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드라마하우스, 콘텐츠케이

 

<하얀 거탑>에서 존재감을 알린 안판석PD. 그후 <풍문으로 들었소>를 기대하고 봤다 점점 이야기가 꼬이는 바람에 싫증이나서 안 봤다. 그후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없었다.

 

솔직히 <풍문...>은 연출이 잘못됐다기 보단 작가가 누군지 작가의 잘못이 더 크지 않나 싶었다. 그래도 TV 드라마는 작가 보단 PD가 더 책임이 더 큰지라 그도 이제 한물간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는 계속 어디선가 작업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러다 실로 몇년만에 만난 그의 작품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 뭐 별것있겠나 특별히 기대를 하지 않고 봤다. 아니 솔직히 난 안 PD 보단 저 손예진과 정해인 때문에 보기 시작했다. 손예진이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 생활>에서 주인공은 따로 있긴 하지만 정해인이 눈에 들어왔다.    

 

글쎄, 그냥 훈남이라고 말해도 되겠지만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자면 뭔가 다부지고 똘똘하고 그러면서도 다분히 감성적이게 생겼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 정보를 더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져 보았더니 나이는 30세라고 한다. 드라마에선 제 나이대로 나오는가 본데 문제(?)는 손예진이다. 드라마에선 35세로 나오지만 실제 나이는 그 보다 2살을 더한 37세. 그러니까 둘은 실제로는 7살 차이가 난다는 말씀.

 

하지만 이런 건 이야기꺼리가 못 될지도 모른다. 요즘 워낙 연상연하 커플이 많은지라. 게다가 손예진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도 탱탱하다. 오히려 정해인이 이야기 거리가 더 있는데, 그가 무려 조선 시대 존경 받는 실학자 정약용은 6대손이란다.  그가 똘똘해 보이는 이유가 있긴 있었나 보다. 일단 그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솔직히 난 이 드라마를 조금 보다 말려고 했다. 2, 30대의 알콩달콩한 다람쥐 같은 사랑이야기 별로라서. 아무리 좋은 배우가 나오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뭔가 사로잡는 게 있다. 일단 난 손예진이란 배우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확실히 작품을 장악하는 장악력이 있다. 작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뭔가가 있다. 마치 그 드라마가 그녀를 위한 작품인 양 또는 배우를 하기위해 태어난 사람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만큼 연기를 잘한다. 그래서일까? 최근 출연하는 영화마다 후에 무슨 영화상을 획득한다. 그녀는 멜로퀸이란 수식어를 일찌감치 가지고 있는데 그런 그녀가 이 작품을 맡지 않으면 누가 맡겠는가.

 

정해인이 손예진 앞에 출연하는 것도 좀 재밌다. 길을 걸어가는데 그가 탄 자전거가 그녀 주위를 빙빙돈다. 과연 그다운 출연이라고 생각하는데 설정이 좋다. 아,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 그녀가 나온 영화를 봐야할 것 같다. <공범>을 볼까, <덕혜옹주>를 볼까? 언젠가 누가 허진호 감독 역사성이 발바닥이라고 막 몰아 세워서 볼 생각을 별로 안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일단 한 번 봐야할 것 같다. 영화는 꼭 역사를 통째로 왜곡했으면 모를까 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또한 이 드라마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음악이 있다. Stand by your man’과 ‘Save the last dance for me’가 그것인데. 이 두 곡은 이미 오래된 팝이고, 솔직히 난 이 음악 때문에 안판석이 한물 간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음악도 적당히 쓰면 좋은데 너무 빈번히 나온다싶은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독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 두 음악은 리메이크 곡이기도 한데 드라마를 위해 편곡을 한 것인지 아니면 리메이크 저작을 사서 쓰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나쁘진 않는데 역시 형만한 아우없다고 음악은 역시 오리지날 버전이 좋다.

 

내용은 특별히 이렇다하게 극적인 것이 없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렇다. 있다면 이들의 연애가 언제 표면에 드러날 것이냐인데 특별히 이렇다하게 놀랄 것은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우리의 삶이라는 게 그렇지 않나? 별로 놀랄 것이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또 살 먹고 잘 사는데 무슨 놀랄 것이 있겠는가? 그러니 드라마라고 해서 꼭 드라마틱하란 법은 없다. 그러면서 계속 보게 만든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능력이다. 더구나 지상파은 60분을 넘기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는데 반에 종편은 그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그렇다보니 거의 70분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것을 16회 한다고 생각해 보라. 제작진은 머리털 빠진다. 그래도 좋다고 하고 또 하는 걸 보면 운명이고 팔자소관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뭐라고 말하리?

 

아무튼 그래서 난 요즘 다시 주말에 하는 드라마 보기가 즐거워졌다. 이 드라마는 금토로 하지만,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노희경의 <라이브>는 토일로 한다. 배종옥이 언젠가 <릿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런 말을 했다지. 이 세상에 드라마와 영화, 소설이 없었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했겠냐고. 나 역시 그 말에 동감한다. 벌써 또 주말이 기다려진다.주말이여, 빨리 오라.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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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4-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방금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니
카롤라 브루니가 부르는 Stand by your man
전에 이미 나왔단다. 샹송풍으로.
그러니 드라마를 위해 나온 노래는 아니란 말씀.

