몸에 문신을 한 것이 전사 같은 모습을 했다. 좋게 말해 전사지 세상에 대해 잔뜩 적대감을 품은 모습이다. 이런 역을 맡은 배우를 단번에 좋아하기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긴 2009년도 영화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시대에 뒤쳐진 느낌이긴 하다. 그동안 스웨덴을 비롯한 동유럽권 영화가 우리나라에 나름 꽤 소개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이제와 낮서니 어쩌니 하는 건 내가 게을렀음을 자인하는 것 밖엔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뒤늦게 나마 이 영화를 볼 생각을 했던 건 문학동네에서 최근 다시 복간된 <밀레니엄> 시리즈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영화와 원작이 다소 다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영화는 원작을 바탕으로 했을 테고, 영화를 보고 책으로 읽을지 말지를 결정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영화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던가.

 

총 4부작이라지만 한 부, 한 부에 붙힌 제목도 범상친 않아보인다. 그에 따라 영화는 현재 3부작만 나온 모양인데 네*버 평가에 따르면 1부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흥행은 보지 못한 것 같다.

 

뭐 영화는 그럭저럭 볼만은 하다. 내가 또 스릴러라지만 퇴폐적인 요소는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마냥 좋아라 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만했다는 건 잘 만들었단 말과도 같은 말이다.

 

앞서 여자 주인공에 대해서 언급을 했지만 이 여자 확실히 좀 자신을 사랑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남의 삶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막 사는 것 같다. 확실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성적 취향도 양성애를 보이는 것도 같고, 나중에 남자 주인공과 섹스 후 다음 날 남자가 해 준 음식을 먹는데 토마토 케첩을 얼마나 많이 뿌려 먹던지. 병의 반 이상이 앉은 자리에서 없어졌다. 그것도 알고 보면 설탕 덩어리라던데. 그뿐인가? 기회있을 때마다 담배를 피워댔던 것으로 아는데 지금이야 젊어서 모른다지. 늙으면 다 독되고 병 된다.

 

그런데 난 이 영화에서 딱 두 장면에 꽂혔다. 하나는 여자가 어디를 가는데 하필 한 패거리의 건달들한테 걸렸다. 그것도 무슨 지하 횡단보도를 지나가는데 부딪친게 화근이었다. 건달들  4명과 싸우는데 남자 4명은 여자 17명과 맞먹는다. 즉 17대 1과의 싸움. 그런데 여자 주인공 리스베트 결코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한다. 물론 여기저기 다 터졌지. 남자 장정 넷이 휘두르는데 멀쩡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터지는데도 끝까지 악랄하게 싸워 결국 승리를 쟁취한다. 그건 비교적 영화 초반에 흘렀는데 순간 이 영화 끝까지 봐야겠다는 굳은 다짐이 생기더라. 세상 보기 좋은 구경 중 하나가 싸움 구경이라지 않던가? 싸움은 역시 백중세로 이기는 것 보다 힘들게 이길 것 같지 않은데 이기는 게 보는 맛은 더 있다. 측은하기도 하고 어째쓰가 하는 짠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더구나 남자들이다. 아무리 건달이라지만 쪼잔하게 여자와 지나가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 싸울 생각을 하다니. 몇 마디 하고 지나가도 되겠더만. 그래서 그들을 두고 하는 말이 더 있지. 똥파리라고.

 

그런데 이 리스베트 갈수록 더 매력적이다. 스스로 문제해결을 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사실 그녀는 범죄자로 교도소는 나왔지만 보호관찰 대상이다. 근데 그녀를 보호관찰하는 관찰사가 천하에 다시없는 변태 시정잡배다. 리스베트의 약점을 노려 돈을 갈취하고 성상납을 요구한다. 하지만 리스베트는 처음엔 순순히 당해주는 척하지만 역으로 헛점을 노려 다시는 나쁜 짓 못하도록 철저한 응징을 한다. 오죽하면 그의 살에 나는 변태라고 문신을 다해줬을까? 당연 아프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보는 나도 처음엔 어머머머 얼마나 아플까 하다가 이내 쾌재를 부르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또 그런 나를 보고 스스로 놀랐다. 아니 내가 남의 고통을 보고 이토록 쾌재를 부르다니. 착각이겠지만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모기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죽이는 차칸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남의 고통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걸 보면 그렇게 회개를 해도 미쳐 다 쫓아내지 못한 악마의 본성이 남아 있음이다. 어떻게...ㅠ 

 

