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는 보다가 말았는데 <택시운전사>는 보겠더라.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다. 둘 다 우리나라의 뼈 아픈 역사를 다고 있는데도. <군함도>는 언제고 다시 각 잡고 봐야할 것 같긴한데, 언제가 될런지 기약이 없다.
'양민 학살'이란 말은 근대사에서나 다룰 법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멀지않은 현대사에서 다뤄질 수도 있다는 게 참 믿기지가 않는다. 굉장히 낮선 단어이기도 하고.
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난 평화주의자지만, 적국의 양민을 학살한다는 건 그나마 이해는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죄없는 국민들을 그렇게 무참히 살육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영화에서 시종 흐르는 전제는, 우덜 가지고 왜들 그랬쌌는지 도무지 모르겠구마이다. 왜 광주여야 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그때, 이 도무지 모르겠는 사실을 광주만 알고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영화계가,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박정희를 상징하는 새마을 운동이,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광주 민주화 항쟁을 소재로한 영화가 만들어 진다는 이 프레임도 언젠가는 좀 벗어나야 할 과제는 아닐까? 꼭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화든 시대의 조류에 구애 받지 말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다. 판단은 관객의 몫일뿐이고.
영화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야 늘 영화 평점이 짠 편인데, 이 영화만큼은 별 4개 내지 4개 반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어떻게 찍었을지 궁금하다. 그 시절엔 흔했지만 지금은 귀한 대접 받는 명마 포니가 한꺼번에 몇십 대씩 출연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나중엔 백미러도 부러지는 건 일도 아니다. 차체가 완전히 완파되다시피 하던데 그러자고 그 귀한 명마를 렌트했을 리는 없을 것 같고, CG라고 간단히 우기면 될 것도 같지만 또 그렇게 말하기엔 너무 빈티나는 설명 아닌가? 그밖에 피를 철철 흘리는 군중씬도 그렇고.
영화에서 유해진과 류준열은 진짜 닯은 꼴이다. 둘은 삼촌 조카해도 믿을 사이 같다. 그렇지 않아도 영화에서 유해진이 류준열에게 자기 막내 동생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웃었다. 이런 걸 두고 트릭이라고 해야하는 건가?

나라가 위기에 빠지면 속물 같은 시민도 애국자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가족, 내 친구, 내 동료가 피를 철철 흘리고 쓰러지는데 이 위기 때 가만 있을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렇지 않아도 서울내기인 만섭은 독일 기자를 어쨌든 광주에 내려줬겠다 자신의 임무는 얼추 끝냈으니, 서울로 돌아가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더구나 서울엔 자신의 기다라는 딸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결국 자신의 눈 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독일 기자 양반이 이 끔찍한 상황을 취재한다니 차마 광주를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타지 사람도 그렇게 하는데 본향 사람은 어떻겠는가?
나는 저 장면이 가장 웃기긴 했다. 시 전체가 마비가 된 상황에서 우여곡절 끝에 같은 택시 운전으로 밥을 빌어 먹는 황태술(유해진)의 집에 일행이 잠시 몸을 숨긴다. 거기서 늦은 저녁을 먹는다. 그때 꼭 클리세처럼 나오는 대사와 장면이 있다.이를테면 태술처가, "아유, 어째쓰까 찬이 마땅찮아 밥하고 김치 밖에 없는데..." 이걸 정말 그런 줄 알면 영화에 대한 모독이다.
또한 예고도 없이 들이닦친 남편의 손님 때문에 태출처가 화를 낸다면 그건 태술 가문에 먹칠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긴, 그런 상황에선 아무리 악처여도 웬지 잘 챙겨주고 싶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밥상씬에선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우리 집 보다 잘 먹는다.
그리고 이제 갓 스물이된 대학생 재구(류준열)의 꿈이 대학 가요제에 나가는 것이라는 걸 안 우리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노래를 불러 보라고 한다. 재구, 처음엔 빼더니 앳따 모르겠다 불러 재낀 노래는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다. 그 선곡은 적절하다 못해 탁월하다 싶기도 하다. 물론 그 시절 대학 가요제를 상징하는 노래들이 몇곡 있겠지만 이 노래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노래가 또 있을까? 더구나 재구는 그룹 사운드를 조직해서 나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문제는 노래를 너무 못 부른다는 것. 못 불러도 오지게 못 불러 결국 흥이나지 않아 만섭은 제지시킨다. 하지만 재구는 꿋꿋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보컬이 아닌 기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몇 개의 장면을 건너 뛰면 결국 죽음을 맞는다. 죽으면 꿈도 사라진다. 저 장면 결국 그의 대학 가요제 꿈도 사라진 것이다. 국가가 한 개인의 꿈을 이루어줄 의무는 없을지 몰라도, 영영 물거품이 되게 만들 권리 또한 없다. 시나리오가 좋은 영화다.
지금도 왜 당시의 군이 시민을 향해 총을 발포했는지 그 이유가 명확치 않다. 사건엔 반드시 원인이 규명되야 하는데 영화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고 명확히 진상이 규명된 바가 없는 것이다. 단지 아는 건, 당시 군 총사령관인 전두환이 이 모든 사건을 주도했다는 것 외엔.
얼마 전, 전두환이 이 사건으로 다시 재판을 받을 거란 소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북미회담과 두루킹 사건, 6.13 선거 때문에 쏙 들어간 양상이다. 무엇보다 그런 민족적 살인마를 전 대통령이란 이유만으로 한 해 9억의 경호비를 쓴다고 해서, 내가 낸 세금 그렇게 쓰게 할 수 없다 해서 청와대 게시판에 청원 글이 수억 이라고 하던데, 나도 영화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전두환이 돈이 엄청 많다는데, 그에게 9억은 한 해 먹는 사탕과 껌값인지도 모른다. 국민의 혈세 좀 재대로 집행됐으면 좋겠다.
영화가 다 좋긴한데 마지막 엔딩 때 세월이 흘러 2012년. 만섭은 여전히 택시운전사로 손님을 받는데, 어느 손님이 광화문으로 가 줄것을 주문한다. 글쎄.. 좀 피로해서일까? 그게 왠지 옥의 티 같다는 느낌도 들고, 영화적으론 전두환을 다시 재판해야 한다는 선동처럼도 느껴지기도 한다. 실제로 저 영화가 상영될 무렵 재판 건의가 나오긴 했을 것이다.