서니데이 2018-04-09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예진은 정말 예쁘네요. 요즘은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은 것 같은데, 보고 싶어도 어쩐지 잘 되지 않는 요즘입니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다음 편이 보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가끔 마법같은 기분입니다. stella.K님,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04-09 20:21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죠. 그래서 가급적 드라마 안 보는 게
나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말 괜찮은 명품 드라마가 있어요.
그런 건 꼭 봐줘야 합니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요.
요즘 울나라 드라마 정말 잘 만들어요.
전 미드 좋다고 하는데 옛날 같으면 모를까 요즘엔 굳이
보고 싶지 않더군요. 영어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자막을 보는 게 이젠 싫더라구요. 눈도 나쁘고
빨리 빨리 읽지도 못하겠더라구요.ㅠ

지금행복하자 2018-04-0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ave the last dance for me 는 브루스윌리스가 부른 버전이라고 해요~ 저는 장면마다 이 노래들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

stella.K 2018-04-10 13:23   좋아요 0 | URL
앗, 브루스 윌리스가 부른 거예요?
전혀 몰랐네요. 브루스 아직도 활동하는가 봅니다.
반가운데요? 국내든 국외든 옛날 배우들
뭔가를 한다고 하면 반갑더라구요.
브루스 윌리스 예전에 대단했는데 말입니다.ㅎ

페크pek0501 2018-04-1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다가 그냥 지나쳤는데 앞으론 봐야겠네요.

stella.K 2018-04-10 13:27   좋아요 0 | URL
ㅎㅎ 특별할 건 없는데 이상하게 보게 만들더라구요.
그게 능력인 것 같습니다.
<라이브>도 꼭 보세요. 노희경은 다 좋더라구요.
아, 거기 정유미 좋아하는 경찰 선배로 나오는
남자 배우있는데 진짜 훈남이에요.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호사죠.ㅋㅋ

후애(厚愛) 2018-04-1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화유기가 끝나고 나서 볼 드라마가 없어서 티비를 잘 안 봐요.^^;;
화유기 정말 재밌게 봤는데 결말이 마음에 안 들었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stella.K 2018-04-10 13:29   좋아요 0 | URL
화유기 저도 첨엔 좀 봤는데
전 역시 판타지가 좀 안 맞더라구요.
차승원 땜에 볼까 했는데...ㅠ

후애님도 좋은 하루요!^^

서니데이 2018-04-12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보다는 조금 조용한 느낌이 드는 오후예요.
요즘 봄날씨, 꽃샘추위, 그리고 이른 초여름 같은 날씨가 매일 매일 다르게 오는 것만 같아요.
그러다 4월이 많이 지났어요.
stella.K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나의 카프카 - 카프카와 브로트의 위대한 우정
막스 브로트 지음, 편영수 옮김 / 솔출판사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지난 번 카프카의 <일기>를 읽고 혼쭐이 났다.

일기만큼 그 사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무엇보다 어렵게 쓰이지 않았다는 것과 어느 정도 관음증을 만족시켜준다는 점에서 일기를 읽는다는 건 만만찮은 재미와 흥미를 갖게 만든다. 그런데 카프카는 그것을 완전히 무산시켰다. 누가 어려운 작가 아니랄까봐.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졌다. 카프카를 좋아하는 독자도 많다만 나는 좀처럼 좋아지질 않으니.

 

카프카의 일기에 혼쭐이 났다면 다시는 도전을 안 할 것 같은데 또 하고 말았다. 이번에도 또 도전을 하고 말았다. 이번엔 그가 직접 쓴 것이 아니고 그의 친구가 쓴 책이다. 이번엔 좀 쉽지 않을까 아니 읽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먼저 읽은 것에 비하면 그나마 읽히긴 한데 나을 것은 없다. 그 알량한 읽힘도 책 자체가 좋아서라기 보단 그나마 읽어준 것이 있어 읽혔다고나 할까? , 이렇게 어려운 작가에, 이렇게 어려운 친구라니.

 

글쎄. 이 책을 규정하기를 평전이라고 했는데 글쓴이가 당대 카프카 못지않은 지식인이었으니 오죽 할까 싶기도 하지만 나는 왠지 평전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좀 아니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 단번에 네가 카프카를 알아?’ 타박과 오해를 받을 테니 입을 다물어야 할 것 같다.

 

물론 평전이 맡긴 맡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 개인으로 볼 때 카프카에 대한 (친구라도) 존경과 경의의 뜻으로 쓴 일종의 고급진 에세이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글도 보면 앞에 나오는 전기에서 저자가 느끼고 봤던 일인칭 시점에서 카프카를 묘사하기도 했다. 평전은 그 보다 더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래도 저자 자신의 카프카에 대한 감정과 주관적 느낌이 들어갔다는 점에선 평전이라고 보기엔 다소 애매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또 전기 이후에 나오는 카프카의 신앙과 학설, 작품에 나타난 절망과 구원 등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카프카의 문학을 학문적으로 잘 정립하려 했는지 그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런 것을 보면 평전은 평전일 것이다. 그 사람에 짐작이 아닌 직접 보고 느끼고 연구한 것을 쓴 것이니까.

 

책을 읽으려고 펼쳐든 순간 도대체 카프카가 저자에게 어떤 존재였기에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새삼 부럽기도 했다. 나에 대한 평전은 고사하고 내가 죽고 난 뒤 내가 어떠한 사람이었다고 글 한 줄이라도 남겨줄 사람이 나게 과연 있는가? 난 또 그러리만치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왔을까? 거기에 대해 나는 결코 긍정할 수가 없다.