물론 같은 여자라면 아무리 천벌을 받을 죄를 지었어도 그렇게까지 쾌재를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 내가 이 영화를 본 때가 모든 것은 깔떼기로 통한다는 미투운동이 한창인 요근래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는 느낌이 어땠겠는가. 마침 이 영화 전편에 깔린 내용 역시 성폭력이다. 아무튼 리스베트가 자신의 보호관찰사에게 나는 변태다란 문신을 새기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렇게는 못할망정 앞으로 모든 여자들에게 전기충격기 착용 의무화를 법으로 지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여자들은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남자들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아무런 법적 대응도 보호도 못 받고 살아왔던 걸까? 지금이야 미투운동 때문에 성폭력이 얼마나 줄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또 한풀 꺽이면 언제 어디서 고개를 들지 알 수가 없다. 그럴 때도 세상이 달라졌겠거니 하고 맘놓고 살아도 되는 걸까? 알다시피 성폭력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사람한테 당한다. 남성들의 짐승 같은 본능은 어쩔 수 없다고쳐도 거기서 내 몸 하나는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이 영화의 리스베트처럼 전사가 되야하는 걸까? 그럴 수 없다. 그럴 때 전기충격기 하나 정도는 몸에 품고 달려드는 짐승의 모가지나 거시기에 전기충격을 가해 자기 몸 하나 정도는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한다. 조금 더 노련하면 신고 시간까지 확보하면 더 좋고. 아무튼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구.

 

영화 속 리스베트를 보면서 여성도 강해질 필요는 있겠다 싶다. 지금 남자들 중엔 미투운동을 꽤나 못 마땅하게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평소 때 뭐하고 이제와 미투운동한다니까 생난리냐고. 글쎄, 지금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여자들도 이렇게 해 보는 것이 이번 생엔 처음이라. 확실히 영화속 리스베트처럼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람이 되야할 것 같다. 정말 그런 세상이 왔을 때도 그런 말 할 수 있는 남자들이 얼마나 될지 두고 볼 일이다. 

 

영화는 퇴폐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뭔가 묵시적이도 한 것이 보는 맛이 남다르다. 책으로 볼지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 그런데 주인공 이름이 독특하긴 하다. 리스베트라니. 뭔가 리스펙트의 이미테이션 고유 명사 같기도 하고. 우린 앞으로 이런 전사 같은 여자를 존경하며 살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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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17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레니엄이 영화가 2개이라고 알고 있는데, 누미 라파스 나오는 스웨덴 영화 보셨나봐요.
저는 책은 보고 영화는 안 봤는데, 페이퍼 읽으면서 영화는 책보다 무서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북유럽 책들은 인명과 지명이 낯설어서 금방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읽다가 한번 더 찾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밀레니엄도 그렇고, 요 네스뵈나 다른 북유럽 작가들도요.
stella.K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stella.K 2018-03-18 14:00   좋아요 1 | URL
앗, 네이버에 보니 3부작까지만 나와있네요.
미국판도 있긴 하지만 평은 스웨덴 것만 못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왜 4부작은 안 만들었을까요?
아무래도 흥행이 저조해서 4부작까지는 만들 엄두를
못 내고 있는 걸까요?

영화를 보면 책으로는 잘 안 보게되는 것 같아요.
책이 훨씬 좋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맞아요. 북유럽이 지명이나 인명이 낮설어서.
그래서 저도 <렛 미 인>을 읽으려다 포기한 적이 있어요.
요 네스뵈 좋다고 하던데 저도 읽기는 좀...

cyrus 2018-03-1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폭력, 성추행의 가해자 대부분이 피해자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남자들이 의외로 많아요. 이렇다보니 가족 내 성폭력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해요.

stella.K 2018-03-18 14:03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미투운동을 타고 가정내 성폭력도 곧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끔찍할 것 같다.ㅠ

저어니 2018-03-18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성년자 라면 몰라도 성폭력을 당한 장소가 호텔 또는 여관등 폐쇄된 공간이라면 이미 그건

성폭력이 아니라고 본다. 상관이 부른다고 상관 혼자있는 호텔방으로 업무거리를 들고 보고하러

갔다? 상관이라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하부직원은 철저히 계산했을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내 인생은 지금부터 탄탄대로야 했겠지.

그런데 왜 미투했나? 계산에 차질이 생긴것이다. 공식이 더 복잡해졌을 수도 있고. . .

위에 올라온 배우의 검고 깊은 동공을 보고 있노라면

영화가 아닌 <밀레니엄>을 읽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1980년대 글동네의 그리운 풍경들
정규웅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8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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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나에게 왠지 모를 원죄의식이 있다.