 

<일기>를 읽었을 땐 무조건 어렵다고만 느꼈고, 이 책 역시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저자로 인해 카프카를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난 이 책에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카프카에 대해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을 땐 시쳇말로 좀 찌질 하지는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 아버지를 어려워했고, 그렇게 많은 글을 썼음에도 늘 자신은 글을 조금밖에 못 썼다고 자책하며 살았다. 게다가 전업 작가가 된다는 건 아예 꿈도 꾸지 않았고 평생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했다. 게다가 결혼을 번복했으며 더구나 자기네 집을 돌봐주던 가정부와 결혼할 생각도 가졌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그는 한마디로 사회부적응자는 아닐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 읽어보면 이런 판단이 얼마나 섣부른 판단인지를 반성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카프카는 지적인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문학에 뜻이 있었음에도 법학 학위까지 받았고, 저자의 말에 따르면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어느 순간 농담도 잘하고 유쾌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또한 관용과 확고한 사람으로도 묘사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 브로트가 언젠가 니체를 사기꾼이라며 비판하고 성토하는 자리에서 카프카는 그렇지 않다며 반박했고 그 후 브로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어줬다고 한다. 그리고 둘은 평생지기로 살았다.

 

카프카의 연애도 그렇다. 일개의 가정부와 결혼할 생각을 했었다면 그는 연애는 해 봤을까 싶기도 하겠지만 그는 확실히 연애를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밀레나에게 그렇게나 많은 편지를 보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았고 적대자가 없었다고 브로트는 말한다. 또한 그가 평생직장에 다녔던 건 밥벌이를 위한 직업과 글쓰기 예술은 날카롭게 서로 분리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저널리즘이 표현하는 직업과 글쓰기의 혼합을 거부했다고. 그것을 브로트는 직업과 소명을 얻기 위한 투쟁으로 본 것이다. 그러니까 글 써서 돈을 못 벌 것이라는 판단 하에 직장을 병행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글쓰기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을 다녔던 것이다.

 

뭐 이런 것만 보더라도 카프카가 얼마나 성실하고 선량하며 유쾌한 사람인지 짐작이간다. 그러므로 그의 사후 세간의 이목에 의해 덧씌워진 잘못된 이미지를 좀 벗겨낼 필요도 있어 보이고, 이 책은 그러기에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브로트와 카프카가 친구가 된 후로 그 둘은 거의 매일 만났고 필요하면 하루에 두 번도 만났다고 한다. 과연 대단하다 싶다. 우린 아니 적어도 난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라도 거의 매일 만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에 들이는 공력도 공력이지만 매일 만나면 아무리 좋아하는 친구더라도 좀 질리지 않을까? 그럴 수 있는 이면엔 서로 간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새삼 궁금하기도 하다.

 

이 책서도 카프카의 일기와 편지가 빠지지 않는다. 카프카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이제 일기와 편지로 더 유명한 하지 않을까? 그의 시대나 요즘이나 편지를 주고받는 인간관계란 흔치 않아 보인다. 그런 점에서 부러운 것도 사실이고 꽤나 지적여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모든 것을 말 보단 글로써 풀어내려고 했던 카프카가 뭔지 모르게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건 왜일까? 그건 하나의 깊은 확신이기도 하겠지만 말로써 풀어내지 못하는 그의 내적인 한계가 있어서는 아닐까? 그냥 네 멋대로 생각해 본다. 그래서도 그는 작가로 충실했던 거고.

 

, 카프카에 대한 이미지 중 또 하나는 고독이라는 건데 이 책 그 이미지도 다소나마 걷힌 느낌이다. 이렇게 몰랐던 (또 알더라도 잘못 알고 있는)카프카를 알아가는 건 (작가들의 삶을 알아가는)나에겐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책 카프카에 대해 가장 직접으로 알 수 있는 책은 아닐까 한다. 카프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복근에 힘을 뽝 주고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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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27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는 작품 속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독특한 내면 세계가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직장이나 옆집 이웃으로 만났다면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이었을 것 같습니다. 실은 만나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어쩐지.^^:
stella.K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stella.K 2018-03-28 14:2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막상 그 사람의 실재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편견이라고 하는 거겠죠?
저는 이 책으로 카프카가 조금은 더 가까워진 느낌이긴 하지만
여전히 카프카는 아니 어쩌편 독일 문학(폴란드가 포함된)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ㅠ

2018-03-28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8 14:2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나라에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있지만 누구 하나 그의 친구가 평전을 써줬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는데 역시 그 사람에 그 친구라고 해야할까요?
부럽기도 하고. 저 주위의 사람들은 저를 어떻게 평가할지
것도 참 그렇더라구요.ㄷㄷㅋㅋ

서니데이 2018-03-30 0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매일같이 공기가 좋지 않은 날이 이어지고 있어요.
알레르기와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8-03-30 13:30   좋아요 1 | URL
아, 네. 서니님도요.^^

희선 2018-04-01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카프카 소설은 거의 읽지 못하고, 《카프카 평전》(이주동)을 봤어요 한국 사람이 쓴 거예요 한국 사람이 써서 잘 읽히고 괜찮습니다 작품 이야기도 조금 하지만... 카프카가 살던 때는 편지를 많이 썼지요 카프카는 브로트한테 자기가 쓴 글 다 태우라고 했지만 브로트는 책으로 냈어요 브로트만 그런 건 아니군요 카프카가 마지막에 사귄 여자도 카프카가 쓴 글을 가지고 있다가 책으로 냈는지 자손한테 물려줬는지... 이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군요 카프카가 쓴 글을 없애지 않아 지금 사람이 읽는 거네요


희선

stella.K 2018-04-02 13:25   좋아요 1 | URL
아, 읽으셨군요.
이책은 문체가 좀 어렵더군요.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 좋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해를 돕도록 썼을 테니.

맞아요. 태우지 않고 출판을 했으니 우리가 읽은 거죠.
그런 점에서 브로트나 카프카의 마지막 연인에게 고마워해야죠.^^

서니데이 2018-04-0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주는 미세먼지가 많았지만, 날씨가 매일같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어요.
오늘도 따뜻한 날이예요. 바깥에는 꽃이 피는 시기이고요.
stella.K님, 오늘 부활절입니다. 기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부활을 축하합니다.^^

stella.K 2018-04-02 13:30   좋아요 1 | URL
아, 고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의 성경공부 리더님이
부활절 계란을 선물로 주시더군요.
어제 못 먹고 좀 아까 점심으로 먹었습니다.ㅋ

내일 모레 비오고 조금 추워질 거라더군요.
아무래도 한식이 지나야 완전 봄날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미세먼지 보통이라더니 좀 뿌옇더군요.
외려 오늘이 좀 낫나요?
5월까지는 미세먼지낀 날이 많을 거라네요.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아요.^^

2018-04-03 0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03 1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지금은 내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을 당시도 우리나라에 베스트셀러란 말에 혹해서 본 거지 하루키가 좋아서 읽은 것도 아니다. 20년도 더 지났으니 지금 다시 읽으면 또 어떨까 하다가도 영 다시 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런 <상실의 시대>가 언젠가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역시 영화로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 걸 보면 난 하루키를 안 좋아하긴 하는가 보다. 그러다 어제 갑자기 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IP TV에서 이달 말 서비스 종료를 한다니 볼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 감독이 트란 안 홍이다. 예전에 <시클로>란 영화를 만든 사람. 그런 줄 알았러라면 진작 챙겨 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영화를 괜찮게 본 기억이 있어서.

 

이 영화에 대한 평은 그냥 좋게 말해서 평작 정도가 되는 것 같은데, 스토리는 어떨지 몰라도 영화는 스토리만 보는 건 아니지 않는가? 종합 예술인만큼 난 감독이 기본적으로 영화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시클로>는 솔직히 내용은 거의 생각이 안 나는데 녹색과 노란색의 배색을 즐겨 강조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 영화도 그랬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면서도 하루키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그의 동명 소설을 읽었을 때 친구에게 일본 소설은 백치미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중에 생각을 고쳤는데, 백치미가 있다면 이 소설에 있는 거지 일본 소설 전체에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소설에 백치미가 있다고 느낀 건 우린 보통 섹스에 관한 이야기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의 소설만큼 노골적으로 하는 것도 처음 보는 것 같다. 물론 포르노 소설이라면 이해하겠지만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순수 소설 아닌가?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한다는 게 백치 같았다. 

 

화자인 와타나베는 하루키의 페르소나라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이고, 언제나 그렇듯 작가의 초기 작품은 자전적이라는 건 하루키도 피할 수 없는가 보다. 하지만 작품에서 중요한 건 와타나베 보단 나오코에 무게 중심이 더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나오코의 고민은 그런 것이다. 사랑과 섹스는 다른 것이냐는 것. 그도 그럴 것이 나오코의 애인겸 와타나베의 친구 기츠키가 자살을 했다. 그건 나오코에게 크나큰 상실의 아픔이었겠지만 놀라운 건 기츠키가 죽기 전 나오코는 그와의 섹스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있었다. 사랑하는데 왜 섹스가 안 되는 것인가? 그런데 반해 와타나베와는 사랑은 아니지만 섹스가 가능했다.

 

별 걸 다 고민한다 싶기도 한데 아직 갓 스물도 안된 소녀라면 고민할만도 하겠다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과 섹스를 따로 분리시키기도 하지 않는가? 그래서 사랑은 어렵지만 섹스는 욕구를 푸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오코가 조금 더 크고 세상에 좀 더 영악해지면 이게 가능한 줄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놔버린다는 의미에서. 그런데 아직도 그것을 그렇게 고민한다는 건 그만큼 그녀의 영혼이 순수하다는 뜻도 되는 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이 또 부담스러운 건 문화의 차이인지도 모른다. 일본은 20세 미만의 청소년도 필요에 따라선 섹스를 하기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어쨌든 법적으론 금하고 있다. 섹스를 양지에서 다루는 것이 더 건전하고 안전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음지에서 다루길 좋아하니 이렇게 소설로 다뤄도 민감해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오코는 애인이 죽은 때문인지 심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했고, 사랑과 섹스를 분리하지 못해 결국 사랑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결국 자살하고 만다.

 

정말 사랑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할까? 그 보단 섹스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는 거겠지. 나오코가 다른 종류의 사랑을 알았더라면 그런 비참한 최후는 맞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해 와타나베는 어찌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현실주의자처럼 보여진다. 또한 하루키는 잘 알려진대로 성에 있어서만큼은 지극히 건전한 보수주의자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루키의 체험을 바탕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보면 그가 왜 지극히 건전한 보수주의잔지 알 것도 같다.