어려서부터 작가가 꿈이었던 내가 그 꿈을 버렸던 건 순전히 80년대를 잘못 인식한 때문이었다. 즉 당대에 대한 인식이 없었단 말이다. 80년대 하면 군사독재로 대비되던 시절이었다. 민주화와 최루탄(또는 화염병), 주사파, 전두환의 정권 탈환 등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그런 가운데 문학만이라도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 청정지역으로 남아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마저도 참여문학이었으니. 숨이 막혔다. 더구나 그 시절엔 민주화 하면 빨갱이 공산당과 연결시키는 경향이 있어 문학 역시 오염됐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가 정말 머리가 크긴 커졌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써서 돈을 번다는 건 들이는 노력에 비해 남는 장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한번 읽고 말 책. 그나마 거들떠라도 보면 다행이다. 쳐다도 보지 않을 책이 쳐다라도 보는 책 보다 훨씬 많은 세상에서 내 책이 후자에 들 가능성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독자로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인데 그럴 때 작가는 어떤 마음이겠는가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 참담함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던 내가 우연찮게도 90년대 중반에 들어설 무렵 모처에서 작가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땐 그나마 또 그렇게 되려고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가서야 되겠나 그런 마음으로 다시 작가의 꿈이 살아나고 있을 때였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원했던 장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작가는 작가였다. 그땐 정말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신춘문예 따위는 가볍게 제치고, 우리나라 대표문학상 이를테면 이상이나 동인 문학상 수상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어쨌든 이렇게 첫발을 내딛었다는 게 중요했으니까. 하지만 쉽게 얻은 기회는 또 쉽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법이다.

 

하지만 나락에도 길은 있더라. 다시 못 일어날 것만 같은 내가 다시 일어나 찾아간 곳은 시인 김정환 선생이 하시는 창작 학원이었다. 창작은 학교에서나 배우는 건줄 알았는데 이런 학원이 있다는 게 신기했고 거길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어찌 보면 신선이 사는 곳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80년대 참여문학을 했던 작가들이 강사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내심 놀라웠다. 그토록 거부했던 내가 참여문학의 당사자들을 코앞에서 보게 되다니.

 

그들은 하나 같이 강의 도중 지나간 세월을 얘기했다. 하긴, 그때가 90년 대 중반으로 그들 가슴속엔 그 뜨거웠던 80년대를 아직 잊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 빨리 그 시절을 잊고 사는 것 같았다. 또 그 때문에 내 눈엔 그들이 더 초라하고 외롭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80년대를 견뎠던 그들의 기백은 어디로 가고 이렇게 신선같이 앉아 수강생들에게 글쓰기나 가르친단 말인가. 물론 그들의 하는 일이 원래 글을 쓰고 그렇게 필요하면 후학도 가르치고 하는 일이겠지만 뭔가 모를 낮선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은 또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 보니 내가 그 시절 문학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저 엄혹한 80년대 참여문학을 해서 내가 숨이 막혀 문학을 멀리했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참여문학이 나를 거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즉 난 현실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는 미욱한 독자였던 것이다.

 

책은 앞부분에서 한수산 작가의 필화사건 다루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아는 지인과 술자리에서 몇 마디 시국을 논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한 사건이다.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지 않는가. 그 앞에 자유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그런 나라에서 비판 좀 했다고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게 빨갱이 공산주의와 다를 게 뭐가 다르단 말인가?

 

박완서 작가는 문학의 효용은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위안을 주고 힘이 돼주는 것(195p)이라고 했다. 어느 시대고 어렵지 않은 시대는 없었겠지만 이 시대의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 4, 50년대에 태어나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던 시대다. 그 시절 그들의 나이는 대략 3, 40대의 나이었을 것이다. 가장 혈기가 왕성하고 그들의 붓끝이 가장 날카로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들이 민중을 대변하고 대신 울어주지 않는다면 누가 그 일을 대신해줄 수 있을까? 그런데 내가 보는 시각이 전혀 틀리지마는 않은 것이 얼마 전 읽은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에서 그런 말을 한다.    

 작가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을 기억함으로써 그들을 끊임없이 소환해낸다. 우리 전통 장례 풍습으로 치자면 유족과 함께, 유족들을 대신해 곡해주는 사람들인 셈이다. 우리 문학은 민주화를 통해 ‘5월 광주에 대한 막중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빠르게 현실에서 몸을 빼내기 시작했다. ......(중략)

존재하는 현실을 부정하도록 가르친 문학이 1990년대 이후 위기에 직면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소설 보다 현실이 더 극적인데 누가 문학 작품을 사서 읽겠느냐는 지적도 있지만,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에서 현실과 직접 대면하려는 자세마저 보기 어려워진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 없다(183p). 