 

또한 영화를 보면 자연을 배경으로 한 장면들이 많은데 문득 에덴 동산을 생각했다.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 어쩌면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에덴에 있는 또 다른 아담과 하와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거기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정치와 경제를 논할 수 있을까, 사화 전반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가 탄생된만큼 서로의 성이 다른 것에 대한 얘기 밖에 더 했을까? 그리고 어디를 자극해 주면 좋아할 건지 즉 서로의 성감대를 연구하는 것 밖에 더 있을까?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대화도 그런 것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를 보자 하루키 코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왜 이후의 작품에서도 그처럼 성에 대한 묘사가 빈번했는지 말이다. 그는 언젠가 읽은 한 인터뷰  기사에서 자신은 성에 대해 지극히 보수적이지만 소통의 기재로 다루길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작가가 성에 대한 얘기를 다루기만 하면 무조건 변태로 의심하는 건 어쩌면 성의식이 낮아서는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니 그동안 뭔가 불편했던 사놓고 읽지 못한 하루키의 일련의 작품들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핏 트란 안 홍이 그의 작품을 영화화 하기 위해 무려 4년을 설득했다고 들은 것 같다. 감독의 인내와 끈기도 대단하지만 역시 하루키란 생각이 든다. 그가 영화를 싫어한다고 들어보지 못한 것 같은데, 내가 역시 하루키란 건 그 특유의 보수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그는 같은 문인들과의 교류를 일체하지 않으며, 잡지를 보거나 기고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을 영화화 한다고 했을 때 불편해 했을 거란 건 일견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아마 그의 작품이 영화화 되는 건 그가 살아있는 동안은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내가 볼 때 <상실의 시대>는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만큼 표현했다면 잘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감독 좀 띄워주면 안 되나? 그동안은 알게 모르게 하루키의 소설 보단 그에 관한 책을 더 많이 읽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모르겠는 걸 이 영화에서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능해졌다는 게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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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3-26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도 시간의 차이가 있고 공유하는 시간, 그와 부딪히는 시간이 필요한 듯해요. 영화는 보지 못했네요. 책도 하도 오래전에 읽어 감흥이 가물가물합니다

stella.K 2018-03-26 16:5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요. 뭔가를 이해한다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왜 그렇게도 그가 끌렸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기회되면 보세요.
보시는 것만으로도 잊었던 소설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를 거예요. 영화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cyrus 2018-03-26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넘사벽‘이라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저도 몰랐고, 오늘 처음 알았어요. ^^;;

stella.K 2018-03-26 17:01   좋아요 0 | URL
헉, 정말...?! 난 알긴 알았는데 볼 생각을 안하고 있었지.
감독과 서비스 중지만 아니었으면
언제까지나 몰랐을 것 같아.

내가 더 놀란 건 하루키가 이렇게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음에도
하루키를 이해한다는 건 쉽지 않다는 거야.
이 영화 보니까 또 좀 알겠더라구.
이해한다는 건 좋은 일이지.
남자들이 소설 좋아하기는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아.^^

꼬마요정 2018-03-2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클로... 양조위가 나와서 보고 감독 이름을 확인했던 영화였죠. 건조한 듯 한데 물기 가득한 녹색 같은 영화였어요.. 뭔가 비정하면서 알 수 없는 기분..

저도 하루키는 이해가 안 간다고 해야 하나요, 안 맞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 느낌인데 영화를 보면 다를 수도 있겠네요. 도전! 해볼랍니다. 감독이 맘에 들어요^^

stella.K 2018-03-26 17:12   좋아요 1 | URL
헉, 양조위가 시클로에 나왔군요.
오래된 영화라 누가 나왔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네요.
요즘 양조위에 꽂혀서 그가 나왔던 영화를 보고 있는 중입니다.
<상성:상처받은 도시>를 얼마 전에 보고
오늘 오전에 <무간도>를 조금 봤는데 마저 봐야겠죠.
양조위는 정말 멋있는 배우 같습니다.
<색,계> 영화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거기서 매력적으로 나오잖아요.
이 배우는 나이 들수록 점점 더 멋있어지는 것 같습니다.ㅋ

영화 내용은 재미없을 수 있어요.
근데 영상이 좋고, 하루키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꼬마요정 2018-03-26 17:35   좋아요 1 | URL
아아.. 상성도 재밌게 봤어요. 무간도는...정말... 그 눈빛이... 황부장이었나요, 그 분을 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요. 화양연화 꼭 보세요. (보셨을 것 같지만) 전 완전 반했죠. 사실, 제가 양조위에 꽂힌 건 의천도룡기부터였지만요^^;

stella.K 2018-03-26 18:10   좋아요 0 | URL
ㅎㅎ 아, 네네.^^

서니데이 2018-03-26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는 80년대에 나온 책인데, 영화가 2010년작이네요. 이 책은 워낙 유명해서 예전에 영화로 나왔을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하루키 원작으로 영화나 드라마가 된 것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트란 안 홍 하면 <그린 파파야 향기>를 먼저 떠올리는데, 그 영화 포스터 때문일거예요. 영화는 내용소개 보고 좋아할 내용이 아닐 것 같아서 안 봤는데도, 꼭 그 영화가 먼저 생각이 나요.
오래전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으니까, 지금 읽으면 많이 다를지도 모르겠어요.
영화 재미있다고 하시면 저도 나중에 한 번 볼게요.
stella.K님, 즐거운 월요일 좋은 하루 보내세요.^^

stella.K 2018-03-26 17:16   좋아요 1 | URL
ㅎㅎ 재미 없어요. 스토리는요.
근데 영상으로는 나름 잘 찍었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그린 파파야...근데 전 그 영화 못 본 것 같아요.
언제고 봐야겠어요. 시클로도 다시 보고.
거기에 양조위가 나온다네요.
아마 양조위 유명해지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요즘 이 배우에 꽂혀있거든요. ㅎㅎ

서니님도 오늘 하루 마무리 잘 하십시오.^^

2018-03-2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6 18:1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시니까 영화로라도 보시란 말씀도
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남자들분이 소설 잘 안 읽잖아요.
이해합니다.ㅋㅋ

포스트잇 2018-03-26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 소설들 중에서도 예외적인 소설이고, 아마도 하루키가 애정하는 작품은 아닐겁니다. 그걸 영화화하겠다니 더더욱 싫어했을 것 같습니다.

stella.K 2018-03-26 18:01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감독이 4년을 설득했다잖아요.
대단하죠. 역시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더니...
하루키를 어떻게 설득했을까요?
그게 궁금해요.^^

포스트잇 2018-03-26 18:23   좋아요 1 | URL
트란안홍이니까요, 그나마..ㅎ

레삭매냐 2018-04-0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닥다리 세대라 그런진 몰라도
<노르웨이의 숲>보다는 왠지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이 더 마음에 듭니다.

소설팬들은 그렇게 영화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더라구요.

전 작년에 읽었는데 그다지 감흥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하루키에 대한 호불
호 차이가 아닐까 싶습니다.

stella.K 2018-04-03 19:4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상실의 시대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어요.
그나마 영화는 이미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사실 저도 영화 보단 소설을 믿는 편이긴한데
그렇더라도 이 영화는 평가절하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좀 아쉽더군요.

shinok 2018-05-15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늦은감이 있지만 댓글 한번 달아보아요 ^^

전 중.고등학교 시절 저 책을 읽고 자살한 젊은 층이 많다며 선생님께서 만류하셨던 기억이 더 강렬합니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 읽었죠... 근데 20년 가까이 되니 기억이 그닥 .. 그래도 짧은 장면은 기억은 나는데... 하루키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희안하게 잘 읽힙니다. 그래서 많이 읽은편인듯합니다. 이걸 읽고 다른걸 읽으면 사실 그 사람이 그사람이고 그 인물이 그 인물인듯 섞입니다. 당연한거겠죠??

그래도 하루키의 책을 계속 손에 드는 이유는 달이 뜨면 그의 책 이야기 속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리고 수도원 사진을 보면 그 또한 그의 책에서 본 장면이 ... 각인이 된것처럼 또 피어올라요.

생각해보건데 전 하루키를 좋아하진 않는데....이미 그에게 동요 되어버린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

‘상실의 시대‘ 총탄에 맞은것과 같은 저 겉표지를 간직한채 아직도 제 서재에 꽂혀있는데..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제가 다시 읽을 일보다는 자라나고 있는 제 딸아이가 다시 읽을듯합니다.그냥 나중에 읽고 서로 대화하고 싶어서... 그 어떤 소재로건 아이와 대화하고 나누고 공감하고 때론 배척해도 좋으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으로....

stella.K 2018-05-16 14:58   좋아요 0 | URL
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상실의 시대는 좀 허무주의가 짙긴하죠?
요즘에도 소설책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어떤 선생님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막는 것 보단
같이 토론을 하셨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요?
하긴 외설적인 표현도 많았으니...

정말 하루키는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제 읽지 말아야지 해 놓고도 어느 샌가 모르게
한 두 권을 읽게되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난 사람이란 생각도 듭니다.^^
 

너의 간을 먹고 싶어. 뭐 이러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인간이 되려다만 구미호의 이야긴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근데 하필 하고 많은 장기 중에 췌장이라니. 췌장과 관련된 질병을 앓다 사망한 사람과 그 유가족이 알면 좀 뜨악하지 않을까?

 

일본 관객은 어떨지 모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 개봉 당시 관객과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작은 소동이 빚어졌나 보다. 나도 제목이 하도 독특하여 요 근래 보았다. 사실 이 영화는 원작을 바탕으로 했고, 언제나 그렇듯 표지 디자인은 어느 정도 그 책이 가지는 이미지를 반영하느니만큼 벚꽃 만발했던 것으로 보아 생각처럼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오히려 소녀의 감성을 저격하는 영화라 제목이 과연 어울리기나 한 건지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다. 그러고 보니 이런 소녀 감성 저격 영화는 또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고백을 하자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 영화는 그 나름대로 보는 맛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과도기를 겪는 걸까? 최근 개봉된 영화들이 시원치가 않다. 이 영화도 고만고만하다. 하긴 예전부터 일본은 애니메이션 강국이고 영화는 우리나라만 못하다는 평이 있긴 했다.