 

그렇다면 내가 그 창작 학원에서 본 80년대 작가들이 90년대가 되면서 신선 같아 보였던 것은 아주 잘못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의 이슈가 주어졌을 때 전력투구하다 그것을 달성하거나 사라져버리면 그 순간 노쇠해져 버리는 것이다. 80년 대 참여 문학을 했던 그 쟁쟁했던 작가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런데 지금 또 생각하는 건, 그 시절 문학이 정말로 참여문학 일색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대세였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모든 작가들이 참여문학을 했던 건 아닌 것 같다. 또 이것을 두고 작가들 간에 파가 나뉘어졌을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1982년부터 내가 어떤 책을 읽어왔나 소위 완독 리스트를 기록해 왔는데 그해의 베스트셀러를 읽기도 했다. 물론 그건 별로 참여문학의 성격을 띠지 않는 책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참여문학 일색은 좀 과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80년대에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은 80년대 주류문학이 해체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미리 앞서 내다보고 활동을 했을지 그건 모를 일이다. 그 시대의 문학이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작가 보단 평론가나 기자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우린 또 그것을 알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문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작가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의 활동상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나와 줘서 얼마나 반갑던지. 무엇보다 저자가 신문사 문화부 기자 출신이다. 난 이런 문화부 기자들이 쓴 책을 좋아한다. 그들이 직접 발로 뛰고 간결한 문장으로 써낸 책들이 좋은 것이다. 작가의 작품은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작가와 작품의 이면은 잘 모를 수 있다. 그럴 때 기자들은 그런 걸 취재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줄 수가 있다. 작가는 너무 힘들다. 물론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이 몇이나 되겠냐만 난 다음에도 생이 있다면 그땐 작가를 취재하는 기자가 되고 싶다.

 

책은 80년대 활동했던 문인들을 다룬 만큼 물론 민주화를 비껴가지 않는다. 하지만 역시 당대 문학이 참여문학만을 의미하지 않듯 한 작가, 한 작가 그들 문학의 특징과 삶을 잘도 포착해냈다. 읽다보면 이렇게나 많은 작가들이 자기 색깔을 내며 활동할 때 나는 너무 우리나라 문학을 과소평가하고 홀대해오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70년대는 나도 한창 자라느라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80년대는 뭔가 사고 체계도 얼마만큼 자리를 잡던 시절이었는데 그때 난 우리 문학을 보는 안목을 키우지 못했다.

 

지금도 난 우리나라 문학이 재미없는 줄 안다. 그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또 어느 점에선 틀린 말이기도 할 것이다. 작가들이 문학을 생산하면 독자는 소비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 사이를 연결시켜고 유통시키는 중간자들(평론가, 기자, 서평가 등)의 역할이 너무 미약했던 건 아닌가 한다. 뭔가 여기저기서 얻어 들리는 말이 있어야 사 볼 생각도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나라엔 문학 권력에 대한 비판 소리가 높다. 작가(가 되려는 자)와 심사위원간의 유착이 어느 정돈지 나 같은 독자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것에 대한 좋고 나쁨의 평가의 몫을 독자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기자나 평론가를 포함한 서평자들은 어디에 뭐가 있다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좀 더 충실히 해줘야 하지 않을까?

 

특이한 건 저자는 현존하는 작가 몇몇을 빼놓고 매번 그 작가가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를 정확히 밝히고 있다. 그러고 보면 80년대 쟁쟁했던 작가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진 느낌이다. 다른 누구는 몰라도 나 개인으론 이청준과 박완서, 박경리 이 세 작가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도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저자가 옛 사람이긴 한가 보다. 간혹 읽다보며 여류라는 말을 여과 없이 쓰고 있어 눈에 거슬렸다. 이건 교열 과정에서라도 뺏어야 했던 건 아닐까? 모처럼 선물 같은 책에 이것 하나가 오점으로 남았다. 다음엔 출판사의 좀 더 세심한 배려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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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17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단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박완서, 박경리 같은 원로작가들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그분들이 살아있었더라면 쭉정이 작가들이 설치는 문단을 비판했을 거예요.

stella.K 2018-03-17 12:26   좋아요 0 | URL
그나마 조정래나 황석영 작가가 아직은 건재하잖아.ㅋ
정말 80년대 작가는 읊을만한 작가가 있는데
90년대부턴 과연 30년 뒤에도 기억될만한 작가가
얼마나 있을지 몰라. 기껏해야 김영하나 은희경
김연수 정도가 될 것 같은데 80년대 작가에 비하면
현저하지. 문학의 위상을 키우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ㅠ

2018-03-17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17 12:31   좋아요 0 | URL
와우, 아직도 신춘문예 응모! 대단하네요.
사실 우리나라는 등단 나이를 설정해 놓는 경향이 있죠.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말 정도로 잡고 있잖아요.
그 나잇대 등단하면 거의 천재죠.
등단한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신춘문예도 신춘문예지만 일반인도 글을 써서
등단할 수 있는 창구가 많이 열려야 할 텐데
우리나라는 참 그런 게 많지 않아 아쉬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