                

                             

 고만고만한 영화는 또 참 애매하게 중간에 끊기도 뭐하다. 특별히 감동스러운 것은 아닌데 그래도 뭔가 씹어볼만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이제 겨우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사쿠라는 시한부 인생을 산다. 그런데 이 아이는 어쩌면 그리도 밝고 맑은 심성을 가졌는지. 얼마 후 죽는다기 보단 잠시 선녀가 인간 세계에 왔다가 곧 다시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게 흔히 있을 법한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아픈 것도 정확하게 어디가 아픈지도 모른다. 어떤 관객은 섣부르게 췌장암 아니냐고 했다가 눈총을 받았나 본데 정말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췌장쪽 병을 앓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면 시나리오는 과학이라고 부르짖는 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의 물결이 쇄도했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영화로 나온 걸 보면 이건 그냥 맥거핀이라고 할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사쿠라의 간지도 그렇다. 도무지 병자 같지가 않다. 영화 말미에 가면 사쿠라의 정직한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데 밝고 맑고 환한 캐릭터는 실상 그녀의 성격임에 분명하지만 그런 그녀도 죽음 앞에선 두렵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인간은 없다.

 

영화가 소녀 감성을 제대로 저격했다고 한 것은, 소녀들의 로망중 하나는, 어느 아프지 않는 이름 모를 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사는데 운명의 남자와 비극적인 사랑을 하다 그의 품에서 죽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대가 우락부락한 짐승남일 수는 없다. 잘 생겼지만 뭔가 여리고 모성본능을 자아내는 남자여야 뭔가 합이 맞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으로 낙점된 키타무라 타쿠미란 배우는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연기는 그만그만한데 그 이미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소년 시절 필이 약간 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둘이 펼치는 영화 내용은 역시 고만고만해서 굳이 줄거리는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너무 건전한데다 신파적이기도 해 내용을 얘기하는 순간 바로 스포일러가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의 췌장을 먹으면 그 영혼이 그 사람 안에서 산다는 속설을 의미하는 거였다.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그들의 모든 행동과 심증은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췌장을 먹어 달라는 말이 안 나올 수 없지 않은가?

 

사쿠라가 마지막 죽는 것도 극적이라기 보단 작위적이긴 하다. 일본도 몇 년 전부터 묻지 마 살인이 유행인가 보다. 그런데 사쿠라는 비록 짧지만 제 명에도 죽을 수 없는 운명이었나 보다. 묻지 마 살인에 그나마 짧은 생을 단축했다. 그러니까 영화는 사쿠라가 자신이 사랑했던 나래이터겸 남자주인공 시가에게 남긴 공병문고란 그녀의 일기겸 편지를 사후에 읽게 하기 위한 의미로도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서 역시 사람은 말과 글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칼이고 방패인 것이다. 사쿠라는 소년을 사랑함에도 그것을 차마 입 밖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알아 달라는 듯 일기장에 짧은 기간 동안 그를 알았던 것에 대한 감사가 들어있다. 말로 할 수 없으니 글로 남긴 것이다.

 

사실 사쿠라가 공병문고에 시가에게 했던 말이 오글거리긴 하다.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너로 인해서 나의 마지막이 즐거웠다는 뭐 그런 메시지를 남겼는데 하긴 영화나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멋있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게 흘러가는 중에 뭐 하나가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거나 대사가 귓가에 맴돌거나 가슴에 박히면 것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그 작품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즉 나는 사쿠라의 이런 신파에 걸려든 것이다.

 

내가 있어서 누군가의 삶이 덜 힘들고 조금 덜 외롭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하는 인생은 아닐까? 5년 전 나의 오빠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문득 들은 생각은 사람은 정말 죽기 위해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아무리 백세 시대라고는 하지만 백세까지 살게 되기를 바라진 않았다. 못해도 60만 넘겨 살아도 덜 안타깝고 덜 슬펐을 것 같았다. 어떻게 마이클 잭슨이 죽은 나이와 같이 죽을 수 있을까? 난 이상하게도 오빠의 죽음을 두고 그 어느 것에도 위로를 받을 수 없었지만 그나마 이게 위로라면 위로였다.

 

오빠가 죽고 나서 난 건강에 더 민감해졌다. 그건 꼭 오빠와 같은 나이 죽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엄마를 생각하면 오빠는 확실히 불효자임엔 틀림없다. 어쩌자고 엄마를 두고 자기가 먼저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오는 길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건 순서가 없다지 않은가. 그러니 오빠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는 날 동안 이렇다 할 병도 없이 건강했으니. 아무튼 난 적어도 엄마 보단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자신이 먼저 가는 슬픔을 겪게 하는 건 오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말은 안 하지만 우리 가족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사는 동안 사람은 다른 사람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최대한 걱정과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나부터 건강하고 바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가졌던 죽기위해 사는 것인가란 질문이 아니라 살아주기 위해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사쿠라의 소년에 대한 감사가 성립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그것을 의식하며 살 필요는 없다. 소년은 사쿠라에게 자신이 그런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있어줬을 뿐이다. 상대가 의식할 정도가 된다면 그건 고마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변태가 되는 것이겠지.

 

영화가 신파 같고 어찌 보면 도덕 교과서를 보는 것도 같다. 보면서 일본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도 영화를 다 만드는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영화 보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학교 졸업하고 또 어디 가서 도덕 교과서를 보겠는가?

 

영화가 지나치게 보물 찾기식이어서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긴 하다. 그런 것만 잘 넘길 수 있다면 그럭저럭 볼만은 하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것에 충실한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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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8-03-24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는 패스했구요 최근에 본 일본 영화는 나미야백화점의 기적이였습니다. 역시 도덕교과서적이고 신파적이긴 한데 의미는 있었어요. 죽음과 관련해서 삶과 관련해서. 둘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쌍생아겠죠. 오빠분 이야기는 님 책에서도 읽고 찡했는데 그게 다 공부라는 김사인 시 ‘공부’가 뜬금없이 생각납니다. 전 아직 그런 공부 못해봤네요. 언제인가 하게 되겠죠.

stella.K 2018-03-25 19:11   좋아요 1 | URL
아, 김사인의 그런 시가 있었군요.
저도 한번 읽어봐야할 것 같네요.

최근 일본 영화에 대한 느낌은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이 영화도 그렇고, 언젠가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
란 영화도 봤는데 별로더라구요.
나미야 백화점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자잘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영화로 만드는 걸 보면 그런 영화 정신은 필요해 보이기도 한 것 같구요.
고맙슴다. 읽어주셔서.^^
 

TV를 본다면 난 주로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편이다. 그것도 없는 시간 쪼개서 보는 것이라(누가 보면 내가 엄청 바쁜 줄 알겠다. 하루는 왜 그리도 빨리 지나가는지...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물론 간혹 예능이나 교양을 보긴 하지만 정말 그야말로 '어쩌다 예능', '어쩌다 교양'이다. 

 

K본부에서 하는 <인간극장>은 또 얼마나 오래된 교양 프로그램인가? 아침 시간 늘상 하는 거니까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건 정말 간혹 꽂혀서 보는 것이 있다. 나에겐 이번 주 방송이 그랬다. 한때 잘 나가던 교수였는데 5년 전쯤 간암 판정을 받았단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리라. 그러다 우연히 길에 버려진 유기견을 발견하고 그 개의 처지가 자기 같고, 자기가 그 개 같은 감정이입이 생기고 그래서 그 개를 데려다 키우면서 간암이 완전히 나은 것이다. 그 이후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그야말로 유기견, 길고양이에게 헌신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극장' / 사진=KBS 온에어 방송화면 캡처(http://stoo.asiae.co.kr/news/naver_view.htm?idxno=2018032308142656853)

 

난 이런 내용이 좋다. 물론 우리집도 개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그런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뭐 하나가 계기가 되서 지금까지 살아 온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삶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 보다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얼마나 치열하게 싸우며 살아가는가. 스펙 쌓고, 경력 쌓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살다가 늙어가고. 그렇게 짜여진 듯한 삶 가운데서 뭐 하나가 툭 섬광 같이 나타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면 얼마나 스릴있고, 놀랍고, 짜릿하겠는가? 우린 그렇게 짜여지고 정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짜여지고 정해진 가운데 나를 변화시켜 놓을만한 한 순간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일찌감히 생을 포기하고 사는 건 얼마나 손해 보는 일인가?

 

지금의 세대를 가리켜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는 세대라고 한다. 그건 어쩌면 맞는 말인지도 모른다. 정해진 틀에서 보면 말이다. 하지만 틀을 조금만 벗어나면 무한히 새로운 삶이 펼쳐지기도 할 텐데 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길 기대한단 말인가? 

 

어쨌든 우린 그런 순간을 두고 삶이 선물이 되는 순간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또 저 사진 속 주인공은 확실히 그랬다. 삶이 자신을 배반하고 저주한 것이 아니라 축복이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순간이 왔다고 해서 그 이후의 삶이 탄탄대로고 완전무결한 행복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녀의 삶은 더 많이 힘들고 고난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60마리나 되는 유기견, 유기묘를 매일 같이 돌보고 산다는 게 쉬운 일인지. 누구에겐 돌보다 나가 떨어질 상황이다.

 

실제로 주인공은 암은 고쳤는지 모르지만 과로로인해 없던 병도 생길 판이고, 또 그러니만큼 암이 언제 도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 풍전등화와 같은 삶. 매일 매일 작은 불꽃을 피워 올려야 하는 상태. 우린 그런 속에서 어떤 삶을 선택하며 살아야 하는지는 각자의 몫일 것이다.         

 

어떤 사람에겐 그녀의 삶은 몹시 가깝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낱 개와 고양이들에게 바쳐진 삶이라니. 어디 여행을 갈 수나 있나, 사람을 맘놓고 만날 수나 있나? 하다못해 자기 딸 대학원 졸업식에 그 먼 거제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와서는 하룻밤은 고사하고 밥 한끼도 못 먹고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인가 한숨이 나오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대로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건 남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그의 삶이 그것으로 즐겁고 만족한다면 우린 그것으로 그의 삶을 축복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의 DNA는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도록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만을 위해 산다는 건 피곤하고 위험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녀는 버려진 개와 고양이를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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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3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8-03-23 18:2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뭔가 보탬이 되고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텐데..요.ㅠ

저희집이 반려견을 키우고 있어서
이번 주 방송분은 유난히 관심있게 보게 되더군요.
개중엔 정말 흠없고 예쁜 녀석들도 많던데
원주인은 어떻게 이런 녀석들을 버릴 생각을 했을까?
보는 내내 짠하더라구요.
누가 좀 자원봉사해 주는 사람 없을까 안타깝기도 하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